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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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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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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8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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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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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나만 잘 먹고 잘 살려는 게 아닙니다.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따르릉!


파커가 저택 2층, 류지호의 방에서 전화벨이 울려댔다.

류지호가 수화기를 집어 귀에 가져갔다.


“헬로?”

- 지호야 나다.


뜬금없이 황재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시간에 웬 일로.... 한국에 무슨 일 있냐?”


뉴욕 시간으로 금요일 밤 11시다.

서울은 토요일 정오다.


- 회사에는 아무 일 없어. 어머니가 너와 통화를 하고 싶다고 하셔서.... 잠시만.


수화기 너머에서 황재정과 어머니의 목소리가 작게 들려오다가.


- 지호니?

“네. 어머니. 집에 무슨 일 있어요?

- 지호야, 정말 못 살겠다.


류지호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혹시나 집안에 큰일이라도 벌어진 줄 알고.


- 사람들이 왜 다 그 모양이라니? 정말 귀찮고, 짜증나서 도저히 살 수가 없다.


심영숙이 입으로 따발총을 쏴댔다.

가만히 어머니가 진정되기를 기다리던 류지호가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무슨 일인데요? 차분하게 말씀하셔야 알아듣죠.”

- 아휴. 말도 마.


류지호는 뉴욕에 머물며 다양한 매체와 인터뷰를 소화했다.

그 중에는 한국 특파원도 있었다.

지상파 방송에는 출연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각 방송사마다 주요 뉴스시간에 류지호가 소개된 모양이다.

그간 스크린이나 로드쇼 같은 영화잡지에는 자주 소개되긴 했지만, 언론매체에는 좀처럼 등장하지 않던 류지호다.

최근 뉴욕에서의 행보를 통해 지상파 방송과 주요 일간지에서 뉴스가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여의도 이사회 의장 집무실로는 각 방송사마다 특집 프로그램 편성을 논의하자는 제의가 쏟아지고 있다.

비서실 차원에서 정중히 거절하고 있다.

류지호는 잠시 유명세를 타고 말겠거니 생각했었다.

오산이었다.

WaW 픽처스가 제작/배급하는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 할수록, 가온 웨딩의 사업이 번창할수록, 나래 안전시스템과 아네모네 프랜차이즈가 지방으로 영업력이 확장될수록 류지호의 유명세가 꺼지기는커녕 더욱 활활 타올랐다.

과장 보태서 경일자동차나 대유그룹의 3세 이름은 몰라도 류지호라는 젊은 부자의 이름 석 자를 모르는 대한민국 국민이 없을 정도다.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졸부 이미지는 그래도 괜찮다.

가족들을 알아보는 사람이 늘었다는 것이 문제다.

평소 인연이 없던 사람들까지 친한 척 굴며 접근하거나, 듣도 보도 못한 각종 단체에서 기부나 지원요청을 해오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처음에는 아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가족이 짊어져야 할 몫이라고 생각하며, 항상 친절하고 겸손하게 대했다.

그런데 한계에 봉착했다.

류민상은 직장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동료들에게 질투와 시기를 받게 되었고, 심영숙은 시장이나 마트에서 장을 보지 못할 정도로 바깥출입이 힘들어졌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류지호에게 전화를 하소연을 한 것이다.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


벼락스타의 부작용이다.

재벌이라면 상황이 조금 달랐을 것이다.

아마도 사람들이 그들에게 쉽게 접근할 생각을 못했을 것 같다.

재벌에 한해서는 자신들과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관심을 보일지언정 쉽게 접근하지는 못한다.

류지호 역시 경호원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면서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했다.

가족들은 달랐다.

서민적(?)으로 살고 있는 부모님이 만만하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은 떡고물을 기대하고 노골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도 있다.


- 네 아빠는 자선봉사도 못 나가셔. 하도 사람들이 이것도 해 달라, 저것도 좀 도와 달라 하도 사정을 해서.


류지호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삐져나왔다.


“에휴. 이 바보....”


콩콩!


그리고 자신의 머리통을 스스로 쥐어박았다.

자신의 안일함에 화가 났다.

자신이 연예인도 아닐뿐더러, SNS시대도 아니기에 다소 쉽게 생각했다.

가족들까지 이 정도로 유명세를 치를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물론 연예인의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즐길 수도 있다.

모두가 선의로 관심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불순한 의도로 접근하는 자들은 나래안전시스템에서 처리하고 있긴 했다.

가족을 향한 미디어의 관심 역시 의장 비서실에서 차단하고 있기도 하고.


“죄송해요. 제가 무신경했어요.”

- 네가 죄송할 게 뭐가 있겠니. 그냥 엄마가 투정 좀 부렸어.

“아니에요. 제가 한국 들어가서 처리할게요.”

- 뭘 어떻게 하려고? 그냥 사람들이 조금 성가시게 하는 것뿐이야.

“연수동 아파트로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요?”

- 경호원 청년들이 경비원 아저씨하고 모르는 사람은 집 앞까지 올라오지 못하게 하긴 하는데.... 전화번호를 바꿨는데도 어떻게 알고 전화를 거는지 시도 때도 없이 전화가 걸려와.

“절 찾는 전화에요?”

- 그런 것도 있고, 네 아빠나 나한테 오는 것도 있고.

“며칠만 고생하세요. 제가 방법을 알아볼게요.”

- 어디 불편한데는 없어? 밥은 잘 먹니? 잠은 잘 자고?

“자세한 이야기는 집에서 해요. 늦어도 이번 주말에는 한국 들어갈게요.”

- 일부러 안 와도 되는데... 왔다갔다 이틀이나 걸리잖아... 힘들어서 어떻게 해?

“일등석 타고 가서 힘들지 않아요. 한국 들어가기 전에 전화 드릴게요.”

- 엄마가 맛있는 거 해놓을게.

“네. 들어가세요.”


딸깍.


류지호가 수화기를 전화기에 내려놓지 않고, 꽉 움켜쥐었다.

명백히 자신의 불찰이다.

로또복권 1등에 당첨되어도 온갖 잡놈들이 파리 꼬이듯이 꼬인다고 했다.

대유나 현태처럼 눈에 보이는 대기업을 일군 것이 아니라, 마치 행운의 돈벼락을 맞은 것처럼 사람들에게 인식되었으니.

한때 ‘럭키‘라는 별명이 따라다닌 것을 매스컴에서 사용하기 때문이다.

운이 좋아 부자가 된 청년이란 이미지가 한국에서 만들어졌다.

성공스토리가 상식적이지 않은 면이 있긴 했지만.

어쨌든 복권에라도 맞은 것처럼 쉽게 부를 이룬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사람들은 류지호가 어떻게 부를 이루었고, 어떤 노력을 했는지 모른다.

아니 관심 자체가 없다.

그저 부자니까 마땅히 어려운 사람에게 돈을 나눠주어야 한다고 편하게 생각할 뿐이다.

부자는 자신의 부를 사회에 돌려줘야 할 의무가 있다.

그들의 부가 사회로부터 나왔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부자의 부가 공공재는 아니잖아.’


맡겨놓은 것도 아니고.

어떤 이들은 부자가 자신의 것을 빼앗아서 부를 이룬 것이라고 생각하기까지 한다.

아무리 기부를 많이 해도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고.

가끔 억울한 생각이 들 때가 있는 류지호다.


“성북동이나 평창동으로 이사를 가야 하려나?


왜 부자나 권력자들이 부자동네에 모여 사는지 류지호는 잘 알고 있다.

부동산 투자라는 아주 원초적인 이유에서부터 범죄예방까지.

류지호의 가족이 경험하고 있는 것을 방지하고, 사생활을 보장 받으려고 하는 목적에서다.

류지호는 수화기를 내려놓지 않고, 그대로 한국으로 전화를 걸었다.

비서실에 여러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일주일 후.


류지호가 급하게 한국으로 들어왔다.

곧바로 가족들을 소집했다.

류지호가 가족들을 향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번 기회에 이사 가는 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가족들이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이사?”

“어디로?”

“왜?”

“....음.”


류지호가 식구들과 한명한명 시선을 마주치고, 차분히 말을 이었다.


“요 몇 주 동안 있었던 일들이 일시적일 것 같지 않아요. 아마 제가 미국에서 영화감독이 되면 더 자주 언론매체에서 오르내리겠죠. 아마 회사들도 더욱 커질 것이고요.”


류민상이 회의적인 어조로 물었다.


“이사를 간다고 해결되겠냐?”

“사생활이 확실히 보장되는 곳으로 가야죠.”


류아라가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 곳이 있어? 어딘데?”

“그건 이제 골라봐야지. 비서실에 이사 갈만한 곳을 알아보라고 일러뒀어.”

“그럼 좀 넓은 아파트로 이사 가.”


류아라가 당당하게 요구했다.


“한 40평으로. 나도 사생활을 보장 받고 싶어.”


류아라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류지호가 류민상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버지도 이제 직장을 그만 두셨으면 해요.”

“정년퇴임이 몇 년 안 남았다.”

“사람들이 아버지가 그 회사 사장인 줄 알 걸요? 출퇴근하실 때 경호원들이 붙을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내가 운전면허를 따면 되지 않겠냐?”

“운전면허 따시는 건 찬성해요.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걸 아버지도 아시잖아요.”

“아빠는 정년퇴임 후의 인생 준비가 아직 덜 되었어.”

“전에 제게 말씀하셨던 걸 시작해 보세요.”

“자선사업 말이냐?”

“자선재단을 설립해서 어중이떠중이는 걸러내고, 진짜 도움이 필요한 곳에 아버지가 직접 도움을 주는 일을 해보세요.”

“아들... 내가 그런 걸 할 수 있다고 보냐? 객관적으로?”

“그럼요. 돈 버는 것도 아니고, 쓰는 거잖아요. 그것도 명품 옷 사고, 시계 사고, 구두 사고, 고급세단 사는 것처럼 아버지가 잘 못하시는 일도 아니고, 아버지가 제일 잘하시는 남 퍼주는 일이잖아요. 매년 수재의연금 내시고, 달동네에 연탄 사주시는 것처럼. 그렇게 하시면 되죠. 금액만 조금 커질 뿐. 평소 아버지가 하셨던 것들이에요.”

“기왕에 한다면 윌리엄 어르신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조금은 규모가 커야 남 보기에도 좋지 않겠냐?”

“개인이 거액을 기부하는 것과 재단을 설립해 운영하는 건 달라요. 재단의 이사장이 되시면 경영을 하셔야 해요. 인원을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하고, 재단의 목적과 목표도 세우셔야 하고, 자선사업 분야의 전문가들을 직접 부리셔야 하는 거라고요. 명예직으로 계시겠다면 상관없지만요.”


류민상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렇다고 걱정하실 건 없어요. 처음부터 몇 십억 규모의 재단을 운영하실 순 없고. 1~2억 정도 작은 규모로 시작하시면 될 것 같네요. 신효정 변호사가 아버지를 보좌할 사람을 소개시켜 줄 거고, 가온GP에서 자선재단 자금을 굴려 줄 거고, 나래안전시스템에서 아버지가 돕고자 하는 부분에 대해 조사해서 알려줄 거예요.”


류지호는 ‘어때요 쉽죠’라는 말은 생략했다.

대신 좀 더 구체적이고, 실무적인 부분을 언급했다.


“제가 미국에서 총액 1,500만 달러 규모의 교육장학재단에 돈을 댔어요. 내년에 어머니와 LA로 오셔서 그곳을 견학 해보세요.”


심영숙이 물었다.


“1,500만 달러면 우리나라 돈으로 얼마니?”

“오늘자 환율은 정확히 모르지만, 대충 120억 정도 할 걸요.”


온 가족이 멍한 표정으로 류지호를 쳐다봤다.


“......!”


아들이자, 형이자, 오빠인 류지호가 대한민국에서 땅값이 제일 비싸다는 명동의 빌딩 몇 채를 살 수 있는 돈을 기부했단다.

류지호가 부자인 것을 모르지 않는 가족들이다.

솔직히 지금까지 현실감이 별로 없긴 했다.

류지호 본인도 재산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 모른다.

한국과 미국의 사업 모두가 비상장기업이고, 주요 재산이 주식가치라서 그때그때 변동성이 있기도 하고.

본인도 감이 오지 않는데, 가족은 더더욱 알 리가 없다.


“이참에 서울로 옮기시는 것도 고려해 보세요. 순호는 내년에 군대 갈 예정이고, 아라는 고등학교에 올라가요. 아버지 직장과 어머니 친구분들이 인천에 계시는 걸 빼고는 서울로 이사 가는 것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네요.”


류아라가 대번에 반대를 하고 나섰다.


“큰오빠! 난 서울 가기 싫어. 친구들하고 헤어지기 싫단 말이야.”

“아라가 고등학교에 가면 어차피 친구들하고 헤어지게 될 텐데?”

“같은 학교 갈지도 모르잖아.”

“학교가 달라지면 어차피 주말하고 휴일에만 친구들을 만나게 돼. 서울로 이사 가도 아라가 인천에 친구들 만나러 내려와도 되고,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도 되지 않을까?”

“아무튼 난 반대!”


류아라가 더는 듣고 싶지 않다는 듯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형, 난 찬성.”


류순호의 허리까지 늘어뜨렸던 머리카락이 어깨 어림으로 줄어들어 있다.

대신 검은색 가죽바지와 메탈리카 티셔츠로 자신이 락커임을 어필하고 있다.


“서울하고 인천하고 멀지도 않고, 제대하면 형이 차 사줄게.”

“제대하면 미국으로 음악 공부하러 갈 거야.”

“그럼 미국에서 사 줄게. 운전면허나 따 놔.”

“형은 미국에서 무슨 차 타는데?”

“지금 그게 중요하냐?”

“그럼 뭐가 중요한데?”

“아버지 직장문제부터 이사 가는 중차대한 문제까지....”

“어차피 형 말대로 다 될걸?”

“......?”

“장남 말이라면 껌벅 죽는 아빠엄마야. 형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지 뭐.”


류지호가 고개를 돌려 부모님을 돌아봤다.


“엄마는 친구도 많지 않고, 친목계는 한 달에 한 번 하니까, 그때마다 인천 내려오면 돼.”

“나도 가까운 시일 안에 회사에 사직서 내마.”


부모님 두 분이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이 결정을 내버렸다.


“거 봐 내 말이 맞지?”


설득할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줄 알았다.

여동생만 설득하면 사생활이 보호되는 지역으로 이사하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아버지는 올해 휴가 다 쓰셨어요?”

“어차피 사직할 텐데 휴가가 대수겠냐?”

“다음 주에 두 분은 저 대신 비서실 직원들하고 이사 갈 집들 돌아보세요.”

“넌 같이 안 가니?”

“두 분이 마음에 드는 집으로 결정하시면 되요. 저는 한국 들어온 김에 업무 좀 봐야할 것 같네요.”

“그래도 네 마음에 들어야....”

“두 분이 사실 집이에요. 어차피 다 큰 자식들. 두 분이 지내시는데 불편함 없는 집으로 골라보세요.”


심영숙이 갑자기 류지호의 볼을 꼬집었다.


“아얏! 어머니!”


류지호의 볼이 쭉 늘어났다.


“혹시 내 아들 가죽을 뒤집어 쓴 요물인가 해서.”

“아무리 자주 뵙지 못한다고 해도 아들을 의심해요? 섭섭해요.”

“내 뱃속에서 어쩜 이리 잘 난 아들이 나왔는지 몰라.”

“흠! 씨가 좋아서 그래.”


그 말을 남겨두고 슬그머니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류민상이다.


“엄마, 나는?”

“넌 그 머리나 좀 어떻게 해. 머리 꼴이 그게 뭐야! 이젠 기집애처럼 파마까지 하고 다녀?”

“어머니, 원래 우리 형제 반곱슬입니다요.”


심영숙과 류순호가 별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며 티격태격했다.

그렇게 이사 가는 중요하다면 중요한 일이 얼렁뚱땅 결정되었다.


✻ ✻ ✻


다음날부터 류민상 부부는 인천, 서울, 일산, 분당의 아파트와 주택을 구경하고 다녔다.

그 중에는 고급주택도 다수 포함됐다.

전통적인 1세대 부촌이자 드라마에 많이 나오는 동네인 평창동의 집들을 돌아보고, 조선시대부터 이어져오는 전통의 부촌이자 재벌총수들이 많이 살고 있는 성북동을 구경했다.

그 외에도 새롭게 부상하는 부촌인 강남 주변과 청담, 이태원을 둘러봤다.

류민상이 부동산 중개업자에게 물었다.


“너무 비싼 동네만 구경하는 거 아닙니까?”


중개업자 대신 비서실 직원 최영미가 대답했다.

그녀는 이사회 의장인 류지호의 의전을 책임지고, 가족까지 챙기는 업무를 맡고 있다.


“의장님께서 가격 상관없이 매물로 나온 고급 주택은 모두 보여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그랬습니까?”

“20억까지는 모두 보시게 해드리란 지시가 있었습니다.”

“2, 20억이요? 연수동 아파트 팔아도 한참 모자란데.”

“모자라면 대출을 받으실 수도 있습니다. 두 분께서 부동산 가격 때문에 망설이신다면 이렇게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군대에 있는 동안 배당을 한 번도 받지 않아서, 웬만한 고급 주택 두 채는 살 수 있는 돈이 쌓여있다고 말입니다.”


부부가 서로를 쳐다보며 헛바람을 내뱉었다.


“마지막으로 한남동 유엔빌리지로 안내하겠습니다.”


1970년대까지 주로 외국인들이 거주하던 한남동 유엔빌리지는 90년대 오성, 금성 가문이 들어오면서 경성가문 출신들이 둥지를 튼 성북동과 부촌 라이벌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재벌로만 한정했을 때 성북동 부촌엔 재벌 1세대가, 한남동에는 재벌 2,3세대가 둥지를 틀게 된다.

한강변을 따라 건축된 아파트들이 본격적으로 재개발되기 직전이라, 이 당시에는 150평 이상의 고급 빌라가 드물었다.

대신 외국인들이 거주하던 정원이 딸린 주택들이 몇 채 매물로 나와 있다.

주택을 구경시켜주는 부동산 중개업자가 부부에게 설명했다.


“한남동은 한강의 ‘한’자와 남산의 ‘남’자를 떠서 붙인 동네 이름입니다. 보시다시피 남산을 배산으로 하고 한강을 임수로 하는 전형적인 명당입니다. 강남과 사대문 안으로 교통입지 좋고 풍수지리까지 좋아 많은 분들이 선호하는 동네입니다.”


심영숙이 반색해서 물었다.


“풍수지리가 그렇게 좋아요?”

“거북이 물을 마시는 모양이라 재물운과 후손운이 가득하다는 ‘영구음수’의 형상입니다. 그리고 재벌들과 외교관, 대기업 임원들, 외국계 기업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어 경호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습니다.”


심영숙이 류민상에게 바짝 붙어서 속삭였다.


“이런 집들은 다 풀장까지 있는 줄 알았는데, 그냥 마당만 넓네요.”

“세금 때문이겠지. 호화주택으로 분류가 되어서 세금이 상당히 셀 걸?”


최영미 비서가 부부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수영장이 있는 고급주택이 서울에도 꽤 있습니다. 수영장 딸린 주택으로 알아보라고 할까요?”

“아니에요! 그냥 궁금해서 그랬어요. 신경 쓰지 마세요.”

“마음에 드시는 집은 없으십니까?”

“집들은 다 마음에 들어요. 근데... 너무 비싸니까.”

“제가 감히 몇 말씀 드려도 될까요?”


부부는 영문을 몰라 멀뚱히 최영미를 쳐다만 봤다.

승낙으로 알아들은 최영미가 입을 열었다.


“오성그룹은 두 분께서도 잘 아실 겁니다. 오성그룹의 회장님이 한남동에 살고 계시고, 풍수지리전문가들이 최고의 명당이라고 일컫는 승지원이란 영빈관도 바로 이 지역에 있습니다. 북한산에서 서남진한 강한 용맥은 남대문을 거쳐 남산으로 이어지는데, 이 혈이 강하게 흐르며 응집되는 장소가 바로 승지원 자리라고 합니다.”

“.....아!”


부동산 시세 전망, 편의시설, 교통편 다 필요 없다고 했다.

류지호는 비서에게 풍수지리적인 측면을 설명하면 부모님들이 넘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아까 부동산중개사가 잠시 설명했지만, 이곳 한남동 일대는 기가 순한 곳이라서 사람이 대를 이어 살 만한 터로 유명합니다. 한강은 멀리 태백산물이 흘러 내려온 것으로 중량천을 만난 후 ‘금성수’라는 물이 되어 한남동을 둥글게 감싸는 형국이라서 비록 최고 명당으로 치는 승지원 자리보다는 못하지만 이 일대가 모두 다소 작지만 맥들이 응집된 터가 많고 그 맥을 금성수가 부드럽게 감싸고 있어서 최고의 터로 칭합니다.”


부부의 눈동자가 초롱초롱 빛났다.

류지호의 말대로 풍수지리상 최고의 터라고 하자 욕심이 동한 것이다.


“이 지역에는 재벌들이나 높으신 분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데, 성북동과 달리 박통 시절에 주로 성장한 부자들이 많이 모여 삽니다. 제가 대학때 들은 이야기로는 군 엘리트들이 육군본부가 있는 용산을 중심으로 모여 살았고, 권력의 곁에는 돈이 머무른 이치에 따라서 그들의 이웃이 되기 위해 재벌들이 하나 둘 모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강북과 강남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기도 하고, 주요 공관과 외국 대사관 등이 밀집해 있어 안전이 다른 지역보다 뛰어나다는 점도 메리트입니다. 이 지역이 부촌이기 전에 사실 외교 일번지입니다. 외교통상부 장관 공관과 함께 대략 20~30개 국가의 대사관이나 영사관이 위치해 있어서 글로벌 영화 사업을 전개하시고 있는 의장님이 외국 대사나 영사들과 사교의 기회를 갖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들 담도 높고 성처럼 쌓아놓고 지내는데 이웃과 친해질 수가 있겠어요?”

“일반인들처럼 아무 때나 초대하고 만나고 할 순 없을 겁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심영숙이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일들을 사전에 알아보고 처리하라고 저희가 있는 겁니다. 사모님.”

“......?”

“아주 사적이고 즉흥적인 모임이 아닌 이상 의장님의 홈파티는 저희들이 사전에 준비를 하게 됩니다. 초청대상부터 일정, 음식까지 전부 준비해서 의장님께 컨펌을 받고 진행하죠.”

“집사도 아니고 비서가 집안일까지......”

“때론 저녁식사마저 의장님껜 업무의 연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휴~ 밥 먹고 술 마시는 것까지 일이라니.....”


생각에 잠겨 있던 류민상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우리가 이곳으로 이사를 오게 되면 큰애가 이 동네 부자나 외국 사람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단 말이지요?”

“예.”

“최 비서, 미안한데..... 아까 두 번째 본 주택하고.... 시간만 괜찮으면 성북동에서 첫 번째 본 집 다시 한 번 봅시다.”


류민상은 너무 부촌이라 꺼려지는 것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풍수지리적으로 매우 좋다는 점이 솔깃했다.

게다가 장남의 사업에도 좋은 점이 많다고 하니 꺼려지는 마음이 완전히 사라졌다.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5

  • 작성자
    Personacon 霧梟
    작성일
    22.07.14 09:43
    No. 1

    흐지부지 결정되었다는 뭔가 표현이 어색하네요. 결정이 꼭 명확하다는 뜻은 아니지만 흐지부지는 보통 뭔가 끝맺음이 확실하지 않을 때 쓰니.

    찬성: 2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3 트뤼포
    작성일
    22.07.15 17:19
    No. 2

    수정/보완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용갈장군
    작성일
    22.07.14 09:49
    No. 3

    부모는 자식이 잘 되기 위한다고 하면 지옥에서라도 살수 있지요

    찬성: 4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유시어
    작성일
    22.07.14 09:53
    No. 4

    100년 전만 해도 일대 전체가 묘지였던 곳이 한남동이죠
    그런 곳에 최고의 부촌이 들어섰으니 아이러니

    찬성: 3 | 반대: 0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2.07.14 16:03
    No. 5

    잘 봤어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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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 Collapse. (6) +6 22.08.08 5,232 161 24쪽
243 Collapse. (5) +4 22.08.06 5,293 158 25쪽
242 Collapse. (4) +6 22.08.05 5,250 167 22쪽
241 Collapse. (3) +10 22.08.04 5,276 163 27쪽
240 Collapse. (2) +9 22.08.04 5,065 144 23쪽
239 Collapse. (1) +7 22.08.03 5,412 165 23쪽
238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개놈이라니까! (5) +8 22.08.02 5,255 169 22쪽
237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개놈이라니까! (4) +6 22.08.01 5,315 163 22쪽
236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개놈이라니까! (3) +7 22.07.30 5,423 156 24쪽
235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개놈이라니까! (2) +2 22.07.29 5,331 160 24쪽
234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개놈이라니까! (1) +5 22.07.28 5,531 148 26쪽
233 대박 축하한다! (2) +5 22.07.27 5,693 152 24쪽
232 대박 축하한다! (1) +10 22.07.26 5,612 156 21쪽
231 OK할 때까지..... +7 22.07.25 5,417 151 25쪽
230 배고픈 놈이 이긴다. (4) +14 22.07.23 5,485 168 26쪽
229 배고픈 놈이 이긴다. (3) +9 22.07.23 5,165 135 21쪽
228 배고픈 놈이 이긴다. (2) +7 22.07.22 5,388 158 22쪽
227 배고픈 놈이 이긴다. (1) +10 22.07.21 5,548 166 26쪽
226 후회가 남지 않게! (3) +4 22.07.20 5,552 162 28쪽
225 후회가 남지 않게! (2) +10 22.07.19 5,646 151 27쪽
224 후회가 남지 않게! (1) +7 22.07.18 5,721 162 26쪽
223 나만 잘 먹고 잘 살려는 게 아닙니다. (3) +4 22.07.16 5,773 155 22쪽
222 나만 잘 먹고 잘 살려는 게 아닙니다. (2) +6 22.07.15 5,607 159 22쪽
» 나만 잘 먹고 잘 살려는 게 아닙니다. (1) +5 22.07.14 5,567 171 21쪽
220 예전의 내가 아닙니다. (3) +5 22.07.13 5,771 170 28쪽
219 예전의 내가 아닙니다. (2) +4 22.07.12 5,705 167 27쪽
218 예전의 내가 아닙니다. (1) +2 22.07.11 5,841 160 23쪽
217 우리 실력을 제대로 보여드리죠! (4) +4 22.07.09 5,831 144 24쪽
216 우리 실력을 제대로 보여드리죠! (3) +4 22.07.08 5,773 164 23쪽
215 우리 실력을 제대로 보여드리죠! (2) +6 22.07.07 5,837 169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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