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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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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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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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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2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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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배고픈 놈이 이긴다.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첫 날 DreamFactory 삼인방은 협상에 응하지 않았다.

백설제당 협상팀에게 스튜디오 투어만 시켜줬다.

다음날부터 진행된 협상은 시종일관 유쾌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품격 있는 정찬 대신 간단히 피자를 먹어가며 소탈하게 대화를 나눴다.

가볍운 분위기 속에서도 백설제당 협상팀은 열정적으로 협상에 임했다.


“돈을 투자할 테니까 아시아에서 통할 영화를 만들어 달라는 겁니까? 마치 소닉처럼?”

“아닙니다. 우리는 미래를 보고 있습니다. DreamFactory의 체계적인 도움을 받고 싶습니다.”

“투자가 아니라 도움?”

“제조업에서 기술을 이전하는 것처럼. 궁극적으로는 진정한 창조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고 싶습니다.”

“노하우를 전수해 달라는 겁니까?”

“저희의 꿈은 하나입니다.”

“들려줄 수 있습니까?”

“영화로 첫 걸음을 떼겠지만, 영상, 음악 등의 엔터 산업 전반의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경쟁력 있는 문화상품을 앞세워 아시아의 할리우드로 도약하려합니다.”


이문현 부사장의 말이 끝나자, 이희경 상무가 나섰다.


“우리에겐 DreamFactory처럼 젊고 창의적이고 유연한 글로벌 파트너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DreamFactory 삼인방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자신들의 방향성과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할리우드는 지나치게 관료주의에 젖어있다.

거대한 미디어 자본이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을 장악하면서, 의사결정이나 전략이 영화 자체가 아닌 매출이라는 숫자에 지나치게 집중하고 있다.

게다가 장르적 전형성이 고착화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도 우려된다.

DreamFactory 삼인방은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나 보다 창의적인 사업을 전개해보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투자를 받더라도 좀 더 자유로운 파트너십 구조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오성물산 협상팀의 일원이기도 했고, 이전부터 스티븐 아들러와 안면이 있었던 이희경은 오빠인 이문현과 사적으로 더 많은 시간을 갖기 위해 물밑에서 노력했다.

협상이 벌어지는 기간 내내 식사를 함께하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저녁에는 펍에서 맥주도 함께 마셨다.

그러면서 사업 주제보다는 영화와 대중문화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풀어나갔다.

오성그룹의 협상 실패를 교훈삼아 스티븐 아들러를 제대로 공략한 것이다.


“자네들과 파트너십을 맺는다면 다들 놀라 자빠지겠군.”

“우리에게 DreamFactory는 창의적인 콘텐츠를 빗어내는 시스템과 노하우를 전수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롤 모델입니다.”


이문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희경이 말을 보탰다.


“우리는 DreamFactory를 단순히 투자처로 보지 않아요. 우리는 DreamFactory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 우리가 창조한 꿈의 실질적인 주인이 될 겁니다.”


이문현이 DreamFactory 삼인방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 협상이 우리가 꿈꾸는 미래를 앞 당겨 줄 겁니다. 한 수 아니 두 수 세 수를 배우겠습니다.”


스티븐 아들러가 만족한 얼굴로 말했다.


“당신들의 에너지와 열정, 흥분 그리고 날 것처럼 다듬어지지 않은 솔직한 야망에 반했습니다. 이 협상은 매우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해 낼 것이라 믿습니다.”


그렇게 삼 일 간 더 양측의 협상이 진행되었다.


✻ ✻ ✻


3월 말이 가까워질 즈음 한국의 주요 일간지와 방송에서 대형 뉴스가 터졌다.


[백설제당이 스티븐 아들러 감독이 주축이 된 할리우드 스튜디오 DreamFactory사에 3억 달러를 투자하는 방식으로 세계 영화시장에 진출한다. 백설제당의 김종섭 부사장은 서울 본사 사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백설제당은 아들러 감독 등과 5년에 걸쳐 3억 달러를 투자하는 조건으로 DreamFactory에 참여하기로 합의했다"면서 "이문현 백설제당 부사장이 5명의 DreamFactory이사 가운데 한명으로 선임됐다"고 밝혔다.(중략) 한편 백설제당은 프로듀서 김영학씨, 작가 송하나씨와 공동으로 종합영상소프트업체 (주)케이콤(K COM.)을 설립하기로 했다. 김씨와 송씨는 이날 서울 코리아나호텔에서 별도로 기자회견을 갖고, 자본금 20억 원 규모의 케이콤을 세우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 MBS 9시 뉴스데스크.


백설제당의 DreamFactory 투자뉴스가 각종 매체 헤드라인을 대문짝만하게 장식했다.

뉴욕타임스에도 제법 비중 있게 소개될 정도로 빅뉴스다.

백설제당이 오성그룹 계열의 안정적인 식품기업에서 대중문화 콘텐츠 분야 공룡기업으로의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다.

다들 제조업에 열중하는 시절이다.

자사 매출의 2할 수준인 3,000억 원을 할리우드의 신생 스튜디오에 통 크게 투자한 것에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식품기업으로서 충분히 안정적인 토대를 갖춘 기업의 대담한 행보는 남들 눈에는 엉뚱하게 보이기 충분했다.


“DreamFactory 투자는 우리의 최종 목적지가 아닙니다. 출발선일 뿐입니다.”


계약협상을 진두지휘했던 이문현이 언론과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백설제당은 DreamFactory의 자본금 10억 달러 가운데 3억 달러를 5년에 걸쳐 투자하기로 했다.

그로인해 파인소프트에 이어 제 2대 주주가 되었다.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 판권을 가지는 계약도 포함되었다.

이문현은 DreamFactory의 5인 이사회와 경영위원회에 분기마다 참여할 권리를 얻었다.

마지막으로 백설제당 미디어사업부는 DreamFactory로부터 영화배급, 마케팅, 관리, 재무 등 실무에 대한 운영 노하우와 영상 관련 기술을 지원 받게 되었다.

한국 대중문화계에게 있어서 일본대중문화 개방에 이은 대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재계와 주식시장에서도 이번 계약을 주목했다.

충무로는 더더욱 이 뉴스를 두고 여러 말들이 오갔다.

충무로의 역사는, 아니 한국 재계의 역사는 이변 없이 흘러가고 있다.


✻ ✻ ✻


따르릉.


류지호는 한국의 WaW 픽처스 주요 인사들로부터 수차례 전화를 받았다.

모두가 한 입으로 백설제당의 DreamFactory 투자 건에 대해 물었다.

똑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기 귀찮아서 여의도 비서실로 떠넘겼다.

박건호 대표에게만 이번 협상의 전말에 대해 설명했다.

알고 있어야 대처를 할 수 있을 테니까.


- 감독님은 아무렇지도 않으십니까?

“그럼요.”


이미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고 있었다.

동요할 일이 뭐가 있을까.


- 오성이나 경일, 대유, 금성도 아니고, 백설제당은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전에 백설제당을 주목하라고 말했잖아요. 이미 예상했던 것이고, 실제 그들 협상팀과 인사도 나눴어요. WaW는 이번 뉴스에 동요할 필요 없어요. 우리는 우리 길을 갑니다.”

- 그래도 한국의 대기업이 할리우드 영화를 독점 공급하게 된 것은 심각한 상황이 아닙니까?

“호랑이 새끼를 키울까봐서요?”

- 이미 덩치는 호랑이와 다를 것 없습니다.

“그런 말이 있어요.”

- ......?

“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면 배고픈 놈이 이긴다.”

- 혹시 우리가 사자입니까?

“호랑이든 사자든 뭐가 중요해요. 우리가 배고픈 놈이라는 게 중요하죠.”


하하하.


수화기 너머에서 박건호 대표의 통쾌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 알겠습니다. 우린 배고픈 맹수입니다.

“봄 학기 끝나자마자 한국으로 넘어갈 거니까 그렇게 알고 계세요.”

- 아, <Collapse> 개봉 때 한국으로 들어오실 생각이군요?

“비록 연출은 하지 않았지만, 스크린플레이와 프로듀서 크레디트로 올라가는 첫 장편영화잖아요. G.O.M Cinemas개관 영화중에 하나이기도 하고.”

-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딸깍.


류지호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새삼 극장사업을 일찍 시작한 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 충무로는 대기업과 금융자본이 영화판으로 들어오는 것에 대해 찬성과 반대로 반응이 첨예하게 갈렸다.

대기업과 금융자본의 충무로 투자가 긍정적인 면도 많다.

결국에 가서는 기존 기득권의 행태와 크게 달라질 게 없지만.

효율적인 비즈니스 체계를 구축하기 보다는 스타 기용 전략을 강화하고 마케팅과 홍보 예산을 키우는 등 할리우드 흉내만 내는 수준으로 전락한다.

후발주자의 장점은 선발주자들이 이미 겪은 성공과 실패 경험을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비즈니스를 시작하더라도 실제 증명된 사례를 분석할 수 있다는 점은 큰 메리트다.

한국영화계는 가깝게는 일본, 홍콩이라는 아주 좋은 분석 케이스가 있다.

70년 이상 산업화를 구축한 할리우드는 종합연구자료다.

홍콩이 스타 위주의 전략을 펴다 어떻게 망가졌는지, 일본이 다양성과 작품의 질보다 제작비와 광고마케팅에 몰두하며 어떻게 산업생태계를 정체시켰는지.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들의 실패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이 많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오랜만에 류지호는 이전 삶의 한국영화계를 떠올리며 원인을 분석해 봤다.

여러 문제들 가운데 대기업 혹은 금융자본과 경쟁하거나 견제할 수 있는 순수 영화인 세력이 전무했던 것도 큰 문제였던 것 같다.

80년대 말부터 할리우드는 거대 자본과 영화인 진영으로 나뉘어 파워게임을 벌이고 있다.

결국 할리우드가 자본에 굴복하게 된다.

현재는 DreamFactory 삼인방의 독립이나 LOG 컴퍼니 내부적인 파워게임, 모리스 메타보이 같은 리더들을 중심으로 하는 영화인 연대 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시기다.

자본이나 거대 미디어기업이 할리우드를 잠식하더라도 할리우드 업게에는 메이저 스튜디오들의 금도를 넘지 않는 비즈니스와 함께 상대적인 약자들인 영화인을 보호할 장치가 무수히 많았다.

그렇기에 무수한 위기 속에서도 할리우드 산업이 지탱이 되고 있다.

반면에 한국영화계는 너무나 후진적이다.

승자 독식 게임의 룰이 너무 적나라한 세계다.


‘WaW가 과연 복잡한 이해관계들의 중재자나 조율자가 될 수 있을까?’


WaW 픽처스 역시 이전 삶의 백설 E&M이나 광성컬처웍스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초심을 잃지 않도록 하는 누군가의 견제가 필요할지 몰랐다.

아니면 WaW가 괴물이 되지 않도록 해줄 안전장치들이 촘촘하게 만들어 지던가.


❉ ❉ ❉


예술가는 자신과의 싸움을 하는 이들이라고 말한다.

그 자신과의 싸움이란 자신의 실력과의 싸움은 아니다.

나태, 방만, 자기만족, 슬럼프, 오만 등.

실력 외적인 싸움이다.

프랭크 코폴라(Frank Coppola) 감독을 보며 류지호가 든 생각이다.

류지호는 UCLA 예술대학 TV·영화과 강의실에 앉아있다.

뚱뚱한 배, 둥글둥글한 얼굴, 수북하게 기른 수염, 매부리코, 벗겨지기 시작한 이마.

외모는 성격 좋은 동네 아저씨 같다.

미국영화계의 거장 프랭크 코폴라 감독이 특별강의하고 있다.


- 훌륭한 스토리텔링은 멋진 촬영물을 만드는 데 반드시 필요한 부분입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이야기를 구성하는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역동성을 가미해 보세요. 과감하게 이곳저곳에 영상을 배치해 보세요.


코폴라 감독이 열정적으로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미국영화계에서 프랭크 코폴라 감독만큼 심한 부침과 영욕을 경험한 사람도 드물다.

그의 전성기는 70년대였다.

80년대에 들어서며 프랭크 코폴라 감독은 상업적으로도 예술적으로도 몰락했다.

안간힘을 썼지만 다시는 70년대의 영광을 되찾지 못했다.


- 마치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나라에 와 있다고 생각하며 영화를 촬영해 보세요. 해외에서 촬영할 경우에 우리는 보통 처음 보는 건축물과 주변 환경의 독특함에 시선을 빼앗기곤 하죠. 주변에서 아름다움을 찾아 색다르게 표현해 보는 겁니다. 마치 외국에서 느꼈을 법한 독특하고 신기한 인상을 말입니다.


영화 연출과 촬영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드는 것에서 출발한다.

미술, 촬영, 조명 등 영화적 기법으로 포장을 하든, 혹은 독특한 이야기를 입히든 관객들이 매일 보는 장소와 일상을 익숙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 관객만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을 위해 영화를 만들어 보세요. 이해가 되지 않으신다고요? 여러분은 어디까지나 예술가입니다. 관객들이 여러분이 만든 영화를 선호하기 때문에 스튜디오가 일을 맡기는 겁니다. 그러나 스튜디오가 기대하는 부분만 촬영하거나 지나치게 관객을 신경 쓰기 시작하면 여러분의 영화는 지루하기 짝이 없어집니다. 수갑을 찬 채로 대작을 완성해 낼 수는 없습니다. 다시 말해, 간편하고 탄탄한 구성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촬영해 이를 완성시키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다른 작가들이 무엇을 하는 지에는 전혀 신경 쓰지 마세요. 메아리가 되지 말고, 목소리가 되란 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흉내 내기만 할 뿐인 메아리가 아니라 여러분의 진짜 마음을 내뱉는 목소리를 내보세요. 만약 영감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면 훌륭한 영화를 보면서 앞 서 간 예술가들의 영화적 기법을 응용해보도록 하세요.


스티븐 아들러, 조지프 루카스, 마르틴 스콜체제 그리고 프랭크 코폴라를 묶어서 한때 ‘movie brats’(영화악동)이라 불렀다.

그들이 출현하기 전에는 영화현장에서 영화기술을 익힌 이들이 대다수였다.

영화악동으로 불리는 이들은 대학에서 먼저 영화를 배운 엘리트 영화광 출신답게 유럽예술영화풍의 작가주의영화나 영화사적 지식으로 무장한 새로운 영화를 70년대 선보였다.

90년 대 중반인 현재, 이들 영화악동들의 위상은 하늘과 땅 차이다.

코폴라 감독 밑에서 인턴사원으로 일하던 조지프 루카스는 <스타워즈> 성공 이후 자신이 원하는 영화를 만들고 있고, 자신의 방식으로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평단과 스튜디오에게 무시당할 때마다 조지프 루카스로부터 여러 차례 연출기회를 부여받아 흥행과 예술성을 증명하고 있는 스티븐 아들러는 친구들과 DreamFactory를 설립했다.

부침이 있지만 마르틴 스콜체제 역시 꾸준히 작품을 내놓고 있다.

나이를 떠나 오랜 시간 우정을 나누고 있는 이들 사인방은 초창기 코폴라 감독의 진취적인 모습을 본받았지만, 그의 걸음보다는 훨씬 재빨랐다.

수년이 흐른 현재 할리우드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뒤바꾸어버렸다.

영화계 위상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사인방은 경쟁자이자 절친임에는 틀림없다.


짝짝짝.


특별강의가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영화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순간, 코폴라와 류지호의 눈이 마주쳤다.

코폴라의 입가에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가 걸렸다.

아니나 다를까.


- 지호군은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아요?”

“작가는 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 작가로 사는 건 어떻게 사는 거라고 생각하지요?

“쉬지 않고 작업을 해야 하죠.”

- 쉬지 않고?

“<레옹>의 감독 폴 베숑은 하루도 빼먹지 않고 글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데뷔 전부터 그래왔고, 영화를 계약하지 못할 때도 그렇게 한다고 제게 말했습니다. 영화작업을 하고 있지 않은 날에도 그에게 글쓰기는 일상인 거죠.”

- 작가란 글쓰기가 생활화된 사람이란 말을 하고 싶은 거로군.

“남이 뭐라 하든지 스스로가 작가로서의 삶을 살면 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 자네가 공정한 경쟁에서 한 발 벗어나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

“할리우드에서 공정한 경쟁이 어디 있습니까? 먼저 하는 사람이 임자, 박스오피스의 실적을 꾸준히 유지하는 자가 위너 아닙니까?”

- 재능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지? 그들도 스스로 작가라고 생각하며 안 되는 걸 붙들고 살아야 할까?

“모두가 재능이 있어서 영화를 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세상에는 천재들이 만든 수작 말고도 평범한 재능이 만든 범작들도 많습니다. 그 수많은 범작들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이 토론에 끼어들 만도 했다.

아무도 나서는 학생이 없다.

마치 제작자와 감독의 논쟁을 지켜보기라도 하듯이.


“할리우드에 몸담고 있는 대부분은 살리에리입니다. 모차르트라는 희대의 천재와 비교되어서 그렇지 얀 포만의 <아마데우스>와 달리 현실의 살리에리는 뛰어난 음악가였습니다. 많이 읽고, 많이 보고, 많이 쓰고, 많이 찍어 본 놈이 이기는 게 영화판이라고 생각합니다.”


허허.


프랭크 코폴라가 웃었다.

류지호에게 향하던 시선을 거두고 강의실의 학생들에게 향했다


- 사람들은 영화를 보고 모차르트를 칭송하지만, ‘Whizz Kid’(신동)가 방금 말한 것처럼 살리에리 또한 당대에는 엄청난 음악가였습니다. 관객들은 왜 그 두 사람의 관계를 다룬 영화에 매혹되었을까요?


학생들이 저마다 감상을 말하기 시작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를 건드렸습니다.”

“시대상을 잘 묘사했습니다.”

“배우들의 연기가 눈부셨습니다.”


한동안 강의실에서 중구난방으로 떠드는 소리가 이어졌다.


- 좋습니다. 황홀한 눈요기? 배우들의 명연기? 그럼 감독은 어떻습니까?

“얀 포먼은 좋은 감독입니다.”

- 나 역시 동의합니다.


프랭크 코폴라가 슬쩍 류지호를 쳐다봤다.


끄덕.


류지호 역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까닥거렸다.


- 그는 훌륭한 연출가이며 작가입니다. 그의 영화가 굉장한 이유는 감독이 관객에게 떳떳하기 때문입니다. 결코 작품을 하며 게으르지 않았고, 자신의 철학에 대한 신념으로 무장하고 있으며, 기꺼이 관객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줄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도 디렉터 코폴라와 마찬가지로 90년에 들어와서 영화를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 지호 그렇습니까? 저 학생의 의견에 동의합니까?


류지호가 프랭크 코폴라를 째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디렉터 포먼은 트라이-스텔라에서 영화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가 우리의 라이벌 중에 하나인 컬럼비아 대학에서 영화를 가르치고 있지만....”


우우우.


TV·영화 전공생들이 야유를 퍼부었다.

컬럼비아대학 영화과를 라이벌로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듯.


“그의 영화로 돈을 벌기는 매우... 매우 어려울 것 같지만. 수작의 탄생에 누군가 피를 흘려야 한다면 유대인보다 한국인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모리스 메타보이씨가 하고 있지 않을까 합니다. 참고로 저는 유대인입니다. 피를 모리스 메타보이씨가 흘릴 것 같거든요.”


킥킥.


모리스 메타보이의 장난기를 알고 있는 교수와 대학원생 몇 명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

UCLA 특강마다 류지호와의 일화를 풀어내는 모리스 메타보이다.

연예매체 기자들이 특강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이유 중에 하나다.

하도 류지호의 뒷담화(?)를 늘어놓기에 기사거리를 종종 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암튼 <아마데우스>의 얀 포만 감독이 5년 만에 트라이-스텔라에서 메가폰을 잡을 예정이다.

포르노 잡지 '허슬러'를 창간해 백만장자가 된 래리 플린트의 삶을 그리는 영화다.

이 프로젝트는 모리스 메타보이가 강력하게 미는 영화다.


- 그렇다는 군요.


프랭크 코폴라가 학생들을 향해 두 팔을 벌리며 말했다.


하하하.


학생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배가 불룩한 코폴라가 양 팔을 벌리자, 마치 모 코미디언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 할리우드는 누구나 감독을 할 수 있어요. 왜 인줄 압니까? 그곳에는 시스템이 있고, 프로의식으로 무장한 전문가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할리우드에서 데뷔하고 싶어요? 그렇다면 열심히 단편영화를 찍어 봐요. 그 중에 가장 자신 있는 영화를 영화사에 보내세요. 난 이 정도로 영화를 찍을 줄 아는 녀석이다. 내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다른 영화사에 빼앗길 걸? 너희들은 생각을 잘해야 할 거야 라고 당당하게 도전해 보세요.


학생들의 표정에서 결의가 느껴질 때.

그런 분위기에 프랭크 코폴라가 초를 쳤다.


- 그리고 좌절하세요.

“......!”

- 할리우드에서 살아가는 자들은 좌절과 어깨동무하고 가야 하는 운명입니다. 실컷 좌절하고 절망하시길 바랍니다.


한 학생이 불퉁거렸다.


“한 때 거장소리를 듣던 디렉터 코폴라가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습니다.”

- 나도 예전 만 못합니다. 후배들은 나를 통해 배워 봐요. 내 영화와 내 말 속에서 의미를 찾지 말고, 내 인생을 반면교사 삼아 보세요.


류지호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툭 내뱉었다.


“겸손이 지나치시네요.”

- 지호군, 우리는 영화로 큐브릭과 히치콕을 이길 수 없어요. 그래서 우린 영원히 패배자입니다. 아니 살리에리겠군요.


‘아, 짜증나네!“


스티븐 아들러도 그랬고, 오늘 프랭크 코폴라도 어딘지 기운이 없어 보인다.

거장이라는 사람들이 앓는 소리를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들의 미래를 예감이라도 하는 걸까.

프랭크 코폴라는 이미 80년대 그의 시대를 마감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반면에 스티븐 아들러는 건재하다.

결코 그의 영향력이 사라지지 않는다.


‘80년대 말부터 시작된 할리우드 권력의 개편 때문에 그런가?’


마치 이빨 빠진 호랑이들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류지호는 프랭크 코폴라 감독과 사석에서 조금 더 대화를 나눌 수도 있었다.

맥도웰 교수와 함께 차담이라도 나누자고 할까봐 곧바로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괜스레 마음이 심란해져서 캠퍼스를 거닐었다.


작가의말

한 주 마무리 잘 하십시오. 행복한 하루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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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 OK할 때까지..... +7 22.07.25 5,417 151 25쪽
230 배고픈 놈이 이긴다. (4) +14 22.07.23 5,486 168 26쪽
229 배고픈 놈이 이긴다. (3) +9 22.07.23 5,166 135 21쪽
» 배고픈 놈이 이긴다. (2) +7 22.07.22 5,389 158 22쪽
227 배고픈 놈이 이긴다. (1) +10 22.07.21 5,548 166 26쪽
226 후회가 남지 않게! (3) +4 22.07.20 5,552 162 28쪽
225 후회가 남지 않게! (2) +10 22.07.19 5,647 151 27쪽
224 후회가 남지 않게! (1) +7 22.07.18 5,722 162 26쪽
223 나만 잘 먹고 잘 살려는 게 아닙니다. (3) +4 22.07.16 5,774 155 22쪽
222 나만 잘 먹고 잘 살려는 게 아닙니다. (2) +6 22.07.15 5,607 159 22쪽
221 나만 잘 먹고 잘 살려는 게 아닙니다. (1) +5 22.07.14 5,567 171 21쪽
220 예전의 내가 아닙니다. (3) +5 22.07.13 5,772 170 28쪽
219 예전의 내가 아닙니다. (2) +4 22.07.12 5,705 167 27쪽
218 예전의 내가 아닙니다. (1) +2 22.07.11 5,842 160 23쪽
217 우리 실력을 제대로 보여드리죠! (4) +4 22.07.09 5,832 144 24쪽
216 우리 실력을 제대로 보여드리죠! (3) +4 22.07.08 5,773 164 23쪽
215 우리 실력을 제대로 보여드리죠! (2) +6 22.07.07 5,837 169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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