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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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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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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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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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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쪽

좀 더 자신을 믿어보게.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트라이-스텔라 임원들이 <Remo : The Destroyer> 최종 편집본을 승인했다.

그에 따라서 포스트프로덕션이 탄력을 받았다.

그간 기초 작업만 진행하던 ADR(후시녹음), 내레이션, 왈라(군중 소음), 폴리(효과음) 등의 작업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보통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사운드 작업기간은 3~6개월이다.

<Remo : The Destroyer>의 사운드 작업 기간은 4개월.

짧지도 길지도 않은 딱 평균이다.

류지호는 오전에는 <Remo : The Destroyer>의 포스트프로덕션을 확인하고, 오후에 조금 일찍 퇴근해 여동생들과 시간을 보냈다.

LA 다저스 홈경기 티켓을 어렵게 구해 동생들과 메이저리그 경기도 관람했다.

올해 전반기 박진우 선수는 악몽 같은 시간을 보냈다.

지난 시즌에는 운이 좋았다면, 올해 전반기는 운도 실력도 따라주지 않았다.

슬럼프에 빠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실 방콕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했고, 훈련도 부족했다.

그 때문인지 강력한 직구의 무브먼트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성적이 저조하니 자신감도 잃은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앞으로 쉽게 깨지기 어려운 소위 '한만두' 사건이 있었다.

4개의 만루홈런을 허용하며 MLB 타이기록을 만들었다.

박 선수의 모든 단점이 드러난 시즌이었다.

'이단옆차기' 난투극으로 3,000 달러 벌금.

그로 인한 첫 퇴장.

7게임 출장정지.

다양한 일들이 일어났던 올해 선수 개인적으로 악몽 같은 시즌이기도 했다.

그런 악재를 뚫고 후반기에 들어서며 연승을 하는 등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긴 했다.


“오빠도 못 만나봤어?”

“식사 한 번 해보려고 해도 이상하게 스케줄이 맞지 않더라. 시즌 중에는 운동에 방해가 될까봐.”

“오빠가 바쁘긴 바쁘지.”


비시즌에는 류지호가 영화를 촬영하거나 비즈니스로 바빴다.


‘텍사스로 옮기기 전에 식사라도 한 번 해야겠지.’


여동생들은 메이저 리그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저 야구장 자체의 분위기를 즐겼다.


“이게 그 유명한 Dodger Dog야?”


일반적인 핫도그에 비해 크기와 모습 모두 아름다운 다저스타디움의 자랑거리다.

메이저리그의 다른 팀 팬들에게도 유명해서 구장을 방문하는 타팀 팬들도 한 번씩은 사먹는 별미로 자리 잡았다.


“한 개씩만 먹어. 두 개 먹으면 밥 못 먹으니까.”


여동생들은 그저 그런 모양인지 남은 핫도그를 류지호에게 떠넘겼다.

주말에는 LA에서 북쪽으로 56Km 떨어진 발렌시아로 날아갔다.

Se7en Flags Magic Mountain에서 각종 롤러코스터를 타고 놀았다.

하루 종일 이곳저곳으로 끌려 다니며 온갖 놀이기구를 타는 것에 진이 빠졌다.

참다못해 류지호가 동생들에게 물었다.


“저게 서핑보다 재밌다고?”

“짜릿하잖아!”

“그래도 한 번 탄 걸 또 타는 건 시간낭비 아닐까?”

“모르는 소리!”

“탈 때마다 새로운 기분을 느낄 수 있단 말이야!”

“맞아!”

“큰오빠는 잔소리 말고 잘 따라와!”


타기 전에는 재밌을 것 같지만, 막상 다 타고 나면 허탈한 것이 롤러코스터다.

차라리 파도타기가 훨씬 재밌었다.

류지호에게는 그랬다.

그런데 여동생 두 녀석은 아닌 모양이다.

스무 개 정도 되는 각종 라이드를 모두 타보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류지호는 다음부터 놀이공원은 제외하기로 마음먹었다.

테마파크를 다녀 온 후로는 캘리포니아 대학 탐방을 다녔다.


“만약 스탠퍼드에 입학하게 되면 JHO의 졸업생 직원이나 인턴 소개시켜줄게. 학교생활에 대한 팁을 줄 거야.”

“반드시 합격하고 말겠어!”


스탠퍼드를 구경하고 돌아온 레오나가 합격의지를 불태웠다.


✻ ✻ ✻


여동생들이 떠나고 류지호가 일상으로 복귀했다.

Hues & Rhythm Studios에서 작업이 끝난 CG커트들이 <Remo : The Destroyer> 편집실로 넘어왔다.

영화음악도 결정되었다.

두 번째 티저 예고편이 극장과 방송을 통해 나가기 시작했다.

10월로 접어들며 포스트프로덕션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그러는 동안 <매트릭스>의 흥행 자축 파티가 열렸다.

6,500만 달러 예산으로 제작되어 월드와이드 박스오피스 4.6억 달러의 최종 수익을 거뒀다.

프랜차이즈 시리즈가 확정된 후로 모든 배우와 스태프가 후속편에 그대로 합류하기로 했다.

2~3편도 동시에 제작하기로 했다.

트라이-스텔라에서는 해를 넘겨 차례로 개봉하기로 했다.

원래 역사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제작상황을 지켜보며 개봉을 결정합시다.”

“동시에 개봉하자는 거야?”

“몇 달의 시차를 두고 개봉할 수도 있죠.”

“여름과 겨울 시즌에 차례로?”

“예.”

“Timely와 트라이-스텔라의 프랜차이즈들과 경쟁해야 할 텐데도?”

“어쩔 수 없죠.”

“이러다 매달 블록버스터나 프랜차이즈를 개봉하게 되는 거 아냐?”

“어쩌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심각한데.....”

“몇 주 전에 유니벌스 CEO와 몇 가지 논의를 좀 했어요.”

“공동제작?”

“배급 스케줄이 도저히 나오지 않으면 한두 개는 다른 스튜디오에 배급권을 넘길 수도 있잖아요.”


어차피 저작권을 넘기는 것도 아니고, 부가시장 수익도 트라이-스텔라가 가져가기 때문에 크게 손해는 아니다.


“북미 배급을 넘기고 해외배급을 트라이-스텔라가 할 수도 있고.”

“그 부분은 트라이-스텔라가 알아서 하세요.”


모리스 메타보이 회장은 때에 따라서는 기존 프랜차이즈 시리즈를 포기하는 것까지 고려하고 있었다.

프랜차이즈 시리즈는 분명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된 텐트폴이다.

그것도 분기별로 한 편씩이 좋다.

두 달에 한 편씩 프랜차이즈 시리즈를 개봉할 스크린이 없기에.

다른 스튜디오가 영화를 만들지 않는 것도 아니고.


‘3조였던가....?’


<매트릭스> 프랜차이즈가 10년 간 각종 부가시장과 라이선싱으로 벌어들이게 되는 수입이 대략 30억 달러다.

할리우드 스튜디오 회계담당자들은 성공한 블록버스터의 수익 분기점을 1년, 3년, 5년으로 본다.

1년 안에 가장 많은 수익이 들어오고, 3년까지 부가시장에서 수익이 발생해 5년차부터 수익이 급감하기 시작하며 방송판권 갱신 수익 외에는 없다고 본다.

그런데 DVD 타이틀이란 변수가 등장했다.

그로인해 투자와 회계 파트에서 최대 10년까지 수익을 예측하기 시작했다.

류지호는 20년까지도 보고 있었지만.


‘OTT 때문에.’


<타이타닉>의 경우에는 매년 아카데미 주간에 TBS의 케이블 채널에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방영하는데, 20년이 지나도 거기서 나오는 수입이 꽤 쏠쏠하다.

물론 다양한 버전으로 재상영을 우려먹고, 특별판 DVD를 발매해 수익을 쥐어 짜낸다.


“<타이타닉> 후속편을 만들자는 정신 나간 소리하는 직원은 빨리 회사에서 내보내세요.”


큭큭.


모리스 메타보이가 웃었다.

<타이타닉>의 유례없는 성공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아이디어랍시고 개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모든 흥행영화가 다 프랜차이즈 시리즈화 되는 것이 아니다.

조건이 맞아야 한다.

<분노의 질주>는 처음부터 시리즈로 기획되지 않았다.

그리고 언더커버와 스트리트 레이스를 계속해서 고집했다면 3편을 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범죄액션스릴러로 변신했기 때문에 장기 시리즈가 될 수 있었다.


“저작권법이 개정될 줄 알고 있었어?”

“아니요. 영화 저작권은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좋은 거잖아요.”

“그렇긴 하지. 결국 우리도 케이블 채널 사업을 하게 됐으니까. 오라이언 클래식을 통해 저작권을 사들인 것은 탁월한 결정이었어.”


영화 저작권을 100편 가지고 있는 것과 3,000편 보유하고 있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영화채널에 판권을 넘기는 금액도 엄청난 차이가 있다.

지난해 미국 의회가 새로운 저작권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다.

바로 소니보노 저작권기간 연장법(CTEA)이다.

유명한 작사가이자 하원의원인 소니보노가 주도한 이 법은 저작권 보호 기간을 20년 연장하는 것을 골자로 했다.

저작권기간 연장법에 따라서 저자는 사후 50년이던 저작권 보호 기간이 70년으로 늘어났다.

또 75년이던 직무 저작물 보호 기간은 95년으로 늘어나게 됐다.

논란 끝에 통과된 이 법은 ‘미키마우스 연장법’으라고도 불렸다.

1928년 최초 제작된 미키마우스 캐릭터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50년까지 보호하고 있다.

한미 자유 무역 협정(FTA) 체결이 이루어지면, 보호기간이 70년으로 늘어나게 된다.


“할리우드의 로비력은 정말.... 휘유~”


류지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LOG Company의 로비력 덕분이지.”


LOG Company 이사회에는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전·현직 대기업 CEO나 거물급 투자전문가로 포진되어 있다.

복마전 같은 사내정치가 판치는 LOG 회사 경영진 견제도 중요한 임무이지만, 실상은 대주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스피커들이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임무가 대정부 및 의회 로비다.


“우리도 만만치 않지.”

“저 빼고요.”


모리스 메타보이가 어깨를 으쓱했다.

대답을 삼가겠다는 뜻이다.


찌릿.


류지호가 섭섭하다는 듯이 모리스 메타보이를 흘겨봤다.


하하하.


개편되는 JHO Company 지주회사에 새로운 인물들이 사외이사로 합류할 예정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에드윈 터너, 헨리 게이츠, 윌리엄 파커, 아서 애컬로프다.

언론계, IT업계, 유명한 상속가문의 어른, 저명한 경제학자가 JHO Company의 이사회 의장인 류지호에게 힘을 실어주는 동시에 외부로부터 압력을 막아주는 역할을 해줄 예정이다.

참고로 아서 애컬로프(Arthur Akerlof) UC버클리 교수는 2014부터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에 취임하는 루이스 재넷 교수의 남편이다.

류지호는 친분이 전혀 없었다.

친 민주당 성향인 부부는 모리스 메타보이 회장이 강력하게 추천한 인선이다.

그의 부인은 미국 금융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고 본인은 유대계 경제학자이자 노벨경제학상(2001년)을 수상하게 될 인물이다.

모리스 메타보이는 아서 애컬로프를 통해 유대계 자본들과의 네트워크를 강화할 속셈을 내비쳤다.

미국에서는 그들의 눈 밖에 나서는 사업해 먹기 힘든 것이 현실이니까.

어쨌든 JHO Company가 미국 재계에서도 존재감을 과시하면서 사외이사 면면도 거물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아... 귀찮아!’


헨리 게이츠와 에드윈 터너가 사외이사로 들어오면 반대로 류지호가 파인소프트와 워너-타임의 사외이사로 들어가야 할 수도 있다.

심지어 UOL과의 워너-타임의 입수·합병에도 한 발 걸쳐야 할 수도 있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

그런 비즈니스판에 휘말리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

그렇다고 마냥 나몰라 할 수 없는 것이 비즈니스다.


❉ ❉ ❉


UCLA 영화과 교수 맥도웰이 오랜만에 선셋가에 나타났다.

Tri-Stellar Studios로 들어선 맥도웰 교수는 곧장 회장실로 향했다.

일개 교수가 메이저 스튜디오 회장실에 자유롭게 드나드는 것이 이상할 법도 하지만, 비서들은 크게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다.

해가 질 무렵까지 맥도웰 교수는 모리스 메타보이와 티타임을 가졌다.

그런 후, 시사실로 안내되었다.

시사실에는 이미 <Remo : The Destroyer> 관계자들이 모두 모여 있다.

트라이-스텔라와 JHO Pictures 임원진들이다.

처음으로 <Remo : The Destroyer>가 내부 시사를 갖는 날이다.

외부 인사로는 맥도웰 교수만 초청되었다.

맥도웰 교수는 보안각서를 썼다.

개봉 날까지 <Remo : The Destroyer>에 대한 언급을 삼가야 했다.

오늘 내부시사에서 별 다른 말이 없다면, 다음 단계인 모니터링 시사로 넘어가게 된다.

맥도웰 교수가 옆자리에 앉은 류지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번에도 사운드 슈퍼바이저는 라이언 클라이스였던가?”

“예.”


<The Killing Road>의 사운드 디자인을 했던 라이언 클라이스는 올해 아카데미에서 <파이트 클럽>으로 음향 편집상을 수상했다.


“오스카 수상자라면 같이 일하자는 감독이 많을 텐데?”

“느긋하더라고요. 일 년에 한 작품만 할 생각이라고 하더라구요.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작업한다면 3년에 2작품을 하는 것으로 스케줄을 짜고 싶대요.”

“얼마 받지?”

“35만 달러 받았는데, 오스카 프리미엄으로 좀 더 받을 수 있겠죠.”


음향 편집·믹싱 작업료는 따로다.

라이언 클라이스는 인건비만 한화로 4억 원이 넘는 액수를 받는다.

할리우드에서도 톱급이다.

물론 시나리오를 까다롭게 골라서 작품 수는 많지 않지만.


“라이언은 시끄러운 소리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정도로 블록버스터 작업에 매력을 못 느끼는 것 같아요.”

“끔찍하게 지겹지. 업계에서 사운드를 만지는 사람들은 전부 총소리와 폭발음에 진력이 나 있을 걸?”


한국이나 할리우드나 사운드 디자이너들의 생각은 비슷할 것 같다고 생각할 수 있다.

전혀 아니다.

라이언 클라이스 같은 사운드 슈퍼바이저는 한국에 없다.

충무로 사운드 슈퍼바이저들은 말로는 할리우드식 과장된 사운드가 싫다고 한다.

막상 작업할 때는 할리우드식 과장된 사운드를 추종한다.

그리곤 감독과 제작자의 요구라고 변명한다.

감독이나 제작자는 사운드 슈퍼바이저만큼 사운드에 대해 잘 알지 못 한다.

왜 전문가가 비전문가 의견대로 결과물을 내놔야 할까.

<쉬리>에서 총소리를 그럴 듯하게 만들어내기 위해 온갖 고생을 다 했다.

그렇게 고생했음에도 촌스럽다.

반면에 할리우드에서는 오히려 총성 같은 사운드는 쉽게 작업한다.

할리우드 사운드 슈퍼바이저들은 소리를 빵빵하게 잘 만드는 것은 관심 밖이다.

영화에 거슬리지 않게, 누를 끼치지 않는 사운드를 만드는 것에 더 집중한다.

당연히 후자가 훨씬 어렵다.


“도대체 소리로 뭘 했다는 건데?”


어떤 영화를 보다보면 사운드 작업으로 도대체 뭘 한 것인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그런 영화일수록 사운드에서 정말 많은 작업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영화는 관객들이 진짜처럼 느끼게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화면이 커지고, 화질이 좋아진 것은 내 눈앞에서 뭔가가 벌어지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기 위한 고민의 산물이다.

사운드 분야도 마찬가지다.

진짜처럼 느껴지게 하려면, 화면에 맞춰 디테일해져야만 한다.

영화의 장르는 상관이 없다.

화면이 커지고 디테일한 장면 눈에 들어오면, 관객은 ‘저기선 왜 소리가 안 나?’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기 마련이다.

그런 소리도 하나하나 채워줘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단순히 주파수가 예쁘고 아름다운 소리가 좋은 영화 사운드가 아니다.

영화의 이야기에 보탬이 되는 사운드가 좋은 사운드다.

그 소리가 잡음일지라도.

그런 걸 잘하는 사운드 디자이너가 라이언 클라이스다.

영화 <세7븐>에서 또 <The Killing Road>에서 아카데미상을 받은 <파이트클럽>과 최근의 <존 말코비치 되기>까지.

아주 작은 소음부터 총소리·폭발음 같은 자극적인 사운드까지 라이언 클라이스는 매우 꼼꼼하게 계산하고 디자인했다.

심지어 폴리 녹음을 할 때 배우가 입은 똑 같은 의상을 폴리 아티스트가 입게 해서 똑 같은 자세와 움직임을 취하게 한 후에 소리를 담아내기까지 했다.

<Remo : The Destroyer>는 폴리작업에 1개월, 사운드 소스 전체를 준비하는데 두 달이 조금 넘게 소요됐다.

그 후에 프리믹싱에만 1개월 공을 들였다.

영화에 등장하는 20여 종의 총기류를 일일이 구분해서 사격장은 물론이고 영화 속 배경과 유사한 곳에서 수천 발을 쏴서 소리를 채집했다.

탱크의 캐터필러와 포탄을 발사하는 사운드까지도 라이브러리에 있는 걸 쓰지 않았다.

미국 육군의 도움을 받아 실제 포사격 사운드를 채집했다.

그렇게 모아진 다양한 사운드 소스들로 Doldy 디지털 서라운드 6.1채널 사운드가 만들어졌다.

다이내믹함을 강조한 류지호의 콘티와 역동적인 카메라 워킹이 특기인 레이먼드 쿤디의 촬영법에 어울리는 사운드를 디자인하기 위해 라이언 클라이스는 꽤나 고심했다.

믹싱을 하는 입장에서 <Remo : The Destroyer>의 편집은 커트를 현란하게 이어붙이지 않았음에도 꽤나 역동적이었다.

연출과 동적인 카메라 워킹 때문이다.

그로 인해 센터, 좌, 우, 좌측 서라운드, 우측 서라운드, 백서라운드, 서브우퍼 등 7개 채널에서 정신없이 쏟아져 나오는 리얼한 사운드의 화려한 음향 연출이 가능했다.


“오!“


임원들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탄성이 새어 나왔다.

보여줄 때는 화끈하게, 또 서사까지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담겼다.


하하하.


때때로 웃음소리도 들렸다.


“제법 그럴 듯 하잖아!”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벌린 채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임원도 있었다.

주로 CG가 들어간 장면들에서 그런 반응이 나왔다.

<매트릭스>가 보여주었던 폴리모션 기법 같은 충격을 선사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와이어액션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파쿠르 시퀀스가 시원하게 펼쳐졌다.


‘영리하군.’


리뷰를 해주기 위해 참석했기에 맥도웰 교수는 온전히 영화를 즐길 수 없었다.

도움 되는 말을 해주기 위해 꼼꼼하게 장면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았다.

평범한 재능의 감독은 블록버스터에서 화려한 동작과 치열한 사투를 묘사하고 싶어 하고, 영리한 감독은 액션상황에 대처하는 인물의 상황 그 자체에 주목한다.

긴장감을 어떻게 조성하고 그걸 어떻게 유지시킬 수 있는가.

스릴러의 처음과 끝이라고 할 수 있다.

감독 류지호는 액션이 벌어지기 바로 직전과 일을 한 고비 넘긴 후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 것처럼 보였다.

그럼으로써 인물의 서사를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보였다.

맥도웰 교수 정도 되면 편집본만 보고도 촬영소스가 어땠는지 대강은 유추할 수 있다.

<Remo : The Destroyer>에서는 카체이스 시퀀스나 인물의 움직임에서 곧잘 카메라와 불일치 시켰다.

카메라 무빙과 인물이 함께 움직이면 오히려 속도감만 떨어뜨린다.

액션 시퀀스에서 의도적으로 그런 불일치를 이용함으로써 긴장감을 유지시키거나 증폭시켰다.

화려한 광고 영상처럼 보이지 않도록 교묘하게.

또한 핸드헬드 촬영기법으로 눈만 어지럽히지도 않는다.

전통의 할리우드 액션영화 영상작법과 달랐다.

롱테이크와 안정적인 카메라 무빙으로 인해 어떤 동작을 구사하는지, 어디를 맞고 어디를 때리고 어디를 아파하는지, 클로즈업을 따로 보여주지 않아도 모든 것이 명확하게 화면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되도록 했다.

커트 길이를 능수능란하게 조절해 편집의 묘미도 잘 살렸다.


‘균형감이 있어. 드라마도 잘 다뤘고. 스케일이 크고 리얼한 액션도 잘 담았군.’


류지호의 연출은 교과서적인 액션영화 장르에 충실하면서도 때로는 파격도 선보였다.

영화 속에서 자동차 수십 대가 부서지고, 건물이 무너지는가하면, 수백 명이 죽어 나자빠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꽤나 볼만한 액션영화다.

인물들의 심리를 깊게 파고들지도 않고 플롯 역시 비교적 단순하지만, 인물들이 원하는 것과 처한 상황을 관객이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때로는 별 것 아닌 장면에서 묘한 긴장감까지 만들어냈다.

비밀을 가진 채 레모 윌리엄스와 움직이는 여자 주인공.

그녀와 레모가 대화를 나누는 투 샷이 꽤 재미가 있었다.

어떤 의미심장한 조명이나 분위기 없이, 화면의 사이즈와 앵글만으로 표현 된 장면이다.

진실한 의도는 철저히 숨긴 채 거짓말 하는 여자 주인공은 클로즈업으로 보여주고, 진실한 주인공은 얼굴을 화면에서 넉넉하게 보여줬다.

레모 윌리엄스는 감출 것이 없이 떳떳하고, 여자 주인공은 뭔가를 감추고 있다는 걸 의미심장하게 암시하는 방식이었다.


‘나쁘지 않아.’


별 것 아닌 그런 장면들이 플롯의 혈관을 타고 흘러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주는 것이다.

작가영화니 상업영화니 구분 없이.

영화가 동영상이 아니라 예술이 되는 지점이기도 하고.

러닝타임 132분.

최근 추세를 봤을 때 블록버스터 러닝타임으로는 그리 긴 시간은 아니다.

물론 영화가 재미없다면 끔찍하게 긴 시간이 되겠지만.


짝짝짝.


영화의 본편이 끝나자, 임원들의 박수가 터졌다.

고개를 끄덕이는 임원도 있었고, 손으로 턱을 쓸며 생각에 잠긴 임원도 있었다.

대체로 임원들의 표정은 밝았다.

류지호가 개운한 표정으로 기지개를 켜고 스크린 앞으로 나갔다.


“볼만 하던가요?”


모리스 메타보이 회장이 대뜸 물었다.


“자네는 미국을 싫어하나?”

“아니요.”


맥도웰 교수가 물었다.


“하필 보스니아라니.... 너무 노골적이지 않나?”

“교수님이 영화를 잘 아시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닐까요?”

“냉전이 끝난 현재에 와서 스파이가 무얼 해야 할지 심각한 질문을 해보게 되는군.”

“누군가는 가장 최근에 벌어졌던 비극에 대해 말을 꺼내야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어쨌든 저쨌든.... 할리우드가 추구하는 전형적인 낙천주의야.”

“매표구에 아부 좀 했어요.”

“한국배우의 그 무술동작은 뭔가?”

“무술은 아니에요. 한국의 전통춤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거죠. 그저 캐릭터에 따라 넣었을 뿐인 장면에 관객들과 평론가들이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어. 의외로 간단해.”


류지호가 의아한 시선으로 맥도웰 교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영화 연출이 뭐 별건가?”

“아직은 디테일이 부족한 것 같아요. 뜻대로 상상력을 구현시키는 부분이 약간 서툴렀던 것 같기도 하고.”

“그 약간이 전부야. 그 약간을 만들어내는 게 영화 디테일의 모든 것이야. 사전에 미리 준비되어 있는 그림을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연속적으로 펼치면 그게 바로 아름답게 보이는 거라네. 마치 무용과 같은 거지.”

“무용이라...”

“자네는 액션시퀀스에서 좀 더 즉흥적으로 흐름을 만들어냈어. 그건 직관과 준비의 다름이지, 틀린 것은 아니야. 옳은 방식, 그른 방식이 아니라는 거지. 미리 준비된 그림을 펼쳐서 인위적인 흐름을 만드는 게 아니라, 보다 현장중심에 맞춰 그 현장감에 맞춰 연출한 거지. 그것은 그것대로 대단한 거라네.”

“과도한 해석은 실력이 아니라 포장 같아요.”

“예술가는 모두 감성 외에 직관력이 있지.”


툭툭.


맥도웰 교수가 류지호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거리고 말을 이었다.


“상황에 맞는 특별한 기술들이 있다는 걸 자네도 알잖은가. 거장이라거나 앞서 간 선배들에게는 그들만의 무언가가 있지. 하지만 그것도 결국 거창한 겉치레에 불과하네. 자네는 자네의 길을 가면 되는 거야. 자기 스타일의 핵심을 끊임없이 고민해야겠지. 자네는 굉장한 스타일리스트일거라고 생각했어. 죽었다 깨어나지 않는 이상 바뀌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네.”

“영화 한 두 편으로 스타일이 되는 건 아니죠.”

“더 이상 증명할 필요는 없어. 앞으로 자네는 자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스타일대로 영화를 찍으면 되는 거야. 자네는 좀 더 자신을 믿어보게. 자네는 충분히 재능이 있으니까.”


류지호는 내심 쓴웃음을 지었다.

30년을 영화판에서 굴러먹고도 변두리에서 겨우 삼류 노릇이나 했던 자신이다.

재능이 있을 리가.

노력도 재능이라면 모르겠지만.

모리스 메타보이 회장이 임원들을 향해 물었다.


“따로 디렉터에게 할 말 있나?”

“러닝타임도 적당하고, 여기서 더 뭔가를 해볼 수 있는 것도 없어 보입니다.”

“이대로 모니터링 시사로 넘어가죠?”

“프리미어 날짜 확정해도 되겠습니다.”

“적어도 박스오피스 폭탄은 터트리지 않을 것 같군. 안 그런가?”


모리스 메타보이 회장의 확신에 임원들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LA에서는 3주 전, 뉴욕에서 2주 전에 프리미어를 여는 걸로 하지.”


보통 영화의 완성도가 낮을 때, 시사회가 개봉날에 임박해서 열린다.

영화에 대한 사전정보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3주 전이라면 입소문을 기대해 볼만한 적당한 시간이다.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재편집을 요구했을 사람들이다.

다행히 그런 말은 나오지 않았다.


“때를 놓치긴 했지만, 식사 하면서 깊은 이야기 나눠 봅시다.”


UCLA에 다니는 동안 이전 삶에서 본 영화들을 다시 한 번 봤다.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새롭게 알아갔다.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좋은 시퀀스들과 커트에는 숨겨진 의도와 의미가 있다.

감독의 은유와 미장센을 새기며 연신 탄성을 토하기도 했다.

완벽한 통제 하에 만들어진 처절한 아름다움들.

날것처럼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들.

거장들의 영화는 달랐다.

어떤 장면에서는 소품 하나 또 배우의 작은 손짓까지 모두 계산되어 있었고, 완벽하게 감독의 통제 하에 장면이 만들어졌다.

또 다른 어떤 장면에서는 감독과 카메라는 그저 인물을 담담히 담기만 해서 어떤 감정에도 감독은 개입하지 않고 내버려 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장면을 떼어놓고 보면 각자 독립적인 것 같지만, 어떨 때는 통제하고 어떨 때는 직관적으로 방임하고.

현대에 와서 영화는 그렇게 복잡한 것이 되었다.

일류와 삼류 감독의 연출력을 비교하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영화에서 중요한 분기점에 나오는 대화씬 하나 뚝 떼어서 비교해보면 된다.

간단해 보이는 대화씬에서 일류와 삼류의 디테일 차이가 크다는 것을 단번에 볼 수 있다.

류지호는 거장이 된다는 것에 확신이 없었다.

천재적인 재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엔 다르다.

천재의 직관은 없지만, 지식과 정보가 있다.

이전 삶의 기억이라는.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영화를 보고, 더 많은 이론과 현장을 경험했다.

성공한 영화들을 꿰고 있는 것을 넘어 왜 성공했는지도 대강 알고 있다.

불안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정보들을 내 것으로 가공해 훌륭한 작품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에.

다만 지금의 류지호는 과거의 그가 아니라는 사실.

거장이 되지 못하면 대수일까.

누가 뭐라고 하든, 어떻게 평가를 받든.

류지호는 영화를 한다는 것이 미치도록 재밌었다.

삶이 윤택해져서는 아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 삶에서 역시 충분히 영화를 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경제적으로 힘들고 일상이 비참해서 그렇지.

그 즐거움을 잊으며 살았을 뿐이었다.


작가의말

편안한 주말 보내십시오.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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