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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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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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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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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0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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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개놈이라니까! (4)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으갸갸갸~”


류지호가 크게 기지개를 켰다.

수잔 베일리가 해리슨 노튼을 배웅하고 돌아왔다.


“뉴욕에서 만나볼 배우는 다 만났어요.”

“수고했어요.”

“별말씀을.”

“수잔은 곧바로 LA로 돌아갑니까?”

“내일 오후 비행기를 탈 예정이에요.”

“함께 저녁 먹을 수 있어요?”

“영광입니다.”


일개 캐스팅 디렉터가 메이저 스튜디오 오너와 저녁식사를 할 기회가 언제 또 올까.

스케줄이 있어도 취소할 입장의 수잔이다.


“오디션 결과는 저녁 먹으면서 합시다.”


도널드 제이콥이 류지호 일행을 브루클린 인근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이끌었다.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자주 찾는 레스토랑이다.

영화계의 거물 마르틴 스코체제나, 배우 안토니 드니로 같은 유명 인사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류지호 일행이 찾은 날은 유명인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예약석을 찾아가는데, 하비 웨인스타인이 아는 체를 했다.


“헤이.”

“헤이.”


인사를 받아준 류지호가 하비 웨인스타인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는 여성을 힐끗 봤다.

20대 초반의 턱 보조개가 인상적인 백인 아가씨다.

웨인스타인 동석자와 눈이 마주치자, 류지호가 가볍게 고개를 살짝 숙여보였다.

그녀가 눈인사로 받아줬다.

예약석에 자리를 잡은 류지호는 하비 웨인스타인에 대한 관심을 끊었다.

반면에 하비 웨인스타인의 동석자는 호기심을 보였다.

하비 웨인스타인이 젊잖게 타일렀다.


“로즈, 식사 중에 남의 테이블을 훔쳐보는 건 실례야.”


호기심이 턱까지 차오른 여성은 귓등으로 들었다.

연신 류지호 쪽 테이블을 힐끗거리기 바빴다.

로즈 맥루한(Rose Mckuhan)이란 이름의 이 여배우는 작년 <둠 제너레이션>으로 데뷔했다.

하비 웨인스타인이 준비 중인 영화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 중이다.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한 로즈가 물었다.


“일본인?”

“한국인.”

“학생처럼 보이는데.... 하비와 어떻게 아는 사이예요?”

“친구야.”

“친구? 월가의 투자회사 부사장쯤 되나.....?”


레스토랑의 드레스코드 때문에 세미정장을 입은 류지호다.

맨해튼 금융가 멋쟁이들 사이에서도 아는 사람만 안다는 럭셔리 브랜드다.


“내가 제작하는 영화에 투자도 하고... 나와 매우 밀접한 관계라고 할 수 있지.”

“영화에 투자를 한다고요? 저 나이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돈 많고, 능력만 있으면 돼지.”

“월가에서 헤지펀드라도 운영하나.....?‘

“미스터 류에게 관심 있어?”

“하비처럼 잘 나가는 프로듀서가 먼저 인사할 정도라면 대단한 애라는 증거 아니에요?”

“하하하. 아무렴, 미스터 류는 그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지.”


더욱 더 궁금증이 생긴 로즈가 다시 한 번 류지호의 테이블로 고개를 돌렸다.

때마침 고개를 돌리던 류지호와 눈이 마주쳤다.


생긋.


로즈가 미소를 지어보였다.

류지호는 별 반응 없이 일행들과의 대화에 집중했다.


“쳇.”


로즈가 실망한 표정으로 하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로즈, 꿈도 꾸지 마.”

“뭘요?”

“네가 넘볼 남자가 아니야.”

“난 동양인 남자애한테 관심 없어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런데 얼마나 대단한 애인데 그래요?”

“진짜 몰라?”

“내가 알만 한 애였어요?”

“트라이-스텔라의 오너잖아.”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로즈가 또 다시 고개를 돌려 류지호를 확인했다.


“잡지나 TV쇼에서 본 것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데.....”


각종 매체에 실리는 류지호의 사진은 군입대 전의 사진일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서양인들은 동양인의 외모 구분을 잘 못한다.


“쟤가 아니 저 사람이 트라이-스텔라 스튜디오의 오너라고요?”

“동양인이 나이에 비해 어려보이긴 하지. 미스터 류가 너보다 두 살 많을 걸?”

“나보다 두 살 많다고..... 저 외모가?”

“팁을 하나 주지. 동양인 특히 한국인과 만나게 되면 외모보다 최소 5살 이상은 높게 잡아야 할 거야.”

“축복받은 사람들이네.”


로즈 맥로한이 입술을 삐죽 내밀며 투덜거렸다.

자신에게 대해 무슨 이야기가 오가는지 알지 못하는 류지호는 음식이 집중했다.

조감독 터커 레이튼이 말을 꺼냈다.


“캡틴은 할리우드보다 뉴욕에서 더 인기가 많은 것 같아.”


류지호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사교파티를 많이 다니다보니 사귄 사람이 꽤 많아. 깊게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아.”


게리 켐프가 입을 열었다.


“연준에서 언제까지 금리를 인상할 것 같아?”

“최소한 5%에는 맞출 것 같은 분위기라네요.”

“주택시장에도 영향이 있겠지?”

“별로... 캘리포니아는 부동산 경기가 다시 살아날지도 모르겠다고 전망하던데.....”

“기준금리가 매 분기별로 인상되고 있는데?”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불경기에서 호황기로 전환될 거라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아서.”


류지호와 일행은 <The Killing Road>와 관련된 이야기뿐만 아니라 할리우드 소문에서부터 미국 경제까지 다양한 화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하하하.

호호호.


식사 내내 류지호의 테이블에서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게리와 터커 둘 모두 유쾌한 성격이다.

수잔 베일리는 별 것 아닌 말장난에도 잘도 웃었다.

‘슈퍼 갑‘ 앞에서는 동서양 구분 없이 처신을 잘해야 하는 법이니까.

저녁식사에서 와인을 네 병이나 비울 정도로 화기애애한 시간이었다.

그 시간 하비 웨인스타인은 어떻게 해서든 로즈 맥로한을 호텔로 데려가려고 수작을 부렸다.


“저녁 먹고 뭐할 건데?”

“......”

“술 한 잔 하지.”


뉴욕이나 베벌리힐스의 유명인들이 자주 찾는 레스토랑에서 간혹 보이는 풍경이다.


❉ ❉ ❉


“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영화 촬영하는 동안 사용하고 반납하도록 해.”


윌리엄 파커가 자가용 비행기를 내주겠다고 제안했다.

류지호가 정중히 사양했다.


“5년 안에 제 힘으로 전용기를 사겠어요.”


푸하하하하!


류지호의 호언장담을 들은 윌리엄 파커가 병실이 떠나가라 웃음을 터트렸다.


“큰오빠....?”

“왜?”

“전용기 사면 날 제일 먼저 태워줘, 알았지!”

자가용 제트기가 자동차도 아니고.

그럼에도 레오나는 무조건 산다고 단정을 지어버렸다.

류지호가 레오나에게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말했다.


“레오나 뿐이겠어? 가족들부터 먼저 시승을 하는 게 당연한 순서지.”


레오나가 류지호의 새끼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걸었다.


“제일 좋은 걸로 사야 돼.”

“노력해 볼게.”


레오나가 조막만한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다.


“예스!”


캐서린이 제임스에게 물었다.


“Jay가 전용기를 살 정도가 되면 부자펀드 멤버로 들어오게 되는 건가?”

“지금 당장이라도 펀드를 맡길 수야 있지.”


제임스가 류지호를 돌아보며 물었다.


“안 그래?”

“저도 투자회사를 가지고 있어요.”

“부자펀드의 집사 서비스를 받으란 말이야.”

“제 홈그라운드는 한국이에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한국으로 완전히 돌아가려고?”

“한국과 미국을 오가게 되겠죠. 그때가 되면 전용기가 필요할 수도 있겠네요.”

“왜 한국을 고집하지? 네가 더 큰 꿈을 펼칠 곳은 미국이야.....”

“미국을 넘어 전 세계죠.”

“영화는 LA, 금융은 뉴욕이다.”

“그 두 곳에 제 전초기지를 세워두었잖아요. 본진이 안정되지 못하면 최전선에 세운 기지도 불안해지지 않겠어요?”

“전 세계를 상대하려면 국적도 무시 못해.”

“소닉은 잘만 글로벌 기업으로 승승장구하고 있어요.”

“내가 걱정하는 것은 네 국적 따위가 아니야. 코리아에 내재되어 있는 근본적인 불안정성 때문이야. 전쟁과 정치 그리고 곧 맞게 될....”


아시아의 경제위기.


“알아요. 그런데....”


류지호가 잠시 끊어다가 말을 이었다.


“개인이나 국가나 가장 약할 때 한 단계 성장하는 법이라고 배웠어요. 제 조국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한국은 어려움을 이겨나가며 더욱 성장할 거라고 믿어요. 마치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겪은 후에 성숙한 어른이 되는 것처럼. 저는 그 시기를 가족, 친구 그리고 이웃들과 함께 극복하고 싶네요.”


제임스가 진심으로 후회된다는 듯 말했다.


“네게 트라이-스텔라가 아니라 파인소프트나 IBT 같은 기업을 사줬어야 했어. 그래야 낭만적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겠지.”

“컴퓨터 회사를 인수해줬어도 Jay는 지금처럼 소유만 하고 경영에는 간섭 안 했을 걸.”


캐서린이 ‘내말이 맞지‘하는 표정으로 류지호를 쳐다봤다.


하하.


류지호는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윌리엄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Jay가 가야할 길은 스스로가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너희 부부는 간섭하지 말거라. Jay의 인생은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Jay 본인의 것이니까.”


제임스가 윌리엄에게 항변했다.


“저 녀석이 아까운 재능을 써먹지 않고, 딴 곳에 정신이 팔려있으니까 그렇죠.”

“Jay의 영화사가 빅6의 맨 앞줄에 설지 누가 알겠냐?”

“그래봐야 엔터테인먼트 기업일 뿐이죠.”


할리우드 스튜디오를 얕잡아보는 제임스의 말에 류지호가 발끈했다.


“워너-타임이나 LOG 컴퍼니를 두고도 그렇게 말할 수 있어요?”


킥.


캐서린이 웃음을 터트렸다.

현재 LOG 컴퍼니의 시가총액은 300억 달러가 넘는다.

일개 엔터테인먼트 기업이라고 폄하할 수 없는 규모다.


“저를 높게 평가해주시는 건 고마운데요. 저는 더 이상 십대가 아니랍니다. 저도 목표가 있고, 그걸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알아. 질투가 나서 그랬다.”

“질투라니 말도 안 돼요. 월가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투자회사 최고경영자가 할 소리는 아니죠.”


그때 도널드 제이콥이 VVIP 병실로 들어왔다.

공항으로 출발할 시간인 모양이다.


“이만 LA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레오나가 매우 섭섭하다는 듯 투정을 부렸다.


“큰오빠는 대학생인 주제에 아빠보다 더 바쁜 것 같아.”

“그러게.”

“이번 여름 방학에 진짜 한국에 같이 못 가?”

“영화를 찍어야 하니까.”

“아쉽지만.... 할 수 없지.”

“오랜만에 아라랑 재미있게 놀다 와.”

“응.”


레오나는 어릴 때처럼 류지호에게 놀아달라고 떼를 쓰지 않았다.

제법 정상적인(?) 대화가 통하는 숙녀가 되었다.

사춘기를 겪고 훌쩍 커버린 아라 만큼 레오나에게도 똑같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퇴원하시는 것까지 못보고 가서 죄송해요.”

“네가 영화 찍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고 싶었는데, 아쉽게 되었구나.”

“다음 영화는 뉴욕에서 촬영할게요. 꼭이요.”


류지호는 파커 가족과 일일이 포옹으로 작별 인사를 하고 병원을 나섰다.

프로듀서 게리 켐프는 ParaMax의 뉴욕사무실에서 며칠 더 일을 처리하기로 했다.

가장 중요한 업무는 해리슨 노튼의 출연계약 조율이다.

조감독 터커 레이튼 역시 곧바로 LA로 복귀하지 않는다.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할 예정이다.

그곳에서 로케이션 매니저를 만나 촬영지 후보지들을 답사하고 복귀하기로 했다.


❉ ❉ ❉


프로들과 일하게 되니 류지호는 몸이 편했다.

스트레스도 훨씬 줄었다.

실무 대부분을 프로듀서와 조감독이 준비해 주기 때문이다.

류지호는 창작적인 부분에만 좀 더 집중할 수 있었다.

남녀 주인공에 대한 계약이 무리 없이 마무리되었다.

류지호는 단역 오디션은 조감독인 터커 레이튼에게 일임했다.

최종적으로 류지호가 결정을 하겠지만, 모든 배우들의 오디션을 챙길 짬이 나지 않았다.

마지막 학기 강의와 영화 준비로 하루하루가 바쁜 와중에 뜻밖의 연락이 왔다.


“안녕하세요. 류 감독님.”


류지호가 감독이라 불리길 원한다는 것을 잘 아는 것 같다.

백설제당 미디어사업부의 이희경 상무는 꼬박꼬박 ‘감독’ 호칭을 썼다.


“오랜만에 뵙네요.”


이희경 상무는 혼자 오지 않았다.

전형적인 한국의 대기업 임원 분위기를 풍기는 두 명의 중년남자와 함께 찾아왔다.


“여기 이분은 오성물산의 김충식 상무님이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류지호입니다.”

“이쪽은 오성영상사업단 실무를 총괄하는 오재호 단장님이에요.”

“오재호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네. 반갑습니다.”


오성그룹과 백설제당은 사이가 그리 좋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심하게 표현하면 ‘원수지간‘이라고 해야 할까.

그것도 웃어른인 회장들 사이에서나 그런 모양이다.

비즈니스의 영역은 나름 협조가 잘 이루어지는 것 같아보였다.

그렇지 않고서는 라이벌이랄 수 있는 오성영상사업단 관계자를 소개시켜줄 리가 없으니까.


“차는 뭐로 하겠습니까?”

“커피로 하겠습니다.”


이희경 상무가 말하자,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나도 같은 걸로 부탁해요.”


제니퍼 허드슨이 음료를 준비하는 동안 류지호가 이희경에게 물었다.


“DreamFactory와 협력은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요?”

“네.”

“한국 언론에서 난리가 났겠군요?”

“WaW의 멀티플렉스 개관만큼 빅뉴스는 아니죠.”

“이미 떠들썩한 뉴스였죠. 아시아 최대 규모도 아니고.... 백설제당의 DreamFactory 투자는 비교적 최신 뉴스고.”


서울시극장연합회에서 G.O.M Cinemas 설립을 극렬하게 반대했다.

대여섯 개 스크린도 아니고 무려 10개 스크린의 복합상영관이 서울에 들어서면 기존 상권을 파괴한다는 논리를 폈다.

그 때문에 꽤 소란스러웠었다.


“왜 오성은 안 됐고 백설이 계약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별로요.”

“스티븐 아들러씨와 친한 걸로 보이더니....”

“생각하는 것만큼 아들러 감독과 친한 사이는 아닙니다. 노는 물이 달라서요.”


잠시 대화가 끊겼다.

제니퍼가 커피 네 잔을 각자의 앞에 놓아두고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커피 드시면서 이야기 하죠.”


네 사람이 잠시 커피 맛을 음미했다.


“향과 풍미 모두 훌륭하네요.”

“제니퍼가 커피와 각종 차에 조예가 깊어요. 나도 모르는 중국과 일본의 전통차를 알고 있을 정도입니다. 동양문화에 관심이 많다네요.”


손님들이 굳이 알 필요 없는 내용이다.

이희경과 함께 온 오성영상사업단 관계자들이 어색하고 불편해 할 것 같아 분위기를 풀어주기 위해 말을 길게 늘어놓은 류지호다.

어색하고 딱딱한 분위기가 조금 풀렸다고 판단되었을까.

김충식 상무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대학생이라고 들었는데....”

“UCLA에 재학 중입니다.”

“전공은....?”


말끝을 흐리는 것이 존댓말과 반존댓말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양이다.

오성그룹은 대한민국 최고 기업이다.

그 중에서도 오성물산은 그런 거대한 그룹의 모태가 되는 회사다.

그런 기업의 부사장급 상무다.

한국에서는 자신이 높여줄 만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심지어 재벌 3세들에게 존중을 받을지언정 깍듯하게 예를 차릴 일은 없다.


“다음 학기부터 영화전공을 할 예정입니다.”

“...음.”


원래 조금 더 말을 이어나가는 것이 비즈니스 대화법이다.

그런데 류지호는 김충식을 내버려두고 이희경으로 대화 상대를 바꿨다.


“하버드에서 공부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서울대 졸업하고 하버드에서 석사를 했어요.”

“혹시 전공이 엔터테인먼트와 관련된 분야였습니까?”

“아니요. 하버드에서는 동아시아 역사학 석사, 중국에서 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어요.”

“작년에 중국에 첫 진출했다죠?”

“솔직히 말씀드려서.... 쉽지 않아요.”


끄덕.


이미 보고 받은 내용이 있었다.

백설제당 칭다오식품유한회사가 한국에서 37년 전통의 스타식품인 쇠고기 다시다를 야심차게 출시했다.

중국시장에서 쓰라린 실패를 맛보고 있는 중이다.


“아, 그러셨군요.”


류지호는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소비자들에게 욕을 먹으면서까지 중국에 얽매이는 이유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

2020년대 백설제당그룹은 4개 사업 분야에서 중국 80개 이상 도시에 150개에 달하는 현지법인을 운용하며 연간 200억 위안(대략 3조)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게 된다.

백설제당그룹의 해외 사업매출 이익에서 상위권에 들어가는 시장이 중국이다.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게 된다.

물론 대주주에 중국기업과 투자사들이 차지하고 이사회 멤버에도 들어가게 되는 것도 있고.


“류지호 감독님....”


류지호가 친절하게 호칭을 정리해줬다.


“호칭이 입에 붙지 않으면, 편하게 미스터 류라고 하세요. 여긴 미국이니까.”

“미스터 류..... 아직 2학년이면 그 동안 휴학을 하고 사업을 한 겁니까?”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은 가야하는 대학에 다녀왔죠.”

“......?”

“군대.”

“할리우드 사업들을 컨트롤 하면서 대학 공부를 같이 병행하는 게 가능합니까?”

“컨트롤 하지 않습니다. 나는 소유만 하지 경영에 참여하고 있지 않으니까요. JHO 산하 기업들의 전문경영인들은 능력과 인품으로 인정받는 분들입니다. 경영분야에서 비전문가인 내가 간섭을 하거나 참여를 했다면 지금의 성장세는 없었을 겁니다.”


영화사업의 비전과 사업방향은 모두 류지호가 수립했다.

굳이 그런 말까지 할 필요는 없다.

이희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에서는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니까.


“5억 달러, 30%, PS의 폴 가드너에 이은 2대 주주... 맞죠?”

“예.”

“일본 배급권까지 확보했으면 좋았을 걸 그랬습니다.”

“아시아 전체와 일본의 시장규모를 비교해 봐도 일본시장이 압도적이니까요.”

“첫술에 배부를 순 없겠죠."

"듣기로는 트라이-스텔라도 일본에 진출하는데 난항을 겪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일본이 밖에서 보던 것보다 꽤나 비즈니스에서 폐쇄적인 모양입니다. 영화만 놓고 봐도 빅3가 배급을 꽉 잡고 있어서 할리우드 직배사들도 좀처럼 안착을 못 하고 있는 것 같더군요.”

“DreamFactory의 경우도 UPI를 통해 일본에 영화를 배급하게 될 것 같아요.”


류지호와 이희경이 대화를 주로 나누자 꿔다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된 오성영상사업단 관계자다.

이희경은 오성그룹 회장의 직계 손녀다.

그럼에도 로열패밀리 특유의 거만함이나 특권 의식이 없어보였다.

오성그룹의 가풍이 겸손하냐면 그렇지도 않다.

귀족 못지않게 자란 재벌 3세들은 알게 모르게 선민의식이 있다.

잠시 대화를 나눠본 것으로 선민의식이 있는지 단번에 파악할 순 없었다.

확실한 것은 하나 있다.

미국에서 오래 생활해서인지 마인드가 서구적이란 것.


‘재벌가의 유전자라고 할까.‘


사업가 특유의 야심이나 소유욕도 얼핏 보였다.

류지호로서는 처음으로 한국 재벌의 자녀와 대화를 나눠보았다.

재벌하면 떠오르는 이미지하고는 달랐다.

재벌가의 딸(?)답지 않게 담백한 느낌이다.

이전 삶에서의 이희경 상무가 어떤 평판이었는지 떠올려봤다.

기본적으로 좋은 사람이다.

비즈니스 부분에서 집요한 구석이 있고 때로는 피도 눈물도 없다.

묘한 이중성의 사업가였던 것 같았다.


‘남자로 치면 한량 기질이 있는 호걸 정도.....‘


반면에 오빠인 이문현은 IT기업의 연구원 같은 인상의 학구파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린 외모에 속으면 안 된다.

백설제당그룹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무섭도록 치밀한 면모를 보이는가 하면 추진력 또한 탱크 같은 사내니까.


“그런 판에서 이미 십대 시절부터 활동하고 있었다는 거로군요.”

“.......”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보자고 오빠와 큰 목표를 세웠어요. 류 감독님을 보고 있자면 우물 안 개구리가 따로 없었네요.”

“이제 시작입니다. 백설그룹 역시 DreamFactory에 투자하면서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에 들어 선 겁니다. WaW와 선의의 경쟁을 벌이면서 함께 한국 엔터산업의 발전을 이끌기를 기대해봅니다.”


잠자코 있던 김충식의 입이 열렸다.


“그런데 말이요.”

“......?”

“할리우드의 메이저 스튜디오씩이나 가지고 있으면서 왜 한국에 영화사도 함께 운영하는 겁니까?”

“겨우 3,000억 규모 밖에 안 되는 한국영화에 많은 투자를 하는지가 궁금합니까?”


그것도 합작 회사도 아니다.

참고로 극장 매출만 3,000억 달러 시장규모다.

부가시장 및 연관 산업까지 포함한 산업규모는 1조를 넘겼다.


“오성영상사업단은 왜 영화산업에 들어오려고 합니까?”

“그야....”

“비디오데크와 TV 또 컴퓨터를 꾸준히 팔아먹으려면 콘텐츠가 필요하겠죠. 마찬가집니다. 나 또한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 한국에 영화사를 설립한 겁니다.”

“혹시 케이블 TV에도 관심 있어요?”

“큰 관심이 없습니다. 지금으로써는.”


왠지 오재호 단장이 안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들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자금력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류지호가 케이블TV까지 진출하게 되면 쉽지 않은 업계 판도가 예상된다.

케이블TV에 관심이 없다고 하니 미국식 수직계열화는 아직 고려하고 있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자신은 시종일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다고 믿고 있겠지만, 류지호는 오재호 단장의 속내를 충분히 간파할 수 있었다.


“저기 혹시 말이요. 강남에 멀티플렉스를 곧 오픈하지요?”

“예.”

“공연장 운영이라는 것이 그렇게 녹록한 것이 아니에요. 우리와 합작을 해보는 건 어떻겠어요? 와우 픽처스를 인수할 의향도 있고.”

“......?”


웨스트우드 사무실에서 애완견을 키우지 않는다.

그런데 어디서 개소리가 들린다.

류지호는 박충식의 제안에 욕이 삐죽 나올 뻔했다.

오성그룹 고위직다운 발상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WaW 픽처스가 만만한 먹잇감으로 보였던 것일까.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농담 따먹기 하려고 비싼 항공료 들여가며 이곳까지 날아온 거 아니요.”

“회장님 지시라도 받고 왔다는 겁니까?”

“내게 그 정도 인수합병 건은 결정할 권한이 있지요.”

“못 들은 걸로 하죠.”

“조금 더 들어보게. 이번에 미스터 류가 시나리오를 썼다고 하는 영화가 개봉한다지?”


말투가 변했다.

협박이라도 하려는 걸까.


작가의말

즐겁고 활기차게 한 주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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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87 lo******
    작성일
    22.08.01 09:52
    No. 1

    who let the dogs out~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2.08.01 10:02
    No. 2

    good job. 잘 봤어요.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59 루시오엘
    작성일
    22.08.01 12:39
    No. 3

    죄다 박살을 내버려야지 건방지게 어디서!!

    찬성: 3 | 반대: 0

  • 작성자
    Lv.99 사비에르
    작성일
    22.08.01 19:32
    No. 4

    90년대 라떼니까 진짜 저런 꼰대 월급쟁이 주제에 미국기업 오너에게 그랬을 것 같기도 한데, 이번 장면은 월급쟁이 사회에서 좀 이해하기 애매해요. 미국 수위권 기업 + 한국에도 알려진 수 조원 보유 오너를 나이가 좀 많다고 대기업 임원이 하대하는게 상상 안되네요... 대기업 임원일수록 저런 관계에 빠삭할텐데...

    찬성: 5 | 반대: 0

  • 작성자
    Lv.97 초류공자
    작성일
    22.08.01 22:18
    No. 5

    몇 가지 걸리는 지점.

    1.
    사이가 좋지 않은 삼성과 cj.
    cj가 주력하려던 영상사업에 발을 걸치려는 삼성.
    그런 삼성을 도와 주인공을 만나게 한다는 지점.

    2.
    새로운 사업분야를 진출하며 터줏대감이랄 수 있는 주인공에 대한 조사가 없었나?
    주인공에게 사업 제안을 하려면 서로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줘야할 텐데
    엉뚱한 저런 제안이 먹힐 거라고 생각하나?

    찬성: 3 | 반대: 0

  • 작성자
    Lv.99 무한땅꼬마
    작성일
    22.08.03 20:16
    No. 6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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