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새글

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7.05 09:05
연재수 :
901 회
조회수 :
3,838,441
추천수 :
118,862
글자수 :
9,980,317

작성
22.07.23 09:05
조회
5,165
추천
135
글자
21쪽

배고픈 놈이 이긴다. (3)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캠퍼스를 산책하는 류지호는 가슴이 답답했다.

연출력을 의심 받고 흥행 성적이 부진하면 뒷방으로 밀려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삼류나 일류나 상관없이.

프랭크 코폴라는 현재 뒷방 늙은이로 전락한 느낌이다.

<대부>는 범죄 영화 역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프랭크 코폴라가 메가폰을 잡게 된 이유는 다소 어이가 없다.

단순히 이탈리아계였기 때문에 감독이 되었다.

시대를 앞서 갔던 코폴라는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에 대한 반감이 상당했다.

70년대 Zoetrope Studios라는 이름의 스튜디오로 반 할리우드 영화 제작에 나섰다.

문제는 스튜디오 운영과 새로운 세대의 영화인들을 지원하느라 감당할 수 없는 빚더미에 앉게 되었단 사실이다.

프랭크 코폴라는 빚을 갚기 위해 억지로 <대부>의 연출을 맡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 때문에 엄청난 명예와 부를 쥐게 되었다.

<대부> 이후로 꽃길만 걸을 것 같았다.

그런데 Zoetrope Studios를 통해 ‘영화악동‘이라 불리는 젊은 감독들의 영화를 제작하며 나날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졌다.

결정타는 <지옥의 묵시록>이었다.

<지옥의 묵시록>의 악몽을 거치면서 그의 예술적 에너지는 급격히 고갈되었다.

최고 전성기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듯 절치부심 <대부Ⅲ> 내놓았다.

평단으로부터 어설픈 안간힘이라는 비아냥거림만 남겼다.

<드라큘라>에서 고딕 미장센과 <샤이닝>의 공포를 결합하고 MTV적 속도감까지 불어넣으려 했으나, 이 영화 역시 스타일과 주제의식이 어울리지 못하는 범작에 머물고 말았다.

현재 프랭크 코폴라는 맥클로린 윌리엄스와 함께 <Jack>을 준비 중이다.

모리스 메타보이와 개인적인 친분이 두텁다.

그럼에도 모리스 메타보이는 코폴라의 프로젝트를 할리우드 픽처스에 양보했다.

그 매정한 처사에 대해 섭섭함이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류지호에게 짓궂게 굴었을지도 모른다.


“비평가들이 뭐라고 물어뜯어도 상관없지만, 관객에게 외면당하면 방법이 없지.”


제 아무리 거장이라 할지라도 관객으로부터 멀어지면 도리가 없다.

류지호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돈이 많고 잘 나가는 영화사를 소유하고 있으면 뭐 할까.

관객이 완전히 등을 돌린 순간, 은퇴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꼬르륵.


류지호가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점심을 챙겨먹지 않으면 오후 강의는 굶고 들어야 할 판이다.

류지호는 가장 가까운 기숙사 식당으로 향했다.

음식을 골라 테이블 차지하고 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데.


“선배.”


한국말이 들려왔다.

UCLA 후드티를 입은 여학생이 류지호의 테이블로 다가왔다.

현재로서는 UCLA TV·영화학과의 유일한 한국 유학생인 김윤희다.


“점심은?”

“벌써 먹었지. 선배는 뭐하다가 이제야 점심을 먹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음식을 먹던 류지호가 김윤희를 힐끗거렸다.


“왜? 곤란한 일이라도 있냐?”

“요새 바쁘지?”

“말해 뭐해.”

“내가 단편영화를 찍으려고 하거든. 혹시 도와줄 수 있나 해서.....”

“몇 분짜리?”

“20분.”

“여름방학에 한국 들어가야 돼서?”

“아니. 인턴십 해야 돼.”

“3학년들하고 하면 되잖아.”

“팀별과제는 아니고.... 개인적으로 찍고 싶어서.”

“뭘 도와주면 되는데?”

“선배가 배역 하나를 맡아줬으면 해.”


류지호가 포크를 입에 가져가다 멈췄다.


“나더러 연기를 하라고?”

“응.”

“제 정신이야?”

“난 멀쩡한데?”

“예술대에 연기 잘하는 애들 널리고 널렸어. 장난하는 거 아니다.”

“한국인이 없잖아. UCLA에서 연극·영화 전공하는 재학생은 선배와 나 둘 뿐이니까.”

"난 2학년이야."

"1학년 때 날아다녔다면서?"

“부루인 중에 없으면, USC나 AFI에 찾아가 봐. 아니면 졸업생도 있고. 배우조합이나 에이전시에 연락하면 오디션 주선 해 줘.”

“싫어. 선배가 딱이야.”

“딱 같은 소리하고 있다. 영화가 장난이야?”

“난 진지하다구.”

“진지는 지금 내가 자시고 있거든.”

“.......”

“혹시 태권도 영화냐?”

“아니. 한량이자 마약중독자이자 애인을 패는 나쁜 놈.”


탁.


류지호가 포크를 내려놓고, 김윤희를 빤히 쳐다봤다.


“교포 배우 소개시켜줘?”

“.....”

“5월에 개봉하는 영화가 있는데, 한국계 배우들이 많이 출연했거든. 캐스팅 디렉터에게 전화 한통 하면 네 마음에 드는 배우를 찾아 줄 거다.”

“돈 줘야 하잖아.”

“학교에서 지원 못 받아?”

“졸업 작품이나 과제가 아니라서 현상비하고 장비 지원 밖에 못 받아. 진행비는 사비로 해야 돼.”

“개인적으로 찍는 거란 말이지?”

“응.”

“줘 봐.”

“시나리오?”

“무슨 영화인지도 모르고 덜컥 승낙할 줄 알았냐?”

“쳇. 같은 한국인끼리.”

“한국인 같은 소리하고 있네. 쫑알거리지 말고 줘 봐.”


김윤희로부터 건네받은 시나리오는 영문으로 작성된 10페이지 분량이다.

류지호가 식사를 이어가며 시나리오를 읽었다.

내용은 간단하다.

LA의 한 조용한 주택가에 영어를 전혀 못하는 한국인 할머니가 살고 있다.

이웃에는 역시 한국계 커플이 살고 있다.

남자는 마약중독자인데다가 개차반이다.

여자는 그런 남자친구의 폭력에 매일 시달리고 있다.

할머니는 경찰에 신고를 해보지만,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신고를 할 수 없다.

보다 못한 할머니가 순찰하던 백인경찰을 찾아가 손짓 발짓으로 이웃의 가정폭력을 신고한다.

남자는 경찰에 잡혀가고 여자만 남게 된다.

매일 폭력에 시달리던 여자는 도리어 할머니에게 화를 낸다.

그녀는 남자친구에게 매일 폭력과 강간에 시달리지만 한편으로 그를 많이 의지하고 있었다.

할머니 때문에 그녀가 유일하게 의지할 사람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한 동안 여자와 할머니는 앙숙처럼 지낸다.

약간의 코믹한 상황들이 간간이 등장한다.

그러던 중 남자가 집으로 돌아온다.

평온했던 일상이 다시 시끄러웠던 과거로 돌아간다.

여자는 원하지 않는 섹스를 해야 하고, 마약에 취한 남자친구의 폭력에 시달리고....

그 모습을 매일 지켜봐야 하는 할머니는 미칠 지경이다.

결국 아들이 호신용으로 구입한 권총을 챙겨 이웃을 찾아간다.

겁만 주려고 했을 뿐이다.

그런데 사고나 나고 만다.

할머니는 남자의 폭력을 멈추려고 하다가 그만 살인자가 되고 만다.


“....음.”


시나리오를 한 호흡에 읽은 류지호가 페이퍼를 덮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고심에 잠겼다.

김윤희가 멋쩍은 표정으로 물었다.


“마이클 정이란 놈이 좀 많이 나쁜 놈이지?”

“데이트폭력, 이건 가정 폭력인 건가? 암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아프게 해서는 안 된다. 특히 폭력은 야만적인 것이다. 대충 뭐 이런 거야?”

“여긴 미국인데.... 아직 난 미국이라는 나라를 잘 몰라. 이제 겨우 3년 생활했을 뿐이잖아. 미국인도 아닌데 미국 영화를 찍을 자신이 없었어. 그래서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 한인사회에 여전히 남아있는 전근대적인 가부장적인 행태라고 해야 할까? 그런 가정폭력과 미국사회에 동화하지 못하는 1세대를 담고 싶었어. 그리고 약간의 인종차별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싶고.”

“미국 속의 한인세대 간 갈등, 약간의 인종차별 풍자. 한인 가정의 가정폭력을 고발하는 것. 여성인권 등 다 좋아. 하지만 난 출연 안 해.”

“왜?”

“이 망나니 같은 캐릭터는 출연 분량이 적다고 하더라도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 해야 돼. 나처럼 연기수업 한 번 받아본 적 없는 생 초보가 아니라.”

“1학년 때 갱단원 역할을 해 봤다며?”

“대사 한 마디 없는 엑스트라였어. 배우가 모자라서 머릿수 채운 거야.”


류지호가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선배....?”


류지호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차라리 프로듀서나 촬영은 도와줄 수 있어. 연기는 안 해.”


김윤희는 포기하지 않았다.

수시로 류지호 앞에 나타나 설득과 회유를 했다.

아무리 매달려도 류지호는 넘어가지 않았다.

카메라 울렁증 없다.

연기하기 부끄럽지도 않다.

그럼에도 하기 싫었다.

대안이 있음에도 자신을 캐스팅하려는 김윤희의 얄팍한 생각이 못마땅했다.

게다가 류지호 역시 올 여름 방학 동안 영화를 찍어볼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것도 장편영화를.

<엘마리아치>처럼 7,000 달러(후반작업비 포함 25만 달러)에 찍을 순 없겠지만, <저수지의 개들> 정도 제작비(120만 달러)로 찍어볼 생각이다.


“그만 괴롭혀 인마. 나도 여름에 영화 찍을 계획이야. 내 코가 석자야.”


류지호는 짜증을 내고, 성을 내고, 협박을 했다.

김윤희도 만만치 않았다.

별의 별 수단을 다 동원해서 들러붙었다.


“선배, 지금처럼 연기하면 돼. 거 봐 선배도 화내니까 느낌이 있어. 필이 팍....”

“시끄러워! 내가 5만 달러 투자할 게. 그러니까 나 좀 내버려 둬. 이 스토커야!”

“돈 필요 없어. 난 꼭 선배가 출연해 줬으면 한다니깐.”

“아휴. 이놈에 진드기 같은 기집애.”

“어허, 기집애라니?”

“그럼 네가 사내자식이냐?”


류지호는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난 네 시나리오 안 땡겨. 구린 시나리오 고쳐오면 진지하게 재검토해 볼게.”

“뭐가 마음에 안 드는데? 선배만 출연해 주면 뭐든 고려해 볼게.”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왜 하필 나야. 꼭 나여만 하는 이유가 뭔데?”

“망나니 캐릭터는 선배를 떠올리며 썼거든.”

“내가 얼마나 모범적인데 그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난 우락부락하고 마초적인 외모의 남자가 망나니짓하는 게 별로야. 선배처럼 멀쩡하고 선량하게 생긴 남자가 여자를 패고, 약에 절어서 망가지는 게 더 매력적일 것 같다구. 그리고 교포 배우들은 영어가 매끄럽고 자연스럽잖아. 선배가 영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잘 하지만, 미국인들이 볼 때는 본토발음이 아니잖아.”


류지호는 순간 고개를 끄덕여 동의할 뻔했다.

얼른 정신을 수습한 류지호가 말을 이었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의 삶을 담고 싶다고 했지?”

“응.”

“혹시 수요집회 나가본 적 있어?”

“난 데모는 한 번도 안 해 봤어.”

“멀리 있는 미국 동포 여성들의 인권 고민하기 전에 가까이 있는 내 나라의 여성인권과 성폭력을 먼저 다뤄야 하지 않겠냐?”

“.....?”


김윤희가 입을 다물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약칭 정대협)에서 매주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집회가 있어. 내가 군대 가기 직전에 처음 열리기 시작했는데....”

“정신대....”


김윤희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언론보도에서조차 ‘위안부’ 혹은 ‘성노예’라는 표현보다 ‘정신대’라는 용어가 주로 쓰이고 있는 시기다.


“네 시나리오의 많은 부분을 고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다만 할머니가 80년대 말에 미국으로 도망치듯 넘어온 위안부 할머니라는 것. 영화의 배경이 LA가 아니라 일본인이 많이 사는 샌프란시스코였으면 좋겠다는 것. 클라이맥스가 법정 씬으로 할머니의 사연이 밝혀진다는 것. 그 씬에서 네가 하고 싶은 여성인권, 성폭력에 관해 문제 제기를 하고, 조금 더 큰 메시지를 담았으면 좋겠다는 것.... 정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하자는 거야?”

“그건 작가가 알아서 선택하고 결정해야지. 이런 문제를 다룰 때 잊지 말아줬으면 하는 것이 있어.”

“뭔데?”

“성별을 앞세우지 말 것. 그리고 국적 문제에 함몰되지 말 것.”

“반일과 페미니즘을 말하는 거야?”

“그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단순히 반일감정이나 국적의 문제만은 아니야. 전쟁 중 발생한 여성 성폭력에 대한 인권 문제야. 여성이거나 한국인의 문제에서 머물지 말고, 전쟁이란 폭력이 만들어낸 반인권적인 문제를 인류의 보편적인 인권문제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거야. 결국 마지막엔 반전 즉 평화의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연상되어야 하겠지. 그래야 영화의 스펙트럼이 좁아지지 않을 것 같다.”


전쟁 중 성폭력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중동에서.

또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아프리카에서도.

심지어 구소련 연방국가 중 내전을 겪고 있는 국가에서조차.


“좁아지지 않는다....?”

“넌 이 영화를 여성에게만 보여줄 거냐? 아니면 한국인만 보길 원해?”

“.....?”

“만약 네가 여성인권운동 영화를 찍겠다면 그렇게 해. 그건 그것대로 의미가 있으니까. 하지만 뉴욕인권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려면 네가 쓴 시나리오 정도로는 어림도 없을 거야. 우리는 피해 당사자니까 할머니 사연을 공감하고 아프지만, 미국인들도 과연 그럴까?”

“단편영화에서 수십 년 전 과거를 구구절절 늘어놓을 수 없잖아.”

“다행히 네 시나리오에는 이미 이웃 커플이 만들어져 있지. 은유와 상징이 단편영화의 매력이란 걸 잊지 마.”

“그래서?”

“내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면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 네가 작가고 감독이잖아.”

“남은 이야기도 마저 해줘.”

“그게 다야.”

“진짜?”

“진짜지 그럼. 내 영화냐?”

“결론은 지금 시나리오로는 절대 출연을 안 한다는 거지?”

“응.”

“아이 참, 진짜 비싸게 구네.”

“인마, 나 엄청 비싼 몸이야.”

“알겠어. 고민해 볼게.”


김윤희가 비 맞은 강아지처럼 축 늘어져서 떠나갔다.

류지호가 그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봤다.

애처로워서?

아니었다.

앓던 이가 빠진 기분이다.


“뭐야?”


류지호가 김윤희에게 두툼한 페이퍼 뭉치를 건넸다.


“한국에서 믿을 만한 곳에서 부탁해 받은 위안부 관련 자료.”


믿을 만한 곳이란 다온 법률사무소다.


“내 아이디어가 정답이라고 장담할 수 없어. 다만 영화가 촌스러워지는 지점이 감독이 주장하고 가르치려는 지점이야. 좋은 영화는 보여줄 뿐.”


김윤희는 류지호가 3학년에 올라가면 UCLA TV·영화 학부의 단 둘 뿐인 유학생이다.

그녀가 찍은 단편영화가 교수와 학생들에게 인정받으면 류지호로서도 나쁠 것이 없다.

한국 유학생의 위상을 올리는 일이니까.

김윤희의 단편영화로 인해 UCLA 학생들 더 나아가 미국 영화팬들에게 위안부 문제를 알 수 있다면 더 좋고.

만약 김윤희가 류지호의 조언을 받아들여 위안부를 단편영화에 녹여낼 수 있다면 영화제 수상과 상관없이 한국영화에서 유의미한 기록도 된다.

영화에서 거의 최초의 언급이기 때문이다.


‘자료 공부 좀 하고, 새롭게 시나리오를 완성하려면 최소 몇 달은 걸리겠지.’


한동안 김윤희의 코배기도 볼 수 없었다.

한국말로 대화할 상대를 잃었지만, 전혀 아쉽지 않았다.

주말마다 태권도장에서 전용운 사범과 한국말로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까.


❉ ❉ ❉


3월 1일은 1919년 일어난 3·1 운동을 기념하여 제정된 대한민국의 국경일이다.

광복을 위해 싸우다가 순국한 선열들과 3·1 운동이 가진 깊은 뜻을 되새긴다.

전국 관공서 및 각 가정에서 대한민국의 국기인 태극기를 게양한다.

올해는 또 다른 의미에서 역사적인 날이다.

특히나 엔터테인먼트 분야에게 있어서.

오늘부터 케이블 방송의 본방송이 시작됐다.

3개월 간 시범 방송을 마치고, 케이블TV 20개 채널이 본방송을 개시했다.

그 동안 지상파 3사만이 볼 수 밖에 없었던 시청자들은 다채널을 통해서 전문적인 내용과 분야를 만날 수 있게 됐고, 원하는 채널을 마음 놓고 볼 수도 있게 됐다.

방송업계에서는 채널이 늘어난 만큼 시장과 일감이 확대되는 변혁을 맞이하게 됐다.


“......!”


황재정이 리모컨을 눌러 본방송을 시작한 채널들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지상파 프로그램과 차별화해 하루 종일 한가지로 특화된 프로그램들을 내보내며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음악만 틀어주는 MS·net과 KMTV, 영화 채널인 대우시네마네트워크, 만화 채널인 올리온카툰네트워크, 오락 채널인 HBS, 교양 및 다큐 채널인 Q-채널 등 20개가 조금 넘는 채널들이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황재정의 등 뒤로 비서실 직원들이 구경하고 있다.

신문에서 케이블 채널 편성표를 확인하던 최영미가 입을 열었다.


“지상파와 케이블 경쟁이 치열해 지겠네.”


비서실에서 가장 연장자인 김우영이 최영미의 말을 받았다.


“지상파에서 활동했던 유명한 연예인들이 케이블 방송 쪽으로 영역을 확장하겠군.”


비서실 막내 송선희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문제도 있어요.”


비서들의 시선이 송선희에게 향했다.


“비디오 시장이 위축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 동안 지상파 방송은 평일 중에는 정파상태였다.

따라서 일반 가정에서 낮 시간 동안 비디오를 빌려봤다.

이제 평일 낮에 케이블 TV가 방송을 시작했다.

평일 낮에 TV를 보는 사람들이 많아질 터.

조준열이 송선희와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비디오 시장이 죽는 만큼 지상파 방송국과 함께 케이블 영화 채널에도 WaW 영화를 팔 수 있지요.”


김우영이 황재정에게 물었다.


“미국에 계시는 의장님께서는 특별한 말씀 없으셨습니까?”

“비디오 시장은 앞으로 전망이 어둡다고 합니다. 케이블 영화 채널 방영권 가격도 지상파만큼 받을 수 없을 거라고 하셨고.”


최영미가 비관적인 의견을 개진했다.


“아무래도 시청률이나 광고 단가 등을 비교할 때 지상파의 절 반 가격만 되어도 다행일 것 같습니다.”

“당분간 비디오와 케이블 TV는 공생할 겁니다. 비디오 시장이 한순간에 죽지는 않을 겁니다. 대신 우린 의장님이 지시한 대로 PC 통신과 CD에 집중합시다.”

“메이킹 무비는 어떻게 하실 건지.”


WaW 픽처스에서 류지호의 지시에 따라 인하우스로 제작하는 모든 영화의 메이킹 무비를 촬영해 두고 있다.

추후 DVD에 들어갈 코멘터리도 따로 녹음해두고 있다.

케이블 TV는 방송 콘텐츠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나중에 DVD라는 것에 부록으로 들어갈 것들을 제외하고, 현장 스케치와 배우 인터뷰 영상을 케이블 채널에 판매하기 위해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아요.”

“몇 년 지난 영화인데 케이블 TV에서 사 줄 까요?”

“<하얀전쟁>같은 경우는 베트남 로케이션이라 그림이 되잖아요. 베트남 촬영현장 영상은 WaW만 가지고 있어요. 다큐멘터리로 판매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요.”


WaW 픽처스가 제작한 영화뿐만 아니라, 트라이-스텔라가 가지고 있는 영화촬영 다큐멘터리 영상도 함께 판매할 계획이다.

<토탈리콜>이나 <터미네이터Ⅱ> 제작과정 다큐멘터리는 케이블 TV에서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영화채널이 아니더라도 쏠쏠하게 써먹을 수 있는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WaW 픽처스의 새로운 수익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영화 방영권 판매와 더불어 새로운 비디오 매출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케이블 TV에서 방영할 텐데, 누가 한참 전에 개봉한 영화를 비디오로 빌려보겠어요.”


DVD는 내년 96년에 영화 감상용으로 미국에서 첫 선을 보인다.

기본 4.7GB에서 양면을 쓸 경우 최대 17GB의 대 용량을 담을 수 있게 된다.

큰 저장 용량, 작은 사이즈인 DVD는 VHS와 레이저디스크와의 경쟁에서 순식간에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

VHS에 비해 월등한 화질과 원본 화면비.

반복 재생에 따른 열화가 없는 점.

영화 본편 외에 부록 개념의 콘텐츠를 담으면서 그야말로 영화 콘텐츠 패러다임의 대 변혁을 일으키게 된다.

아직은 먼 이야기다.

내년에 DVD가 첫 선을 보이게 되더라도 플레이어가 너무 비싸고, DVD 타이틀도 턱없이 적고, PC에서 재생하려면 별도의 디코더를 장착해야 볼 수 있었기 때문에 크게 인기를 끌지 못한다.

PC의 성능이 향상되어 디코더 없이 소프트웨어만으로 재생할 수 있게 되면서 DVD 타이틀의 보급이 크게 증가하게 된다.

불법 복제도 그 만큼 대폭 증가하게 되겠지만.

어쨌든 영화사적으로 의미 있는 영화가 아닌 이상, 철지난 범작들에는 코멘터리나 제작과정 같은 부록이 포함된 DVD는 거의 발매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WaW 픽처스가 발매하는 모든 DVD에는 당시의 생생한 제작비화가 담길 예정이다.

가령 <하얀전쟁>의 코멘터리에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던 배우가 감독에게 따지는 것도 들어있다.

진심으로 감독에게 화를 내는 배우의 음성을 DVD를 통해 들을 수 있다.


“우린 WaW의 협상과정과 결과만 리포트로 정리해 의장님께 보고하면 됩니다. 개인적인 의견은 따로 회의에서 정리하는 걸로 합시다.”

“네.”

“알겠습니다.”


비서들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황재정만 홀로 TV브라운관 앞에 남았다.


‘15조 원....’


작가의말

편안하고 행복한 주말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9

  • 작성자
    Personacon 霧梟
    작성일
    22.07.23 09:33
    No. 1

    Dvd 처음 나왔을 때 정말 충격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들 결혼식 사진 집에서 그냥 dvd에 구워주고 이젠 해상도가 낮아서 못 봐줄 정도 ㅋㅋ 그래도 당시 레퍼런스 갑이라는 타이틀들이랑 알아가고 평가 받은 것 다 샀었는데… 이젠 지역 코드가 안 맞고 ㅋ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7 리모레로
    작성일
    22.07.23 09:56
    No. 2

    되더라고-되더라도
    잘 보고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3 트뤼포
    작성일
    22.07.24 20:13
    No. 3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2.07.23 10:07
    No. 4

    잘 보고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9 루시오엘
    작성일
    22.07.24 00:41
    No. 5
  • 작성자
    Lv.99 무한땅꼬마
    작성일
    22.07.27 13:12
    No. 6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an******..
    작성일
    23.03.06 17:18
    No. 7

    참나 이번에피소는 모지 저 여학생이 현실감이 없는건지 아니면 쥔공이 삼류쩌리 감독이라서 배우출연시킨건가 그동안 감독으로 상도 몆개받은에피소도 있는데 배우시킨다고 아무리 소설이지만 이해할수가 없네 이여학생은지금 스필버그한테 공짜로 출현해달고 한거나 마찬가지 아녀 요번에피소는 이해할수가 없네

    찬성: 6 | 반대: 0

  • 작성자
    Lv.95 하몽즈
    작성일
    23.10.27 13:10
    No. 8

    저렇게 얄팍하게 이용해 먹는거에 당하는게 그대로… 리메인데도 아쉽네요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47 ma******..
    작성일
    24.04.12 23:05
    No. 9

    주인공 유명세에 업혀가려는 건데 저런 자기 중심적이고 무식해보일 정도로 뻔뻔한 스타일 진짜 싫음
    초고 보면 인권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그냥 그럴 듯해 보이는 이미지만 끼워 맞춘 듯 한데 저 수준의 사람은 한마디 충고 듣고 극적으로 변하기는 힘들지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Mr. 할리우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44 Collapse. (6) +6 22.08.08 5,232 161 24쪽
243 Collapse. (5) +4 22.08.06 5,293 158 25쪽
242 Collapse. (4) +6 22.08.05 5,251 167 22쪽
241 Collapse. (3) +10 22.08.04 5,276 163 27쪽
240 Collapse. (2) +9 22.08.04 5,065 144 23쪽
239 Collapse. (1) +7 22.08.03 5,413 165 23쪽
238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개놈이라니까! (5) +8 22.08.02 5,255 169 22쪽
237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개놈이라니까! (4) +6 22.08.01 5,316 163 22쪽
236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개놈이라니까! (3) +7 22.07.30 5,424 156 24쪽
235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개놈이라니까! (2) +2 22.07.29 5,331 160 24쪽
234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개놈이라니까! (1) +5 22.07.28 5,532 148 26쪽
233 대박 축하한다! (2) +5 22.07.27 5,693 152 24쪽
232 대박 축하한다! (1) +10 22.07.26 5,613 156 21쪽
231 OK할 때까지..... +7 22.07.25 5,417 151 25쪽
230 배고픈 놈이 이긴다. (4) +14 22.07.23 5,486 168 26쪽
» 배고픈 놈이 이긴다. (3) +9 22.07.23 5,166 135 21쪽
228 배고픈 놈이 이긴다. (2) +7 22.07.22 5,388 158 22쪽
227 배고픈 놈이 이긴다. (1) +10 22.07.21 5,548 166 26쪽
226 후회가 남지 않게! (3) +4 22.07.20 5,552 162 28쪽
225 후회가 남지 않게! (2) +10 22.07.19 5,647 151 27쪽
224 후회가 남지 않게! (1) +7 22.07.18 5,722 162 26쪽
223 나만 잘 먹고 잘 살려는 게 아닙니다. (3) +4 22.07.16 5,774 155 22쪽
222 나만 잘 먹고 잘 살려는 게 아닙니다. (2) +6 22.07.15 5,607 159 22쪽
221 나만 잘 먹고 잘 살려는 게 아닙니다. (1) +5 22.07.14 5,567 171 21쪽
220 예전의 내가 아닙니다. (3) +5 22.07.13 5,772 170 28쪽
219 예전의 내가 아닙니다. (2) +4 22.07.12 5,705 167 27쪽
218 예전의 내가 아닙니다. (1) +2 22.07.11 5,842 160 23쪽
217 우리 실력을 제대로 보여드리죠! (4) +4 22.07.09 5,832 144 24쪽
216 우리 실력을 제대로 보여드리죠! (3) +4 22.07.08 5,773 164 23쪽
215 우리 실력을 제대로 보여드리죠! (2) +6 22.07.07 5,837 169 2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