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새글

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7.03 09:05
연재수 :
899 회
조회수 :
3,828,548
추천수 :
118,687
글자수 :
9,955,036

작성
23.01.17 09:05
조회
4,046
추천
156
글자
27쪽

월스트리트 저널 테스트.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The Dawood Letterman Show.

미국 전역에 방송되는 토크쇼 부분에서 시청률 1~2위를 다투는 인기 지상파 심야 프로그램이다.

이 유명 프로그램에 <Remo : The Destroyer>의 감독 류지호와 남녀 주연배우가 함께 출연했다.


“안녕하세요.”


프로그램의 진행자 다우드 레터맨이 한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레터맨씨."

“캄사합니다.”


진행자의 성의 있는 태도에 류지호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했다.

다우드 레터맨은 류지호가 초대석에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두 개의 한국어를 연습했다.

간혹 미국 토크쇼에서 초대 손님 출신국가 언어로 조크를 던지기도 한다.

다우드 레터맨은 고개까지 숙여가며 예의를 갖추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NBC에서 배우들이 푸대접을 받았다.

그것에 대해 자신과 CBS는 류지호와 <Remo : The Destroyer>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NBC의 태도에 대한 돌려까기를 시전하지 않나 추측했다.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와줘서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다우드 레터맨은 한 달 전 심장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건강한 모습으로 쇼에 복귀를 했다.


짝짝짝.


토크쇼 내내 다우드 레터맨은 다양한 질문을 던졌다.

곧 개봉하는 <Remo : The Destroyer>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누고, 각자 살아온 삶에 대해서도 건드렸다.

윌리 워커는 서핑초보 류지호를 놀려댔다.

간간이 앨리나 와츠가 재미없는 삶을 살고 있는 류지호 놀려먹기에 가세하기도 하기도 했다.

류지호 역시 미국식 농담을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 당신은 항상 덩치가 큰 남자들과 함께 다닌다. 타인과의 교류에 벽을 친다는 지적이 있다.

“나는 어릴 때 말썽꾸러기는 아니었지만 부모님을 크게 실망시켜드린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덩치 큰 사내들은 내가 말썽을 부리지 않게 하는 감시자입니다.”

- 마샬아츠를 배운 것으로 안다. 혹시 당신이 누군가를 때리는 걸 말리기 위해서인가?

“태권도라는 한국의 무술입니다. 남을 해하는 무술이 아닙니다. 내 정신과 육체 모든 면에서 건강하기 위해 수련하고 있습니다. 태권도로 인해 남을 존중하는 법과 예의를 배웠고, 그걸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인종차별을 겪은 적이 많나? 당신 영화에는 그런 뉘앙스를 진하게 풍긴다.

“내가 직접적으로 그런 일을 겪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아니면 내가 쿨하게 넘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미국생활에 만족하는 것 중 하나가 사람들은 자수성가한 사람을 존중해준다는 겁니다.

- 자수성가한 사람 앞에서 행운을 논하지 말라!


짝짝짝.


방청객의 박수가 쏟아졌다.


“가끔 무례하게 구는 사람도 있지만, 그들은 모두에게 무시당하는 사람이고 친구도 별로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내가 나서서 그들의 친구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 캘리포니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던데. 그리고 이곳 뉴욕 사교계에서도 유명하지 않나? 럭키 보이이라는 아주 귀여운 닉네임을 가지고 있다고 알고 있다.

“사람들이 날 알아보는 건 중요치 않습니다. 익명이어도 좋습니다. 하지만 내가 만든 영화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줬으면 좋겠습니다.”

- 익명이라.... 오스카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모습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기 때문에 그 소망은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은데?

“그래서 덩치 큰 남자 대신 아담한 사이즈의 사내들과 함께 다닐 생각입니다.”

- 보이 그룹이라도 결성할 생각?

“아카펠라 팀이 되지 않을까요? 댄스에는 자신이 없어서.”


혹시나 짓궂게 춤 추보라고 할 줄 알고 긴장했다.

그런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 당신의 사생활은 매우 무미건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흔한 파파라치 컷도 재미가 없다. 당신은 도대체 연애는 하고 있는 건가?

“내 첫사랑은 영화였고, 현재 사랑도 영화입니다. 아마 마지막 사랑도 영화일 것 같습니다.”

- 당신의 연인을 이렇게 충격적으로 발표하는 건가? 그녀의 이름은... 무비? 혹은 필름?”

“씨네마.”


하하하.


“다우드가 내 하루 일과를 그대로 따라한다면 내가 시간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알 텐데, 한 번 똑같이 해보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까?”

- 싫다. 난 몽크가 되고 싶지도 태권 마스터가 될 생각도 없다. 난 이 속세의 삶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

“아쉽네요. 내가 10년은 젊게 만들어 줄 수 있었는데....”

- 할리우드에서 가장 부자로 알려져 있다. 재산이 얼마나 되나?

“솔직히 말해 나는 내가 부자인지 모르겠습니다. 한 번도 돈을 본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부자라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건 크레디트에 내 이름이 들어간 영화를 볼 때입니다. 난 전 세계 영화팬이 좋아하는 감독이 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영화를 제작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 도대체 몇 편이나 제작하고 싶기에?

“한국에는 내가 존경하는 프로듀서가 있습니다. 그 분은 지금까지 79편의 영화에서 프로듀서 크레디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 와우 79편? 그 사람은 120살 쯤 되나?

“오래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 혹시 그 프로듀서가 치운은 아니겠지? 백인 쓰레기가 아닌 진정한 인류의 기원인 그 치운의 일족 말이야.

“치운은 내가 창조한 캐릭터가 아닙니다. 원작자에게 물어보시죠.”

- 액션 빼면 볼 게 없다는 혹평이 있는데, 그에 대한 대답을 들려준다면?

“액션영화에서 그걸 빼면 무엇을 보여줘야 하는지 되묻고 싶습니다. <Remo : The Destroyer>를 보러오는 관객들은 2시간 동안 펼쳐지는 액션의 쾌감을 기대하지 않겠습니까? 나와 크루는 관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류지호는 다우드 레터맨의 독설과 블랙유머를 기대했다.

생각보다 독설은 없었다.

류지호와 배우들은 녹화 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토크쇼를 마칠 수 있었다.


❉ ❉ ❉


[이 비참할 정도로 평범한 스파이 소극에서 대책 없어 보이는 것은 주인공 레모 윌리엄스가 아니라 제작진이라고 말하겠다.]

- New York Post.


[영화 속에서 많은 것들이 폭발하지만, 정작 영화 자체는 폭발력이 없다.]

- The Boston Globe.


[원작소설과 코믹북이 1분에 한 번씩 웃음을 자아냈다면 이 영화는 거의 1시간에 한 번 꼴로 웃긴다. 더군다나 나는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도 기억 못하겠다.]

- Los Angeles Times.


[이 영화의 제작진은 원작을 시리즈로 만들었던 풍자적 유머나 재치로 넘치는 짧은 농담 대신에 막대한 제작비와 스턴트만을 스크린에 집어넣었다.]

- Entertainment Weekly.


[다시 한 번 <Remo : The Destroyer>를 대형 스크린으로 불러낸다는 것은 좋지 않은 아이디어처럼 들렸다. 하지만 완성된 영화는 정말 좋은 아이디어였음을 보여준다.]

- The Hollywood Reporter.


[재미있고, 흥분되며 상식을 뒤엎는 동시에 좋은 외양을 가진 이 영화는 ‘제임스 본드’ 시리즈와 같은 수준의 기술적 전문성으로 완성되었다. 분명한 사실은 이 영화가 올 해 나온 영화 가운데 가장 날카로운 유머가 잘 살아있는 영화란 사실이다. 비록 워싱턴 사람들에게는 매우 불편함을 선사하겠지만.]

- Chicago Sun-Times.


[1984년에 야심차게 도전했다 실패한 스파이 영화의 새 버전이 별로 나쁘지 않다는 것이 믿어지는가? 나쁘기는커녕 이 영화는 정말 재미있다.]

- Newsweek.


[영화가 끝날 때쯤이면 관객들은 레모 윌리엄스와 치운 두 사람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될 것이다.]

- The Cincinnati Enquirer.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Remo : The Destroyer> 역시 언론과 비평에서 평가가 엇갈렸다.

그나마 트라이-스텔라가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것은 혹평 일색인 <007 시리즈>에 비해 좋은 평가가 더 많다는 사실이다.

<007 언리미티드>는 개봉 첫 주 3,160개 스크린에서 시작해 박스오피스 1위로 레이스를 시작했다.

반면에 <Remo : The Destroyer>는 첫 주 2,407개 스크린에서 출발해 북미 박스오피스 3위로 레이스를 시작했다.

출발이 좋았던 <007 언리미티드>는 2주차에 박스오피스에서 2위로 떨어졌다.

<Remo : The Destroyer>가 개봉한 주에는 10위에도 들지 못했다.

반면에 첫 주 2,900만 달러 가까운 수입을 거둔 <Remo : The Destroyer>는 2주차에 스크린 숫자를 2,642개로 늘렸다.

<007 언리미티드>가 1,700개 스크린으로 반 토막 난 것의 반사효과를 누린 것은 아니다.

북미 배급경향이 그렇다.

되는 영화는 2주차부터 스크린이 소폭이라도 늘게 되어 있다.

그에 반해 안 되는 영화는 3주차에 스크린 숫자가 절반으로 뚝 떨어진다.

<Remo : The Destroyer>는 <007 언리미티드>처럼 첫 주 4,000만 달러라는 폭발적인 박스오피스를 보여주진 못했다.

다만 꾸준함이 있었다.

<007 언리미티드>가 6주차에 스크린 숫자가 절반으로 빠지고, 박스오피스 순위도 10위권에서 밀려나 매주 순위가 하강했다면, <Remo : The Destroyer>는 6주차까지 스크린이 꾸준히 늘어 2,780개를 찍었다.

단 한 번도 박스오피스 1위를 찍어보진 못했지만, 10위 안에 계속해서 머물렀다.

수십 편이 극장에 걸려 있고, 그 중에는 크리스마스 시즌 특수를 노린 대작들까지 경쟁을 벌이는 레이스에서 두 달 동안 꾸준히 10위 안에 들었다는 것은 관객에게 제대로 먹혔다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1.4억 달러 예산의 <007 언리미티드>는 북미에서 17주간 1.2억 달러의 수익을 거두는데 그쳤다.

다만 해외에서 2.4억 달러를 벌어들임으로써 체면치레를 했다.

<Remo : The Destroyer>는 한 번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지 못했지만, 첫 주 3위에서 시작해 8주간 7~9위 사이를 유지했다.

20주간 북미에서 1.6억 달러의 박스오피스를 기록하고, 해외에서는 1.7억 달러 수익을 거뒀다.

최종 박스 오피스 성적은 <007 언리미티드>가 3.6억 달러, <Remo : The Destroyer>가 3.3억 달러를 기록하게 된다.


“<007> 프랜차이즈와 아놀트 슈발츠네거가 출연한 <엔드 오브 데이즈>에 큰 기대를 걸었다가 실망한 액션영화팬들이 <Remo : The Destroyer>쪽으로 많이 몰렸다.”


트라이-스텔라 자체 분석이었다.


“스타가 출연했다면 해외에서 40퍼센트 수입을 더 거둘 수 있었을 것이다.”


영화 전문 매체에서는 오리엔탈리즘을 배경에 깔고도 흥행에 성공했다면서 뱀파이어와 코믹스 원작을 바탕으로 의외에 성공을 거둔 <블레이드>와 비교분석하는 평론을 내기도 했다.

또한 <007 언리미티드>와 <엔드 오브 데이즈>를 혹평할 때마다 <Remo : The Destroyer>를 언급하며 두 영화를 조롱했다.


“그 두 영화가 그 정도로 까일 영화가 아닌데. 비평가란 놈들이란....”


비평가가 혹평을 하든 말든, 세 영화는 관객의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다.

참고로 <Remo : The Destroyer>는 1999년 박스오피스에서 3.1억 달러를 기록한 <오스틴 파워>를 재치고 전체 10위에 랭크된다.

그 해 미국에서 개봉한 500여 편의 영화중에서 10위를 차지하게 된다.

영화 흥행이 전부는 아니지만, 류지호 개인적으로는 성공적인 상업영화 데뷔다.

또한 ‘영화신동’이란 세간의 평가를 증명해 보인다.


❉ ❉ ❉


<Remo : The Destroyer> 개봉 전부터 류지호와 배우들은 프로모션을 위해 미국의 여러 도시를 순회했다.

마지막은 뉴욕에서 마무리했다.

오랜만에 뉴욕에 온 김에 시간을 내서 롱아일랜드로 향했다.

해가 지날수록 연로한 걸 숨길 수 없는 윌리엄 파커다.

류지호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영화 홍보로 바쁜 가운데에도 류지호는 파커저택에 찾아와 윌리엄과 시간을 보냈다.


“대니얼로부터 위성방송 사업을 넘겨받기로 했다고?”

“맷이 자신의 몫으로 달라고 했대요. 그걸 대니얼 할아버지가 허락하셨고.”

“후계자로서 앤서니의 지위가 탄탄해졌겠구나.”

“맷의 말로는 그레이엄과 완전히 남남이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핏줄을 끊는다고 끊어지는 것이더냐?”

“제 말이요.”

“올해 M&A를 꽤 크게 벌였어.”

“주식을 처분한 자금을 다시 주식이나 채권에 넣고 싶지 않더라고요.”

“VFX 회사가 노동집약적이라고 하던데, 너무 비싼 돈을 들여 회사들을 사들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구나.”

“고급 인력만 할리우드에서 운용하고 인건비를 많이 잡아먹는 작업은 아시아 지사에 맡기는 형태로 개편하려고요.”

“한국에서 빅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라고?”

“뭘 하려고 하냐면요.....”


류지호는 몇 년 전부터 구상하고 있는 한국에서의 프로젝트에 대해 소상히 설명했다.

윌리엄 파커의 태도는 사업계획을 듣는 기업가가 아니었다.

손자의 자랑을 듣는 자애로운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그러니 문제점을 지적하기 보다는 류지호의 자랑이 끊이지 않고 이어질도록 추임새만 열심히 넣었다.

류지호는 파커저택에서 지내며 지역 매스컴에 출연해 열심히 영화를 홍보했다.

류지호가 영화 프로모션 행사를 도는 사이 JHO Company는 뉴욕주 화이트 플레인즈(White Plains) 소재의 VFX 업체의 지분 매입을 완료했다.

완전한 인수합병은 아니었다.

20세기 PARKs 지분 59%를 취득해 대주주가 됐다.

대상은 Azuresky Entertainment란 회사다.

원래 계획은 Hues & Rhythm Studios 자회사로 만드는 것이었다.

백퍼센트 지분을 확보하기 전까지 독립된 회사로 운영하기로 했다.

또한 캘리포니아의 어바인으로 이주하려던 계획도 철회했다.

대신 30% 세금혜택을 받는 조건으로 화이트 플레인즈에 남아있기로 했다.

Azuresky를 이끌고 있는 사이러스 웨지가 3D 애니메이션 영화를 제안했는데, 개발을 승인했다.

바로 <아이스 에이지>다.

업계에서는 빅 세븐의 일원이 된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가 애니메이션 사업까지 진출하게 됨으로써 제대로 구색을 갖춘 것으로 분석했다.

원래 역사대로 흘러간다면 의미심장한 행보라고 할 수 있다.

PIXART, DreamFactory에 이은 세 번째 성공적인 애니메이션 전문 스튜디오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였으니까.


✻ ✻ ✻


류지호가 워낙 바쁜 일정을 소화한 탓에 제임스 가족과 따로 자리를 갖지 못했다.

겨우 시간을 내서 저녁식사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식사자리의 주된 화제는 레오나의 대학진학이었다.


“레오나를 높게 평가해주는 건 고마운데, 아이비리그에 입학하는 것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야.”


캐서린은 낙관보다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견지했다.


“미국의 고등학교 수가 얼마인 줄 알아?”

“1만 개 정도 되지 않을까요?”

“정확하게 18,435개.”


별 걸 다 알고 있다.

대학입학을 앞 둔 자녀를 두고 있는 부모라면 그럴 수도 있겠거니.

류지호 본인이라고 다를까.

대입을 준비하는 자녀가 생기면 더 하면 더했지 덜 할 가능성은 낮았다.


“그런데 아이비리그 대학의 각 합격자 수를 다 더하면 18,268명이야. 만약에 전 미국의 각 고등학교 전교 일등 한 명씩만 아이비리그 대학에 골고루 분배된다고 가정한다면, 그들 모두가 합격할 수 없다는 뜻이 돼. 얼마나 어려운지 감이 좀 잡히지?”

“레오나는 성적도 우수하고, 각종 스펙도 뛰어난 걸로 알고 있어요.”

“호호. 학교 성적이 All A이고 SAT가 만점에 가깝다고 아이비리그 합격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야.”

“까다롭다는 것은 저도 알아요. 암튼 캐서린은 레오나가 서부의 대학에 입학해도 상관없다는 거죠?”

“캘리포니아에 파커 사람들도 많이 살고 있고, LA에는 든든한 오빠가 있잖아.”

“레오나가 스탠퍼드에 입학하게 되면 제가 잘 챙길게요.”


사실 류지호가 확인한 레오나의 성적과 방과 후 활동은 한마디로 사기였다.

학교 성적은 뉴욕주 전체 상위 3% 안에 들어갈 정도에다가, SAT 성적도 최상위 그룹에 속했다.

방과 후 활동으로 육상을 했으며, 피아노와 플롯 연주, 미술 등 화려한 수상경력은 기본이고 각종 클럽 활동과 틈틈이 해외에서 봉사활동까지 했다.

그것도 파커와 그레이엄 가문과 전혀 상관없는 봉사단체에서.

에세이도 꽤 잘 썼다.

스펙 빵빵하지 가문 좋지 미인(?)이지.

제아무리 최상위권 명문대학이라고 하더라도 불합격하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류지호로서는 UCLA 학부만 경험해 본 것이 다였지만, 미국 대학은 입학보다 그 후가 더 어렵다.

그럼에도 레오나라면 잘 적응할 것 같았다.


‘똑순이도 이런 똑순이가 없으니까.’


류지호 앞에서야 어리고 착한 동생이지 학교와 외부활동에서는 매우 활달한 성격이다.

누가 그레이엄 가문의 피가 섞이지 않았다고 할까 싶게 성격도 제 엄마 판박이다.

자신의 편에게는 한없이 자상하고 살갑다.

적이거나 관계없는 사람에게는 냉혹했다.


‘레오나가 엄마 성격을 닮는 건 별로인데....’


반면에 아빠 제임스 파커는 진정한 신사라고 불릴 만 한 인품이다.


“지주회사 개편은 모두 완료된 거야?”

“후우.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어요.”

“3개월이면 짧은 거야.”

“기업을 인수할 당시에 지분을 최대한 확보한 것이 주효했던 것 같아요.”


제임스가 감회가 새롭다는 듯 말했다.


“웨딩비디오 사업을 해보겠다고 뉴욕을 방문한지가 며칠 전인 것 같은데, 어느새 기업을 서른 개 이상 거느린 대기업의 오너가 되었구나.”


캐서린이 말을 받았다.


“내가 뭐랬어? 지호는 대단한 남자가 될 거라고 했지?”

“난 캐서린의 의견을 부정하지 않았다고.”

“믿었다면 일찍부터 대규모 투자를 했을 걸? 안 그래?”

“오해야. 내가 하고 싶어도 저 녀석이 그걸 거부했다고. 안 그러니?"

"두 분이 잊고 있는 사실이 있어요.“


캐서린이 대뜸 물었다.


“뭔데?”

“제가 지난 10여 년 간 G&P에게 20억 달러 이상 수익을 안겨줬다는 거요.”

“그 정도로 할 일을 다 했다는 거야?"

“지금까지는 이자를 지불한 거고요. 앞으로 원금을 갚을 게요.”

“...음. 그 말은 듣기에 따라서 불쾌한 말인 걸?”

“파커가 제게 베푼 은혜를 돈으로 따질 수 없지만, 죽을 때까지 갚아야한다고 생각해요.”

“은혜는 네가 우리에게 베풀었지. 레오나를 구했으니까.”

“그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했잖아요. 별 것도 아닌 걸....”

“그 행동이 어떻게 별 것 아닌 거니?”

“알았어요. 그렇다고 쳐요.”


류지호는 추억팔이가 길어질까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그레이엄은 위성통신사업으로 진출하기로 완전히 굳혔어요?”

“그 분야는 현재 포화상태야. 민간 위성사업과 연계해서 결국에는 우주선까지 내다보고 있지.”

“우주선이라고요? 대니얼 할아버지가요?”

“아버지의 꿈이 우주로 나가는 거였거든.”


류지호가 아는 대니얼 그레이엄은 지나칠 정도로 완벽한 현실주의자다.

본인 생전에 이익으로 돌아오지 않을 우주산업에 투자한다는 것이 납득이 가질 않았다.


“앤서니는 항공우주산업에 크게 관심이 없지만.”

“그레이엄 가문의 기업 중에 우주항공 회사도 있었어요?”

“민수용 헬기와 경비행기를 만드는 회사를 가지고 있긴 해.”

“우주선은 차원이 다른 분야일 텐데....”

“아버지는 자신이 평생 번 돈을 다 날리고 하느님의 나라로 가고 싶은 가봐.”

“그 연세에 여전히 꿈을 꾸시고, 도전을 한다는 게 멋지네요.”

“절대 무모함이란 걸 모르고 사셨는데, 우리 모두 의외라고 생각하고 있어.”


제임스 파커가 입을 열었다.


“한국 기업들도 정리가 끝났고?”

“래리가 정식으로 회장에 취임해서 본격적으로 그룹을 챙기기 시작했어요.”

“상장은?”

“한동안은 지금 체제로 운영하려고요.”

“실리콘밸리에서 완전히 발을 뺄 생각이야?”

“그런 건 아니고.... 당분간 엔터테인먼트 사업 쪽으로 집중하려고요.”

“DM으로부터 위성사업 부문 지분을 모두 넘겨받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릴 거라던데?”

“위성방송이 완전히 계열사로 편입하는 것은 내년 2월에 가능하지 싶어요.”

“네가 부동산개발사업을 한다고 해서 얼마나 뜬금이 없던지.”

“하하. JHO도 대규모기업집단이 되었기에 번듯한 본사도 필요하고, 빅 세븐에 어울리는 스튜디오도 있어야 할 것 같고, 계열사 캠퍼스도 마련해 줄 필요도 있고. 뭐 그러는 게 좋을 것 같더라고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 기사에서 보니까 네가 손에 쥘 현금이 200억 달러에 이를 거라고 하던데?”

“워낙 주식물량이 커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어쨌든 네가 그 가운데 수억 달러를 나스닥 투자가 아니라 개발사업에 투자를 한다고 하니 캘리포니아 실물경제에 활력이 좀 될 수도 있겠어.”

“겨우 10억 달러가지고 마른 땅에 소나기 정도나 뿌리는 거겠죠.”

“GMG Lab은 어바인에 그대로 둘 거야? 확장할 계획은 없어?”

“혹시 매물로 나온 연구소가 있어요?”

“아이오와는 어때?”

“디모인에요?”

“주지사와 시장이 IT기업이나 첨단정보기술 기업을 유치하고 싶어 해. 세제혜택도 다른 주와 비교해 그렇게 나쁜 편도 아니고.”

“가문으로 로비가 들어왔어요?”

“주지사가 뉴욕에 방문했을 때 식사자리에서 슬쩍 운을 떼더라.”

“비서실에 검토해보라고 할게요.”


사실 텍사스주, 애리조나주에서도 JHO Company의 투자를 기대하며 달콤한 제안들을 해오고 있다.

특히 텍사스주와 앨링턴 시장은 Se7ven Flags 본사가 류지호가 개발하려는 Playa Vista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은 아닌지 민감하게 지켜보고 있다.


“내년에 한국에서 영화를 찍을 예정이라고?”

“예.”


어른들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레오나가 끼어들었다.


“어? 얼마나 머무는데?”

“글쎄.... 길어진다면 일 년.”


레오나가 깜짝 놀라 외쳤다.


“일 년씩이나!”

“내가 벨에어를 비우더라도, 순호가 레오나를 돌봐줄 거야. 안심해.”

“힝~”


레오나가 애꿎은 스테이크 조각을 포크로 푹푹 찔러댔다.


“한국에서 영화를 일 년이나 찍는단 말이야?”

“한국의 내 소유 영화사에서 한국 스태프들과 한국말로 한국 땅에서 만드는 거라서.”

“할리우드 감독이 왜 한국영화를 찍는데?”

“내 고향이 한국이니까, 모국에서도 영화를 찍어야지.”

“내가 한국에 가도 바빠서 못 만나겠네?”

“레오나가 한국에 오면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내야겠지?”

“진짜?”

“스탠퍼드에 입학하면 가을학기 등록이니까, 오리엔테이션 기간 전까지 한국에서 지내도 되고.”

“진짜! 진짜! 진짜?”

“대신 제임스와 캐서린이 허락했을 경우에만.”


레오나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제임스와 캐서린을 번갈아 쳐다봤다.

캐서린이 딸의 시선을 무시하고 류지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언제 한국으로 떠날 거야?”

“1월 말에 배우들과 출국해요.”

“배우들과?”

“<Remo : The Destroyer>가 한국에서는 1월 말에 개봉하거든요. 2월 초에 한국의 최대 명절이 있어서 한 달 늦게 개봉해요. 개봉 첫날 배우들과 레드카펫 이벤트를 하기로 했어요.”

“Jay는 한국에 남고, 배우들만 돌아오는 일정이야?”

“아마 4월 말에 잠깐 LA로 돌아오긴 할 것 같아요. 5월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겠지만.”

“4월에?”

“5월에 아시아 최대 규모의 멀티플렉스를 개관하는데, 상영작 중 한 편이 톰 메이포더 영화에요. 영화 홍보를 겸해서 멀티플렉스 개관 이벤트에 함께 참석할 예정이죠.”

“한국에 들어가는 게 단순히 영화만 찍기 위해서가 아니구나?”

“그렇죠 뭐. 한국에도 벌여놓은 것들이 많은데, 그간 통 신경을 쓰지 못해서 전반적인 걸 챙겨봐야 할 것 같아요.”


특히 직접 영화를 한 편 해보면서 현재 충무로 상황을 경험해볼 작정이다.

얼마나 달라졌는지, 혹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보고서와 전언만으로는 바닥까지 샅샅이 알 수 없었다.

때문에 직접 영화를 찍어보며 부딪쳐 볼 생각이다.

그래서 선택한 영화가 사극이다.

겸사겸사 여주 촬영스튜디오에 야외 세트장에 조선시대 세트도 만들 생각이고.

그 외에도 다양한 목적이 있는 한국 영화 데뷔다.


“잘 생각했어.”


제임스 파커가 칭찬부터 했다.


“그간 한국을 너무 오래 비웠어. 이번에 고향으로 돌아가면 인적 네트워크를 점검해보도록 해. 넌 한국의 정치인과 제계 사람들과 너무 교류가 없었잖아. 그들 모두를 적으로 돌리지 않으려면 인맥을 쌓아놓는 것이 좋아. 세상에 독불장군은 없는 법이야. 자칫 네 조국에서 이방인 취급 받을 수도 있어.”

“노력해 볼게요.”


캐서린이 물었다.


“한국의 스키리조트를 인수했다고 하지 않았어?”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를 개최했던 무주라는 곳이에요.”


캐서린이 남편 제임스를 향해 물었다.


“우리 가족의 휴가를 한국에서 보내면 어때?”

“휴가를 Jay의 리조트에서 보내자?”

“레오나가 서부의 대학에 입학할지 동부에 남아있을지 알 수 없지만, 1월에 한국에서 한 달 간 휴가를 보내고 와. 영숙과 민상을 본지도 오래되었고.”


벌떡.


레오나가 별안간 양 팔을 하늘 높이 들어 올리며 만세 자세를 취했다.


“그것도 좋네요. 파커 패밀리가 방문해 준다면, 스키는 원 없이 타게 해드릴게요.”

“...음.”


고민스러운 표정을 짓는 제임스를 향해 캐서린이 쏘아붙였다.


“뭐가 음이야!”

“한 달 간 자리를 비울 수는....”

“허니, 작년에도 휴가를 5일 밖에 쓰지 않았어. 레오나가 대학 기숙사에서 지내면 무려 반년 동안 이별해야 하는데, 한 달의 시간이 뭐가 길다고!”

“예일이나 프린스턴에 입학하면 매주 볼 수 있어.”


레오나가 냉큼 반박했다.


“나 스탠퍼드 가고 싶어요. 아빠.”


캐서린이 쐐기를 박았다.


“Jay도 한국으로 쉬러 간다잖아.”

“저는 쉬러가는 게 아니라....”


흘겨보는 캐서린과 눈이 마주친 류지호가 말을 바꿨다.


“네... 재충전하러 갑니다. 하하.”

“워커 홀릭 두 남자는 지금부터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 일정은 나와 레오나가 짤 거니까.”


캐서린이 무섭게 째려보자 제임스와 류지호가 동시에 입을 꾹 다물었다.


“레오나, 내일 엄마와 쇼핑 가자.”

“쇼핑?”

“스키복도 사고, 슈즈, 장갑에.... 스키도 새로 구입해야지.”


그렇게 파커 가족의 한국 여행이 결정되었다.

워커홀릭 두 남자는 저녁식사 내내 입도 뻥긋거릴 수 없었다.

모녀의 태도가 워낙에 강경하겠기에.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Mr. 할리우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22 Quantum Jump! +5 23.02.15 3,733 134 21쪽
421 시작은 미약하지만...! (3) +8 23.02.14 3,690 123 21쪽
420 시작은 미약하지만...! (2) +6 23.02.13 3,763 116 21쪽
419 시작은 미약하지만...! (1) +6 23.02.11 3,826 121 24쪽
418 어리광은 그만 부려야 하지 않을까? +7 23.02.10 3,808 131 25쪽
417 Timely Cinematic Universe! (2) +7 23.02.09 3,822 121 24쪽
416 Timely Cinematic Universe! (1) +5 23.02.08 4,013 130 23쪽
415 언제 그런 거 신경 쓰면서 영화 했어? (3) +4 23.02.07 3,816 124 23쪽
414 언제 그런 거 신경 쓰면서 영화 했어? (2) +6 23.02.06 3,862 129 25쪽
413 언제 그런 거 신경 쓰면서 영화 했어? (1) +29 23.02.04 3,949 132 23쪽
412 화끈하게 갑시다! (2) +5 23.02.03 3,817 129 21쪽
411 화끈하게 갑시다! (1) +4 23.02.02 3,837 125 24쪽
410 꿈의 직장이잖아요. +11 23.02.01 3,963 140 30쪽
409 너희가 삼류를 아느냐? (3) +9 23.01.31 3,774 141 27쪽
408 너희가 삼류를 아느냐? (2) +5 23.01.30 3,782 129 26쪽
407 너희가 삼류를 아느냐? (1) +7 23.01.28 3,852 131 20쪽
406 예술 한 번 해보자고! +8 23.01.27 3,971 139 25쪽
405 그 양반들 간이 많이 커졌네. +2 23.01.26 3,988 144 24쪽
404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5) +6 23.01.25 3,956 142 23쪽
403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4) +9 23.01.24 4,014 145 23쪽
402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3) +6 23.01.23 4,019 149 20쪽
401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2) +17 23.01.21 4,144 161 29쪽
400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1) +18 23.01.21 3,891 127 26쪽
399 태풍을 예고하기라도 하듯이.... (2) +12 23.01.20 4,097 149 26쪽
398 태풍을 예고하기라도 하듯이.... (1) +6 23.01.19 4,110 145 23쪽
397 월스트리트 저널 테스트. (3) +14 23.01.18 4,042 146 28쪽
» 월스트리트 저널 테스트. (2) +13 23.01.17 4,047 156 27쪽
395 월스트리트 저널 테스트. (1) +6 23.01.16 4,088 149 24쪽
394 좀 더 자신을 믿어보게. +10 23.01.14 4,092 148 27쪽
393 Surfin USA! (3) +8 23.01.13 3,921 145 2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