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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양

[Ego] 마지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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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흑산양
작품등록일 :
2021.02.19 05:54
최근연재일 :
2021.12.2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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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835,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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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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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Ego] 6장 14화

DUMMY

아리엘과 루미아가 재판부로 달려간 후. 리온과 베르는 차분한 발걸음으로 재판부로 향했다.

두 사람이 향하는 곳은 재판부의 정원. 넓은 정원 중에서도 재판부의 담장으로 가려진 깊은 정원이다.


“여기.”

“그러게···. 여기 오니까 더 진하게 느껴져.”


잔잔한 바람에 작은 연못까지 있는 정원. 그야말로 평온을 그려낸 듯한 정원의 모습에 리온과 베르는 얼굴을 찌푸렸다.

두 사람이 시선을 향하는 곳은 정원의 중앙. 작은 건물이 세워진 곳이다.

귀한 사람을 모신 듯, 엄중한 분위기가 흐르는 건물의 주변에는 아무런 경비도 없다. 이미 침입자인 아리엘과 루미아 방향으로 경비원 대부분이 향한 지금, 정원은 완전한 침묵 속에 있다.


“리온.”

“그래.”


리온과 베르. 두 사람은 조용한 정원을 걸으며, 경계를 지우지 않았다.

어느새 리온의 손에 베르의 또 다른 모습. 『칼라드볼그』가 쥐어진 체, 리온은 차분히 정원의 중앙 건물로 향했다.

침묵과 평온. 그 속에 흐르는 묘한 기척. 리온과 베르는 묘한 기척의 정체를 깨달았기에, 방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덕에.


“손님인가.”


중앙 건물에서 나온 남자의 모습에 간단히 검을 들었다.

남자는 자신에게 검을 향한 리온의 모습을 보고도 태연했다.

라셴의 전통복을 입은 남자는 차분히 리온의 모습을 확인하고, 리온이 든 검을 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차, 마시겠나?”


명백히 분위기와 어긋난 발언.

그에 리온이 얼굴을 찌푸리는 것도 잠시.

남자가 헛웃음을 터드리며 말을 덧붙였다.


“그게 목적이 아니겠지. 침입자.”


남자의 분위기에서 풍겨오는 묘한 기척.

그건 누가 뭐라고 해도, 오염된 마력이다.


“내 목이 목적인가?”


다만, 오염된 마력을 지닌 이 중에서도 차분해 보이는 남자의 모습에 리온은 더욱 의문을 보였다.

평범한 사람이 오염된 마력에 노출되면, 그대로 몸까지 오염된다.

얽히고설킨 마력은 본래의 마력까지 잡아먹고, 이윽고 영혼마저 침식하기 시작한다.

그런데도, 눈앞의 남자는 평범하다.


‘기척을 제외하면, 평범한 사람이야.’


그 점이 리온에게 혼란을 안겨주었다.


- “리온.”

“···알고 있어.”


제아무리 평범한 모습을 보이더라도, 오염된 마력은 숨길 수 없다.

혼란스러운 리온을 대신해 베르가 경고하자. 리온은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 스륵.


재판부의 내부.

그곳의 기척이 하나 사라졌다.


- “리, 리온. 어쩌지?”

“···역시.”

“이런, 한 사람이 당했나 보군.”


재판부의 기척을 어림짐작으로나마 파악하던 리온과 베르는 곧바로 상황을 알아차렸다.

기척이 사라진 경우는 둘 중 하나다. 철저하게 숨었거나, 죽었거나.


‘···두 사람이 근처에 있으니까. 아마 죽은 거겠지.’


리온은 사라진 기척 주변에 있는 두 사람을 파악하고, 상황을 이해했다.

사건이 늘었다는 한탄과 더불어 리온은 눈앞의 남자에게 다시 검을 들어 보였다.

남자는 조금 전, 기척이 사라진 걸 파악했다.

즉.


‘실력이 좋네.’


최소한 사람의 기척을 판별할 정도의 힘은 있다는 의미다.

그것만으로 평범한 인물은 아니다.

그렇다면, 리온이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은 늘어난다.


“이제야 오는 건가?”


남자는 리온의 모습에 비웃듯 작은 웃음을 짓고, 잔잔한 흐름으로 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 까딱.


작게 흔든 손가락은 버들가지의 흔들림과도 닮았다.

다만, 그 의미는 간단.


- “···도발하는 거네.”


리온을 도발하고 있다.


“후우···.”


심호흡 한번.


‘이미 엎질러진 물.’


아리엘과 루미아.

두 사람 쪽에서 일이 터졌다.

수습하는 일이 늘어났지만, 다행스럽게도 리온 일행은 수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간다.”


굳이 거리낄 게 없다.

검을 들고, 자세를 다잡은 리온과 그의 앞에 선 남자.

남자는 나른하던 얼굴에 웃음을 그려 보이며, 한 마디.


“오게.”


그 한마디를 기점으로, 리온은 움직였다.


-+-


라자의 몸이 부러진 나뭇가지처럼 쓰러지는 순간, 루미아는 직감했다.


‘혼나겠는데.’


리온은 분명 아리엘과 루미아에게 말해두었다.

살생은 하지 말라는 이야기. 그 이야기를 들은 루미아는 너무나 간단히 생각했다.

자신보다 약한 이들이니 힘 조절은 쉽다고.

그러나.


“너무 더러운 검을 쓰니까···. 나도 모르게···.”


라자는 순수한 검사가 아니다.

검을 휘두르며, 몸에 품은 암기로 루미아를 노렸다. 때로는 아리엘을 노릴 듯하며 루미아의 동요를 노리기도 했다.

상대에게 온전히 집중하지 않는 모습에 루미아는 저도 모르게 검을 끝까지 휘둘렀다.


“아리엘···. 어떻게 하지?”


검을 끝까지 휘두른 탓에 라자의 명을 끊었다.

심장을 찌르고, 폐를 갈라내는 등. 평범한 인간이라면 무조건 죽는다.

그렇기에 루미아는 한껏 당황하며 아리엘을 바라봤다. 반면, 흔들리는 루미아의 시선에 아리엘은 어깨를 으쓱였다.


“루미아. 뒤.”

“응?”


아리엘의 이야기에 의문을 떠올리는 것도 찰나.

루미아는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 캉.


휘두른 검에 튕겨 난 것은 단도.

그것도.


“···아직 살아 있었구나.”


라자가 사용한 단도다.

단도의 궤적을 따라 시선을 돌린 루미아는 멀쩡한 모습의 라자를 찾았다.

라자는 온몸을 붉게 물들인 상태로, 즐겁다는 듯 웃음을 지어 보였다.

처음 마주했을 때의 스산한 웃음이 아니다. 얼굴 가득 일그러진 감정. 살의와 즐거움을 뒤섞어 지은 웃음은 그야말로 광소(狂笑).


“아하하하. 검에서는 졌구려.”


이미 살기밖에 흘러나오지 않는 라자를 앞둔 루미아는 그저, 한 감정으로 가득 찬 시선을 보냈다.

라자의 분위기가 끈적끈적하게 가라앉는 상황에서도 웃음을 지은 루미아의 감정은 단 하나.


“마음껏 벨 수 있겠네?”

“···루미아, 지나치게는 하지 말아줘?”


죽지 않는 상대를 얻은 기쁨이다.

라자의 몸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한 검은 마력.

피어오른다기보다, 몸에서 진흙이 떨어지듯 질척이는 마력을 바라본 루미아는 즐겁다는 듯 검을 고쳐 쥐었다.

반면, 라자는 루미아의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 몸을 확인했다.


“이 상태는 오랜만이야. 오랜만이지.”

“그래? 이번에 지는 건 그걸 탓할 생각이려나?”


루미아의 도발을 들은 라자는 어깨를 으쓱이며, 웃어 보였다.


“그럴 리가. 이번에 죽는 것은 그대이니, 내가 어찌 불만을 품겠나?”


웃은 직후 나아간 라자의 발.

그 발끝으로 공격의 사선을 파악한 루미아는 궤적에 검을 올렸다.

그것만으로 라자의 검은 빗겨난다. 그런 미래를 바라본 루미아는 이어진 상황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이거···.”

“어떠한가?”


빗겨나가는 걸 생각한 라자의 검은 흔들리지 않았다.

되려 자신의 검을 밀어낸 상황에 루미아는 당황한 목소리를 흘렸다.


“이전과 같다고 생각하면, 위험할걸세.”


경고하듯 흘린 말과 함께, 라자는 검을 내려쳤다.

그저 상단에서 내려친 검.

루미아는 그 검을 막고자 검을 들어 보였으나.


- 콰앙.


폭발한 듯한 소리와 함께 루미아의 몸이 날아갔다.


“이런, 힘 조절이 힘들어.”


복도의 벽면에 처박힌 루미아는 상처 하나 없다.

다만, 루미아의 검이 라자의 검을 막아내지 못했다.


“루미아. 교대할래?”


루미아는 라자의 검을 막아내지 못했다.

그 모습을 곁에서 본 아리엘은 날아간 루미아를 찾아, 가벼운 분위기로 물었다. 고전하는 이에게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에 라자가 의문을 떠올린 것도 잠시.

벽면까지 밀린 루미아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아리엘, 이번에는 내가. 끝까지 내가 할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어나는 모습에 아리엘은 어깨를 으쓱였다.

언외로 맡기겠다는 아리엘의 모습에 루미아가 웃음을 짓고, 다시 한번 자세를 잡았다.

라자 자신에게 한 방에 나가떨어진 루미아. 그런 루미아에게 라자를 맡긴 아리엘. 자신의 앞에서 다시 검을 든 루미아.

그 모습을 차분히 관찰한 라자는 고개를 내저었다.


“오기로 달려들 상황이 아니네만. 무엇하면, 그쪽의 두 사람이 함께해도 상관없네.”


어리석은 이를 보았다는 듯, 한참이나 고개를 내젓던 라자는 루미아의 표정에 얼굴을 찌푸렸다.


“그대.”


루미아의 표정.

그건, 자기보다 아득히 낮은 존재가 분수를 모르고 날뛰는 모습. 그 모습을 보았을 때 자연스레 짓게 되는 웃음이다.

마치.


“왜 연민하는 거지?”


곧 무너질 작은 존재.

그 존재를 향해 내뱉은 커다란 이의 작은 연민.

루미아의 기척을 민감히 찾은 라자는 불쾌하다며 검을 한 번 휘둘렀다.


- 콰앙.


그것만으로, 건물의 복도와 복도 너머의 정원이 반파되었다.

압도적인 힘을 내세운 라자는 제힘에 홀렸다. 온몸에서 떨어져 나온 질척한 마력은 마룻바닥을 녹이기 시작했고, 라자의 눈동자도 점차 검게 물들었다.

울컥, 하고 늘어난 라자의 오염된 마력에 루미아는 태연히 웃으며 질문에 답했다.


“검을 든 아기가 재롱이 많아서?”

“···네놈.”


양반의 태를 벗어던진 라자는 몸을 숙이며, 당장이라도 달려갈 듯 자세를 잡았다.

반면.


- 툭.


루미아는 제 검을 던졌다.


“목숨 구걸이라면 받지 않는다.”

“응? 아, 착각한 모양이네.”


주변을 둘러보며 라자의 말에 태연히 답한 루미아는 잔해 속에서 나무판자를 하나 들었다.

팔보다 훨씬 짧고, 얇은 판.

몇 번 나무판자를 휘둘러본 루미아는 제 어깨에 나무판자를 얹고, 라자에게 말했다.


“넌 이 정도로 충분해. 검술도 모르는 아이에게 검은 너무하니까.”


- 카각.


루미아의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

파쇄음이 복도에 울려 퍼졌다.

달려 나간 라자의 양손은 바닥에 늘어뜨리고, 그 손끝에서 날카롭게 단련된 오염된 마력이 검의 모습을 이루었다.

작은 단도. 열 개의 검. 그것들을 이끌고 나아간 라자는 팔을 휘둘렀다.


한 번.

두 번.

세 번.


여러 차례 휘둘러진 라자의 손은 열 개의 검을 이끌고,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겼다.

손끝을 타고 흐르는 감각에 라자가 승리를 확신할 무렵.


“끝이야?”


평온한 목소리.

바람 하나 일지 않는 평온한 목소리의 루미아가 물었다.

그 목소리에 반응하기보다 먼저, 본능이 일구는 종소리를 들은 라자는 뛰었다.

그러나.


“늦어.”


루미아의 냉정한 목소리와 함께.


- 툭.

- 투둑.


라자의 의식이 어둠에 빠지는 동시에, 라자였던 고깃덩이가 두 개. 조용한 복도로 떨어졌다.


“후우.”


겨우 제 손으로 적을 쓰러뜨린 루미아가 가벼워진 모습으로 없는 땀을 치워내는 그때.


“루미아.”


여태껏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아리엘이 한숨을 내쉬면서 가리켰다.


“이번에는 확실히 죽었을걸?”

“···아.”


내부에서부터 무너진 고깃덩어리는 말 그대로 고깃덩어리다.

본래의 형체는 전혀 없는 상태. 반죽한 것처럼 내부를 향해 뒤틀린 고깃덩어리는 이전의 흔적이 전혀 없다.


“큰일 났네.”


아리엘의 모습과 고깃덩어리를 몇 번 둘러본 루미아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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