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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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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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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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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2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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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개놈이라니까!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지금까지 수집한 정보들 다 풀어버리세요.”


수화기 너머의 장문식이 가타부타 말이 없다.


“왜 대답이 없어요?”

- 진짜? 괜찮겠어... 요?

“대구에서 사고 난 거 봤잖아요.”

- 후우. 그러게 말이야...닙니다. 개놈에 자식들!

“반말을 하든지 존댓말을 하든지 둘 중 하나 정해요. 신경 쓰이니까!”

- 내가 존댓말이 입에 잘 안 붙어. 류 감독이 이해 좀 해주라.

“암튼, MBS는 PD수첩에서 건드렸는데도 바뀐 게 없어요. 차라리 영화가 개봉할 때 맞춰 9시 뉴스에서 대대적으로 터트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 신포고 출신 사회부 기자에게 던져줘야 하나?

“누구든 상관없어요.”

- 이왕이면 너하고 인연이 있는 송일성이한테 도꾸다니 주는 게 좋지 않아?

“그 양반은 내가 따로 만나보려고요. 전에 동양일보 사회부에 있다고 들었는데.....”

- 송일성이 YnTV로 옮겼어.

“그럼 그 쪽은 놔두고 다온 쪽과 협력해서 친분 있는 기자들에게 관련 자료 뿌리세요. 재정이한테는 지상파 보도국에 있는 신포고 공문들 모두 만나보라고 하고요.”

- 우리 보스가 제대로 빡이 돌았네.

“결과가 좋지 못하더라도 해볼 건 다 해보려고요.”

- 요새도 애들을 계속 백화점에 보내서 확인 작업하고 있거든. 애들이 겁나서 그만 가고 싶다고 하더라. 하려면 후딱 터트려야 하지 않을까?

“후우....!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 불행한 일이 벌어지지 않기만 바라야죠.”

- 이번 작업은 보스는 모르는 거야. 내가 다 시나리오 짠 거야.

“부탁할게요.”


류지호와 통화 이후로 장문식과 신효정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장문식은 룸싸롱 접대 같은 음지 방식으로, 신효정은 증권가 찌라시를 들먹이며 양지에서 언론사 관계자들과 접촉했다.

그 과정에서 삼봉백화점 측의 공무원 뇌물수수 정황, 불법 개축, 내부 고발자 등 PD수첩이나 그 동안 언론을 통해 나오지 않은 많은 내용들이 언론으로 스며들어갔다.

기자들이 팩트체크를 하겠답시고 삼봉백화점에 확인요청을 했다면 일이 꼬일 뻔했다.

다행스럽게도(?) 서로 특종을 하겠다며 앞 다투어 기사를 쏟아내는 바람에 삼봉백화점 측에서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G.O.M Cinemas의 첫 번째 멀티플렉스의 개관 날이 다가왔다.

그와 함께 <Collapse>의 개봉일 역시 코앞으로 다가왔다.


❉ ❉ ❉


저예산 장르 중에서 공포영화가 제작비가 가장 적다.

그 다음으로 미스터리 스릴러가 적은 예산으로도 제작이 가능하다.

두 주인공의 로맨스를 다루는 멜로 장르가 제작비가 적게 들 것 같다.

오산이다.

계절도 잘 맞춰야 하고, 근사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야 한다.

미술이나 조명에도 공을 들여야 한다.

영상을 아름답고 낭만적으로 연출해야 하기 때문에 멜로영화는 의외로 제작비 많이 든다.

류지호는 방학 기간 동안 영화를 찍을 계획이다.

그것도 장편으로.

제작비를 많이 쓰지 않고도 찍을 수 있는 장편영화를 고민했다.

그렇게 해서 범죄스릴러 장르를 선택했다.

류지호는 1,000만 달러 예산 안에서 자유롭게 영화를 찍을 정도가 됐다.

<The Killing Road>는 200만 달러(약 16억 원) 내에서 제작해보기로 했다.

<저수지의 개들>보다 훨씬 넉넉한 수준의 예산이다.

손발을 묶어놓고 연출력만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각오가 담겼다.

적은 예산으로 연출력으로 승부 보는 장르.

바로 연쇄살인마가 등장하는 범죄스릴러 영화다.

스토리는 실화와 픽션이 교묘하게 섞여 있다.




온 언론에서는 미중부 지역을 넘나들며 연쇄살인 행각을 벌이고 있는 의문의 살인마에 대한 이야기로 연일 시끄럽다.

연쇄살인으로 분위기가 흉흉한 평화로운 시골마을에 FBI가 방문한다.

FBI요원은 매춘부가 아님에도 마을 남자들에게 몸을 팔며 살아가는 흑인여성 티아라을 만나게 된다.

성폭력에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있는 티아라에게 FBI요원은 구세주와 다름없다.

시골마을은 겉으로는 평화롭고 안정되어 보인다.

그런데 속내를 들여다보면 온통 허위와 가식으로 가득 차 있다.

인종차별이 만연해 있다.

주민들은 대도시에서의 삶을 동경하지만 이 낙후된 지역에서의 삶이 행복하다고 자위하고 있다.

FBI 요원이 살인사건 수사를 위해 방문했음에도 지역에서는 계속해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사실은 FBI요원이 문제의 연쇄살인마였지만, 어느 누구도 눈치를 채지 못한다.

연쇄살인마가 연쇄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아이러니.

살인마와 본의 아니게 매춘부가 된 여성은 운명적인 사슬에 묶이게 되어 살인범을 색출하기 위해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

마을사람들의 증언은 거짓과 진실이 교묘하게 섞여있다.

티아라는 살인마와 함께 하면서 점차 범죄의 세계에 빠져든다.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연쇄살인 행각을 벌이게 된다.

커플의 살인 행각은 철저히 우발적이다.

재미로 총을 쐈는데 사람이 죽는다.

기분이 언짢아서 사람을 죽인다.

커플의 살인에는 분노가 없다.

증오도 보이지 않는다.

마치 해맑은 어린 아이가 심심해서 개미를 밟아 죽이는 것 같다.

커플은 서로를 육체를 탐하는 것보다 살인에서 더한 쾌감을 느낀다.

아니다.

살인행각이 섹스의 전희 같다.

티아라는 점차 살인마를 닮아간다.

결국에는 괴물이 되어버린다.

FBI요원으로 위장해 온 마을을 들쑤시고 다니며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르는 살인마.

살인사건과 관련해 거짓을 진술하는 주민들.

그것들이 얽히고설키게 되면서 상황은 점점 복잡하게 변한다.

결국 연쇄살인범의 정체가 밝혀진다.

마치 지옥에 현세에 펼쳐진 것처럼 살인마와 위선적인 마을 주민들이 서로에게 총을 쏘며 죽음을 맞이한다.

악이 모두 제거되며 권선징악의 메시지로 마무리되는 것 같다.

그런데 최후의 생존자인 소녀에 의해 진실이 밝혀지는데.




금주법과 대공황으로 미국인들의 정서가 파괴되어 가는 시절.

삐뚤어진 사고방식을 가진 보니와 클라이드 커플이 미국 전역을 돌며 범죄행각을 벌이며 살인을 일삼는 스토리.

남자와 여자가 짝을 이뤄 범죄행각을 벌인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와 닮아있다.

심지어 스크립트 곳곳에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오마주도 보인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경우는 보니와 클라이드의 범죄행각을 희화해서 당시 분위기를 살려냈다.

커플을 가족도 없고, 자신들을 보호해 줄 사회도 없고, 의지할 공권력도 없는, 과거는 잊어버리고 내일은 더더욱 생각하고 싶지 않은, 그 같은 배경 속으로 주인공 커플을 밀어 넣었다.

주인공 커플의 삐뚤어진 사고방식과 암울하고 비극적인 시대 그리고 섹스와 폭력에서 오는 일그러진 카타르시스에 당시 많은 대중들이 열광했다.

참고로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이유 중에는 개봉 할 즈음부터 할리우드 영화의 섹스와 폭력묘사를 훨씬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된 점도 주요했다.

어쨌든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뉴아메리칸 시네마의 문을 연 작품이다.

당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미국전역을 돌며 범죄행각을 벌이며 살인을 일삼은 악당 중의 악당 보니와 클라이드 커플에게 미국인은 왜 환호를 보냈을까.

그들에게서 심리적 보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암울하고 불행한 시대를 살고 있는 대중들은 영화에서나마 주인공의 살인과 범죄행각을 통해 대리만족을 경험한 것이다.

쿠엔 태런티노가 오리지널 스토리를 쓰고, 윌리엄 스톤이 각색·연출했던 <내추럴 본 킬러> 역시 커플이 살인행각을 벌인다.

두 영화와 류지호의 <The Killing Road>의 커플이 다른 점은 인종이다.

백인과 흑인 남녀가 짝을 이룬다는 점이다.

윌리엄 스톤의 <내추럴 본 킬러>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서 매스미디어가 보여준 모습을 더욱 강조한다.

직접적으로 매스미디어의 문제점을 까발린다.

<The Killing Road>에서는 매스미디어의 문제점을 부각시키지 않는다.

폭력에 대해서도 메시지를 관객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류지호 역시 실화를 모티브로 했다.

흑인 여주인공 캐릭터는 플로리다주에서 7명의 남성을 살인한 에일린 워노스를 모델로 만들었다.

그녀는 매춘부로 전전하며 7명의 남성을 살인한 후 돈과 차를 빼앗은 여성 연쇄살인마다.

이 실화는 2003년에 가서 영화로 만들어진다.

바로 <몬스터>다.

FBI로 위장한 연쇄살인마 캐릭터는 해리 루카스를 모델로 했다.

그는 FBI 진술에서 17개 주에 걸쳐 무려 360명 이상 살해했다고 주장해 미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인물이다.

나중에 허언증이 밝혀지긴 했지만, 미국 역사상 최악의 연쇄살인마를 언급할 때마다 첫 손에 꼽히는 인물이다.

데본 테럴이 구해다 준 FBI 리포트에는 미국을 충격에 빠트렸던 여러 연쇄살인마와 극악 범죄자들이 들어 있었다.

류지호는 몇 개의 케이스를 골랐다.

미국 시골에 던져 놓은 후에 그곳에서 살아가는 위선적인 미국인과 미국 사회의 치부와 충돌하도록 만들었다.

형식적으로는 서부극 요소를 비틀고 미스터리 스릴러를 패러디 한 후에 범죄스릴러 장르의 옷을 입혔다.

관객에게 스릴러 장르의 충격적인 반전을 선사하지는 않는다.

정의가 구현되는 카타르시스도 없다.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위선과 가식으로 가득한 소도시를 휘젓고는 끝내 또 다른 악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는 이야기다.

자신의 편이 벌인 범죄는 눈감아주고, 정작 자신들이 소외시킨 이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만 단호한 태도를 취하는 불공정한 백인 공동체.

소수가 사회를 지배하고, 공권력은 부패해 공적인 힘을 스스로 놓아버린 사회.

누가 진짜 괴물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모순을 그렸다.


‘난 왜 공권력에 대해 삐뚤어진 생각을 가지고 있지?’


어린 시절부터 군사정권의 폭력들을 보고 자라면서 알게 모르게 갖고 있는 공포.

고등학교 때 경찰서에서 마주한 적나라한 부조리.

그 전에 지천명을 살면서 경험했던 수많은 한국사회의 불공정들.

이런 것들로 인해 그의 내면의 한 귀퉁이에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쨌든 류지호가 FBI 리포트를 보며 느낀 것은.


‘미국에는, 아니 세상에는 개보다 못한 인간이 많다는 거지.’


✻ ✻ ✻


<The Killing Road> 스크립트가 완성되자마자 몇몇 지인들에게 보냈다.

특히 고언형제와 쿠엔 태런티노의 리뷰를 기대했다.

돌아온 리뷰는 찬사나 칭찬이 아니었다.

류지호 역시 기대하지도 않았다.

할리우드 공식에 맞춘 장르영화는 호불호가 갈리지만, 심층적으로 분석할 거리는 많지 않다.

<The Killing Road>처럼 작가의 자의식을 한껏 드러내는 영화는 호불호와 함께 논쟁거리도 함께 가지고 있다.

고언형제는 <허드서커 대리인>이 흥행에서 처참하게 실패한 후에 고향인 미네소타로 돌아갔다.

류지호는 형제가 자신의 시나리오를 어떻게 읽었는지 궁금해 전화를 걸었다.


-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오마주인거야?

“기본 콘셉트는 그래요. 그 외에 다수의 서부영화를 비틀었고요.”

- 독창적이진 않지만.... 굉장히 냉소적이야.

“유머가 없죠.”

- 착한 영화, 휴머니즘 가득한 영화에 관심이 많을 줄 알았어.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다루다니 의외야.

“도전이죠. 스릴러는 어지간히 잘 만들지 않으면 본전도 못 찾으니까.”

- 정신적으로 불안해? 욕구불만이야?

“아니요. 아주 멀쩡해요.”

- 월가의 투자회사에서 자본주의의 일면을 지켜봐서 그런 걸지도.”

“자본주의를 풍자하는 부분은 없어요.”

- 그런데 왜 하필 시골이야?

“외부인들에게 배타적인 것은 뉴욕 같은 대도시보다 시골이 더하니까요. 인종차별도 그렇고.”

- 너무 공격적이야.

“사이코패스를 다룬다고 공격적이진 않죠. 그저 영화일 뿐이잖아요.”

- 은유나 상징 몰라? 노골적으로 영화에서 네 정치적인 태도를 드러내더군. 마치 뉴욕에서 영화하는 까칠한 인디영화인들처럼.

“그래 보여요?”

- 네 영화 두 편 밖에 보지 않았지만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어.


고언형제는 류지호의 <Help Me, Please>와 <Life Goes On>을 봤다고 했다.

그 두 편만 놓고 보면 공권력에 대한 불신과 조롱이 엿보이긴 한다.


“에단과 작업은 잘되고 있어요?”

- 곧 네게 스크립트가 갈 거야.

“기대할게요.”

- 네 앞가림이나 잘 해. 넌 나와 달리 잃을 게 많아.

“잃어버리면 도로 되찾으면 되죠.”

- 쓸데없이 긍정적이군.

“그게 내 장점이에요.”

- 영화는 글로 말하는 게 아니라 영상으로 말하는 거니까. 모자란 부분은 프로들과 함께 채워.

“명심하죠.”


쿠앤 태런티노는 적극적으로 리뷰를 해서 보냈다.

붉은색 펜으로 페이지마다 메모를 남겨서 다시 돌려줬다.

어떤 씬에서는 이런 영화가 있다는 듯 영화 제목을 메모해 놓았다.

어떤 다이얼로그 부분에는 굵은 매직펜으로 줄을 그어놓고, 자신이 만든 대사를 넣어놓기도 했다.

때때로 ‘F‘로 시작하는 욕설이 써져있기도 했다.

류지호가 따지듯 물었다.


“욕을 써놓은 건 뭐야? 너무 형편없어서 욕이 나올 정도라는 거야?”


쿠엔 태런티노가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아니. 매우 좋았다는 표시야.”

“좋은 표현도 많은데 왜 하필 욕인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너니까 특별히 이런 수고를 해주는 거야.”

“쳇. 나도 퀸의 영화에 리뷰를 공짜로 해주거든.”

“그거랑 이거랑 같아?”

“누가 간단하게 리뷰만 해달라고 했지, 그렇게 꼼꼼하게 봐달라고 했어?”

“그만! 사내자식이 쿨하게 고맙다고 한마디 하면 될 것 가지고. 블라블라 말이 많아.”

“큭. 고마워. 큐!”

“큐? 이 자식이! 싸우자는 거야? 한 판 붙을까?”

“흥! 진짜 한 판 해볼래? 나 태권도 3단인 거 잊었어?”


태런티노는 태권도 이야기에 바로 꼬리를 내렸다.


“선댄스에서 보는 거야?”

“모르지. 그들이 내 영화를 좋아해 줄지.”

“이걸 2년 전에 찍지 그랬어. 그래서 선댄스에 초청되었다면 <포 룸>이 아니라 <파이브 룸>이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그게 아니라 내가 빠지고 네가 들어왔을지도 모르겠구나.”

“군대에 있었잖아. 그리고 난 노인네들 옴니버스 영화에 끼기 싫어.”

“누가 노인네야?”

“내 나이와 비교하면 다들 노인네 맞지 뭘.”

“로드리게즈는 아직 20대야.”


류지호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바쁜데 시간 내줘서 고마워.”

“고마운 줄 알면 제작비 좀 많이 줘.”


A Band Apart Films은 디멘션 필름과 함께 <황혼에서 새벽까지>를 제작 중이다.

쿠앤 태런티노는 은근슬쩍 제작비를 더 달라고 청탁했다.


“난 몰라. 알버트와 알아서 해.”


류지호는 예산 문제에 휘말리기 싫어 얼른 자리를 떴다.


✻ ✻ ✻


<The Killing Road> 슈팅스크립트가 완성됐다.

가장 먼저 독립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는 게리 켐프(Gary Kemp)를 협력프로듀서로 영입했다.

조감독은 <Collapse>에서 훌륭하게 본연의 역할을 수행한 터커 레이튼(Tucker Leighton)을 불렀다.

두 사람 다 할리우드에서 15년 이상 활동한 경험 많고 유능한 전문가들이다.


“로저 딕스는 뭐래요? 답을 줬어요?”


로저 A 딕스(Roger A Diggs)는 최근 선호도가 높은 할리우드 촬영감독이다.

그에게 <The Killing Road> 촬영을 의뢰했다.

그런데 역시나.


“<데드맨 워킹> 촬영이 끝나자마자, 즈워크 감독의 <커리지 언더 파이어>를 촬영한대. 고언형제의 영화도 하기로 했나봐.”

“고언형제 영화는 스크립트도 안 나와 있는데....?”

“죽이 잘 맞아서 차기작도 함께 하기로 했다더군.”


충무로에서 감독과 촬영감독을 부부로 표현하는 것처럼, 할리우드에서도 호흡이 잘 맞는 이들끼리 짝을 이뤄 작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류지호는 친분이 두터운 배니 소넌펠트에게 촬영을 부탁했다.

이제 촬영에서 손을 완전히 떼고 연출에 집중하겠다면서 고사했다.

게리 켐프가 A리스트 촬영감독인 롭 B 리차드슨(Rob Bridge Richardson)에게 스크립트를 보냈다.

윌리엄 스톤 감독의 단짝이라고 할 수 있는 유명한 촬영감독이다.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에서 보냈는데.


“리차드슨씨가 승낙을 했다고요?”

“응.”


롭 리차드슨이 트라이-스텔라의 <어 퓨 굿맨>을 촬영하긴 했다.

그린라이트를 켠 것도 류지호였고.

그 외에는 두 사람은 인연이 없었다.

<플래툰>으로 아카데미 촬영상에 노미네이트 된 후로 윌리엄 스톤과 다수의 문제작을 작업했다.

마침내 <JFK>로 아카데미 촬영상을 수상했다.

그런 거물이 저예산영화인 <The Killing Road>를 촬영하겠다고 알려왔다.


“<닉슨>과 <카지노> 촬영을 모두 마치고, 다음 영화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해.”

“저예산 영화에 참여할 리가 없는 감독인 줄 알았는데....?”

“편견이야. <꿈꾸는 도시>라고 인종갈등 문제를 다룬 저예산영화를 촬영했어. 메이저 스튜디오 영화만 고집하는 사람은 아니야.”

“포스트 프로덕션은 나 몰라라 하는 거 아닐까요?”

“그러진 않을 거야. 롭이 연이어 대작영화만 했거든. 비교적 부담이 덜한 영화로 한 템포 쉬어가면서 고예산 영화에서는 못 하는 걸 시도해 볼 수 있어.”

“성격이나 작업 스타일은 어때요?”

“거들먹거리는 성향은 아니야.”


류지호가 UCLA 학생의 신분을 벗어나 할리우드 프로들과 처음으로 작업하는 프로젝트다.

감독급 스태프 선임에 신경을 많이 썼다.


“터커, 오디션 준비는 잘 되어 가죠?”

“문제가 조금 있지만.... 곧 정리가 될 것 같아.”


류지호가 장편영화를 준비한다는 것은 철저히 보안을 유지했다.

메인 스태프 접촉 역시 게리 켐프 개인적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언론과 할리우드 업계의 불편한 주목을 끌게 될까봐서다.

남이 잘되는 것보다 잘 못되는 것을 환영하는 것이 사람 심리다.

특히 할리우드의 이방인이라고 할 수 있는 류지호에게 모두가 호의적인 것은 아니다.

어쩌면 우호적이지 않은 이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감독과 프로덕션에 대해 비밀주의를 유지하자, 다이렉트 비디오 영화(Direct-to-Video)로 비춰지는 모양이다.

어중이떠중이에, 사기꾼이 꼬였다.

노련한 조감독 터커 레이튼 선에 걸러지고 있었다.


“보스!”


터커 레이튼과 배우 오디션 일정을 점검하고 있는데, 도널드 제이콥이 다급하게 집무실로 들어왔다.


“윌리엄 파커께서 입원하셨다고 합니다.”

“할아버지가요!”

“오늘 오전에 집사 브래드가 뉴욕병원으로 모셨다고 합니다.”

“당장 뉴욕행 항공편 알아보세요!”


류지호는 열일 젖혀놓고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다.


‘후우. 윌리엄 할아버지에게 별일 없어야 할 텐데....’


위독하다거나 큰 병세는 아니라고 한다.

그럼에도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강의까지 빠지며 뉴욕으로 날아갔다.


✻ ✻ ✻


뉴욕에 도착한 류지호가 곧바로 뉴욕병원으로 향했다.

마음은 급한데 면회 절차는 왜 이리 까다롭게 구는지.

VVIP 환자만 이용할 수 있는 특실이라 어쩔 수 없었다.


쿨쿨.


윌리엄 파커가 침대에서 편안한 안색으로 잠들어있다.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해요.’


파커 가문과 인연을 맺은 지가 햇수로 벌써 8년이다.

레오나를 구해주면서부터 시작된 인연.

과거로 돌아오지 않았다면 맺어지지 않았을 인연이다.

친가 쪽으로는 촌수를 따지기도 민망한 먼 친척만 있다.

외가를 제외하고 친인척이 거의 없는 류지호다.

그런 류지호에게 윌리엄 파커는 얼굴도 모르는 예전에 돌아가신 친할아버지의 환생 같은 착각이 들게 했다.

그 정도로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다.


‘....할아버지.’


윌리엄은 또 어떤가.

손자를 입양한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류지호를 살뜰하게 챙기고 있다.

경영일선에 완전히 물러나서 파커 저택에서 은거하다시피 하고 있는 윌리엄이다.

그런 일상에서 류지호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다.

노인들은 자손들의 성장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

류지호는 파커 자손 누구보다 사업적으로 인격적으로 훌륭하게 성장하고 있다.

십대 시절부터 뛰어난 통찰력으로 부자전용 종합금융시스템을 제안했다.

G&P의 주요 사업부문으로 자리 잡는데 큰 공헌을 했다.

무엇보다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영화사를 인수해줬더니 10년도 안 돼서 메이저 스튜디오 말석을 차지할 정도로 성장 시켰다.

부자펀드는 누가 뭐라고 해도 류지호의 아이디어다.

미국의 부자라면 누구나 맡기고 싶어 하는 비공개 펀드다.

심지어 중동의 왕족까지도 돈을 맡기고 싶어 한다.

수익률과 부가서비스가 매우 만족스럽게 때문이다.

투자를 배우고, 세상을 배우겠다던 꼬맹이는 이제 없다.

100만 달러를 투자받고 좋아하던 애송이 사업가는 이제 10억 달러를 굴리는 기업의 소유주가 되었다.

홀로 빛을 내고 있다.

알아서 자신의 가치를 사람들에게 증명하고 있다.

파커 가문 입장에서도 류지호는 가족의 은인이다.

덕분에 레오나가 큰 사고를 면했다.

가문의 금융 사업에도 기여했다.

비즈니스 관계를 넘어서 사적인 관계도 더욱 돈독해졌다.

이제는 파커 가족의 일원이나 마찬가지로 여겨질 정도다.


‘건강하세요. 제가 오래토록 효도할 수 있게.....’


은혜를 갚는 것이 아니다.

효도다.

류지호는 두툼하지만 주름으로 가득한 윌리엄의 손을 쥐었다고 놓았다.

조심스럽게 손을 시트 안으로 넣어주고 돌아섰다.

병원을 떠난 류지호가 G&P 투자은행으로 이동했다.


“다행히 몸살이래. 혹시 몰라서 입원 시킨 거야. 연세가 있으니까.”


캐서린의 말에 류지호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수업은 어떻게 하고 뉴욕까지 왔어?”

“걱정 돼서....”

“별 일 아니니까... 얼마나 머물 거야?”

“할아버지의 병세에 달렸죠.”

“특별한 이상은 없다니까. 금방 퇴원할 거야.”

“몸살 외에는 다른 이상은 없는 거죠?”

“그렇다니까.”


제임스 파커가 류지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 가족의 전용기 빌려줄까?”

“.....?”

“사실 아버지 건강상태로 LA까지 날아가는 건 무리야. 대신 네가 자주 찾아와야해.”

“별 이상 없다면서요?”

“아버지 나이를 생각해 봐라.”

“최대한 자주 찾아뵐 수 있도록 노력해 볼 게요.”


캐서린이 나서서 중재했다.


“지호에게 부담 주지 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애한테....”

“아니에요. 제가 조금 무심했단 생각이 들어요.”

“무심하기는 전화통화 자주한다며? 아참. 왜 남들 다 가지고 있는 셀룰러 폰은 개통 안하는데?”

"비퍼로 충분했는데... 이참에 셀룰러 폰 하나 마련해야겠어요.“


류지호의 행동반경은 매우 한정적이다.

UCLA 캠퍼스, 웨스트우드, 간혹 컬버시티와 한인타운 정도.

때문에 비퍼로 충분했다.

게다가 내년에 최초의 폴더폰 스타택이 출시된다.

그때 개통하려고 했다.

막상 윌리엄의 입원 소식을 뒤늦게 전해 듣게 되자, 그래서는 안 될 것 같다.

기계값, 통신요금은 전혀 부담이 안 된다.

사회보장번호가 있는 신분이기에 미국에서 무선통신개통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

의지의 문제일 뿐.


작가의말

즐겁고 보람 된 하루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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