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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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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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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0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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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7쪽

Collapse. (3)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주방위군이 사람의 심장 박동을 감지할 수 있는 음향감지장치를 이용해 생존자 수색에 나선다.


[마취제를 사용하면 치명적인 혼수상태를 일으킬 수 있어.]

[그래도 해야만 해. 절단해!]

[잔해를 치우고 파편을 제거하면.....]

[이미 부위전체가 괴사했다. 이대로 방치하면 신체부위가 문제가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감염부위가 퍼져나갈 수 있어. 빨리 꺼내서 병원으로 후송해야 돼!]


영화는 마취제 없이 팔다리를 절단해 건물 잔해 아래에 깔린 사람을 구조하기도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비인간적인 행위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람을 살리려면 피치 못할 상황도 있는 법.


[모두 현장에서 빠져!]


한창 구조작업을 벌이다가도 사고현장에서 사람들이 철수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추가붕괴 위험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흑.]


대피과정에서 부상당한 존의 아내는 야전병원 같은 천막으로 후송되어 응급치료만 받은 상황.

수많은 환자들이 몰려들어서 천막 안은 마치 전쟁터의 야전병원 같다.


[혹시 부상을 당했다면 장로병원이나 대학병원으로 가봐.]


데이빗은 실종된 아빠와 아비규환에서 헤어진 가족을 찾아 온 사방을 찾아 헤맨다.

한동안 영화는 데이빗을 따라 다닌다.

사람들은 데이빗을 붙잡고 자신의 가족의 외모를 설명하고, 혹시 보지 못했냐고 묻는다.


[저도 가족을 찾고 있어요.]

[사망자 명단은.... 저 쪽 천막 앞에 붙여놓기도 했고.... 통제센터에 가면 알려 줄 거야.]

[네 가족 모두 무사하길 하나님께 기도하마.]

[아저씨도요.]


관객은 데이빗을 통해 재난상황에 대처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간접 경험하게 된다.


[위험해요!]

[아악!]


간호사 한 명이 구조작업 도중 머리에 건물 파편을 맞는다.

데이빗이 간호사를 부축해 응급치료 막사로 달려온다.

끝내 간호사는 숨을 거둔다.

그 과정에서 데이빗은 큰 충격을 받는다.

덜컥 겁도 난다.

혹시나 가족들도 좋지 못한 상황에 처했을까봐.


[생존자가 있다!]


13세 소녀가 붕괴된 건물 지하에서 발견된다.

데이빗이 기대를 품고 달려간다.

소녀는 데이빗의 여동생 엘레나가 아니다.

구조작업은 악전고투다.

구조대원도 인간이다.

구조과정에서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되는 일이 발생한다.


‘무슨 영화가 이렇게 리얼하지?’


마치 다큐멘터리 같다.

구조하던 간호사가 죽고, 구조대원이 무수히 부상을 당하는 장면을 상업영화가 보여줄 리가 없다.

전쟁영화도 아니다.

구조과정에서 사망자가 나오는 재난영화는 이제까지 없었다.

죽더라도 영웅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누군가를 구하고 대신 죽는다.


‘재미가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영화가 진행될수록 화끈한 할리우드식 장르영화를 기대했던 관객들은 헛갈리기 시작했다.

드라마틱한 연출도 없고, 악역이 등장해 갈등을 유발하지도 않고, 영웅주의 신파도 없다.

그럼에도 영화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다.

일단 재난현장과 구호소, 임시 치료소, 폐허가 된 쇼핑몰 구조현장 등의 미술이 워낙에 뛰어난데다가 심장박동탐지기, 수십 마리의 경찰견, 각종 구조장비들을 동원해 건물 잔해에서 생존자와 희생자들의 시신을 탐색하는 스케일이 볼만하기 때문이다.


부우웅.


육중한 트럭들이 계속해서 건물 잔해를 싣고 떠난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이런 장면묘사를 위해 전문가들에게 고증을 받아 굉장히 정밀하게 묘사했다.

감독 또한 현장에 은퇴한 구조전문가를 상주시키며 자문을 받았다.

구조대원들이 매뉴얼대로 행동하는 모습 그 자체가 감동이다.

누구라도 도망가고 싶을 그 상황에서 목숨 걸고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은 일부러 포장을 입힐 필요가 없다.

화재현장 바로 옆 그늘에서 우유와 빵 한조각으로 허기만 겨우 채우고 구조현장으로 달려가는 한국의 어느 이름 없는 소방대원처럼.


[흑흑....]


사랑하는 사람과 감격의 재회를 한 이들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며 부러워하는 사람들의 눈빛.

길가에 널브러진 채로 멍하니 하늘만 올려다보는 생존자들의 공허한 눈빛.

검은색 바디백에 담겨져 운반되는 시체들의 닫힌 눈.

먼지를 뒤집어 써 형편없는 몰골이지만 무사히 목숨을 건진 사람들과 한쪽에서 싸늘하게 식은 주검들이 한 화면에 잡히면서 극명하게 비교된다.

소중한 사람들과 무사히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등 뒤에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을 너무나 잘 알기에 마냥 기뻐하기보다는 남겨진 그들의 대한 미안함 때문에 흐느껴 우는 생존자의 가족들.

서로의 생사를 모르는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결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들.

그런 모습들이 소년 데이빗의 눈을 통해 생생히 관객에게 전달된다.

등장인물 모두가 주인공처럼 보인다.

자신만 살겠다고 자식까지 내팽개치고 제일 먼저 달아난 한국인 회장과 책임회피에만 전전긍긍하는 쇼핑몰 임원들.

그들만이 악당답게 묘사된다.

그 외에는 모든 이들이 안타깝고 처절할 뿐이다.

영화가 시작하고 정확하게 20분 만에 쇼핑몰의 붕괴가 일어났다.

주인공 존 역시 극 초반에 사고에 휘말려 붕괴된 건물 속에 갇히게 된다.

스토리의 대부분은 갇힌 사람이 아니라 그들의 가족들과 재난에 대처하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감독은 매몰자의 가족들 표정과 감정 하나하나를 세세하게 그려낸다.

물론 매몰자의 심정까지도 잡아낸다.

모든 장면이 류지호의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팔을 걷어붙이고 구조대원들을 돕는 일단의 노인들이 있다.

그들은 스스로 예비역 미해병이라고 밝히며 궂은일을 한다.

이런 장면은 전형적인 미국 만세처럼 느껴진다.


[난 평생을 미국을 위해 싸워왔고, 지금 이 시간 미국 시민을 구조하는 건 내 의무라네.]


류지호가 쓴 오리지널 시나리오에는 전혀 다르다.


[난 내 이웃을 돕고 싶을 뿐이야. 나도 한 손 보탤 수 있도록 해주게. 이래 뵈도 젊을 적에 마린이었다네.]


재난영화에서 전문 직업군에 속해 있고, 소명의식을 품고 있어야만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전문가들을 멋지게 묘사해야하는 것은 맞다.

그런데 노골적으로 미국이 어쩌고, 미국시민이 어쩌고 하는 것은 류지호 입장에서 피하고 싶은 메시지다.

뜬금없이 오글거리는 신파 대사와 이후에 올 약간의 감동을 강제하는 장면도 있다.


[잘 버텨낼 겁니다. 힘을 내요.]

[흑흑.]

[분명 살아있을 겁니다. 자 눈물 닦아요.]

[태어날 아기에게 아빠가 죽었다고 말할 자신이 없어요.]


건축사무소 직원 피터의 임신한 아내가 사고현장으로 달려와 다른 실종자 가족과 대화하는 장면이다.

한국인 회장으로 출연한 오순택이 또렷한 한국말로 대사를 했다.


[내 재산... 내 빌딩이.....! 어떻게 이룩한 백화점인데!]


수많은 사상자와 실종자를 만들어낸 비극에는 안중에도 없다.

오로지 건물이 무너져 회사가 망할 걸 걱정한다.

앞전의 오미연이 했던 ‘코리아’ ‘태권도’라는 한국말을 들었을 때와 전혀 다른 감정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시사회를 본 일부 연예부 기자들이 이런 장면을 꼬집으며 한국비하를 선동했다.

사실 삼봉백화점 건이 걸려있지 않았다면 굳이 쇼핑몰 회장이 한국인이어야 할 필요는 없었다.

일부러 탐욕스러운 쇼핑몰 회장, 관공서의 공무원들의 한심한 태도를 강조하지 않아도 주인공 가족이 겪는 사고현장에서의 모습을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그들이 자초한 일들이 어떤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는지 두 시간 내내 보여지니까.

인종차별도 언급한다.


[저 사람이 위중해 보이는데.... 이곳에 도착한 것도 나보다 먼저 왔어요.]


존의 아내와 흑인 남자가 똑같이 수술을 받아야 할 순간이다.

병원 측에서는 고민도 없이 존의 아내부터 수술실로 들여보낸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장면이 그 장면 앞쪽에 배치되어 있다.

존의 아내가 부상을 당한 이유가 흑인 소년을 구하기 위함이었다는 것.


[....엄마?]


데이빗은 헤어진 가족을 찾기 위해 폐허가 된 쇼핑몰 현장부터 다양한 장소를 옮겨다닌다.

마치 류지호의 <Life Goes On>처럼 공간과 인물이 쉼 없이 이동했다.

스테디캠의 롱테이크만 아닐 뿐, 기본적인 콘셉트는 유사했다.

<Collapse>는 상업영화다.

소영웅주의를 무조건 거부할 순 없다.


부스럭.


존이 겨우 철근을 걷어내고 운신할 수 있을 정도가 된다.

영화의 프롤로그는 존이 뉴욕에서 겪었던 어떤 사건이기도 하지만, 존이 리얼타임으로 겪은 상황이기도 하다.

클라이맥스 전에 가서야 존이 소방대원을 그만 둔 이유가 밝혀진다.

가족을 위해서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소방대장 당시 겪었던 사고의 정신적 후유증 때문이었던 것.

폐쇄 공포와 악전고투를 치루면서 당시의 트라우마가 발동된다.

그럼에도 가족들의 안위가 걱정이 되어 버틸 수가 있다.

남편이고 아빠니까.


[거기 누구 있어요?]

[도와주세요. 제발....]

[너무 아파요.]


존은 도와달라고 애원하는 사람들을 매몰차게 무시한다.

겨우 기어 다닐 수 있는 공간 속에서 오로지 가족만을 찾아 나선다.

전직 소방대원이자 전문가였다.

매몰자를 도울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존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주인공의 행동치고는 이기적이다.

한편으로는 그의 입장도 이해가 간다.

내 문제 해결이 남의 불행보다 우선이니까.


[.....하아, 하아.]


건물더미 속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사람들.

말이 살아있는 것이지, 생존자들은 몸은 꼼짝도 할 수 없다.

감각마저 점점 잃어간다.

게다가 매캐한 공기와 칠흑 같은 어둠은 정신을 피폐하게 만든다.

매몰자들은 정신을 잃지 않으려 그야말로 사투를 벌이고 있다.

구조대가 구해주러 올 때까지 절대로 정신을 잃지 않고 살아있어야 하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니까.

그렇기에 피터 그리고 와츠와 에이미는 계속해서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애쓴다.

건물 잔해에 깔려 있고, 며칠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으며, 어둠속에서 숨만 쉬며 버티는 것을 직접 당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

어둠 속에서 어디서 들리는 지도 모르는 쇠파이프 두드리는 소리와, 몸을 억누르는 흙과 돌덩이들...

그런 악몽 속에서 사투를 벌이는 매몰자의 현장감을 영화가 썩 잘 표현하고 있다.


[엘리나!]

[오빠!]


마침내 데이빗이 여동생과 재회한다.

다행히 여동생은 어떤 부부의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남매가 부부와 함께 사고현장에 마련된 상황실을 찾아간다.

부부가 병원으로 후송된 명단을 확인하게 된다.

남매는 엄마가 후송된 병원을 알게 된다.

응급수술을 받은 엄마와 상봉을 하게 된다.

재난상황을 지독하게 담담하게 묘사하던 영화가 주인공 가족의 재회 에피소드로 관객에게 약간의 숨통을 틔워줬다.

구조작업이 진행되는 사이 시간은 하염없이 흐른다.

언론 보도는 더욱 절망적이다.


[쇼핑몰이 붕괴된 지 99시간이 지난 지금 구조대원들 의 증언을 종합하면 안타깝게도 생존자가 더 있을 가능성은 상당히 희박합니다. 지상 층에 있던 사람들은 붕괴 낙차가 큰데다 콘크리트더미가 겹겹이 짓눌려 붕괴당시 대부분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뉴스화면과 매몰되어 있던 소수의 생존자들이 하나 둘 죽어가는 영상이 교차된다.


[나만 남겨놓고 죽지 말아요.]

[제발 죽지 말아요.]


와츠는 주변 매몰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자, 급속하게 두려움이 밀려온다.

그런 어둠속에서 흑흑 거리는 오미연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이런 상황이 지하 매몰자 사이에서 급격하게 전파된다.

피터 역시 함께 의지하며 죽음과 사투를 벌이던 매몰자의 인기척이 하나 둘 사라지는 걸 경험한다.

이 장면을 묘사할 때 에디 즈워크 감독은 페이드 아웃(F.O) 기법을 사용했다.

피터 역할을 하는 니콜라스 코폴라의 기운 없고 체념한 얼굴에서 페이드 아웃되면.

누군가 죽은 것이다.

다시 페이드 아웃을 길게 보여주면.

또 다른 누군가 죽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방식이다.

페이드 아웃 기법은 피터뿐만 아니라, 존의 얼굴에서, 와츠의 얼굴에서, 오미연의 얼굴에서 계속해서 남발이 된다.

급격하게 사망자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실제 매몰자가 죽는 모습을 보여주진 않는다.

그로 인해 관객들은 오만 상상을 다 하게 된다.

어느 시점에서는 페이드 아웃이 셔터를 누른 것처럼 쉴 새 없이 깜박거린다.

더 이상 지하 매몰구역에서 생존자는 없어 보인다.


텅텅. 텅. 텅텅텅.


지상에 구조신호를 보내려고 안간힘을 쓰던 존을 드디어 구조대가 발견한다.


[다친 데는 없습니까?]

[온몸에 찰과상과 한쪽 다리가 불편합니다. 골절은 아닌 듯 보이는데...]

[길게 말하지 마십시오. 숨을 쉴 수 있습니까?]

[어딘가에서 공기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구멍을 뚫어 물을 내려주겠습니다. 조금만 버텨주세요. 구조를 기다려 주십시오!]

[그보다 가족과... 가족에게 안부를 전할 수 있게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일단 그 곳까지 진입하는데 시간이 걸릴 겁니다. 힘을 내주십시오.]

[제발.... 가족과.... 아내와 아이들과....]


결국 무전기 한 대가 존에게 주어진다.

병원에서 응급수술을 마치고 나온 아내와 아이들의 전언이 전해진다.

가족들은 남편이자 아빠가 아닌 전직 소방대장에게 부탁한다.


[난 당신이 직장을 그만둬서 안심했는데.... 이제 알 것 같아. 구조를 기다리는 가족은 당신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는 걸. 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위험에 내던지는 것, 그것이 당연한 것인데 난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나봐.]


자신이 매몰되어 트라우마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 질풍노도의 아들은 마치 아빠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을 도왔다.

그 사실을 전해들은 존은 아들에게 부끄러웠다.


[하나님, 내 죄를.... 나의 죄를.... 사랑해 에리카....]


너무 힘들다.

버틸 수 없다.

피터는 이제 그만 삶을 놓고 싶어졌다.

그때.


[거기 누구 살아있는 사람 있습니까?]


처음에는 환청인 줄 안다.

피터의 스르르 감기던 눈을 뜨게 하는 사람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다친 데 없습니까?]

[왼팔과 다리를 쓸 수 없습니다.]

[호흡하는데 지장은?]

[힘들어요. 죽고 싶을 만큼.....]

[물은 어떻게 해결했습니까?]

[지상에서... 물이... 떨어집니다. 그걸 종이에 적셔서 씹어 먹었어요.]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소방대는 화재진압용 물을 뿌렸다.

혹시 가스폭발이나 인화물질의 발화로 화재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 초기에 이에 대한 개연성을 깔아두었다.


팍팍.


존이 피터가 갇힌 곳을 쇠꼬챙이를 이용해 파헤친다.

무전기로 지상과 연락 해, 피터를 구출하는데 도움을 준다.

류지호는 영웅을 등장시키고 싶지 않았다.

<Collapse> 관계자들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전직소방대장 출신의 존의 영웅적인 면모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피터의 구출을 도운 존은 매장 직원 와츠양도 찾아낸다.

마지막으로 한국계 오미연을 구하려는 순간.


꽈광!


묘비석처럼 위태롭게 서있던 구조물이 주저앉는다.

폐허를 다시 한 번 덮어버린다.

마치 최후 생존자들의 완전한 죽음을 선고하듯이.

한참을 어두운 화면 속에서 각종 소음들만 난무한다.

류지호는 관객이 답답해 미칠 지경까지 어두운 화면 속에서 각종 소음만 들리게 밀어붙이고 싶었다.

마치 관객이 잠시라도 어둠속에서 매몰자의 심정을 간접 체험해보라는 듯이.

류지호가 스크립트에 특별히 강조해 놓았는데, 에디 즈워크 감독이 충실히 따라주었다.


[오 신이시여!]

[하느님 맙소사!]


영화 속 인물들과 관객 모두가 매몰되었던 마지막 생존자들이 죽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존의 가족은 절망한다.

피터와 와츠양은 죄책감을 느낀다.

그렇게 하루가 또 흐른다.

구조 지휘부에서는 구조작업이 아닌 시신수습 작업을 명령한다.

이에 시민들이 지휘부에 항의한다.


[한 생명이 사그라지면 그와 그의 가족 세계 전부가 무너지는 겁니다!]

[당신들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겁니까?]

[한 생명의 존엄성은 이 세상 무게와 맞먹습니다. 당신들은 이 사실을 잊은 건 아닙니까!]


시민들과 구조대원들이 지휘부를 향해 격렬하게 항의한다.

류지호가 쓴 대사가 아니라 시나리오를 윤색했던 작가가 넣은 대사다.


‘한국 사람이 시나리오를 썼다면서 닭살 돋는 대사를 잘도 하네?’


일부 관객의 생각이다.

상업영화에서 주인공을 쉽게 죽일 리가 없다.

시신수습 작업이 한창일 때, 구조대원들이 생존자 반응을 잡아낸다.

마침내 생존자가 모습을 드러난다.

오미연의 눈을 가리고, 품에 안은 자세로 구조되는 존의 모습이다.

그 모습이 TV 속보로 나오고....


[예스!]

[신이여. 감사합니다!]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의 환호하는 장면이 나온다.

류지호가 싫어하는 장면이다.

마음 같아서는 편집에서 빼버리고 싶었다.

단념했다.

가능한 영화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스스로의 원칙이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서로 악수하고 포옹하는 것에 그쳤다.

종이를 집어던지는 짓은 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할까.

검은 안대로 눈을 가린 오미연이 이동침대에 실려 앰뷸런스로 옮겨졌다.

수일 동안 어둠속에 있던 매몰자에게 처음으로 하는 조치가 눈을 가리는 것이다.


[조심, 조심해!]


사방에서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무사히 살아서 나온 마지막 생존자에게 보내는 위로와 격려다.


[잘 견뎠어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힘내요.]

[집에 가는 거예요.]


기자들이 그녀에게 달라붙었다.

기자 한명이 마이크를 오미연에게 들이댔다.


[제일 먼저하고 싶은 게 뭡니까?]


기자에게 시민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당신 제 정신이요?]

[며칠 간 건물 잔해에 깔려 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겨우 구조된 여자에게 할 법한 인터뷰인가?]

[저리 꺼져!]


오미연이 취재기자의 마이크에 대고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한다.


[아이스커피가 마시고 싶어요.]

[네?]

[그런 후에 날 구조해 준 구조대원이랑 데이트하고 싶어요.]


건물 붕괴 속에서 일어난 처참한 상황을 경험한 여자의 말치고는 다소 황당한 답변이다.


하하하.


주변에 있던 시민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호호호.


여성 관객 몇 명이 웃자 연쇄적으로 극장 안에서도 웃음이 터졌다.

존의 영웅적인 모습이 그녀의 엉뚱한 대사로 약간 희석되는 효과가 있다.

더 이상 재난의 폐허를 보여줄 필요가 없다.

전쟁터 같았던 폐허를 뒤로 하고, 최후의 생존자들이 병원으로 후송된다.

그곳에서 가족들과 재회한다.

서로 의지하며 끝까지 생존의 희망을 놓지 않았던 생존자들이 서로 위로한다.

그곳에는 인종도 나이도 사회적인 지위도 의미가 없다.

그들 모두가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포기했을 일을 극복해낸 진정한 인간 승리자들이다.

관객들의 기분을 어루만져주는 음악과 함께 영화의 에필로그가 나온다.

피터가 속한 건물 설계사무소는 참사와 관련해 응당 져야할 책임을 진다.

존은 트라우마를 극복했을까.

어쩌면 더 큰 트라우마를 갖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생존자들은 쇼핑몰을 향해 어마어마한 금액의 소송을 건다.

에필로그는 마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경찰조사를 마치고 나오는 한국인 회장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봐. 빌딩이 무너졌다는 건 다시 말해서 손님들에게도 피해가 가지만, 우리 회사의 재산도 망가지는 거야. 나도 피해자라고.]


이 장면 역시 한국인을 악독하게 묘사했다며 한국모욕, 비하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됐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항공촬영으로 완전히 폐허가 된 쇼핑몰을 조망한다.

흰색 국화가 채 치워지지 않은 잔해더미에 놓여 있다.

그리고 병원 복도에 빽빽하게 붙어있는 실종자 전단지들....

이 영화는 재난영화의 극적인 장면이 없다.

주인공이 영웅이 되어 모든 사람을 구한다는 빤하고 예상 가능한 스토리가 아니라는 얘기다.

실제 벌어졌던 사건의 증언을 토대로 만들어낸 영화처럼 영화적인 과장이 적은 편이다.

그럼에도 미국식 영웅주의와 기독교적인 요소들이 곳곳에 포진해서 한국 관객들을 실소하게 만들긴 했다.

할리우드 영화가 그리는 평범한 시민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 세 가지는 가족과 미국 시민이라는 자부심 그리고 종교다.

화끈한 재난영화를 기대한 관객은 배신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주인공 패트릭 스웨이스가 재난상황을 멋지게 해결하는 일도 없다.

마지막에 세 명을 구하긴 하지만.

수많은 구조대원들과 재난구조 시스템이 구해낸 인명에 비하면 사실 별 것 아니다.

망할 것을 걱정하는 회장과 책임 소재를 놓고 설왕설래하는 높으신 양반이 묘사되긴 하지만 그것이 주요 갈등요소도 풍자거리도 아니다.

또한 고결한 희생정신을 발휘하는 영웅적인 소방대원도 없고.

우리 중 누구라도 저런 상황에 놓이면 취하게 될 선량함과 위기상황에서 성숙해지는 평범한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관객들은 영화 중간부터 답답하다고 느낄 수 있다.

매몰되어 간신히 삶을 연명하는 모습, 구조되어 안전하게 돌아오기만 바라는 가족들의 모습, 그 같은 장면을 지켜보는 것은 솔직히 불편하다.

특히나 오클라호마 폭탄테러와 대구지하철가스폭발 사고를 겪은 미국인과 한국인 입장에서는.

아직까지 이런 식으로 재난영화를 접근한 적이 없었다.

대부분 재난이 일어난 밖에 상황에 주목했다.

매몰자를 상상해 자세하게 그린 적이 없었다.

그렇게 해서 전형적인 장르영화로는 전달하기 어려운 부분과 휴머니즘이 좀 더 강조되는 효과가 있었다.


[우리는 인간의 선량함을 경험했다. 우리가 미처 몰랐거나 잊고 있었던 선함. 사람들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서로를 돕는다. 그것은 옳은 일이다. 옳고 선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서로에게서 인간의 선함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패트릭 스웨이스의 내레이션이 끝나고, 영어로 오클라호마 폭탄테러의 피해자들에 대한 추모 글이 올라왔다.

한국판 프린트에는 한글 자막으로 대구지하철가스폭발 피해자들을 향한 추모가 추가되었다.

엔딩 크레디트 곳곳에 익숙한 한국 성이 보인다.

심지어 류지호와 오순택의 이름은 한글과 영어 둘 다 표기되어 있다.


“한국 사람이 시나리오를 썼다고 하더니 그냥 미국 영화네.”

“백화점이 무너진다고 해서 <타워링>같은 영화인 줄 알았어. 근데 뭐야 이 영화는?”

“쇼핑몰이 삼봉백화점하고 똑같이 생기지 않았어?”

“너도 그렇게 봤어?”

“색깔도 그렇고 생긴 것도 똑같은 거 같은데... 우연인가?”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이 류지호가 예상했던 반응들을 보였다.


“영화는 지루하지 않았는데, 막 재밌지는 않네, 그치?”


여자 친구의 말을 들으며 석동현은 생각했다.


‘이 영화의 재미 포인트는 장르인거야 아니면 실화 같은 사실성인거야?’


<Collapse>는 답답할 정도로 매몰된 생존자, 그들의 가족, 사경을 헤매는 피해자, 사람을 살리지 못해 절망하는 구급대원 등을 묘사했다.

마치 전투장면이 없지만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하는 전쟁영화 같았다.

혹은 다큐멘터리처럼....

건물 붕괴의 처참함, 구조대의 희생, 가족의 소중함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

누구라도 재난의 직접 피해자가 되지 않을 순 있지만, 피해자의 가족이거나 이웃이 될 수 있다.

구조대원들의 헌신적인 희생이 이 영화의 주제도 주인공도 아니다.

고난을 무릅쓰고 재난을 막거나 사람들을 구해내는 주인공의 영웅적 행동도 중요하지 않다.

진정한 주인공은 재난 속에서 죽어간 자와 살아남은 자... 그 평범한 우리의 가족 그리고 이웃이라는 것.

그래서 장르적 판타지가 이 영화에는 거의 없다.


“자기야, 혹시 이 영화 실화래?”

“그건 아닐 걸? 씨네마21에서 류지호가 인터뷰한 걸 봤는데, 청주우암아파트상가가 무너진 걸 보고 충격 먹어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대. 나도 잘 모르겠어.....”

“근데, 한국인으로 나온 사람들 전부 우리나라 배우들일까?”

“성은 한국 성인데 이름은 다 영어더라. 그 못된 회장만 한국 이름이던데?”

“배우들 연기 진짜 잘하는 거 같지?”

“그 쌍꺼풀 없는 한국 여자배우 연기 진짜 잘하더라. 엑스트라로 나온 사람들도 진짜 죽다 살아난 사람처럼 실감나더라. 배우들이 연기를 잘 했어.”


인종과 성별 그리고 나이까지도 뛰어넘어 모든 배우들이 열연을 선보였다.

영화 속의 상황과 비슷한 사건을 전혀 겪어보지 않은 관객들에게 그들의 연기는 깊은 공감과 설득력으로 다가왔다.


“자기는 영화 어땠어? 재밌었어?”

“난 다 때려 부수고, 사람 총으로 막 쏴 죽이는 것보다 이런 드라마가 맞는 것 같아.”

“이 영화에도 사람이 많이 죽는데?”

“그래도 다들 죽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잖아. 마치... 우리나라에서 사고로 죽은 사람들처럼. 별로 슬픈 장면도 아닌데 울 뻔했어. 배우가 연기를 잘 해서 그런가?”


이 영화는 크게 히트치지는 못하겠다!

석동현은 확신했다.

영화평론가도 아니고, 충무로에서 일을 하고 있는 종사자도 아니다.

다만 대박 쪽박에 대한 그의 촉은 그 누구보다도 예민한 편이다.

일 년에 비디오 대여까지 포함해서 수십 편의 영화를 감상하는 자신이다.

그 촉이 말하고 있다.

이 영화는 크게 히트치지는 못할 것이라고.


‘근데 건물 무너지는 건 진짜 실감 나네. 사운드도 죽여주고.’


영화 스토리는 큰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완성도에 있어서는 역시 할리우드 영화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돈 내고 영화 보는 게 아깝게 느껴지는 영화는 아니다.

여자 친구가 석동현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래도 미국영화에서 한국말 들으니까 되게 묘하네.”


관객들은 영화 자체보다 다른 부분에 더욱 관심이 많았다.

한국인, 한국말, 삼봉백화점과 똑같이 생긴 쇼핑몰.

한국인이 시나리오를 쓰고, 한국인이 제작한 미국 영화.

WaW 픽처스가 의도한 마케팅이 아님에도 자연스럽게 애국심 마케팅이 만들어졌다.

류지호는 첫날 관객들 반응을 보며 답답함을 느꼈다.


‘후우. 이건 좀 아닌데. 애국심 마케팅이라니....’


자신이나 ‘한국’ 관련 이슈가 마케팅 포인트가 되어서는 안 된다.

삼봉백화점이 이슈가 되어야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니까.

오동석이 극장 홀을 가득 채우고 있는 관객들을 보며 활짝 웃었다.


“멀티플렉스 개관은 대박입니다!”


<Collapse>의 관객 반응은 뜨뜻미지근했지만, 다른 영화들은 대체로 반응들이 좋았다.

같은 날 개봉한 <남자는 괴로워> 역시 100석의 절반도 채우지 못해, WaW 픽처스의 제작팀과 이명수 감독에게 근심을 안겨줬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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