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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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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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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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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1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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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나만 잘 먹고 잘 살려는 게 아닙니다. (3)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미국 영화과에서도 가르쳐 주지도 않는다.

돈 주고도 못 배우는 것들이다.

아직 누구도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할리우드 선진 시스템을 충무로에 적용하는 것이다.

쉬울 리가 없다.

여전히 7~80년대에 머물러 있는 충무로 제작환경에 비춰봤을 때, 대부분 적용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해야 한다.

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시행착오가 많을 것이다.

특히 회계투명성만큼은 반드시 틀을 잡아야 한다.

영화계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서 간이영수증이 일반적으로 쓰인다.

간이영수증 장난질이 일상화되어 있다.

체크카드가 본격적으로 출시되기 전이다.

신용카드가 1천만 장이 발급되었다곤 하지만, 여전히 현금거래가 많다.

충무로에서 신용카드로 진행비를 결제하는 회사는 WaW 픽처스가 유일하다.

영화 회계에서 정확한 용처도 알 수 없는 큰 비용이 제작비에 슬며시 얹히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회계를 담당하는 제작부에게 설명하라고 하면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하기 일쑤다.

충무로 관행을 모르면 속아 넘어가기 딱 좋다.

극장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서울의 메인 극장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영화를 상영해주는 조건으로 뒷돈을 요구한다.

몇 백만 원에서 1천만 원까지 액수도 천차만별이다.

일명 ‘표치기’라고 하는 불법도 만연해있다.

입장표를 계속 돌려 영화사나 배급사로 돌아가야 할 수익을 가로채는 것이다.

‘표치기‘나 극장의 회계조작을 감시하기 위해서 매번 제작부가 극장 매표소에 파견 나가 감시를 하곤 했다.

전산시스템을 갖춰야 그나마 그 같은 비리가 없어진다.

WaW 픽처스 혼자서 전산시스템이나 선진 회계시스템을 정착시키는 것은 무리다.


“저희가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도 해외로 내보낼 만한 작품을 선보일 자본과 역량이 없어요. 단시일 내에 되는 것도 아니고. 해외에서 인정받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제 소망이기도 하지만 충무로의 소망이기도 해요. 하지만 쉬울 리 없잖아요.”

“곧 와요.”

“언제요?”

“늦어도 십년 안에.”


디지털 영화가 본격화 되면.

영화분야에서 디지털 혁명은 준비가 되어 있는 자들에게는 축복이다.

그 준비된 국가 중에 하나가 한국이었다.

준비라는 것이 디지털 인프라와 시스템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창작력과 인력풀이 준비가 되었다는 의미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류지호라는 선구자로 인해서.


“영화나 TV드라마, 음악 같은 대중문화 콘텐츠를 전 세계적으로 유통, 배급하고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나라는 미국이 거의 유일해요. 프랑스나 영국, 일본도 못하는 거라구요.”

“그들 나라들이 못한다고 해서 우리도 못한다는 법 없습니다. 우리는 일본보다 산업화가 100년이 늦었지만, 첨단제품인 반도체를 만들어서 파는 나라가 됐습니다. 영화는 그에 비하면 양반이죠. 서구에 비해 20년 늦게 시작했을 뿐이니까.”

“우리가 너무 앞서 가서 공공의 적이 될까봐 그렇죠.”

“일등은 등 뒤에 2등과 3등을 달고 달리는 숙명이 있어요. 그들 대신 홀로 온 바람을 맞는 겁니다. 당연히 등 뒤에서 호시탐탐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려고 기회를 노리는 후발주자들도 신경 써야 합니다. 어렵고 힘들다고 포기할까요?”

“확 치고 나가서 독주를 하면 되잖아요.”

“경쟁 없이 멀리, 오랜 시간 뛸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에서 달리는 사람은 뒤에서 호시탐탐 일등을 노리는 주자들 때문에, 또 후발주자들은 앞서가는 선두를 따라잡기 위해 힘을 내는 법입니다. 경쟁 없이는 발전도 없고, 완주도 불가능합니다.”

“너무 급진적인 변화는 사람들에게 반감을 불러올 거예요.”

“반대하는 사람들은 오로지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자들. 그들 몇몇이 영화판을 좌지우지 하던 시대는 끝났어요. WaW가 아니더라도 충무로는 어떤 식으로든 변혁을 맞이하게 되어 있어요.”


할리우드 직배사들이 한국영화계에 자리를 잡으면서, 그 동안 한국영화의 제작비를 책임지던 흥행업자들의 입지가 확연하게 줄었다.

그 여파로 충무로에서 돌던 자본의 씨가 말라갔다.

신강PD 같은 1세대 기획 프로듀서들이 대기업 자본을 충무로로 끌고 들어왔다.

또한 WaW 픽처스가 본격적으로 한국영화 투자를 시작했다.

마침내 간만 보고 있던 대기업들이 일제히 영화판으로 자본을 투사하기 시작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소수의 영화인과 흥행업자들이 충무로를 쥐락펴락했다.

WaW 픽처스가 투자의 포문을 열고 대기업이 속속 영화에 투자하기 시작하자, 점차 기존 권력의 영향력이 좁아지고 있다.

그 동안 기회에 목말라 있던 젊고 역량 있는 영화인들은 대기업 자본을 반기며 전에는 감히 시도하지 못했던 소재와 메시지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묵묵히 류지호의 말을 듣고 있던 박건호 대표가 입을 열었다.


“대유와 오성의 움직임이 특히 심상치 않습니다.”

“재벌 대기업이 충무로에 들어온다고 해서 겁먹을 것 없어요. 그들이 모든 역량을 영화 사업에 집중하는 것도 아니고. 아마도 내년에 개국할 케이블 방송에 집중하고 있을 겁니다. 당장 극장업으로 진출하지도 않을 거고. 영화 제작보다는 저작권 확보와 배급에 더 관심을 많을 것이고, 서울 두세 군데 극장을 장기임대하는 방식으로 배급망을 깔기 시작할 겁니다. 동우 왕 회장님의 주선으로 대유미디어사업부 실장과 저녁을 먹으면서 확인한 내용이죠.”


오동석이 의아하다는 투로 물었다.


“대기업이 멀티플렉스를 만들지 않고, 기존 극장을 임대한단 말입니까?”

“한국영화시장이 1천억 조금 넘는 걸로 알고 있어요. 단관극장 하나 세우는데 최소 20억 정도 들어가죠. WaW처럼 복합상영관을 만들려면 150억 이상 투자해야 하죠. 한국영화 시장이 언제 얼마만큼 성장할지 모르는데, 선뜻 100억 원을 투자할 리가 없어요. 재벌 당사자가 지독한 영화 마니아라면 모를까.”

“그렇다면, 한국영화에 대한 투자 역시 그 규모는 그리 크지 않겠네요?”

“충무로 내부에서도 대기업 자본을 놓고 이해득실이 엇갈리지 않겠습니까? 기득권은 대기업 자본이 들어오는 걸 탐탁지 않아 할 것이고, 맨몸으로 뛰어든 젊은 영화인들은 환영하겠죠. 당장은 케이블 채널과 비디오 콘텐츠용으로 두어 편 맛보기로 투자를 하지 않을까 싶네요. 박 대표님 생각은 어때요?”


박건호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감독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대기업이 들어와서 영화를 아무리 많이 만들어도 극장이 쉽게 방화를 걸어줄 리가 없습니다. 극장입장에서는 방화보다는 할리우드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 돈이 되니까요. 올해 프린트 벌수 제한이 풀린 후 배급 상황을 유심히 지켜봤을 겁니다. 감독님 말씀처럼 내년에 서울의 중소극장 몇 군데를 확보한 후 WaW나 직배사들의 행보를 흉내 내서 전국적 배급망을 깔아보려고 할 겁니다.”


고개를 가볍게 끄덕여 보인 류지호가 말을 이었다.


“오성, 대유, 금성보다 백설과 올리온을 주시해 주세요.”

“백설이면... 오성그룹에서 분리해 나온 식료품 사업하는 백설제당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무슨 정보라도?”

“스티븐 아들러 감독이 친구들과 DreamFactory라는 스튜디오를 만든 건 다들 알죠?”


참석자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 명의 동업자가 각각 지분 10%를 매입하고, 남은 부분은 PS의 폴 가드너가 출자를 한다더군요. 5억 달러 규모라고 들은 것 같아요. 그러고도 남은 지분은 전 세계 다국적기업에게 참여할 기회를 주기로 했답니다.”

“감독님도 참여하셨습니까?”

“아쉽지만 그쪽에서 거절했어요.”

“왜요?”

“트라이-스텔라 같은 할리우드 영화사나 미국 내 자본을 제외시켰답니다. 가능하면 소닉 같은 글로벌 기업이 투자해주길 바란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WaW가 들어가죠?”

“WaW 자체적으로 3억 달러 투자할 수 있겠어요?”

“2,500억 원은... 좀 많이 무리네요.”


기대감에 들떠있던 오동석이 순식간에 풀이 죽었다.


“한국의 기업으로는 경일그룹만 주식매입 의견을 타진했다고 하더군요.”

“백설이나 올리온이 DreamFactory에 투자할거라고 보십니까?”

“아마도요. 오성의 회장이 영화와 자동차광으로 유명하잖아요. 소닉과 마쓰시타가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를 인수한 것처럼 자신도 하고 싶겠죠. 오성에서 오라이언 픽처스 인수 간을 본 적이 있었고. 그때는 오라이언의 재무상황이 워낙 개판이어서 간만보고 빠졌지만, DreamFactory는 처음부터 시작하는 거니까 관심을 가질 수 있겠죠.”

“백설제당이 아니고 오성입니까?”

“아. 제가 두서없이 설명했네요. DreamFactory 창립멤버 중에 두 명은 경영보다는 창작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이죠. 그들의 자존심을 생각해보면 예술과 전혀 연관성 없는 반도체와 가전으로 유명한 기업에서 투자를 받을 것 같지 않아요. 아마 실무진도 오성그룹이 얼마나 대단한 기업인지에 대해 어필을 하면 했지 대중문화와 영화예술에 대해 말이 통할 것 같진 않네요.”


오성영상사업단의 실수를 반면교사로 삼아 백설제당 남매는 맞춤형 전략을 수립해 DreamFactory의 창립자들과 협상을 벌이게 된다.


“백설제당의 2세가 신사업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데 그것이 엔터테인먼트 사업이 될 거라고 하더군요. 내년에 케이블 방송도 개국할 예정이고. 범오성가는 과거에는 가지고 있었지만 현재는 없는 것이 있죠.”

“오성도 못 가진 것이 있습니까?”

“방송통폐합으로 방송국을 포기했어야 했잖아요. 오성가의 형제 사이가 썩 좋지는 않다고 하지만 백설제당이 엔터테인먼트로 진출하는 것을 내심 반길 수도 있어요. 오성의 회장이 일본유학시절 영화광이었다고 하니까.”

“막강한 경쟁자의 등장 아닙니까?”


류지호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무시할 수 없는 경쟁자가 드디어 한국 영화판에 들어오는 것이죠.”


긴장감 하나 없는 류지호에게 의아한 시선이 쏟아졌다.

류지호는 미국의 준메이저 스튜디오를 소유하고 있으니 눈 하나 깜짝 안 할 수 있겠지만, 자신들은 생존이 걸린 경쟁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뭐 어차피 들어올 대기업이고, WaW는 DreamFactory가 아쉬울 게 뭐가 있겠어요. 걔들이 일 년에 제작·배급을 해봐야 많아야 다섯 편이 될까. 그걸 다 오성이든 백설이든 한국에서 독점 배급한다고 해도 별로 위협적이지 않을 것 같네요.”


WaW 픽처스는 류지호의 트라이 스텔라 계열 영화사들로부터 원하는 만큼 영화를 독점으로 사오거나 배급대행을 할 수가 있다.

UPI 정도 라인업을 갖출 순 없겠지만, 미국 직배사가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을 WaW 픽처스가 가지고 있는 것도 있다.

바로 한국영화다.


“내년에는 첫 번째 멀티플렉스 극장도 가지게 될 거고요. 그렇죠?”


보통 한 극장에 8개 스크린 이상을 가지고 있을 경우에 멀티플렉스라고 칭한다.

현재 최다 스크린으로 영업하는 극장은 6개관을 운영하는 강남시티극장이다.

내년 WaW 픽처스 가 개관하면 최다 스크린 보유 타이틀을 내주게 되겠지만.


“백설이나 올리온 또는 다른 한국 대기업이 할리우드 스튜디오와 손을 잡을 경우 무서운 것은 라인업이 아닙니다.”

“그럼 뭐가 무서운 겁니까?”

“대기업은 수십 년간 사업을 하면서 갖춘 경영과 관리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요. 거기에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을 배워, 자신들만의 시스템을 만들 거라는 거죠. 대기업의 직원들은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만 모를 뿐이지 여러분보다 훨씬 빠른 시간에 메이저 스튜디오 시스템을 익히겠죠. 그들의 노하우까지도.”


오동석이 중얼거렸다.


“대기업이니까 똑똑한 놈들이 많긴 하겠네.”

“지금까지 다소 중구난방으로 이야기 한 것에 핵심은... 우리가 앞서가는 것 같아 보여도, 후발주자보다 겨우 반발 앞서 있다는 겁니다. 시스템이든 자본이든 인력 풀이든. 모든 분야에서.”


당연히 류지호가 WaW 픽처스에 적용하는 시스템들은 추후 백설과 광성 같은 후발주자도 똑같이 적용하게 된다.

류지호가 기억하기로 백설제당 미디어사업부에서 영화제작예산운용 가이드라는 매뉴얼을 도입했었다.

당연히 DreamFactory에서 얻은 각종 할리우드 시스템에 자사 관리기법을 융합시킨 매뉴얼이었다.

수익금의 정산과 분배를 시스템화 하기도 했다.

멀티플렉스 체인을 갖추기 전부터 전산시스템을 도입해서 임대극장의 ‘표치기‘혹은 매표 부정행위를 근절시키기도 했다.

오성영상사업단과 백설그룹 미디어사업부는 초기 한국영화제작 매뉴얼을 정립하기 위해 나름 고생들을 많이 했다.

그 고생을 WaW 픽처스가 똑같이 하고 있다.

다른 점은 그들은 DreamFactory가 내주지 않은 중요 자료와 노하우는 습득하지 못했지만, WaW 픽처스는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가 전폭적으로 시스템을 전수해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와아! 정말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단 말이야.”


전하영의 갑작스런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이제 좀 어깨 힘주고 다니나 싶었더니, UPI보다 더 강력한 적이 나타난다는 거잖아. 좋아요. 우리가 똘똘 뭉쳐서 그들 모두 WaW의 발아래 둬 보자고요!”


사실 대기업과 WaW 픽처스는 모든 면에서 비교가 안 된다.

한국영화계만 놓고 볼 때 WaW 픽처스는 독보적인 위치다.

대기업의 영화계 진출에 대해 경계는 하되 지레 겁먹거나 근심할 필요가 없다.


“올해의 성공은 딱 크리스마스 때까지만 즐깁시다. 다시 전열을 정비해서 내년에 벌어질 피 튀기는 경쟁에 뛰어들어봅시다. 그리고 내년 이맘때 다시 한 번 축배를 들어봅시다. 이상입니다.”


박건호 대표가 회의종료를 선언했다.


❉ ❉ ❉


류지호는 잠시 다녀가려고 한국에 들어왔다.

일을 처리하다보니 생각보다 오래 머물게 됐다.

개강 전에 UCLA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바쁜 연말을 보내야 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비즈니스는 WaW와 기획 영화사들과의 파트너십 계약 체결이다.

류지호는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 독립영화사와 제휴계약을 맺는 것처럼 신강 PD를 비롯한 젊은 프로듀서들에게 WaW와의 제휴를 제안했었다.

그리고 수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다섯 개 영화사가 제휴 계약을 수락했다.


“무슨 계약서 만드는데 6개월이나 걸리는지....”

“한국과 미국이 다르니까. 그 차이를 조율하는 것이 쉬울 리가 있었겠어?”

“문제가 생기면 철저하게 계약서의 조항에 근거해 문제를 처리하는 게 미국 방식이잖아. 류 회장이 아무래도 미국물을 먹어서 그쪽 방식을 적용하려다 보니까 계약서 틀을 만드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너무 미국식 아닌가? 모든 조항을 이렇게 다 꼼꼼하게 기입하면 복잡하기만 하고....”

“제작사들이 한두 군데도 아니고, 앞으로 업계의 표준이 될지도 모르니까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더라.”

“류 회장이?”

"응.“


충무로에서는 투자사와 제작사가 6 대 4로 수익을 배분한다.

그러나 할리우드 제작사 입장에서 봤을 때 이는 말도 안 되는 조건이다.

류지호 역시 이 같은 일방적인 조건에 문제의식이 있었다.

그래서 WaW 픽처스와 각각의 영화사 별로 이 문제에 대한 조율이 필요했다.

이 부분에 대한 계약은 영화사별로 제각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미국식 수익분배를 원하는 이들이 있었고, 절충을 고민하기도 하고, 속편하게 기존 관행을 선선히 받아들인 이도 있다.


“할리우드는 일단 맡기면 창작의 자유는 보장한다고 하던데, WaW 역시 미국식으로 할 거지?”


유영택이 혹시 충무로의 관행처럼 영화 제작을 맡긴 뒤 간섭을 할 것인가를 꼼꼼하게 따졌다.


“창작자에게 맡기지 않아요. 잘 못 알고 있는 겁니다.”

“......”

“시나리오 수정과 최종 편집권은 모두 스튜디오가 가지고 있어요. 프로덕션 기간에도 스튜디오 담당 임원이 수시로 간섭하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미국식으로 할 거냐고?”

“여태 WaW가 어떻게 투자·배급했는지 보아왔잖아요. 예산과 관련된 부분만 따지고, 영화 창작에 관한 부분은 관여 안 해요.”


이 말에는 함정이 있다.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다.

예산에 관여한다는 말은 때에 따라서 창작을 제한할 수도 있다는 것이 된다.

예를 들어, 감독과 프로듀서가 1,000명의 엑스트라를 쓰고 싶다고 치자.

예산상 도저히 답이 안 나오는 경우가 생길 수가 있다.

그럴 때 노련한 충무로 프로듀서라면 융통성을 발휘한다.

다른 촬영스케줄에서 예산을 아껴 감독이 쓰고 싶을 때 물량을 쏟아 붓기도 한다.

할리우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미리 계획된 예산안대로 영화가 진행되지 않으면 라인 프로듀서(Line Producer)가 해고된다.

운영미스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다.

엑스트라 1,000명을 써야 한다면 미리 그런 계획을 세워서 예산서에 반영해야 한다.

만약 그런 사이즈를 동원할 영화가 아닌데 그런 억지를 부린다면, 그 또한 ‘난 영화제작 시스템을 잘 몰라요’라고 대놓고 실토하는 꼴이 된다.

그와 같이 할리우드는 융통성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분업화·전문화 시스템이다.

류지호는 할리우드처럼 빡빡하게 운영할 생각이 없다.

충무로만의 시스템을 만들어 가야 했다.

한국의 영화사들은 이번 제휴계약을 계기로 할리우드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접하게 된다.

많은 난관에 부딪힐 것이다.

충무로 관행에 익숙한 제작사들은 WaW 픽처스의 꼼꼼한 법률 검토에 부딪히는 일이 자주 벌어질 수도 있다.

어쩌면 WaW 픽처스와의 제휴를 깨고 대기업으로 발길을 돌릴지도 몰랐다.

이제 막 들어온 대기업은 영화 시스템을 모르기 때문에 한동안은 충무로에 끌려 다닐 것이기 때문에.


‘대기업 영화팀이 업계를 파악하고 나면 그때 가서 후회하게 되겠지.’


2010년 즈음부터 국내 투자사들의 창작에 대한 간섭이 갈수록 심해진다.

캐스팅 간섭, 시나리오 수정 강요는 기본이고 감독 또는 제작자의 고유 권한인 편집권까지 개입하는 사례가 빈번해진다.

80년대 지방흥행업자들에게 영화 창작자들이 끌려 다닌 나쁜 역사가 있다.

20년이 지나서 자본만 대기업으로 바뀐 상태로 반복된다.

류지호는 그런 불합리한 관행이 없어지길 진심으로 바랐다.

그래서 제휴와 관련된 표준계약서에 창작적인 부분까지 분명히 했다.


“앞으로 투자·배급은 이 계약서대로 행해진다는 거지?”

“프로듀서나 감독에게 창작에 관한 부분은 일임할 것이고, WaW의 시스템을 일방적으로 강요하지도 않을 겁니다.”


우노 필름(Uno Films)의 차성재 프로듀서가 걸걸한 목소리로 사정했다.


“회계부분도 조금 유도리있게 해줘.”

“6개월 동안 계약서 조율하면서 WaW가 얼마나 많은 걸 양보했는지 잘 아시면서 그러세요?”

“여긴 할리우드가 아니고 충무로라고.”

“선배님들이 회계 부분에서 투명해져야 WaW가 극장에도 똑같은 걸 요구할 수 있어요. WaW만 잘 먹고 잘 살자고 이런 계약을 하는 게 아니란 걸 아시잖아요.”


영화사 대표들도 잘 알고 있다.

류지호가 얼마나 많은 걸 양보했는지.

특히 내년에 개관 예정인 멀티플렉스 극장의 스크린 두 개를 무조건 한국영화에게 배당하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구두약속이 아니다.

제휴계약서에 명시까지 해 놨다.

WaW 픽처스가 계약을 어기면 위약금을 지불한다는 것까지 적시했다.

회계 투명성 문제나 독점 권리를 제외하고, 자신들이 불리한 조건은 많지 않았다.


“오늘 체결한 계약은 법적인 효력이 있어요. 그렇다고 바이블은 아닙니다. 이번 계약을 토대로 앞으로 좀 더 투명하고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시스템을 함께 만들어 봐요.”


과연 이번 계약을 계기로 성공적으로 충무로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환경은 그리 나쁘지 않다.

기존 기득권들의 힘이 약화되었고, 정치가 영화에 개입하는 강도가 줄어들었다.

영화 시장이 좀 더 개방화됐기 때문에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성공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

관건은 오히려 내부에 있다.

인적, 물적 인프라를 얼마나 잘 갖춰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한국 경제사에서 율산이나 제세 같은 기업은 과감한 경영으로 재계의 풍운아로 등장했지만, 내부 인프라 없이 기존 재벌처럼 확장을 하다가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말았다.

외환위기에 무너진 수많은 기업들은 회장 중심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확장 위주로 사업을 펼치다가 결국 망하고 말았다.

내부를 안정화시키지 않고 버블만 키우다가는 결국 깨질 수밖에 없다.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성장단계는 창업→ 성장→ 성숙→ 쇠퇴 및 재구축 단계를 거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다음 단계를 넘지 못하고 탈락하는 기업도 생기고 기술혁신 및 경영혁신을 통해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하는 지속가능한 기업도 생긴다.

모든 기업이 그 같은 성장단계를 보이는 것도 아니다.

고정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중소기업법상 창업 3년 미만을 창업기업으로 본다.

그렇게 보면 WaW 픽처스는 이미 성장 단계에 들어섰다.

보통 중소기업 창업 3년차부터 다양한 경영의 어려움이 발생하기 된다.

이 시기를 기업의 '죽음의 계곡'(DeathValley)이라고도 한다.

이 계곡을 무사히 통과하고 나면 한동안 성숙단계로 맹렬히 나아갈 것이다.

WaW 픽처스 역시 피해갈 수 없는 과정이다.


작가의말

행복하고 편안한 주말 보내십시오.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S. dlfqjq님, 바람으로님 후원감사드립니다.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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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개놈이라니까! (2) +2 22.07.29 5,331 160 24쪽
234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개놈이라니까! (1) +5 22.07.28 5,531 148 26쪽
233 대박 축하한다! (2) +5 22.07.27 5,693 152 24쪽
232 대박 축하한다! (1) +10 22.07.26 5,612 156 21쪽
231 OK할 때까지..... +7 22.07.25 5,417 151 25쪽
230 배고픈 놈이 이긴다. (4) +14 22.07.23 5,485 168 26쪽
229 배고픈 놈이 이긴다. (3) +9 22.07.23 5,165 135 21쪽
228 배고픈 놈이 이긴다. (2) +7 22.07.22 5,388 158 22쪽
227 배고픈 놈이 이긴다. (1) +10 22.07.21 5,548 166 26쪽
226 후회가 남지 않게! (3) +4 22.07.20 5,552 162 28쪽
225 후회가 남지 않게! (2) +10 22.07.19 5,646 151 27쪽
224 후회가 남지 않게! (1) +7 22.07.18 5,721 162 26쪽
» 나만 잘 먹고 잘 살려는 게 아닙니다. (3) +4 22.07.16 5,774 155 22쪽
222 나만 잘 먹고 잘 살려는 게 아닙니다. (2) +6 22.07.15 5,607 159 22쪽
221 나만 잘 먹고 잘 살려는 게 아닙니다. (1) +5 22.07.14 5,567 171 21쪽
220 예전의 내가 아닙니다. (3) +5 22.07.13 5,772 170 28쪽
219 예전의 내가 아닙니다. (2) +4 22.07.12 5,705 167 27쪽
218 예전의 내가 아닙니다. (1) +2 22.07.11 5,842 160 23쪽
217 우리 실력을 제대로 보여드리죠! (4) +4 22.07.09 5,831 144 24쪽
216 우리 실력을 제대로 보여드리죠! (3) +4 22.07.08 5,773 164 23쪽
215 우리 실력을 제대로 보여드리죠! (2) +6 22.07.07 5,837 169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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