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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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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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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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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20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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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8쪽

후회가 남지 않게! (3)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4단에 대한 필요성이 최근 대두됐다.

콤프턴과 와츠 지역 아동청소년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다보면, 아이들이 태권도를 가르쳐달라고 떼를 쓸 때가 있다.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다가 태권도 발차기를 시범 보였더니 그 모습이 아이들에겐 그렇게 멋지게 보였던 모양이다.

미국에서는 교육봉사를 하더라도 관련 전공자이거나 라이선스가 있어야 한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3단만 되어도 정식 자격증 없이 도장에서 태권도를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

사실 미국의 빈민가에서 류지호가 정식 자격증 없이 아이들에게 생활태권도를 가르친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은 없다.

돈을 주고 사범을 고용하는 방법도 있다.

교육봉사랍시고 태권도 사범자격을 취득할 필요까진 없다.


“주 2회 사우스센트럴LA에서 청소년들 태권도 수련을 도와줄 사범 좀 소개시켜주세요.”

“체육관이라도 만들려고?”

“아니요. 재능 기부할 사범님 계시면 아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쳐 볼까 하고요. 재능 있는 아이가 있으면 정식으로 도장에서 선수로 키워볼 수도 있고요.”


쉽게 태권도 사범을 구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전용운 사범으로부터 받은 대답은 무척 실망스러웠다.

누구도 우범지역으로 들어가 태권도를 가르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지난 LA폭동으로 인해서 앙금도 채 가시지 않은데다가, 미국까지 이민 와서 하루하루 힘겹게 버티고 있는 처지에 공짜로 남을 도울 여력이 없겠지.”


류지호는 그들을 탓할 수도 비난할 수도 없었다.

미국에서 자리를 잡은 이민자들 말고 80년대 말부터 넘어온 이민자들은 LA폭동을 전후로 해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캘리포니아주의 경기침체에 노스리지 대지진까지 겹치면서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여유들이 없었다.


“지호야, 내가 우범지대 애들을 좀 아는데, 무턱대고 퍼주면 호구소리 듣기 십상이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그런 영화 대사처럼, 우범지역 사람들의 부탁을 모두 들어주다보면 종국에는 고마움을 망각할 수도 있다는 전용운 사범의 경고다.


“네가 부자라는 걸 모르는 LA 시민은 없어. 아마 갱단 애들이 너를 현금인출기처럼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때문은 아니지만, 우범지대 아동청소년센터를 지원할 때 철저하게 현금 지원 대신에 학용품 같은 현물로 지원하고 있어요. 센터에 현금이 들어가다 보면 개념 없는 갱단원이 강도로 돌변해서 센터를 습격할 수도 있으니까요.”

“우범지대가 달리 우범지대가 아니야. 일반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이란 걸 명심해.”

“예. 사범님!”

“그나저나 태권도 승단이 문제가 아니라... 당장 전공심사부터 통과해야 하지 않냐?”


영화 전공 심사는 별 문제가 없다.

학생 아카데미 금메달, 아카데미 단편상 노미네이트, 3대 국제영화제 수상자를 영화전공 심사에서 탈락시킨다면 말이 되지 않으니까.


“4단 승단 시험 볼 생각이라면 한국 가서 봐.”

“왜요?”

“미국에서 치루는 승단심사가 좀 많이 빡빡해. 준비 정말 많이 해야 한다.”

“어려운 심사를 통과해야 그렇게 얻은 단증이 가치가 있는 거죠.”

“굳이 어려운 길을 왜 가. 할 일도 많은 녀석이.”

“그게 바른길이라면서요.”

“......”

“당장은 바빠서 4단이고 뭐고 태권도 자체에 힘을 쏟을 수도 없어요. 천천히 생각해 볼게요.”


류지호는 UCLA로 돌아와 캠퍼스 라이프 적응에 박차를 가했다.

안 그래도 눈코 뜰 세 없이 바쁜데, <퇴마기록>도 신경 써야했다.

시나리오 작업은 원작자와 감독이 작업을 하고 있다.

열악한 충무로 인프라 부분은 류지호가 발 벗고 나서서 해결해야 할 부분이 많았다.

강의와 사업 그리고 <퇴마기록> 포스트프로덕션 지원 방법을 강구하느라 류지호는 수면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 ❉ ❉


Hues & Rhythm Studios는 할리우드에서 5~6위권 VFX 업체다.

류지호는 한국에 지사를 설립하려고 했다.

조나단 휴즈를 비롯해 주요 임원들이 꽤나 강하게 반대했다.

해외 지사까지 설립하며 확장을 할 때가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JHO Pictures(구 캐롤코)가 제작하는 <Collapse> 작업에 전 직원이 달라붙어 있는 상황에서 해외지사 설립은 성급한 감이 없지 않았다.

따라서 한국에서 독립적인 VFX업체를 설립하기로 했다.

문제는 Hues & Rhythm에서 인력을 파견 받고 싶었지만 그것까지도 불발됐다는 점이다.

한국으로 파견 나가고 싶어 하는 직원이 아무도 없었다.

할 수 없이 한국에서 VFX에 관심이 많은 컴퓨터 관련 전공 대학 졸업생들을 선발해 미국으로 불러들였다.

그들을 Hues & Rhythm Studios에서 연수시킨 후 한국에서 자체 VFX 스튜디오를 설립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정말 날로 먹는 게 없다니까.’


90년대 이전에도 한국에서 초보적인 CG들이 존재했다.

주로 30초 미만의 TV광고에서 사용되었다.

특히 <터미네이터Ⅱ>와 <쥬라기공원>이 한국에서 개봉하면서 관객뿐만 아니라 컴퓨터 관련 전공자 사이에서 폭발적인 관심이 생겨났다.

그 영향으로 컴퓨터 그래픽 분야에 많은 지원자들이 몰리고 있다.

PC통신 컴퓨터 관련 동아리에서도 정보교환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런데 CG 디자이너로 진로를 정한 청년들이 취업을 할 만한 업체가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CGI 전문업체라고 할 만한 곳은 <구미호>를 작업한 씨네-누보 그래픽스를 포함해 서너 군데에 불과했다.

모든 면에서 영세하기 짝이 없다.

류지호와 WaW 픽처스가 자본력이 풍부하다고 해서 단숨에 Hues & Rhythm Studios급 전문 업체를 만들진 못한다.

장비가 문제가 아니라 전문 인력의 부족 때문이다.


“감독님!”


오동석이 청년들과 함께 LA국제공항 입국게이트를 빠져나왔다.

무릎이 드러나게 찢어진 청바지, 약간 헐렁한 티셔츠, 스냅백.

전형적인 힙합 패션의 류지호가 맞이했다.


“어서 와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남자 다섯 명이 류지호와 오동석이 인사하는 모습을 멀뚱히 서서 지켜봤다.


“이 분들입니까?”

“예! 엄선해서 뽑은 산업스파이들입니다. 하하.”

“말조심해요.”

“....예?”

“농담을 해도 때와 장소를 가려서 해야 하는 겁니다. 이곳이 어딥니까?”


그제야 아차 하는 표정을 짓는 오동석이다.


“죄송합니다.”

“인사는 숙소로 가서 다시 정식으로 합시다.”


류지호가 점퍼 안주머니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몇 발 떨어져 있던 티노와 말릭이 재빨리 옆으로 붙었다.


“저....”


청년 가운데 한 명이 오동석에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궁금한 거라도 있습니까?”

“저 사람이 현지가이드입니까?”

“누구요?”

“방금 인사한 사람 말입니다.”

“여러분이 1년 간 연수 받을 Hues & Rhythm의 오너이시잖아요.”

“예?”


오동석의 말을 들은 청년들이 깜짝 놀랐다.

자신들보다 많이 어려보이는 외모, 날라리를 연상시키는 패션 스타일.

좀 노는 교포 청년이 할리우드의 유명한 VFX 스튜디오의 회장이란 소리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재미교포입니까?”

“아닙니다. 엄연한 한국인이고, 작년에 현역으로 군대도 다녀오셨지요.”

“혹시 재벌 2세라도.....”

“저 분이 WaW의 회장님이십니다. 류지호 회장님.... 몰라요?”


오동석이 어떻게 몰라볼 수 있겠냐는 듯 도리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군요.”


청년으로서는 억울한 면이 있었다.

무슨 회장이 날라리처럼 입고 돌아다니나.

연예인처럼 외모가 널리 알려진 것도 아니고.

어쨌든 청년들은 빅보스가 될지도 모를 인물의 안내를 받아 엘 세군도로 이동했다.

Hues & Rhythm Studios와 도보로 15분 거리 떨어진 아파트.

다섯 명이 1년 간 머물게 될 숙소에서 류지호가 정식으로 인사를 건넸다.


“놀랐을 겁니다. 류지호라고 합니다. 가온웨딩 스튜디오와 WaW 픽처스의 최대주주이자 이사회의장입니다.”


청년 중에서 연장자로 보이는 이가 나섰다.


“공항에서 몰라 뵈었습니다. 박준우라고 합니다!”

“강동철입니다. 회장님!”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허재용입니다!”

“이승환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강선필이라고 합니다!”


류지호가 차례로 청년들과 악수를 나눴다.


“한국에서 잘 알려지진 않았는데... 어차피 알게 될 것이라 류지호 감독님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를 하자면....”


오동석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청년들은 놀람을 넘어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만으로 24살에 불과한 청년이 한국과 미국 두 곳에 영화 관련 기업을 거느리고 있는 것도 모자라, 기업 규모가 최상위권이다.

한국 언론에서 소개한 것보다 미국에서 위상이 상상 이상이다.

오동석의 설명을 들을수록 자신들이 사기를 당한 것이 아닌지 의심까지 들 정도다.


“다들 못 믿는 표정들이네요? 일주일만 지내보면 내가 설명한 것도 모자라다고 느낄 겁니다.”


오동석은 자신의 이야기도 아닌데 괜히 우쭐댔다.


“아부와 조미료가 많이 첨가된 이야기였습니다. 적당히 걸러 들으세요. 어쨌든 LA까지 잘 왔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선뜻 연수를 지원해줘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부디 뜻한 것들 모두 이루고 돌아가길 바랍니다.”


이들 다섯 청년들이 Hues & Rhythm Studios 연수생들이다.

오동석이 산업스파이라고 표현한 것은 Hues & Rhythm이 가진 기술과 노하우를 하나부터 열까지 모조리 습득하러 왔다는 의미다.

사실 Hues & Rhythm 입장에서는 이들이 산업스파이와 다를 것이 없긴 했다.

회사에 특별히 기여하는 것도 없이 기술과 노하우를 배워서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 버릴 테니까.

연장자인 박준우가 일행의 대표로 말을 받았다.


“월급도 대기업 연봉 수준이고, 최첨단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기회까지 주셨는데 어떻게 이런 기회를 놓치겠습니까? 오히려 저희가 고맙죠.”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습니다.”


강선필이 끼어들었다.


“절대 빈말이 아닙니다, 회장님!”


강선필의 말에 연수생 모두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박준우씨와 강선필씨 두 사람만 미국에서 공부했다고 들은 것 같은데, 맞습니까?”

“저는 스탠퍼드를 나왔고, 선필씨는 뉴욕대에서 광고를 전공했습니다.”

“미국에서 일할 기회가 있었을 텐데, 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까?”


박준우와 강선필이 졸업한 대학은 미국을 넘어 세계적인 대학들이다.

미국에서 취업이 아주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한국의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은 따 놓은 당상이나 마찬가지고.

그럼에도 정식으로 설립되지도 않은 회사와 계약했다.

괴짜라고 해야 할지.

이들이 혹할 정도로 WaW 픽처스의 대우가 좋은 것인지.


“스탠퍼드에서 성적이 썩 좋지 못했습니다. 컴퓨터만 가지고 놀다보니.”

“기숙사 룸메이트 중에 비슷한 녀석이 있었죠. 지금은 Snowstorm이란 게임 스튜디오에서 개발자로 일하고 있네요.”

“사실 저는 CG 시각효과보다 워크스테이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개발 부분에 관심이 많습니다.”


강선필이 쑥스럽다는 듯 이어서 말했다.


“제 경우는 한국으로 돌아와 대기업 광고 회사에서 합격통보를 받았는데, 저하고 맞지 않을 것 같아 포기했습니다. 사실 어릴 때 꿈이 만화가였거든요. WaW에서 컴퓨터 그래픽으로 애니메이션도 만들 거라고 해서 지원했습니다.”


박준우는 워크스테이션 세팅 등의 하드웨어 부분과 CG 작업에 쓰이는 소프트웨어를 관리하고, 강선필은 VFX 코디네이터나 디렉터로 키울 생각이다.

남은 세 사람도 각자 관심분야를 파고드는 것 외에 VFX 전반에 대해서도 꿰뚫고 있어야 하는 특명이 주어졌다.

내년에 설립될 VFX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직원 교육도 겸해야 한다.

향후 3D 애니메이션 제작도 고려하고 있고.


“Hues & Rhythm Studios는 할리우드에서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기술력면에서 탑3에 들어가는 업체입니다. 연수기간 동안 많은 걸 보고, 느끼고, 배우고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이곳에서 배우고 익힌 것들을 한국영화에서 맘껏 펼쳐보시길 기대하겠습니다.”


연수생들이 결의가 느껴지는 대답을 내놓았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부동자세만 아니었지, 모두가 어딘지 각이 잡혀있다.


“시차 때문에 힘들 테니, 하루 정도 푹 쉬세요. 다음 주에 한인타운에서 함께 식사자리를 마련하도록 합시다.”

“감사합니다!”


현재 할리우드 VFX업체들은 몸집을 불리기에 나서고 있다.

영상부분에서 컴퓨터 그래픽의 전망이 무척 밝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그런 호황은 채 20년이 가지 못한다.

이전 삶에서 Hues & Rhythm Studios는 LA본사 직원만 200명에 이르렀던 대형 스튜디오였다.

아카데미 시각효과상도 수차례 수상했다.

그럼에도 파산했다.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제살 깎아먹기 출혈경쟁이 벌어졌다.

나날이 인건비 부담이 늘면서 저가공세를 펼치는 중국·인도 등에 일감을 빼앗겼다.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대기업의 막대한 투자와 지원 없이 자체적인 수익구조로는 버티지 못했다.

인도를 포함한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 지사까지 설립했던 Hues & Rhythm Studios는 파산신청 후 하청을 줬던 인도의 한 업체에 넘어갔다.


‘애니메이션 자체제작, VR 콘텐츠 같은 포트폴리오를 갖추지 못하면 불행한 결과를 반복할지도.....’


적자만 누적되고 경쟁력 없는 VFX 스튜디오를 류지호가 끝까지 붙잡고 있을 이유가 없다.

애니메이션이나 VR 콘텐츠까지 수익구조를 확장하지 못하면 포기할 수도 있는 것이다.


“미스터 오와 웨스트우드로 돌아가시겠습니까?”


티노가 연수생 아파트를 나서는 류지호에게 물었다.

류지호가 오동석에게 한국말로 물었다.


“형은 어떻게 할래?”

“안 바빠요?”

“오늘은 별다른 스케줄이 없어.”

“저녁에 한인타운에서 보면 안 될까요?”

“안 될 건 없지.”

“반주 한 잔 하면 더 좋고....”

“그럽시다.”


오동석은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로 향했다.

올해 WaW 픽처스가 수입할 영화들을 확인했다.

류지호는 웨스트우드로 돌아와 JHO Pictures가 제작하고 있거나 기획 중인 영화들을 점검했다.


톡톡.


류지호가 보고서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고심에 빠졌다.

작년 10월에 개봉해서 흥행에 성공한 <스타게이트> 후속편에 대해 말들이 많았다.

P&A 포함 7,000만 달러를 써서 글로벌 박스오피스 1.7억 달러를 거두고 있다.

최종 박스오피스 전망은 대략 2억 달러 안팎이다.

<스타게이트>는 개발될 때부터 3부작 시리즈로 기획되었다.

당연히 시리즈에 대한 승인이 나야 정상이다.

문제는 작가와 감독이 아이디어 도용에 대해 소송을 당했다는 사실이다.


탁.


류지호가 보고 있던 보고서를 덮었다.

소송이 해결될 때까지 <스타게이트> 트릴로지 제작을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대신 텔레비전 스핀오프 시리즈를 궁리했다.


벌떡.


류지호가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곧장 JHO Pictures 사장 피터 웰스를 찾아갔다.


“얀 호퍼, 스테판 커넬씨하고 식사 한 번 합시다.”

“......?”

“<스타게이트> 스핀오프 TV시리즈를 의논해봐야겠어요.”

“영화 트릴로지는.....?”

“소송이 원만하게 해결된다면 그때 가서 고민해보자구요. 영화 속편 스크립트는 이미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보스, 우리는 아직 TV시리즈를 제작할 여력이 없어요.”

“저작권과 공동제작 크레디트만 가져옵시다.”


<스타게이트> 저작권은 트라이-스텔라와 JHO Pictures가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다.

영화 속편이든 스핀오프 TV시리즈든, 그린라이트가 류지호의 마음에 달려 있단 의미다.

이때는 몰랐다.

고구마를 캐려고 땅을 팠는데, 줄기는 물론 뿌리까지 딸려 나올 줄은.


✻ ✻ ✻


‘미국 속의 한국이라더니, 그 말이 딱 이야.’


오동석이 미국을 방문하게 되면, 주로 트라이-스텔라 픽처스가 위치한 컬버시티와 류지호가 머무는 웨스트우드를 벗어나지 않는 편이다.

몇 번 한인타운을 방문하긴 했다.

오늘처럼 거리를 활보한 적은 없었다.

류지호가 한인타운을 두리번거리는 오동석을 놀렸다.


“촌스럽게 왜 이래? 한인타운 처음 와 본 사람처럼.”

“그것도 옛날이야깁니다. 이렇게 거리를 걸어본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여기도 예전 같지 않아. 대지진이 터지지 않나.... 장기 불황으로 한인타운의 상권이 많이 위축되었어.”

“아직 회복을 못했습니까?”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 같아. 저쪽에 자바시장이라고 있는데, 캘리포니아 최대 의류시장이거든. 현금유동량이나 거래량이 어마어마했었는데, 요 몇 년 간 매출과 거래량이 많이 줄었다더라. 그쪽에서 돈이 돌아야 그 돈이 한인타운으로 흘러들어오는 건데.”

“미국 사업은 괜찮은 겁니까?”

“홈비디오 유통부분이 영향을 받긴 했어. 내년이나 되어야 완전 정상화될 것 같아.”

“북미시장 영화매출도 전반적으로 줄고 있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극장 매출은 조금 줄었나봐. 대신 홈비디오 대여시장에서 매출이 올랐다네.”

“캐롤코와 오라이언을 인수한 게 부담이 되지 않습니까?”

“별로. 두 영화사가 보유하고 있던 라이브러리를 봤을 때 지금 부담이 향후 그 몇 배의 이익을 가져다 줄 거니까.”


류지호 일행은 한인타운 안쪽으로 들어가진 않았다.

고기를 구워먹기가 부담스러워 간단하게 먹기로 했다.

눈에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간 일행은 가장 무난한 김치찌개를 주문했다.

해외를 돌아다니며 한인식당을 숱하게 경험해본 오동석은 내 맛도 네 맛도 아닌 다른 한식을 주문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류지호는 기대 자체가 없기 때문에 대충 주문한 것이고.

비싼 가격에 비해 음식의 퀄리티가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한국인 손님들이 찾는 이유는 별 것 아니다.

현지 음식이 맞지 않거나, 한국음식이 너무나 간절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제대로 된 한식을 파는 식당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교포를 상대한다고 해서 장사꾼의 본질이 변하는 건 아니지.’


교포들이나 유학생들은 양심적인 식당이나 업소를 찾아간다.

관광객이나 업무 차 잠깐 미국을 방문한 한국인들은 정보가 없기 때문에 눈에 띄는 가게에 들어가기 마련.


“번거롭더라고 단골집에 갔어야 했어.”


역시나 한입 뜨니 찌개가 아니라 국이다.

류지호가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것과 달리 오동석은 잘만 먹었다.


“매일 베벌리힐스에서 식사하시나? 미국에서 이 정도면 감지덕지지.”

“그냥 내가 아는 식당으로 갈까?”

“남기고 그냥 가자고요? 이 비싼 걸?”

“솔직히 난 햄버거 먹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우리 감독님이 예전엔 이렇게 까다롭지 않았는데, 은근히 고급져 지셨네.”


류지호는 몇 숟가락 뜨다가 말았다.

차라리 웨스트우드 아파트로 돌아가 라면을 끓여 밥을 말아먹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아니면 노점이나 간이식당에서 파는 간편한 음식을 사 먹거나.

류지호는 주문했던 소주를 취소하고 오동석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한국인 사장이 와서 말을 걸었다.

음식에 대해 조언이랍시고 몇 마디 늘어놓지 않았다.

입맛이 없다는 말로 얼버무렸다.

사람마다 입맛이나 음식의 간이 다른 법이니까.

미국은 일단 고기류가 싸다.

고기가 들어가는 한식을 먹으면 실망할 일이 별로 없다.

일단 양이 많다.

남아서 싸갈 정도다.

양념이나 재료 역시 아낌없이 쓴다.

소공동이나 북창동 순두부는 LA한인타운에서 유명해져 역으로 한국에 지점을 냈다.

모든 한식당들이 그렇게 양도 푸짐하고 맛도 깊으면 좋겠지만, 교포들 사이에서 ‘맛집’으로 유명한 곳은 그렇게 많지 않다.

물론 한인타운 상권이 날이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에 과거처럼 장사하면 절대 성공할 수 없게 되어가곤 있다.

웨스트우드 주택으로 귀가해서 샤워를 마친 류지호가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냈다.


“샌프란시스코는 언제 넘어갈 예정이야?”

“다음 주.”

“조지프 루카스를 만나는 건 아니지?”

“그 양반이 날 만나주겠어요? 트라이-스텔라 오너인 감독님이라면 몰라도.”

“나도 영화제나 시상식에 가야 겨우 만날 수 있을 걸?”


맥주병 뚜껑을 따서 한 모금 마신 오동석이 반말로 물었다.


“대외 활동을 안 해서?”

“나랑 노는 물이 달라. 그런 양반들은.”


오동석의 LA 방문일정에는 Skywalker Films도 포함되어 있다.

G.O.M Cinemas의 THX 인증과 관련된 사항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암튼 THX는 뭘 그렇게 요구하고 따지는 게 많은지.....”

“따지는 게 많으니까 권위를 인정받는 겁니다요. 본부장~”


류지호가 미국으로 넘어오기 전에 인사발령이 있었다.

그 중에 오동석과 관련한 인사가 있었다.

오동석은 WaW 픽처스 외화 수입·배급팀 소속에서 G.O.M Cinemas로 자리를 옮기면서 총괄매니저 직책을 부여받았다.

General Manager 즉 상무급으로 승진한 것이다.

해외 필름마켓 세일즈 업무는 외화 수입·배급팀에 모두 인계하고, 멀티플렉스 개관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당장은 전문경영인이 G.O.M Cinemas를 경영한다.

류지호는 오동석을 현장에서 굴리며 경험을 쌓게 해서 때가 되었을 때 극장사업 부문을 모두 맡길 생각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일 마치고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지 말고, 다시 LA로 돌아와.”

“따로 시킬 일이라도....?”

“케일 미첼이라고 있는데, 형한테 소개시켜주려고.”

“뭐하는 사람인데?”

“MovieMark라고 텍사스에서 설립된 멀티플렉스 체인이 있거든. 그 회사 회장 아들이야. 캘리포니아 지역 총괄매니저래.”

“MovieMark가 메이저야?”

“아직 AMT나 Campbell처럼 모든 주에 영업점을 깔지는 못했어.”

“그쪽하고 합작하게?”

“아니.”

“G.O.M으로 미국 진출하게?”

“미국의 스튜디오들은 ‘파라마운트 합의 명령’ 때문에 배급·상영 겸업을 못하잖아. 대신 해외법인은 가능해. 미첼 회장이 MovieMark 브랜드를 남미에 진출시키려고 하는가봐. 형이 미첼과 만나서 MovieMark에 투자할 수 있는지 간을 한 번 봐. 한국으로 돌아가서는 동남아시아에 G.O.M을 진출시킬 수 있는지도 검토해보고.”

“이제 겨우 한국에 첫 멀티플렉스를 여는데, 벌써 해외진출을 생각한다고?”

“Australian Village Theatres라고 있어.”


외환위기 전후로 해서 백설그룹과 합작으로 한국에 멀티플렉스를 진출하는 호주 극장체인이다.


“걔들이 동남 아시아권에 진출하고 있더라고. 태국에 5개 대형 멀티플렉스가 있었는데, 작년에 EGV Seacon이 14개 스크린, 3,592석으로 아시아 최대 규모로 개관했대. 올해부터 싱가포르에 7개 스크린, 대만에 17개 스크린 개관으로 아시아권 최대의 극장망 구축을 서두르고 있는 모양이더라고.”

“너무 성급한 거 아닐까?”

“우리끼리는 절대 불가능하지. 그래서 MovieMark와 아시아합작 법인을 만들면 어떨까하고 생각 중이야. 대만이나 홍콩 극장 브랜드도 하나 쯤 끌고 들어오면 좋고.”


한류를 등에 업고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면 너무 늦다.

기존에 자리 잡고 있는 글로벌 극장체인 또는 현지 메이저 업체와 경쟁에서 자본과 노력이 초기에 비해 몇 배가 든다.


“보스.... 천천히 가면 안 될까?”

“난 조급하지 않아. 당장 몇 년보다 조금 더 멀리 보고 있어.”

“나와 박 대표님은 한국에서 영화를 하고 있다고.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당장 하겠데? 정보수집 중이야. 타당성을 검토하는 수준이라고.”


오동석이 한숨을 폭 쉬며 중얼거렸다.


“후우.....결국 내게 다 떠넘길 거면서....”

“아시아 최대 극장체인 사장하기 싫어? 딴 사람 알아볼까?”

“난 아직 제대로 걷지도 못한다고. 나더러 날아보라고 하는 건 너무 한 거 아냐?”

“큰 꿈을 꿔보란 말이야. 언젠가 형이 미국시장에 G.O.M 브랜드를 진출시킬지 누가 알겠어.”

“정말 못 당한다니까.”

“제발 형이 좀 잘 나가서, 나 좀 편하게 영화하게 만들어주라.”

“지금도 편하게 영화하고 있으면서.....?”

“형이 알아서 척척 해주면 좀 좋아? 봐 내가 G.O.M 브랜드 아시아 진출까지 고민하고 있잖아. 이게 편하게 영화하는 거야?”

“현재에 만족하면 되지.”


류지호가 장난기를 지우고 진지하게 말했다.


“우리가 탑승한 이 열차는 궤도에서 못 벗어나. 죽으나 사나 끝까지 달려야 해.”

“안전한 속도로 달릴 수도 있잖아. 꼭 빨리 달려야 해?”

“우리 경쟁자들은 새마을호로 달리는데 우린 무궁화호로 달리고 있어. 밀레니엄 전에 운전기술을 모두 습득하고, 우린 새로운 열차로 교체해야 돼. 그리고 성능 좋고 안전한 고속열차로 달려야 하겠지.”

“어디까지 가고 싶은 거냐? 영화로 세계정복?”

“대중문화는 다른 문화권에 스며들게 할 순 있어도 기존 문화를 죽이고 정복할 순 없어. 할리우드가 60년 넘게 전 세계 영화판을 장악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는데, 정복 되었어? 앞으로 정복당할 것 같아?”

“......?”

“나는 죽을 때까지 영화 만들면서 살고 싶은 것뿐이야. 기왕이면 조금 편하게. 그리고 안 되는 것 때문에 포기하고 타협하는 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 싫어. 내가 만든 영화가 망할 걸 걱정하고, 흥행 실패 때문에 다음 영화 연출 기회가 사라져 버리는 처지에 절망하는 게 지긋지긋해. 이번엔 진짜 죽을 때까지 영화 찍으면서 살 거야.”

“참, 뭔가 쉬운 미션 같으면서도 어려운 것 같기도 하고....”


오동석이 반쯤 남은 맥주를 모두 비웠다.

그런 후에 냉장고에서 새것을 가져와 벌컥벌컥 마셨다.


“형도 평생 영화로 벌어먹고 살고 싶으면 천천히 가자는 말 쉽게 하지 마.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영화인들이 충무로에서 하나 둘 퇴장하고 있는 걸 보고 있잖아.”

“난 괜찮아. 평생 류 감독 곁에 껌딱지처럼 붙어있을 거거든.”

“퍽도 그러겠다.”

“난 믿어도 돼. 류 감독에게 충성을 다 바치고 있으니까.”

“쯧. 인간이 어디서 쓸데없는 아부만 배워서는....”

“사회생활은 줄이야 줄! 딴 사람 다 필요 없어. 류 감독만 잡고 있으면 평생 굶어죽을 거 같지가 않아.”


오동석이 천연덕스럽게 지껄이고, 건배를 제의했다.


“형, 이번에는 우리 진짜 잘 해보자.”


오동석이 짐짓 서운하다는 듯 항변했다.


“이번에는?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난 매번 최선을 다 한다고!”


하하.


류지호는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꿀꺽.


맥주를 목구멍 너머로 넘기며 진짜 하고 싶은 말을 속으로 삼켰다.


‘.....후회가 남지 않게.’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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