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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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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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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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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0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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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Collapse.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서울과 LA의 시차는 17시간이다.

LA에서 재난영화 <Collapse>가 5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 개봉했다.

서울은 토요일에 개봉해야 전 세계 동시개봉이다.

헌데 G.O.M 강남점의 개관행사가 열린 금요일 오후에 <Collapse>가 개봉했다.

주로 관객이 몰려드는 요일은 전 세계 어디나 토요일 오후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다.

할리우드 배급사가 와이드 릴리즈와 함께 개봉일을 하루 앞 당겨 금요일 개봉으로 바꾼 이유는 관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토요일 전에 입소문이 타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주말 전 개봉으로 입소문을 타게 되면 더 많은 사람이 극장을 찾을 거라 여겼다.

또한 금요일 개봉은 누적관객수 혹은 박스오피스 수입 확보에도 유리하다.

미국에서는 첫 주 성적에 따라서 3주차 스크린 숫자가 결정된다.

극장은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 영화를 상영하려고 한다.

따라서 점유율이 떨어지는 영화는 빨리 빼버리고, 손님이 잘 드는 영화를 극장에 걸려고 한다.

그 같은 판단을 할 수 있는 지표가 바로 오프닝 스코어다.

즉 개봉 첫 주말 흥행 성적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미국은 1주차 흥행 성적에 따라 3주차부터 스크린 숫자의 변동폭이 매우 컸다.

그래서 관객이 제일 많이 모이는 것은 주말이지만, 하루 앞선 금요일 저녁에 영화를 개봉해서 첫 주 누적 박스오피스를 조금이라도 좋게 만들고자 한다.

한국은 프린트벌수 제한 조치로 인해서 와이드 릴리즈는 불가능하다.

‘표치기‘ 같은 불법이 만연해 있어서 박스오피스 집계 또한 믿을 수가 없다.

때문에 굳이 무리해서 금요일로 개봉일을 앞당길 이유가 없다.

그것도 옛말이다.

WaW 픽처스가 전국동시개봉을 시행하고, 본격적인 멀티플렉스 시대가 열리게 됨으로써 개봉일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개업발이라는 것이 있다.

G.O.M 강남점 개관 날에 전격적으로 개봉한 <Collapse>의 2회 상영 모두 매진됐다.

당연히 주말 누적관객수에 포함된다.

토요일 개봉한 영화들과 비교해 관객수가 많을 가능성이 높다.

월요일 신문에 금요일 관객수가 포함된 스코어를 가지고 홍보와 광고를 내보낼 수 있다.

여담으로 2004년부터 한국에서 목요일 개봉을 시작하게 된다.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정부에서 시행한 주 5일 근무제도 때문이다.

주말 개념이 바뀌면서 개봉 날짜를 하루 더 당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무리하게 수요일로 당기지는 않는다.

주중에 너무 일찍 영화를 개봉했다가 자칫 오프닝 스코어가 저조하면 입소문이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그로 인해 주말 장사를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와글와글.

북적북적.


토요일 오전부터 G.O.M 강남타워가 인파들로 북적거렸다.

특히 G.O.M강남점 티케팅 부스가 있는 넓은 홀에는 영화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방송사 취재진이 곳곳을 옮겨다녔다.

10개 스크린을 갖춘 G.O.M강남점은 트라이-스텔라, 한국제작사, 할리우드 직배사 영화들이 골고루 포진해있다.

494석의 1관은 트라이-스텔라의 <Collapse>, 432석의 3관과 4관에서는 <나쁜 녀석들>, <다이하드3> 그리고 379석의 2관에서는 <닥터 봉>, 304석 5관에서는 <퀵 앤 데드>, 211석의 6~7관은 <바스켓볼 다이어리>, <테러리스트> 그 외에 <남자는 괴로워> 등이 상영 되고 있다.

WaW 픽처스의 모든 직원들이 개관 첫 주말 손님들의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할리우드 영화들은 모두 매진을 기록했다.

반면에 한국영화의 좌석점유율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관객들의 생각은 너나할 것 없이 비슷하다.

같은 값이면 무조건 할리우드 영화를 보는 게 이득이란 생각이다.


“와! 이건 뭐....!”


여자 친구와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G.O.M강남점을 방문한 석동현은 깜짝 놀랐다.

강남에 새로 오픈한 대형 극장이며 최초의 멀티플렉스(8개관 이상)였기에 영화팬의 기대감이 무척 컸다.

높은 천장에 드넓은 극장 홀이 인파로 가득 찼다.

마치 놀이공원에라도 온 것 같다.

기존 극장에서 볼 수 없었던 세련된 인테리어와 서비스가 인상적이다.

석동현이 <Collapse> 티켓 두 장과 콜라 두 잔을 가지고 여자 친구에게 돌아왔다.


“자기야, 팝콘은?”

“조금 기다려야 한대,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서 새로 튀겨 와야 한다더라.”

“팝콘을 튀긴다고?”

“바로바로 튀겨준다고 하더라.”


이미 종로극장들과 멀티플렉스 상영관에서 지정좌석제가 시행되고 있다.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자리를 찾아갔다.


“자기야, 음료수는 한 번 리필이 가능하데.”

“진짜?”

“조건 없이 1회 무조건 리필 해준대. 그 대신 커피는 안 된다고 그러더라.”

“팝콘은?”

“상영 중에 실수로 쏟으면 새로 줄 수는 있대. 이 빌딩에 주차를 했으면 혹시나 여자가 마법이 찾아오면 매표소 여직원에게 말하래.”

“풋. 그게 뭐야?”

“그러게 별 걸 다 신경써주더라.”

“자기야, 저기 CCTV 보이지? 저거 계속 찍히는 걸까?”

“왜 내가 뽀뽀하는 거 찍힐까봐?”

“엉큼하기는......”


<Collapse>를 보기 위해 첫 회부터 부지런을 떤 관객들.

그들이 모여든 이유는 호기심 때문이다.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유명한 한국인이 기획·각본·제작한 영화.

<사랑과 영혼>의 패트릭 스웨이스가 주인공이고, 한국계 배우들도 많이 출연하는 영화.


‘한국말로 대사를 할까?’


한국 관객들에게 미국영화에서 한국말이 나올 것인가 역시 중요한 관람 포인트다.


팟.


천장 전등 몇 개가 꺼졌다.


잠깐의 정적.


제일 먼저 들려온 소리는 영혼을 쪼갤 듯, 강렬하게 울려 퍼지는 천둥소리다.


‘뭐지? 소리의 질이 좀 틀린데?’


다시 한 번.


꽈르릉!


실내를 쩌렁쩌렁 울리는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


쏴아아아!


스크린에서 비를 뚫고 달려가는 브래들리 피츠가 등장했다.


영화 <세7븐>의 예고편이다.

무려 1분 30초짜리 <세7븐> 예고편이 끝났다.


투타타타타타탁!


마치 실제 옆에서 총을 쏘는 것 같은 실감나는 총격음이 들려오고.

영화 <히트>의 예고편이 펼쳐졌다.

영화 자체의 음향 믹싱 수준이 뛰어났다.

할리우드 영화이니 당연한 거다.

그런 사운드를 극장 음향 시스템이 완벽하게 받쳐줬다.

스크린도 밝은 편이다.

오래된 극장에서 느낄 수 있는 시각적인 침침함이 없다.

비록 예고편에 불과했다.

그것으로 이미 관객들의 혼을 쏙 빼놨다.

석동현이 예고편이 끝나자, 저도 모르게 중얼 거렸다.


“끄, 끝내주네!”


이제 시작일 뿐.

본편 상영 바로 직전 (주)가온웨딩 광고가 나갔다.

참고로 이때 나오는 광고가 가장 비싼 계약금을 받는다.

극장 내 에티켓과 비상시 행동요령과 대피로 등의 안내가 이어졌다.

드디어 본편이 시작됐다.

광활한 우주.

오리온 별자리가 밝게 빛나다가 순식간에 한 점으로 모인다.

그 빛 사이에서 페가수스가 화면 정면을 향해 달려온다.

화면 앞에 멈춘 페가수스가 활짝 날개를 펼친다.

별들이 축복하듯 페가수스를 감싸 안는다.


TRI-STELLAR ENTERTAMENT.

JHO PICTURES.

배급 W.a.W PICTURES.


먹물처럼 까만 화면.


땅.... 따.... 틱! 따.... 땅!


쇠를 무언가로 때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사운드의 원근감이 굉장하네.....!"


석동현이 무심코 말을 내뱉었다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존(패트릭 스웨이스)이 건물 잔해 사이에 납작 엎드려있다.

바짝 마른 입술, 창백하게 질린 얼굴.

졸음인지 삶의 의지를 놓아버린 자포자기인지 모를 표정이다.


땅.... 따... 딱... 탁...타...


존은 기계적으로 철골 구조물을 향해 쇠막대기를 두드릴 뿐.

어디선가 은은하게 기계음과 무전소리, 구조대의 고함소리가 들려온다.


COLLAPSE(붕괴).


자막 : 5일 전.

샌프란시스코의 명물 금문교.

급경사 언덕을 오르내리는 케이블카.

평화로운 일상 풍경이 펼쳐진다.

샌프란시스코 동쪽에 위치한 도시 오크랜드의 대형 쇼핑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네.....’


관객들은 쇼핑몰의 외형이 분홍색의 삼봉백화점과 빼닮은 것을 눈치 챘다.

옥상에서는 대형 냉각탑의 위치를 조정하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시설 관리 책임자 로랜스와 건물설계 사무소의 피터(니콜라스 코폴라)가 냉각탑 위치 이동을 두고 언쟁을 벌인다.

이후로 10분 동안 이 영화의 주요 등장인물의 일상이 소개된다.

남매를 슬하에 둔 평범한 가장인 존.

그는 전직 뉴욕시 소방대장으로 가족과 오크랜드로 이주해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야만 하는 월급쟁이다.

그는 오랜만에 가족들과 외식을 나간다.

식사를 마친 가족은 오크랜드의 대표적인 쇼핑몰에서 쇼핑을 즐긴다.

너무나 화목하고 단란해 보이는 가족이다.

장남 데이빗(배런 렌프로)은 한창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다.

딸 엘리나는 소심하고 겁이 많은 아이다.

남자 친구와 이별한 왓츠양(앨런 와츠)과 그녀를 위로하는 한국계 미국인 오미연양(산드라 류).

다양한 연령, 인종들이 이 쇼핑몰에서 근무하고 있다.

어떤 직장이나 못되게 구는 관리자가 있다.

성질부리는 고객에게 쩔쩔매는 매장 직원도 보인다.

그렇게 평범하게 시작했던 하루는 곧이어 믿을 수 없는 재난으로 이어진다.

건물 청소를 담당하는 흑인 루지가 건물 벽에 금이 가는 걸 발견한다.

깜짝 놀란 그녀는 당장 상급자에게 보고하고....

회장실에서는 긴급회의가 열린다.

쇼핑몰을 설계한 피터가 건물이 무너질 위험이 있다고 임원들에게 경고한다.

하지만 한국계 회장(오순택)과 백인 임원들은 이를 무시한다.


우르릉.


갑자기 건물에서 진동이 느껴진다.


[모두 10분 안에 건물을 빠져나가야 합니다!]


회장과 임원들이 제일 먼저 건물을 빠져나간다.


[저리 비켜! 빌어먹을 새끼들아!]


심지어 임원들은 손님들을 밀쳐내면서까지 부랴부랴 쇼핑몰에서 도망친다.

매장의 일개 직원인 왓츠와 오미연의 고함이 5층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모두 긴급히 대피하세요.]

[빨리 건물을 나가요!]

[밖으로 도망쳐!]

[아악! 사람 살려!]


고객들은 영문도 모른 채 대피한다.

그런데 지하에 있던 고객들 중 상당수는 대피하라는 말을 듣지 못한다.

지하 식품관에서 할인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그로인해 대부분의 고객이 몰려있다.

직원들이 비상벨을 울리고 고객들을 뒤늦게 대피시키기 시작했다.

무슨 수로 이 넓고 복잡한 쇼핑몰에서 1,000명도 넘는 사람들이 그것도 고작 10분 안에 무사히 탈출할 수 있겠는가?

그 순간부터 약 5분간 백화점 안에 있던 고객과 직원들은 아비규환의 아수라장에서 생과 사의 갈림길을 헤맨다.


[도망쳐! 당장 빌딩에서 나가란 말이야!]


피터는 미친사람 같다.

쇼핑몰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사람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역부족이다.


'우르릉'


가족들과 대피를 하는 존의 상황은 여의치가 않다.

에스컬레이터와 비상계단 모두 고객들로 꽈 차있다.

가까스로 쇼핑몰 로비에 도착하게 되지만.

신의 시험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아비규환의 탈출 러시 속에서 연약한 노파가 털썩 바닥에 주저앉는다.

가장인 존은 모르척 한다.

오로지 가족의 안위만 중요할 뿐이다.

하지만 아들 데이빗은 달랐다.

바닥에 주저앉은 노파를 도우려다 가족과 떨어진다.


[데이빗!]


존은 딸 엘리나를 아내에게 넘기고 뒤쳐진 데이빗에게 달려간다.

그 순간.


콰광!


건물 남쪽의 옥상이 무너지면서 거대한 에어컨 실외기가 5층으로 떨어진다.


꽈과과과광!


5층을 지탱하고 있는 천장이 요란한 파열음을 내면서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 거대한 충격으로 인해 나머지 층들의 상판들이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무너진다.

눈 깜짝할 새도 없이.


[아악~]


사방에서 찢어진 비명소리와 공포에 질린 절규가 터진다.

5층 천장에서 쏟아져 내린 콘크리트 더미가 아래층을 차례로 무너뜨린다.

화려한 자태를 뽐내던 분홍색 쇼핑몰 건물이 주저앉기 시작한다.

무너지는 건물 안에서 살아보겠다고 몸부림치던 존은 아들과 함께 건물잔해 속으로 묻혀버리고 만다.

완전히 건물이 붕괴되고....

존의 가족은 서로의 행방을 모른 채 흩어진다.

영화는

쇼핑몰 내부에서 살기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

평화로운 쇼핑몰 주변 상황.

가장 먼저 몸을 피한 쇼핑몰 임원들.

영화는 세 곳의 상황을 결코 요란스럽지 않게 묘사한다.

다만....


[신이시여.....]


피와 먼지로 범벅이 되어 실려 나오는 사람들.

무너지는 건물 파편에 맞아 부상을 당한 채 신음하는 사람들.

뿌연 먼지가 거치고 드러난 처참한 폐허.

결정적으로 묘비처럼 우뚝 솟아 있는 건물 구조물에서 추락하는 사람을 보여줌으로써.

비극적인 재난의 현장을 리얼하게 묘사했다.

특히 고층에서 누군가 지상으로 추락하는 모습은 류지호에게 911 테러 당시 무역센터의 참상을 떠올리게 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파괴된 고층건물에서 사람이 추락하는 것은 클리셰다.

류지호로서는 결코 유쾌할 수 없는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존의 아내는 건물 잔해에 맞아 부상을 당한다.

근처에 있던 손님의 도움으로 안전한 곳으로 옮겨진다.

그 과정에서 딸 엘레나와 헤어지게 된다.


[엄마.....]


마치 생지옥이 현실에 재현된 듯한 현장.

호화롭게 지어진 쇼핑몰이 붕괴되는 믿을 수 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한국의 관객들은 우암아파트붕괴, 성수대교붕괴, 가장 최근 대구 상인동 가스 폭발 사고를 떠올리며 남일 같지 않은 현실을 새삼 깨달았다.


“......!”


영화 속에서 건물이 붕괴되는 광경을 지켜보며,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얼어붙는 행인들처럼.

관객들 또한 극장 좌석에서 얼어붙었다.

미니어처 촬영, 폭파 공법으로 무너지는 실제 고층빌딩을 촬영한 실사 영상, 거기에 추가된 컴퓨터 그래픽 효과까지.

압도적인 음향 사운드와 함께 10분 동안 붕괴(collapse) 상황묘사가 휘몰아쳤다.

핸드헬드 카메라 촬영기법이나, 짧은 커트 편집 등 긴장감을 쥐어짜는 잔재주를 부리지 않았다.

마치 감정이 한 톨도 담기지 않은 고정형 CCTV 촬영 영상 같다랄까.

다소 할리우드 장르영화라고는 볼 수 없는 심심한 편집(?)이다.

그럼에도 전혀 지루할 틈이 없다.

당황, 혼란, 공포, 분노, 허탈 등.

복잡한 감정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얼어붙어 무방비가 되었거나, 공포에 질려 오줌을 지리거나, 애처로운 표정을 짓거나, 터지려는 울음을 억지로 참거나, 현실을 부정하듯 눈을 질끈 감는 등.

사건이나 상황묘사보다 열연을 펼치는 배우들에게 포커스가 집중되었다.

블록버스터의 연출이 아니다.


위이이잉.


혼돈의 상황 동안 존은 이명 현상을 겪는다.

재난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전직 소방대장 존.

아비규환의 상황에서 그가 겪는 이명 현상을 관객도 똑같이 체험한다.

류지호는 스크립트에 그 같은 의도를 분명히 했다.

주인공과 같은 감정을 관객 역시 간접적으로 겪게 해서 재난상황의 무서움을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기를 바랐다.

감독은 그런 류지호의 의도를 영화에서 충실히 반영해 주었다.

에디 즈워크 감독은 모든 인물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스펙터클 또한 풍부하게 묘사했다.

아비규환 속에서 절묘한 타이밍에 항공촬영으로 찍은 화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거대하고 호화의 극치였던 쇼핑몰이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오미연을 향해 건물 잔해가 해밀처럼 밀려온다.

쌍꺼풀 없는 작은 눈을 부릅뜬 채.....

오미연이 공포에 질려 잔뜩 웅크리면서 화면이 암전된다.


“......?”


30초 동안 화면이 열리지 않는다.

극장측의 사고도 영사실의 실수도 아니다.

어둠속에서 환청처럼 들려오는 비명, 건물 무너지는 소음, 오미연의 흐느낌 등.

스피커를 통해 들릴 듯 말 듯 소리가 계속해서 나왔으니까.

암전을 통한 소리의 효과는 실로 압도적이다.

그 짧은 시간.

관객들은 어둠에 잠긴 극장 안에서 소리를 통해 온갖 것들을 상상했다.

누구 하나 기침을 하지 않았다.

침조차 삼키지 않은 채 관객들이 어서 빨리 화면이 열리기를 바랐다.


꽈과과과광!


다시 한 번 영화는 쇼핑몰이 붕괴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감독의 의도인지 편집자의 의도인지 모르겠다.

지상 5층, 지하 4층 건물이 폭삭 주저앉는데 걸린 실제시간은.... 20초도 걸리지 않는다.

컴퓨터 그래픽이 동원된 리얼한 건물 붕괴 영상을 자랑하기라도 하려는 것일까.

아니다.

감독은 인간이 탐욕으로 쌓은 거대한 건축물이 얼마나 유한하고 보잘 것 없는가를 비웃는 것이다.

자욱한 먼지에 가려진 참사현장.


휘이잉!


굉음과 강풍이 일면서 먼지와 파편이 허공으로 튄다.

진짜 재난은 이제 막 시작됐다.

사고의 현장은 아비규환이다.


[여기! 누가 여기 좀!]

[도와주세요!]

[으아앙!]

[아악! 아파!]


건물 잔해 더미 속에서 구조를 요청하는 사람들이 아우성치고, 피투성이가 된 부상자들의 비명과 신음소리가 가득하다.

거대한 먼지 구름이 오크랜드 전체와 샌프란시스코 경계까지 휩쓸고 지나간다.

하필 초저녁 시간대라서 놀이터에 아이들이 많이 나와 놀고 있다.

하늘 멀리서 웬 먼지 폭풍이 날아오더니 주택가 전체를 휩쓸자, 놀란 엄마들이 황급히 달려 나와 아이들을 집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전쟁이 터진 것 같기도 하고.

화산이 폭발해 화산재라도 날리는 것도 같다.

사고 현장이나 쇼핑몰 일대가 큰 충격에 빠진다.

쇼핑몰 지하에 주차되어 있던 차량은 물론이고 주변을 지나가던 차량 수백 대가 콘크리트 파편에 파괴된다.

뽀얀 연기가 걷히며 드러나는 폐허!

건물이 무너져버린 거대한 잔해 더미.

승강장과 비상구가 있던 건물의 일부분만이 묘지의 비석처럼 우뚝 서있을 뿐.


따르릉!


수십 수백 통의 911 전화가 오크랜드 응급의료 서비스(Emergency Medical Services Authority)에 접수된다.

수십 대의 앰뷸런스와, 경찰차와, 소방차들이 사건 현장으로 몰려든다.

이미 근처의 시민들이 붕괴 장면을 보거나 굉음을 듣고 작은 도움이라도 주기 위해 모여든다.

영화는 친절하게 오크랜드 시와 관계당국의 대처를 보여준다.

붕괴 사고가 일어난 지 35분 만에 비상상황 통제센터(State Emergency Operations Center, SEOC)가 구성되고, 공공 안전, 사회복지, 군사, 보건, 교육 분야를 담당하는 주부서의 전문가들이 통제센터로 집결한다.

통제 센터를 돕기 위하여 기상국, 주방위군, 민간 항공 정찰대, 적십자사 등의 기관도 속속 도착한다.

즉각적인 업무 보조를 위하여 캘리포니아 주방위군 소속의 400명이 파견되어 1시간 안에 사건현장에 도착해 치안 유지를 도우며, 민간재난관리부의 멤버들도 파견된다.

쇼핑몰 붕괴 사고가 일어나고 1시간 안에 30명이 구조된다.

한국 극장판 프린트에는 이런 모든 과정을 자막으로 친절하게 알려준다.

이미 보도자료를 통해 오클라호마 폭탄테러에서는 영화 <Collapse>보다 훨씬 빠르고 민첩했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렸다.

최근 오클라호마 폭탄테러 대처상황에 대한 매우 디테일한 보고서가 공개되었다.

류지호는 데본 테럴을 통해 입수해 읽어보았다.

꽤나 인상 깊은 부분이 많았다.


“어?”


관객 몇 명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영화 러닝타임이 30분이 지났다.

슬슬 구조대원 중에서 혹은 다른 누군가 영웅이 등장해야 할 시점이다.

그런데 주인공이랄 수 있는 인물들이 모두 건물 잔해 속에 파묻혀 있다.

존의 가족들이 주인공이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재난영화의 전형적인 클리셰라고 할 수 있는 비상상황실의 정치들, 딜레마에 빠진 구조대원을 집중적으로 조명하지도 않는다.

주인공 가족의 시선으로 재난현장을 담담하게 들여다본다.

심지어 사람들의 생사가 엇갈리는 구조의 순간에도 건물 잔해를 뒤적이며 상품을 훔치는 히스패닉 여자까지 묘사한다.


‘블록버스터가 아니었어? 사회고발 영화인가?’


건물 잔해를 뒤져 멀쩡한 옷을 수십 벌 챙긴 히스패닉 여자가 어디론가 분주하게 달려간다.

그녀가 도착한 곳에는 어리고 늙고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는 먼지를 뒤집어 쓴 생존자들이 모여있다.

훔친(?) 옷가지들을 난민 같은 피해자들의 등을 덮어주는데 사용한다.

히스패닉 여자는 쇼핑몰 상품을 탐낸 것이 아니다.

벌벌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덮어줄 담요나 천을 찾았던 것이다.

이 여성 캐릭터는 재난현장에서 보여지는 수십 명의 캐릭터 중에 단 하나일 뿐이다.

중요한 역할도 아니다.


[....살려주세요.]

[거기 누구 없어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누군가 응답해주기만을 간절하게 바라며, 끊임없이 목 놓아 울부짖는 사람들의 공허한 메아리.....

중간에 비상상황통제실이 묘사되기는 한다.

공명심에 폭주하는 정치인도 있고, 책임회피에 전전긍긍하는 관리도 있다.

악역으로 묘사하거나 그들로 인해 갈등이 폭발하지도 않는다.

현장에서 구조작업을 벌이는 소방관, 경찰, 구조대, 군인들의 모습들.

그들은 영웅이 아니다.

주어진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는 전문가일 뿐이다.

뜬금없는 감동 대사로 신파를 연출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건조하지도 않게 묘사된다.

폭삭 주저앉아 참혹한 폐허로 들어가더라도 억지로 감동 상황을 묘사하지 않고, 정확한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걸로 묘사하고 있다.

오글거리는 구조대의 모습이 아주 없지는 않다.


[누가 로프를 타고 지하로 내려갈 텐가? 지원자 받겠다.]

[제가 가겠습니다!]

[저도 가겠습니다!]


로프를 타고 내려갔다가 잘못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구조대원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사지로 서로 가겠다고 자원한다.


[헉.....헉....]


건물의 잔해 더미 속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사람들.

그 가운데 주인공 존과 피터도 있다.

쇼핑몰 매장 직원인 와츠와 오미연도 살아 있다.

살아있다는 안도도 잠시....

시간이 흐를수록 감각을 잃어가는 정신.

매캐한 공기, 무거운 콘크리트와 철근 더미 속에서....

죽음의 그림자는 점점 짙어만 간다.

건물더미에 깔린 사람들은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서로를 의지하며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애쓴다.


[에이미는 한국에 가봤어?]

[아니.]

[가볼 생각은 있어?]

[여... 여기서 살아서 나간다면.... 와츠?]

[....응?]

[네 남자친구 말이야.]

[그 개자식은 왜?]

[나중에 만나면 내가 태권도로 그 놈 불알을 차줄게.]

[그... 그래...호호.]


평소라면 두 여자는 깔깔대고 웃음을 터트렸을 상황이다.

둘의 웃음소리는 공허하다.

웃음에 물기가 묻어있다.


작가의말

영화 내용이 이어지기 때문에 연참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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