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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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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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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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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2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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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개놈이라니까!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1995년 4월 19일 오전 10시(미국 시간).

평화로운 류지호의 일상에서 뜻하지 않은 균열이 발생했다.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순간.

TV에서 CNN 생방송으로 오클라호마시티 앨프리드 P. 뮤러 연방정부청사(Alfred P. Murrah Federal Building)에서 벌어진 테러 사건 속보를 내보내고 있었다.


-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연방 청사 밖에서 폭발물을 가득 실은 트럭이 폭발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현장에 나가있는 마리온 기자의 리포트를 들어보시겠습니다.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오클라호마 테러 현장으로 화면이 넘어갔다.

빌딩 전면부가 폭발에 날아가 버린 참혹한 현장을 뒤에 두고 리포터가 앵커의 말을 이어받았다.


- 오클라호마시티 연방정부 청사 앞입니다. 폭탄테러로 무너져 내린 연방정부 건물에는 공무원과 탁아소에 있던 어린이 등 약 550여명이 있었습니다. 긴급 출동한 소방관, 경찰관 그리고 인근 주민들에 의해 속속 구조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현재 6구의 시신을 구조했으면 실종자포함 나머지 540여명이 아직 무너져 내린 건물 잔해 속에 있는 것으로 관계당국은 밝혔습니다. 특히 건물 안 탁아소에 있던 어린이들이 많이 포함돼 있어서 충격과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사고가 발생한 시간은 확인되었습니까?”

- 폭탄은 연방정부 공무원들이 출근을 다 마치고, 어린이들이 탁아소에 맡겨진 직후인 오전 9시가 조금 지나서 터졌습니다. 건물앞 주차장에 서있던 자동차 안에서 터진 이 폭탄의 위력이 얼마나 컸던지 건물유리와 벽돌파편이 10블록 떨어진 데까지 흩어졌고 현장에서 30마일(대략 50km) 떨어진 곳에서 까지 충격이 느껴질 정도였다고 시민들이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용의자의 윤곽은 잡히고 있습니까?”

- 범인의 윤곽이나 사건의 성격에 대해서 아직 수사당국은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다만 이 폭탄의 위력이 1,100 파운드(500kg)급으로 앞서 말씀드린 대로 엄청난 위력을 보인 것으로 미루어 아마추어 테러범 수준이 아니라 국제 전문 테러 단체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또 이번에 테러사건이 일어난 오클라호마 주가 미국 땅의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고, 연방정부건물을 대상으로 한 점으로 볼 때, 테러리스트들은 미국의 중앙을 공격했다는 극적인 효과를 노린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그와 관련해서 우리는 수사당국이 중동의 이슬람단체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유력한 용의단체로 보고 있다고 보도한 바가 있습니다.”

- FBI 한 관계자는 이번 테러사건이 지난83년 베이루트 미군사령부 건물에 대한 자살차량테러사건이나 지난 92년 아르헨티나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에 대한테러와 그 공격수법이 비슷하다고 말하며 조만간 미국 정부는 이스라엘 첩보기관에 관련 정보에 대한 협조를 요청할 것이라 말했습니다.

“보통 이런 테러사건이 일어나면 우리가 테러를 했다 이렇게 주장하고 나서는 개인이나 단체들이 있습니다. 현재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힌 테러 단체가 있습니까?”

- 이곳 현장에서는 지금까지 6명이 전화를 걸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이들은 모두 이슬람단체 소속이라고 자신들을 밝히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의 진위는 확인할 길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계속해서 속보를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 지금까지 오클라호마 연방청사 앞에서 마리온이었습니다.


화면이 뉴스 스테이션으로 돌아왔다.


“미국은 어떤 전쟁이나 테러도 본토에서 겪어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낸 이런 테러 사건을 눈앞의 현실로 보는 시민들은 경악과 함께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후우.


멍하니 서서 CNN 뉴스를 보고 있던 류지호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털썩!


류지호는 소파에 주저앉듯이 엉덩이를 붙였다.

그리고 시선을 CNN 뉴스속보에 고정했다.

오클라호마시티에서 벌어진 폭탄테러는 류지호의 기억에 없었다.

그가 세상 모든 일을 기억하는 것도 아니고.

미국인이 아닌 세계인들이 기억하는 미국 최대최악의 테러는 911테러다.

이번 폭탄테러가 미국 본토에서 미국인이 일으킨 최악의 테러 공격이란 사실을 류지호로서는 알지 못했다.

인명 피해도 상당했다.

168명이 사망하고 68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중 99명이 연방 공무원이었다.

특히나 연방청사 내에는 탁아소도 있었다.

그로인해 19명의 어린이 희생자도 나왔다.

일본에서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사건이 일어난 지 한 달 만에 일어난 사건이라 세계는 또 다시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미국에서 <Collapse>는 망했네.....”


류지호는 오로지 삼봉백화점 붕괴만 생각했다.

설마 영화가 개봉하기 직전 미국에서 이런 참사가 벌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한 번 살아본 기억이 만능은 아니구나.....”


한국에서만 살았던 류지호다.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한국에서는 끊임없이 대형 사고들이 터졌다.

대형 철도 사고가 나고, 여객기 추락사고가 일어나더니, 대형 여객선 사고로 온 국민이 놀라고, 아파트 상가가 무너지고, 드디어는 한강다리 중 하나인 성수대교의 붕괴와 아현동 주택가 가스폭발 참사로 수많은 인명과 재산의 손실이 있었다.


“이제는 지하에서 벌어지는 사고만 남았구나!‘


오죽하면 국민들 사이에서 이 같은 자조 섞인 탄식이 터져 나왔을까.

아니나 다를까.

지하철 공사장의 폭발사고라는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터지게 된다.

정말 육-해-공의 모든 부문에서 대참사가 났다.

세계 다른 나라 참사가 눈과 귀에 들어왔을 리가 없다.

과거로 돌아와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반을 겪고 있다.

류지호는 안 좋은 생각마저 든다.

어쩌면 한민족에게는 민주주의는 허황된 것이며, 과분한 국민소득 1만 달러 달성이었고, 연평균 7%가 넘는 경제성장률은 이뤄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그런 자괴감마저 들 정도다.

국뽕에 취해도 모자랄 판에.

한편으로 시대의 변혁은 피를 먹고 이뤄진다는 말처럼 누군가의 희생을 토대로 한국사회가 과거의 구태를 하나하나 벗어버리고 선진적인 시스템으로 하나둘씩 재구축하게 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도 어지간히 이기적인 놈이었구나.”


건물 잔해 속에서 구조를 간절히 바라는 매몰자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지 못할망정 영화 <Collapse>의 흥행실패를 먼저 걱정하다니.

공감이니 타인의 삶에 대한 이해니 잘도 떠들어댄 주제에.

자기혐오에 빠져있을 여유가 없었다.


“티노, 컬버시티로 가야겠어요.”

“언제....?”

“지금 당장!”


얼른 샤워를 마친 류지호가 손에 잡히는 아무 옷이나 몸에 걸치고 집을 나섰다.


❉ ❉ ✻


컬버시티의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 역시 모든 직원이 TV 앞에 모여 오클라호마 폭탄테러 속보를 보고 있다.

직원들의 표정에 불안과 공포로 얼룩져 있었다.

TV 앞에 모여 있는 직원들을 지나쳐 류지호가 회장실로 향했다.

모리스 메타보이 CEO가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 회장 겸 JHO Company CEO로 취임했다.

Tri-stellar Entertainment는 명실 공히 Group 체제로 새롭게 태어났다.

산하에 Tri-stellar Pictures, Tri-Stella Pictures Distribution, Tri-Stella Television, Tri-Stella International, Tri-stellar Home Entertaiment를 거느리게 됐다.

모리스 메타보이가 지주회사인 JHO 대표이사도 겸하고 있지만, 이사회 의장인 류지호의 승인 없이는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구조다.

따라서 모리스 메타보이는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 그룹 경영에 집중했다.

오클라호마 뉴스속보를 보고 있던 메타보이가 사무실로 들어오는 류지호를 보며 대뜸 물었다.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인가?”

“테러가 발생했는데,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야죠.”

“캘리포니아에 있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새로운 소식은 없어요?”

“사망자가 3명이 더 늘었어. 서서 말하지 말고, 앉아서 이야기 하지.”


류지호가 모리스 메타보이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잠시 CNN 뉴스속보를 시청했다.

그 사이 비서가 커피를 놓고 나갔다.

두 사람의 시선은 TV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뚝.


메타보이 회장이 TV를 꺼버렸다.


“세계 최강대국이자, 경찰이라는 미국의 본토가 공격을 받다니. 어처구니가 없군.”

“처음 있는 일은 아니잖아요.”

“93년에 세계 무역 센터가 공격받았을 때는 미수에 그쳤잖아.”

“비록 미수라고 하더라고 수천 명이 다치고 사망자도 나왔어요.”

“그렇긴 하지만.....”


말끝을 흐린 메타보이 회장이 식어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류지호 역시 대화를 멈추고 커피를 마셨다.


“새 건물을 신축하던가, 적당한 빌딩으로 본사를 옮겨야겠어.”

“.....!”

“지금 이 곳은 테러에 너무 무방비야.”

“Pinkerton Corp. 인원을 늘려야죠.”

“연방정부 테러처럼 차량에 폭탄을 싣고 공격하면 막지 못해.”


열 명의 경찰이 한 명의 도둑을 막지 못한다고 했다.

인원 보강보다는 보안시스템을 갖춘 새로운 건물로 이주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지도 몰랐다.


“가능하겠어요?”

“밀려있는 배당금을 받아가지 않는다면.”


군복무 중 류지호는 미국 기업에서 한 번도 배당을 받지 않았다.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의 경우 사내유보금으로 4,900만 달러가 쌓여 있다.

미국에서는 기업이 사내 유보금을 많이 쌓아놓지 못하도록 과세를 하고 있다.

사내 유보를 통해 조세를 회피하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기업이 당기 이익금 대부분을 배당하면 대주주들은 배당을 받은 후 1년 안에 배당소득세를 내야 한다.

사내 유보를 하게 되면 이와 같은 소득세를 내지 않고 장기간 납세를 지연시킬 수 있다.

이를 통해 대주주들이 얻는 ‘기간 이익’이 엄청나게 많았다.

다만 유보금 보유 목적이 조세회피에 있지 않음을 기업 스스로 미국 국세청(IRS)에 입증하면 과세 하지 않는 것이 미국의 제도다.


“본사 이전 문제는 임원들과 논의를 해보시고, 의견이 모아지면 제게 알려주세요.”

“여전히 시원시원하구만.”

“그보다 <Collapse> 프린트는 모든 극장에 다 뿌렸어요?”

“다음 주 동부의 극장들부터 운송이 시작될 거네.”

“잘 됐네요.”


커피 잔을 입으로 가져가던 메타보이 회장이 잔을 도로 내려놓으며 물었다.


“잘 돼?”

“일단 필름현상소에 이야기해서 프린트 뽑는 거 중지시켜주세요.”

“혹시 오늘 아침 벌어진 테러가 영화흥행에 영향을 미칠 것 같아 그러나?”

“그것도 걱정이 되긴 하지만.... 영화 엔딩에서 이번 테러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위한 추모문을 담고 싶어요.”

“......!”

“1,320개 스크린을 잡아놓은 상태라 개봉 날짜를 되돌릴 수는 없잖아요.”

“그렇긴 하지.”

“우리 영화는 재난영화이긴 하지만, 범죄액션 영화가 아니죠. 휴머니즘을 담고 있어서, 이번 테러와 크게 연관성은 없어요. 건물이 무너지고, 구조작업에 사투를 그린 내용이 많긴 하지만.”

“우리 영화가 공포와 불안에 떨고 있는 미국 국민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어줄 것이네.”

“그러면 다행이지만. 어쨌든 구구절절 긴 문장이나 희생자들에게 바친다는 표현 같은 거 말고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추모한다’ 정도 문구를 엔딩에 넣었으면 좋겠어요.”

“좋은 생각이긴 한데.... 예정에 없던 비용이 발생하는 일이야.”

“얼마나 더 들어갈까요?”

“프린트 비용만 최소 180만 달러. 이미 만든 프린트의 폐기비용은 논외로 하고.”

“안 되겠어요?”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전체적인 P&A 예산이 증가한다는 말이 되고, 손익분기점이 조정되어야 할 사항이 되는 거지.”

“그래도 해야 합니다.”


메타보이 회장이 대꾸 없이 가만히 류지호를 쳐다봤다.


“영화사에 돈 없어요? 사내 유보금 많다면서요?”


메타보이 회장이 자신의 책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네가 곧 저 자리에 앉을 것 같구만.”

“갑자기 무슨 엉뚱한 소리에요?”

“그런 의사결정은 나라고 해도 쉽게 할 수 없어.”

“괜한 칭찬은 지겨우니까 그만 둬요.

“200만 달러가 애들 장난인 줄 아나?”

“난 진지해요.”

“내가 어떻게 하려고 했는지 알아?”

“Moe도 이미 생각하고 있었군요?”

“아니.”

“.....?”

“난 이미 제작한 프린트를 폐기하고 추모문장 넣는 짓은 안 해.”

“그렇다면 그냥 원본대로 상영했을 거란 말이에요? 미국 본토에서 테러가 벌어져 우리 영화의 한 장면처럼 건물이 반파 되었는데?”

“난 그런 비용을 아껴서 언론플레이를 하려고 했지.”

“언론플레이는 그것대로 하면 되죠.”

“그런데 자네 아이디어를 듣고 보니, 홍보마케팅 비용보다 훨씬 적은 돈으로 온갖 생색을 다 낼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지.”


모리스 메타보이 회장이 류지호를 보며 능글맞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벌떡.


갑자기 자신의 책상으로 걸어가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지금 당장 <Collapse> 프린트 작업 중지시켜. 샘과 스텐, 내 방으로 오라고 해.”


통화를 마친 모리스 메타보이 회장이 류지호를 돌아봤다.

마치 ‘됐지’ 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고마워요.”

“고맙긴.”

“그리고....”


류지호가 잠시 망설였다.


“편하게 말해 봐. 어울리지 않게 빼지 말고.”

“만약 <Collapse>가 흥행에 성공하면 수익금의 일부를 이번 희생자들을 위해 썼으면 좋겠어요.”

“Jay....!”

“편하게 말씀해 보세요. 어울리지 않게 무게 잡지 말고.”

“자넨 돈 벌기 위해 사업하나 아니면 돈을 벌어서 자선활동을 하고 싶어 사업을 하나?”

“다 아니에요.”

“아니다?”

“영화하려고 사업해요.”

“....뭐?”

“영화를 편하게 하려고 사업을 하고 돈을 벌고 있다고요.”

“사업을 안 해도 자네 재능이라면 할리우드 스튜디오에서 메가폰을 맡길 텐데?”

“장담할 수 없죠.”

“그렇다고 치고. 자네에게 돌아갈 수익이 줄어들 텐데.... 괜찮겠나?”

“제게 오는 수익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Garam Invest의 수익이 줄겠죠. 그 수익 없어도 나와 Garam은 아무 문제없으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좋군. 나로서는 영화를 띄울 수 있는 좋은 소재를 얻었어.”


류지호는 만족한 듯 미소를 짓는 모리스 메타보이를 째려봤다.

왠지 그가 얄미워보였다.

10분 전만 하더라도 오클라호마 폭탄테러를 근심하던 사람이다.

이제는 냉철한 비즈니스맨의 자세로 돌변했다.

류지호는 그의 모습에서 1시간 전 자신을 본 것 같아 입맛이 썼다.

거북한 기분이 들어서 얼른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잘 부탁해요.”

“벌써 가려고?”

“학교로 돌아가야죠.”

“미국인이 아님에도 미국 국민들의 아픔을 함께 걱정해줘서..... 기특해.”

“휴머니즘입니다. 휴.머.니.즘.”

“아 참! 시간 되면 디렉터 캐머론 한 번 만나보게.”

“제이미 카메론이요?”

“응.”

“왜....?”

“타임리 코믹스의 <X-man>을 자신이 다시 만져보고 싶다더군.”

“엄청난 프로젝트를 하고 있으면서 벌써 다음 영화를 생각하고 있대요?”

“처음 그가 오라이언에서 준비를 했으니까.”


타임리 코믹스의 <X-man> 영화 판권은 84년 오라이언이 확보했다.

당시에는 제이미 캐머론과 모리스 메타보이가 영화화를 준비했다.

기술적 문제로 인해서 또 인기 캐릭터를 한 영화에 등장시키는 문제에 있어 타임리 코믹스와 의견조율이 쉽지 않았다.

10여 년 간 섣불리 개발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에 판권이 귀속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그 프로젝트는 따로 임자가 있어요.”

“누군데?”

“아직 몰라요. 저도.”

“....흠!”


모리스 메타보이 회장이 헛기침으로 류지호를 압박했다.


“트라이-스텔라가 보유하고 있는 코믹스 판권은 잠시 내버려 두세요. 그 프로젝트들은 제가 개발 할 겁니다.”

“언제 시작할 생각이지? 그건 말해 줄 수 있잖아.”

“그게 왜 궁금한데요? 지금 스크립트가 쏟아져 들어오지 않던가요.”

“다 비슷비슷해. 소재, 캐릭터, 스토리 다 거기서 거기야.”

“토머스 메이포더를 믿어보자고요.”

“<미션 임파서블> 말인가?”

“냉전이 희미해진 현재 <미션 임파서블>이 철저하게 자본주의적인 세계관 속에서 진행되는 스파이 판타지를 관객들에게 선사할 겁니다.”


무슨 거창한 말인가 싶지만.

프랜차이즈 시리즈의 2편을 제외하고는 오락성과 완성도에 있어서 흠결을 별로 잡을 수 없는 뛰어난 오락영화가 바로 <미션 임파서블>이다.

전작을 뛰어넘어야 영화가 산다는 토머스 메이포더의 강박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프랜차이 시리즈이기도 하고.


“얀 포먼 감독도 오랜 만에 복귀하고, 우리 불쌍한 포폴라 교수님 차기작에도 신경을 써주세요. 그러고 보니 E.T 엔터테인먼트 영화도 있고, 아참 <위험한 아이들>도 썩 괜찮게 영화가 빠졌다고 하더라구요.”

“프랭크는 예전만 못한데.....?”

“그런 분들에게 Moe와 같은 베테랑 프로듀서가 필요해요. 슬럼프에 빠진 감독들을 살려내는 게 Moe의 특기잖아요.”

“듣기 좋은 말이군.”

“저는 항상 옳은 말만 합니다.”


류지호가 몸을 돌리자, 저만치에서 샘과 스텐이 걸어오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미스터 류.”

“보스!”


류지호가 두 사람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모리스 메타보이가 회장에 취임하면서 샘 리버먼과 스텐 크레이그 두 사람 모두 부사장(Executive Vice President)으로 승진했다.

뿐만 아니라 여전히 트라이-스텔라에 남아있는 초창기 멤버들 모두 부사장 혹은 상무급으로 영전했다.


“곧 점심시간인데, 함께 가시죠.”

“다음에요. 오후 강의는 빠져서는 안 될 것 같아요.”


류지호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를 빠져나갔다.

그가 떠난 후 배급부서는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분주해졌다.


“현상소에 전화해서 프린트 작업 중지시켜!”

“30개 넘는 현상소 모두에?”

“모두!”

“H&R 스튜디오에 엔드크레디트 작업 다시 해달라고 해.”


오클라호마시티 테러 사건을 잊어먹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만 바쁜 것이 아니다.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테러로 인해 영화 관람객이 줄어들 것을 염려했다.


[오클라호마시티에 비상상태를 선포합니다!]


오클라호마 주지사가 즉각 비필수 공무원의 업무를 중단시켰다.

오후 4시에는 대통령이 오클라호마시티에 연방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대통령은 모든 연방정부청사의 깃발을 30일 동안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뜻에서 조기로 걸 것을 명령했다.

4일 후에는 직접 오클라호마시티를 방문하기도 했다.

류지호는 테러 희생자들을 위해 써달라는 의미로 개인적으로 10만 달러를 기부했다.

그에 맞춰 JHO와 계열사들이 총액 100만 달러를 오클라호마시티에 마련된 뮤러 재단에 기부했다.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는 <Collapse>의 흥행성적과 상관없이 매출의 10%를 뮤러 재단에 기탁하겠다는 약속을 언론을 통해 공식적으로 알렸다.

류지호의 이름으로 JHO Company의 성명이 발표되었다.


[오클라호마시티의 폭탄 테러는 무고한 어린이들과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시민들에 대한 공격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번 테러로 인한 분노, 공포, 슬픔을 딛고 일어나 조금 더 안전한 일상으로 돌아갈 겁니다. 그리고 미국 시민들의 위기극복 능력을 바탕으로 미국을 자유의 등불로 만드는 근본적인 가치들이 더욱 빛날 것이라 믿습니다.]


류지호는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된 성명을 읽으며 씁쓸한 미소를 띠웠다.

미국인에게는 ‘국뽕‘ 충만한 문장이고.

한국인인 류지호에게는.


‘미국 만세.....!’


✻ ✻ ✻


오클라호마시티 폭탄 테러가 벌어지고 열흘 가량 흘렀다.

대한민국은 인재로 인한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대구에서 지하철 가스폭발 사고가 터졌다.

류지호는 사고날짜를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류지호는 다양한 루트로 경고를 보낸 후에도 한동안 노심초사했었다.

4월 말로 접어들 때까지도 대구에서 사고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혹시 이대로 지나가나 싶었다.

그런 류지호의 바람은 산산이 깨져버렸다.

사고 당일 9시 뉴스 앵커의 오프닝 멘트는 지난 우암아파트상가 붕괴와 다를 것이 없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후진국형 참사가 계속 되어야만 합니까?]


사고가 난 지하철 공사장 인근에 학교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가스폭발 당시 등교 시간이어서 학생 사상자가 많이 나왔다.

사망 101명, 부상 202명 등 3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차량 150대 이상, 건물 80여 채가 파손되는 등 금전적 손실도 상당했다.

뉴스 화면에 보이는 사고 현장은 맨 정신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특히 피 묻은 책가방, 불에 탄 교과서와 참고서 등의 학생들의 유품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많은 국민들을 안타깝게 했다.

피범벅이 된 책가방을 수습하다가 울음을 터뜨리는 자원봉사자의 모습도 자주 목격되었고, 폭발 당시 솟구친 불기둥과 엄청난 열기 때문에 크게 훼손된 시신이 많아 주변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사고 소식이 전해지자 2,000명의 대구 시민이 몰려들어 헌혈에 동참했다.

하루 만에 전국 각지에서 40억 원에 가까운 성금도 모였다.

류민상 부부는 사고소식을 접하자마자 자원봉사팀을 꾸려 대구로 내려갔다.

가장 먼저 자원봉사자들과 헌혈에 동참했다.

가족의 이름으로 2,000만 원을 성금도 접수했다.

(주)가온웨딩은 직원들이 모금한 금액과 회사차원의 기부금을 모아 언론사에 기탁했다.

사고원인은 논외로 치더라도 전형적인 한국 스타일의 부실한 초기대응, 뒤늦은 사후대처를 여실히 보여줬다.

연이어 터지는 대형 참사로 인해 민심은 갈수록 흉흉해졌다.


“글로벌시대 다 필요 없어. 이런 꼴로 무슨 개뼈다귀 같은 세계화란 말인가!”

“제발 늙어서 죽을 수 있게 해줘.”

“무서워서 이 나라에서 살 수 있겠냐?”

“이젠 속담을 바꿔야 할 때다. 소 잃고도 절대 외양간 안 고친다.”


관계당국 공무원들의 무사안일, 한심한 작태들.

그에 못지않게 정신 못 차리는 정치판.

여당이건 야당이건 대형 참사가 벌어지면 힘을 모아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하건만, 정치논쟁과 당리당략만 앞세우는 꼴사나운 모습만을 연출했다.


“미국에서는 오클라호마 사고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정부를 비난하기는커녕 오히려 대통령의 인기가 올라가더라. 몇 사람의 잘못을 마치 정부가 잘못한 것으로 몰아가면 안 된다. 정부도 공동의 피해자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말을 대통령이 했다.

당연히 국민의 공분을 자아냈다.

매번 사고는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거나 부를 거머쥔 소수 혹은 부실한 국가 시스템이 저지른다.

결국 그걸 수습하는 것은 언제나 이 땅에서 살고 있는 힘없고 돈 없는 민초들이다.


‘정말 이러다가 내 피가 다 말라버릴 것 같네.’


LA폭동처럼 정확한 날짜를 알았다면 뭔가 화끈하게 움직였을 터.

한국에서 연이어 터지는 대형사고들의 날짜를 기억하지 못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민원을 넣고, 방송국에 제보하는 것 뿐.

MBS의 간판 시사탐사 프로그램인 ‘PD수첩’에서 전국의 지하철 공사장의 안전불감증을 고발했다.

소귀에 경 읽기였다.

관계당국에서는 노후 배관과 전선을 교체할 계획이라는 답변만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

심지어 무허가로 매설된 가스관에 대해 고발을 했음에도 시정 조치하겠다는 말로 은근슬쩍 넘어가기 일쑤였다.

류지호가 보통의 사람들이었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따져봐야 바뀌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


“<Collapse> 개봉을 미루는 것이 좋겠습니다.”

“계속되는 대형 참사로 한국이 매우 어수선합니다.”

“흥행 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언론으로부터 좋은 소리 못 들을 것입니다.”


WaW 픽처스 수뇌부가 깊은 우려를 전했다.

그들로서는 당연한 조언이다.

얼마 안가서 삼봉백화점까지 무너진다는 것을 모르니까.

따라서 류지호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건의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삼봉백화점이 영업을 중단하고 전면 보강공사와 함께 층별 매장 전면 재배치에 나서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무너지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영화 <Collapse>는 삼봉백화점이 무너지는 걸 막기 위해 기획한 영화가 아니다.

영화를 봤거나 혹은 영화스토리를 전해들은 수많은 대중들이 불안감을 느껴 한 동안 백화점에 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로 인해 희생자의 수를 최대한 줄여보고자 했다.

중앙정보부 출신으로 정관계에 뒷배가 있는 삼봉그룹에게 어떤 조치를 취하기도 어렵고.


‘비겁하다고? 나도 할 만큼 했어.’


류지호는 한때 삼봉백화점을 인수하는 것까지 고려했다.

백화점을 살 수만 있다면 보강 공사가 아니라 아예 헐어버릴 생각까지 했다.

순진한 생각이었다.

백화점 영업 허가부터 공사 및 준공까지 온갖 비리로 점철되어 있다.

연매출 1,200억 원 이상을 올리는 대한민국 최고 백화점이다.

팔 리가 없다.


‘이대로는 안 돼.’


이렇게까지 해야 싶지만, 마침내 류지호가 결단을 내렸다.

소극적으로 나가다간 죽도 밥도 안 될 것 같았다.


작가의말

언제 장마였나 싶게 무덥습니다. 건강 유의하시고 행복한 하루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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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5

  • 작성자
    Lv.59 루시오엘
    작성일
    22.07.28 09:41
    No. 1

    지호의 결단은 무엇일까!!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요리선생
    작성일
    22.07.28 09:46
    No. 2

    '시대의 변혁은 피를 먹고 이루어진다'는
    본문의 문구가 있는데
    아이러니컬하게 위 오클라호마 폭파의 주범인
    티모시 맥베이가 체포되었었 때 입은 티셔츠에
    토마스제퍼슨의 유명한 말인
    '자유의 나무는 애국자와 압제자의 피를 먹고 자란다'
    는 문구가 새겨진 옷을 입고 있었다고 하네요.
    맥베이가 68년생으로 95년 당시 27세. 지호와 비슷한 나이인가요. 확신범들은 정말 무섭습니다.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2.07.28 12:27
    No. 3

    잘 봤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무한땅꼬마
    작성일
    22.08.03 17:27
    No. 4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5 하몽즈
    작성일
    23.10.27 20:00
    No. 5

    영업이익 10퍼도 아니고 매출 10퍼면 사실 적자 심할 수도 있는데.. 지호도 본인 영화에 대한 자신감이 크군요ㅋㅋ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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