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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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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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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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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2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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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4쪽

그 양반들 간이 많이 커졌네.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개나리·진달래가 피는 시기다.

봄이 왔음에도 류지호는 한국에 머물고 있었다.

올해는 미국보다 한국에 머무는 시간이 많을 것 같았다.

그에 따라서 한국 경호팀을 보강하고 집무실도 새롭게 단장했다.

매일 아침 가온그룹 본사 의장 집무실 책상에는 주요 뉴스기사를 스크랩한 보고서가 올라와 있다.

3월 둘째 주.

한국영화계에 대형 뉴스가 터졌다.

온 매스컴 연예면이 새로운 종합엔터테인먼트 그룹의 등장 기사로 도배됐다.

다소 낯선 개념인 벤처연방제라는 서로 간에 지분을 인수하고 투자한다는 방식으로 연예기획사 EBM의 정용탁, 수만기획 전 대표 정호익, 우노필름의 차성재, 웹시네마의 성창규, 무비서비스의 강은석, 김영학 프로덕션의 김송학이 플래너스라는 회사로 뭉쳤다.

WaW 엔터테인먼트와 백설 엔터테인먼트에 이은 거대한 영상미디어 기업의 탄생이었다.

신문을 보던 류지호가 중얼거렸다.


“내가 과거로 돌아온 것으로 ASTRO 엔터의 미래가 달라지려나....?‘


별로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플래너스 엔터테인먼트는 수직계열화가 아닌 수평적 관계를 추구한다.

발상 자체는 그럴 듯 해 보인다.

다만 미국의 실리콘밸리 일부 기업에서나 가능할까.

실제 벤처연방제가 성공한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류지호는 굳이 이전 삶의 기억을 떠올릴 필요도 없었다.

벤처연방에 참여한 회사들의 대표들 한명 한명이 다들 개성도 강하고, 독불장군들이다.

로터스가 지주회사 노릇을 한다고 해서, 나머지 인물들의 의견과 사업의 방향성을 중재하고 조율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무비서비스의 강은석, 우노필름의 차성재는 충무로에서도 알아주는 상남자들이다.

두 사람은 한국영화에 애정이 있고 사명감도 가지고 있지만, 스타일에서는 상반된 모습을 보여준다.

둘 다 영화 쪽에서는 촉이 살아있는 제작자다.

의리와 사람관계를 일 순위에 놓고 영화를 작업하는 사람들이란 공통점이 있다.

강은석은 영화 연출에서 힘을 얻은 뒤 제작과 배급에까지 영역을 뻗친 케이스다.

차성재는 지금껏 제작 한 우물만 팠다.

강은석이 자신과 일했던 조감독과 프로듀서를 밀어주는 스타일이라면, 차성재는 아카데미나 영상원 출신의 스마트하면서 잠재력 있는 젊은 인재들을 후원하며 성장시키는 타입이다.

강은석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틈새시장을 공략할 줄 알면서 비디오 배급까지 종합적으로 총괄하는 스타일이다.

게다가 톱스타를 선호하면서 영화배급업자로서 비즈니스맨 성향이 강한 편이다.

반면에 차성재는 장기적인 비전 제시에 능하고 무엇보다 인맥 관리에 능통했다.

강은석은 글로벌 마인드와 시야가 조금 부족한 편이다.

그에 비해 차성재는 일본과 중국 등으로도 활발하게 영역을 확장하면서 넓은 시야를 갖추고 있다.

서로 의기투합한다면 좋은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 조합이긴 했다.

그런데 두 사람 다 누구 밑에서 고분고분할 성격들이 못 된다.


“지금처럼 백설과 직배사를 WaW가 견제해준다면, 플래너스가 안착할 수 있지 않을까...?”


충무로 상황은 이전 삶과 완전 달라졌다.

WaW 엔터테인먼트라는 괴물이 한국영화산업 전반에서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서울극장 라인을 그대로 넘겨받은 무비서비스가 시시해지지는 않았다.

여전히 WaW 엔터테인먼트에 이어 제작·배급·극장에서는 막강한 파워를 자랑했다.

부족한 것은 자본력 뿐이다.

이조차 호주계 투자사로부터 자금을 조달해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어쨌든 2000년 현재 WaW 엔터테인먼트와 무비서비스가 한국영화의 60%를 장악하고 있다.

그 뒤를 UPI 및 직배사와 백설 엔터테인먼트가 차지하고 있다.

남은 10% 부분을 한국 군소 배급사들이 차지하고 있다.

한국 영화만 놓고 보면 WaW 엔터테인먼트의 지배력이 더욱 두드러진다.

이 시기 영화제작사로 등록된 업체의 수는 557개, 배급업 등록 업체는 130여 개다.

실질적으로 영업활동을 하는 숫자는 그 절반에 그친다.

4,000억 규모의 시장을 놓고 봤을 때 턱없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올해 한국영화 제작 편수는 65편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었다.

외환위기로 인해 50편대로 떨어졌던 것이 98년부터 한국영화의 흥행 성적이 좋아지면서 늘어난 숫자다.


“후우. 이 시기에 스크린 독점 방지법을 입법해야 하는데....”


대략 2003년 즈음 전체 스크린의 30%를 초과해 한 영화를 걸 수 없게 하는 법률이 상정되었지만, 류지호가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 여러 영화 관련 법률들과 함께 수십 년을 국회에서 잠들어 있었다.

대기업의 로비뿐만 아니라, 정치 논리, 미국과의 무역협정 등의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어 수십 년째 법이 통과되지 못했다.


“스크린 독과점이란 이슈 자체에 대해 개념이 잡히지 않았을 지금이 딱 적기인데 말이지....”

“뭘 자꾸 비 맞은 중처럼 중얼거려?”

“응?”


류지호가 고개를 들었다.

언제 들어왔는지 황재정이 보고서를 들고 서있다.


“영화진흥법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어.”

“스크린쿼터?”

“스크린 독점 방지와 표준상영계약서.”

“그걸 네가 왜 고민해?”

“한국영화판의 공정과 정의에 관한 문제니까.”

“지금 농담 따먹기 할 때냐?”

“사과냐? 농담을 어떻게 따먹어?”

“시끄러.”

“어허. 나 오너야.”

“기획실에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양이니까, 넌 그냥 가만히 있어.”

“오호! 뭔가 생각하고 있는 게 있구나?”


류지호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응접 소파로 걸어갔다.

황재정이 그를 따라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한국영화를 장악하고 있는 악의 제국 WaW가 나서는 건 좋은 그림이 아니야. 일단 영화 제작사들이 정부와 국회에 요구하는 형식으로 해야지.”

“그래서?”

“일단 영화제작자들이 시민단체와 연계해 여당 의원에게 입법안을 발의해 줄 것을 압박하는 거야. 그럼 UPI와 메이저 배급사들이 반대하는 형국이 전개되겠지. 그렇게 올해는 군불만 열심히 피워야지.”

“씨네필과 YNTV로 언론 플레이도 좀 하고?”

“당연한 말씀. 그러다가 WaW가 한국영화 시장에서 외화와 한국영화 불문, 공정하고 균형적인 경쟁을 해야한다라는 대의에 입각해 표준상영계약과 스크린 독점 방지법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는 거지.”

“대의를 위한 건 아니지. 너무 나갔어.”

“그게 아니면? 막강한 배급파워와 극장체인을 가지고 있는 WaW가 이익을 포기하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직배사들이 엄청 반대할 텐데. 물론 그 뒤에 있는 미국무역협회도 가만 안 있을 거고.”

“딜을 해야지.”

“무엇으로.”

“스크린쿼터 축소.”

“영화인들이 그걸 받아들이겠냐?”

“아까 내가 서두에 깔아놓은 단어가 있잖아.”

“큰 그림을 그린다는 거?”

“여기 한국영화판 사람들은 <고질라>가 미국에서 7천여 개의 스크린에서 개봉한 걸 두고 부럽다고만 해. 바보들이지.”

“모를 수도 있지. 북미 스크린의 정확한 숫자나 배급시스템을 자세히 알 리가 없잖아.”

“어떤 기자는 북미에 극장이 십만 개쯤 있지 않냐고 물어보더라. <Remo : The Destroyer>는 왜 스크린을 2,000개밖에 못 잡았냐고 하더라니까.”

“미국극장협회에 문의하면 당장 알 수 있는 걸 왜 WaW에 물어?”

“낸들 아냐?”

“그러니까 네 말은 WaW도 그런 짓을 벌이자는 거지?”

“악당이 되어야겠지.”

“효과가 있을까? 난 왠지 충무로 사람들이 겉으로는 욕해도 속으로는 부럽다고 할 것 같은데?”

“마침 WaW는 <미션 임파서블Ⅱ>가 있고, 백설은 <글래디에이터>, 워너-타임은 <퍼펙트 스톰>이 있어. 고르면 돼.”

“고르고 나면?”

“G.O.M, BGV, 광성시네마, 프리머스 극장 체인에 쫘악~ 깔아버리는 거지.”

“얼마나?”

“400개 스크린 정도?”

“미친 놈. 지금 우리나라 스크린 수가 830개인데, 절반을 영화 한 편으로 발라버린다고?”

“그 정도는 되어야 충격요법이 통하겠지.”

“말이 400개지, 배급비용 때문에 백설이나 워너-타임은 절대 안하려고 할 걸?”

“난 한다에 한 표.”

“근거는?”

“워너-타임은 WaW에 배급에서 밀리고 있던 차에 웬 떡이냐 할 테고, 백설은 명색이 대기업 아니냐. 그깟 배급비용 껌값이겠지. 둘 다 돈이 없냐 가오가 없냐? 솔직히 말해. 나도 욕심난다. 2주간 전체 스크린의 절반을 독점해 봐라. 그깟 프린트 비용? 개봉 첫 날 다 뽑을 걸? 내 말이 틀려?”


시시한 영화면 통하지 않는다.

황재정이 거론 한 영화들은 올 여름 기대작들이다.

추석 전까지 장기상영을 염두에 두고 7월부터 개봉한다.

그런 영화를 전체 극장 스크린의 절반에서 상영한다?

2주까지 갈 것 없이 개봉 첫 주말에 이미 손익분기점을 넘을 확률이 높았다.


“우리는 그냥 미끼를 던져분 것이고, 걔들은 고것을 확 물어분 것이여?”


류지호가 미래의 유명한 대사를 중얼거리고는 소파팔걸이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톡톡.


잠시 생각을 정리한 류지호가 입을 열었다.


“진짜 가능해? 그 세편은 스케줄이 확정 되어 있을 텐데?”

“하지 말아야 하고, 안 되는 걸 되게 해야 횡포인거지.”

“사악한 놈.”

“난 한국영화로 하고 싶은데. 적당한 영화가 없어. <풍운아> 말고는.”

“안 돼!”

“그럴 줄 알았다. 어떻게... 해? 말어?”


5월 말에 G.O.M 코엑스몰이 개관할 예정이다.

개관 작품은 <미션임파서블Ⅱ>로 예정되어 있다.

그를 위해 톰 메더포이의 방한이 계획되어 있다.

전략기획실에서는 개관하는 G.O.M 코엑스몰에서 10개 관 상영하는 강수도 생각하고 있었다.

명분은 경쟁 영화에 대한 맞불이다.

그렇게 여름 내내 스크린 독점 이슈를 떠들썩하게 띄울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G.O.M도 욕 좀 먹겠네?”

“아마도.”

“우리 브랜드 이미지 타격은?”

“약간은 있겠지만. 법안이 통과되면 무슨 일 있었나 할 걸?”

“입법이 되겠냐?”

“정부와 여당은 법률제정에 반대할 이유가 없고, 야당 문화체육부 소관 의원 중심으로 작업을 좀 해야겠지.”

“자꾸 작업이라고 할래. 무슨 더러운 음모를 꾸미는 것 같잖아.”

“그럼 승인한 걸로 안다?”

“난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넌 사안을 결정하면 끝에 가서 꼭 안 해도 될 사족을 붙여. 지금도 그랬고.”

“사족으로 들렸냐?”

“응.”

“자식이 유머를 가지고... 암튼 정서가 메마른 놈이라니까....”

“자, 이것도 검토해 줘.”


황재정이 자신의 앞에 있던 보고서를 집어 류지호에게 건넸다.

진짜 본론이다.

류지호가 받아 보고서를 눈으로 훑었다.


“탱크로리와 석유저장소.... 대리점?”

“나래안전에서 올라온 걸 내가 확인 좀 해봤어.”

“나래가 왜 전략기획실로 신사업 기안을 올려? 독립적으로 운영하기로 했잖아. 그냥 알아서 하라고 해.”

“그게... 좀...”


황재정이 즉답을 못하고 망설였다.


“혹시 페이퍼컴퍼니? 코스닥 상장기업인 걸 보면 주가조작하고 관련된 회사냐?”

“아니야.”

“뭔데 뜸을 들여?”

“이 기안이 좀 웃기면서 황당하기도 하고, 만화 같기도 하고 그래.”


류지호가 뭐가 만화 같은지 다시 한 번 보고서를 천천히 훑었다.


“지금 신용카드와 사채 때문에 난리인 건 알지?”

“어제 오늘 일이냐? 혹시 이 회사 카드 깡 회사야?”


황재정은 먼저 류지호가 읽은 보고서에 기술 된 기업에 대해 설명했다.

(주)동양특수유조는 1977년에 석유주유소와 유조차 업종으로 설립되어, 1986년 전남 여천지점, 이듬해 나주영업소, 1990년 경남 울산지점을 신설했다.

1995년에는 경부고속도로 천안휴게소 임대차 계약을 맺고, 동산통운을 합병했다.

같은 해 8월에 코스닥시장에 주식을 상장하면서 상호를 (주)동특으로 간략화 했다.

1997년 전남 여천 탱크터미널 탱크 2기를 완공, 같은 해 전남 목포 탱크터미널 탱크 3기를 완공한 뒤, 1998년 서울 응봉 탱크터미널 탱크 2~3기를 완공했고, 작년에는 대전과 광주에 지사를 신설했다.

또 전남 목포에 탱크터미널을 새로 준공했다.

가온투자파트너스에서 투자 포트폴리오 다양화 차원에서 이 회사의 주식을 매입해 보유했다.

(주)동특의 사업전망이 밝은 것을 확인하고, 계속해서 보유 주식을 늘린 끝에 최대주주의 한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몇 주 전 (주)동특은 유상증자를 통해 자본금이 470억 원으로 늘어났고, 5월에 본사를 가온 본사 근처로 옮길 예정이다.

이때 Y&P아시아퍼시픽이란 사모펀드가 가온투자파트너스에 접근했다.

지분율 11%를 보유하고 있는 일본 대부업체도 접근했다.

두 곳에서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금액의 인수제안을 해왔다.


“인수금액은 두 곳 모두 300억 원.”

“액면가로?”

“아니 인수시점 주가로.”

“그래서?”

“가온투자파트너스에서 뭔가 이상하게 여긴 모양이야. 그저 석유저장소와 주유소 몇 개를 운영하는 회사를 두 곳에서 동시에 인수제안을 넣었으니까.”

“나래 조사부가 가동되었겠네.”

“일본 대부업체와 사모펀드가 인수제안을 넣은 이유를 알게 됐어.”

“뭔데?”

“대부업을 하려고 하는 가봐.”


외환위기 이후 금융 회사에 대한 감독이 강화되어 각 금융 회사들의 여신심사가 보다 엄격해졌다.

그 결과 제도권 금융 회사를 이용하기 힘든 서민이나 신용불량거래자의 사금융 이용사례가 증가했다.

따라서 채무자 보호를 위한 법률제정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에 정부는 ‘대부업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대부업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뒤에 야쿠자가 있다거나... 아니지?”


이전 삶에서 류지도도 몇 번 이용했던 대부업체.

캐시앤런과 쌈마머니.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한 이름의 대부업체다.


“그렇다네.”

“혹시 쌈마머니냐?”

“아니, 제트 파이낸셜이라나....”

“한국에서 캐시앤런 영업 중이냐?”

“거긴 작년에 한국에 사무실을 차렸을 걸?”

“그렇다고 치고. 나래에서 대부업이라도 하고 싶대?”

“일본 깡패놈들이 한국에서 돈놀이 하는 꼴도 보기 싫은데, 코스닥 등록 업체를 인수해서 버젓이 사채하는 건 두 눈 뜨고 못 보겠단다.”

“누가? 장문식 이사가?”

“나래 사람들 전직이 뭐냐?‘


군인, 경찰, 정보기관원, 조폭, 운동선수 등.


“문제가 될 것 같으면 법적으로 해결하면 되지 뭘 회사까지 인수해서 일본자본의 대부업을 막겠다고 그런데?”

“대부업을 하자는 게 아니라, 걔들이 인수를 하지 못하게 하자는 거지.”

“가온투자파트너스가 최대주주라며? 안 팔면 되잖아.”

“회사 대표와 관계자 주식을 그쪽에 넘기면 최대주주가 무슨 소용이겠어.”

“그래서 가온투자파트너스에게 인수해 달라고 요청하는 거야?”

“나래는 당장 130억 상당의 인수자금이 없대.”

“허...참!”


류지호는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자기들이 언제부터 애국자였다고. 별 오지랖은....‘


한편으로는 기특한 생각도 들었다.

평범한 월급쟁이였다면 그들이 일본의 음지자본이 한국의 사금융을 집어 삼키든 야쿠자가 서민의 뼈사골을 우려먹든 상관하지 않았을 터.

조폭 출신 장문식의 경우 오랫동안 인천을 외세(?)로부터 방어했다는 요상한 자부심이 있었다.

야쿠자 자금이 한국에 들어오는 것에 발끈하는 것이 일견 당연해 보이긴 했다.


“앞장서서 주장하는 사람이 장 이사냐?”

“응.”

“투자파트너스에서는 뭐래?”

“회사 자체는 꽤 안정적이래. 현찰 잘 돌고.”

“석유저장소 사업이? 거기 어음 돌리지 않냐?”

“휴게소 영업에 주목하고 있는 모양이더라.”

“휴게소는 원래 식품접객업? 암튼 그런 사업자가 입찰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식당이 아니라 주유소.”

“아, 고속도로 주유소겠구나?”


가온그룹이 서비스업이 주력이더라도 주유소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었다.

단순 투자목적이라면 몰라도.


“너희 팀 의견은?”

“130억 원 더 투자해서 인수하면 남는 장사.”

“그룹의 어떤 업종과도 연관성이 없잖아.”

“가온이 인수하면 주가가 오를 걸? 그럼 몇 년 키워서 일본 놈들이 아니라 국내 업체에 매각하면 꽤 쏠쏠할 듯.”

“나래 생각은 뭐야?”

“자기들이 해보고 싶대.”

“그 양반들 간이 많이 커졌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잖아.”

“읊어봐.”

“저장고와 운수분야는 더 확장하지 않고, 휴게소 사업 쪽으로 영역을 넓혀보겠대. 아네모네와 컨소시엄으로 주유소와 식당을 함께 임대할 수도 있지 않겠냐고.”

“휴게소는 임대 기간이 얼마나 되냐?”

“도로공사와 민자가 다른 모양이야. 도로공사에서 임대하는 곳은 짧으면 3년, 보통 5년 계약하는 것 같고, 최장 10년도 가능하긴 한 것 같아. 장기임대가 특혜인지는 아직 확인 못했어.”

“계약기간이 끝날 때마다 입찰에 참여해야 한다는 건데.... 경쟁력이 있나?”

“이 놈은 어릴 때부터 선비인 척 하더니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내가 뭘?”

“나래 임원들이 누구냐? 그 양반들이 공무원들 만나서 공 몇 번 치고, 술자리 몇 번 하면 일도 아닐 걸? 다온은 또 어떻고.”

“그러다가 정권 바뀌면 감옥 간다.”

“그런 각오도 없이 사업하겠냐?”

“난 그런 각오 없이도 잘만 하고 있는데?”

“또 옆길로 센다. 쫌!”


류지호는 입을 다물고 고민에 들어갔다.

그가 기억하는 대부업체는 세 곳.

쌈마머니, 캐시앤런, 코리코프.

모두 하루 종일 케이블 채널에서 광고를 하던 곳이라 모를 수가 없었다.

류지호 본인도 그곳들에서 돈을 빌려 고생한 적이 있었고.

일본계 대부업체인 것으로 드러난 곳들이다.

일각에서 야쿠자의 자금을 세탁해 들여왔다고 했는데, 류지호는 진실까진 알지 못했다.

암튼 캐시앤런은 이미 진출했다고 하니 남은 것을 둘.


“나래로 깔끔하게 넘겨주는 방법을 찾아봐. 그리고 청탁이나 로비로 고속도로 휴게소 임대계약 딸 생각하지 말고, 경쟁력을 갖추고 덤비라고 해. 만약 입찰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내가 나래 자체를 해산시켜버린다고 전하고.”

“그럴 줄 알았다.”

“정도만 걸을 수 없다는 건 알지만, 우리가 정한 금도는 넘지 말자.”

“너무 걱정하지 마라. 임 사장이 고지식한 양반이기도 하고, 다들 나름 선을 지키려고 노력 하는 모양이니까.”


모를 일이다.

다온 로펌은 법조계 전관들로 성을 쌓아놔서 어떤 스캔들에도 흔들릴 가능성이 적다.

나래안전 전관이라고 해봐야 겨우 경찰과 군 쪽 고위인사 정도다.

류지호는 나래안전 쪽에 언론사와 법조계 전관들을 영입하도록 유도하기로 마음먹었다.

유통기한이 있는 정치인은 배지 달고 있을 때나 도움이 된다.

끈 떨어지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유통기한 없는 권력은 법조계, 언론계, 늘공 고위직 카르텔 뿐이다.


“나래 매출은 어때?”

“CCTV수요가 계속 늘어난대. 우리 극장체인과 대기업 극장 체인도 속속 개관하고 있어서 무인티켓발매기 주문도 부쩍 늘어나고 있고.”

“보안경비업은?”

“오성시큐리티나 캅스에 비하면 아직 많이 부족하지.”

“아네모네는?”

“알짜배기는 그쪽이야. 컴퓨터 회사와 노래방 기계 회사를 인수한 건 신의 한수였어. 분기별로 매출성장이 아주 눈부셔. 프랜차이즈와의 시너지효과는 말할 것도 없고.”

“옥순 이모는 아직도 밥차 나가냐?”

“그 이모 밥차 다섯 대 돌린다.”

“밥차가 그렇게 수요가 많다고?”

“경쟁업체도 등장했어.”

“몸만 힘들고 돈은 안 될 텐데.....”


밥차 운영이 고된 일이긴 하지만, 꽤나 짭짤한 수익이 발생 하긴 했다.

이맘때부터 2010년까지다.

그 이후부터는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밥차들로 인해 경쟁이 심해진다.


“NEC소프트는 어떻게 할까?”

“잘나간다며?”

“여름에 코스닥에 상장하겠대.”

“벌써?”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거지. 다른 코스닥 주식처럼 올해 정리할 생각이야?”

“공모가는 얼마를 생각하고 있대?”

“7만원.”

“휘유, 가온투자파트너스는 지분을 얼마나 가지고 있어?”

“공모주 빼고 지분율로 계산한 주식이 200만 주 조금 넘을 거야.”

“김 대표는?”

“150만주 정도 될 거야. 정확한 건 따로 정리해서 올릴 게.”

“아니야. NEC소프트는 일단 놔두자.”

“좋은 결정이야. 가온투자파트너스도 상장되고 바로 처분하는 것보다 시장 반응을 지켜보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야.”


류지호는 NEC소프트가 잘 나갔다는 것은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주가가 얼마나 되는지 또 언제 오르고 언제 떨어지는지 알지 못했다.

승승장구했던 걸 떠올려 보면 급하게 처분할 필요는 없었다.

여담으로 가온투자파트너스가 옳았다는 것이 3년 후에 증명된다.

NEC소프트는 2003년 1주당 3주 배정의 무상증자를 단행하게 된다.

그때 가온투자파트너스는 700만 주 이상의 주식을 보유하게 된다.

또 같은 해 NEC소프트는 코스닥에서 한국증권거래소로 옮겨가게 된다.

최고 30만원을 찍기도 하는 등 꾸준히 20만 원대를 오가게 된다.


“또 궁금한 건?”

“네가 실장이냐?”

“누가 보고하든 무슨 상관이야?”

“더 할 이야기 없으면 가서 일 봐.”

“오늘은 사무실에 있을 거야?”

“시나리오 읽어야 돼.”


황재정이 책상 쪽을 힐끗거렸다.

시나리오들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퇴근하고 별 일 없으면 호프 한 잔 할래?”

“재욱이하고 석민이 연락해 봐.”

“오케이. 수고해.”


황재정이 꾸벅 인사하고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류지호가 다시 책상에 자리를 잡았다.

책상 왼쪽에는 A4용지에 출력된 한국영화 시나리오가, 오른쪽에는 서류철로 만들어진 할리우드 시나리오가 쌓여있었다.

류지호는 할리우드 시나리오로 손을 뻗었다.

<스파이더맨>, <데어데블>, <헐크>, <X-Man> 등 Timely Studios 영화들.

<Remo : The DestroyerⅡ>, <본 아이덴티티>, <분노의 질주> 등 JHO Pictures 기획·제작 영화들.

<디 아더스>, <아밀리에>, <언디스퓨티드>, <시카고> 등 ParaMax Films 영화들.

코믹스 몇 권도 끼어있다.

Timely 코믹스가 아닌 다크호스 코믹스 <터미네이터 VS 로보캅>이다.

<로보캅> 2,3편의 시나리오를 쓴 작가가 <터미네이터> 세계관과 <로보캅>을 크로스오버 시킨 코믹스였다.

또 하나의 코믹스는 <저지드레드>다.


“<퍼니셔>와 <고스트 라이더> 판권도 정리해야 하는데....”


류지호가 입맛을 다셨다.

다른 누군가와 기억을 공유할 수도 없고.

사업 영역은 손에서 내려놓은 편이지만, 그 외에도 홀로 챙겨야 할 일이 끊이지 않았다.

잡념을 털어낸 류지호가 <스파이더맨> 시나리오를 읽기 시작했다.

모리스 메타보이 회장은 제이미 캐머론에게 메가폰을 맡기자고 했다.

캐롤코에서 처음으로 준비한 감독이 그였다는 이유로.

제이미 캐머론이 <스파이더맨>을 연출한다면 시각적으로 매우 근사한 영화를 볼 수 있을 터.

사무엘 레이미의 서민적이고 실수연발의 풋풋한 피터 파커는 볼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스파이더맨> 팬들이 좋아하는 1편과 시리즈 가운데 최고로 평가 받는 2편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제이미는 <아바타>를 준비하는 게 맞고...”


류지호가 붉은색 펜을 들었다.

그리고 <스파이더맨> 스크립트의 씬 넘버 하나에 X를 표시했다.

맨해튼의 무역센터가 등장하는 장면이다.

류지호는 다음 날도 그리고 또 다음 날도 시나리오만 읽었다.

시나리오를 모두 읽고 난 후에나 무거운 몸을 움직였다.

남이 연출할 영화를 점검했으니, 자신의 영화를 점검해야 했다.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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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양반들 간이 많이 커졌네. +2 23.01.26 3,988 144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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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2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3) +6 23.01.23 4,019 149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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