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새글

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7.03 09:05
연재수 :
899 회
조회수 :
3,828,573
추천수 :
118,687
글자수 :
9,955,036

작성
23.02.16 09:05
조회
3,745
추천
139
글자
24쪽

내가 먹을 걸 남에게 맡기면 위험이 따른다.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2주에 걸쳐 <복수의 꽃> 테스트 촬영을 진행할 계획이다.

충무로에서는 테스트 촬영을 보름씩 하는 경우가 없다.

그럼에도 넉넉하게 일정을 잡았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Eye-MAX 촬영을 하기 때문에 여러 조건에서 테스트 촬영을 진행해 볼 필요가 있었다.

테스트 촬영을 앞두고 김영복 촬영·조명팀이 프로덕션 오피스로 모였다.

감독이 모이라고 해서 모이긴 했는데 조수들은 소집 이유는 몰랐다.

Eye-MAX 장비 일체를 보관하는 방에 모인 촬영·조명팀 조수들 앞에 각각 상자가 놓여 있다.


“뭐예요?”


촬영팀 퍼스트 어시스턴트 나인범의 물음에 김영복이 능글맞게 웃으며 대답했다.


“흐흐. 감독님이 열심히 해달라고 주는 뇌물.”

“.....?”

“뭐해? 얼른 열어봐.”


촬영·조명팀 조수들이 각자의 상자를 열어젖혔다.

벨트섹, 그립 글러브(Grip Gloves), 핫 글러브(hot gloves), 무전기 파우치(radio pouch), 면장갑(cotton glove,), 니트릴 장갑(nitrile glove), 스틱형 손전등, 다기능 팬지, 알코올 솜·면봉·밴드 등 미니응급키트, 장갑고리와 각종 연결선까지.

촬영·조명·그립 조수들의 필수품들이 상자 가득 들어있었다.

조수들이 여러 종류의 장갑을 일일이 껴보기 시작했다.

박스에 담긴 물품들을 비교하면서 순식간에 방안이 어수선해졌다.


“혹시.... 미국에서 사온거래요?”

“할리우드 스태프 용품점에서 직접 사온 거라더라.”

“누가요?”

“류 감독이.”

“내가 이 브랜드를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았대요?”

“내가 알려줬지.”


미래에는 직구를 통해 할리우드 영화현장 용품들을 쉽게 구입할 수 있다.

이 당시만 해도 미국을 그것도 LA를 방문하는 사람에게 부탁해야 영화 관련 유명 브랜드 제품을 구입할 수 있었다.

해외 로케이션을 자주 나가는 잘나가는 CF팀 조수들은 장갑부터 기본 장구까지 미국의 유명 브랜드 제품(주로 파나플렉스)으로 도배하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영화팀들은 그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가며 구입을 부탁하는 처지다.

모르는 이들이 보면 류지호가 선물한 것들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사실 미국 브랜드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하나하나가 전문 용품들이다.

할리우드 촬영 스태프들 사이에서 애용되는 제품이며 필수품들이기도 하고,

가격도 생각보다 비싼 편이다.

미국은 영화산업이 워낙 거대하기에 그에 걸 맞는 전문가용 제품들도 많다.

그깟 장갑이 대수냐고 할 수도 있다.

일할 때 특히 뜨거운 조명을 다뤄야 할 경우 손을 보호하는 건 중요한 문제다. 그 외에도 기능별로 제품들이 분류가 잘 되어 있다.

미국에서는 일 할 때 장갑을 착용하지 않으면 일하러 온 거 맞는지 확인한다.

필수품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유럽 쪽 촬영현장에서는 장갑을 왜 끼냐고 웃는다.

섬세한 작업을 하려면 맨손이 편하다면서.

충무로에서는 공사장 목장갑이나 결혼식에서 착용하는 면장갑을 일괄 구매해 사용한다.

제작부가 구입해 현장에 비치해 놓기도 한다.

하루 쓰고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뜨거운 조명장비를 다둘 때 껴야 하는 핫글로브 같은 경우 사용하는 경우는 극히 희박하다.

손바닥 쪽에 두꺼운 가죽이 두 겹으로 되어 있는 글로브를 사준다고 해도 충무로 조수들은 잘 쓰지 않을 테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는 건 좋은 거다.

일단 폼이 나니까.

글로브에 영화 전문 메이커 ARiCH, PANAFLEX 마크가 떡하니 박혀있기도 하고.

우스갯소리로 촬영팀의 일은 청테이프로 시작해 청테이프로 끝난다는 말이 있고, 조명팀은 C-47(나무집게)로 시작해 C-47으로 일이 끝난다는 말이 있다.

촬영현장에서 허리춤에 각종테이프가 달린 벨트섹을 착용하고 있는 이들이 촬영팀, 나무집게가 달려 있으면 조명팀이다.


“미국인들에 맞춰서 나온 줄 알았더니, 내 손에도 딱 맞네.”

“네 손이 커서 그래.”

“감독이 스태프한테 선물 돌리는 거 첨 보네.”

“류 감독은 옛날부터 그랬어. 단편영화 찍을 때도 상 받았다고 운동화 돌리더라.”

“영화 대박 나면 볼만하겠네요?”

“보너스 두둑하게 돌리긴 하겠지.”


김영복이 후배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 감독실로 향했다.

캐나다 Eye-MAX 촬영팀.

DP시스템을 채택함으로 해서 소외되는 조명감독.

파나플렉스 카메라 운용을 위해 일본에서 불러온 오퍼레이터.

충무로 정서로 봤을 때 조수들이 탐탁지 않게 여길 것이 뻔했다.

그들의 기분을 달래줄 필요성이 이었다.

때문에 류지호는 미국에서 선물을 준비했다.

물품 하나하나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웬만한 대기업 간부급 한 달 월급을 썼다.

류지호로서는 부담스러운 액수도 아까운 지출도 아니다.

작은 성의표시로 호감을 얻을 수 있다면 류지호에게 무조건 남는 장사다.


✻ ✻ ✻


로케이션 헌팅 사진과 콘셉트 아트들이 빼곡하게 붙어있는 벽 앞에서 류지호가 팔짱을 끼고 쳐다보고 있다.

김영복이 의자를 빼서 앉고는 불퉁거렸다.


“난 뭐 없어?”

“골프 치지?”

“자주는 못 치고, 가끔 피디들하고 연습장 가서 치고 그래.”

“촬영 끝나고 골프채 선물해 줄 테니까, 마음에 드는 거 골라놔.”

“진짜?”

“이 양반이! 내가 어떤 스타일인지 잊었나....”

“으흐흐. 안 잊었지.”

“웃는 거 봐라. 채신머리없이.... 쯧.”

“골프채 대신 딴 거 골라도 되냐?”

“맘대로. 500만 넘으면 형 타고 다니는 차 바꿔줄 게.”

“솔직히 <복수의 꽃>으로 500만은 오바지.”

“그럼 전 세계적으로 500만.”

“오호! 미국하고 유럽에서 400만은 먹고 들어간다는 거네?”

“그렇게 된다는 게 아니라, 하고 싶다고. 희망사항이야.”


류지호가 다시 각종 사진자료들로 시선을 돌렸다.

김영복이 류지호의 곁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단풍예보는?”

“예년하고 비슷한 시기에 들 것 같다네.”

“설악산부터 치고 점점 내려와야겠지?”

“강원도부터 촬영하면서 내려오다 보면 마지막은 내장산이 되지 않을까 싶어.”

“근데 세트는 왜 양수리에 지었어?”

“거기 밖에 더 있어? 여주 종합촬영소는 내 후년에 가야 완공될 텐데.”

“할리우드에 네 전용 세트장 있다며?”

“블록버스터도 아니고 겨우 드라마 찍는 주제에 60억 들여서 영화 찍는다고 온갖 뒷담화가 쏟아지는데, 할리우드 가서 촬영하라고? 제작비 몇 억 더 깨지고 돈지랄이 풍년이라고 신나게 까일 걸?”

“할리우드에서 600억짜리 영화 찍는 놈이 별 걸 다 걱정한다.”

“걱정하는 게 아니라 합리적인 판단을 내린 거야.”

“지금 충무로에서 너도나도 블록버스터 준비해. 나는 네가 겨우 60억 짜리 영화 찍는 게 더 이상해 보여.”

“영화에 맞춰서 예산을 써야겠지. 돈 바른 만큼 그림은 나오겠지만, 영화가 그림이 다가 아니잖아. 누가 그러더라 영화란 게 흥행에 실패하면 예술이고 뭐고 다 무슨 소용이냐고.”

“하긴.... 영화 한 편 말아먹으면 바로 나락가는 게 이 바닥이니까.”

<쉬리>의 흥행성공 이후 블록버스터 제작 열풍이 불어 닥쳤다.

내년 개봉할 대작 한국영화만 다섯 편이다.

30억 <광시곡>. 38억 <천사몽>, 40억 애니메이션 <별주부 해로>, 60억 <화산고> 마지막으로 류지호의 <복수의 꽃>이다.

<복수의 꽃> 역시 망한 블록버스터 영화 리스트에 들어가지 말라는 법이 없다.

영화의 흥행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까.


“충무로 사람들이 네가 얼마나 잘 찍나 지켜보고 있어.”

“찍는 건 형인데?”

“농담하지 말고. 진지하게 들어.”

“새삼스럽지도 않아.”

“Eye-MAX 화면비니, 시네마스코프의 영상 미학이니.... 그 딴 거 관객에게는 아무짝에도 쓸모도 없어. 영화가 재미있느냐. 영화적 가치가 있느냐, 혹은 의미가 있느냐....”


맞는 말이다.

난해한 스토리와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세계관이 무슨 소용일까.

많은 이들이 영화의 힘은 제작비도 감독도 배우도 아니고 무조건 이야기라고 말한다.

류지호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이야기는 기본이다.

감독도, 배우도, 제작비도 모두 중요하다.

1 더하기 1을 했더니 2가 나오는 것은 예술이 아니다.

그저 공산품일 뿐이다.


“<복수의 꽃>이 잘 안 나오면, 넌 충무로 바닥에서 엄청 비웃음 듣는 것도 모자라, 아주 잘근잘근 씹힐 거다.”

“촬영감독이 감독한테 이래도 돼? 용기와 확신을 줘야지 겁을 주는 거야?”

“너 하나로 끝나지 않는 문제라서 그렇지.”

“영화 쫄딱 망하면 참여했던 스태프들을 다른 영화에서 안 불러 줄까봐?”

“....,”

“WaW가 제작하는 작품에서 일 하면 되잖아.”


고예산이 투입된 영화가 쪽박을 차게 되면 제작사와 감독만 망하지 않는다.

참여했던 스태프들도 낭패를 본다.

몇 년 다른 제작사에서 안 불러주는 것이라면 어떻게든 버티면 되지만, 망한 영화 이력이 평생을 따라다니게 되면서 기피의 대상이 된다.

흥행 영화에 참여한 스태프가 크게 환영받는 것과는 정반대다.


“안 망해.”


<복수의 꽃>의 제작비 60억 원을 모두 날린다고 해도 WaW 픽처스는 끄덕도 없다.

류지호는 말할 것도 없고.


“함께 땀 흘린 스태프를 내가 가만 보고만 있을까. 별 걸 다 걱정하고 있어.”


류지호가 무슨 자신감으로 저리 태평한지 김영복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가 보기에 <복수의 꽃>은 그간 류지호가 해 온 영화들과 결이 완전히 달랐다.

일단 이야기의 밀도가 떨어진다.

극적인 구성이나 장치도 보이지 않는다.

마치 로드무비처럼 여주인공을 집요하지만 다소 무미건조하게 따라가는 영화다.

그렇다고 여주인공의 내면을 탐구하고 그걸 영화적으로 표출하냐면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콘티에는 그런 의도가 곳곳에 들어가 있는 것도 같은데....

지나치게 어렵고 은유적이다.


‘지가 무슨 타르코프스키나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도 아닌데 말이지...’


대가들이 보여준 영화 세계를 흉내 내고, 또 그걸 뛰어넘고 싶은 것은 모든 감독들의 공통된 욕망이다.


‘그렇다고 해서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같은 영화는 좀 아니지.’


그것도 한국영화 두 편을 찍을 예산을 동원해서.

류지호처럼 장르영화를 매우 잘 다루는 감독이라면 더더욱 아니다.


“상업적으로는 완전 망할 것 같진 않아.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어째서?”

“오프닝 시퀀스의 대규모 전투장면이 영화의 양날의 검이긴 하지만, 최 감독과 배우들이 액션 장면을 위해 꽤 잘 준비하고 있거든. 액션영화로 치면 크게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네임벨류가 있잖아. 류지호하면 그래도.... 아휴~ 그 정도로 되겠냐?”

“내가 감독으로 명성이랄 게 있나?”


이제 막 <Remo : The Destroyer>라는 할리우드 상업영화를 연출한 풋내기 감독일 뿐이다.

그것은 류지호만의 생각일 뿐이다.

미국평단에서 ‘씨네아티스트‘로 분류하고 있으니까.


“<The Killing Road>가 있잖아. 단편영화들은 또 어떻고. <Remo : The Destroyer>를 보고 실망했다는 기자나 평론가 또 영화팬이 얼마나 많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 이들도 있겠지. 근데 극소수일걸.”


스릴러 장르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감독들의 딜레마다.

투자·제작자, 영화 관계자, 영화팬 모두에게 그 잔상이 너무 크게 남아서 감독이 차기작에서 다소 결이 다른 장르나 스토리를 다루게 되면 평가가 엇갈리는 경우가 많다.

<올드보이>, <아가씨> 등 강렬하고 숨 막히는 밀도를 선보였던 박진우 감독이 그것들과 조금만 결을 달리 하는 영화를 연출해도 고개를 갸웃하는 이들이 많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류지호는 작품 선정에 있어서 외부적인 요인에 끌려 다니지 않기 위해 예산, 장르, 이야기 등을 다르게 가져가려고 궁리하고 있다.


“형이 이 정도로 걱정을 늘어놓을 성격이 아닌데... 뭐야? 진짜 하고 싶은 말이?”

“필름&큐에서 연출 제의 받았지?”

“응.”

“그거 하자. 나하고.”

“......?”

“원래 너는 스릴러나 사회풍자적인 영화 기깔라게 잘 만들잖아.”


류지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특별히 그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편영화부터 이것저것 일관성 없이 영화 작업을 해오고 있다.

딱히 뭘 잘 찍는다고 규정하기 애매한 입장이다.


“박 대표님도 그렇고 전 피디도 그러더니... 다들 나 몰래 입이라도 맞췄나.....?”

“너에게 말은 못 해서 그렇지 다들 속이 탈거야.”

“왜?”

“<복수의 꽃>을 잘 해봐야 저주 받은 걸작으로 평가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어.”

“무엇을 근거로?”

“Eye-MAX 상영관이 몇 개나 된다고. 35mm로 상영하면 맛이 떨어지잖아.”


충분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

관객들이 류지호에게 기대하는 영화가 있다.

<복수의 꽃>은 그 같은 기대에서 조금 벗어난 영화다.


“<엽기>까지 끝내고 다음 영화는 어디와도 계약 안 할 테니까. <Help Me, Please>처럼 쫄깃쫄깃한 영화 다시 한 번 해보자.”

“그렇게 불안한데 왜 <복수의 꽃> 계약했어? Eye-MAX 카메라와 파나플렉스 카메라 잡지도 못하고, DP를 하면서 까지.”

“너니까?”

“의리로?”

“그것뿐이겠냐? 네가 어떤 감독인지 충무로에서 제일 잘 아는 촬영감독이 나 잖아.”


단편영화 찍을 때보다 더 지독하게 완벽주의를 추구하고 있는 류지호다.

10년 동안 김영복만 성장한 것이 아니다.

그 완벽주의를 충무로에서 누가 다 받아줄 수 있을까.


“<민중의 적> 초고를 다들 높게 평가하는 모양이네?”

“네가 만지면 더 좋아질 거라고 보는 거지.”

“<복수의 꽃>은 불안하고, <민중의 적>은 기대가 되고... 뭐 그런 건가?”


<민중의 적>은 이전 삶에서 대박을 터트린 영화다.

그런데 원안은 기억하는 것과 상당히 달랐다.

류지호의 기억 속의 영화는 강은석 감독이 붙은 후 꽤 각색되었던 모양이다.

원안은 어둡고, 더 직설적이며, 더 거칠었다.

이전 삶의 디테일을 모두 기억하지 못하는 류지호가 손을 대면 이전 삶의 <민중의 적>과 많은 부분에서 달라질 터.

시나리오를 손 봤던 이들을 불러다 각색을 시키고, 기억하고 있는 명장면을 살리고 캐스팅도 똑 같이 한다면 망할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

형사가 쓰레기 같은 악당을 혼내주는 스토리는 충분히 먹히기 때문이다.

부패한 형사 주인공과 패륜을 저지르는 사이코패스 악당 역시 충분히 매력적이기도 했고.

비즈니스로 봤을 때 WaW 픽처스에 최소 3편이 제작될 수 있는 프랜차이즈 시리즈를 확보한다는 의미도 있다.


“혹시.... <복수의 꽃> 끝내고 할리우드에서 작업할 영화가 정해진 거야?”

“딱히....”


류지호는 에이전트가 없다.

그럼에도 불편함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 계약은 변호사 자격이 있는 비서가 처리하고, 이미지 관리나 언론 상대 역시 미디어 전담 비서가 처리해주고 있다.

개인 이메일, JHO Pictures 외에도 의장 사무실로 할리우드 스크립트가 꾸준히 접수되고 있다.

주로 <The Killing Road>풍의 느와르나 스릴러 영화 스크립트가 많다.

<Remo : The Destroyer>의 흥행성공으로 다른 메이저 스튜디오의 러브콜도 받고 있다.

레온 브룩하이머 같은 유명 프로듀서는 물론이고 토머스 행스 같은 배우겸 제작들의 러브콜도 쇄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시나리오가 들어오고 있다.

<민중의 적>뿐만 아니라, <YMCA 야구단>, <아유레디>, <예스터데이>, <2009 로스트메모리스> 등 주로 고예산 영화들의 시나리오가 집중적으로 들어오고 있다.


“블록버스터를 하게 될지, 소품을 하게 될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어.”

“연말까지 한국에 있을 거잖아. 진지하게 고민해 봐.”


이전 삶에서 성공했던 영화를 자신이 가로채 연출할 생각은 크게 없었다.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도 많고, 과거로 돌아와 쓴 시나리오도 많아서.

그런 내막을 알 리 없는 사람들은 류지호가 자신이 직접 쓴 시나리오 연출만 고집한다고 오해할 수도 있다.


“회사 사람들하고 진지하게 논의해 볼게. 당장은 <복수의 꽃>에 집중하자.”

만약 <민중의 적>을 WaW 픽처스로 가져오게 되면 강은석 감독이 원활하게 <실미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성심성의껏 도울 생각이다.

참고로 작년에 발간된 소설 <실미도>는 출간하자마자 영화 제의가 밀려들어 김유선 감독이 연출을 맡는다며 제작발표회까지 했다.

그런데 각종 법정소송과 투자유치 및 캐스팅 난항으로 표류하고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3년여 간 표류하다가 무비서비스로 넘어가게 되고 결국 강은석 감독이 메가폰을 잡으면서 투자와 캐스팅이 이루어지게 된다.

제작과정에서도 무수히 많은 문제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류지호는 <실미도> 프로젝트가 겪게 될 문제 대부분을 해결해 줄 수 있다.


‘인천 앞 바다에 무인도 하나 매입해서 섬 전체를 세트장으로 만들어 줄까?’


✻ ✻ ✻


쿵.

고오오오.


김포공항 활주로에 파커가문 전용기가 내려앉았다.

한국의 공항에서는 2010년대까지 비즈니스 항공기를 이용하더라도 항공기 계류와 출입국 절차가 일반 항공기와 다를 바 없었다.

비행만 편하게 했을 뿐, 검역·보안·출입국심사 과정은 동일했다.

또 하나 대기 시간 동안 VIP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 정도.

국회의원처럼 전용 통로를 이용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외국처럼 비즈니스 항공기 전용 터미널이 따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년 3월 인천국제공항이 개항한다고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물론 대기업 회장 정도 되면 국회의원 비슷한 수준의 편의를 제공받기는 한다.

그럼에도 미국의 주요 공항처럼 비즈니스 항공기 승객의 편의를 기대하기 힘들다.

류아라가 손을 뻗어 입국 게이트를 가리키며 외쳤다.


“오빠! 저기!”


류순호를 제외한 류지호 가족 전부가 김포공항에 나와 있다.

미국에서 머물던 류순호는 가족이 아니라 지금 막 입국 게이트를 빠져나오는 윌리엄 파커 일행과 함께 입국하고 있다.

레오나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다른 한 손으로는 윌리엄 파커가 앉아있는 휠체어를 밀었다.


“어서 오십시오. 어르신.”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한국 방문을 환영해요.”


류지호의 가족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윌리엄에게 인사를 건넸다.


“허허. 잘 들 지냈어?”


레오나가 류민상과 심영숙를 차례로 포옹하며 반가움을 표했다.


“하이. 파파, 마미!”


윌리엄 파커의 수행원 중에 있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 함께 하고 있다.

파커 필드 CEO 애덤 맥거번이다.

세계 5위 곡물 메이저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겨우 명예회장 수발을 들기 위해 동행했을 리가 없다.

류지호는 꺼림칙한 내심을 숨기고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에요, 애덤.”

“하하. 잘 지냈나?”

“덕분에요.”


류지호가 레오나 대신 윌리엄의 휠체어를 맡았다.


“자, 재회의 기쁨은 집으로 가서 나누자고요.”


휠체어를 밀고 가는 류지호의 양 옆으로 경호원들이 붙었다.

그 뒤로 가족들과 수행원들이 따랐다.

연로한 윌리엄의 건강을 염려해 주치의까지 미국에서부터 따라왔다.

대규모 인원이 움직이면서 공항 로비가 홍해 갈라지듯 길이 열렸다.

아무리 전용기를 타고 왔다고 해도, 장시간 비행은 연로한 윌리엄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빨리 쉴 수 있도록 한남동으로 이동하는 것이 좋았다.

한남동 주택에 도착한 윌리엄은 주치의로부터 혈압 체크부터 시작해 간단하게 컨디션을 체크했다.

류지호의 부모님은 한남동 주택이 누추해서 밀레니엄 호텔 스위트에 윌리엄 파커를 모시자고 했다.

뉴욕 롱 아일랜드의 성을 방불케 하는 대저택에 비해 한남동 주택은 고용인들의 거처에 불과할 정도로 소박했으니까.

그럼에도 윌리엄 조손이 류지호의 집을 놔두고 호텔에 머물 이유는 없었다.

방이 모자란 것도 아니고.


“미안하지만 나는 조금 쉬고 싶구나.”

“쉬실 방으로 안내해 드릴게요.”


류지호가 휠체어를 밀려고 하자, 윌리엄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리고는 ‘끙‘ 하는 신음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레오나가 얼른 지팡이를 가져와 윌리엄에게 건넸다.

류지호가 앞장 서 걷기 시작하자, 윌리엄이 지팡이를 짚으며 천천히 뒤를 따랐다.

레오나와 류아라가 윌리엄의 양 옆에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했다.

머물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몸을 누인 윌리엄이 류지호를 향해 손짓했다.


“침대 옆에 의자 가지고 와서 앉아보려무나.”


류아라가 레오나의 소매를 끌고는 방을 빠져나갔다.

류지호가 의자를 가져와 침대 옆에 자리를 잡자 윌리엄의 입이 열렸다.


“고향에서 지내는 건 어떠냐?”

“마음이 편하니까 집중도 잘되는 것 같아요.”

“미국으로 돌아오기 싫을 정도로?”

“하하. 집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이제 가정을 꾸려야 하지 않겠냐?”

“그래야죠.”

“죽기 전에 손자손녀를 안아보고 싶구나.”


류지호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저도 노총각 장가가긴 싫어요. 할아버지.”

“네 짝으로 레오나는 어떠냐?”


윌리엄의 단도직입적인 말에 류지호는 잠시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너희 둘은 어쩌면 운명으로 이어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곤 해. 그 당시에 돈을 주는 것으로 너와 거리를 둘 수도 있었지. 헌데 우리 모두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단단한 관계가 되었구나.”

“그거야 제가 파커 가문의 도움을 얻고자 달라붙어서 그렇죠. 마치 사탕을 바라는 어린 아이처럼. 사실 제가 그렇게 성인군자처럼 깨끗하고 맑은 녀석이 아니에요. 제게 속고 계신 거예요. 좀 더 저를 겪어보시면 반전이 있을 걸요.”


류지호는 분위기를 띄울 생각으로 농담을 섞어 길게 말했다.


“진심이냐?”

“물론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를 스승처럼 생각하고 있어요. 어떨 때는 할아버지를 흉내 내기도 하고요. 제가 왜 기부와 자선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요. 다 할아버지를 따라하려고 하는 거라구요.”


윌리엄이 손을 뻗자, 류지호가 머리를 슬쩍 기울였다.


슥슥.


윌리엄의 쭈글쭈글하고 연약한 손이 류지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성인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은 미국 문화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두 사람의 모습은 너무 자연스러웠다.


“이제 할아비가 좀 쉬고 싶구나.”

“쉬세요.”


류지호가 침대 시트를 윌리엄의 가슴어림까지 추켜올려주고 방을 빠져나갔다.

막 복도를 걸어 나오는데, 류아라와 레오나의 모습이 보였다.


“행사는 내일 모레인데, 벌써부터 정장을 입었어?”


류아라가 다소 긴장한 어조로 말했다.


“잠시 시간 좀 내주세요. 의장님.”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헤어스타일까지 차분한 스타일로 정리한 둘은 마치 면접을 앞 둔 취업준비생 같았다.

레오나가 침착한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류지호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많은 시간을 뺐진 않을 겁니다. 의장님.”


무슨 작당모의를 하고 있는지 류지호가 두 녀석을 게슴츠레한 눈으로 쳐다봤다.


“정식으로 브리핑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으면 해요.”

“무엇에 대해서?”


류지호는 동생들이 무슨 장난이라도 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두 녀석의 표정은 진지하기만 했다.


“대학에 입학하면 허락해준다고 했었죠?”

“뭘?”


레오나가 또렷하고 단호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 후손들을 위한 공익사업.”


피식.


류지호는 절로 웃음이 삐져나왔다.


“10분.”


류아라가 당장 발끈했다.


“오빠! 아니 의장님. 20분!”

“갑이 정하는 거야. 을은 입 다물고 따라와.”


류지호가 휘적휘적 걸음을 옮기자, 두 여동생이 얼른 뒤를 따랐다.


작가의말

행복하고 즐거운 하루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7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Mr. 할리우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52 영화가 영원히 머무는 곳. (1) +4 23.03.22 3,423 115 24쪽
451 곧.... 필름은 죽습니다. (2) +6 23.03.21 3,359 111 23쪽
450 곧.... 필름은 죽습니다. (1) +6 23.03.20 3,418 109 25쪽
449 내가 잘되자고 하는 겁니다! (2) +4 23.03.18 3,512 120 25쪽
448 내가 잘되자고 하는 겁니다! (1) +5 23.03.17 3,502 120 27쪽
447 혼자 늙어 죽는 수가 있거든! +6 23.03.16 3,460 124 25쪽
446 계륵이거나 삥을 뜯거나.... (3) +3 23.03.15 3,411 110 23쪽
445 계륵이거나 삥을 뜯거나.... (2) +4 23.03.14 3,472 108 21쪽
444 계륵이거나 삥을 뜯거나.... (1) +9 23.03.13 3,617 118 20쪽
443 언젠가 만나야 했을 인연들. (3) +6 23.03.11 3,675 128 26쪽
442 언젠가 만나야 했을 인연들. (2) +5 23.03.10 3,624 121 26쪽
441 언젠가 만나야 했을 인연들. (1) +7 23.03.09 3,648 118 23쪽
440 다 해먹는다는 말 나오진 않겠죠? (3) +4 23.03.08 3,578 123 24쪽
439 다 해먹는다는 말 나오진 않겠죠? (2) +14 23.03.07 3,580 128 21쪽
438 다 해먹는다는 말 나오진 않겠죠? (1) +3 23.03.06 3,586 117 21쪽
437 지금이라도 손을 떼시면 됩니다. +6 23.03.04 3,705 128 27쪽
436 복수의 꽃. (10) +8 23.03.03 3,397 127 21쪽
435 복수의 꽃. (9) +6 23.03.02 3,267 127 21쪽
434 복수의 꽃. (8) +4 23.03.01 3,262 120 21쪽
433 복수의 꽃. (7) +3 23.02.28 3,331 119 22쪽
432 복수의 꽃. (6) +4 23.02.27 3,377 115 21쪽
431 복수의 꽃. (5) +4 23.02.25 3,456 128 24쪽
430 복수의 꽃. (4) +5 23.02.24 3,384 128 25쪽
429 복수의 꽃. (3) +11 23.02.23 3,468 115 26쪽
428 복수의 꽃. (2) +2 23.02.22 3,558 128 24쪽
427 복수의 꽃. (1) +5 23.02.21 3,677 123 20쪽
426 내가 먹을 걸 남에게 맡기면 위험이 따른다. (4) +6 23.02.20 3,647 126 25쪽
425 내가 먹을 걸 남에게 맡기면 위험이 따른다. (3) +5 23.02.18 3,702 135 25쪽
424 내가 먹을 걸 남에게 맡기면 위험이 따른다. (2) +6 23.02.17 3,654 134 25쪽
» 내가 먹을 걸 남에게 맡기면 위험이 따른다. (1) +7 23.02.16 3,746 139 2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