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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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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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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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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2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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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6쪽

배고픈 놈이 이긴다.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흥행의 귀재로 불리는 스티븐 아들러 감독이 6,500만 달러를 들여 만든 <쥬라기공원>이 9억1천만 달러의 흥행수입을 올렸다. 이는 자동차 150만대를 수출해서 얻는 수익과 맞먹는다.]


작년 한 해 김용삼 대통령이 영화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입버릇처럼 한 말이다.

1993년 한국이 해외에 수출한 자동차는 모두 64만대 정도.

<쥬라기공원>의 박스오피스 수입은 한국이 2년간 자동차를 수출해서 벌어들인 액수를 훨씬 능가하는 결과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보고서와 이를 인용해서 자주 영화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통령 때문만은 아니지만, 이미 한국의 재벌들은 영상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인식하고 있었다.

오성, 금성, 대유 가전 3사는 이미 80년대부터 VCR 시장을 받쳐줄 콘텐츠 시장에 눈독을 들였고, VCR을 더 많이 팔아먹기 위한 볼거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90년대 비디오 보급률이 대폭 증가하면서 외국 영화만으로는 프로그램 조달이 힘들어졌다.

이에 한국 영화 제작에 직접 투자하기 시작했다.

이는 세계적인 전자기업인 소닉과 판토소닉이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를 인수한 것과 그 맥을 같이 한다.

다만 소닉과 판토소닉은 5조원에 달하는 인수금액을 감당할 수 있었고, 국내 가전 3사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 달랐다.

오성그룹은 오라이언 픽처스의 인수를 내부적으로 검토하다가 포기한 전적이 있다.

그 이후로도 꾸준히 할리우드 스튜디오 인수를 타진했다.

오성그룹 회장은 일본유학 시절 일본말이 서툴러 친구를 제대로 사귀지 못하고 혼자 영화 보는 것으로 시간을 때웠다고 한다.

그 시절 이 회장이 본 영화가 무려 1,300편이 넘는다고 한다.

그런 오성그룹 회장에게 미국 연예계 거물들이 설립한 DreamFactory의 지분참여 개방은 절호의 기회였다.


“최대 3억 달러. 그 이상은 곤란합니다.”


DreamFactory 창업자 삼인방은 외부로부터 지분 투자를 받지만, 자신들의 경영권을 유지하고 싶었다.


“PS는 5억 달러를 투자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우리에겐 왜 3억 달러입니까?”

“그들과는 투자 외에도 서로 협력할 사업 분야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업 분야라면? 혹시 컴퓨터 게임 분야에서 협력하기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로렌스 게펀(Lawrence Geffen)은 특별히 비밀도 아니기 때문에 선선히 대답해줬다.

외부로 자꾸 떠들어 알려져야 하는 사안이다.

DreamFactory가 무섭게 성장하는 파인소프트와 함께 게임개발에 나선다는 사실은 홍보효과와 함께 지분을 투자하려는 이들에게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니까.


“단독 투자 조건은 수용할 수도 없고, 애초에 고려사항이 아닙니다.”


또 다른 창립멤버인 스티븐 아들러의 말에 이 회장이 즉각 반응했다.


“내가 10억 달러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럽니까? 작년 우리 그룹 계열사 오성전자 매출이 얼마인 줄 압니까? 100억 달러입니다. 물론 소닉에 비해 아직 손색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소닉은 메모리반도체를 만들지 못하지만 우린 만들 수 있지요.”

“그런 의심은 없습니다.”


지분 투자 협상을 위해 갖게 된 저녁식사 자리에서 오성그룹 이 회장은 온통 ‘반도체’ 이야기만 했다.

가장 감명 깊게 봤다는 <벤허> 이야기도 했지만.

스티븐 아들러 감독은 이 회장의 ‘반도체‘ 집착에 질려버렸다.


“그렇다면 왜.....?”

“반도체 공룡이 받쳐주는 거대한 우산은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오성그룹과 DreamFactory의 협상은 이 회장과의 만찬까지 포함해 세 번에 걸쳐 진행됐다.

결국 협상은 결렬됐다.


“오성이면 한국의 대표적인 대기업인데, 왜 그들의 투자를 거절했어요?”


류지호가 스티븐 아들러에게 물었다.

그는 모리스 메타보이와 함께 유니벌스 스튜디오 단지 내에 있는 E.T Entertainment에 와 있다.

두 회사 간의 영화와 TV시리즈 계약 때문이다.


“9천 파운드짜리 고릴라 한 마리 보다, 3천 파운드짜리 고릴라 세 마리와 있는 편이 더 좋으니까.”

“이해했어요. 콜롬비아스가 소닉에 인수되고 얼마 안 가서 주요 임원진들을 소닉 본사 직원들로 채웠다고 하더라고요. 한 동안 그들의 영화는 시시해질 것 같아요.”


제프 가젠버그(Jeff Gazenberg)가 입을 열었다.

그는 디즈니에서 <알라딘>, <라이온 킹> 등 다수의 애니메이션을 만든 뛰어난 애니메이션 프로듀서이자 감독이다.


“과거 역사 때문에 일본 기업을 미워하는 건가?”

“그것과는 별개의 문제죠.”


한국과 일본의 과거사에 대해 아는 미국인을 오랜만에 만난 류지호다.

일본은 수십 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 엄청난 돈을 들여 국가 이미지 세탁을 잘 했다.

잃어버린 10년을 맞이하기 전까지 세계 2위 경제대국이었기 때문에 남아도는 달러를 뿌려대며 자국에 대한 호감도와 문화에 대한 포장에 힘을 기울였다.

일본에 대해 비난하고 적대적인 민족이나 국가는 한국과 중국밖에 없을 정도로 이미지 세탁을 아주 잘 했다.


“영화 사업만 놓고 봤을 때, 소닉에서 콜롬비아스를 그대로 내버려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기업 경영이나 신기술 개발에서 뛰어날지 몰라도 영화 비즈니스까지 잘 알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아들러와 가젠버그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반응에 힘을 얻은 류지호가 말을 이었다.


“아마 한동안 무분별한 투자로 함량 미달의 작품을 양산할 것 같네요. 물론 콜롬비아스 인하우스 영화가 모회사 소닉의 제품광고 수단이 되기도 할 것 같고.”


실제 소닉-콜롬비아스는 95~96년 박스오피스 10위권 영화를 단 한편도 랭크시키지 못한다.

97년에 가서야 간신히 <에어포스 원> 한 편을 올리게 된다.

90년대 내내 소닉 본사의 간섭으로 콜롬비아스 실적이 좋지 못하다가, 90년대 말에 가서야 본사의 간섭에서 자유로워지면서 겨우 과거 실적을 회복한다.

이전 삶에서 이야기다.

류지호가 소닉-콜롬비아스의 알짜 영화를 가로챘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럴 것이란 보장이 없다.

특히나 캐롤코 픽처스를 인수하면서 <스파이더맨> 프랜차이즈 저작권을 가로챘기 때문에 소닉-콜롬비아스의 2000년대가 그렇게 밝아 보이지 않았다.


“한국의 백설제당그룹과는 언제 미팅하기로 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

“다음 주에 후계자들이 협상팀과 함께 미국으로 오기로 했어.”


모리스 메타보이가 또 시비를 걸었다.


“신경 쓰여?”

“제가 왜 요?”

“같은 한국인이고, 자네와 경쟁자 아닌가?”


류지호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전문경영인이 알아서 해야겠죠.”


스티븐 아들러가 호기심이 물든 눈으로 물었다.


“영화선택 권리라는 게 있다면서?”

“1년에 다섯 편이요. 트라이-스텔라 투자배급 영화가 년간 20편을 훌쩍 넘기는 순간부터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는 않아요. 덕분에 메타보이 회장께서 마음대로 영화사를 운영하고 있죠. 매출보다는 오스카에만 꽂혀 있어서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에요.”


킥킥.


모두가 웃거나 말거나.

류지호가 그 기세를 빌어 삼인방에게 부탁을 전했다.


“혹시 DreamFactory가 제작하는 애니메이션에 Hues & Rhythm을 참여시켜 줄 수 있어요?”


제프 가젠버그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공동제작을 제안하는 건가?”

“그래주면 감사하지만.... 하청이라도 따보려고 염치불구하고 말을 꺼내봤어요.”

“애니메이션도 제작하려고?”

“인력보강을 좀 했어요. 그들에게 일감을 주고 트레이닝도 시키려고요.”


제프 가젠버그는 즉답을 피했다.


“...글쎄.”


사실 류지호처럼 단도직입적으로 일감을 청탁하는 경우는 없다.

그것도 할리우드 파워랭크에서 100위 안에 너끈히 들어가는 인물이.

프로젝트의 공동개발이나 투자라면 몰라도.


“암튼 Hues & Rhythm와의 협력에 대해서도 고려해 주세요.”

“실무진에게 말은 해 놓겠네.”


류지호는 이 정도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이 기술력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류지호는 ‘애니메이션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불리는 제프 가젠버그와의 작업을 통해 Hues & Rhythm Studios가 3D 애니메이션의 가능성에 주목하길 바랐다.

사실 류지호는 DreamFactory 창업자 삼인방과 맞상대할 위치가 아니다.

준메이저 스튜디오를 소유한 JHO Company의 오너라고 할지라도.

그럴 정도로 삼인방은 미국 연예계의 거물 중에 거물들이다.

로렌스 게펀을 제외하고 스티븐 아들러와 제프 가젠버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전부터 류지호에 대해 관심이 매우 많았다.

매해 단 다섯 편의 영화를 선택해서 그린라이트를 켜는데, 지금까지 그 영화들이 모두 성공했다.

도박업에 비유되기까지 하는 할리우드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그 정도 성공 확률은 야구의 투수로 치면 최소한 ‘노히트 노런’이다.

‘영화 신동‘이라고 불릴 정도로 십대 시절부터 단편영화로 두각을 나타냈으니 흥행의 귀재라고 불리는 스티븐 아들러가 관심을 안 가지는 것이 이상했다.

제프 가젠버그는 LOG 컴퍼니에서 애니메이션 사업을 총괄할 때 ParaMax를 인수합병 해야 한다고 이사회에 줄기차게 주장했던 인물이다.

LOG가 제프 가젠버그의 주장대로 ParaMax 인수를 위해 움직일 때는 이미 류지호의 수중에 들어가고 난 후였다.

엉망진창인 캐롤코와 오라이언을 사들였을 때는 업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웃었다.

반면에 제프 가젠버그의 생각은 달랐다.

비록 부담되는 부채를 떠안게 되었지만, 단숨에 수백 편의 필름 라이브러리를 확보함으로써 트라이-스텔라가 메이저 스튜디오로 나아가는 발판을 마련한 것은 칭찬 받아 마땅했다.

LOG의 아이즈너 회장과 사이가 틀어져 삶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시간들을 보냈던 LOG를 떠나게 되었지만, 만약 아이즈너의 농간이 없이 자신이 예정대로 LOG의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가 되었다면 ‘영화신동‘라 불리는 류지호와 꽤나 재밌는 경쟁을 벌이고 있을지도 몰랐다.


“서로 바쁜 사람들끼리 이렇듯 대화를 나누다보면 끝이 없겠어.”


모리스 메타보이가 적당한 시점에서 대화를 끊었다.


“스티비, 이제 계약서에 서명할 시간이야.”


할리우드에서 스티븐 아들러를 애칭 ‘스티비’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한때 유니벌스 스튜디오에 몸 담았고, 미니 메이저의 최고경영자였으며 유대인 커뮤니티의 일원인 모리스 메타보이의 인맥의 단면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잠시 후.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 법률팀과 E.T Entertainment의 카렌 케네디 사장과 고문 변호사 입회하에 영화 투자·배급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고 보면 나도 참 용 됐어.’


상대하는 이들이 가운데 평범한 이가 없다.

E.T Entertainment의 사장이자 프로듀서 카렌 케네디(Karen Kennedy)는 할리우드에서 손에 꼽히는 여걸 프로듀서다.

류지호에게 <스타워즈> 프랜차이즈를 회복 불능으로 망가뜨린 주범으로 기억되지만, 현재는 흥행파워를 보이고 있는 할리우드 대표 프로듀서 중에 한 명이다.

스티븐 아들러나 제프 가젠버그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것도 믿겨지지 않지만, 카렌 케네디 같은 이들과 인연을 맺을 때가 더욱 비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류지호다.

암튼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는 E.T Entertainment 및 스티븐 아들러와 <맨 인 블랙>, <마스크 오브 조로>, <라이언 일병 구하기> 세 편의 영화에서 투자·공동제작·배급 계약을 체결했다.

JHO Pictures와는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TV시리즈 투자·공동제작 계약을 체결했다.

스티븐 아들러가 탐을 내고 있는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영화·TV 판권을 류지호가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E.T Entertainment의 파트너는 유니벌스 스튜디오다.

이번 계약에 대해서 유니벌스는 크게 아쉬울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E.T Entertainment와는 기존 <쥬라기공원> 프랜차이즈와 재난블록버스터 <트위스터> 투자·배급 계약을 이미 맺어두고 있었으니까.


“그린라이트는 자네가 켰나?”

“네.”


영화선택 권리를 사용하진 않았다.

트라이-스텔라 임원들이 선택한 것에 류지호가 동의를 한 것 뿐.

스티븐 아들러가 풍성하게 기른 수염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그렇단 말이지?”

“혹시.... 레온이 떠들고 다니는 부적 이야기를 믿는 것은 아니죠?”

“사람들이 간혹 간과하는 게 있어.”

“......?”

“나라고 모든 영화가 성공하는 건 아니야.”

“이미 계약된 영화들에 집중하세요.”

“......?”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권리는 10년짜리니까요.”


스티븐 아들러는 이미 <쥬라기공원Ⅱ>와 <아미스타드>의 연출계약이 되어 있다.

이번에 계약한 <맨 인 블랙>과 <마스크 오브 조로>는 프로듀서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그러니 성급하게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 덤비지 말라는 말이다.

계약을 마무리한 모리스 메타보이가 아쉽다는 듯 말했다.


“식사라도 해야 하는데, 다들 바쁜 사람들이라 그것도 쉽지 않군.”


류지호가 E.T Entertainment를 나서며 말했다.


“다음에 시간 좀 내주세요. 제가 근사한 저녁 대접할게요.”


스티븐 아들러가 악동같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가까운 시일 안에 보게 될 걸.”

“예?”


스티븐 아들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일 뿐.

다 이상의 말은 삼갔다.


‘이 양반 상당히 장난기가 심한 걸로 유명한데.....’


스티븐 아들러는 친한 사람들에게 상당히 짓궂은 장난을 많이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절친한 사이인 루카스, 스콜체제, 코폴라 감독 등이 주로 그의 장난에 많이 당했다.

류지호의 찜찜함은 일주일 후에 정체를 드러냈다.


✻ ❉ ❉


백설제당의 DreamFactory 투자협상단이 LA에 입성했다.

젊은 부사장 이문현이 세 명의 실무진으로 단출하게 팀을 꾸려 미국으로 날아왔다.

그들을 여동생 이희경 상무가 맞이했다.

오성그룹 창업자의 장손이지만, 적통을 이어받지 못한 설움, 오성그룹에서 분리돼 나온 뒤부터 본가인 오성그룹과 악연 속에서도 뛰어난 경영 수완을 발휘한 비운의 황태자.

바로 백설제당의 부사장 이문현을 설명하는 말이다.

올해 서른다섯 살의 이문현은 백설제당이 오성그룹에서 계열분리가 확정되자, 주요 임원들에게 선언했다.


“이제는 대중문화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미래입니다.”


백설제당은 창립 이후 40여 년간 설탕과 밀가루를 주로 만들던 기업이다.

대중문화라는 키워드로 사업을 꾸려가겠다고 선언하더니 대뜸 영화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룹 후계자가 하겠다는데 반대가 있을 수 없었다.

DreamFactory 삼인방과 만나기 전까지 백설제당 협상팀은 호텔에 틀어박혔다.

꼼짝도 하지 않고 협상 전략에 고심했다.


“우리는 이 투자를 반드시 성공해야 합니다. 일반적인 협상전략 말고 다른 건 없습니까?”


이문현, 이희경 남매에게 이번 투자는 백설제당이 아시아의 할리우드로 도약하겠다는 야심찬 포부의 첫발이자, 명운을 건 전략적 승부수다.


“과연 자사 매출의 2할 이상을 쏟아 부을 가치가 있겠습니까?”


95년 현재 백설제당의 매출 규모는 1조 5천억 수준이다.

매출의 무려 20% 이상을 들여 DreamFactory와 사업동맹을 맺는 것은 일견 무모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이희경 상무가 오빠의 말을 거들었다.

그녀는 올해 30살로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학업을 마친 이중국적자다.

미국에서 오래 살아서인 마인드가 서구적이다.


“오성이라는 그늘에서 벗어나 홀로 서야 해요. 게다가 우린 홈쇼핑 채널을 오픈했어요. 홈쇼핑에서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불어넣었고, 향후 진출하게 될 극장 사업 분야에서도 다양한 문화 콘텐츠가 뛰어노는 놀이터로 재해석해야 하죠. 식품 부문에도 문화를 덧입혀 식문화 콘텐츠로 빗어내야 하고.”


다시 이문현이 말을 받았다.


“미키(이희경) 상무의 말처럼 우리 회사는 향후 먹고, 입고, 보고, 즐기는 일상에 가장 깊숙이 들어와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전 방위적으로 다루는 세계적으로 드문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춘 기업이 될 겁니다.”


열변을 토하는 이문현으로 인해 다소 분위기가 무겁고 진지해졌다.

이희경 상무가 쾌활한 목소리로 무거운 분위기를 풀었다.


“우리 자본과 역량으로 메인스트림으로 불리는 영미권 문화 패러다임에 견줄 문화상품을 만들어내려면 경쟁력 있는 플랫폼과 시스템을 갖추는 일이 필수적이에요. 단순히 할리우드 기업에 투자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뛰어난 스승을 모신다는 자세로 임해 봐요.”

“예. 상무님!”


백설제당 협상실무팀은 DreamFactory 삼인방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짜냈다.

그렇게 호텔에 틀어박혀 전략을 고심하는 사이 5일이란 시간이 쏜살같이 흘렀다.


❉ ❉ ❉


류지호는 일주일 만에 다시 유니벌스 스튜디오를 찾았다.

단지 내 헤드쿼터 섹션의 E.T Entertainment 사무실을 방문했다.

꼭 와달라는 말을 듣고 다시 방문하긴 했는데, 무엇을 논의하는 자리인지는 몰랐다.


“디렉터 아들러와 미팅이 있습니다.”

“지금 사운드 스테이지에 가 있어요.”


직원의 말에 류지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작 중인 영화가 있다는 말 못 들었는데.....”

“손님들에게 스튜디오 견학을 시켜주고 계십니다.”

“손님?”

“코리아에서 온 손님들입니다.”


백설제당 협상단이 방문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류지호를 이 시간에 부를 이유가 없다.

류지호는 이대로 돌아갈까 잠시 고민했다.


“미스터 류를 스테이지로 안내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류지호는 영문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직원의 안내를 순순히 따랐다.

유니벌스 스튜디오 단지에는 스티븐 아들러 전용 사운드 스테이지가 따로 있다.

스티븐 아들러가 연출하는 영화의 세트 촬영은 거의 이곳에서 촬영된다.

상당한 규모의 스테이지 안에는 선객들이 있었다.

바로 백설제당 투자협상단 사람들이다.

최고 수뇌부인 남매는 물론이고 협상단 전체가 넥타이나 정장 같은 격식을 갖춘 차림이 아니다.

청바지에 티셔츠, 운동화 차림이다.

오성그룹, 경일자동차그룹 투자협상팀과는 전혀 다른 접근이다.

류지호는 남의 밥상머리에 엉덩이를 걸치는 것 같아 돌아가려고 했다.

그때.


“헤이 Jay!”


스티븐 아들러가 입구 쪽에서 서있는 류지호를 발견했다.

몇 번 봤다고 친한 척인지.

스티븐 아들러가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했다.

류지호는 잠시 망설였다.

할리우드에서 닳고 닳은 스티븐 아들러가 자신을 이 타이밍에 부른 이유를 짐작해 봤다.


피식.


류지호가 걸음을 옮겼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미래의 경쟁자들과 안면이나 트자는 생각으로.


“안녕하세요!”


류지호가 짐짓 활기차게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게.”

“또 보는 군.”


DreamFactory 삼인방이 류지호를 반겼다.


‘킥. 연기 좀 하네....’


류지호를 열렬하게 환영할 정도로 친분이 깊지 않다.

명백히 의도가 있는 환영이다.

류지호가 백설제당 협상팀을 향해 몸을 돌렸다.


“한국에서 오셨죠?”


이문현 사장이 아리송한 얼굴로 물었다.


“혹시 WaW 픽처스의 류지호 회장.....?”

“회장은 아니고.... 암튼 처음 뵙겠습니다. 류지호라고 합니다.”

“이문현입니다. 백설제당의 부사장으로 있습니다.”


이문현 사장은 살짝 경계하는 투로 악수를 나눴다.

이어- 이희경 상무가 대뜸 류지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유명 인사를 이런 자리에서 보게 되네요. 안녕하세요. 이희경이에요.”

“반갑습니다. 류지호입니다.”


류지호는 이 남매를 아주 잘 알고 있다.

물론 이전 삶에서다.

반면에 이들은 이전 삶이나 현재나 류지호를 전혀 모른다.


“카렌, 손님들의 남은 스튜디오 투어를 부탁해.”


스티븐 아들러가 카렌 케네디 사장에게 백설제당 협상팀을 넘겼다.


“류 감독님, 또 봐요.”


류지호 역시 친절하게 이희경의 인사에 화답했다.


“네. 상무님.”


이문현은 류지호에게 회장이란 호칭을 사용했다.

이희경 상무는 감독이란 호칭을 사용했다.

류지호는 남매의 성격과 스타일의 일면을 본 것 같았다.


‘전남편이 한국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교포였는지는 모르겠네.‘


어쨌든 류지호가 기억하기로 이희경이 오빠보다 영화계에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했었다.

최고의 영향력을 과시 할 만 할 때, 정권에 밉보여 미국으로 쫒기 듯 돌아가야 했다.

얼어 죽기 전까지 경영일선으로 복귀했는지는 류지호가 알 도리가 없다.

다만 류지호가 과거로 돌아오기 전까지 한국 엔터테인먼트 파워랭크 부동의 1위였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나를 이 자리에 부른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류지호가 정색을 했다.

스티븐 아들러를 포함해 친구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같은 한국인이라 인사시켜주려던 것뿐이야.”


그럴 리가 없다.


“나를 들러리 세워서 은근슬쩍 저들을 압박할 생각은 아니었고요?”

“뭐가 어때?”

“세 분께 오늘 무척 실망했습니다.”


오늘 류지호는 이 유대계 할리우드 권력자 삼인방에게 이용당했다.

물론 앞 뒤 충분히 생각하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찾아온 자신의 잘못도 있다.

아마도 스티븐 아들러는 친한 친구에게 한 깜짝 쇼 내지는 장난이라고 치부할 것이다.


“DreamFactory는 유니벌스와 좋은 파트너가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계속.....”


류지호는 다소 강경하게 나갔다.

자신과는 함께 가지 못하겠다는 뉘앙스다.


“최근에 맺은 계약을 엎어버리겠다고?”

“트라이-스텔라와의 계약은 내가 왈가왈부 못하겠지만, <밴드 오브 브라더스>는 다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류지호의 발언에 삼인방이 장난기를 싹 지웠다.


“우린 호의를 가지고 Jay를 초대한 거야.”

“Jay라고 부르지 말아주세요. 친구들이 부르는 애칭입니다.”


당신들은 나의 친구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내가 저들이 와 있다는 걸 말하지 않은 건 사과하지. 하지만 말이야....”


스티븐 아들러가 그가 잠시 말을 끊었다.

류지호의 얼굴이 찌푸려지는 순간.


“나는 반도체를 만든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한국의 재벌과 한 핏줄인 저들이 진정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모르겠어.”

“저 역시 모르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한국인이라고 모든 걸 알겠습니까?”

“나는 말이야. 저들도 Jay 자네 같았으면 좋겠어."

"......"

"영화인을 존중하는 기업가..... 예술을 이해하는 비즈니스맨.“


오성그룹 관계자들은 그러지 못했다는 뜻으로 읽혔다.


“예전에도 할리우드에 투자하는 자본가와 기업인이 있었어. 그럼에도 스튜디오는 영화인의 소유였지. 스튜디오 주인들은 누가 유대인 아니랄까봐 유대인답게 돈 앞에서 탐욕적이긴 했지만, 영화를 좋아했다는 것을 부정할 순 없어. 자신들이 투자하고 제작한 영화를 자랑스러워했거든.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정말 모르겠어. 나는 스튜디오를 사들인 그 사람들이 영화에 대한 애정이 있는지 의심스러워.”

“......”

“내가 친구들과 DreamFactory를 만든 이유를 알아?”

“스튜디오로부터 간섭 받지 않으려고. 그리고.....”


자본권력으로부터 영화적으로 독립하고 싶어서.

스티븐 아들러 같은 대단한 감독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자본에 종속된 비정한 할리우드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아들러씨가 청운의 꿈을 품고 발을 디딘 낭만적인 영화판은 더 이상 없어요. 그 사실은 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있는 저 같은 학생도 압니다.”


그러니 어린애 같은 변명은 늘어놓지 마라.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될 뿐이니까.


“큭큭. Moe가 애늙은이라고 하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군.”

“정정할 것이 있습니다. 나는 돈 좀 있는 영화감독이지. 자본가도 기업가도 아닙니다.”


그 말을 남기고, 류지호가 몸을 돌렸다.


“갈 건가?”

“협상에서 많은 것을 얻길 바랍니다. 오늘 헛걸음하게 만든 부분은 나중에 영화로 갚아주셨으면 합니다. 애니메이션이면 더 좋고.”


스티븐 아들러가 스테이지를 빠져나가는 류지호를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듣던 대로..... 재밌는 녀석이야.”


제프 가젠버그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감히 자신들을 두고 등을 보이며 떠나가다니.

세 사람에게 찍히면 할리우드에서 일하는데 애로사항이 많다.

그럼에도 류지호는 젊잖게 화를 내며 자신들을 꾸짖었다.

좋게 말하면 패기.

있는 그대로 말하면 건방.

그럼에도 세 사람은 류지호의 행동에 화가 나지 않았다.

당연한 거다.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으니까.

할리우드 준메이저 스튜디오를 소유하고 있고, 다수의 흥행작품을 고른 안목이 있으며, 예비영화감독으로 전도유망한데다가, 자수성가해서 최연소 백만장자 반열에 오른 청년이다.

능력과 자격이 있는 사람이 떠는 건방을 ‘오만’이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카리스마 혹은 권위라고 한다.

적어도 DreamFactory 삼인방이 사는 세계에서는.


작가의말

눈치를 못 채신 분은 없으시겠지만, 혹시나 영화업계에 대해 전혀 모르시는 분을 위해 남깁니다. DreamFactory는 드림웍스(DreamWorks SKG), E.T Entertainment는 앰블린 엔터(Amblin Entertainment)입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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