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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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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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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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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1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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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후회가 남지 않게!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한국에서 가장 큰 서점인 종로의 한교문고.

류지호가 권영균과 함께 한교문고 베스트셀러 섹션에서 소설을 골랐다.

판타지장르 소설 ‘퇴마기록’이다.

퇴마사 사인방이 세상을 혼탁하게 만드는 악령들을 몰아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현재 PC통신연재 인기에 힘입어 중·고등학생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대학생·직장인들에게까지 서서히 인기몰이의 시동을 걸고 있다.


‘이걸 내 손으로 영화화하게 될 줄이야.’


과거로 돌아와 좋은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런 상황이다.

아쉬웠던 영화를 자신의 손으로 바꿔볼 수 있다는 것.

이전 삶에서 영화가 안 된 원인이나 문제점을 류지호는 알고 있다.

작품적으로나 흥행적으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대안을 가지고 있다.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운도 따라야 하니까.

적어도 모두가 엉터리 같았다고 했던 부분을 보완하고 부족했던 완성도를 높일 자신이 있다.


‘10년 뒤였다면 망설였을지도....’


<퇴마기록>은 누적판매 1,000만 부를 돌파하게 되는 엄청난 스테디셀러다.

웬만한 장르소설 독자들이 한 번 쯤 읽어보게 되는 소설이다.

팬덤 또한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크게 된다.

10년 뒤에 제작하게 된다면 그 같은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권영균이 1권을 훑어보며 물었다.


“이 소설이 그렇게 유명합니까?”

“벌써 백만 부 넘게 팔렸다고 하네요. 앞으로도 꾸준히 팔릴 소설이죠.”

“영화의 주 타깃은 중·고등학교 남학생이 되는 겁니까?”

“30대까지 고려해 봐야죠.”

“이런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30대 관객들이 좋아할까요? 중·고등학생들이야 입시공부에 지쳐서 이런 판타지를 통해 정신적으로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고 해도, 성인들은 유치하다고 할 것 같은데요.”


일반인들이 보일 법한 반응이다.

심지어 <퇴마기록>이 초베스트셀러임에도 제대로 된 비평이나 평론이 없었다.

지나치게 대중적이고 마이너하다는 이유로 철저하게 저평가 받았다.

출판사로서는 평론가의 글을 책에 넣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나서는 평론가를 찾지 못했다.

그 바람에 12권에서 마무리하려던 걸 13권으로 넘어가야 했다는 이야기까지 있을 정도다.


“권 피디가 이 프로젝트를 맡을 거니까, 소설을 외울 정도로 읽으세요.

“꼼꼼하게 읽어보겠습니다.”

“원작자와 더 자주 만나 작품의 세계관을 이해해 보세요.”

“겨우 세 권인데.... 세계관까지요?”

“만만하게 보지 마세요. 방대한 설정들로 가득합니다. 그 모든 걸 관통할 필요는 없지만, 영화화해야할 부분에 대해서 만큼은 모두 꿰뚫고 있어야죠.”

“혹시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겁니까?”

“작가가 참고할 만한 관련 서적을 추천해 줄 겁니다. 작가만큼 온갖 지식과 정보로 무장할 순 없겠지만, 피디가 웬만한 걸 알고 있어야죠.”

“그렇긴 합니다만....”

“피디가 자신이 제작할 영화와 관련된 지식이 있어야 원작자와 대화가 되고, 감독을 설득할 수 있잖아요. 프로듀서, 작가, 감독이 뭘 알아야 원작자에게 질문도 할 수 있는 겁니다. 원작자에게 다 들으면 되지 하는 안일한 생각은 버리세요. 무지한 상태에서는 어떤 질문도 상대에게 할 수 없는 법이니까.”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영화에서 SF나 판타지 장르가 성공하지 못한 이유 가운데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감독이 제아무리 그쪽 방면에 정통하다고 해도, 제작자가 판타지 장르 속성을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못하면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질 수 없다.

그리고 영화와 소설, 만화는 전혀 별개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원작 자체가 가지고 있는 매력은 고민하지 않는다.

멋지고 화려하게 보여주면 관객은 다 넘어가게 되어있다는 오만함으로 영화를 제작했다.

물론 <은행나무 침대>같이 판타지를 요소에 멜로적 감성을 영화에 잘 녹여낸 경우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판타지영화들이 흥행에서 고전한 것은 제작자와 감독이 판타지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작자가 까다롭습니까?”

“별로요. 전업 작가를 생각하고 글을 쓴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얀 전쟁>을 쓴 안 작가님에 비하면 굉장히 순수하다고 느껴질 겁니다.”


<하얀 전쟁> 때 작가의 고집 때문에 꽤나 고생이 심했다.

권영균은 <퇴마기록>에서는 작가와 대화가 잘 통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만 충무로로 넘어가시지요.”

“갑시다.”


어쨌든 권영균이 프로듀서 타이틀을 달고 총지휘 하는 류지호의 손발 노릇을 할 예정이다.

<퇴마기록>의 영화 판권을 얻기 쉬울 줄 알았다.

오산이었다.

출판사에서는 쌍수 들고 환영했다.

헌데 작가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한국에서 <퇴마기록>을 만들 수 있는지 의심했기 때문이다.

<구미호>의 컴퓨터 그래픽이 한국영화 수준에서는 그럴 듯 해 보인다.

할리우드 영화와 비교하면 겨우 걸음마 수준이다.

그 부분을 작가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판권을 내놓지 않고 버티는 작가에게 박건호 대표가 <Help Me, Please!>를 보여줬다.

그것도 충무로의 길 시사실을 빌려서.

또 <퇴마기록>에서 제작총지휘를 하는 류지호가 <터미네이터Ⅱ>에도 관여한 점을 어필했다.

콜라 광고의 북극곰 컴퓨터 그래픽을 작업한 할리우드 VFX 스튜디오가 <퇴마기록>에 참여할 예정이란 정보도 귀띔해줬다.

그 같은 노력 끝에 삼 개월 만에 영화 판권을 얻을 수 있었다.


✻ ✻ ✻


류지호는 충무로에서 배창훈 감독을 만났다.


“다음 작품은 준비하고 계세요?”


웃는 얼굴로 물어보는 류지호를 배창훈 감독이 빤히 쳐다봤다.


“미국에만 있어서 충무로에 떠도는 소문을 못 들은 모양이지?”

“무슨 소문이요?”

“배창훈이도 이제 한물갔다. 충무로 아무 술집이나 들어가 봐. 그런 이야기들 하니까.”

“감독님이 생각하실 때도 본인 감이 떨어졌어요?”

“무슨 소리야! 아직 한창에.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럼 됐죠.”


류지호가 잠시 뜸을 들였다.


“다음 작품 생각해보신 것 없으면, 제가 기획하는 프로젝트 함께 해보실래요?”

“<젊은 남자>가 망했는데, 내게 다시 기회를 주겠다는 거야?”

“아직 안 망했어요. 그리고 절대 안 망해요.”

“벌써 관객이 반 토막 났다면서?”

“<마누라 죽이기> 쪽에서 과장해서 흘리는 소문이고요. 최소한 본전치기 이상은 합니다.”

“......?”

“믿으세요. 홍보 전략도 싹 다 바꾸고, 극장 숫자도 많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제작비, 배급비 전부 회수할 수 있어요. 감독님은 아무 걱정 마세요.”

“그렇다면 천만다행이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배창훈의 표정은 펴질 줄 몰랐다.

영화사는 손해를 보지 않았을지 몰라도, 감독으로서의 명성은 하락했으니까.

한두 편 말아먹어야지.

무려 네 작품이 연속해서 흥행에서 참패했다.

다음 영화 찍는 걸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하는 상황이다.


“권 피디."

“예. 잠시만.....”


권영균이 가방에서 <퇴마기록> 소설책 세 권을 꺼냈다.


슥.


류지호가 <퇴마기록>을 배창훈 앞으로 밀어 놓았다.

배창훈이 1권을 집어 들어, 내용을 슬쩍 살폈다.


“이걸 해보자는 거야?”

“올해 제일 많이 팔렸고, 중·고등학생과 성인 남성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판타지 소설이에요. PC통신에서 유명해진 소설인데, 퇴마사들의 이야기죠.”

“퇴마? 엑소시스트?”

“서양의 엑소시즘과 비슷하면서도 달라요. 퇴마, 구마, 축마, 제령 심지어 무당들이 하는 푸닥거리까지. 서양의 퇴마와 한국의 무속까지 매우 방대하게 다루고 있어요.”


1973년에 처음 소개된 <엑소시스트> 시리즈로 인해서 영화팬들이 가톨릭 신부가 악령을 쫒는다는 것은 대강 알고 있다.

그런데 구마(驅魔) 또는 퇴마(退魔)라는 단어는 아무래도 낯선 개념이다.


“작가는 계속해서 소설을 집필하고 있어요. 상당히 방대한 이야기를 담을 예정이지요.”


<퇴마기록>의 국내편은 인물들이 대거 소개되는 도입부적 성격이 강했다.

공포소설에 비교적 충실한 편이기도 했고.

파문당한 박 신부.

여동생을 악령에게 잃어 복수심에 가득 찬 현암.

세상과 동떨어져 철저히 주술사로 키워진 소년 준후.

악령에 씐 아버지를 잃고 얼떨결에 퇴마의 길로 들어선 승희.

특이하면서도 특별한 능력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소외 받은 일행들이 의기투합해 악령과 악의가 휘몰아치는 세상을 구원한다는 것이 기본 골자다.


“국내편에서 묘사한 캐릭터는 입체적인 맛은 조금 떨어지는 편이에요. 이 소설의 작가가 전업을 생각하면서 수개월, 수년 동안 절치부심해서 내놓은 소설이 아니기 때문에 문학적인 맛 역시 많이 부족한 편이죠. 하지만 서양 판타지와는 다른 독특함이 있어요. 혹시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 읽어보셨어요?”

“톨킨?”

“예.”

“‘나니아 연대기’는 몰라. 톨킨 소설은 대학 때 읽어보긴 했지.”

“이 소설은 그런 서양의 고대 신화와 성서적 상상력의 영향을 받은 ‘반지의 왕’과는 달리 중국 무협지나 한국적 민담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어요. 작가가 치밀한 자료조사로 동양적인 신화와 한국 민담을 판타지에 잘 녹여놓고 있죠. 할리우드식 장르 영화에도 적합한 서사이기도 하고요. 선명한 선악의 대립 전선을 구축했기 때문에 이야기 진행의 활력이 넘쳐요. 결론은 무척 재밌다는 거죠.”

“이런 유의 소설은 영화로 만들기 굉장히 까다로운데?”

“할리우드가 이런 종류의 영화를 만들 때 어떻게 접근하는 줄 아시죠?”

“원작을 재해석하겠지?”

“백문이 불여일견이에요.”

“화려한 볼거리로 채운다고?”

“SF영화도 그렇고 판타지영화도 그렇고, 작가주의 영화로 만들지 않는 이상 상업영화는 그런 식으로 접근하잖아요. 어렵고 복잡한 서사 구조를 갖추고 있는 영화보다 단순한 서사 구조에 화려한 영상을 구사해야 흥행에 유리하니까요. 철저히 오락영화에 충실한 거죠.”

“그러니까 할리우드 오락영화처럼 이야기를 최대한 단순화 시켜서 매끈하고 화려한 볼거리를 채운 영화로 기획하고 있다는 거지? 이 소설로.”


원작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 때 ‘영화적인 해석’이니 같은 좋은 말을 갖다 붙인다.

영화 제작자 입장에 ‘해석‘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원작의 이야기는 고정되어 있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원작보다 뛰어난 감독의 이야기란 있을 수 없다.

감독의 이야기가 뛰어나다면 굳이 원작판권을 구매해 영화를 만들 필요가 없다.

원작보다 뛰어난 감독의 이야기를 그냥 영화로 제작하면 되니까.

그렇다면 제작자에게 가장 중요하게 대두되는 사안은 뭘까.

어떻게 원작의 이야기를 리얼하게 영상으로 재현해낼 것인가.

그 뿐이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수도 없는 인물, 사건, 시대 등을 그럴듯하게 영상으로 구현해내는 것.

그것이 원작의 ‘영화적 해석’이고, 흔히 영화의 ‘재해석’이라고 하는 개념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서사는 단순하게, 대신 캐릭터는 입체적이면서 마치 실존할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영화적 개연성을 입혀야 한다.


“주제의식도 없이 눈요기만 펼쳐 보이자는 건가?”


배창훈 감독의 어조가 살짝 차가워졌다.

마치 류지호에게 실망했다는 투다.


“이 소설을 중고생이 보는 그저 그런 싸구려 B급 소설이라고 치부하면, 영화 프로젝트로 아무것도 얻을 수 있는 게 없어요. 하지만 이 소설에는 분명이 휴머니즘이 담겨있어요. 세상에서 소외된 주인공들이 사회적 약자들을 도우는 이야기니까요. 유치한가요? 왜요?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의 애민정신을 영화로 만드는 것은 휴머니즘을 메시지로 승화하는 것이고, 어찌 보면 평범한 삶을 살 수 없는, 자의 반 타의 반,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특이한 사람들이 선량한 사람을 괴롭히는 악과 싸우는 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영웅주의 놀음일 뿐일까요?”

“유치하지 않게 만드는 게 영화감독이 할 일이긴 하지.”

“그래서 감독님께 이 프로젝트를 제안 드리는 겁니다. 감독님은 80년대 여성과 소외된 이들 그리고 사회적인 약자들을 영화에서 많이 다루셨어요. <젊은 남자>의 주인공과 네 명의 여성들 역시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현실의 벽에 부딪쳐 무기력함을 느끼고 좌절하거나 뭔가가 결여된 인물들이죠. 이 소설 속 인물들도 마찬가지에요. 소설을 읽어보시면 제가 무엇을 말하는지 단번에 아실 거라고 장담해요. 특히 현암과 준후라는 캐릭터는 범상치 않은 초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연민이 느껴지기도 하거든요.”


배창훈 감독은 쉽게 안 넘어왔다.


“감독님에게 고래는 잡기 힘들지만, 그래서 손에 넣기는 힘들지만 얻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어떤 가치였고 지금도 감독님은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에 대해 탐구를 멈추지 않잖아요. <퇴마기록>에 나오는 수많은 인간군상들에게도 ‘고래’가 필요하고 지금 시대의 한국인들에게도 시대 가치를 화두로 던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부디 <퇴마기록>이란 화려한 외형에 감독님만의 ‘고래’를 넣어주길 기대합니다.”


판타지 문학을 영화로 만들 때 관객이 기대하는 것은 글로 구축되었던 상상의 이미지와 영화로 구현된 영상 이미지의 일치다.

화려하고 현란한 건 두 번째 문제다.

최종적으로 영화가 ‘격‘을 갖기 위해서는 철학과 메시지를 담아야 하는 거고.

배창훈은 일단 소설을 읽어보겠다는 말로 즉답을 피했다.


“배 감독님이 프로젝트를 거절하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묵혀 놔야죠.”

“B안으로 안 갑니까?”

“이런 프로젝트는 신인감독에게 맡겨선 안 됩니다.”


시스템이 어느 정도 갖춰진 20년 후라면 모르겠지만.

어설픈 신인 가지고는 이전 삶의 실패를 되풀이 할 뿐이다.


“검증된 감독이 맡아야 리스크를 줄일 수 있어요. 연출력까지 겸비하고 있으면 금상첨화고.”


권영균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씨네-누보에서 기획하고 WaW 픽처스가 투자·배급하게 될 <은행나무 침대>의 제작비는 대략 20억 선이다.

권영균이 보기에 그 예산으로 무리다.

무조건 제작비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어쨌든 씨네-누보에서 올라온 예산서는 그렇다.

WaW 픽처스에서는 예비비 포함 5억 원을 더 책정해 놓고 있다.

<퇴마기록>은 그 두 배의 예산이 필요할 것 같았다.

류지호가 장담한 대로 할리우드 업체까지 참여한다면 더 들어갈 수도 있다.

몇 년 사이에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가 10억까지 올라왔다.

그 4배의 제작비가 들어간다면 명실 공히 블록버스터라고 할 수 있다.


“내년에 강남에 극장도 생기고 지방극장을 임대해서 운영을 시작하면 <서편제>처럼 4달이고 5달이고 극장에 걸어놓지 말라는 법도 없지요.”


할리우드처럼 하고 싶어도, 인프라가 부족했다.

당장은 선택과 집중을 고민할 때다.

안 되는 것이 매달리지 않을 생각이다.

되는 것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서 최대치를 뽑아내기로 했다.

따라서 류지호는 눈높이를 충무로 수준으로 한참을 낮췄다.


✻ ✻ ✻


“곰....”

“지오엠이에요!”


G.O.M.

Gate of Movie(Magic)의 약자다.

WaW 픽처스가 런칭하게 될 극장 브랜드다.

기획홍보실 귀염둥이 심선미가 제안했다.


“영화의 문이자, 마술의 문!”


시공간을 융합한 제7의 예술인 영화.

그 영화라는 환상의 공간으로 안내하는 것이 WaW 픽처스의 멀티플렉스다.

라고 심선미가 주장했다.

영화를 예술의 반열에 최초로 올려놓은 이탈리아의 영화평론가 리치오토 카누도의 ‘제 7의 예술’ 선언까지 끌어들이며 열렬히 ‘마술적인 통로‘를 밀었다.

G.O.M과 경합을 벌인 브랜드로는 WaW Cinemas, 가온 Theatres, 가온 Multiplex, WaWPlex 등이 있었다.

가장 무난한 WaW Cinemas에 표가 많이 몰렸다.

류지호는 향후 극장사업 분리까지 고려했다.

최종적으로 G.O.M에 힘을 실어주었다.

일반적으로 영화를 지칭하는 용어는 셋이다.

무비(movie), 필름(film), 시네마(cinema).

사실 세 용어의 차이를 명료하게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통상적으로는 오락성이 짙은 상업영화 전반을 통칭할 때는 주로 movie를 쓴다.

반면에 film은 보통 ‘예술 영화’를 지칭할 때 사용하는 편이다.

초창기 서구권의 일부 영화인들은 film이라는 물질 안에 인간의 눈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어떤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film 자체에 예술적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어쨌든 film이 영화의 본질과도 맥이 닿아있는 것은 틀림없다.

cinema는 원래 ‘영화관’을 지칭하는 말이다.

영화 상영관을 미국에서는 무비 시어터(movie theater), 유럽에서는 시네마(cinema)라는 명칭을 쓴다.

더 나아가 cinema는 movie와 film을 포괄하는, 영화의 전체적인 의미를 가리키는 개념으로도 사용된다.

참고로 cinema는 1895년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가 처음 만든 영사기 'Cinematograph'에서 유래한 단어다.

현대에 와서는 산업적, 역사적 의미에 더해 미학적, 예술적 부분을 강조하는 용어로도 사용된다.

영상미학이 뛰어난 걸작을 ‘A cinematic masterpiece’로 표현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정리하자면 무비(movie)는 산업적·오락적 의미의 영화를, 필름(film)은 예술적·철학적 의미의 영화를, 시네마(cinema)는 영화관을 가리키는 것 외에도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사실 세 단어를 굳이 구분해서 쓸 이유는 없다.

영어권 국가들의 영화사들이 픽처스(Motion picture)를 기업명에 쓰는지 필름(Films)을 쓰는지에 따라 추구하는 영화를 유추할 수 있다는 것 정도.


“전 국민이 우리 G.O.M 멀티플렉스가 열어 놓은 마법의 문을 열고 들어가 영화의 매력에 흠뻑 빠졌으면 좋겠어요. 특히 한국영화에요.”


심선미의 바람을 들으며 류지호가 흐뭇하게 웃었다.

이전 삶에서도 그랬고,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것이기에.


✻ ✻ ✻


“미안하지만, 강남 쪽으로 돌아서 가줘요.”

“어디로....?”

“제일생명사거리.”

“공사현장 사무실에 전화 넣을까요?”

“그러지 마세요. 지나가면서 잠깐 보면 되니까.”


여의도에서 출발해 경인고속도로로 향하던 차량이 강남으로 방향을 바꿨다.

건축 공법에 따라서 공사기간의 차이가 있다.

현장소장 말로는 일반아파트를 건축하는 공법으로는 평균 7일마다 한 층씩 올릴 수 있다고 한다.

반면에 고층건물에 주로 쓰이는 ACS골조 공법은 5일에 한 층을 올릴 수 있단다.

고층빌딩은 기초공사를 튼튼히 해야 한다.

G.O.M이 입주하게 될 상가·오피스 복합건물은 지하주차장 포함 지하 시설을 5층까지 만든다.

지하층 공사는 지상층 공사보다 까다롭기 때문에 공기는 10배 이상 더 걸린다.

게다가 상가와 오피스 복합건물이기 때문에 그 사이를 연결하는 완충 공간인 트랜스퍼층이 들어간다.

트랜스퍼층은 골조구조가 까다로워 공사기간이 한 층당 20일 이상 걸렸다.

암튼 내년 5월 극장 개관을 위해 추운 날씨임에도 막바지 공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아직 유동인구가 많지 않아서.... 랜드 마크가 되긴 어려울 거야.’


신사역, 논현고개, 강남역 사이의 애매한 위치다.

교통량만 많지 보행자는 사실 많지 않다.

한교타워도 준공하고, 영동시장 먹자골목도 활성화가 되어야 G.O.M이 핫플레이스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

암튼 이곳에 들어서는 G.O.M의 첫 극장은 10개 상영관을 갖춘 멀티플렉스다.

좌석수는 1관 494석, 2관 379석, 3관·4관 각 432석, 5관 304석, 6관·7관 211석, 8관·9관이 98석, 10관이 VIP 프리미엄으로 총 2,550석의 초대형 극장이다.

향후 한국영화시장이 성숙되면 11~15관은 커플, 패밀리 등 프리미엄 상영관이 들어설 예정이다.

10석 미만의 프리미엄 상영관 서비스는 개관해봐야 사업성 당장 없다.

때문에 공간만 확보해 두고 사이트 오픈은 무기한 연기하기로 했다.

전국 최대 규모이자 최대 좌석수를 자랑하는 G.O.M강남은 한국 최초로 미국식 스타디움 좌석 배치와 좌석 간 간격을 도입했다.

기존 극장들보다 105~130Cm로 간격을 넓혔다.

또한 35mm와 70mm를 겸해서 영사할 수 있는 미국제 심플렉스 영사기를 도입하기로 했다.


‘IMAX는 아직 멀었지.’


대한극장 규모의 스크린 크기는 아니었지만,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한 70mm 영화도 원본대로 상영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사운드 시스템은 Skywalker Films의 THX 인증을 받기로 했다.

THX는 돌비나 DTS같은 음향 장비나 시스템은 아니다.

일종의 규격이다.

즉 영사기나 음향 시스템을 Skywalker Films이 투자한 장비회사 제품을 쓰지 않아도 된다.

극장 음향 시스템의 양대 산맥인 Dolby나 DTS 시스템 가운데, 해당 상영관에 가장 적합한 제품과 사양을 선택하면 되는 것이다.

THX는 상영관 내의 모든 시스템의 사양과 규격, 배치, 콘트롤 등을 종합적으로 조절해 최고의 영상과 음향이 전달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조지프 루카스가 자신의 영화를 최고의 조건에서 관객에게 선보이기 위해 고안한 것이 THX 시스템이다.

THX에서는 각 국가별, 극장 규모별, 인테리어별로 제품군을 명확하게 규정해 놓고 있다.

흔히 THX가 음향시스템에 한정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스크린의 밝기까지도 규정해 놓고 있다.

정해진 규격을 따라야만 THX 인증관이라는 훈장을 달아주었다.

한 번 인증을 받으면 끝이 아니다.

6개월에 한번씩 인증 받은 상영관을 THX로부터 점검 받아야 한다.

만약 그들의 조건을 충복하지 못하는 순간 인증의 효력이 없어진다.

할리우드 영화는 극장에 영화가 배급될 때 프린트 컬러와 음향과 사운드 트랙에 대한 정보를 같이 보낸다.

THX 영화관은 음향 컨트롤 방법 및 볼륨의 위치까지도 매우 세세하게 지시해 놓는다.

THX 영화관은 일정한 기준에 의해 세팅 된 이른바 레퍼런스 영화관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어느 나라의 어떤 THX 인증 영화관에 가더라도 느끼는 음향의 인상이 매우 비슷하다.

이는 마치 Siren Coffee 브랜드가 전 세계 어딜 가도 동일한 맛을 느끼게 해주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어쨌든 인증을 받기도 까다롭고, 비싼 돈을 지불해야 하고, 심지어 6개월마다 인증 갱신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한국 극장에서는 THX 상영관이 몇 곳 없다.

대표적으로 명보극장이 인증 극장이지만, 한두 번 인증 갱신을 하다가 포기해 버렸다.


'그나저나 한국영화 사운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똑같은 영사기, 똑같은 음향시스템인데 한국영화의 대사가 잘 안 들린다는 관객들의 불평이 많았다.

동시녹음 지상주의와 미숙한 사운드 믹싱 때문이다.

다이얼로그 사운드는 모노로 녹음되고, 극장에서 모노로 재생된다.

동시녹음 신봉자들이 현장에서 동시녹음한 배우의 목소리가 현장감과 감정을 더 잘 담을 수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방음이 잘 된 녹음실에서 섬세한 호흡소리까지 후시녹음 하는 것이 좋을 경우도 있다.

충무로는 기를 쓰고 동시녹음 사운드를 쓰려고 노력한다.

반면에 할리우드는 동시녹음에 연연하지 않는다.

오히려 후시녹음을 적극 활용한다.

뉴욕 시내 같이 각종 소음이 심한 장소에서 촬영할 때, 로케이션 섭외 시 촬영허가 시간이 넉넉하지 않을 때, 소화해야할 촬영분량이 많을 때 등.

그 같은 상황에서 할리우드 제작시스템은 효율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동시녹음에 연연하지 않는다.

때로는 배우가 후시녹음을 요구하기도 한다.

모건 포터필드는 동시녹음보다 후시녹음을 선호해서 자신이 출연한 대부분의 영화에서 후시녹음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모든 할리우드 배우 계약서에는 후시녹음 항목이 따로 있다.

배우는 후시녹음을 포함한 개런티를 받을 수도 있고, 따로 요구할 수도 있다.

한국영화 계약서에는 후시녹음 관련 조항이 없다.

배우들의 연기 기본기도 부끄러운 수준이고.


“지금 이 시절에 열심히 한국영화를 봐주는 관객들에게 미안할 뿐이지.”


WaW 픽처스가 제아무리 THX 인증을 받은 훌륭한 영사, 음향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면 뭐할까.

한국영화가 그 시스템을 제대로 써먹지 못하면 소용없다.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가 영화를 배급할 때 스크린 밝기, 사운드 믹싱, 트랙 정보, Dolby나 DTS의 주파수 대역까지 함께 문서로 동봉해서 극장에 보낸다.

서울의 메인 상영관 영사기사들은 할리우드 배급사가 동봉해 보내온 지침대로 영사기와 음향을 컨트롤하기도 하지만, 중소극장이나 지방극장은 그런 게 없다.

막말로 영사기사 마음대로 상영하고 있다.

류지호가 운영하는 극장체인에서는 어림도 없다.

방만한 운영은 용납하지 않을 생각이다.

G.O.M 극장 체인은 자체적인 최적화가 정립되기 전까지 THX인증을 유지할 생각이다.

극장은 광고로 목돈이 들어오고, 팝콘과 음료로 관객들의 호주머니를 털어먹는 수익구조다.

티켓수입으로 돌아가는 사업이 아니다.

내년부터 극장에서 의무 상영하던 대한뉴스와 문화영화(기록영화)를 틀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고 일일 상영 횟수가 획기적으로 늘어나거나 하지는 않는다.

관객들이 체감하기에 달라질 것도 별로 없다.

극장 측에서 그 시간에 예고편이나 다른 광고영상을 좀 더 노출하기 때문이다.

지정석 예매시스템이 안착하기 전까지 관객들은 원치 않아도 광고를 봐야 한다.

영화관의 기본은 관람 서비스다.

관람 서비스의 기본 중에 기본은 최적화된 영상과 음향으로 관객의 만족도를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때문에 최적의 영화 관람 서비스는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한국영화를 만든 사람이나 극장 모두가 사는 길이다.


작가의말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됐습니다. 즐겁고 행복한 한 주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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