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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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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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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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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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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Collapse.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딴 데 가서 저한테 들었다고 하지 마시고 상무님만 알고 계세요.”

“......?”

“작년 외화 극장매출만 380억이랍니다. 한국영화까지 하면 400억이 훌쩍 넘어요.”


한국영화산업 전체 규모가 대략 1조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중 극장 티켓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3,000억 원이 채 안 된다.

5년 전에 비해 산업과 시장 모두 3배 가까이 성장하긴 했다.


“오성도 영화판 들어오기 전에 여러 가지로 알아보셨겠지만, WaW는 트라이-스텔라에서 정상가격으로 영화를 사와요. 다른 업자들처럼 눈탱이 맞아서 10억, 20억씩 주고 영화를 사오지 않는다고요.”


박충식이 머릿속으로 대강의 순수익을 계산해 내고는 헛바람을 내뱉었다.


“허!”


극장과 나누고, 문예진흥기금 떼고, 부가세 떼고, 배급비용 제외하면...

순이익이 최소 90억이다.

거기에 비디오와 방송판권 등을 포함하면 100억을 훌쩍 넘길 터.


“오성이 대기업이지 영상사업단이 대기업이 아니지 않나요?”


박충식이 말이 좀 지나치다고 꾸짖으려 했다.

그럴 틈을 주지 않고 김재욱이 제 할 말만 늘어놨다.


“오성전자에서 저를 스카우트 할리도 없지만, 제의가 들어와도 거절할 판이에요. 겨우 오성그룹의 계열사 중에서도 가장 힘도 없는 곳으로 오라고요?”

“겨우 라니!”

“연봉도 WaW에서 받는 것과 큰 차이가 없던데요?”

“많이 생각해 준 거야.”

“오성이라길래 통 크게 팍팍 쏴줄지 알았죠....”

“어려서 아직 세상 돌아가는 걸 잘 몰라서 그런가? 대단히 건방지군.”

“오성이면 자체 정보팀이 있지 않나.... 제대로 알아보시기는 한 건지.....”

“그깟 구멍가게 가지고 뭘 그룹 정보팀까지 움직여? 보자보자 하니까 정말 가관이야!”


제 아무리 호랑이의 지위를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해도, 박충식의 태도는 안하무인이다.

김재욱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한때 주안 학원가의 주먹으로 넘버 투였다.

조폭세계에서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았던 몸이다.

오성이든 청와대든 겁먹을 이유가 없다.


“상무님, 제가 이런 말까지는 참으려고 했는데 말입니다. 지호는 오성그룹 회장님과 상대할 레벨이란 말입니다.”

“어허, 어디서 그런 망발을! 보자보자 하니까!”

“영화 업계를 잘 모르셔서 그렇다고 칠게요, 오성이 드림팩토리에 까였죠? 우리 지호는 거기 창업자들하고 맞다이로 밥 먹으면서 서로 비즈니스를 논하는 사이랍니다. 사실 제임스 파커 아저씨 선에서 오성 회장님이 한 수 접어줄 판일 것 같은데..... 암튼, 뭐 그렇다구요.”

“내가 시간을 낭비했군. 하여튼 검정고시 출신들이란....쯧.”

“상무님은 대학 어디 나오셨는데요? 서울대?”

“연희대.”

“UCLA보다 급이 높나 연희대가? 지호 비서들은 죄다 서울대 아니면 아이비리그라던데.... 뭐 그렇다구요.”


더는 참지 못한 박충식이 나중에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 양반, 참 쫀쫀하네. 술이라도 한 병 시켜주고 가지. 쯧.”


짧게 혀를 찬 김재욱이 룸을 빠져나왔다.

곧장 카운터 걸어가 양해를 구하고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재정아, 나야.”

- 오영단 사람은 만났냐?

“오영단은 뭐냐?”

- 부르기 귀찮아서 그냥 줄였다. 어떻게 됐어?

“네가 시키는 대로 했다.”

- 너 말고 회사사람 또 누구한테 접근했대?

“아! 그걸 안 물어봤네.”

- 그럼 내가 알려준 대로 앵무새처럼 떠들고 헤어진 거야?

“앵무새라니! 내가 점잖게 잘 타일렀어. 까불지 말라고.”

- 잘도 그랬겠다.

“근데 네가 말하지 않은 것도 말해 버렸다.”

- 뭔데?

“우리가 작년에 외화만 380억 매출 냈다는 거.”

- 난 또 뭐라고.

“괜찮아? 경쟁자한테 그런 거 막 말해도?”

-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걸.

"근데 오성 상무가 벼슬이냐? 졸라 싸가지가 밥맛이던데?"

- 재벌 집사 노릇하는 주제에 뭐 좀 되는 것처럼 주접떠는 인간들이 좀 있어. 그건 뭐 그렇다고 치고.... 암튼 수고했다. 또 만나자고 하디?

“연락 안 할걸? 내가 은근히 염장 좀 질렀거던.”

- 알겠어. 토요일에 회사에서 보자.


김재욱이 수화기를 내려놓고, 카운터의 여종업원을 향해 입을 열었다.


“명함 한 장 주세요.”


여종업원이 가타부타 말없이 명함을 한 장 건넸다.


“여기 분위기 괜찮네요? 나중에 친구들하고 올 게요. 꼭이요.”


김재욱은 앞으로 청담동 고급 바를 뻔질나게 드나들 수밖에 없다.

스타급 배우들과의 미팅 때문에.

때로는 매니지먼트로부터 접대를 받으러.

오늘처럼 대기업 계열 영화사업팀 관계자나 창업투자회사 관계자 미팅 뒤풀이를 위해서.

박건호 대표나 오동석 본부장보다 그 아래 실무자들이 이런 장소에 더 자주 드나들게 마련이다.

그것은 박충식 상무와 김재욱은 곧 같은 레벨이 된다는 뜻이 된다.


❉ ❉ ❉


- 대한민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비행기가 완전히 멈춘 후, 좌석벨트 사인이 꺼질 때까지 잠시만 자리에서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선반을 여실 때는....


서울항공의 도착안내 방송이 흘러나오자, 류지호는 안전벨트를 착용했다.

지금까지 주로 한국항공을 이용했다.

올해부터 서울항공이 세계 최초로 전 노선 기내 금연을 실시했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류지호로서는 매우 환영할 만한 조치다.


“......!”


입국게이트를 빠져나온 류지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비서실 직원이 모두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류지호가 황재정을 째려봤다.


“너무 뭐라고 하지 마십시오. 한국에 체류하시는 3박 5일 동안 시간 단위로 일정을 수행하셔야 합니다.”

“누가 뭐랍니까?”


류지호는 <Collapse>개봉과 G.O.M 강남점 개관이 맞물려 한국에 들어왔다.

아쉽게도 감독과 배우는 이번에 함께 오지 못했다.

월드 프로모션에서 아시아는 제외가 되었기 때문이다.

대신에 류지호가 <Collape> 홍보에 나서기로 했다.

겸사겸사, 첫 번째 멀티플렉스 영업점 개관행사에도 참석하고.

함께 차량에 탑승한 황재정이 투덜거렸다.


“오성이고 대유고 경일이고 우리 직원들 빼가려고 아주 난리도 아니다.”

“재욱이한테도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며?”

“오성영상사업단 고위급 인사가 접촉했나봐.”

“고위급 누구?”

“박 상무라나.....?”

“재욱이 많이 컸네. 오성에서 다 데려가려고 하고.”

“그게 재욱이 능력 보고 제의했겠냐? 거기 가봐야 잠깐 써먹다가 팽 당할 걸.”

“너한테는 접근 안 해?”

“왜 안 해. 저번에는 경일그룹에 다닌다는 신포고 선배와 술을 먹었거든. 술 엄청 먹이더니 금강기획으로 오라더라. 유학도 보내주겠대.”

“내 친구들이 대기업에서 인정받고 좋네.”

“좋긴 개뿔!”

“그래서 재욱이는 오성 간대?”

“친구끼리 의리가 있지 어떻게 배신하냐고. 자기를 그런 놈으로 봤냐고 화내던데?”

“하하하.”


류지호가 배꼽을 잡고 웃었다.

커서 뭐가 될지 걱정이 들었던 때가 엊그제 같다.

김재욱은 군대까지 다녀와 비교적 무난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제작부장으로 승진까지 했다.

그것도 모자라 대기업에서 스카우트 제의가지 받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개천에서 용이 난 경우다.


“더 웃긴 게 뭔 줄 알아?”

“뭔데?”

“은근히 스톡옵션 바라는 거 있지. 자식이.....”

“큭큭. 재욱이 진짜 많이 발전했다. 그래서 뭐라고 그랬어?”

“하는 거 봐서 주든 말든 한다고 했지 뭘.”

“재욱이 라인 피디 달기 전까지 스톡옵션 안 줄 거야.”

“언제 다는데?”

“모르지 나도.”

“안 주겠단 거야?”

“재욱이 하기 달렸겠지. 다섯 편 정도는 더 경험해야 하지 않을까?”

“그럼 서른 즈음인가....?”

“일 년에 두 편씩 하면 더 당겨질 수도 있고.”


류지호와 황재정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어느새 강남에 도착했다.

제일생명사거리에 멋들어지게 솟아있는 17층 상가오피스 복합빌딩.

일반적인 박스형 성냥갑 모양의 밋밋한 디자인이 아니다.

3차원적인 유리벽과 경사기둥 기술들을 적용한 최신공법으로 건설되었다.

할리우드 SF영화에서나 볼 법한 디자인의 빌딩이다.


“저 미친 디자인 때문에 건설비가 많이 초과했지.”

“어쨌든 랜드마크가 될 수도 있지 않겠어요. 황 실장?”

“건너편에 한교빌딩은 20층 이상으로 올린답니다.”

“멋진 고층건물이 마주보고 있으면 서로 건물가치를 올려주겠지요.”

“핫플레이스인 강남역으로 향하는 길에 잠시 스쳐지나가는 지점이라는 것이 문제죠.”

“영동시장 쪽으로 먹자골목이 형성될 겁니다.”

“언제요?”

“몇 년 안에.”


닷컴버블을 타고 강남유흥가와 압구정·청담 등의 바와 룸싸롱이 활황을 맞이한다.

그 같은 업소에 종사하는 여성접대부를 일명 ‘선수’라고 부르게 된다.

한때는 1만 명 정도의 ‘선수‘들이 논현1동 원룸촌과 오피스텔에 모여 살게 된다.

따라서 그 일대를 일명 ‘선수촌이라고 부르게 된다.

또한 영동시장 위치한 골목을 중심으로 먹자골목이 크게 번성해서 불야성을 이루게 된다.


“그렇다면 다행이겠지만.”

“이미 영업을 시작한 모양이다?”


건물 1층에는 한미은행과 글로벌 햄버거 및 커피 프랜차이즈가 영업 중이다.


“상가는 전부 공실 없이 임대가 완료됐어.”

“영화사와 투자회사는?”

“WaW는 이사를 마쳤고, 가온GP는 전산시스템을 전부 옮겨오려면 조금 복잡한 과정이 있나 봐.”

“한미은행이면... 하나은행이었나? 아니지 뉴욕시티겠네.”


이 시기만 해도 한미은행은 7~8위 권 대형은행이다.

외환위기 이후로 미국계 은행에 합병되면서 사라지겠지만.


끼이익.


류지호가 타고 있는 벤츠가 500여대를 주차할 수 있는 지하주차장으로 들어왔다.

지상연결통로에는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건장한 사내들이 마중 나와 있다.

극장 직원들은 아니다.

귀에 무전기 리서버를 끼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나래안전 쪽 사람들이다.

류지호가 모습을 드러내자 일제히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


나래안전시스템 직원들 사이에 임건희 사장을 비롯해 장문식, 박영규 이사도 보였다.

의전에 있어서 나래안전시스템의 집착은 예나 지금이나 유난스러웠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바닥에 레드카펫은 안 깔려 있다.

암튼 류지호는 마중 나온 이들과 반갑게 악수를 나눴다.

나래안전 임원들까지 가세하자, 대규모 인원이 움직이게 되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만도 하지만, G.O.M Cinemas에는 일반인출입이 금지된 상태다.

지하주차장에서 극장으로 곧바로 이어진 엘리베이터는 없다.

화물을 옮기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극장으로 올라갔다.

류지호는 개장 전에 자신이 직접 극장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확 트인 넓은 홀, 세련된 티켓팅 부스, 곳곳에 마련되어 있는 대기 손님들이 앉을 수 있는 간이의자, 등받이 없는 소파 등.

화장실이며 직원 휴게실까지 꼼꼼하게 둘러봤다.


“이 빌딩과 관련한 일체를 나래에서 책임진다고요?”


류지호의 물음에 임건희 사장이 대답했다.


“보안경비는 물론이고 청소, 공실 관리, 임대, 보안업무를 포함한 전반에 걸쳐 나래에서 책임집니다. 그를 위해 따로 자회사도 설립한 상태입니다.”


아직은 종합부동산회사라고 할 순 없다.

(주)나래안전시스템은 최종적으로 부동산관련 자금조달, 개발, 시공, 임대관리까지 가능한 기업으로 나아갈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

막바지 개관 준비를 지휘하던 오동석이 달려왔다.


“어서 오십시오. 감독님!”

“뭐하고 있어요?”

“THX 수석 엔지니어와 각 상영관들 상태를 최종적으로 확인해보고 있습니다.”

“그는 어디 있죠?”

“영사실에 있습니다.”


THX 수석 엔지니어 밥 로건은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여러 국가의 멀티플렉스 맞춤형 사운드를 설계한 음향 전문가다.

Skywalker Films 소속은 아니지만, THX 시스템의 권위자 중 한명이다.

밥 로건이 류지호와 함께 상영관을 돌아보며 설명했다.


“극장 음향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스크린 앞쪽에 3개, 좌우 벽면에 2개의 스피커를 장착한 5.1채널이 기본입니다. <쥬라기 공원>으로 DTSS 사운드 시스템이 Doldy 시스템의 강력한 경쟁자로 급부상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극장 음향시스템의 절대 강자는 Doldy입니다. 아마 앞으로도 DTSS는 만년 2인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적어도 영화 분야에서는.”


DTSS 시스템에선 필름에 가이드 타임코드 트랙만 있고 재생은 CD로 한다.

당연히 음질이 필름 트랙을 그대로 쓰는 Doldy보다 월등하다.

다만 Doldy는 장치가 단순하고 다루기 용이하다.

디지털 사운드로 넘어가도 마찬가지다.

극장 입장에서는 음질에서 명확하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덜 복잡하고 편리한 것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여담으로 이 당시 한국영화의 Doldy Stereo 라이선스 요금이 80만원이다.

이 라이선스 요금은 조금씩 상승해 2010년대 500만원까지 오르게 된다.

편 당 무조건 정찰가격을 지불한다.

제작비가 1,000만 원이든 50억이든 불문하고.


“다 Doldy가 들어가 있습니까?”

“3개관은 DTSS 시스템으로 세팅했습니다. 미스터 류의 요구라고 들었습니다.”


류지호의 욕심 때문이다.

Doldy 시스템으로 통일하지 않은 것은 관객들에게 다른 음향 시스템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극장은 소리를 재생하기에 상당히 불리한 환경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공간의 크기에 있습니다. 좋은 소리가 전달되기에는 스피커와 관객의 거리가 너무 멀죠. 그리고 영상과 관련된 소리여서 스크린에서 소리가 나야 한다는 문제까지 겹치니 스크린 뒤에 스피커를 놓고 천공을 통해 전달하면서 문제가 더 악화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5.1 채널 음향도 여전히 모노 음향의 전통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센터 채널이 중심이 된 믹스가 일반적입니다. 영화의 거의 모든 대사는 모노로 다루어지고 모노로 재생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류지호도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다.

업계에서도 유명한 인물의 설명이기에 묵묵히 설명을 들을 뿐.


“앰프와 스피커만으로 음향이 잡히는 건 아닙니다. 상영관의 체적이나 마감 재질에 따라 변수가 너무 많지요. 기본적으로 각각 스피커들에 세팅된 음량만큼은 같아야 합니다. 센터, 레프트, 라이트 음량과 하이, 미들, 로우의 주파수 영역이 표준화된 규격에 따라 정확하게 맞춰줘야 합니다. 그게 다르면 영화가 의도한 믹싱의 균형이 틀어질 수 있으니까요.”


전문용어들이 많이 튀어나왔다.

그럼에도 류지호는 재미가 있었다.

한편으로는 아쉬움도 들었다.

돈 주고도 배우지 못할 것들이다.

한국의 영화녹음 엔지니어들이 들었어야 했다.

한국 영화계는 사운드를 경시하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 전통은 한참을 이어진다.

2000년대 중반에 가서야 깨진다.

류지호가 과거로 돌아오기 직전 시대에 많은 발전을 이루긴 했다.

그럼에도 영화음향 분야만큼은 할리우드 영화에 한참 뒤떨어진 수준이었다.

영화음향은 기술적 영역 그 이상이다.

보통 관객들은 한국영화의 대사전달의 명료도에 대한 불만을 가진다.

좀 더 전문적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대사보다도 영화적 표현에 있어서 음향적 상상력과 감수성이 부족한 것이 더 심각했다.

현재 영화음향 부문에서 종사하는 엔지니어들 중에 영화 관련 전문교육과 훈련을 받은 사람이 없다.

대부분 도제 시스템에 의해 길러진 엔지니어다.

재능이 너무나 출중해서 짧은 시간 안에 뛰어난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정말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천재적인 재능이 있다면 영화 사운드 디자이너를 할리도 없다.

차라리 영화감독을 하려고 할 테니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사운드가 많이 활용됩니다. 그런 영화들은 상영관 시스템이 받쳐주지 않으면 만드는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전달하고자 디자인했던 많은 사운드적 요소들이 무용지물이 되죠.”

“음향 디자이너들이 공들여 만든 사운드의 질감이나 파워가 환경에 따라 왜곡되게 들리는 것은 정말 속상한 일이죠.”

“맞습니다. 그래서 할리우드는 영화를 배급할 때 프린트와 함께 사운드 리스트를 함께 동봉해서 전 세계에 배포하죠. 특히 DTSS는 꽤나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필름에 사운드 데이터가 담겨있지 않고, CD로 재생하니까요.”

“지금도 싱크가 틀어지거나 에러가 나기도 합니까?”

“<쥬라기공원>을 상영할 때만 해도 여러 극장에서 낭패를 봤지요. 현재는 거의 에러를 잡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극장에도 세팅한 것이지요.”

“이 극장이 THX 인증을 위한 까다로운 규격을 모두 충족한 거 맞죠?”

“THX 인증 마크를 자랑스럽게 사용해도 됩니다.”

“단 6개월뿐이지만 말이죠.”


THX 시스템에 사용하는 스피커나 앰프 및 프로세서 등은 모두 사전에 Skywalker Films의 검사를 거쳤다.

그렇게 기준을 통과한 기기들을 개개의 상영관의 특성에 맞게 골라 설치되었다.

상영관의 크기에 따라 규격과 세팅이 다 달랐다.

스피커 세팅이 끝난 후에는 세계적으로 표준화된 실내음향 기준에 맞도록 각부를 조정해서 상영관 내의 모든 지점에서 표준음향이 들리도록 세밀히 조정했다.

이 외에 스크린의 밝기 등까지도 규정을 그대로 따랐다.

질릴 정도로 꼼꼼하게 따진 후에야 공식 THX 시스템이 완비된 상영관으로 공인받을 수 있었다.


“로건씨가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가면 극장에는 아무도 남지 않는 겁니까?”

“한 달 동안은 제 팀들이 오류를 잡고 업무를 지휘할 예정입니다.”


원래는 시스템 구축과 공인 작업이 끝이 나면 끝이다.

류지호가 직접 Skywalker Films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완벽한 인수인계를 부탁했다.

본래 스피커와 앰프를 공급한 업체 엔지니어가 와서 1년간 시스템 전반을 담당하지만, G.O.M강남점은 시스템을 설치한 이들이 한 달 간 사후 관리를 해주기로 했다.

그 정도로 류지호는 첫 번째 멀티플렉스 오픈에 많은 공을 들였다.

류지호가 오동석을 가까이로 불러 지침을 내렸다.


“한국에는 영사기사는 많아도 진짜 전문가라고 할 만 한 분은 몇 분 안 됩니다. 이번 기회에 극장 영사시스템, 음향시스템에 대한 전문가 양성도 함께 고민해보세요.”

“알겠습니다.”

“편안하고 안락한 좌석, 시야확보 같은 시설적인 측면과 더불어 스크린, 음향 모두 품질관리에 신경 써 주세요. 영화 상영은 다른 공연예술과 분명 다릅니다. 전문가뿐만 아니라 관객들의 피드백을 지속적으로 받아들여 상시적으로 상영관 점검을 실시하도록 하세요. 특히 한국영화는 더더욱 관심을 기울여 주시고요.”

“한국영화......?“

“할리우드 영화는 배급사에서 데이터가 넘어오니 그걸 따르면 되지만, 한국영화는 그런 게 없잖아요. 있어도 디테일하지 않고요. 개봉하기 전에 영사실과 함께 모니터링을 철저하게 한 후 상영하라는 말입니다. 야근 수당 지불하는 일이 있더라도.”

“알겠습니다.”


류지호는 극장 시설 투자에 자금을 아끼지 않았다.

투자가 늘어날수록 회수기간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 극장은 한국의 어떤 극장보다 하드웨어의 스펙이 훌륭합니다. 관리에 있어서도 최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항상 최고의 음향과 화질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이 G.O.M의 전략이며 기조입니다. 기본에 충실하세요. 극장은 영화를 관람하는 곳이지 간식 먹는 분식점이 아닙니다.”

“......?”

“왜 대답이 없어요? 본부장!”

“명심하겠습니다.”


마지못해 대답하는 것이 역력했다.

당연했다.

류지호는 사람을 편안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런 한편으로 완벽하게 해낼 걸 주문한다.


‘미국물만 잔뜩 들어서 사람 참 힘들게 하시네....’


대놓고 따질 수는 없었다.

류지호가 원하고 그가 주문한 것이 옳은 방향이니까.

그것이 경쟁력이니까.

류지호가 WaW 픽처스 사무실로 향하며 오동석에게 말했다.


“우리가 까다롭게 굴면 굴수록 충무로 영화인들도 그 발걸음에 맞춰 나갔으면 좋겠네요.”

“쉽게 못 쫒아올 텐데요?”

“그래도 해야죠. 언제까지 날로 먹겠어요. 소비자는 봉이 아닙니다. 제대로 된 품질로 서비스하고 관객의 호주머니를 털어먹어야 도둑놈 소리 안 들어요. 그들이 기꺼이 돈을 내고 극장에 올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비전문가인 관객들은 최신 시스템을 알아차리지 못할 걸요?”

“장사 하루 이틀 할 겁니까? 언제까지 관객들이 극장이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품질에 만족할거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우리는 하루빨리 노하우를 쌓아 관객보다 조금이라도 앞서나가야 합니다. 할리우드처럼.”

“옳은 말씀이지만, 그게 하루아침에 될 리가 없잖아요.”


류지호가 걸음을 멈춰 오동석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 눈을 가늘게 뜨고, 오동석을 압박하며 다시 말을 이었다.


“형, 어차피 죽어라 할 거면서 뭔 말이 그렇게 많아?”

“부담되니까... 내 책임이 엄청 막중한 거 같아서.”

“부담가지라고 하는 잔소리야. 명색이 영화감독이 운영하는 극장인데 쪽팔리게 장사꾼처럼 설렁설렁 영화 상영하면 되겠어?”

“......”

“2000년까지 5대 도시에 멀티플렉스를 진출시킬 거야. 그래서 이곳 1호점이 중요해.”

“앞으로 5년 안에?”

“그 모든 극장에 THX인증을 받을 순 없을 거야. 그렇다면 우리 자체적으로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어야 하잖아.”

“그렇다면 아예 전담 부서를 만들어야겠어.”

“좋은 생각이야. 그리고 모든 영화의 영상·음향 데이터 무조건 남겨놔.”

“무조건?”

“이 바닥이.... 의리 별로 없잖아. 다른 극장에서 사람 빼 가면? 그때는? 사람은 떠나도 데이터와 노하우는 남아있게 처음부터 시스템을 만들어놔야지.”

“맞아. 영화판에 은근히 양아치가 좀 있어.”


제작비 들고 잠적하는 제작부원부터 유림영화사 성 회장 같은 부류까지.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지만 영화판도 쓰레기 인성의 개놈이 없지 않다.


“극장 경영은 나 사장에게 맡기고, 형이 책임지고 실무 전반의 시스템 구축에 집중해줘.”

“알겠습니다. 2호점 진출하기 전까지 MovieMark 수준의 관리·운용 시스템을 만들어보겠습니다.”

“진즉에 그걸 것이지....”


류지호가 오동석의 어깨를 가볍게 툭 치고 사무실로 몸을 돌렸다.

오동석이 멀어지는 류지호의 등을 보며 중얼거렸다.


“배급일이나 할 걸. 괜히 극장 맡아서 해보겠다고 했나?”


오동석은 왠지 앞으로 일에 파묻혀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작가의말

THX 시스템이 뭔가 거창하고 대단해 보이지만, 개인적으로 표준화 규격화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지나치게 시스템화 시켜서 전 세계 극장 상영관마다 개성이나 특색을 살리지 못하는 한계가 있지 않나 싶기도 하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겁고 행복한 하루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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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7

  • 작성자
    Lv.70 코골이돼지
    작성일
    22.08.03 10:09
    No. 1

    고생길이양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9 루시오엘
    작성일
    22.08.03 10:44
    No. 2

    재밌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1 지구주민
    작성일
    22.08.03 11:32
    No. 3

    늘 잘보고가요^^ 완결나서 이북으로 나오면 좋겠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8 모란
    작성일
    22.08.03 12:55
    No. 4

    요즘 영화티켓값이 너무 비싸서 부담이네뇨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2.08.03 16:37
    No. 5

    잘 보고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무한땅꼬마
    작성일
    22.08.03 20:38
    No. 6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霧梟
    작성일
    22.08.03 22:12
    No. 7

    THX는 친구 차고에서 95년에 처음 경험해 봤었는데 (물론 홈씨어터용) 당시 스타워즈 엑스윙이 어느 레이저에서 레이저를 발사하는지 구분이 가능하고 광선검을 휘두를 때 그 궤적을 소리로 구분할 수 있었던 것을 보고 정말 놀랐죠... 이후에는 컴퓨터용 5.1채널 스피커로도 사운드 분리가 되는 것을 들으며 참 감개무량했었는데 ㅋㅋ 특히 글래디에이터에서 기름병 날리는 장면에서 기름병이 깨지고, 기름이 흐르고, 불이 붙는 그 모든 사운드가 다 확실히 구분되어 들렸을 때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는.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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