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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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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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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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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0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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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우리 실력을 제대로 보여드리죠! (4)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알다시피 애니메이션은 성공만 하면 영화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각종 부가시장에서 원 소스 멀티 유즈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현재 Hues & Rhythm는 그 모든 것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네.”

“알고 있어요.”

“그럼에도....?”

“감히 내가 휴즈씨에게 조언하자면 세상에는 영원한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다는 겁니다. 당장 트라이-스텔라 영화와 TV시리즈로 일감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살아남는 것을 넘어 오래토록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혁신해야 하고 변해야 합니다.”


지금 이 시간 할리우드에서는 몇 개 업체가 사라지고, 또 새로운 업체가 설립되고 있다.

현재에 만족해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다보면 어느 순간 도태될 수밖에 없다.

멈추는 순간 주저앉게 된다.

끊임없이 성장하고 확장해야 멈추지 않는다.


“소규모 애니메이션 업체를 인수해도 좋고, 재능 있는 애니메이션 크리에이터를 스카우트해도 됩니다.”

“....음.”


조너선 휴즈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생각에 잠겼다.

류지호는 그가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오라이언 픽처스에서 애니메이션을 배급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쪽에 문의해서 애니메이션 업계 네트워크를 연결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도 따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친구들과 논의를 해보겠네.”

“생각보다 시간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내년 안에 시작하지 않으면, 그 시간만큼 픽사트나 LOG와의 격차가 몇 배 벌어진다는 것만 잊지 마십시오.”

“진지하게 검토하겠네.”

“<Collapse>도 잘 부탁드립니다.”


조너선 휴즈가 호언장담했다.


“맡겨주게. 우리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Hues & Rhythm Studios의 창립멤버들의 명성과 실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초창기 컴퓨터 그래픽 분야에서 꽤 유명한 업체인 RA&A 출신들이 모여서 만든 회사니까.

류지호의 기억으로는 동물 분야 CG로는 세계 최고라고 불리던 스튜디오였다.

내년에 개봉하는 <꼬마돼지 베이브>를 시작으로 <라이프 오브 파이>까지 여러 차례 아카데미 시각효과상을 수상하게 되는 VFX 전문 스튜디오니까.

그럼에도 망했었다.


“뭐든 배워두면 다 도움이 된다니까....”


류지호는 카투사 시절 읽었던 ‘게임 이론’ 책들을 잠시 떠올려봤다.

모든 경쟁은 본질적으로 게임이다

날로 심화돼가는 극심한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기업들을 경쟁자를 제압하고 시장을 장악하며 안정적인 수익기반을 창출하기 위해 고심할 수밖에 없다

기업경영은 전쟁이나 스포츠와 다르다

경쟁자를 누르더라도 공멸할 수 있으며 경쟁자를 패배시키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이 많다.

기업은 주어진 게임을 운명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암튼 할리우드의 컴퓨터 그래픽 역사는 19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73년 <웨스트 월드>라는 상영업화에서 최초로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하기 시작해서 TV광고에 주로 사용되다가 본격 CG영화 <트론>에서 할리우드 관계자들의 주목을 끌게 된다.

마침내 1989년 <스타워즈>에서 그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지금에 와서는 <터미네이터Ⅱ>와 <쥬라기공원>이 공전의 흥행기록을 세우면서 너도나도 컴퓨터 그래픽이 들어간 영화를 기획하고 제작에 들어갔다.

<스타워즈>의 조지프 루카스는 당시 컴퓨터 분야에서 권위 있는 뉴욕공과대학의 컴퓨터 그래픽스 연구소를 직접 찾아가 뛰어난 공학자 네 명을 자신의 회사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한다.

컴퓨터 공학자들과 함께 <스타워즈>를 비롯한 여러 영화에서 컴퓨터 그래픽을 선보였다.

결과는 매우 놀라웠다.

당시 그 컴퓨터 그래픽팀이 현재 할리우드 영화의 VFX계를 주름잡고 있는 LMI(Light & Magic Industry)과 픽사트(Pixart)의 초석이 되었다.


“<터미네이터Ⅱ>가 흥행에서 대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면, 어쩌면 컴퓨터 그래픽이 적용된 영화를 몇 년 늦게 보게 되었을지도.....”


메이저 스튜디오는 고비용이 소요되는 컴퓨터 그래픽의 효능에 대해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래픽 처리를 할 수 있는 컴퓨터 가격이 싸진 것도 한 몫 했다.

대당 1억 원이 넘어가던 워크스테이션의 가격이 그 1/5 수준까지 떨어졌다.

특히 SGI '인디고' 및 '크림슨'은 기본 모델이 한화로 1천 만 원 수준부터 시작할 정도로 영화 제작사들이 효율성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물론 기본 모델의 가격이 많이 내려갔다는 뜻이지 영화 특수효과에 사용하기 위해 워크스테이션을 세팅한다면 여전히 1억 가까이 비용이 들긴 한다.

더욱이 미래도 매우 밝다.

수많은 천재들과 엔지니어, 과학자, 디자이너들이 컴퓨터 그래픽 분야로 들어오면서 연관 산업이 무서운 속도로 발달하고 있다.

업체들에서 성능 좋은 컴퓨터 하드웨어를 개발해가고 있는 만큼 가격은 꾸준히 떨어질 터.

하드웨어보다는 그것을 통해 무엇을 만들 것인가 고민이 필요한 시기다.


✻ ✻ ✻


영화는 가장 자본주의적인 예술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돈, 돈이다.

그렇기 때문에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파이낸싱부터 예산집행까지 효율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등 따습고 배불러야 예술이 꽃필 수 있는 분야가 영화다.

영화는 전형적인 자본주의형 예술이다.

영화야 말로 쌓아올린 부(富)를 바탕으로 빛나는 예술이 나올 수 있으며, 예술인들도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

자본주의 최전선의 대중예술인 영화가 주로 다루는 주제가 자본주의 모순이라는 것이 우습기도 하고 일면 납득이 되기도 한다.

엘 사군도에서 LA 외곽으로 이동하는 차안에서 류지호는 새삼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미국 영화는 흔히 ‘장르영화’라고 불린다.

마치 ‘붕어빵’을 찍어내듯이 영화를 미리 규정한 각 장르의 틀에 짜 맞춰 제작한다는 데 비아냥거림을 담고 있다.

영화가 처음 발명되었을 때 유럽과 미국은 다른 부분에 주목했다.

유럽은 영화를 새로운 예술 표현으로 받아들였다.

반면 미국은 획기적인 레크리에이션 상품으로서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그런데 영화란 매체는 예술가의 창의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바로 미국식 자본주의에 입각한 대량생산의 문제였다.

할리우드는 초창기부터 전문화. 세분화. 표준화 작업에 들어갔다.

각 분야의 전문가를 키워 스태프를 구성했다.

일련의 전문화 작업을 마치고, 마침내 미국 대중문화의 꽃인 ‘스타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연기 전문가인 스타는 흥행 실패를 어느 정도 막아주는 안전판 역할을 맡았다.

그런 후 영화산업 분야의 수직계열화를 통해 덩치를 키우는 한편 인하우스 영화 제작편수를 줄여가고 있다.

글로벌기업이나 언론기업들과 인수합병을 마친 할리우드 메이저들은 투자를 통한 저작권 학보와 배급에 주력하고 있다.

스튜디오가 직접 영화를 제작하는 것은 여전하지만, 독립 제작사나 계열사에 아웃소싱을 하거나 공동 제작하는 비중이 더 커졌다.

대규모 제작진이 필요할 때는 해당 프로젝트에 한정에 여러 독립 제작사들과 프리랜서들을 모은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다시 흩어지는 방식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의 제휴영화사인 제이미 캐머론의 라이트닝스톰에서 1억 달러 예산의 대작을 제작한다면 트라이-스텔라 픽처스를 중심으로 몇 개의 독립 프로듀서들이 합세해 영화를 투자/제작/배급 한 후에 극장 개봉하면 다시 흩어지는 식이다.


“그래서 모든 할리우드 파티는 비즈니스의 연장선이라고 하지.”


류지호의 중얼거림에 도널드 제이콥이 즉각 반응했다.


“뭐가 궁금하십니까?”

“인적 네트워크가 무엇보다 중요한 곳이 할리우드구나 싶어서요.”


할리우드 스튜디오 관계자와 아웃소싱 회사, 우수한 프리랜서들 사이의 노동 시장은 할리우드의 다양한 사교 모임에서 형성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화제와 시상식은 물론이고, 영화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각종 파티나 술자리 등에서 이들은 서로에게 인재를 추천하고, 기회를 제공하고,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새 프로젝트를 위한 팀 구성을 한다.


“점심 미팅을 할리우드에서 ‘파워 런치‘라고 부른답니다.”


매일 점심시간이면 스튜디오 시티 및 LA 북부 일대 많은 레스토랑 테이블에서 프로듀서가 작가를 소개받고, 촬영감독이 신형 카메라 테스트를 의뢰받고, 배우가 새 에이전시와의 계약을 논의하는 등의 수많은 미팅이 이루어진다.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할리우드 네트워크 시스템의 기본이 이런 ‘파워 런치‘다.


“할리우드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스튜디오와 독립 제작사 및 에이전시, 그리고 우수한 인재들이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니까요. 가만히 있으면 기회가 찾아오지 않으니까.”


프로젝트와 우수 인재들을 매칭하고, 계약 조건을 조정하고. 스케줄을 관리하는 대행업(에이전시, 매니지먼트 회사)도 발달하게 되어 있다.


“대형 에이전시들의 영입 일순위에 보스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내가 뭐라고요?”

“감독 겸 프로듀서잖습니까?”

“아직은 아니죠. <Collapse>가 개봉하면 모를까.”

“보스는 학생 아카데미 금메달 수상자입니다. 다수의 흥행영화에서 EP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렸고. 전도유망한 단편영화감독이나 독립영화감독도 에이전시 관리에 따라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 입성이 좌우되기도 합니다.”

“내가 트라이-스텔라 실질적인 오너인 걸 모르는 사람도 있어요? 그리고 Don도 있고 유능한 비서들도 보강했고. 굳이 에이전트가 필요할 것 같진 않네요.”


도널드가 류지호의 매니지먼트 역할까지 고려해서 비서진을 구성하긴 했다.


“미팅과 파티 초대가 쏟아지고 있는데, 계속 거절만 하실 겁니까?”

“일일이 다 챙기다가는 일상생활이 안 될 것 같아서요. Don이 놓쳐선 안 되는 미팅이나 파티만 따로 추려봐요.”

“예.”

“한국영화가 할리우드에 삼십년 뒤쳐져 있다고들 하던데, 막상 겪어보니 오십년은 뒤쳐져 있는 것 같아요.”


류지호의 이전 삶에서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격차가 존재했었다.

현재는 그 차이는 더 컸다.


“할리우드가 대형 쇼핑몰이라면 한국영화는 구멍가게도 아니고, 노점상 수준입니다.”

“뼈를 때리는 직설이네요.”

“한국영화의 보호자가 되고 싶으신 건 아닙니까?”


매사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보스지만, 어떤 면에서는 감상주의자 혹은 민족주의자처럼 굴 때가 있다.

한국계 이민자들을 챙기는 부분이나 한국영화에 대한 걱정 같은 것들에서 그렇다.

특히 군대를 다녀온 것은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온 세상 영화를 할리우드 장르영화로 물들이면 Don은 좋겠어요?”

“할리우드 영화의 점유율이 올라갈수록 트라이-스텔라도 돈을 법니다.”

“대신 관객들은 점점 영화관을 찾지 않겠죠.”

“에어드롬 빅맥 햄버거가 건강에 썩 좋지 않다는 걸 알지만, 전 세계인 누구나 좋아합니다.”


오죽하면 전 세계 에어드롬 매장에서 팔리는 빅맥가격을 달러로 환산한 각국 빅맥 가격인 빅맥지수(Big Mac index)라는 것까지 있을까.


“할리우드 장르영화가 빅맥의 지위를 계속해서 누릴 것이라고 봐요?”

“몇 개 국가 빼고는 시장지배적 지위를 탄탄하게 구축하고 있습니다만.”

“20세기에는 그럴지 모르죠. 21세기가 되면 어떻게 될지 누구도 모르는 겁니다.”

“모리스 메타보이씨가 언제까지 트라이-스텔라를 이끌게 될지 모르지만, 그가 한국영화시장에 진출하겠다고 하면 보스는 그걸 막을 명분이 없습니다.”


지금이야 겨우 1억 달러도 안 되는 시장이었고, 그런 작은 시장에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들이 다 들어가서 작은 파이를 놓고 아옹다옹하고 있지만, 10년도 안 돼서 한국영화가 할리우드 영화를 점유율에서 추월하게 되고 시장규모도 수십 배 성장한다.

중국진출을 위한 중요한 교두보가 되기도 하고.


“답은 간단해요. WaW를 최소 전성기 오라이언 수준만큼 키워야 되겠죠.’


류지호가 한국과 미국에 각각 존재하는 영화사들의 포지션을 놓고 고민을 하고 있는 사이, 차량이 LA 외곽의 공업단지와 사막이 만나는 지역에 다다랐다.

LA 시내에서 차량으로 1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의 이 지역은 할리우드 영화부터 각종 TV시리즈가 많이 촬영되는 곳이다.


“온 도시가 다 영화 세트장이네.”


축구장보다 넓은 공터들이 군데군데 존재했다.

공터에는 수많은 승용차와 버스, 트레일러, 장비 차량들이 주차되어 있다.

오늘 이 인근에서 촬영하는 영화가 세 편이나 된다.

류지호를 태운 차량이 그런 공터 가운데 한 곳으로 들어갔다.

미국에선 대도시가 아닌 이상 차가 없으면 생활하기 힘들다.

사운드 스테이지나 백랏이 아닌 로케이션 촬영을 할 때마다 촬영장 인근에 수백 명의 스태프와 배우들의 차를 세워 둘 주차장을 마련하는 것이 필수다.

대도시 도심에서 촬영할 때도 마찬가지다.

만약 주차장이 촬영현장과 멀리 떨어져 있다면, 셔틀버스를 운행하기까지 한다.

단 주연배우와 감독, 프로듀서는 셔틀버스를 이용하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나 촬영현장 바로 옆까지 차를 가져갈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 외의 배우와 스태프들은 주차장에 집합하는 것이 일종의 업계 룰이다.

류지호의 차량은 주차장을 지나쳐 촬영현장으로 향했다.

일반 데뷔작가나 관계자였다면 주차장에 차를 대고 미니버스를 타고 촬영현장으로 이동했겠지만, 류지호는 트라이-스텔라 픽처스 오너다.

심지어 지금 촬영이 한창인 영화 <Collapse>의 프로듀서다.

류지호의 차량은 VIP존에 당당히 주차했다.


“......!”


차에서 내린 류지호가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촬영에 방해를 주지 않으려고 일부러 점심식사 시간에 맞춰 왔다.

케이터링 업체가 세팅한 테이블들이 눈에 들어왔다.

낯익은 얼굴은 한 명도 없다.

할리우드 촬영현장은 워낙 많은 팀이 섞여 있는 데다 촬영 날마다 일하는 사람이 다른 경우가 많다.


후웁.


류지호가 콧속으로 공기를 빨아들였다.

촬영장에 돌아온 기분을 즐기던 류지호에게 도널드가 물었다.


“먼저 식사부터 하시겠습니까?”

“디렉터 즈워크와 함께 먹죠.”


류지호는 티노와 말릭에게 먼저 식사를 하라고 이르고, 도널드만 대동하고 줄지어 있는 트레일러로 들어섰다.

천막촌을 지나 도착한 촬영장에는 무너져 내려 잔해만 쌓여 있는 쇼핑몰 붕괴현장이 실제와 다름없이 재현되어 있다.


“휘유!”


류지호가 탄성이 섞인 휘파람을 불었다.

묘비처럼 우뚝 세워져 있는 건물 잔해는 1층 반 높이까지 만들어져 있었고, 더 뒤쪽으로 2층 높이의 세트건물이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다.

한쪽에는 도심 풍경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는 가벽이 수십 미터 길이로 세워져 있다.

곳곳에 블루 스크린도 쳐져 있다.

이전 삶에서 메이킹 무비에서나 보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로케이션 촬영 현장이다.

10여년이 지나면 이 정도 사이즈 로케이션 촬영까지 대형 그린 스크린이 설치 된 스튜디오에서 촬영하겠지만, 아직은 야외에 실제 사이즈 세트를 만들어 촬영을 하고 있다.

류지호가 다시 한 번 감탄사를 터트렸다.


“점심시간 되니까 칼같이 끊네!”


정해진 점심시간이 되자, 모든 스태프가 하던 촬영을 동시에 멈췄다.


“헤이!”


에디 즈워크 감독이 류지호를 발견하고 손을 들어 보였다.


“언제 왔어?”

“조금 전에요.”

“바쁘지 않아?”

“뉴욕에 가기 전에 작별인사나 하려고요.”

“추수감사절을 뉴욕에서 보낼 생각인가 봐?”

“네.”


두 사람이 서로에게 안부를 물으며 촬영현장을 벗어났다.

캐이터링에서 음식을 골라 와서 감독 전용으로 마련해 둔 트레일러로 왔다.

식사를 하며 나눈 대화는 주로 <Collapse>에 관한 것들이다.

프로듀서와 감독이 촬영현장에서 나눌 이야기가 그것 외에 뭐가 있을까마는.

참고로 에디 즈워크(Eddey Zwork)은 TV시리즈 연출가 출신이다.

TV시리즈로 성공을 거둔 후 영화로 영역을 넓힌 케이스다.

TV시리즈에서는 현대인의 일상과 인간관계를 주시하는 이야기를 주로 다뤘다.

영화에서는 영웅주의와 희생, 인간의 존엄성을 골자로 한 휴먼드라마에 주력하고 있다.

류지호는 에디 즈워크 감독이 연출한 TV시리즈들에서 보통 사람들의 문제를 밀도 있게 접근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연출 능력을 평가하는 많은 기준 가운데 각종 수상기록도 중요한 요소다.

에디 즈워크는 에미상을 비롯해 많은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다.

영화 <영광의 깃발>로는 아카데미에서 3개 부문에서 수상하는 영예도 안았다.

<Collapse>의 작업을 마치면 걸프전에서 전사한 여군의 무공 진위를 가리는 <커리지 언더 파이어>에 합류하기로 되어 있다.

암튼 지금까지 연출한 영화 전반에는 소시민적인 영웅주의와 진지한 메시지를 담으려는 노력이 두드려졌다.

스펙터클도 잘 다루고, 소시민의 이야기도 밀도 있게 다룰 줄 아는 감독이다.

때문에 류지호는 아무 걱정 없이 <Collapse>의 메가폰을 맡길 수 있었다.


“이대로 돌아갈 거야?”

“저녁약속이 있어서요. 작별인사는 따로 하지 않고, 조용히 지켜보다 떠날 게요.”


보장된 1시간의 점심시간이 끝났다.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할리우드 촬영현장에는 당일의 스케줄 진행만 관리하는 담당 스태프가 따로 있다.

점심시간을 비롯해 일과 종료시간 등을 철저하게 관리한다.

예정된 시간을 넘겨서 촬영이 계속되면 제작자는 전 스태프에게 벌금을 물어야 하고, 또 일과 이후에 촬영을 하게 되면 시간당 두 배의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할리우드 촬영현장은 스태프 각자의 역할 분담이 너무 잘되어 있었다.

각자 역할이 여기까지라는 게 너무 분명하다.

스태프 각자가 프로들이라 진행이 순조롭게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 기계적으로 돌아가서 인간미가 없어 보일 정도야.’


할리우드 상업영화는 대략 12~15주의 기간 동안 프로덕션을 진행한다.

하루 촬영을 나가면 10시간 안에 다 찍어야 한다.

80년대 초반까지는 12시간이었다.

이동하는 시간까지 포함해서 10시간이다.

이 시간은 제작자만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와 스태프도 철저하게 따라야 한다.

만약 약속된 촬영시간에 늦게 온다거나 촬영분량을 소화하지 못하면 배우나 스태프가 벌금을 무는 경우도 있다.

주말은 무조건 쉰다.

밥 나오는 시간도 분명히 하고 페이 부분도 주급으로 철저하게 지급된다.

그 모든 것들이 상세하게 계약서로 쓰인다.

뭉뚱그려서 하는 게 없다.

모든 것을 세세하고 꼼꼼하게 진행한다.

일일촬영계획은 일반적으로 10분 단위로 쪼개서 짠다.

조금 여유롭게 짜단고 하면 시간 단위다.

가령 오전 8시에 첫 테이크를 찍는다고 계획을 세웠다면 이후 매 10분 단위로 몇 개의 몇 개의 커트를 소화해야 하며 점심 시간 전에 슈팅스크립트의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촬영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분명히 적시해 놓는다.

프로듀서가 짠 계획표대로 움직인다.

배우의 경우에도 호텔에 묵어야 하는지 집에서 출퇴근하는지, 어떤 차량을 이용할 것인지, 어떤 트레일러에서 대기해야 하는지 까지 정확하게 정해져 있다.

그렇듯 모든 것이 자세히 정해지기 때문에 배우의 경우 한국처럼 매니저가 따로 필요가 없다.

제작사가 차량과 숙소 및 비서까지 제공해주니까.

막말로 배우가 숙소를 나서는 순간부터 촬영이 끝나 귀가할 때까지 제작사가 책임을 진다.

밥 잘 주지, 지방 촬영 시에 좋은 숙소 얻어주지, 주급 꼬박꼬박 나오지.

영화에 꼭 필요하다면 무슨 수를 쓰든 다 구해다주고 도와주지.

그 모든 것이 소위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Collapse>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이 백 명을 가볍게 넘는다.

인원이 많은 것 때문에 류지호가 놀랄 이유는 없다.

그 많은 사람이 체계적이며 효율적으로 일해서 인력이나 비용 낭비가 거의 없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Don, 이제 그만 갑시다.”

“잘 찍고 있는 겁니까?”

“영화는 고생한 만큼 나온다고 하죠.”


도널드에는 잘 찍고 있다는 것인지 고생만 한다는 것인지 알쏭달쏭한 말이었다.

할리우드에서는 전체 스토리보드를 만들지 않는다.

액션, 동선이 복잡하거나, 고난이도 카메라 워킹이 필요한 시퀀스만 스토리보드로 그린다.

충무로의 현장편집 시스템은 더더욱 없다.

스태프들의 역할은 대단히 세분화되어 있고, 숙련된 스태프들은 철저한 분업에 익숙하다.

따라서 스토리보드가 없어도 여러 대의 카메라로 여러 번 같은 장면을 반복해 찍으며 필름을 소모하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시간과 비용을 최소화하는 노하우가 있다.

숙련되고 풍부한 노하우를 보유한 스태프와 일하고 싶은 것은 세계 어느 나라 감독이 다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류지호는 충무로 스태프들이 더 애정이 갔다.


‘조금 여운이 남는 영화가 되길 바랐건만.....’


에디 즈워크 감독이 각색한 <Collapse>는 분명한 해피엔딩이다.

트라이-스텔라, 파라맥스, JHO 픽처스까지, 모든 수뇌부들이 류지호에게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미국에서 비관주의는 상품화해서 장기간 성공한 예가 거의 없어요.”


할리우드에서 가끔 어두운 유럽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긴 한다.

국제영화제에서 수상을 할지언정 돈을 벌진 못한다.

초대작들은 시종일관 영화적인 마술과 꿈을 보여준다.

거침없는 시각적인 창조성과 행복한 결말.

미국의 코드와 꼭 맞아 떨어지는 이 콘셉트는 영화라는 대중매체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영화의 의의는 약속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겁니다. 즉 미국의 코드의 맞춘다는 것은 꿈과 꿈꾸는 사람을 지지한다는 뜻이 됩니다.”


역사가 짧아서 그럴까.

미국은 뭐든 포장술이 최첨단이며 화려했다.

‘영웅주의’가 꿈꾸는 사람을 지지하기 위한 메시지로 포장됐다.


“미국인들은 큰 이상을 품고, 위험을 무릅쓰고, 무언가를 시도해서 그것에서 실수를 통해 교훈을 얻는 사람들을 격려하고자 하는 정서가 있습니다. 따라서 비관주의나 자기혐오는 맞지 않습니다.”


고위급 임원들이 역설했다.


“Jay.... 미국인에게는 오히려 실수가 더 유익하게 받아들여진다네. 왜 인줄 아나? 실수를 통해 교훈을 얻고 그 결과 더욱 강해지기 때문이네.”


모리스 메타보이 말은 분명 멋진 말이다.

그런데 지난 걸프전이나 몇 년 전의 LA폭동 같은 사례들을 보면 미국인들은 절대 실수로부터 교훈을 얻는 것 같지 않다.

베트남전은 또 어떻고. 미국인 입장에서 승패가 불분명한 한국전쟁을 은근슬쩍 묻어두려는 인식 또한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의 위상이 날로 높아지지 않는다면 한국전쟁은 미국에서 계속 잊힌 전쟁으로 남을 수도 있다.

암튼 수뇌부들이 구구절절 류지호를 설득한 말들은 할리우드 영화가 아니더라도 상업영화의 기본 테마다.

에디 즈워크 감독의 <Collapse>가 최종적으로 어떻게 만들어질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어쩌면 한국영화도 미국영화도 아닌 잡탕영화가 탄생할지도 모른다.


‘대중문화를 수출하려면 보편적인 정서와 소재에 한국만의 특징을 부여해야 한다.’


대중문화 종사자들이 하는 말이다.

보편적인 정서가 미국인들의 정서는 아닐 것이다.

언젠가부터 전 세계 영화들의 목표가 미국에서 통하는 정서가 되어버린다.

한국적인 정서가 강한 영화.

보편적인 정서를 담은 영화.

작정하고 만들면 영화 퀄리티는 끌어올릴 수 있다.

좋은 시나리오를 가지고, 유능한 스태프를 고용하고, 많은 돈과 시간을 들이고, 연기력이 뛰어난 스타를 출연시키면 된다.

다만 정서를 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사실 스티븐 아들러 감독 정도 되면 딱히 정서를 따지고 영화를 만들지 않아도 된다.

만들기만 하면 전 세계 100여 국에 기본적으로 팔려나가니까.

흥행업자 혹은 관객이 감독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감독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권력이다.


‘영화로 표현하고 싶은 것을 누구의 간섭도 없이 실현할 수 있으니까.’


작가의말

행복한 주말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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