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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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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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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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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0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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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개놈이라니까! (5)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오성전자에서 새로 출시하는 핸드폰이 있어. 미스터 류도 알 거야 애니폰이라고.”

“.....?”

“애니폰의 카피가 ‘언제 어디서나 터진다’라네.”

“.....?”

“영화 내용이 빌딩이 무너진 상황을 리얼하게 그린 거라며? 영화 속 장면을 애니폰 광고에서 써줄 수 있네. 어때? 영화 홍보도 되고, 광고비도 벌고.”


류지호는 기가 막혔다.

오성물산의 최고위급 인사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인식수준이다.


“....매몰 된 건물잔해에 갇혀 죽음과 싸우며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이 오성전자 휴대전화로 구조를 요청한다는 겁니까?”

“그렇지. 어디 어디서나 휴대폰이 팡팡 터져서 결국 구조된다. 좋은 콘셉트 아닌가?”


시국이 어느 시국인데 저 따위 생각을 떠올리는지.

지난 3년 동안 대한민국에서는 많은 대형 참사가 벌어졌다.

최근에는 대구에서 수백 명이 죽고 다쳤다.

국민들은 연이은 대형 참사로 공포와 불안감이 팽배해 있다.


‘그런 상황에 대형 참사상황을 상업광고에서 소재로 쓰겠다고?’


오성물산은 ‘캐치원’이라는 유료영화채널을 런칭할 예정이다.

오성플라자를 비롯해 대형할인점도 진출할 것이다.

B2B(Business-to-Business)도 아니고, 소비자를 직접적으로 상대하는 비즈니스를 전개하는 거다.

그 같은 기업의 수뇌부 인식이 정말 부끄러운 수준이다.

공감능력이 없는 인사가 최고경영자를 보좌하고 있으니 회사의 앞날이 뻔했다.


“지금 한국 분위기를 몰라서 그렇습니까?”

“최고의 오성 핸드폰으로 119에 전화를 걸어. 다른 폰은 안 터지는데 애니폰은 터진단 말이지. 그렇게 구조가 되는 콘셉트. 뭐가 어때서....?”

“평화롭고 안전한 한국이었다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류지호가 딱하다는 눈길을 이희경에게 잠시 두었다가 다시 박충식을 향해 말을 이었다.


“지금 시국에 그런 광고를 내보내면 불매운동 벌어질 겁니다. 사람 복장 뒤집어 놓느냐고. 아무 죄 없이 희생당한 사람들 두 번 죽인다고 하지 않으면 다행일 겁니다.”

“영화는 되고 광고는 안 될 이유가 없지.”

“영화는 두 시간 동안 관객들을 충분히 설득하고 공감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20초 광고로 그걸 해낼 수 있다고요? 아, 공익광고라면....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상업광고에서 소비자에게 일부러 끔찍한 사고를 떠올리게 한단 말입니까? 행복하고 아름다운 상상... 아니 위로와 격려를 해도 모자랄 판에?”

“그럼 류 회장이 한 번 제작해 볼 텐가? 내가 넘버원 기획에 다리를 놔줄 수 있는데.”


오성전자의 최신 모델 휴대폰 광고를 할리우드에서 영화신동이라고 불리는 류지호가 연출한다.

류지호는 오성그룹이라는 한국 최고의 기업 제품 광고를 연출하는 기회를 잡게 되고, 오성전자는 영화신동이라고까지 불리는 류지호의 이미지를 제품으로 끌어올 수 있고.

윈윈이다.

박충식은 이번에는 꽤 훌륭한 거래라고 자부했다.

이 아이디어는 물산 사장뿐만 아니라 그룹 최고위층에도 보고됐다.

잘 성사시켜서 류지호와 관계를 만들어보라는 지침까지 하달받았다.


“사양하겠습니다. <Collapse> 영화 소스를 애니폰 광고에 쓰는 것도 안 되고, 나 역시 광고 연출 안 합니다.”


박충식의 얼굴이 벌레 씹은 듯 일그러졌다.

단칼에 거절하는 류지호의 태도에 기분이 심하게 상해버렸다.

류지호 역시 기분이 좋지 못했다.


‘희생자에 대한 애도와 그 가족들을 위한 위로를 광고에 싣지 못할망정....’


류지호와 박충식의 표정이 싸늘해지자, 덩달아 대화도 멈췄다.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보기 위해 이희경이 운을 뗐다.


“이번에 오성전자 미국지사 이사직을 내려놓게 됐어요.”


류지호는 당연히 백설제당 임원 신분인 줄 알았다.

사실 이희경은 오성전자 미국 현지법인의 이사로 재직하면서 작은아버지의 지시에 따라서 오성물산의 DreamFactory 협상을 지원했었다.

오성물산과의 협상이 결렬되고 나서, 오빠의 백설제당 협상팀을 지원한 바 있다.


“한국으로 옮기는 겁니까?”

“백설제당의 미디어사업부로 갈 것 같아요.”

“백설도 곧 그룹체제로 개편이 되겠군요?”

“......”


공식발표를 할 때까지 설레발은 금물이다.

따라서 이희경은 명확한 답을 해주진 않았다.

암튼 류지호는 박충식의 안하무인 태도를 지적하지 않는 이희경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만약 오성전자 미국지사의 임원 신분이었다면 본인이 나서서 이번 일을 조율했을 터.

이희경은 곧 백설제당으로 완전히 이직하게 된다.

본가인 오성그룹이 류지호와 친해지든 불편해지든 그녀로서는 알 바 아니다.

차라리 불편한 것이 좋다.

그래야 곧 개편 될 백설그룹이 류지호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면서 협력을 해나갈 수 있을 테니까.


“류 감독님, 할리우드 배급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어요?”

“이 상무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 동안 네트워킹에만 주력했지 영화산업에 대해서는 공부를 하지 않았어요. 오빠가 회사의 주력사업을 엔터테인먼트로 대전환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


류지호는 할리우드의 배급 시스템에 대해 대략적인 개념을 알려줬다.

어차피 DreamFactory를 통해 알게 될 것들이라서 야박하게 굴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박충식 상무를 꿀 먹은 벙어리로 만들어놓고, 이희경과 오재호 두 사람이 묻는 미국의 영화산업에 대해 적당히 간추려서 알려줬다.

시간이 흘러 오성그룹 관계자들이 집무실을 떠났다.


‘내가 <Collapse>를 이 시점에 개봉하는 것이 맞을까?’


삼봉백화점 참사를 막아보려는 선의.

연이은 대형 사고들로 상처를 받았을 국민들을 위로는 못할망정 상처를 헤집는 것.

두 개의 감정이 서로 상충했다.


‘박 상무인가 하는 인간만 아니었으면 이런 고민 없이 개봉해버렸을 텐데.’


이미 물은 엎질러져서 되돌릴 수 없지만.

한편으로 복잡한 생각이 드는 류지호다.


❉ ❉ ❉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Collapse> 프리미어가 열렸다.

양국 모두 오클라호마 폭탄테러와 대구지하철가스폭발 사고 충격을 수습하지 못한 상황이라 대대적인 홍보와 마케팅을 자제했다.

영화 관계자들은 개봉을 내년으로 미뤘어야 했다며 안타까워했다.

P&A 비용까지 총액 2,800만 달러가 들어간 영화다.

류지호는 두 눈 딱 감고 밀어붙였다.


‘에디와 배우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망해도 상관없어. 만약 영화가 박스오피스 폭탄을 터트린다면 다른 영화에서 그들에게 만회할 기회를 주면 돼.’


이왕에 벌린 판이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한국 상황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그런데.


[재난을 그리고 있지만 스펙터클에 압도되지 않고 품위를 잃지 않는다. 비극적인 상황을 이겨내는 이들의 모습은 연약한 육체 안에 자리한 강한 영혼의 존재를 긍정하게 만든다.]

- Variety.


[재난영화가 아니다. 생존드라마다. 재난을 볼거리로 소비하지 않으면서도 감동을 끌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 영화. 마치 끔찍한 현장 한가운데로 관객을 데려가서 재난의 외피를 전시하는 대신에 상황에 노출된 수많은 인물들의 감정에 현미경을 들이대는 영화.]

- The Hollywood Reporter.


[영화를 보는 내내 너무 생생하게 전달되어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줄 알았다. 여러 사례를 참고하긴 했지만, 실화는 아니라고 한다. 불가항력의 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 인간다움을 유지하고 어떻게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스펙터클에 기대지 않고 서사와 인물에 집중한 것에는 박수를 쳐주고 싶다. 그런데 영화를 이끌어나가는 감독의 화법은 관객을 왠지 모르게 조금은 불편하게 한다.]

- Entertainment Weekly


[정통으로 가면 통한다. 이 영화가 재난 상황을 상품화 했다면 결코 얻을 수 없는 진리다. 재난영화가 보여줘야 하는 재난 상황의 아픔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인물들에게 대입토록 만들어주는 연출. 불가항력의 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 인간다움을 유지하고, 어떻게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지 사려 깊게 보여준다. 비극을 넘어서는 건, 결국 인간에 대한 애정과 믿음이라는 것을.]

- Film Comment.


[비극 속에서도 연대의 힘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빚은 영화.]

- Los Angeles Times.


미국에서 진행한 프리미어의 반응은 상당히 좋았다.

대부분의 연예매체와 영화평론가들에게서 좋은 리뷰를 쏟아졌다.

ParaMax의 홍보마케팅의 효과는 아니다.

물론 <트위스트>, <데이라잇>처럼 여름 시즌을 겨냥한 재난 블록버스터도 슈퍼스타가 나오는 영화도 아니기 때문에 언론과 관객의 주목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럼에도 영화가 언급될 때마다 호의적인 내용이 주를 이뤘다.

영화흥행에 있어서 불패 기록을 써나가고 있는 류지호가 기획·각본·제작한 영화라는 점도 부각되어 화제가 되었다.

반면에 한국의 반응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대형 참사의 고통이 채 회복하지 않은 시기에 상처를 끄집어내는 것은 유감이다.]


영화팬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상당했다.

연이어 대형 사고들이 터진 시점에 재난영화로 상처를 헤집는 것에 불만을 나타내는 이들이 많았다.

심지어 한국인 비하 논란까지 부추기는 스포츠신문도 있었다.


[탐욕스러운 쇼핑몰 회장을 한국인으로 묘사한 건 인종차별이며 명백한 한국비하.]

[한국인이 만든 영화에서 한국인을 비하하는 일이 벌어졌다.]

[미국인은 영웅, 한국인은 탐욕의 화신. 할리우드 영화에서까지 사대주의가.....?]


반면 영화전문 매체의 평가는 조금 달랐다.


[마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사실성.]

[재난 블록버스터와 휴먼드라마의 절묘한 조합.]

[한국인이 부정적으로 묘사된 건 유감이지만 <타워링>을 뛰어넘을 수 있는 재난영화의 수작.]

[영웅이 등장하지 않는 블록버스터. 모두가 주인공이자 영웅.]

[이 영화는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오클라호마시티와 대구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을 위한 진혼곡이자, 남아있는 이들을 위한 위로다.]


3년 간 끊이지 않는 대형 참사를 겪고 있는 한국에 빗대어 유력 언론사의 사회부 기자가 일침을 놓기도 했다.


[영화 속 재난대처 매뉴얼이 실제 미국에서 실행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 관계당국이 반드시 단체관람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휴먼드라마 속에 가려져 있는 재난에 대처하는 미국의 인명 구조시스템.]


[이번 주말 개봉하는 영화 <Collapse>(붕괴)의 각본을 쓴 이는 한국인이다. 바로 미국의 엔터테인먼트복합기업 JHO Company를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류지호씨다. 그가 미국의 CNN의 토크쇼에 출연했을 때 지난 1993년 새해 벽두에 발생했던 우암아파트상가 참사 뉴스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토로한 바 있다. 그때 처음 영화 각본을 쓰기로 마음먹고, 70년대부터 최근(영화 각본을 쓸 당시)까지 세계 곳곳에서 벌어졌던 건물 붕괴사고들의 자료를 모았다. 대략 1년 동안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해가며 각본을 완성했다고 한다. “미국이나 흔히 선진국이라고 일컬어지는 나라들은 다양한 재난상황에 따른 매뉴얼이 잘 마련되어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가 선진국 사례를 조사하며 알게 된 것이란다. 선진국(그는 미국을 주로 예로 들었다)은 천재지변은 물론이고 인재로 발생하는 대형사고까지도 알맞은 매뉴얼이 만들어져 있어서 효율적인 구조와 구호활동이 가능하다. 기자가 취재한 미국의 소방당국의 설명도 일치했다. 이번에 한국의 재난상황에 따른 대응에 대해 취재를 하며 기자는 매우 놀랐다.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민방위 훈련 등 전시 같은 유사시에 대한 매뉴얼은 갖춰져 있지만, 지진, 대형 산불, 고층건물 붕괴 등에 관한 대비가 너무 미비했다. 소방청과 내무부 등 유관기관을 취재해 본 결과 장비는 턱없이 부족했고, 영화 <Collapse>에 등장하는 구조전문 장비는 거의 갖춰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관련한 질의에 대해 내무부와 유관 기관의 답변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내년부터 예산을 대폭 확충해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장비를 구축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조차 대구에서 참사가 벌어졌기 때문에 급하게 대응체계를 만드는 것으로 보였다. (중략) 시중에 ‘소 잃고도 외양간 고치는 법 없는 나라’라는 말까지 떠돌고 있다. 한 번은 실수지만, 실수가 반복되면 그것은 더 이상 실수가 아님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국민들은 정부에게 묻고 있다. 성수대교 붕괴 책임자에 대한 처벌은 왜 그렇게 약한가. 그런 식으로 정부가 미온적으로 대처하니 대형 참사가 계속 터지는 건 아닐까. 또한 언론의 태도도 문제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와 북아현동 도시가스 사고 때는 하루 종일 보도하면서 대구에서 발생한 참사에 대해서는 왜 보도를 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지금까지 반성은 충분히 했다. 우리 국민은 이제 더 이상 후진국형 참사를 보고 싶지 않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 UTN 사회부 송일성 기자.


❉ ❉ ❉


외국국적을 가진 한국출생의 사람을 검은머리 외국이라고 한다.

검은머리 외국인은 주로 이태원에 많을 것 같다.

아니다.

검은머리 외국인이 가장 많은 지역은 여의도 증권가다.

그 다음이 압구정·청담이다.

특히 압구정에는 젊은 검은머리 외국인들이 속속 유입되고 있다.

그들이 유럽풍의 카페와 서구식 바(Bar), 최신 트렌드의 음식점을 속속 오픈하고 있다.

청담동은 압구정과 사뭇 다른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넥타이부대의 은밀한 술자리와 유흥을 즐길 수 있는 룸 형식의 Bar가 영업을 시작하고 있다.

고급스러우면서 물관리가 철저한 바가 입소문을 타고 있다.

강남역 주변에서 놀던 고소득 샐러리맨들 사이에서 점차 퍼져나가고 있다.

이 시기부터 압구정에는 캐주얼하게 마실 수 있는 웨스턴 바가, 청담에서는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고급 바가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10여년이 흐르면 청담동에만 120개의 바가 성업할 정도가 된다.

그 같은 분위기의 청담동의 한 고급 바.

듬직한 체격의 청년이 막 들어서고 있다.

아이보리색 면바지 투 버튼 캐주얼 재킷을 차려입었는데, 걸음걸이나 외모로 봐서는 조폭을 의심케 한다.

군전역 후에 영화업계로 복귀한 김재욱이다.

허벅지는 면바지가 터질 듯 꽉 조였고, 몸통은 여전히 두툼해서 군복무 중에도 몸 관리를 게을리 하지 않은 모습이다.

해병대 출신이니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바 안을 촌놈처럼 두리번거리던 김재욱에게 깔끔한 바지정장, 흰색 블라우스를 입은 여종업원이 다가왔다.


“혼자 오셨어요?”


노골적으로 깔보는 투는 아니다.

그렇다고 친절한 태도도 아니다.

김재욱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아뇨. 일행이 있어요. 혹시 박 상무님 어디 계신지 알아요?”

“어떤 박 상무님을 말씀하시는지....”

“오성물산 박충식 상무님요.”

“절 따라오세요.”


김재욱이 여종업원에 안내를 받아 안쪽 룸으로 향했다.

김재욱이 복도에 멀뚱히 서있는 사이, 여종업원이 커튼 안쪽을 향해 말했다.


“상무님, 손님 도착하셨습니다.”


복도 한쪽으로 룸이 마련되어 있고, 입구는 커튼이 쳐져 있다.

마치 일본식 ‘크라브’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 같다.

크라브(クラブ)는 마담 또는 아가씨와 대화만 나누며 유흥을 즐기는 술집을 일컫는 말이다.

여담으로 2000년대 일본 관광객들 상대로 소위 ‘룸카페‘라는 것이 유행하게 되는데, 이미 90년대 중반부터 청담동 고급 바에서는 변형된 크라브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안으로 모셔.”

“네.”


여종업원이 한쪽 커튼을 말아 묶었다.

그 사이로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복도로 나와 총총히 멀어졌다.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멀어지는 여종업원의 시원하게 드러난 등을 쳐다보던 김재욱이 정신을 차렸다.


“아, 네.”


김재욱이 얼른 커튼 안쪽으로 들어갔다.

당연히 팁을 지불할 줄 알았던 여종업원이다.


피식.


여종업원이 비웃음을 흘리더니 다시 제 할 일을 찾아 떠났다.


“반갑네..”

“아, 네! 김재욱입니다.”


김재욱이 박충식 상무가 내민 손을 잡고 몇 번 흔들었다.


“몸 좋군. 무슨 운동 했나?”

“어릴 때 럭비 했습니다.”

“오호라. 그래서 몸이 드럼통처럼 딴딴하구만.”


김재욱이 쑥스러운 듯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그 모습이 그렇게 순박하고 어수룩해 보일 수가 없다.


“자, 앉지.”


김재욱이 자리에 앉자마자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꺼내는 박충식이다.


“어때? 충분히 고민해봤나?”

“이런 데는 첨 와보네요.”


당연하다.

김재욱에게 신세계를 보여주려고 일부러 청담동으로 불렀다.

비즈니스계에서 제법 잘나가거나, 정관계 일부가 자주 드나드는 곳이다.

누구나 출입을 할 순 있다.

만만치 않은 술값을 감당할 수만 있다면.


“솔직히 난 김 부장이 왜 고민하는지 이해가 안 돼.”

“여기 술값 꽤나 깨지겠네요?”

“자네 경력으로 오성 입사는 솔직히 불가능해.”

“시바스리갈은 얼마나 하려나....?”

“흠!”


박충식이 헛기침으로 계속 딴소리만 하는 김재욱을 일깨웠다.

김재욱이 여전히 순박한 표정으로 변명했다.


“아, 죄송해요. 제가 이런 데는 첨 와봐서....”

“나니까 자넬 스카우트 하는 거야.”

“저기요 상무님....?”

“영상사업단도 오성그룹 계열사야. 모든 걸 동일하게 적용 받지.”

“사실 제가 방통대에 진학을 할 것 같습니다.”

“방송통신대학?”

“그래서 일반 회사에서는 일을 못합니다.”

“왜 못해?”

“제가 공부와 일을 동시에 할 정도로 머리가 좋지 못해서요. 검정고시도 간신히 땄어요.”


결코 자랑이 아니다.

그럼에도 김재욱은 당당했다.


“그거라면 괜찮아. 자넨 우리가 투자하는 영화의 옵저버로 일 할 거라서. 내근보단 충무로 현장을 뛰게 할 생각이거든.”

“스카우트 제의를 해준 건 고마운데 말입니다. 그냥 생긴 대로 살랍니다. 오성이고 육성이고 저한테는 과분할 거 같네요. 지금처럼 친구들하고 같이 일하는 게 좋아요. 지호가 친구들 잘 챙겨주기도 하고요.”

“자네 친구가 지금은 잘 나가는 것 같지? 오래 못 가. 재벌들이 영화판으로 들어왔는데, 경험도 인맥도 없는 어린 그 친구가 뭘 할 수 있겠어. 막말로 자네 친구가 재벌에게 회사 다 팔아먹고 손 떼버리면 어떻게 할 건가.”

“그럴 리가 없을 걸요?”

“사회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줄 알아? 곧 대기업이 영화판을 다 먹을 걸? 자네 친구는 조만간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단 말이지.”


김재욱이 별안간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박충식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자신의 말이 먹혔다고 여겼다.

그런데 김재욱의 입에서 나온 말은 엉뚱했다.


“오성 계열에서 제일 잘나가는 전자회사 시가총액이 한 8조 정도 된다고 들었는데.... 맞는지 모르겠네요?”

“오성전자라면 그 쯤 하지.”


95년 현재 시가총액 1위 기업은 한전이다.

2위와 3위는 오성전자와 포항제철그룹이 경합을 벌이고 있다.

한전은 시총 18 조원으로 2~3위와의 격차가 두 배가 넘는다.

물론 10년이 지나지 않아서 오성전자가 100조원을 돌파해 부동의 1위에 올라서게 되지만.


“8조면 만 원짜리가 도대체 몇 장이야? 상무님은 감이 좀 오시겠네요? 대기업에 오래 계셨으니까.”

“.....!”

“암튼 제 친구 류지호 감독이 미국의 트라이-스텔라 오너인 건 아시죠?”


아는 정도가 아니다.

이미 웨스트우드 사무실에서 직접 만나기까지 했다.


“지호가 하는 말이 빅 식스하고 아직은 격차가 좀 있다고 말하긴 하드라고요. 근데 말이죠. 전에 타임지 만드는 회사가 트라이-스텔라를 46억 달러(대략 3조 7천억 원)에 팔라고 했었대요.”


박충식이 깜짝 놀랐다.


“뭐, 뭐? 46억 달러!”


얼른 정신을 수습하고 미심쩍은 시선을 던졌다.

변변한 스튜디오 시설도 없는 영화사의 인수금액으로는 말도 되지 않는다.

제조업에서 오래 몸담은 이들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자산구성을 알 리가 없다.

게다가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는 TV부문과 북미 2~3위 권의 홈미디어 회사를 계열사로 두고 있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가격이란 말인가? 콜럼비아스나 MCA도 아니고 그깟 중급영화사가 무슨....!”

“CNN이라고 알죠? 거기 회장하고 지호하고 무슨 파티인가에서 만나서 친해졌는데, 그 사람은 50억 달러에 사겠다고 했다더라고요.”


김재욱의 말은 사실이다.

다만 약간 다른 것도 있다.

류지호가 군대에 가 있는 사이, 뉴욕의 Garam Invest로 다양한 루트를 통해 트라이-스텔라 인수제안이 들어온 바 있다.

워너-타임, V&ACOM, LOG, 파인소프트 등을 비롯해 Tox Cable 같은 초대형 케이블TV 업체들, 최근에는 TBS의 에드윈 터너까지 인수합병을 제안했었다.

에드윈 터너는 JHO와 지분교환 합병을 제안하기도 했다.

한쪽 기업이 일방적으로 인수하는 것이 아니라, 트라이-스텔라가 가진 가치만큼 TBS의 주식으로 바꿔주는 방식의 합병이다.

엄밀히 말하면 영화사업만 포함된 인수금액은 아니다.

복합기업 JHO Company 전체를 인수하는 것에 45~50억 달러 배팅을 했던 것이다.

류지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일반적인 미국 기업 오너들처럼 인수합병에 개방적이지도 않을뿐더러, 트라이-스텔라는 류지호가 영화 꿈을 실현하는데 가장 중요한 기반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오성영상사업단 자본금 100억 안 넘죠?”

“.....”

“WaW가 일 년에 배급하는 영화 열편의 매출이 어떻게 되는 줄 아세요?”

“.....”


“이거 말하면 재정이한테 혼나긴 하겠지만.... 다른 분도 아니고 오성물산 상무님이시니까 특별히 말씀드릴게요."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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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 Collapse. (3) +10 22.08.04 5,276 163 27쪽
240 Collapse. (2) +9 22.08.04 5,065 144 23쪽
239 Collapse. (1) +7 22.08.03 5,413 165 23쪽
»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개놈이라니까! (5) +8 22.08.02 5,256 169 22쪽
237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개놈이라니까! (4) +6 22.08.01 5,316 163 22쪽
236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개놈이라니까! (3) +7 22.07.30 5,424 156 24쪽
235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개놈이라니까! (2) +2 22.07.29 5,332 160 24쪽
234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개놈이라니까! (1) +5 22.07.28 5,532 148 26쪽
233 대박 축하한다! (2) +5 22.07.27 5,694 152 24쪽
232 대박 축하한다! (1) +10 22.07.26 5,613 156 21쪽
231 OK할 때까지..... +7 22.07.25 5,417 151 25쪽
230 배고픈 놈이 이긴다. (4) +14 22.07.23 5,486 168 26쪽
229 배고픈 놈이 이긴다. (3) +9 22.07.23 5,166 135 21쪽
228 배고픈 놈이 이긴다. (2) +7 22.07.22 5,389 158 22쪽
227 배고픈 놈이 이긴다. (1) +10 22.07.21 5,548 166 26쪽
226 후회가 남지 않게! (3) +4 22.07.20 5,552 162 28쪽
225 후회가 남지 않게! (2) +10 22.07.19 5,647 151 27쪽
224 후회가 남지 않게! (1) +7 22.07.18 5,722 162 26쪽
223 나만 잘 먹고 잘 살려는 게 아닙니다. (3) +4 22.07.16 5,774 155 22쪽
222 나만 잘 먹고 잘 살려는 게 아닙니다. (2) +6 22.07.15 5,608 159 22쪽
221 나만 잘 먹고 잘 살려는 게 아닙니다. (1) +5 22.07.14 5,567 171 21쪽
220 예전의 내가 아닙니다. (3) +5 22.07.13 5,772 170 28쪽
219 예전의 내가 아닙니다. (2) +4 22.07.12 5,706 167 27쪽
218 예전의 내가 아닙니다. (1) +2 22.07.11 5,842 160 23쪽
217 우리 실력을 제대로 보여드리죠! (4) +4 22.07.09 5,832 144 24쪽
216 우리 실력을 제대로 보여드리죠! (3) +4 22.07.08 5,774 164 23쪽
215 우리 실력을 제대로 보여드리죠! (2) +6 22.07.07 5,837 169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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