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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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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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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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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0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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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제대를 명 받았습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어느덧 제대 날짜가 다가왔다.

류지호는 축복받은 여건 속에서 군 생활을 했다.

어쩌면 간부보다도 편하게 군 생활을 했을지도 몰랐다.


“아휴! 7월에는 진짜 식겁했네.”


지난 7월 9일.

갑자기 전군 비상이 걸렸다.


속보! 김일성 사망.


북한 <중앙방송>과 <평양방송> 등 주요 언론들이 7월 9일 정오 특별방송을 통해 김일성 주석 사망 소식을 발표했다.

심장혈관과 동맥경화증으로 치료를 받아왔는데, 쌓이는 정신적 과로로 7월 7일 심근경색이 발생했고, 모든 치료를 다했으나 심장쇼크가 악화돼 7월 8일 새벽 2시에 사망했다는 발표였다.

류지호의 군 생활이 여유로워서 그렇지, 사실 작년부터 한반도의 분위기는 냉탕과 온탕을 넘나들었다.

작년에는 심심치 않게 전쟁 이야기까지 나돌기도 했다.

작년 3월 12일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위기가 고조된 가운데 올해 3월 19일엔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간 특사교환 실무회담 자리에서 북측 단장이 유엔 안보리 제재란 말에 반발했다.


‘이때 씨부린 말이 그 유명한 서울 불바다 발언이지.’


- 대화에는 대화, 전쟁에는 전쟁‘이라며 ’서울은 여기서 멀지 않다. 전쟁이 나면 서울은 불바다가 될 것.


이라고 말했다.

언론은 이 발언을 대서특필했다.

일부 서울시민들은 라면 등 생필품을 사재기하기도 했다.

이어 6월 13일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탈퇴를 선언했다.

이른바 1차 핵위기다.

고조될 대로 고조된 남북 간의 긴장이 6월 28일 판문점에서 발표한 남북정상회담 개최 소식으로 일시에 해소가 되었다.

다들 안도했다.

전쟁 위기를 넘겼기 때문이다.

이 발표 이후 부대 분위기는 예전으로 돌아갔다.

류지호는 두 달 남짓 남은 제대만을 기다리며 독서에 열중했다.

그러던 차에 김일성 사망 이슈가 터져버린 것이다.


“이게 무슨 개소리야!”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3달만 버티면 제대인데 전쟁이라니!”


동기들과 후임들은 탄식과 한숨을 토해냈다.

오로지 류지호만 담담했다.


'전군비상경계령.... 휴가 군인 복귀.'


한국군만 비상 대기한 것이 아니다.

미군 역시 비상경계령에 들어갔다.

외출·외박 및 휴가자들 전원 복귀 명령이 떨어졌다.


‘혹시 진짜 전쟁이 벌어지는 거 아냐?’


이미 이 시절을 겪어보았던 류지호마저 절로 긴장 속에서 며칠을 보냈다.

언론에서 하도 호들갑스럽게 떠들어댔기 때문이다.


‘근데 난 시청각운용병인데 전쟁 나면 종군기자처럼 카메라 들고 나가서 전쟁터를 찍어야 하나?’


만약 그런 일이 실제 벌어진다면 카투사들은 미군과 함께 움직인다.

이른바 ‘Wartime mission‘ 이라고 해서 전쟁발발 시 주어지는 임무가 있고, 정해진 피난루트에 따라 미군 가족 민간인 피난 지원부터 본래 하던 보직업무를 계속해서 지원하게 된다.

어쨌든 용산기지의 미군 수뇌부의 태도는 약간 긴장한 듯 보였지만, 특별히 전쟁을 대비하는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반면에.


“전쟁이 터질지 모른다. 긴장 풀지 마!”

“전방부대에서는 유서를 받고 있다.”


한국군 지원단 소속 장교의 말에 카투사들이 바짝 긴장했다.

류지호의 일과는 AFKN에 틀어박혀 뉴스를 확인하는 것뿐.

모두 긴장하고 있는데, 홀로 타임지 같은 잡지를 읽으며 유유자적할 수만은 노릇.

일선 부대에서는 군용위장 크림까지 바른 채 완전무장을 한 채 지시가 내려지기 전까지 대기했을 터.

나름 업무에 집중하는 척 했다.

김일성 사망 당일날 같은 비상대기는 이후로도 한 차례 더 있었다.


“아, 맞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이렇게 무산 되었던 거였지.....?”


역사에 만약이 있을 수 없겠지만, 지금 이 시기에 김일성이 사망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부질없고, 의미 없는 가정이다.

전쟁이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의 불안감보다 국민들이 더욱 괴로웠던 것은 사실 따로 있었다.

바로 지독한 폭염이다.

툭 하면 불볕더위가 되는 미래의 여름은 올해 여름에는 명함도 못 내밀 것 같았다.

7월 한 달간 대구가 최고기온 39.4도를 기록한 것을 비롯해 서울 부산 광주 강릉 등 7대 도시의 평균기온이 28.5도다.

대구에서 35도를 넘긴 기간이 25일이다.

그 외 30도를 넘긴 기간에서 광주 30일, 서울 24일이나 됐다.

밤 시간의 최저기온이 25도 이상인 열대야를 보인 날도 광주 23일, 서울 20일, 대구 18일 등으로 한마디로 한반도는 밤낮없이 찜통이었다.

게다가 가뭄 피해도 극심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국방부 시계는 멈추지 않고 돌았다.

그렇게 류지호의 두 번째 군 생활이 마무리 되었다.


❉ ❉ ❉


무더위가 한층 기승을 부리는 8월 어느 날.

전역신고를 마친 류지호가 동기들과 함께 용산 캠프를 순회하는 셔틀버스를 탔다.

동기들의 얼굴에는 후련한 표정이 한가득했다.

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려는 모습으로 들떠 있다.


“어이, 동기들! 우리 일 년에 한 번은 모임 갖자.”

“그러자. 한 번 동기는 영원한 동기 아니냐?”

“꼭 연락하면 모임에 나와 알았냐?”

“가만 있어봐. 서울 공기 좀 마셔 보자.”

“야, 어디 왜관에도 파견 갔다 왔냐? 웬 오버야?”

“방금 전까지는 민간인이 아니었잖아!”


과연 이들 중 앞으로 몇 명이나 인연을 이어갈 수 있을까.

당장 류지호를 비롯해 몇 명은 유학파다.

올 연말에는 어찌어찌 모임을 갖게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내년부터 유학파들은 참석할 수 없다.

대부분 대학 2학년을 마치고 입대했기 때문에 복학하고 나면 공부하기도 바빠 모임이고 뭐고 참석할 겨를이 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지호야, 우리 앞으로 종종 보자. 다른 동기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너하고는 계속 보고 싶다.”


뉴욕대에서 유학 중인 동기 한 녀석이 노골적으로 말을 걸어왔다.

류지호가 선선히 대답했다.


“뉴욕에 가게 되면 연락할게. 술 한 잔 하자.”


동기들이 하나둘 부대 앞에서 사라지자, 벤츠 승용차가 류지호의 앞에 멈췄다.


“축하드립니다. 의장님!”

“고생하셨습니다.”

“고마워요. 최 과장, 김 대리.”


최영민이 류지호의 더블 백을 받아 트렁크에 실었다.


“인천으로 모실까요?”

“부탁해요.”


딩동!


초인종 소리에 안쪽에서 심영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지호에요.”


잠시 후, 심영숙이 활짝 웃는 얼굴로 류지호를 반겼다.


“고생했어, 아들!”

“단결! 병장 류지호, 제대를 명 받았습니다!”


류지호가 어머니를 향해 거수경례와 함께 전역을 알렸다.


“제대 축하해. 아들. 최 과장하고 김 대리도 들어와서 차 한 잔 해요.”

“실례하겠습니다. 사모님.”

“감사합니다.”


류지호와 두 경호원이 안으로 들어갔다.


와락.


거실로 들어서자마자 심영숙이 류지호를 끌어안았다.

군 생활 동안 키가 조금 자랐다.

체구가 작은 어머니가 품에 안기자 유난히 커 보이는 류지호다.


“아휴. 김일성이 죽었다고 해서 전쟁이라도 나는 줄 알았어.”


심영숙이 한숨 덜어낸 표정으로 말했다.


“전쟁이 쉽게 나겠어요? 말년휴가 나와서 말씀드렸잖아요. 전쟁이 나도 미군하고 생활하는 저희가 제일 먼저 안다고.”

“그래도, 방위 간 재정이도 얼굴에 검은 색도 칠하고 총을 지급 받았다는데 엄마가 걱정을 안 할 수 있었겠니?”

“전쟁 안 났잖아요.”


그때, 서로 안고 있는 류지호와 어머니 사이로 류아라가 비집고 들어왔다.


“엄마 비켜봐 나도 나도!”


류아라가 심영숙과 류지호 사이에 파고들었다.


“우리 막내, 사춘기 끝났어?”

“사춘기가 뭔데? 우리나라는 사계절이거든?”


드디어 류아라의 사춘기가 지나갔다.

류아라가 류지호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으며 질색했다.


“아저씨 냄새나!”

“얀마, 오빠가 얼마나 좋은 로션을 쓰는데?”

“빨랑 그 옷부터 좀 벗으면 안 돼? 이제 군인 아저씨 아니잖아.”

“어, 우리 막내 키 많이 자랐네?”


류지호가 여동생의 머리에 손을 대고, 자신의 가슴어림과 비교해 봤다.


“이제 편식 안 해.”

“엄마 말 잘 들었나보네?”

“으으. 내년에 중3 된다고 잔소리가 넘 심해. 공부, 공부....!”

“우리 막내는 언제까지 어린애 같이 어리광 피울까?”

“괜찮아. 나는 우리 집 막내잖아. 막내 특권이니깐 큰오빠는 순순히 받아들여.”


하하하.

류지호가 웃으며 옆을 돌아봤다.

남매 사이에 끼기가 애매했는지 류순호가 어정쩡한 자세로 옆에 서 있다.


“자식, 오랜만에 얼굴 본다?”


류순호는 밴드활동과 대학생활을 병행하고 있다.

집에 들어오는 날보다 관교동 쪽 밴드연습실에서 자고 먹고 하는 날이 빈번했다.


“훗.”


류순호가 옅게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고 보니, 키가 좀 큰 것 같은데?”


류순호가 형 보란 듯이 팔뚝을 들어보였다.


“키만 큰 게 아니야. 봐봐, 근육도 빵빵해졌어.”


그런 둘째 아들을 심영숙이 안쓰러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큰아들이 제대하니 곧 둘째가 현역 입대한다.

맏아들이야 어릴 때부터 의젓했고, 어디 내놔도 걱정이 없다.

둘째 아들은 처녀귀신머리를 해가지고 음악을 한다면서 방황만 했다.

심영숙으로서는 둘째가 고된 군생활을 잘 해나갈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얼른 표정을 수습한 심영숙이 류지호를 향해 입을 열었다.


“빨리 방에 들어가서 옷 갈아입어. 아빠도 일찍 퇴근하시고 오기로 했으니까.”

“넵!”


류순호가 더블 백을 챙겨 방으로 향했다.


“오. 동생. 착해졌는데?”

“웃기시네. 난 원래 착한 동생이었어.”


류순호는 그렇게 말하며 쌩하니 종종걸음으로 방으로 걸어갔다.


“작은 오빠가 인천에서 댑다 유명해.”

“저 날라리가?”

“저번에 시민회관에서 공연했는데, 작은 오빠가 기타도 쳤다가 드럼도 쳤다가 키보드도 쳤다 혼자 막 원맨쇼 했어.”

“오오~”

“언니들이 편지도 많이 보내고, 작은 오빠 삐삐번호 알려달라고 성화야.”


류지호는 납득할 수 있었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인천은 락음악의 도시였으니까.

홍대에서 인디밴드 문화가 유행하기 전까지, 유명한 락밴드들이 자신들의 연습실을 인천 관교동에 만들었다.

인천 시민회관에서 공연을 하는 날이면 서울에서 공연을 보러 팬들이 몰려들었다.

류순호의 밴드는 ‘사하라’나 ‘블랙 신드롬’ 등 유명 헤비메탈 밴드의 공연에 앞서 오프닝을 여는 무대를 주로 하고 있었다.

나름 실력을 인정받은 모양이다.

류아라의 재잘거림을 들으며 류지호가 방으로 들어갔다.

본래 류순호가 쓰는 방으로 결코 깨끗하다고 할 수 없는 방이다.

오늘은 매우 깨끗하게 정갈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다섯 식구가 살기에 30평대 아파트가 좁아보였다.

두 동생이 군복을 벗어 옷걸이에 거는 류지호 주변을 서성거렸다.


“형....”

“큰오빠....”


두 동생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작은 오빠 먼저 말해.”

“너부터 말 해봐.”

“아냐. 오빠가 먼저 해.”


옥신각신하는 모습이 정신 사나워서 류지호가 나섰다.


“순호부터 말해봐.”

“형... 우리 밴드가 겨울에 단독공연을 하는데...”

“공연장? 업체? 아니면 악기? 형이 뭘 도와줄까?”

“악기는 됐고. 시민회관을 빌려서....”

“그러자. 하고 싶은 공연날짜 알려줘. 비서실에 말해서 계약하라고 할 테니까.”

“땡큐! 써얼!”

“다음 아라.”

“나 태권도 배우고 싶어.”

“태권도?”


태지 보이즈 콘서트를 가고 싶으니 티켓을 구해달라거나, 옷이나 화장품을 사달라고 조를 줄 알았다.

헌데 뜬금없이 태권도를 배우고 싶다고 한다.

류아라에게 심리상담을 받아보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들었다.

브라더 콤플렉스가 아닌가 하는 의심 때문이다.

오빠가 하는 행동을 맹목적으로 따라하고 집착하는 증상.


“김혜주 언니가 태권도를 어릴 때부터 했대. 그래서 몸매가 좋은 거래.”

“김... 혜주씨?”

“응. 나도 그 언니처럼 건강하게 예뻤으면 좋겠어.”


하하하.


류지호가 크게 웃었다.


“쳇. 큰오빠도 비웃는 거야?”

“어머니는 뭐라 셔?”

“공부나 하래.”

“연수동에도 태권도장이 있었나?”

“큰오빠가 배운 용연태권도장에서 배우면 안 돼?”

“안 될 건 없는데, 거긴 멀잖아.”

“경호원 아저씨랑 다니면 안 될까?”

“저녁에 아버지 퇴근하시면 함께 이야기 해보자.”

“알겠어.”

“대신 부모님들께 김혜주 언니처럼 되고 싶다고 말하면 안 된다. 큰오빠가 이야기 할 테니까 아라는 가만히 있어. 알았지?”

“큰 오빠만 믿을게.”


미국 명문대는 운동을 중시한다.

지덕체가 균형 잡힌 전인교육을 추구하기 때문이란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한 아이는 체성과 지성, 감성과 덕성, 영성을 고루 갖춘 리더로 성장한다고도 하고.

류지호가 UCLA에 입학할 때 태권도를 꾸준히 수련한 것도 일정부분 플러스 점수를 받았다.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

기본적으로 공부는 체력 싸움이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기초체력은 성인이 되어서도 큰 영향을 미친다.

신체적 운동량은 뇌기능을 향상시킨다고도 한다.

운동을 하면 집중력과 사고력, 판단력이 높아져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서 지지부진 하는 게 아니라 공부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고도 한다.

규칙적이고 지속적으로 운동을 하면 성취감과 함께 긍정적인 정서가 증가한다.

정서지능이 높은 아이는 자신감과 신념이 높아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자기 주도적으로 성실하게 모든 일에 임하게 된다.

단체운동을 하면 리더십이 좋아지기도 한다.

류지호가 태권도를 다시 하며 실제 경험한 것들이다.

막내가 태권도가 아니더라도 뭐든 운동을 하겠다는 것은 쌍수 들고 환영할 일이다.


❉ ❉ ❉


현관문이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잠시 후 류민상이 안으로 들어왔다.


“아버지 저 제대했어요.”

“고생했다.”


아버지 류민상은 여전했다.

류지호는 섭섭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겉으로 무뚝뚝한 것이지 속으로는 누구보다 자식들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


“저녁은 먹었냐?”

“아버지 오시기만 기다렸어요.”

“그래 밥부터 먹자.”


류민상이 안방으로 들어가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는 사이, 심영숙은 부엌에서 음식을 데우고, 반찬을 꺼내느라 분주했다.

류아라가 그런 어머니를 도왔다.


“준비 다 됐으니까, 밥상 옮기는 건 아들이 해.”

“예.”


형제가 거실 소파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들어갔다.

아들이 제대했다고 어머니가 큰 상 하나에 더 이상 뭘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음식을 마련했다.


“뭘 이렇게 많이도 차리셨어요?”

“아들이 건강하게 집에 돌아 왔는데 이 정도는 해 줘야지. 네 아빠도 자꾸만 더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도 성화를 부려서 강화까지 가서 토종닭까지 구해 왔다. 네 아빠가 직접 손질하시고 약재까지 사다가 직접 고신거야.”

“흠흠. 거 쓸데없는 소리는.”


류민상이 괜히 무안해져서 헛기침을 흘렸다.

식사 내내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식구들 모두가 아랫배가 볼록 튀어나올 정도로 과식을 했다.


“아버지도 못 본 사이에 살 좀 찌셨네요?”

“태가 많이 나냐?”

“조금요. 근데 나쁘지 않아 보여요. 전에는 조금 마르셨잖아요.”

“그래도 전 같지 않아.”


젊은 시절엔 건강 빼면 시체 소리를 듣던 류민상이다.

나이가 들면서 나잇살이 느는 건 어찌할 수가 없다.


“아라가 태권도를 배우고 싶다고?”


류아라가 류민상의 물음에 씩씩하게 대답했다.


“응, 아빠!”


류지호가 슬쩍 말을 얹었다.


“저는 찬성이에요. 미국 대학에서는 그런 말이 있어요. 잘 노는 아이가 머리도 잘 쓴다. 운동을 하면 체력이 좋아질 뿐만 아니라 공부할 때 집중력이 높아져요. 인성과 사회성이 좋아지고 리더십도 기를 수 있어요. 그래서 미국 대학은 중고등학교 시절 공부 외에 부가활동으로 운동한 것도 살펴요.”


심영숙이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 아빠는 지호 네 공부에 운동이 도움이 된 걸 잘 알지.”

“UCLA에 좋은 강의가 많은데, 인기 있는 교양과목에 체육종목도 들어가요. 방과 후에 학생들은 정말 열심히 운동도 하고요. 서울대 애들이 공부만 하는 책상물림 같지만, 걔들도 농구부터 볼링까지 교양체육도 열심히 해요. 그래야 그 체력으로 공부를 할 수 있으니까요. 서울대에 가보면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도 많지만, 운동장에서 운동하는 학생도 정말 많아요. 동아리 중에서도 스포츠 동아리가 제일 인기가 있고요.”


심영숙이 관심을 보였다.


“서울대 애들이 그렇게 운동을 열심히 한다고?”


사실 류지호도 잘 모른다.


“미국대학에서 공부 잘하는 애들 보면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공부만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파티는 안 가도 조깅이라도 꼭 해요. 아라가 태권도를 해서 체력이 좋아지고 자신감이 부쩍 늘어나게 되면, 학교 체육시간에도 잘 뛰어 놀 수 있어요. 그렇다보면 친구들을 리드할 수도 있고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리더십도 길러지는 거예요.”


류아라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역시 큰오빠는 아는 것도 많고, 말이 참 청산유수다.

류민상이 인자한 음성으로 물었다.


“아라야, 태권도 말고도 운동종목은 많아.”

“김혜주 언.. 흡. 태권도 선수 안 할 거면 그렇게 막 심하게 안 한데. 그치 큰오빠?”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때까지만 해도 모든 격투기 종목에서 조금 심하다 싶을 정도로 수련시켰다.

사범이 굴리면 굴리는 대로 따라야 하는 풍토다.


“아라를 홍 관장님께 보내야겠구나.”

“저는 곧 미국으로 넘어가야 하니까. 저를 수행하던 김영철 대리를 아라에게 전담시킬게요.”

“그럼 아빠가 아라와 함께 용연태권도장에 한 번 가보마.”

“제가 정수민 사범님한테 미리 말해 둘게요.”


류아라가 벌떡 일어서서 환호성을 터트렸다.


“야호!”


부부는 큰아들이 사업을 크게 하면서 용돈도 챙겨주고, 넉넉한 생활비가 꼬박꼬박 통장에 쌓이다보니 정년을 앞두고 생각이 많아졌다.

아들의 권유로 자원봉사를 다니며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다.

반평생 공장 노동자로 한정된 세상을 살았던 류민상의 삶이 몰라보게 풍요로워졌다.

삶의 활력도 생겼다.

막내딸 역시 그런 풍요와 활력을 누릴 자격이 있다.


쏴아아아.


류지호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샤워를 했다.

에어컨이 흔치 않은 시대다.

가격도 비쌌고, 에너지 효율도 좋지 않아 지하철역이나 학교 같은 공공시설에서 사용하기엔 고가품이다.

오죽하면 지하철 역무원이 열을 식히기 위해 역 이곳저곳에 물을 뿌리까지 했을까.

은행과 같이 에어컨이 시원하게 나오는 곳은 시민들의 도심 속 피서지이기도 했다.

연수동 아파트 단지에서 에어컨 있는 집은 몇 안 된다.

그 가운데 한 집이 류지호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이다.

평소에는 에어컨을 안 튼다.

류지호가 제대했기 때문에 에어컨을 틀었다.

그럼에도 올해는 더워도 너무 더웠다.

샤워를 마친 류지호가 거울 앞에 섰다.

옷을 입고 있으면 개미 한 마리도 못 죽일 것 같이 말라 보인다.

헌데 벗은 몸은 달랐다.

빵빵한 근육질 몸은 아니다.

다만 군살 없는 마른 근육이 제법 봐줄만 했다.

육체적으로 좋아진 것 뿐 아니다.

군 복무 기간 류지호에게는 많은 발전이 있었다.

먼저 다양하고 폭넓은 독서를 할 수 있었다.

영화 실무의 기술적인 면과 지적인 부분을 균형을 잡아갈 수 있는 기간이었다.

많은 소설, 희곡을 보고, 철학과 심리학도 공부했다.

경제학은 물론이고 천체물리, 건축공학, 정보통신까지 손댔다.

심지어 미국의 양대 코믹스와 한국 만화도 많이 읽었다.


‘감독이 꼭 많이 알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살면서 경험하지 못한 걸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해볼 순 있지.’


아는 만큼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류지호의 생각이다.

예전의 류지호는 아이디어와 영화적 테크닉에만 빠져있었다.

이번 삶에서는 한 층 여유롭고 새로운 각도로 영화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겨우 조금 영화라는 세계를 들여다 볼 기본 소양을 얻은 것뿐이야.’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무수한 고난을 겪어야 한다.

영화는 스포츠처럼 경쟁을 하는 분야가 아니다.

다만 관객에게 더 많이 인정받기 위해서는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것도 맞다.

영화 분야의 성공 척도 중 흥행성적도 들어가니까.

지금까지는 쇠를 달궈 망치로 두드려 칼의 모양을 잡고 단단하게 만들었을 뿐.

남은 대학 생활 동안에 칼을 예리하게 갈아야 했다.

그렇게 잘 단련 된 칼이 칼집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작가의말

주인공이 큰 숙제 하나를 해결했습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더위에 건강 유의하시고, 활기찬 한 주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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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 Collapse. (5) +4 22.08.06 5,302 159 25쪽
242 Collapse. (4) +6 22.08.05 5,260 168 22쪽
241 Collapse. (3) +10 22.08.04 5,285 164 27쪽
240 Collapse. (2) +9 22.08.04 5,073 145 23쪽
239 Collapse. (1) +7 22.08.03 5,420 166 23쪽
238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개놈이라니까! (5) +8 22.08.02 5,263 170 22쪽
237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개놈이라니까! (4) +6 22.08.01 5,324 164 22쪽
236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개놈이라니까! (3) +7 22.07.30 5,432 157 24쪽
235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개놈이라니까! (2) +2 22.07.29 5,341 160 24쪽
234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개놈이라니까! (1) +5 22.07.28 5,542 149 26쪽
233 대박 축하한다! (2) +5 22.07.27 5,703 153 24쪽
232 대박 축하한다! (1) +10 22.07.26 5,622 156 21쪽
231 OK할 때까지..... +7 22.07.25 5,425 152 25쪽
230 배고픈 놈이 이긴다. (4) +14 22.07.23 5,494 169 26쪽
229 배고픈 놈이 이긴다. (3) +9 22.07.23 5,174 136 21쪽
228 배고픈 놈이 이긴다. (2) +7 22.07.22 5,397 159 22쪽
227 배고픈 놈이 이긴다. (1) +10 22.07.21 5,558 167 26쪽
226 후회가 남지 않게! (3) +4 22.07.20 5,560 163 28쪽
225 후회가 남지 않게! (2) +10 22.07.19 5,656 152 27쪽
224 후회가 남지 않게! (1) +7 22.07.18 5,733 162 26쪽
223 나만 잘 먹고 잘 살려는 게 아닙니다. (3) +4 22.07.16 5,785 155 22쪽
222 나만 잘 먹고 잘 살려는 게 아닙니다. (2) +6 22.07.15 5,619 159 22쪽
221 나만 잘 먹고 잘 살려는 게 아닙니다. (1) +5 22.07.14 5,577 171 21쪽
220 예전의 내가 아닙니다. (3) +5 22.07.13 5,783 170 28쪽
219 예전의 내가 아닙니다. (2) +4 22.07.12 5,715 167 27쪽
218 예전의 내가 아닙니다. (1) +2 22.07.11 5,852 160 23쪽
217 우리 실력을 제대로 보여드리죠! (4) +4 22.07.09 5,841 144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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