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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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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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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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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0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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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화끈하게 갑시다!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최초, 최고, 최대, 최다.

언론에서 이런 표현의 헤드라인이 붙으면 저절로 눈이 간다.


- 동양 최대 규모의 메가플렉스 개관!


최근 TV뉴스, 신문, 광고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헤드라인이다.

서울의 핵심 상권으로 부상한 코엑스몰, 그곳에서 영업을 시작한 G.O.M 관련 뉴스다.

연면적 6,700평에 17개 스크린으로 시설 및 규모면에서 아시아권에서 가장 크게 조성됐다.

한국무역협회에 임대차 보증금 200억 원과, 20년간 임대료로 연매출의 5.04%(최소 보장금 13억4,800만원)를 매년 지급하기로 계약했다.

2020년 계약만료 시점에 자동계약 연장을 할 것인지, 재협상을 할 것인지 결정하게 된다.

극장 개관을 하루 앞 선 목요일 오후 G.O.M 코엑스로 영화계 인사들이 모여들었다.

정식 극장 개관에 앞서 열리는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함이다.

코엑스몰은 내부가 매우 넓다.

길도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다.

길치에게 고난도 코스다.

G.O.M Cinemas 조끼를 입은 직원들이 코엑스몰 곳곳에 배치되어 VIP 안내에 만전을 기했다.

가온그룹 멀티플렉스 사업 부문은 이미 전국 주요 도시에 다수의 상영관을 보유하고 있다.

그렇지만 코엑스몰 개관은 특별한 의미를 가졌다.

바로 아시아 최대 규모라는 타이틀이다.

G.O.M 브랜드 가치를 일거에 올려줄 터.

이를 통해 G.O.M은 국내에서만큼은 최초, 최다, 최대 타이틀을 모두 가지게 되었다.

최고는 평가가 엇갈릴 순 있다.

나머지는 수 년 안에는 깨지기 어려운 기록들이다.


“류 감독, 얼굴 보기 정말 힘들어.”

“제가 해외에 체류하는 기간이 길다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문화관광체육부 장관이 유독 친근하게 굴었다.

그 외에 서울시장, 강남구청장, 지역구 국회의원 및 정치인들이 너도나도 류지호와 악수를 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대한민국 언론이 모두 나와 있는 빅 이벤트다.

정치인들이 그 같은 기회를 놓칠 리가 없다.

G.O.M Cinemas 나용근 사장과 오동석 총괄부사장은 영화계 관계자를 맞이했다.

영화진흥위원장, 극장협회장, 서울극장협회장, 각종 영화 관련 협회장, 영화배우들 기타 각계각층 인사 수백 명이 로비에 운집했다.


“선생님!”


류지호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노파를 향해 달려가 얼른 허리를 굽혔다.

칠순 노파가 류지호의 손을 꼭 잡았다.


토닥토닥.


노파가 류지호의 손등을 토닥거렸다.

사람들은 둘의 정겨운 모습에 조손으로 오해했다.

그런데 류지호의 호칭은 ‘선생님’이었다.

충무로에서 처음으로 류지호의 입에서 그 같은 호칭이 나왔다.

충분히 그런 호칭을 들을 만한 인물이다.

연극계의 대모 백순이 선생이었으니까.

1925년생인 백순이는 한국 연극의 역사나 마찬가지다.

17세에 처음 무용 연습생으로 시작해 1943년 연극 <봉선화>로 데뷔한 이후, 50년 넘게 연극 한 길만 걸어온 한국 연극사의 산 증인이다.

1950년 창단한 국립극단의 창립 단원이자 여전히 현역 단원이다.

1972년에는 국립극단에서 처음 시행한 단장 직선제에서 최연소 여성 단장으로 선출됐다.

1990년 초에는 다시 한 번 단장을 역임했다.

1998년부터 국립극단 원로단원에 이름을 올린 현역 연극인이다.


“내가 맞게 찾아온 거지요?”

“그럼요. 찾아오시는데 어렵지는 않으셨구요?”

“중간에 만나는 아가씨들이 길 안내를 잘 해줘서 옳게 찾아왔지요.”

“제가 차 보내드린다고 했을 때 그러마 하시지... 괜히 고생하셨잖아요.”

“뭘 번거롭게.... 내가 뭐라고.”

“아참. 이쪽으로 오세요.”


류지호는 백순이의 잡은 손을 놓지 않고 그대로 이끌었다.

로비에 운집한 손님들 사이를 해치고 안쪽으로 향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모였다.

백순이를 모르는 사람들은 류지호의 할머니로 착각했다.

연극배우 출신들은 단박에 그녀를 알아봤다.

류지호가 그녀를 한쪽에 마련해 놓은 의자로 안내했다.


“다리 아프실 텐데 여기 앉아서 잠시 쉬고 계세요.”


우르르.


배우들이 달려와 인사를 드렸다.


“아이고! 이게 다 누구야?”


백순이가 까마득하게 어린 후배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며 반가움을 표했다.

그들 사이에는 김영찬과 박인철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걸 어째... 영찬이는 그 배가 다 뭐야? 젊어서 건강관리 해야지.”


김영찬이 불룩 나온 배를 쓰다듬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하하. 배역 때문에 일부러 살찌운 거예요.”


박인철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이 여긴 어쩐 일이세요?”

“초대받아서 오긴 했는데.... 내가 와도 되는 자리인지 모르겠어.”

“아니에요. 잘 오셨어요.”

“그럼요. 오시는데 힘드시지는 않으셨어요?”


영화배우들은 안정기 배우 주변에서, 소수의 연극배우 출신들은 백순이 중심으로 모여서 담소를 나눴다.

그렇다고 편을 가르는 것은 아니다.

서로가 섞일 수 없을 정도로 개관행사에 너무 많은 인파가 몰렸다.

류지호는 백순이 선생과 인연이 없었다.

이전 삶에서도 이번에도.

그런데 <복수의 꽃>을 준비하며 인연을 맺게 됐다.

백순이 선생의 신조는 ‘작품은 가려서 선택하지만 배역은 가리지 않는다’였다.

평생 400여 편의 연극을 하면서 다양한 역할을 연기했다.

그녀가 <복수의 꽃>에서 연기하게 될 배역을 치매노인.

그 시대의 표현을 빌리자면 ‘망령 든’ 노파다.

심지어 아들에게 버려지는 가련한 어머니다.

WaW 픽처스 관계자들은 MBS 장수드라마 <전원일기>의 어머니 역할을 했던 노배우를 강력하게 밀었다.

류지호는 신선한 얼굴을 원했다.

현역 배우들을 샅샅이 뒤진 끝에 백순이 선생을 찾아냈다.

캐스팅이 쉽지 않았다.

시나리오나 배역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당시에 건강이 좋지 못했다.

올해 들어와 건강이 급격하게 좋아져서 삼고초려 끝에 <복수의 꽃>에 모실 수가 있었다.

백순이 선생의 출연 분량은 많지 않다.

하지만 아주 중요한 역할이다.

따라서 류지호는 여주인공보다 더 공을 들였다.

암튼 예정된 시간이 되어서 G.O.M 코엑스점 개관행사가 개최되었다.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문화관광체육부 장관을 시작으로 주요 인사들의 축사가 이어졌다.

지루한 요식행위다.

그럼에도 해야만 한다.

일부 VVIP는 축사를 하기 위해 행사에 참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축사, 기념사진 촬영, 축사, 또 사진촬영, 테이프 커팅.

높은 자리에 앉아있는 양반이 반드시 해야 하는 전형적인 식순이다.


“VIP들께서는 저희 안내에 따라 극장으로 들어가십시오.”


오동석이 참석자들을 안내해 대형관인 1관으로 향했다.

넓은 통로 양편으로 죽 늘어서 있는 상영관 출입구들.

참석자들이 1관 좌석에 자리를 잡자, 오동석이 코엑스점에 대해 설명했다.


17개관 : 500석 이상 대형 스크린(3개관). 다이내믹 상영관(체험형 4D) 포함.

4,616명 :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최다 인원.

6,700평 : 연면적(축구장 4배 크기).

1일 7.2회 : 1개관 평균 영화 상영 횟수.

최대·최소크기 상영관 : 최대 - 1관 (590석). 최소 - 12관 (116석).

상영관 : 대형관(500석 이상) 3개, 중형관(300석) 8개, 소형관 (200석 이하) 5개, 다이내믹 4D Theater(24석).

좌석 경사도 : 40도.

관람석 의자 가격 : 개당 35만원. 개당 81만원(프리미엄관).

스크린 크기 : 1관(22×11). 아시아 최대.

음향 : 디지털 사운드, 3-Way 시스템, 15대 파워 앰프. Doldy 디지털 서라운드EX.

인터로킹 영사시스템 : 영사기 1대로 2개 이상의 상영관에 동시에 영화 상영.

냉·온방 : 천장에 부착된 중앙통제 냉온방 시스템.

청소 : 일일 대청소 Am 3시 반∼7시 반. 분기별 좌석 스팀 청소.

소방·안전 : 강남소방서 연락관 상주. 나래안전시스템 장기계약.

평균 근무 직원 수 : 144명.

전체 직원 수 : 178명(정직원 93. 계약직 60명, 아르바이트 25명).

예매 : 24시간 ARS. CineFeel.com 인터넷 예매.

할인혜택 : 선경텔레콤. 다수의 신용카드.

주차 : 1만 대의 주차 공간. 영화관람시 주차비 지원(무료 아님).


“코엑스점 전 직원은 6개월 전부터 강남점에서 연수를 받아왔습니다. 외국인 고객을 위해 영어 구사가 가능한 직원도 다수 배치되어 있습니다. 무인티켓발매기와 강남점 스타일의 스탠딩 발매가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또한 게스트 서비스를 도입해 맞춤 매니저가 상주합니다. 즉 매니저 사무실을 외부에 설치해 환불이나 고객 불편사항접수 등 직접 고객을 대면하면서 요구사항이나 건의사항을 접수하는 고객서비스를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크로스 체인징 시스템을 도입해 매표를 보던 직원이 안내업무도 보고 기타 다른 서비스도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이를 통해 인력배치를 물론 효율적인 운용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되며 서비스가 더 강화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럼 극장 소개는 이것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스크린을 가리고 있던 오동석이 빠지고, 극장 불이 꺼졌다.

스크린이 밝아지면서 새로운 극장 대피소 안내 및 에티켓 캠페인, 극장 음향 시스템 체크 영상, G.O.M Cinemas 로고 영상, WaW 엔터테인먼트 타이틀 로고 시연 영상이 차례로 상영되었다.

대부분의 비전문가들은 그저 눈만 꿈뻑꿈뻑했지만, 소수의 전문가들은 스크린 사이즈, 화면 밝기 사운드 시스템에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형님!”


류지호가 통로를 빠져나가는 김영찬을 불러 세웠다.


“응?”

“형님하고 박 선배가 백순이 선생님 좀 모시고 연회장으로 가주세요.”

“알겠어. 걱정하지 말고 일 봐.”


류지호는 문화관광체육부 장관과 고위 공직자들을 배웅했다.


“작년 한국영화 점유율이 40%가 넘었다지? 올 해도 한국영화 성적이 좋은 것으로 알아.”

“그렇습니다.”


문화관광체육부 장관은 능구렁이 같은 양반이다.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미국의 통상압박에 영화시장 완전개방에 대해 밑자락을 깔았다.


“한국영화의 점유율이 절반을 넘는 호황을 구가하면 스크린쿼터가 줄어들거나 없어져도 별 영향이 없을 것을 것 같은데.....”


떠보는 말이다.

말려들면 골치 아파진다.


“일시적 현상일지 누가 압니까. 한국영화가 자립하려면 10년도 모자라다고 보고 있습니다.

“한미 통상협상에 걸림돌이 된다는 식으로 불만이 아주 많아. 다른 분야에 비해 형평성에 어긋나고 국제 관행에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고.”


문화관광체육부는 통상압박에 굴복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청와대에서 그런 말이 나와도 주무 장관으로 영화계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 것이 옳은 일일 텐데....


“교통신호등을 설치해 사고가 줄었다고 해서 교통신호등을 없앨 순 없지 않습니까?”

“뭐라? 으하하하!”


한재원 장관이 대소를 터트렸다.


“신호등은 교통사고 방지만 하지 않습니다. 그 자체로 교통질서를 만들어 주죠.”

“극장 사업을 이렇게 크게 벌이면서 잘도 그런 말을 하는구만.”

“극장 사업도 한국영화산업 안에 있습니다. 외자를 유치해 사업을 영위하는 것도 아니고, 순수한 국내 자본으로 벌이고 있는데 한국영화 질서에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네 미국 사업체에서 투자 받은 걸로 알고 있네만?”

“한 번 한국으로 들어온 돈이 쉽게 빠져나가겠습니까? 미국 쪽 사업체에서 그 돈은 간에 기별도 안 갑니다. 없어도 그만 있어도 그만이죠.”


하하하.

또 다시 장관이 웃음을 터트렸다.

재벌이란 자들은 어떻게든 규제를 풀어보려고 애쓴다.

시장질서가 파괴되든 중소기업이 망하든 소비자 권리가 침해되든.

자신들은 없어진 규제를 통해 이익을 얻어내기만 하면 되니까.

헌데 류지호는 규제를 풀어달라는 것이 아니라 유지시켜달란다.

한술 더 떠서 스크린 독과점을 방지할 수 있는 장치까지 마련해 달란다.

웃기는 재벌 녀석이 아닐 수 없었다.


“영진위 문제로 영화계가 시끄러운데, 자네가 나서서 중재해볼 의향은 없고?”

“예.”


류지호는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그리고 말입니다. 어른들 하시는 일에 어린 애가 끼는 게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여의도 일각에서.... 아닙니다.”


한재원 장관이 요놈 봐라하는 표정으로 류지호를 쳐다보았다.

정부와 여당 일각에서 가온그룹이 제안한 새만금개발 프로젝트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어른들 하시는 일에 어린 애가 끼어서 생떼를 부리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알아들었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


“언제 밥 한 번 먹지요. 현안에 대해 건설적인 이야기를 좀 듣고 싶은데.”

“공무원하고 함부로 밥 먹으면 탈납니다.”

“업계 관계자와 의견 청취하는 자리를 갖는 것 가지고 누가 뭐라고 하겠어요.”

“나중에 면담 신청하면 시간 좀 내주십시오. 사무실에서 뵙겠습니다.”

“그러지요.”

“한국영화가 폼 조금 올라왔다고 다들 미래를 너무 낙관하는 것 같습니다. 어린아이가 막 일어서기 시작할 때가 가장 잘 넘어집니다. 간섭하지 않되, 지원만 한다는 기조 끝까지 부탁드립니다.”


피식.


한재원 장관이 비웃음인지 흡족함인지 모를 미소를 남기고 코엑스몰을 떠났다.


스크린쿼터(Screen Quota) 제도.


정확한 명칭은 ‘국산영화 의무상영제‘다.

한국영화산업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영화상영관이 연중 일정기간을 한국영화의 상영에 할애하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영화진흥법 제28조는 '영화상영관 경영자는 연간 대통령이 정하는 일수 이상 한국영화를 상영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영화진흥법 시행령 13조는 ‘연간 상영일수의 5분의2 이상’이라고 규정해놓았다.

연중무휴로 영화를 상영하는 경우 스크린쿼터 일수는 146일이다.

실제로는 106일이 기준으로 통용되고 있다.

설, 추석, 연말연시, 여름방학 등 성수기에 한국영화를 상영하는 경우에는 하루를 3분의5일로 계산해 경감해주고 있다.

또한 문화관광부 장관이 한국영화 수급상황 등을 고려해 시·군 지역의 상영관에 대해서는 40일 범위 안에서 단축할 수 있게 했다.

스크린쿼터의 역사는 1967에 시작되었다.

유치산업에 해당됐던 영화 산업의 육성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국내 영화 잠식을 우려해 시행되었다.

시행 초기 한국 영화의 의무 상영일수는 1년의 2/5인 146일이었다.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영화 산업에 대자본 형성이 미비했다.

스크린쿼터는 한국 영화에 있어서는 최후의 보루와 같았다.


‘그러고 보니 얼마 안 남았네.’


류지호는 다음 정권에서 벌어질 스크린쿼터 축소와 관련한 극한 투쟁을 떠올렸다.

찬성·반대 의견이 갈리며 극심한 갈등이 벌어지게 된다.


“스크린쿼터가 한국영화산업을 성장시켰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일부 스크린쿼터 폐지론자들은.


“영화계의 관객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소재 발굴과 발전된 제작기법 등이 어우러져 한국영화산업의 폭발적인 발전을 가져온 것이지, 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를 지켜 관객들을 끌어들인 것은 결코 아니다.”


라고 주장하며 시민단체까지 가세해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을 벌이는 영화계에 발목을 잡았다.


“스크린쿼터를 폐지할 경우 당장의 제작 여건은 나빠질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더욱 치열한 제작태도를 통해 영화산업 경쟁력이 길러질 것이다.”

“스크린쿼터는 소비자의 선택 폭을 제한하는 시장 왜곡 수단일 뿐이고, 사실상 스크린쿼터는 전 국민을 위한 제도라기보다 영화인, 특히 영화제작자를 위한 제도다.”


듣기만 해도 어떤 집단이나 주체의 뜻을 대변하는지 알 수 있다.

모든 것을 경제적 범주로만 재단하는 어떤 집단의 논리와 똑같았다.

146일(실제 106일)이라는 스크린쿼터일수는 날짜 개념이라기보다는 한국영화를 극장에 걸 수 있는 가능성이다.

한국영화가 잘되니까 스크린쿼터가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을 펼치지만, 그것은 장사가 잘되는 극히 일부의 영화만의 이야기일 뿐이다.

상업논리로만 얘기할 수 없는 작은 영화들, 예술영화들을 극장에 걸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스크린쿼터다.

그런 영화들은 궁극적으로 상업영화를 살찌우는 기반들이다.

그런데 경제논리만으로 스크린쿼터를 축소하거나 없앤다면 그런 영화들이 철저한 경제적 가치에 밀려 설자리를 잃어버리고 만다.

영화는 산업의 외피를 두르고 있으나 그 내용은 명백히 문화다.


‘영화는 문화다.’


이 명제를 받아들인다면 스크린쿼터 존폐 논쟁은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설령 원역사대로 한국영화산업이 크게 융성해서 스크린쿼터 제도가 유명무실해진다고 할지라도 없애서는 안 되지.’


개관 행사가 끝나고, 전야제 성격으로 영화 시사회가 진행됐다.

내빈들은 연회장으로 안내되었다.

관료를 배웅하고 돌아온 류지호는 연회장이 아닌 17관으로 향했다.


‘이 극장이 관객수로 기네스북에도 오르고 했던 것 같은데.... 어쨌든 웬만한 점포 두 개를 합한 매출 규모를 보여줬다고 하니까.’


2002년부터 연매출 1,000억 원을 돌파하고, 한국영화 내수 최대 호황기에는 1,200억을 찍기까지 했었다.


“최 매니저, 17관 좀 잠시 열어줄 수 있습니까?”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코엑스점 총매니저가 얼른 사무실로 달려갔다 왔다.

류지호는 24석의 테마파크 체험형 4D관을 둘러봤다.

이전 삶에서 이 시설을 어떤 업체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

이번에는 Eye-MAX의 자회사 Ridefilm Theaters에서 설치했다.


‘4D는 4D인데.....’


류지호가 경험했던 수준보다는 많이 허술했다.

3D 안경을 끼고 롤러코스터나 우주선을 타는 기분을 체험할 순 있다.

이 시기만 해도 3D는 신기한 체험이었으니까.


“4D Theater도 그렇고 Eye-MAX관의 스크린쿼터도 해결해야 할 텐데....”


특별 상영관 17관도 스크린쿼터가 적용받을 가능성이 높았다.

Eye-MAX관은 말할 것도 없고.

Eye-MAX 영화는 촬영단계부터 전용 포맷으로 작업되는 일종의 특수 영화다.

이전 삶에서 할리우드조차 콘텐츠가 많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7광구>의 실패 이후로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럼에도 Eye-MAX 상영관 역시 연간 상영일수 5분의 1이상 국내 영화를 상영해야 했다.

제작되는 한국영화가 없으니 결국 일반 2D 영화를 상영할 수밖에 없다.

영화티켓은 Eye-MAX 가격을 받으면서.

이로 인해 관객들의 아우성이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스크린쿼터로 인해 할리우드 Eye-MAX 영화 대신 국내 영화가 일명 ‘퐁당퐁당’으로 상영되기도 한다.

영화팬들의 격렬한 항의에 극장 측에서는 스크린쿼터제를 지키지 않으면 영업정지를 당하기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을 뿐.

이런 문제는 Eye-MAX 상영관뿐만 아니라 3D, 4Dx 상영관 등 특수상영관도 피해가지 못했다.

시대의 흐름을 맞추지 못한 스크린쿼터제가 결국 상영관을 낭비시켰다.

결과적으로 관객과 극장 모두에게 ‘민폐’만 끼치게 되었다.


‘아는 것도 병인가?’


류지호는 가끔 머리가 아팠다.

미래에 벌어질 복잡한 문제를 사전에 대비하려고 골치를 썩었다.

그럼에도 혼자 짊어져야 할 몫이다.

미래와 관련한 정보를 누구와 공유할 수 없었기에.


‘왜 BGV만 Eye-MAX 상영관을 운영하나 했다....’


한 나라에 하나의 Eye-MAX 브랜드 멀티플렉스 정책.

Eye-MAX에서는 멀티플렉스에 자사 시스템을 진출시키면서 나라당 단 하나의 극장 체인에만 독점을 허용하는 정책을 만들었다.

Eye-MAX Corp.이 멀티플렉스의 전용 상영관 수요를 못 쫓아가기 때문에 세운 궁여지책이다.

그로인해 미국에서는 JHO Company가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MovieMark 브랜드 대신에 AMT Entertainment 멀티플렉스 체인과 독점 계약했다.

한국에서는 G.O.M Cinemas와 계약이 되어 있다.

당연히 류지호로서는 Eye-MAX Corp.의 정책에 동의해 줄 수 없었다.

그런데 사정을 알게 되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북미에만 5만 개 가까운 극장이 있고 극장 브랜드만 수십 개다.

그들의 1/3만 Eye-MAX 시스템을 설치하고 싶다고 해도 북미에서만 수천 개의 Eye-MAX 상영관을 설치해야 한다.

현재의 회사 사정으로는 10년 동안 공사해도 어림도 없다.

따라서 회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상영관을 만들어 나가는 한편으로 독점권을 주는 반대급부로 더 좋은 계약조건을 요구하기로 한 것이다.

영화팬으로서 류지호는 더 많은 고객들이 편리하게 Eye-MAX 전용관에서 영화를 감상하길 바라지만, 기업의 오너 입장에서는 이성적으로 판단을 해야만 했다.

결국 한 국가 한 브랜드 정책을 받아들이고 MPX 시스템이 더욱 진보하게 되면 정책에 대해 재검토를 하기로 했다.


‘그나저나 짝퉁은 어떻게 막아야 하지?’


어떤 나라도 Eye-MAX 시스템의 짝퉁을 만들거나 개발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굳이 한정적인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들여 제품과 시스템을 만들지 않는다.

로열티를 주거나 티켓수입을 나누는 계약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그럼에도 전 세계에서 Eye-MAX와 같은 초대형 상영시스템을 카피하거나 개발한 나라는 두 곳이다.

한 곳은 미국이고 다른 한 곳은 중국이다.

미국은 JHO Company가 투자한 MovieMark가 한 국가 한 브랜드 독점 정책으로 인해 중남미 체인에 Eye-MAX 상영관을 입점할 수 없게 되면서 자체적인 초대형 스크린 상영 시스템을 독자개발한다.

반면에 중국은 자국 내에서 Eye-MAX 독점이 사실상 깨졌음에도 DMAX라는 Eye-MAX 짝퉁을 만들어 서비스한다.

국가 차원에서 한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중국 정부는 Eye-MAX의 기술을 카피한 업자에 대해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글로벌 서비스를 하지만 Eye-MAX Corp.은 중소기업일 뿐이었다.

강력한 항의와 법적조치를 취하지만, 얼마 안 가 꼬리를 말았다.

꼬리를 만 것으로 끝나지 않고 중국 메이저 콘텐츠 업체에 지분 일부를 팔았다.

투자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속사정은 당사자들만 안다.

지분을 넘길 때 중국내 Eye-MAX 스크린 숫자는 무려 6,000여 개였다.

글로벌 기업도 중국에서 설설 길 수밖에 없다.

하물며 캐나다의 중소기업이 중국에서 모든 걸 빼앗기고 속옷차림으로 쫓겨나지 않는 방법은 지분을 넘기고 중국 업체의 짝퉁에 대해 눈을 감는 것이었다.


지끈지끈.


아직 닥치지도 않은 미래 때문에 류지호의 골치가 아팠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못 담근다는 말처럼 중국에 아예 진출을 하지 않는 방법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아예 대놓고 Eye-MAX 기술을 그대로 복사해서 로열티는커녕 자신들의 독자기술이라면서 중국에서 영업을 할 테니까.


“저... 의장님?”


4D Theater 좌석에 앉아서 상념에서 허우적거리던 류지호를 코엑스점 총매니저가 깨웠다.


작가의말

코엑스몰 멀티플렉스 매출은 주인공 보정이 있습니다. 실제 규모보다 더 크게 설정했고, 추후 Imax까지 입점하게 되면 매출은 더 늘어날 수 있습니다. 혹시나 실제와 혼동 하실까봐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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