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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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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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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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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0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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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언제 그런 거 신경 쓰면서 영화 했어?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강은석이 조근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형님이 나서 보시게요?”


차성재가 관심을 보였다.


“제작가협회장에 나서시려구? 아니면 새로운 협회를 만드시게?”

“감투를 쓸 생각이 없음을 미리 밝힙니다.”


차성재가 실망했다.

박건호는 후배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든 제 말만 했다.


“아시아에서 우리 영화들이 비교적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어요. 이럴 때 일수록 우린 아시아를 한국영화의 시장으로 편입시킬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야 합니다.”


양성규 감독이 끼어들었다.


“혹시 해외배급을 전담할 합작회사라도 만들자는 겁니까?”


박건호는 모두가 궁금해 하는 것과 상관없는 이야기만 했다.


“최근 분위기에 편승해 한국에서 손해 본 것을 만회해 보려고 완성도가 떨어지는 영화를 패키지 딜로 아시아에 배급하려는 움직임이 있어요.”


이희경이 입을 열었다.


“손해 본 것을 어떻게든 메우려고 하는 걸 두고 왈가왈부할 수 없는 거 아니에요?”

“그런 일이 일회성에 그치면 그러려니 하겠어요. 하지만 두 번, 세 번... 만약 한국영화 사정이 좋지 못하게 되면 그때는 어떻게 되겠어요? 불과 5년 전만 해도 수입업자들이 완성도가 한참 떨어지는 홍콩영화를 스타가 출연했다는 이유로 무분별하게 수입 해다가 극장에 걸어서는 관객들의 발길을 끊어지게 만들었어요. 우리영화라고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 없지요.”


차성재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강은석 역시 동감을 한다는 듯 입을 열었다.


“얼마 전만해도 해외배급 창구는 WaW 밖에 없었죠. 지금은 여기 있는 세 사람 영화사 말고도 많은 배급사들이 아시아와 유럽 쪽에 라인을 만들려고 하고 있어요. WaW와 영화진흥공사 그리고 일부 독립영화 배급사들이 해외배급을 주로 다룰 때는 그 해에 가장 뛰어난 영화들을 선별해 해외에 소개 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닌 거죠.”


차성재가 반발했다.


“그렇다고 영진위가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건 반대야. 안 됩니다! 그런 건 절대 반대에요 난.”


차성재로 인해 격양된 분위기가 박건호의 목소리로 차분해졌다.


“우리나라도 배급협회가 만들어질 때가 된 것 같아요.”


모두가 뜬금없다는 표정으로 박건호를 쳐다봤다.


“지금 충무로 배급사가 몇 개인 줄 대략 파악하고 있지요?”

“50개 정도가 활동하는 걸로 아는데... 넘을지도 모르고.”


이희경이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혹시 배급사들의 이익단체를 설립하자는 말씀이세요?”

“이익 단체여도 좋고, 공동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여도 좋고.”

“저희만 부르신 것 보니까.... 혹시 미국의 MPAA 같은 조합을 생각하고 계시나요?”

“우리 감독님의 생각은 그랬어요. 하지만 내가 반대했습니다. 메이저들끼리 모여 영화계의 주요 사안을 결정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옳지 못한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이희경이 아쉬운 듯 살짝 미간을 좁혔다.


“차 대표. 영진위나 영화인회의가 언제 쯤 자리를 잡을까요?”

“빨리 안정화 될 수 있도록 영화인들이 힘을 모아야죠. 형님하고 류 감독도 적극적으로 힘 좀 보태주세요. 특히 우리 류 감독이.....”


류지호는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있다.

분명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될 수 있는 인물임에도 전면에 나서는 걸 꺼렸다.

다만 암암리에 업계 판도와 흐름을 바꾸고 있다.


“솔직히 우리나 백설그룹은 스크린쿼터라는 게 참 성가셔요. 여러분도 들었겠지만, 미국의 Loews Cineplex에서 투자를 받은 풍국그룹이 멀티플렉스 사업에 이어 내년 배급까지 진출한다고 하지요. 광성그룹도 매우 적극적인 투자를 보이고 있어요. 그들은 사실 WaW보다 기업규모나 자금력에서 월등하지요.”


이희경이 즉각 반발했다.


“에이~ WaW가 저희보다 자금력이 부족하다는 건 인정 못하겠는데요?”

“우리 감독님 경영철학이 미국사업은 미국사업, 한국사업은 한국사업입니다. 앞으로 가온그룹은 홀로 서야하는 처지지요.”

“류 감독님은 뭘 그렇게 사업을 복잡하게 한 대요?”

“감독님더러 트라이-스텔라로 밀고 들어오라고 건의해 볼까요?”

“....!”


이희경이 입을 다물자 강은석이 대신 말을 이었다.


“미국 쪽에서 쿼터 폐지를 주장하다가 이제는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분위기랍니다. 대신 멀티플렉스 진출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는 분위기라고 하지요. WaW는 이미 다 알고 계시겠지만.”

“그간 미국 쪽에서 일수를 조정하자고 압박해왔는데 우리는 효과적 대응을 못했어요. 그걸 못하니까 문화주권을 지켜져야 한다는 동어반복만 했었죠. 실제로 쿼터가 업자들을 위한 것이지 관객을 위한 것이냐는 내부 비판에도 적절한 답을 내놓지 못했고.”


냉소적인 태도로 변한 차성재가 입을 열었다.


“그동안 장기적인 전망 아래서 추진됐어야 할 심도 깊은 연구가 부재해서지. 지금부터라도 그걸 떠맡을 기구가 필요해서 영진위의 연구가 필요한 것이고. 예산지원이나 여러 가지에서 아직은 여력이 안 된다고 해서 영화인회의가 먼저 운을 떼보자고 나선 것이잖아.”

“예산 확보가 관건 아닌가. 여기저기 뛰어다녀야겠지. 영상산업이라고 하는 게 다양한 프로젝트로 확장이 가능하지. 주무부서인 문화관광부 외에 여타 부서에서도 관심을 가져주겠지.”

“안정적인 환경 마련이 중요해. 연구자들이 맘 놓고 일할 수 있도록 해줘야하지.”


강은석은 지금까지 참고 있던 말을 단번에 쏟아냈다.


“사실 명망가들의 활동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 정책 공부하는 친구들이 해줘야 하는데 언제까지 그들에게 자원봉사를 강요할 수도 없잖아. 이제 한국영화산업이 가내수공업은 벗어났잖아. 팔고 남은 걸 들고 오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을에 도자기가 몇 개 필요하고 수요는 얼마나 예상되고 또 취향은 어떻고 그걸 알아야 하는 단계가 된 거지. 또 필요한 게 10개라면 어떻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 것까지. 그런데 이 일은 만든 사람한테서만 맡겨놔서는 안 된다는 거야. 전문적인 인력이 나서서 섬세한 모니터링을 해야 해. 영화인들이 성명서 내는 것보다도 변화나 움직임을 진단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한 때야.”


이희경 부회장은 강은석의 말에 많은 부분에서 공감하지 못했다.

그녀의 회사는 DreamFactory로부터 선진적인 시스템을 전수받았다.

때문에 자체적으로 트렌드 분석이나, 성공한 영화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다.

WaW 엔터테인먼트는 훨씬 치밀한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희경이 고개를 돌려 박건호를 바라보았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박건호가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고인물은 썩어요. 막상 썩은 물을 마셔야 할 때 그걸 알게 되죠. 그래서 나는 여러분에게 배급협회 설립을 정식으로 제안합니다.”

“....음.”

“일단 한국영화의 국내 배급시장의 선진화와 해외 판로 개척이 주요 사업 목표가 되겠지요. 다음이 저작권 보호와 부가시장 확장 및 저작권 침해 감시도 중요 목표가 될 겁니다. 또한 극장환경 변화에 대한 장기적인 대비책 마련도 시급하고.”


차성재가 물었다.


“극장환경 변화....? 혹시 디지털 영화?”

“류지호 감독님 말씀에 의하면 내년 방송장비박람회에서 아주 중요한 기술혁신이 선보일 거라고 합니다. 영화 제작과 극장 상영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이할 거라고 하시더군요.”

“그게 뭔데요?”

“나도 잘 모릅니다. 1년 후를 기대하라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우리나라도 미리부터 계획을 세워 둘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류 감독이야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니까 그 같은 흐름을 주도하는 것이 당연한 거고, 우리는 쫓아가기 힘겨운데 말이죠.”

“강 감독과 이 부회장 모두 극장사업을 하고 있어요. 만약 디지털 영사 시스템이 전 세계 영화관의 일반적인 트렌드가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주기적으로 업그레이드를 시켜줘야 하겠죠.”

“만약 수백 개의 상영관 영사기를 교체해야 한다면요? 그 비용과 규격 기타 등등... 일개 극장체인이 모든 걸 감당할 수 있을까요?”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우리가 할리우드의 규격 결정 과정에 들어갈 수는 없을 겁니다. 지금 속도로 스크린이 늘어나게 되면 10년 안에 한국의 스크린 수는 1,500개 정도 될 겁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 그 이상이 될 수 있지요. 결코 작은 시장이 아닙니다.”


차성재가 중얼거렸다.


“그건 배급과 상관없지 않나?”

“왜 상관없어요? 위성송출로 극장에 영화를 배포할 건지, 초고속인터넷망으로 할 건지, 하드디스크로 배달을 할 건지. 그에 따른 비용을 배급사와 극장이 어떻게 합의할 건지.”


듣고 보니 그랬다.


“나는 솔직히 감독님이 하시는 말씀을 모두 알아들을 순 없지만, 단순한 문제가 아니란 걸 알겠더군요.”

“당장 그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잖아요?”

“1,2년 사업하고 접을 거 아니죠?”

“......”

“이런 건 영진위가 해결해 줄 수 없는 문제고. 정부를 쳐다봐야 소용없습니다. 업계 자체적으로 장기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스크린쿼터가 축소되거나 폐지되었을 경우를 대비한 일종의 신사협정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무슨 신사협정이요?”

“작년에 무비서비스와 우노가 제작한 기대작이 정면승부를 피했지요?”


끄덕.


“신사협정 혹은 동업자 의식이라고 볼 수 있는 그런 것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할리우드 영화와 경쟁하기도 벅찬데 같은 한국영화 기대작끼리 극한 대결을 펼치다 한국영화가 흥행에서 손해를 볼 수가 있어서.”


이희경이 우려를 표했다.


“암묵적으로 이루어져야지, 자칫 담합으로 의심 받을 수 있어요.”

“내 말은 협회 내부에서 그런 공감대를 형성하자는 겁니다. 담합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WaW는 할리우드 영화를 배급하고 있어요. 우리가 한국영화를 투자제작배급하고 있다고 해서 외화 배급에서 불이익을 받는 걸 수용할 수는 없지요.”

“그러니까 경쟁은 하지만, 우리끼리 피터지게 싸우지는 말자?”

“멀티플렉스, 와이드 릴리즈가 그런 걸 가능하게 해줄 겁니다. 그를 위해 와이드 릴리즈에 대한 업계 자체의 룰이 정해져야 하고, 극장 부율도 새롭게 고민해야 하지요. 스크린 독과점에 대한 것도 협회 내에서 충분히 논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 표준상영계약서도 마련해야 하고.”


모두가 입을 다물고 이해득실을 따지기 시작했다.

한국 영화계는 날아오르고 있다.

그 비상에 강은석, 양성규, 차성재 세 사람이 힘을 보태고 있다.

앞으로 계속 날아오를 것이냐 추락하느냐.

충무로는 많은 부분에서 세 사람에게 신세져야 한다.

박건호가 차를 입으로 가져갔다.


호로록.


맛없는 차다.

그럼에도 텁텁한 입안으로 들어가자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그 동안 WaW 엔터테인먼트의 영화만 챙기며 외부활동을 좀처럼 하지 않던 박건호다.

그랬던 영화계 파워맨이 몸을 일으켰다.

류지호의 간곡한 요청도 있었고.


‘한국영화를 위해 무언가 일익을 담당하는 것도 보람된 일이겠지....’


그 스스로도 가만 두고 볼 수는 없었다.

한국영화의 배급은 여전히 주먹구구식이다.

서울의 중심 극장을 제외하고, 그 동안 지방배급업자들이 배급권을 쥐락펴락하며 불합리·불공정한 일을 많이 벌여왔었다.

그런 상황에서 WaW가 전국 직배를 시작하며 체계를 만들어왔다.

류지호는 미래에 발생하게 될 스크린 독과점을 우려했다.

디지털 시네마로 영화산업이 개편되면 배급비용이 대폭 줄어들게 되면서 전체 스크린의 절반까지 하나의 영화를 배급할 수 있게 된다.

필름 프린트 배급 시대인 이때 독과점과 관련된 업계 룰과 입법이 이루어져야 했다.

저항이 적을 테니까.

필름 배급 시기에는 스크린을 독점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830개 스크린의 절반에 영화를 걸기 위해서는 프린트 비용만 10억 이상이 소요된다.

이 시기 한국영화 평균제작비는 19억 원, P&A 6.5억 원이다.

작년 한 해 6,000만 명의 관객이 극장을 찾았다.

그 가운데 2,300만 명이 한국영화를 관람했다.

점유율은 40%에 육박하지만 전체적인 파이가 아직은 작다.

제 아무리 대작이라고 해도 한국영화에서 프린트 비용을 무한정 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암튼 10여 년 후 전체 스크린 수를 예측하기 쉽지 않다.

D-Cinema에 대한 개념조차 가늠하지 못하는 시기다.

다소 어수룩할 이때 시장질서와 관련해서 여러 장치들을 마련해 둘 필요가 있다.

개봉 2주차 스크린 최대 숫자, 전체의 25% 마지노선(실제 법안에는 30%).

모든 개봉영화의 기본 2주 상영 보장.

3주차부터 스크린 수가 확대되거나 감소하는 시스템.

극장과 배급사가 나누는 부율의 탄력적인 운용.


‘감독님이 법적으로 정해지길 원하는 장치들이지.‘


2000년 11월.

한국영화배급협회가 발족한다.

메이저 배급사를 포함한 20여 중견배급사가 참여하게 된다.

슬로건은 영화배급업자들의 상호발전과 권익보호.

주요 사업은 영화 저작권 관리 및 분쟁 조정, 불법 복제물에 대한 온라인•오프라인 단속, 영화진흥위 심의등급 견제, 부가시장 확대, 해외 판로 개척, 영화산업 환경 변화에 대한 정책연구 등이다.

무엇보다 공정한 시장질서 유지 협력을 최우선 목표로 내건다.

2001년 정관을 개정해 사단법인으로 승인받게 된다.

한국판 MPAA로써 대관업무(로비)도 겸하게 된다.

많은 이들이 또 다른 형태의 기득권연합이라고 비난하게 된다.

맞다.

기득권 연합이다.

다만 재벌부터 중소배급업자까지 한 테이블에서 중요 사안을 논의하는 기득권 연합이란 점이 이전 삶과는 달랐다.

한국 최고의 영화사인 WaW조차 의결권은 단 한 장만 행사할 수 있는.

WaW 엔터테인먼트의 역할은 권력을 행사하는데 있지 않다.

다른 배급사들의 이탈을 방지하는데 있다.

한국의 주요 영화배급사들은 싫든 좋든 배급협회 안에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WaW의 독주를 견제할 수가 없을 테니까.

스스로 인질이 되어 모두를 묶어두는 모양새지만, 홍콩이나 일본 영화계처럼 되지 않기 위한 박건호 대표의 고육지책이기도 했다.


✻ ✻ ✻


JHO Company가 인수합병한 위성방송사 JHO/DirecTV가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 자회사로 정리가 됐다.

신임 사장에는 트라이-스텔라 텔레비전(TST)의 얀 호퍼가 자리를 옮겨갔다.

모리스 메타보이는 류지호가 차기 JHO Company 회장 후보 중에 한 명으로 얀 호퍼를 키우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Timely의 샘 리버먼,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의 댈런 맥컬리, 트라이-스텔라 인터내녀설의 스탠 크레이그, GARAM의 매튜 그레이엄에 비해 얀 호퍼가 경영하던 텔레비전 사업 부문은 너무 작았다.

따라서 다른 후보군들과 제대로 경쟁 구도를 만들어주기 위해 위성방송사업 부문의 CEO로 얀 호퍼를 임명했다.

얀 호퍼 역시 그 같은 내막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JHO Company 그룹의 차기 회장에 대한 야망을 감추지 않았다.


“그룹 법인명에만 JHO가 들어가고 브랜드는 계속해서 디렉TV를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잘했어요. 소비자를 혼란스럽게 할 필요는 없죠. 가입자 수가 얼마나 됩니까?”

“920만 명입니다.”

“그 가입자에게 설치해 준 모든 위성안테나에 디렉TV 로고가 박혀있을 텐데, 그대로 놔두는 것이 광고비도 아끼고 좋겠죠.”

“신형 안테나로 교체할 시기가 되면 그때부터 브랜드 네임과 로고를 교체할 생각입니다.”

“얀이 알아서 잘하겠죠.”


브랜드를 바꾸는 것은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일이다.

따라서 매우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현재 미국의 위성방송업계는 1위 JHO/DirecTV, 2위는 미국 5대 케이블TV 합작사 PrimeStarTV, 3위가 EcoStarTV다.

지난해 JHO/DirecTV가 PrimeStar의 지분을 18억 3천 만 달러에 사들였다.

최대 대주주가 되어 합병을 추진 중에 있는데, 법무부와 연방통신위원회가 두 기업 간 합병을 반대하고 있어서 난항을 겪고 있다.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새롭게 CEO에 임명된 얀 호퍼의 첫 번째 시험대라고 할 수 있다.


“PrimeStar가 합병되는 것과 상관없이 채널은 확보되는 거겠죠?”

“위성을 하나 더 확보하게 되어서 최대 300개 채널을 운영할 수 있게 됐습니다.”


채널만 확보되었을 뿐, 실제 그 모든 채널을 활용하긴 어렵다.

최대 170개 채널 운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


“TST에서는 채널을 몇 개 할당 받았다고요?”

“영화·드라마, 버라이어티 두 개 채널을 운영하게 됩니다.”

“E-스포츠는 버라이어티 채널에서 중개를 하겠군요?”

“예.”


참고로 ‘스타크래프트‘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과 달리 북미에서는 ’퀘이크‘와 ’워크래프트‘ 위주로 게임 대회가 열리고 있다.

가온그룹에서 ‘스타리그’의 상금을 파격적으로 편성했다고 해도 북미의 대회 상금이나 규모에 한참 못 미쳤다.

이전 삶에서는 ‘스타크래프트’ 대회가 한국보다 북미에서 먼저 열렸다.

프로게이머 개념도 북미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실제 E-스포츠(월드 사이버 게임)는 북미에서부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그럼에도 한국이 E-스포츠 종주국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은 케이블TV를 통해 처음으로 중계방송을 했다는 것과 리그 개념을 도입해 프로스포츠 체계를 정립한 것 때문이다.

즉 첫 시작은 미국에서 했지만, 꽃을 가꾸고 활짝 피운 것은 한국이었다.


‘그 탐스러운 열매를 따먹는 것은... 그 나라였고.’


어쨌든 트라이-스텔라 텔레비전(TST)도 본격적으로 TBO처럼 케이블 채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흥행이 예상되는 TV시리즈를 직접 케이블TV와 위성방송으로 내보낼 수 있게 됐다.


“위성 보유 현황은 어떻게 됩니까?”

“북미 상공에 떠있는 기존의 정지위성은 그대로 소유 및 관리하고 있습니다. 내년부터 새로운 위성을 북미와 중남미 궤도에 띄울 계획입니다.”

“위성제작은 그레이엄 가문으로 넘어간 Hughes Aircraft에 의뢰한 거죠?”

“예.”

“ParaMax의 <바운스>는 Pacific Aero가 위성 송출을 하겠지만, 다음 영화부터는 JHO/DirecTV가 할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류지호의 당부에 얀 호퍼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JHO/DirecTV를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 자회사로 편입시킨 것은 D-Cinema와도 관련이 있다.

향후 북미 극장에 디지털 영사시스템이 갖춰지면, JHO Company 산하 영화사들이 배급하는 영화들의 디지털 영화들은 JHO/DirecTV 위성의 전용회선을 통해 전국 극장에 송출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를 통해 미국의 D-Cinema 송출표준에 JHO/DirecTV 방식이 채택될 가능성을 높일 계획이다.

한국처럼 작은 나라에서는 기존 인터넷망을 이용하면 된다.

비용도 싸게 먹히고.

미국처럼 땅덩어리가 넓은 나라는 서버를 구축하고 통신회사를 통해 전용 회선을 따로 계약해 극장으로 송출하는 방식이 비용과 효과 면에서 모두 유리하다.

서버 해킹만 조심하면 중간에 영화가 유출되는 것도 방지할 수 있고.


“JHO/DirecTV는 기존의 D-Cinema를 준비하던 기업보다 2년 정도 뒤쳐져 있을 겁니다.”

“그 정도는 아닙니다. 보스가 제작한 <Dream Come True>, <Escape> 두 편의 위성전송 실험 데이터가 GMG Lab을 통해 공유되었습니다. 회사 내부에 D-Cinema TFT를 만들어 GMG Lab, UCLA, 칼텍 등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습니다.”

“좋네요.”


류지호가 원하는 사업 방향에 대해서 찰떡같이 파악하고 있는 얀 호퍼다.

외부 영입인사와 달리 번거롭게 미주알고주알 설명할 필요가 없는 점이 좋았다.


“중남미에도 서비스하고 있다고요?”

“미국 본토 상공에 떠있는 위성으로 멕시코, 카리브해, 라틴아메리카 북부국가까지 영향권에 듭니다. 내년과 내 후년에 발사되는 위성이 본격 가동되면 라틴아메리카 전역과 알레스카 지역도 서비스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모두 몇 개를 쓸 수 있죠?”

“93년에 처음 쏘아진 위성까지 포함해 모두 다섯 개의 위성이 JHO/DirecTV의 소유입니다. 그 가운데 현재 가동 불능이거나 중지시킨 3개의 위성을 제외하고 2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2개 가지고 미국을 전부 커버할 수 있어요?”

“부족합니다. 그래서 내년에 한 개. 내후년에 2대를 쏘아 올릴 예정입니다. 그 이후로는 가입자 수와 서비스 지역에 따라 진행할 계획입니다.”


위성 두 개 가지고도 전국에 서비스할 수 없을 정도라니.

미국 땅덩어리가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게다가 중남미 전역까지 서비스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한 대 이상이 더 필요하고.


“예산은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2002년까지 발사할 위성에 관한 부분은 인수 전 이미 계약이 되어 있습니다. 계약 이행 전까지 감당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2002년까지 미국에서만 1,200만 명 가입자, 중남미에서 500백만 명의 가입자 확보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남미 가입율은 어때요?”

“미국에서 증가하는 속도보다는 느리지만, 꾸준히 가입자가 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완전 철수하기로 결정한 거죠?”

“현지 합작 회사의 우리 지분 73%를 일본 업체에 모두 넘기기로 합의했습니다.”

“미련 갖지 말자고요.”

“미련 없습니다. 일단 북미에서 가입자 천만이 목표입니다.”

“하하하. 얀이 오랜만에 기합이 바짝 들어갔네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장기계약을 하자고 제안했을 때 질색했던 얀 호퍼였다.

수년 전에 거물이 될 거라고 류지호가 예언하기도 했다.

실제로 예언이 실현되었다.

JHO/DirecTV라는 초거대 위성방송사 최고경영자가 되면서 업계에서 기침을 할 정도가 된 것이다.

내년부터 미디어업계 거물들이 총출동하는 선밸리 컨퍼런스에 초대받는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게 됐다.


“방송센터 둘러보시겠습니까?”

“가봅시다.”


엘 세군도 본사를 나서 마리나 델 레이 방송센터로 이동했다.

인수협상이 처음 벌어질 때 방문했을 때와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발로나 수로 쪽으로 대형 창고와 상가가 영업 중인 것만 빼고는 주변에 딱히 눈에 거슬리는 시설물이나 환경은 없어 보였다.


“주변 부동산을 매입할 필요까진 없어 보이네요.”

“본사를 옮겨 올 것이 아니라면 현재 부지로 충분합니다.”

“잠시 걸을까요?”

“가시죠.”


류지호와 얀 호퍼가 방송센터 너머 공터를 가로질러 발로나 수로에 도착했다.

수로 너머로 드넓은 Playa Vista 지역이 눈에 들어왔다.


“보스, 저 지역은 언제부터 개발이 시작되는 겁니까?”

“종합계획은 세워져 있지만, 세부 디자인부터 설계까지 앞으로 거쳐야할 과정이 많겠죠.”

“스튜디오는 언젠가 건설할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습니다. 테마파크와 리조트까지 사업이 확장될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지요.”

“큭. 나도 그랬어요. 얀.”

90년대 트라이-스텔라의 성장 기세는 놀라다 못해 까무러칠 지경이었다.

새천년이 시작되고 몇 달이 지난 현재는 그 시절은 아무것도 아닐 정도다.

트라이-스텔라는 물론이고 JHO Company 계열 기업들의 성장이 눈부셨다.

그렇다고 얀 호퍼 입장에서 마냥 긍정적으로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한국이 아시아에서 성장 잠재력이 매우 크다는 것은 인정합니다만. 최소 45억 달러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는 테마파크 사업의 수익성이 보장될까요?”


수익성이 문제가 아니라 투자금 회수에 몇 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 1인당 국민소득은 1만 달러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내수시장 역시 작은데다가 일본이나 태국처럼 세계적으로 알려진 관광국가도 아니다.


“쉽지 않죠. 현재만 놓고 봤을 때는.....”


대답하는 류지호의 표정이 어딘지 미묘했다.

자신감에 찬 얼굴은 아니다.

미심쩍어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평온한 표정으로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달고 있을 뿐이다.

의미심장하다고 할까.


작가의말

1. 실제 디렉TV는 1999년 프라임스타를 합병했습니다만, 본 소설에서는 미국연방통신위원회와 법무부가 반독점 핑계로 합병을 막고 있는 것으로 풀었습니다. 차기 회장 후보군 중 한 명에게 능력을 입증할 기회로 삼을 생각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차기 그룹 회장(CEO)을 놓고 후보들이 피튀기는 사내정치나 암투를 벌이는 부분으로 이야기가 튀진 않습니다.

2. 지난 회차에 댓글이 유난히 많이 달려서 무슨 일인가 깜짝 놀랐습니다. 독자가 글을 읽고 해석이 필요하다면 작가가 글을 잘 못 썼거나 어설퍼서 그런 것입니다. 독자님들끼리 댓글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차라리 제게 뭐라고 하시면서 스트레스 푸십시오. 습작 당시 온갖 댓글이나 쪽지를 다 받아봐서 뭐든 댓글 남기셔도 멘탈 털려서 글이 확 무너질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활기차게 한 주 시작하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PS. fifa4g님 과분한 후원 감사드립니다. 끝까지 성실히 연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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