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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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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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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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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1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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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쪽

예전의 내가 아닙니다.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류지호를 태운 차량이 파커 저택을 출발해 퀸즈 지역을 지나고 있다.

3년 전에 비해서 길거리에 중국인이나 상점 간판이 꽤 많이 눈에 띠었다.

플러싱(Flushing)의 메인 스트리트는 여전히 한인들이 상권을 잡고 있는 것 같지만, 군데군데 중국 상점으로 보이는 간판이 전에 비해 많이 늘어났다.

LA지역 한인커뮤니티 리더들에게 듣기로 90년대에 들어서며 한인이민자가 줄어드는 추세라고 한다.

미국은 수년째 경기침체를 겪고 있어 한인들의 경제활동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중국인들이 북미로 많이 유입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인들의 인해전술은 전쟁시에만 통용되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거주와 경제활동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양적으로 밀고 들어오는 인해전술적인 중국인 유입과 그들만의 커뮤니티는 어떤 면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새로운 세계의 접합과 융합이라는 면에서 봤을 때 그렇다.

차이나타운은 그런 면에서 좋은 이민자 모델이라기 보기는 좀 어렵다.

오로지 그들만의 살기 위한 집단 거주 형태의 모습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서부지역은 그래도 한인들이 자리를 잘 잡아가고 있는 편인데.... 뉴욕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네.”


퀸즈의 플러싱은 100년 전엔 유대인들이 번화가를 차지했다.

그 다음으로 독일인, 이탈리아인들이 바통을 이었다.

그러다가 1960년대부터 한인들이 메인 스트리트를 중심으로 일대를 차지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 중국인의 차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상권은 흥망성쇠를 겪기도 하고 주도권이 바뀌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중국인이 장악하든 베트남인들이 장악하든.

류지호가 크게 상관할 바도 아니고.

다만 부동산투자로 생각해보면 메인 상권을 중국인들에게 비싼 가격에 넘기고 외곽으로 이동하는 한인들의 판단이 다소 아쉽다고 할까.

서울에서도 강남 살다 강북이나 위성도시로 이사 가면 다시 들어오기 어렵다.

핵심권에서 한번 벗어나면 다시 그 핵심으로 복귀는 처음보다 훨씬 힘든 것이다.

물론 한국인 특유의 근면·성실·인내 DNA로 악착같이 새로 이주한 지역의 상권을 개척해서 타민족들의 이웃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기는 하겠지만.

앞으로 뉴욕 퀀즈 지역에서 중국인들의 현금 능력과 단합력에 힘을 쓰지 못할 한인들을 생각하면서 류지호는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그나마 한인들에게도 희망적인 소식이 있다면 맨해튼 웨스트 32번가, 5번가, 브로드웨이 사이 길의 명칭을 내년부터 공식적으로 ‘Korea Way'라고 부를 예정이라는 것이다.

그 지역이 70년대 말부터 뉴욕커들 사이에서 K-타운이라고 불리긴 했지만, 정식으로 ‘Korea Way' 도로표지판이 붙는 것은 공인을 받는다는 의미다.

당연하지만 플러싱보다 K-타운이 뉴욕에서 훨씬 중심지다.

지금의 맨해튼 한인타운에서 더 확장해 나가지 못할지라도 최소한 밀려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는 류지호다.

한인들이 미국사회에서 주류는 되지 못하더라도 자기 목소리를 낼 줄 알아야 류지호로서 도와줄 의미가 있고 때론 자신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동포들 걱정할 때가 아니라.... 뒤통수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지.’


고향을 떠나 멀고 먼 타지에서 살아가면서 동향사람을 경계해야 하는 것만큼 안타까운 것도 없다.

웨스트우드 JHO Company로 한인들이 꽤 자주 찾아온단다.

백 명의 한 명 정도만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류지호에게 인정을 호소하기 위해 찾아온 한인 사업가고 나머지 99명은 사기꾼이다.

위조되었거나 말도 안 되게 과장된 경력을 들이민다.

그런 걸 믿어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지능이 모라지 않을까 의심이 드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중국인이라고 하면 믿을 수 있을까.

도저히 똑똑한 한국인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사기 수준이 낮다.

게다가 해외까지 와서 한인들 사이에서 뭐가 그리도 정치질이 심한 것인지.


‘편 가르기 못해서 죽은 귀신이라도 붙은 건지..... 게다가 나이 먹어서 ‘감투‘에 왜 그렇게 집착을 하는 건지....’


나하고 성향이 맞는 사람, 나하고 친한 사람, 나와 맞지 않거나 안 친한 사람, 그렇게 무리와 선을 긋고 편 가르기를 한 다음 정치질이나 쓸데없는 심리전을 한다.

UCLA의 한인학생회에서 파벌을 나눠 서로 싸운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심지어 교회에 다니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는 사람들도 그런다.

한인이민자가 몇 백만 명이 되는 것도 아닌데 무슨 협회나 단체는 그리 많은지.

한국 본토에서야 지지고 볶든 말든 그럴 수도 있다고 치고, 멀리 타국에까지 와서 동포들끼리 편을 가르는 것을 보면 답답한 것을 넘어 한심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기적이고 나쁜 한국이민자는 소수다.

그런데 그런 소수의 한국인들 때문에 죄 없는 수많은 한인들이 피해를 입는다.


“같은 국적이라고 해서 내 편은 아니야.”

“신뢰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생기는 게 아니잖아. 그것이 동포라고 해도.”

“동포라고 해서 자기 먹을 걸 막 공짜로 주지 않아.”


외국생활 경험이 적은데다가 나이까지 젊은 류지호에게 사람관계에 있어서 신중하게 처신하라는 조언들이다.

그나마 미국에서 류지호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한인동포 어른 몇 사람이 해 준 말이다.

정 없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미국이란 곳이 류지호가 잠깐씩 들러서 업무만 보고 돌아가는 곳이라면 미국 내 한인동포에 대해 고민을 안 한다.

한국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곳이 LA이며 뉴욕이 될 것 같으니까.

자신의 우군이 되어줄 이들을 찾다보니 한인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도착했습니다. 보스.”


퀸즈 지역을 통과한 차량이 맨해튼 32번가의 한 레스토랑 앞에 멈췄다.

제법 많은 한글 간판들 사이에서 영어로 된 간판이 걸린 스테이크하우스로 류지호가 들어갔다.

K-타운 내에서 제법 유명한 레스토랑이다.

예약된 테이블에는 ParaMax Flims의 알버트 마샬 사장과 고언 형제가 담소를 나누고 있다.

3년 만의 재회에 뜨거운 환영을 받을 줄 알았다.

두 형제는 간단한 안부만 물을 뿐.

좋게 말하면 ‘쿨‘하고, 사실대로 말하면 ’정’ 없다.

음식을 주문한 이후로도 류지호와 알버트 마샬이 대화를 주도했다.

분위기가 너무 건조해서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다.

류지호가 참지 못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조엘, 다음 영화 계획은 뭐에요?”

“후우.”


조엘이 대답 대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허드서커 대리인>이 어떻게 됐는지 못 들었어?”


형의 말에 동생 에단이 냉소적으로 말했다.


“Box Office Bomb~”


할리우드 업계 용어다.

말 그대로 박스오피스에서 폭탄 맞은 상황이란 의미다.

즉 흥행참패작들을 묶어 부르는 말이다.

고언 형제가 야심차게 준비한 <허드서커 대리인>이 박스오피스 폭탄을 맞고 말았다.

3,000만 달러 예산을 쓰고도 북미에서 28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것에 그치고 말았다.


“정말 우리 형제의 상황을 몰라서 그러는 거야?”


에단 고언의 물음에 류지호가 대답 대신 되물었다.


“상황이 어떤 데?”

“나와 형은 다음 영화를 생각할 정도로 여유롭지 않아.”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렇다고 영화 안 할 거야?”

“너무 큰 데미지를 입었어. 우리 두 사람은.... 후우.”

“뭘 새삼스럽게.... 조엘?”

“왜?”

“지금까지 두 사람 영화로 돈 벌어본 적 있어요?”

“.....!”

“괜히 낙담한 척 하지 말고, 다음 영화 합시다.”

“자그마치 3,000만 달러를 잃었어.”

“그거야 그들 사정이고. 일단 이전의 프로덕션은 내버려두고, 새로 독립 프로덕션 하나 만듭시다.”


조엘 고언이 류지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었어요? 계획이 뭐였는지 말해 봐요.”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했지.”

“가서는요?”

“글쎄....”

“도망가는 거예요?”


조엘 고언이 발끈했다.


“도망이라니!”

“그렇다면 왜 고향으로 가려고 했죠?”


류지호는 형제가 왜 고향으로 돌아가는지 잘 알고 있다.

모르는 척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좀 쉬려고. 할리우드는 정말.... 지긋지긋해.”

“영화는요?”

“언젠가 다시 하게 되겠지.”

“고향으로 가서 친구들과 맥주도 마시고, 아무 생각하지 말고 놀아 봐요. 독서도 좀 하고, 가족들과 시간을 갖는 것도 좋겠네요. 단 나와 프로덕션은 만들고 가요.”

“동정? 연민?”

“팬이라고 했잖아요.”

“왜 우리에게 잘 해주지?”

“두 사람이 만든 영화를 앞으로도 계속 보고 싶으니까.”

“네가 방금 그랬잖아. 우리 영화로는 돈을 못 번다고.”

“못 벌 면 어때요?”

“....뭐?”


형제의 표정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막상 대놓고 돈 못 버는 영화를 찍는 감독이란 말을 듣게 되니 기분이 나빴다.


“내가 쿠엔 태런티노에게 독립 프로덕션을 만들어 준 거 알죠?”

“......”

“쿠엔이 찍은 <펄프 픽션> 어땠어요?”


에단 고언이 나쁘지 않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골 때리는 영화가 첫 주 박스오피스가 어떻게 되는 줄 알아요?”

“......?”

“900만 달러.”


시종일관 냉소적인 표정을 짓고 있던 조엘 고언의 표정이 놀람으로 바뀌었다.


“다음 주에 제작비를 모두 회수할 것 같네요.”

“태런티노는 재능이 있어. 그의 영화는....”

“두 사람은요?”

“......”

“<바톤 핑크> 때 비평과 관객 리뷰가 어땠죠? 천재가 나타났다고 하지 않았나요?”

“.....”

“두 사람은 워너-타임 같은 메이저 스튜디오와 작업을 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예전에 나의 사람들과 <바톤 핑크>할 때 어땠어요? 나름 대화가 통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니었나요?”


고언 형제는 류지호가 자신들 영화를 어떻게 존중했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다.

블라인드 시사 때 트라이-스텔라 픽처스 임원들이 편집을 바꾸자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그때 나서서 내버려두라고 했던 사람이 류지호다.

유명한 감독 출신 프로듀서들도 류지호처럼 하지 않는다.

스크립트부터 간섭하기 시작해서 최종 편집본을 수정 강압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스튜디오 시스템이다.

스티븐 아들러가 프로듀서로 나설 때도 마찬가지다.

어떤 경우에는 감독출신들이 더 지독하게 군다.


“고향에 가서 다른 직업을 알아보든. 그곳에서 소소하게 영화를 찍으면서 살 든. 가기 전에 나와 뉴욕에서 독립 프로덕션 만들어 놓고 가요. 언제든지 제대로 영화가 찍고 싶어지거든 ParaMax로 스크립트를 가지고 와요. 내게 다이렉트로 전달될 겁니다. 나는 조엘 그리고 에단과 언제든지 영화에 대해 대화를 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류지호가 단정을 지어버렸다.

형제의 시선이 가만히 음식을 입으로 가져가는 알버트 마샬에게 향했다.

형제의 눈이 ‘당신 생각도 마찬가지냐’ 물었다.

알버트 마샬이 샴페인 한 모금을 마신 후에 입을 열었다.


“1,000만 달러가 넘어가는 예산은 내부적으로 의견 조율을 해야겠죠.”


그 이하라면 언제든지 그린라이트를 켜줄 의향이 있다는 의미다.

형제가 서로의 눈을 마주쳤다.

류지호가 쐐기를 박았다.


“이런 비즈니스는 세상 어디에도 없어요. 기회가 왔을 때 잡아요.”


에단이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픽.


조엘은 다소 어이가 없다는 듯 웃어버렸다.


“나만 믿어요. <바톤 핑크>를 함께 했던 그 예전의 내가 아닙니다."


형제도 신문과 뉴스를 봐서 안다.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의 사세가 그 사이에 얼마나 확장했는지.

맞은편에 앉아있는 자신만만한 청년은 수년 전의 그 애송이가 결코 아니다.

그 사이 할리우드 거물이 되었다.


"계약서 보내 줄 테니까 변호사와 검토해 봐요. 프로덕션 이름도 미리 생각해놓고.”


며칠 후.


ParaMax Films 뉴욕 사무실에서 고언 형제와 류지호는 독립 프로덕션 설립과 관련한 계약서에 서명했다.

Zoss Productions.

고언형제가 설립한 독립프로덕션의 이름이다.

미네소타 토박이인 형제가 어릴 때부터 친숙하게 보아왔던 약국인 Mike Zoss Drug에서 따왔다.

쿠엔 태런티노의 A Band Apart Films에 이어, ParaMax에게 각종 국제영화제와 아카데미 수상 영광을 선사해줄 또 하나의 제휴영화사가 탄생했다.

고언형제는 쿠엔 태런티노와 달리 돈을 벌어주지는 못할 것이다.

상관없다.

고언형제의 영화 IP(지적저작권)로 TV시리즈를 제작하면 되니까.


‘2000년대 OTT를 내다보면 성공한 IP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고언형제의 Zoss Productions과 ParaMax가 10년짜리 장기제휴 계약을 맺기 전 이다.

디멘션 필름으로 엉성한 공포영화 스크립트가 들어왔다.

<Scary Movie>이란 타이틀이 달려 있었다.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이 쓴 슬래셔 장르였다.

알버트 마샬 사장은 잔인한 장면이 너무 많아서 탐탁지 않아 했다.

하비 웨인스타인의 동생이자 디멘션 필름의 사장인 보브 웨인스타인이 류지호에게 스크립트를 보냈다.


“<무서운 영화>가 아니라 <스크림> 아닌가....?”


류지호는 혹시 몰라서 스크립트를 여러 번 읽었다.

패러디 영화 <무서운 영화>가 아니었다.

마이키 잭슨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직설적인 욕설을 사용한 노래 'Scream'에서 착안해 제목을 교체한 능글맞은 공포영화 <스크림>이었다.

스팩 스크립트의 타이틀이었던 <Scary Movie>가 <스크림>으로 바뀐 것은 각색 과정에서 스튜디오의 요구 때문인 모양이다.


“계약하세요.”

“배급은....?”

“ParaMax에서 하겠죠. 아예 속편까지 계약해 둬요.”

“......!”

“새로운 작가를 고용해서 스크립트를 보완하도록 하고. 기존 타이틀 권리도 등록해 두세요. 나중에 써먹을 수도 있으니까.”


<무서운 영화>는 <스크림>이 흥행에 성공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될 영화다.

프랜차이즈 시리즈가 가능한 <스크림>이 확보됨으로써 디멘션 필름 역시 2000년까지 별 무리 없이 굴러갈 것 같았다.

참고로 디멘션 필름은 <헬레이저>, <Children of the Corn>, <The Crow>, <하이랜더> 시리즈 등 케이블TV와 홈비디오에서 쏠쏠한 재미를 보는 저예산 프랜차이즈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공포·호러 장르가 하락세를 타긴 하겠지만.

큰 욕심 부리지 않는다면 회사를 운영하는데 크게 어려움은 없어 보였다.


‘밀레니엄 이후는 그때 가서 고민해보는 걸로.....’


❉ ❉ ❉


류지호가 보기에 뉴욕커들은 사람이 많이 모여야 파티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뉴욕에서 파티라고 하면 조촐한 파티는 없는 것 같았다.

그런 파티 가운데 상위 몇 퍼센트 안에 들어가는 사람들끼리 친목을 다지는 사교모임도 여럿 있다.

미국에서는 명문대 중심으로 사교클럽이 활성화돼 있다.

UCLA에도 소위 잘나가는 학생들만의 사교클럽이 존재했다.

예일, 하버드, 프린스턴 등 아이비리그 남성 중심의 사교클럽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하버드대의 ‘파이너스 클럽(Finer's Club)’은 미국 사회지도층이 될 만한 학생들이 모여 사교를 즐기는 클럽으로 유명했다.

이 클럽은 기존 회원의 추천으로만 들어갈 수 있다.

회원 명단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 있다.

아이비리그 졸업생들이 만든 ‘르네상스’ 클럽은 미국 사회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미국의 정치·경제·문화의 대표적인 대도시에는 그들만의 사교클럽이 존재한다.

미국의 엘리트들은 대학 졸업 후 사회로 나오면 또 다른 사교클럽들에 끼기 위해 노력한다.

뉴욕에는 ‘카본(Carbon)’이 대표적인 사교클럽이다.

부자들만 모이는 이 클럽은 가입조건에 최소 100만 달러 이상의 연봉을 받아야 1차 심사를 통과할 수 있다.

월가의 젊은 부자나 잘나가는 예술가 등이 주요 회원이다.

약 300명 정도가 정식 회원인 것으로 알려졌을 뿐이다.

회원 정보는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있다.

매튜의 권유로 류지호가 처음으로 카본에 참석했다.

막상 파티에 초대되었지만, 아는 사람은 몇 사람 없다.

그레이엄 가의 장남 앤서니 그레이엄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마치 어린 사자들의 왕인 것처럼 무수히 많은 영 앤 리치들에게 둘러싸여있다.

제임스 파커 부부도 참석했다.

하비 웨인스타인도 뉴욕에서는 나름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는 모양이다.

극장체인 MovieMark의 케일 미첼은 여전히 앤서니 그레이엄의 가신처럼 주위를 얼쩡거리고 있다.

친분은 없지만 낯익은 인물들도 많았다.

토머스 행스, 메그 리온 같은 할리우드 톱스타에서부터 신시아 크로포드 같은 패션모델도 파티를 즐기고 있다.

월가 증권맨, 뉴욕의 비즈니스맨, 정치 초년생, 잘나가는 예술가, 대중문화 종사자들이 넓은 홀 안에서 와인이나 샴페인 잔을 들고 사람들을 옮겨 다니며 열심히 사교를 쌓고 있다.

이런 파티에서는 친한 사람끼리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모르는 누군가 다가와서 또는 생전 만난 적이 없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면 누구라 할 것 없이 먼저 인사를 건넨다.

눈이 서로 마주치게 되었는데 그냥 지나가는 파티 참석자는 거의 없다.


“안녕.”

“만나서 반가워.”


서로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은 뒤 바로 대화는 시작되었다.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한다는 것이 불편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파티 문화에 익숙해진 류지호는 자연스럽게 첫 대화의 문을 열었다.


“재미있는 시간 보내고 있어?”

“응.


어느 정도 짧은 이야기를 주고받던 상대는 마치 잊었다는 듯.


“참, 난 빌리라고 해.”

“지호.”


어려운 이름이 아니기에 파티 참석자들이 이름을 곧잘 따라했다.

계속해서 친분을 유지할 법한 사람에게는 애칭인 ‘Jay'로 불러달라고 했다.

과연 이 파티에서 애칭을 부르도록 허락할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마는.

암튼 자신을 증권맨이라고 소개한 남자는 본격적으로 대화가 시작되자, 금세 음담패설을 늘어놨다.

그때 하비 웨인스타인이 늘씬한 여성과 함께 류지호에게 다가왔다.


“지호.”

“하비. 잘 지냈어요?”

“나야 잘 지내고 있지. 하하.”


하비 웨인스타인은 빌리와 통성명한 후에 함께 온 여성을 소개했다.

몇 편의 영화에서 본 것 같은 여배우다.

이름을 들었는데 기억에는 없었다.

하비 웨인스타인이 끼어들자, 음담패설의 농도가 짙어졌다.


“만약 와이프가 너희와 잘 수가 없다면, 어떻게 처리할 거야?"

"자기가 입으로 해주면 안 될까?"

"물론 가능해, 문제는 당신이 그것으로 만족을 하느냐는 것이지. 어때? 만족할 수 있겠어?"

"만족하도록 노력해야지."

"호호호. 나야 좋지만, 그러다가 당신이 나 원망하는 것 아니야? 욕구를 제대로 못 풀었다고?"

"그래서? 그렇게 해주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자기 하는 거 봐서."


세 사람이 하하 호호 웃음을 터트렸다.

류지호는 웃는 둥 마는 둥 했다.

하비 웨인스타인이 류지호에게 바짝 다가와 귀에 속삭였다.


“마음에 드는 아가씨 없어?”

“파티는 이제 막 시작되었어요.”

“혹시라도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내게 말해. 내가 전적으로 응원해 줄 테니까.”


영 앤 리치들이 모이는 파티의 은밀한 부분이다.

이런 파티에서 월가의 젊은 부자들과 패션모델 혹은 신인여배우가 눈이 맞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몇 년 후부터는 아예 월가의 젊은 부자들과 여자연예인을 연결시켜줄 목적의 파티가 매달 열리기까지 한다.


“내가 숙맥으로 보여요?”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며?”


류지호가 낸시와 헤어진 사실이 타블로이드를 통해 알려졌다.


“너무 계집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고 봐. 한 여자에 연연하지 말고, 다른 여자하고도 관계 해. 대신 관리를 잘 해야겠지. 너무 정도를 벗어나지는 마. 이미 너는 할리우드에서 누구나 알아보는 유명인이야. 절대로 가십거리가 되지는 말란 얘기야.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곧 우리의 사업과도 직결되는 이야기니 명심하고. 알겠지?"


‘네가 그런 말 할 주제냐!’


류지호는 터지나오려는 말을 꾹꾹 눌렀다.


"조언 고마워요. 하비. 난 이쯤에서 다른 친구들에게 가봐야겠네요.“


대화 상대들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인 류지호가 멀어졌다.

류지호는 파티장을 천천히 돌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한 명을 알게 되면 그를 통해 또 다른 사람을 알게 되었다.

류지호도 마음에 드는 사람을 알게 되면 그를 새로운 사람에게 소개했다.

낯선 파티는 점점 류지호와 친숙한 사람들이 많은 파티로 발전해 갔다.

수년 전 뉴욕사교계에서 혜성처럼 등장했던 몸이다.

그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위상에서 큰 변화가 있었다.

파티 물관리 차원에서 동원된 여자 모델이나 여배우들은 류지호와 통성명이라도 나눠보기 위해 애가 닳았다.

그런 가운데 파티 내내 류지호를 따라다니는 시선이 있었다.


“.....”


케일 미첼은 류지호가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폈다.

무슨 기준으로 파티 참석자에게 대화시간을 할애하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알아두면 좋을 사람은 짧게 지나치고 별 볼일 없는 사람과는 제법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곤 한다.

도무지 그 의도가 읽히지 않는다. 류지호와는 결코 좋은 첫 만남은 아니었다.

케일 미첼로서는 매우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지금에 와서 자신과는 비교가 되지 않은 위상을 가진 것이 류지호다.


‘.....친구.’


케일 미첼이 단어 하나를 중얼거리며, 쓴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좋은 친구, 나쁜 친구란 없다.

좋은 파트너 나쁜 파트너가 있을 뿐.

자신에게 도움이 되느냐 도움이 되지 않느냐.

오로지 그것만이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의 오너인 류지호는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다.

극장체인 사업을 하는 미첼 집안 입장에서는 관계를 돈독히 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자신의 포지션과 태도를 명확했다.


“이안, 나와 함께 저 쪽으로 가자.”


영국출신의 영화감독 이안 디클레인이 친구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았다.

동양인치고는 훤칠한 신장의 청년이 토머스 행스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누군데?”

“트라이-스텔라의 오너.”


더 이상 말을 보탤 필요가 없다.

이안 디클레인이 케일 미첼까지 내버려두고 먼저 류지호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미스터 류.”


토머스 행스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류지호가 고개를 돌렸다.

류지호는 기분이 상했다.

하지만 티를 내지 않고 인사말을 건넸다.


“케일 미첼씨, 오랜 만입니다.”


류지호와 악수를 나눈 케일 미첼이 토머스 행스와도 인사를 나눴다.


“톰, 영화촬영은 잘 마무리했습니까?”

“정말 힘든 경험을 했죠.”


토머스 행스는 얼마 전 <아폴로13> 촬영을 마쳤다.

추수감사절을 보내기위해 뉴욕에 왔다가 파티에 초대를 받았다.


“이번 영화도 기대가 큽니다.”

“하하하. 기대해도 좋습니다.”

“여기는 이안 데클레인이라는 친굽니다. 영국에서 왔습니다.”


이안 데클레인은 다음 달에 맨해튼에서 안젤리나 보이트가 출연하는 <해커스>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안 데클레인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미스터 류가 트라이-스텔라의 그 유명한 오너입니까?”

“유명한지 어쩐지는 모르겠습니다.”


미묘하게 변하는 류지호의 표정을 확인한 매튜가 얼른 끼어들었다.


“이안, 나는 Garam Invest라는 투자회사의 CEO 매튜 그레이엄입니다.

“반갑습니다.”


매튜와 이안이 악수를 나누자, 케일 미첼이 입을 열었다.


"이안은 영국에서 꽤나 촉망받는 감독입니다. 이번에 UA(유나이티드 아티스트)가 투자·제작하는 영화를 직접 기획하고 연출까지 하고 있죠.“


일행은 사소한 잡담을 좀 더 나누다가, 본격적인 영화 이야기로 들어갔다.

주로 류지호와 토머스 행스가 대화를 나눴다.

트라이-스텔라와는 <필라델피아>를 함께 작업한 인연이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처음 만났더라도 서로 어색한 부분이 전혀 없었다.


“<지구에서 달까지>는 기획만 되어있는 상태에요?”

“TBO와 논의 중이야.”


Television Box Office.

워너-타임 엔터테인먼트 산하 프리미엄 채널이다.

류지호는 ‘미드의 본좌‘ 채널로 기억하고 있다.


“톰이 제작만 해요? 아니면 연출도?”

“모르겠어. 일단 각본을 함께 쓸 계획이야.”


토머스 행스는 <아폴로13>을 촬영하며 그와 관련된 다큐드라마를 기획했다.

영화 홍보에도 좋고 토머스 행스의 연출 수업도 쌓고.


"아무래도 프로젝트를 진행 하다보면 중간 중간마다 고비가 있잖아요. 그럴 때는 언제든지 저나 트라이-스텔라의 메타보이씨한테 전화 하세요. 부족한 자금을 얼마든지 지원해 줄 테니까.“


류지호의 말에 함께 대화를 나누던 일행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경험부족에 오는 철부지 호언장담일까.

말을 내뱉은 류지호의 표정은 매우 여유롭고 태연했다.


“나와 오늘 처음 만났어.”

“톰은 <필라델피아>로 트라이-스텔라에 오스카 트로피를 선사했어요. 우리가 앞으로도 함께 많은 일들을 해 나갈 거라 믿어요.”


할리우드 업계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류지호가 그린 라이트를 켠 영화에서 실패가 단 한편도 없다는 것을.

또한 창작자들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류지호는 이런 인연을 통해 향후 토머스 행스가 기획하거나 연출 혹은 제작에 참여하는 영화에 끼어들 단초를 마련할 생각이다.

당연히 토머스 행스 입장에서도 거물급 비즈니스 파트너를 얻을 수 있는 기회였고.


“<해커스>는 주요 로케이션이 뉴욕입니까?”


이안 데클레인의 말투가 공손해졌다.


"그, 그렇습니다. 나이트클럽 장면만 런던에서 촬영하고, 대부분은 맨해튼 주변에서 촬영할 계획입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다시 볼 수 있는 날을 학수고대 하겠습니다.”


파티 참석자 대부분이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젊은 비즈니스맨들이었지만, 연예계 인사들도 상당했다.

서로 관심사가 같은 경우 대화를 풀어가기가 수월했다.

파티가 막바지로 접어들 때 케일 미첼이 류지호에게 다가왔다.


“미스터 류.”

“파티는 재밌었습니까?”

“나름대로. 언제 나와 식사를 하지 않겠어?”

“.....식사?”


류지호는 무슨 수작인가 싶어 말을 아꼈다.


작가의말

덥습니다. 비는 언제 오는 것인지... 건강 유의하시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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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Personacon 霧梟
    작성일
    22.07.12 09:17
    No. 1

    미국은 진짜 네트워킹 네트워킹… 뭐 우리나라도 그렇긴 하겠지만 여긴 거의 모든 화이트 칼라 직업은 네트워킹이 빠지질 않음…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99 요리선생
    작성일
    22.07.12 09:41
    No. 2

    마른장마와
    7월 폭염 내지는 국지성 집중호우.
    수년 이런 패턴의 애매한 건조성 기후가
    되풀이 되네요.
    정말 이러다 과거식 장마는 시라지나?
    지구 온난화라고 하더니만
    이처럼 우리생활에 직접적 변화와 영향을
    끼칠지 몰랐네요.
    환경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2.07.12 18:57
    No. 3

    잘 보고 있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무한땅꼬마
    작성일
    22.07.13 17:29
    No. 4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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