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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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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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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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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1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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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나만 잘 먹고 잘 살려는 게 아닙니다.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부모님이 이사할 집을 구경하고 다니는 동안, 류지호는 최근 개봉한 배창훈 감독의 <젊은 남자>를 관람하기 위해 강남의 동우극장에 왔다.

강은석 감독의 <마누라 죽이기>도 서울극장에서 개봉했다.

그로인해 한국영화 기대작끼리 같은 날 맞붙었다.

류지호는 박건호 대표, 배창훈 감독과 함께 영화를 관람했다.


‘영화사 로고가 이제야 조금 봐줄만 하네.’


WaW 픽처스 로고가 상당히 세련되게 변했다.

Hues & Rhythm Studios를 인수하면서 한국과 미국의 모든 영화사 로고를 새롭게 손 봤는데, 최신 CGI 기술이 많이 들어갔다.

강물을 뚫고 나오며 물방울이 사방으로 비산하는 것이라던가, 하늘로 솟구친 W. A, W 영문 로고라던가, 로고 너머로 보이는 영월군 선암마을의 한반도 지형이라던가, 물방울 기포 모양 등이 더욱 선명해지고 그럴 듯하게 변모했다.

메인 크레디트가 떴다 사라지고 영화가 시작됐다.

학교를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3류 모델 이한.

언젠가는 톱스타가 되어 자신을 비웃는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과시하고 싶은 21살의 청년 이다.

돈 좀 있는 여대생과 쉽게 만나 순간적인 사랑을 나누게 되고, 도발적인 매력을 지닌 여대생은 이한에게 반해 다른 남자의 카드를 훔쳐 위험한 데이트를 즐기며 사랑에 빠진다.

그러다가 부와 미모 그리고 지성을 모두 갖춘 연상의 여자가 이한을 도와주게 되고, 드디어 톱모델의 길을 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게 된다.

하지만 모델에이전시와의 전속계약이라는 올가미가 이한의 길을 가로막는다.

결국 이한은 자신을 쾌락의 수단으로 이용하면서 모멸감을 주었던 매니저를 살해하면서 걷잡을 수 없게 영화는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신희영 분량이 많지 않은데?’


WaW 픽처스 홍보팀은 병원드라마에서 털털한 선머슴 역할로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신희영을 부각시키려고 했다.

관행적으로 봤을 때 당연한 홍보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막상 영화를 보면 그녀의 분량은 그리 많지 않았다.

시나리오대로 배창훈 감독은 철저하게 남자 주인공을 집요하게 묘사했다.

모델 출신의 이민재와 신세대 스타 신희영이 나오는 X-세대를 대변해주는 통통 튀는 청춘 영화.

실제 영화를 본 관객들은 배신감을 느낄 수 있다.

영화의 표피만 보면 잘생기고 허우대 멀쩡한 청년이 얼굴 팔고, 몸 팔고, 이 여자 저 여자 노닥거리다가, 결국 파국을 맞이하는 우울한 영화다.

게다가 고등학생 관람가를 받아놓은 주제에 베드씬 장면에서 이민재의 멋진 뒤태를 보여준다.

그 때문에 정작 타깃인 청소년층으로부터 외면을 받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남자든 여자든.

배우를 잘 못 벗기면 에로영화 느낌을 풍기니까.

때문에 류지호는 주 관객층을 10대가 아닌, 20~30대로 상향 조정할 것을 지시했다.

그에 따라서 욕망에 잡아먹힌 젊은 남자의 파멸과정과 그와 관계를 맺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90년대 초반 세태를 풍자하는 것으로 홍보전략을 전면 수정했다.

오리지널 시나리오는 남자주인공이 네 명의 여자들과 얽혀있는 구성이었다.

유학파 날라리 오렌지족 여성 배역의 분량을 편집에서 많이 날린 듯 보였다.

영화 본편은 이민재를 주축으로 신세대 라이징 스타 신희영을 포함한 30대 40대 여배우들과의 관계에 주목했다.


“류 감독, 어떻게 봤어?”

“고생하셨어요.”


류지호가 특별한 말없이 립서비스 같은 말만 툭 던지자, 배창훈 감독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세 사람은 근처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다.

류지호가 커피에는 손도 대지 않고 물었다.


“상업영화로 생각하시고 작업하신 것 맞죠?”

“그랬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던데요?”

“젊은 관객들이 흥미를 보일 소재와 그런 세태를 담았잖아.”


류지호가 어이가 없어 재차 물었다.


“진심이세요?”

“.....”


배창훈 감독이 대답을 회피했다.

당연했다.

상업영화와 작가영화 사이에서 줄타기 하다가 이도 저도 아닌 영화가 나와 버렸으니까.


“이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은 톱모델 출신의 잘생긴 이민재와 X-세대의 상징 같은 여배우 신희영의 통통 튀는 매력이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킬까 하는 궁금증을 안고 극장에 왔을 거라고 생각해요.”


라이징스타 신희영은 병원드라마의 캐릭터와 함께 두 명의 텔레비전 스타와 찍은 화장품 광고가 대중들에게 가장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다.

그런 신희영의 이미지는 영화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여러 명의 여자 캐릭터 가운데 한 명일 뿐.

심지어 들러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다.

한창 주가를 놀리고 있는 신희영의 인기를 안고 가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도리어 존재감을 희미하게 만들어버리다니.

그저 X-세대 날라리 골빈 여자 연기를 광고 같은 이미지로 연기한 꼴이 되고 말았다.


“사람들이 의아해 할 것 같아요. 라이징스타 신희영이 뭐가 아쉬워서 서브주연도 아닌 조연급으로 나왔는지....”


박건호 대표가 배창훈 감독을 대신 해서 설명했다.


“사정이 조금 있었습니다.”


류지호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되물었다.


“드라마와 겹치기 출연하는 것 때문에요?”

“그것도 큰 문제였지만, 실제 신희영은 이 영화에 별로 출연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드라마 출연과 광고 출연 때문에 너무 바빠서 도저히 짬이 나지 않았으니까요.”


신희영을 스타로 만들어준 병원드라마 촬영 스케줄이 일주일에 야외 4일, 스튜디오 2일이었다.

전형적인 한국식 드라마 스케줄이다.

<젊은 남자>에서 그녀의 촬영분량은 9월 초에 첫 촬영이 예정돼 있었다.

과로로 인한 몸살로 신희영이 병원에 입원하면서 촬영이 취소되었다.

이후로 영화 촬영 스케줄을 미루고 미루다가 한 달이 지나서야 첫 촬영을 할 수 있었다.

남자 주인공 이민재와 붙는 장면은 촬영 막바지에 몰아서 찍기도 했다.

신희영은 퇴원을 하고서도 밀린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영화 촬영 펑크를 자주 냈다.

배창훈 감독과 박건호 대표가 출연하기 싫다는 걸 억지로 설득해서 겨우겨우 그녀의 분량을 촬영한 것이 극장에서 류지호가 본 장면의 전부다.

류지호는 제작비화를 듣고,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여배우를 교체했었어야죠!”


배우를 탓할 순 있다.

그전에 하기 싫다는 배우를 억지로 출연시키면서까지 영화를 완성한 것이 더 문제다.

그녀가 아니더라도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역할이다.

물론 신희영이 대중들에게 X-세대 여성상으로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는 것은 틀림없다.

그렇다고 해서 대체불가 여배우도 아니다.


“이미 계약금이 지불된 상태라 출연을 번복하면 위약금을 물어야 했으니까요.”

“매니저 짓입니까?”

“그렇습니다.”

“신희영이 찍은 장면은 모두 들어간 것이고요?”


배창훈 감독이 대답했다.


“다 넣었어.”

“그래도 어찌어찌 설득해서 정해진 분량은 찍으셨네요?”

“솔직히 나도 희영이 본 적은 10번도 채 안 돼. 모두 13회차였는데, 줄이고 줄여서 7회차로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어. 나이트클럽 촬영할 때는 꾸벅꾸벅 졸더구만. 하도 안쓰러워서 나도 마음이 약해졌지.”


한국영화는 이런 것이 문제다.

배우가 잘 나가도 겹치기 출연이 일상이다.

개런티가 턱없이 적기 때문이다.

영화 한 편에 올인 할 수 없는 수익 구조다.

따라서 TV드라마, 광고, 그 밖의 예능출연 심지어 밤무대까지.

게다가 매니지먼트는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식으로 배우를 돈 벌이로 내몰고 있다.

그렇기에 배우 당사자와 매니지먼트에게만 화살을 돌릴 수도 없다.

영화 제작환경과 드라마 촬영환경 모두 열악하기에.


“어쨌든 수고 많으셨어요. 흥행은 감독님이 고민하신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니까, 영화는 잠시 내려놓고 조금 쉬시면서 머리 좀 비우세요.”

“그게 마음처럼 돼야 말이지.”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에 저녁이나 함께 해요.”


류지호가 배창훈 감독과 인사를 하고 커피숍을 나섰다.


“내가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면 흥행에 성공했을까?”


류지호는 <젊은 남자>가 기대보다 흥행 성적이 저조했던 원인을 일정 부분 파악하고 있고 그에 대한 대안도 제시할 수 있다.

직접 손을 댔다면 <서편제>만큼의 큰 성과를 내진 못하더라도 흥행에서 꽤 괜찮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을지 모른다.

다만 류지호가 모든 프로젝트에 감내라 배내라 할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매해 수십 편 영화의 투자·제작·배급을 할 텐데, 그 모든 프로젝트에 관여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어설프게 손을 댔다가는 배가 산으로 갈 수도 있고.

류지호가 할 수 있는 것은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시스템을 구축해주고, 똑똑하고 유능한 인재들이 그 시스템을 운용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판을 깔아주는 것이다.

동우극장에 홀로 남은 배창훈 감독은 마지막 상영 회차까지 극장 앞을 서성였다.

2주차까지 영화흥행 상황에 대해 전전긍긍했다.

전국적으로 20만 명 이상 관람하며 관심을 끄는 데는 일단 성공했다.

그럼에도 3주차부터 관객이 급격하게 빠지기 시작했다.

관객과 비평 쪽에서도 반응이 엇갈렸다.


- 소비적 신세대들의 풍속을 표피적으로 짜깁기한 것에 불과하다.

- 신세대들의 고민을 심층적으로 파고드는 올로케이션 촬영과 감각적 카메라 워크, 뒷심을 받쳐주는 연출력이 조화를 이뤄낸 수작

- 정작 신세대는 공감할 수 없는 영화의 엔딩.

- 인물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 여러 가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시대의 패배주의적 관점과 편견으로 풀어낸 고리타분한 서사.


호평보다는 주로 악평이 많았다.

게다가 같은 날 개봉한 강은석 감독의 <마누라 죽이기>가 승승장구하면서, 충무로 일부 인사들은 WaW 픽처스의 실패를 은근히 고소해했다.

배급하는 영화마다 성공하던 WaW 픽처스도 죽을 쑬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최종적으로 <젊은 남자>는 망하지 않는다.

서울관객 15만 명, 전국 합산 58만 명을 동원하게 된다.

WaW 픽처스의 전국동시개봉 전략과 극장을 많이 확보한 덕분이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서울관객 10만 명 정도면 선방했다고 평가했다.

어쨌든 모든 영화가 다 대박이 터지고, 흥행이 대폭발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극장은 한정되어 있고, 관객의 취향은 변하니까.

류지호는 <젊은 남자> 제작을 후회하지 않았다.

배창훈 감독을 좋아해서?

돈이 넘쳐나서?

아니다.

신진 프로듀서들이 연배가 있는 감독들을 꺼리는 분위기다.

소통이 되는(말 잘 듣는) 신인감독을 발굴해 영화를 찍는 것으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기성감독들은 꼰대기질을 버려야 했다.

신진 프로듀서들은 기성감독들과 소통에 좀 더 노력해야 했다.

그래야 건강한 충무로가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다.

한국의 영화인들이 그렇게 물고 빠는 장뤽 고다르가 얼마나 폭군인지.

흥행의 귀재 스티븐 아들러가 얼마나 꼰대인지.

충무로 영화인들은 모른다.

사실 수많은 명감독들은 충무로 제작자 기준에서 보면 모두 꼰대다.

반대로 감독들이 보기에 신진 프로듀서들은 쥐뿔도 모르면서 폼만 잡는 애송이들이고.

재능 있는 신인을 발굴하는 것은 꾸준히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다.

그와 더불어 검증된 중견감독 역시 시장에 남아서 작업을 해야 한국영화계에도 좋다.

중견 감독만이 할 수 있는 역할과 영화가 따로 있는 법이니까.

영화도 찍어본 사람이 잘 찍는 것이고.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의 모리스 메타보이는 중견감독들이 시장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스튜디오 관계자들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중견감독들이 할리우드의 과거와 미래를 연결해주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그래도 권위로 똘똘 뭉쳐있고 권리만 주장하는 꼰대들은 하루 빨리 일선에서 물러나게 만들어야겠지.”


작은 이익에 눈이 멀어 아름답게 퇴장할 타이밍을 놓치는 사람들이 있다.

충무로라고 다르지 않다.

류지호는 추하게 영화판에서 ‘삥’이나 뜯는 몇몇 선배들을 처리할 방법을 궁리 중이다.

그나마 조금의 명예라도 간직하고 사라질 수 있도록.

과거로 돌아와 개과천선(?)한 후배가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라고 할 수 있다.


❉ ❉ ❉


WaW 픽처스는 충무로에서 유일하게 드레스코드가 있다.

월요일 하루 드레스코드는 모든 직원이 예외가 없다.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이라도 상의는 캐주얼 재킷이라도 걸쳐야 하는 문화다.

월요일 외에는 어떤 복장이든 상관없다.

정장 드레스코드를 정해놓은 것은 사무직 그리고 비서실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을 위한 배려다.

관공서나 외부 영업을 해야 하는 직원들은 일반 직장처럼 정장이 일종의 유니폼이나 마찬가지다.

다른 부서 직원들은 매일 캐주얼 하게 입고 출근하는데, 자신들만 정장을 입어야 한다면 영화팀과 섞이지 못할 것 같아서 박건호 대표가 지시한 사항이다.

또한 모든 회의실의 테이블을 원형으로 교체했다.

상석을 따로 정하지 않고, 먼저 오는 사람이 알아서 자리를 잡는 문화다.

WaW 픽처스의 사내 분위기를 유연하게 만들기 위해 고안된 아이디어다.


딸깍.


정장을 차려입은 류지호가 회의실로 조용히 들어왔다.

류지호를 발견한 직원이 일어서서 인사를 하려고 했다.


쉿.


얼른 직원을 진정시킨 류지호가 회의실 벽에 놓여 있는 참관인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참관인석에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백인 남자가 앉아 있다.

류지호가 들어오든 말든 배급실장 이낙용이 결산보고를 이어갔다.


“<스피드>는 91만,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70만, <스타게이트> 49만, <스페셜리스트> 41만, <의뢰인> 17만, <네 번의 결혼식, 한 번의 장례식>과 <마스크>가 15만, <필라델피아> 13만, <펄프픽션> 13만, <세 가지 색 블루> 10만입니다. 또한 방화는 <게임의 법칙> 21만, <두 여자 이야기> 9만입니다. 이 외에 10만 미만 영화가 몇 편 더 있지만...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짝짝짝.


회의 참석자들이 박수를 쳤다.

보고를 마치고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던 이낙용이 류지호를 발견했다.


“.....어! 감독님!”


회의 참석자들의 시선이 참관인석으로 향했다.


“언제 오셨습니까?”

“감독님. 안녕하세요.”

“오셨습니까?”


각양각색의 인사가 쏟아졌다.


“괜히 들어와서 방해가 됐나 보네요.”

“아닙니다. 배급팀 보고가 마지막이었습니다.”


박건호 대표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주요 임원들도 자신 앞에 놓여 있던 페이퍼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올 한 해도 다들 수고 많았어요.”


이낙용 배급팀장이 아부를 늘어놨다.


“다 트라이-스텔라 덕분이죠. 아니 감독님 덕분입니다. 안정된 할리우드 영화 라인업이 없었다면 이런 매출이 나올 수 없었습니다.”

“말 속에 연말 보너스 두둑하게 넣어달라고 은근히 압력을 행사하는 것 같네요.”


오동석이 끼어들었다.


“지난 추석에도 보너스를 넉넉하게 쏘셨는데, 연말 보너스까지 바라겠습니까?”

“징그러우니까 눈을 촉촉하게 적시고 말하진 말죠?”


하하하.


류지호의 말에 참석자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올 연말도 기대하세요.”


전하영이 농담을 던졌다.


“그만 좀 퍼주세요. WaW를 떠나기 싫어지잖아요.”

“독립하고 싶으면 하라니까요. 안 말려요.”

“영화를 세 편 굴리는데, 어떻게 나가요? 나가더라도 마무리하고 나가라면서요?”

“적어도 3년은 더 전PD를 붙잡아둘 수 있겠네요.”

“내년에 한꺼번에 다 찍어버릴 까보다.....!”

“능력 되면 해요. 내년에 극장 오픈하면 라인업이 모자랄지도 모르는데, 프로젝트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죠.”


전하영이 입술을 삐죽 내밀며 투덜거렸다.


“악덕 회장 같으니라고.”


류지호가 수염이 덥수룩한 백인남자에게 다가갔다.


“잭, 한국에서 지내는데 불편한 거 없어?”

“보스의 배려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류지호가 잭이라 불린 백인 곁에 찰싹 붙어 있는 남자에게 한국어로 물었다.


“에디는?”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씩씩하게 대답하는 한국남자는 에드워드 초이라는 이름의 교포다.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 아시아 배급팀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프로듀서 잭 워든(Jack Warden)과 함께 WaW 픽처스에 파견 나와 있다.

류지호는 WaW 픽처스 직원들을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로 연수 보내는 것을 중지시켰다.

대신 트라이-스텔라 직원을 한국으로 파견해 노하우를 전수 시키도록 했다.

할리우드와 충무로 사이의 시스템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연수로 얻을 수 있는 효과가 극히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장 시급한 배급과 회계 시스템 구축을 위해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 직원 중에서 지원자를 받아 한국으로 파견 보내는 방식으로 방식을 바꿨다.

그렇게 자원한 사람이 에드워드 초이와 잭 워든이다.


“고전 무술영화를 집중적으로 본다고?”

“미국에서 구할 수 없는 코리아의 마샬아츠 영화를 찾아보고 있습니다.”

“예전에 한국에서 만들어진 무술영화는 중국 쪽 무협을 배경으로 해서 별 도움이 안 될 텐데....”

“<죽음의 다섯 손가락>과 비슷한 풍의 영화를 몇 편 볼 수 있었습니다. 황비홍이나 자토이치와는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미스터 오의 안내로 태권도의 전당도 다녀왔습니다.”


잭 워든은 트라이-스텔라 픽처스 초창기에 만든 닌자영화의 제작팀으로 참여한 경험이 있다.

3년 전에는 현대판으로 각색한 자토이치의 미국판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열렬한 무술영화 팬이다.

그런 잭 워든이 한국행을 자원한 이유가 있다.

오라이언 픽처스가 인수합병 되면서 <Remo Williams: The Adventure Begins> 판권도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 소유가 됐다.

오래전에 죽어버린 프로젝트를 류지호가 꺼내 리부트를 만지작거렸다.

그 소식을 듣게 된 잭 워든이 찾아와서 기회를 달라며 간청했다.

원작 소설의 엉터리 고증과 엉망진창 영화를 바로잡기 위해 고심하던 류지호가 잭 워든을 한국으로 불러들였다.

한국을 직접 경험하게 하고, 리부트 방향 또한 고민해서 기획서를 만들어보라고 지시했다.

덤으로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WaW 픽처스의 프로듀서에게 할리우드식 기획·프로덕션운용 기법을 전수하도록 했다.


“서울에서 받은 첫인상과 88 서울올림픽 같은 것들은 머릿속에서 지워. 한국의 전통적인 정원, 사찰, 경주 같은 곳을 돌아보는 것도 도움이 될 거야. 지리산이나 강원도 인근의 강과 호수도 돌아보고.”

“혹시 장클로드 바렌버그의 <킥복서> 스타일의 영화를 생각하고 있습니까?”

“아니.”


<007>이나 좀 더 나가면, <킹스맨> 스타일이라면 모를까.


“<레모> 원작 소설은 첩보스릴러잖아. 신비의 무술로 무장한 초보 비밀요원 존 맥클레인(다이하드)이 맨몸으로 불가능한 임무를 수행하는 영화. 대략 로그라인은 이 정도.”

“오리엔탈 마샬아츠가 메인이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건액션, 맨손격투, 단검술, 카체이싱, 파쿠르도 일부 들어가야겠지.”

“파쿠르?”

“파쿠르 몰라? 프리러닝.”

“어느 나라 무술입니까?”

“무술은 아니고, 프랑스 군대의 훈련에서 파생된 익스트림 스포츠야.”


잭 워든은 웬만한 무술은 모두 꿰고 있다.

그가 모를 정도면, 아직은 파쿠르(parcours)가 프랑스 한정으로 조금 즐기는 정도인 것 같다.

<야마카시>가 2000년대 초에 나왔으니 그럴 만도 있다.


“<레모> 리부트는 맨몸 액션의 종합선물세트를 생각하고 있어.”

“일반적인 쿵푸영화의 서사를 따르지 않을 생각이군요?”

“무술 수련과정은 전편에서 보여줬어. 또 다시 한국인 사부와 주인공이 무술을 익히는 걸 보여줄 필요는 없다고 봐. 프랜차이즈 시리즈로 자리 잡는다면 또 모르지. 한 번 쯤은 빌런에게 망가질 정도로 패배해서 사부의 사문을 방문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곳에서 비기를 얻는 에피소드가 나올 수도 있고. 원작 소설이나 타임리에서 출간한 코믹스에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

“가령 총알을 피하는 기술 같은 것 말입니까?”

“맞아. 초능력이지만 초능력 같지 않은.... 그런 아이디어를 찾아내야 돼.”


류지호에게는 액션 아이디어가 꽤나 많았다.

<다크나이트> 3부작을 따라가도 되고, <킹스맨> 풍의 만화적인 콘셉트를 가져와도 된다.

<옹박2>의 80대1 아날로그 맨몸 격투 시퀀스도 있다.

거의 끝물이나 마찬가지지만, 홍콩 무협영화의 우아한 안무를 응용해도 된다.

종합격투기를 한국식 리얼파이트와 접목시켜도 된다.

다양한 콘셉트가 머릿속에 존재하지만, 액션보다 중요한 것이 캐릭터다.


“당장 영화 제작에 들어갈 건 아니니까, 천천히 고민해 보자고.”


류지호로서는 바쁠 것이 전혀 없다.

충분히 고민하고 숙성시킨 후에 개발에 들어가는 편이 좋다.

반면에 잭 워든은 달랐다.

빨리 미국으로 돌아가 개발에 착수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우리 PD들, 잭은 스무 살부터 제작파트 일을 하고 있는 베테랑입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운다는 자세로 노하우를 습득하도록 하세요. 당장은 충무로 현실과 맞지 않을 테지만, 실정에 맞게 잘도 고쳐서 쓰는 사람들이 또 우리들 아닙니까?”


권영균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전하영이 앓는 소리를 했다.


“영화 기획하기도 머리 아픈데, 책 한권 분량의 계약서를 읽고 분석하라고 하는 건 너무해요. 그런 것은 여의도에서 해주면 안 될까요?”


류지호가 어림도 없다는 듯 선을 그었다.


“친절하게 한국말로 번역까지 해서 돌렸는데, 웬 엄살이에요?”

“계약서야 그렇다고 치고. 분기별 경영상황, 계획대비 달성비, 영화흥행 예측, 제작 현황... 그뿐이에요? 크레디트, 스태프 관리, P&A 비용 책정 방법부터 원가 관리, 회계시스템. 이건 뭐 경영 공부가 따로 없어요.”

“이론이 아니잖아요. 실무에요. 그것도 할리우드 것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도 아니고, 충무로 실정에 맡게 대폭 수정했는데, 뭐가 어렵다고 합니까? 이미 WaW 영화에서 해 본 것도 있잖아요.”


류지호는 단호했다.


작가의말

주인공이 관여했거나 소유 회사에서 제작한 영화의 박스오피스 데이터는 실제에서 약간의 보정이 있습니다. 말도 안 되게 뻥튀기를 하진 않습니다. 그 외에 주인공과 크게 상관없는 영화는 실제 데이터를 최대한 그대로 적용했습니다.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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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할리우드!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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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 Collapse. (6) +6 22.08.08 5,232 161 24쪽
243 Collapse. (5) +4 22.08.06 5,293 158 25쪽
242 Collapse. (4) +6 22.08.05 5,251 167 22쪽
241 Collapse. (3) +10 22.08.04 5,276 163 27쪽
240 Collapse. (2) +9 22.08.04 5,065 144 23쪽
239 Collapse. (1) +7 22.08.03 5,413 165 23쪽
238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개놈이라니까! (5) +8 22.08.02 5,255 169 22쪽
237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개놈이라니까! (4) +6 22.08.01 5,316 163 22쪽
236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개놈이라니까! (3) +7 22.07.30 5,424 156 24쪽
235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개놈이라니까! (2) +2 22.07.29 5,331 160 24쪽
234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개놈이라니까! (1) +5 22.07.28 5,532 148 26쪽
233 대박 축하한다! (2) +5 22.07.27 5,693 152 24쪽
232 대박 축하한다! (1) +10 22.07.26 5,613 156 21쪽
231 OK할 때까지..... +7 22.07.25 5,417 151 25쪽
230 배고픈 놈이 이긴다. (4) +14 22.07.23 5,486 168 26쪽
229 배고픈 놈이 이긴다. (3) +9 22.07.23 5,166 135 21쪽
228 배고픈 놈이 이긴다. (2) +7 22.07.22 5,389 158 22쪽
227 배고픈 놈이 이긴다. (1) +10 22.07.21 5,548 166 26쪽
226 후회가 남지 않게! (3) +4 22.07.20 5,552 162 28쪽
225 후회가 남지 않게! (2) +10 22.07.19 5,647 151 27쪽
224 후회가 남지 않게! (1) +7 22.07.18 5,722 162 26쪽
223 나만 잘 먹고 잘 살려는 게 아닙니다. (3) +4 22.07.16 5,774 155 22쪽
» 나만 잘 먹고 잘 살려는 게 아닙니다. (2) +6 22.07.15 5,608 159 22쪽
221 나만 잘 먹고 잘 살려는 게 아닙니다. (1) +5 22.07.14 5,567 171 21쪽
220 예전의 내가 아닙니다. (3) +5 22.07.13 5,772 170 28쪽
219 예전의 내가 아닙니다. (2) +4 22.07.12 5,705 167 27쪽
218 예전의 내가 아닙니다. (1) +2 22.07.11 5,842 160 23쪽
217 우리 실력을 제대로 보여드리죠! (4) +4 22.07.09 5,832 144 24쪽
216 우리 실력을 제대로 보여드리죠! (3) +4 22.07.08 5,774 164 23쪽
215 우리 실력을 제대로 보여드리죠! (2) +6 22.07.07 5,837 169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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