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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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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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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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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2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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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3)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전주 한옥마을.

본격적으로 관광지로 조성되고 있지만, 아직은 볼 것이 많진 않은 동네다.

그럼에도 몇몇 한정식집들이 이름을 떨치고 있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한옥 고택에 건장한 남자들이 서성거리고 있다.

류지호 가족과 파커 가족의 경호팀이다.

두 가족이 저녁을 먹고 있는 한옥은 몇 년 후 미슐랭 가이드에도 소개되는 유명한 한정식집이다.

30가지 넘는 산해진미가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푸짐하게 나오는데, 가격은 또 부담이 없어 몇 년 후부터 전국적인 유명세를 떨치게 된다.


“와우! 와우!”


레오나는 계속해서 이 말만 반복했다.


“오 마이....! 와우!”


레오나 앞에 매운갈비찜이 놓여있다.


“힝. 나 울어?”

“하하. 매우면 포기하도록 해.”


맵다고 난리를 치는 레오나를 위해 류지호가 계란찜 뚝배기를 끌어다 놓아주었다.


“아오~ 저 여우....”


류아라가 작은 오빠 류순호에게 바짝 붙었다.

일행이 듣지 못하도록 귀에 대고 속삭였다.


“레오 쟤 매운 거 엄청 잘 먹거든.”

“여기 갈비찜은 나도 꽤 매운데?”

“아니야.”

“형 빼고 다들 땀 흘리는 거 안 보여?”

“레오가 한국에 올 때 마다 내가 유명한 매운 음식점은 다 데리고 다니면서 훈련을 시켜놨어. 아마 내 친구들보다 레오가 매운 걸 더 잘 먹을 걸.”


그때 다시 한 번 레오나의 감탄인지 신음인지 모를 음성이 들렸다.


“와우!”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그 유명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은 아니지만, 레오나의 모습은 주변의 손님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무리하지 말고, 이제 그만 먹어.”


류지호가 계속해서 물이며 탄산음료며 살뜰하게 챙겼다.


“아니야! 매운데 맛있어.”


사실 외국인이 끼어있는 것을 보고 주방에서는 평소보다 매움의 강도를 약하게 했다.

그런데 매운 음식이 대유행하는 시기가 아니다.

따라서 매움 단계라는 것이 없었다.

순전히 주방장의 감의 의해서 그때그때 매운 강도가 다 달랐다.


“하아.“


레오나가 땀을 뻘뻘 흘리며 얼굴에 열심히 손부채를 부쳤다.

류지호가 티슈며 손수건이며 분주하게 건넸다.

다시 한 번 류아라가 류순호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작은 오빠...?”

“응?”

“우리 레오 말이야. 아무래도 큰오빠를 좋아하는 것 같지?”

“니들이 어릴 때부터 좀 유난스러웠냐?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형한테 더 관심받고 싶어 질투 하냐? 철 좀 들어.”

“그 말이 아니라. 아유 답답하네. 봐봐 저거 여우짓이잖아. 여자가 남자를 좋아할 때 막.....”


류순호의 눈에는 어릴 때부터 지겹게 봐 오던 오누이의 모습일 뿐이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류지호를 따랐던 레오나다.

낯을 조금 가리는 편이었음에도.

류아라와 함께 경쟁적으로 류지호에게 관심을 받으려고 유난스럽게 굴 곤 했다.

그런 여동생들을 류지호가 살뜰하게 챙겨주었고.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


반면에 엄마인 캐서린의 속은 복잡했다.

레오나는 지금까지 또래 남학생들에게 무수한 대시를 받았다.

그런데 한 번도 남자친구를 제대로 사귄 적이 없었다.

조숙한 여자아이들은 또래 남자아이들에게 매력을 못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것도 아니었다.

사춘기를 겪은 후로는 짝사랑의 태가 너무 노골적으로 나기 시작했다.

워커홀릭 아빠는 그 같은 딸의 섬세한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엄마인 캐서린은 모를 수가 없었다.

게다가 다른 가족의 근황에는 관심이 없어도 유독 류지호의 근황만은 관심이 많았다.

어쩌다 류지호가 전화를 걸어오기라도 하면 엄마로서 질투가 다 날 지경이었다.

너무 즐겁고 행복해 보여서.

IVY 대학에 충분히 입학할 수 있다.

굳이 서부의 대학에 목을 맬 이유는 없었다.

서부의 대학에 입학한다고 해서 류지호와 자주 만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음에도.


‘만약 두 사람이 정식으로 사귀게 된다면 나는 엄마로서 어떻게야 할까....?’


류지호는 가족의 은인이다.

사실상 가족이나 마찬가지다.

아들처럼 여기고 있기도 하고.

그레이엄 핏줄로 봤을 때 모든 면에서 레오나의 짝으로 차고도 넘친다.

외국인이라는 것만 빼고는 완벽한 남자다.

다만 엄마로서 류지호의 직업이 걸렸다.

사생활이 보호 받기 어려운 직업.

도를 넘어서는 대중의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삶.

외도와 일탈이 일상인 할리우드가 직장이라는 점.


‘게다가 지독한 워커홀릭이란 것까지.....’


캐서린은 남편인 제임스를 사랑한다.

하지만 그를 학교가 아닌 사회에서 만났다면, 청혼을 받아들이는 것에 심각하게 고민했을지도 몰랐다.

제임스 파커라는 남자의 지독한 워커홀릭 성향 때문에.


‘그렇다고 해서 결혼을 하지 않을 핑계로 부족하지만.’


누구나 딸 가진 엄마라면 분명 탐나는 청년이다.

억만장자라거나 유명인사라서 아니다.

모범적인 인성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자상하고 착하다.

무엇보다 가족을 끔찍하게 챙긴다.


‘후우....’


캐서린의 번민이 사라지려면 둘이 애정 관계로 발전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자신이 뭔가를 할 순 없다.

해서도 안 되고.

그레이엄은 몰라도 파커는 절대 용납하지 않을 테니까.

둘이 금단의 사랑을 하는 것도 아니고.


‘차라리 둘이 잘되면 딸과 아들을 모두 지키는 것일 수도......’


캐서린은 복잡한 상념을 털어버리려는 듯 동동주를 단숨에 비웠다.

혼자 생각이 많은 캐서린을 제외하고 모두가 즐거운 저녁식사 자리였다.

남은 휴가 일정 동안은 두 가족 모두 놀러 다니는 것은 자제했다.

류지호가 가족들과 휴가를 즐기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레오나도 창덕궁 가봤지?”

“응.”

“창덕궁이란 곳에 가면 인정전이라고 있어. 조선시대 그곳에서 왕이 신하들로부터 조회를 받거나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역할을 했지.”

“백악관 2층에 이스트룸 같은 역할을 하는 건가?”

“국빈만찬을 해야 할 경우는 따로 장소가 있었지.”


원래 류지호가 여동생과 다니면 오른쪽은 류아라가 왼쪽은 레오나의 차지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류아라가 은근슬쩍 곁을 양보하는 모양새다.


“암튼 그 인정전 앞에 놓여 있는 드무라고 부르는 커다란 솥을 똑같이 재현해 놓은 거야.”


호텔 로비에 떡하니 놓여 있는 커다란 솥을 가리키며 류지호가 열심히 설명했다.

조선시대 궁궐에는 궁궐 마당 앞이나 건물 귀퉁이에 물을 담은 커다란 솥 '드무'를 만들어 놓았다.

불길을 급히 잡기 위해 방화수로 사용하기도 했다.


“일종의 소화전 같은 거네?”

“평상시에 드무에 물을 가득 채워 놓으며 궁궐에 침입한 불귀신이 드무에 담긴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도망칠 거라고 생각했대.”


별로 웃긴 이야기도 아닌데 레오나가 까르르 웃었다.

류아라가 드무를 발로 툭툭 건드렸다.

왠지 심술이 났다.


‘나중에 태어날 아이들하고 하려고 아껴 둔 건데....’


류지호는 외부 활동을 자제하며 전주호텔을 리모델링하며 곳곳에 숨겨둔 한국 궁궐의 전통장식을 찾는 놀이를 했다.


❉ ❉ ❉


설 연휴를 앞두고 <Remo : The Destroyer>의 한국에서 개봉했다.

반응은 예상과 조금 달랐다.

의외로 한국인 캐릭터 치운에 대한 호불호가 갈렸다.

한국인 감독임에도 한국인을 왜곡했다는 반응과 할리우드 영화에서 정확한 한국어를 들을 수 있는 것에 대한 반가움이 교차했다.


- 영화 재밌음? 나 원래 액션 영화 별로 안 좋아하는데 주변에서 하도 재있다고 해서 물어봄.

┖ 막 재밌지는 않아요. 전형적인 할리우드 액션영화.

┖ 재밌음. 말이 필요 업슴.

┖ 나도 원래 액션 영화 별로 안 좋아하는데 레모는 진짜 재미있게 봤네요.

┖ 다들 와우 관계자인가?


- 난 별루던데 어떤 면에서 재밌는지 설명 좀.

┖ 그냥 올라운드 영화임. 화끈한 것도 있고, 웃긴 것도 있고, 추리적인 요소도 있고, CG 영상미도 있고, 음악도 좋고....


- 또 뻔한 아리랑 나옴 뭐만 하면 아리랑...

┖ 아리랑도 나오긴 하는데 그것보다 사물놀이 꽹과리 소리도 들리고, 국악하고 클래식하고 섞은 음악도 나오고. 음악을 <타이타닉> 음악감독이 했다고 알고 있어요.

┖ 촬영은 <아폴로13> 감독임. 배우만 스타가 안 나오지 스태프는 죄다 A급임.


- 류지호가 할리우드에서 감독으로 잘 나감?

┖ 당연히 잘나가지 영화신동이라고 불린데잖아.

┖ 제작자 말고 감독으로?

┖ 여태 상 받은 게 몇 갠대 발로 찍었냐고 욕 먹던 대학교 졸업영화도 비디오로 엄청 팔리고 외국에서 재개봉해서 돈 엄청 벌었다고 함. 영화 찍으면 최소한 본전치기 하는 감독임.


- 류지호는 미국에서 저런 영화 찍으면서, 와우 영화는 왜 그 모양?

┖ 레모 제작비 오백억. 겜이 안 됨.

┖ 틀렸어요. 정확하게는 600억이라고 합니다.

┖ 그것도 틀렷삼. 광고홍보비까지 하면 800억이라는 소리가 있음.


- 우리나라도 600억 주면 저 정도로 만들 수 있음? 누가 대답 좀.

┖ 류지호 감독한테 한국에서 그 돈으로 한 번 찍어보라고 해보세요. 되나 안 되나.


- 한국인 사부의 대사는 미친 것 같음. 내 얼굴이 다 화끈거림 아닌 거 같음.

┖ 원작은 더 심함. 류지호 감독이 많이 순화시킨 편.

┖ 원작도 있어요?

┖ 한국에서도 출간했음. 미국에는 만화도 있다고 함.


- 난 레모 다섯 번 봄!!

┖ 솔직히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 않나?

┖ 전 두 번. 세 번은 자신 없음.


큰 흥행을 기록하는 영화는 재관람률이 높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흥행 기록을 세운 영화 <서편제>, <쉬리>, <타이타닉> 등은 평균 재관람율이 10%가 넘었다.

<Remo : The Destroyer>의 재관람률은 5%대를 기록했다.

<쉬리>의 기록은 깨지 못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럼에도 전국 500만 초반에서 마무리될 것 같았다.

가능한 이유가 월등한 스크린 숫자 때문이다.


- 전작에 비해 한국 고증에 신경을 많은 쓴 듯 보인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에 관한 고증에서 엉터리가 여럿 보인다는 지적이 있다.

“한국 관객에게는 죄송한 말이지만, 나는 미국영화를 연출했습니다. 한국인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국가 영화팬을 만족시키려면 진입장벽을 낮출 필요가 있었지요. 한국 고유의 것으로 세계시장에서 당장 최고가 될 순 없습니다. 당장 한류를 이끄는 아이돌 그룹의 음악과 한국 드라마를 보세요. 그것들이 담고 있는 내용은 우리 정서지만, 형식은 서구의 형식과 스타일을 따르고 있지 않습니까?”

- 전작들에서 보여줬던 실험정신이나 영화작가로서의 모습이 희미해졌다. 혹시 상업영화 감독으로 완전히 노선을 정한 것인가?

“감독이 돈맛을 알게 되어 변절했다.... 더 심한 반응이 있다는 것도 압니다. 나는 장르를 다루고 싶을 뿐입니다.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영화라는 대중예술은 상업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숙명입니다. 그런 부분을 한번쯤 생각해주면 좋겠습니다. 기본적으론 관객들이 2시간 동안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고, '화면' 이 흡인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이 영화에서 내가 할 일입니다.”

- 뭔가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그것이 영화에서 도드라져 보이지 않는다. 문제의식을 너무 표피적으로 접근한 것은 아닌가?

“사람들이 내게 사회파 감독이라는 굴레를 씌웠습니다. 난 세계와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지만, 때로는 비극적인 상황을 영화에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가 고민합니다. 이번 영화가 단지 유희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90년대 세계 어디에선가 벌어졌던 비극을 상기시킵니다.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관객이 영화를 재밌게 즐긴 후 그 비극을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다면 나는 성공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대성공인 거죠.”

-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차기작 계획은?

“한국에서 영화를 찍어보자는 제의가 있습니다.”

- 오오. 그럼 한국영화를 연출하는 것인가?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프로젝트인지, 내가 일관되게 고민하는 것과 맞닿아있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 알다시피 충무로는 할리우드에 비해 열악하다. 매우 힘든 도전이 될 것 같다.

“나는 <Remo : The Destroyer>를 연출하기 전에는 저예산영화 혹은 독립영화를 찍는 감독이었습니다. 할리우드든 충무로든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똑같아요. 비록 시스템에서는 큰 차이가 있겠지만, 영화감독이 어디서 영화를 찍든, 영화 작업은 항상 불가능한 임무를 수행하는 언제든지 버려질 수 있는 스파이 신세와 다름없으니까.”

- 꼭 류지호 감독이 한국에서 영화를 작업하는 날이 오길 기대하겠다.

“나 역시 그런 날이 오기를 희망합니다.”


영화잡지 CineFeel.com에 실린 인터뷰 기사 중 일부였다.

인터뷰 말미에 류지호는 분영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사에는 다소 싸가지 없게 보일만한 소지가 다분한 표현으로 나갔다.

인터넷 판은 가온그룹 의장비서실의 정정요구로 바뀌었다.

이미 인쇄되어 나간 종이 잡지는 그대로 나갔다.


“말이라는 게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인데. CineFeel.com에서도 이럴 줄은 몰랐네.”


돈 받고 펜대를 놀리는 사람들의 속성인 것 같다.

사실만 전해도 되는데, 꼭 자신의 해석과 생각을 글에 묻혀야 직성이 풀리는 걸 보니.


❉ ❉ ❉


장장 2주간의 긴 휴가였다.

두 가족은 다음 휴가를 기약하며 아쉬운 작별의 정을 나눴다.

지금까지 즐기지 못한 휴가를 모아서 보낸 파커 가족이 마침내 미국으로 돌아갔다.

레오나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옮기며 연신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야속한 류지호는 공항에 나오지 않았다.

아니다.

나오지 못했다 게 정확하다.

휴가가 끝나자마자 가온그룹의 업무를 챙겨야 했다.


[율산그룹. 한국 경제사에 있어서 가장 드라마틱한 흥망사를 썼던 기업을 꼽으라면 단연 제일 먼저 거론되는 이름이다. 물론 여러 기업들이 화려하게 자신의 시대를 장식했지만, 그 중에서도 율산그룹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천 년을 여는 2월 현재 율산그룹 못지않은 패기의 기업가가 등장했다. 20대 나이, 10여년 만에, 십여 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류지호 의장이 그 주인공이다. 그의 패기는 한국 경제사에서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것이라 할 수 있다. 과연 가온그룹은 70년대 중반 혜성 같이 나타나 재계에서 성공신화를 써내려갔던 율산그룹처럼 대기업으로 올라 설 수 있을까. 아니면 기성재계의 질서와 정치권의 견제를 뚫지 못하고 쓰러지는 비운의 천재가 될 것인가. 율산이 보여준 역발상의 천재적 상상력과 기성세대에 맞서 물러서지 않았던 불굴의 의지는 지금도 인구의 회자되고 있다. 그들의 신화에 드리워진 어둠의 단면도 똑똑히 기억한다. 고속성장에 도사린 자아도취라는 자만심과 젊음과 천재성이라는 이면에는 경험미숙과 위기관리 부족이라는 경륜의 부족함이, 엄청난 부의 이면에는 초심을 잃어버린 탐욕이라는 괴물이 그들의 몰락을 부추겼다는 사실까지도. 앞으로 류지호 의장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본보기며 과제다. 유명한 영화감독이자 기업가인 류지호가 기업가로서 어떤 행보를 보일지 재계를 비롯해 국민들이 주목하고 있다. 가온그룹의 신화가 이제 막 시작된 것인지, 혹은 훗날 율산그룹처럼 추억하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 겨레일보 박동원 칼럼.


건설, 의류, 전자 등 14개의 계열사, 약 8,000명의 종업원.

자본금 500만 원으로 시작해 4년 만에 대기업으로 올라서는 신화의 주역.

바로 짧은 시대를 풍미했던 율산그룹이다.

가온그룹을 두고 언론에서 주로 비교하는 대상이다.

혹자는 율산그룹처럼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란 전망을, 또 다른 누군가는 기성세력의 질시와 견제로 또 다시 젊고 역동적인 그룹이 무너진다면 얼마나 허망하겠냐며 우회적으로 성공신화를 써주길 기대하기도 했다.


- 미국의 JHO를 내버려두고 가온그룹에 유독 신경을 쓰는 것 같다.


언론 인터뷰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자주 듣는 말이다.

남들이 보기에 의아한 모양이다.

가온그룹의 규모는 미국 사업의 20분지 1에 겨우 미칠 정도니까.

마치 서울에서 고급백화점을 운영하는 사업가가 시골 읍내에 구멍가게를 키워보겠다고 애쓰는 꼴이랄까.


‘집 나가서 크게 성공한 장남이 집안을 돌보지 않으면 후레자식이지.’


류지호가 가지고 있는 한국영화에 대한 애증은 생각보다 컸다.

아마 다른 삼류가 과거로 돌아와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한편으로 한국영화계의 불공정함과 모순들을 해결해야한다는 사명감도 조금 있었다.

충무로에서 아등바등하는 위치였다면, 사명감 따위 생각할 겨를이 없었을 테지만.

어쨌든 류지호에게 힘이 생겼다.

영화판 자체를 들었다 놨다 할 수 있을 정도의.

당연히 자신이 정의이고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영화계가 영화인 중심으로 돌아가길 바랐다.

특정 대기업이나 일부 세력이 아니라.

그리고 산업의 성장이란 명목으로 무시되고 외면하던 최소한의 인권과 경제적 보상도 챙기는 생태계를 닦아줄 수 있을 것도 같았고.


‘대기업이 저임금과 노동착취 관행으로 실컷 꿀 빨기 전에 표준계약서나 투명한 회계만큼은 해 놓고. 그런 후에 할리우드에 올인 한다!’


관행이란 표현이 주로 부정적으로 사용되곤 있지만, 본래 의미는 어떤 사회에서 오랜시간 동안 다수가 인정하고 공감대가 형성된 어떤 행위를 가리킨다.

관습과 혼용할 수도 있는데, 관행은 개인적 행위로 국한하는 좁은 개념이다.

즉 관행에는 공공의 질서나 규범 안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일탈 행위를 관행이라고 포장해선 안 되는 것이다.

충무로에는 그 같은 일탈 행위를 관행이라고 포장하는 경우가 매우 많았다.

심지어 명백한 법률위반까지도 관행이란 표현을 가져다 쓰기까지 했다.

심지어 대기업까지 자신들에게 유리하면 충무로 관행을 가져다 썼다.

불리하면 상식과 합법을 찾고.

결국 관행에서 이중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언제나 영화계의 약자들이었다.

류지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수많은 충무로 관행을 없앴고 지금도 없애고 있다.

이전 삶과 달리 대기업들은 충무로의 못된 관행에 휘둘리거나 역으로 이용하지 못하게 됐다.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회계의 투명성이 몰라보게 좋아졌습니다.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던 기존의 메이저 제작사들이 마음대로 활개 치기 힘들어졌습니다.”


전략기획2팀장 한종혁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미국은 2년에 한 번씩 영화인 노조와 임금협상을 벌이죠.”

“죄송한 말씀이지만, 2년은 너무 짧습니다. 최소 5년은 되어야....”

“나도 무작정 할리우드 시스템을 충무로에 이식시킬 생각은 없어요. 연착륙이 중요하니까.”

“거기에 시간 외 수당까지 철저하게 따른다면 제작비가 대폭 인상되게 됩니다. 현재 한국영화 시장규모로 감당이 안 됩니다. 속도를 조절하심이.....”


류지호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90년대는 충무로의 커다란 흐름을 바꿨다고 생각합니다. 이젠 디테일에 신경 쓸 때라고 봅니다.”

“아마 단기간에 할리우드처럼 표준화와 분업화된 공정을 만들진 못할 것 같습니다.”

“여주에 가온 스튜디오가 개장하고 그곳에서 원스톱 서비스가 가능해지면 적어도 프로덕션 프로세스에 표준화는 조금 더 앞당겨 지겠죠.”

“예. 감독님.”


류지호의 투명하고 합리적인 시스템을 모두가 반길 것 같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급격한 변화를 싫어하거나 두려워하는 이들도 많았다.

류지호를 향해 충무로를 제 마음대로 주무른다고 욕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나는 말입니다. 막내급 스태프도 영화일 하면서 어디 가서 쪽팔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설 연휴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PS. 루시오엘님, 지구주민님, 다솜광수님 과분한 후원 감사드립니다. 완결까지 성실연재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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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 그 양반들 간이 많이 커졌네. +2 23.01.26 3,986 144 24쪽
404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5) +6 23.01.25 3,954 142 23쪽
403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4) +9 23.01.24 4,014 145 23쪽
»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3) +6 23.01.23 4,019 149 20쪽
401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2) +17 23.01.21 4,143 161 29쪽
400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1) +18 23.01.21 3,890 127 26쪽
399 태풍을 예고하기라도 하듯이.... (2) +12 23.01.20 4,097 149 26쪽
398 태풍을 예고하기라도 하듯이.... (1) +6 23.01.19 4,109 145 23쪽
397 월스트리트 저널 테스트. (3) +14 23.01.18 4,041 146 28쪽
396 월스트리트 저널 테스트. (2) +13 23.01.17 4,046 156 27쪽
395 월스트리트 저널 테스트. (1) +6 23.01.16 4,087 149 24쪽
394 좀 더 자신을 믿어보게. +10 23.01.14 4,091 148 27쪽
393 Surfin USA! (3) +8 23.01.13 3,920 145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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