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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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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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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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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2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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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복수의 꽃.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지금까지 예술과 문화가 발전하는 시기는 관련 분야에 돈이 융통될 때였다.

문예부흥기라 불리는 르네상스가 그랬다.

경제가 성장하고 먹고살 만해진 사람들은 한층 고차원적인 예술에 눈을 돌리게 마련이다.

시장이 생기고 돈이 된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며 신인 작가가 발굴되고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몰리며 선순환을 이룬다.

선순환.

바로 류지호가 한국영화계에 만들고 싶은 것이다.

한국 영화시장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WaW 엔터테인먼트의 성장과 연계되어 더욱 탄력을 받고 있는 중이다.

비록 WaW 엔터테인먼트가 차지하고 있는 파이가 크지만, 낙수효과로 인해 다른 영화사 및 감독들에게 따뜻한 온기가 퍼져나가고 있다.

탐욕스럽게 이익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산업 전반의 시스템 구축에 투자를 병행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해서 제작된 영화를 접한 대중들의 수준은 올라가고, 그 수준을 맞추기 위해 작가와 감독들이 또 다시 노력하는 생태계가 만들어질 터.

영화인 모두가 바라마지 않는 미래다.

당연히 류지호에게도 이익이다.

본인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여건이 향상되는 것이니까.


<복수의 꽃>.


몇 년 더 묵혔다 제작하면 조금 덜 고생할 수도 있는 프로젝트다.

그럼에도 류지호는 강행하고 있다.

선구자라면 짊어져야 부담이니까.

어차피 충무로에서 Eye-Max 영화나 시대극은 류지호 밖에 못 찍는다.

하루라도 빨리 그 분야를 개척해서 기술과 노하우를 충무로에 남겨주는 것이 좋다.

본래는 떠들썩하게 자랑했겠지만, 류지호는 영화와 관련한 발설을 금지시켰다.

따라서 할리우드 고용계약서처럼 보안서약 조항을 넣었다.

보안서약을 어길 경우 고용계약이 자동 파기되는 것과 함께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촬영 3개월 전인 시점에 <복수의 꽃> 시나리오를 읽은 스태프는 각 부서의 헤드스태프 외에는 없었다.

<복수의 꽃>에 참여하는 어시스턴트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WaW 픽처스의 직원들 누구도 최종 시나리오를 읽어볼 수 없었다.

배우들까지도 자신이 등장하는 쪽대본만 받은 상태다.

그 어떤 대단한 반전이 있다거나 스토리가 유출될 경우 영화감상에 지장이 생겨서 그런 건 아니다.

영화가 공개되기도 전에 이런 저런 말이 나오는 것이 류지호는 싫었다.

영화의 정보가 극히 제한적이다 보니, 별의 별 억측이 난무하고 있긴 했지만.

그로인해 WaW 홍보마케팅팀만 기자들의 등쌀에 죽을 맛이다.


“팀장님, 이제 슬슬 <복꽃> 홍보 시작해야 하지 않나요?”


심선미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글쎄.”


현재 홍보팀 초창기 멤버 중 그녀만 남았다.

초창기 멤버 언니들은 홍보기획사를 차려 독립했다.

홍보실 막내였던 심선미는 WaW 픽처스의 한국영화 홍보팀장이 되어 있었고, 자녀를 둘이나 키우는 워킹맘이었다.


“스포츠지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영화전문지에는 <복꽃> 로그라인 정도는 공개해야 할 것 같아요.”


심선미가 차분한 음성으로 팀원들을 달랬다.


“우리도 아직 시나리오를 다 못 읽었잖아. 어떻게 로그라인을 공개해? 조금만 기다려보자.”

“팀장님까지 시나리오를 읽지 못한 건 너무한 거 아닌가요?”

“<식스센스>급의 반전이라도 있는 건지... 솔직히 너무 궁금해요.”


그런 것 없다.

심선미는 팀원들에게는 자신도 읽어보지 못했다고 거짓말했다.

사실은 최종 촬영본은 읽지 못했지만, 초고를 읽었다.

꼼꼼하게 모니터링 한 후 리뷰도 작성해서 미국으로 보냈었다.

류지호가 UCLA에 다니고 있을 시기였다.


“류 감독님 영화는 내년에나 개봉할 것 같으니까, 당장은 관심 끄자고. 당장 눈앞에 닥친 <미션 임파서블Ⅱ> 홍보에 집중하자. 기자들에게 잘 알지도 못하는 <복수의 꽃>에 대해서는 말조심하고.”

“예!”


<복수의 꽃>은 9월에서 크랭크인해서 12월에 모든 촬영을 종료하기로 계획되었다.

한국·미국·캐나다 등 삼국에서 포스트프로덕션을 진행할 예정이다.

개봉은 내년 여름 즈음으로 잠정 결정되었다.

국제영화제에 초청이라도 된다면 개봉은 좀 더 미루어질 수 있다.

때문에 벌써부터 홍보마케팅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단지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류지호가 어떤 한국영화를 찍게 될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라는 것이 문제일 뿐.

<복수의 꽃> 프로듀서인 전하영 역시 생각이 복잡했다.


- 미국에서 못 하는 걸 한국에 와서 한풀이한다!


류지호가 받고 있는 비판이다.

할리우드에서는 찍지 못하는 예술영화, 작가영화를 한국에서 한다며.

왜 비판 받아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미국과 한국 양쪽 평론계에서 모두 공격받고 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당사자도 아닌데 전하영은 짜증이 났다.

모두가 당장의 흥행에만 몰두해 있다.

할리우드 장르영화 공식을 그대로 복사하는 시나리오를 쓰거나 기획에만 골몰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충무로 현실이다.

류지호처럼 이름값 있는 감독이 남들이 안하는 장르, 꺼려하는 소재를 건드리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고 칭찬 받을 일이다.


“할리우드에서 하지 못하는 걸 한국에서 할 수도 있는 거지!”


처음 <복수의 꽃>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밀도가 떨어지는 스토리에 실망하긴 했었다.

그럼에도 류지호가 직접 연출한다는 점 때문에 참여하겠다고 결정했다.

전하영은 단편영화 감독시절부터 류지호를 봐 왔다.

그의 연출력이 발전하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봤다.

시나리오만 봤을 때는 30~40억 사이에 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작비에 60억을 쓰겠다고 했을 때는 제 정신이 아니라고 여겼다.

게다가 충무로에서조차 낯선 Eye-MAX와 한국영화에서 크게 효과를 보지 못한 파나플렉스 슈퍼 35mm로 촬영하겠다고 했을 때는 놀라는 것을 넘어 뒤집어지는 줄 알았다.

완전 딴 사람으로 변해 한국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그녀가 아는 류지호는 기획을 할 줄 아는 감독이었으니까.

관객의 눈높이를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감독이기도 했고.


‘류 감독이 WaW 기획팀의 의견을 많이 수용해주긴 했지만....’


류지호는 고집을 부려야 할 때와 타협해야 할 때가 확실한 감독이다.

그럼에도 이번 영화는 ‘감독으로서의 허세‘가 듬뿍 들어가 있다.

본인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라 확신했다.

그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시나리오를 읽은 사람들의 일치된 의견이었다.

류지호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 말하는 걸 정면으로 반박하는 사람이다.

그랬던 그가 동학농민전쟁의 마지막 전투와 을사늑약 직전의 조선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찍겠다고 한다.

그것도 원톱 여주인공을 내세워서.

스타도 아닌 완전 신인을 기용하면서.

많은 기획프로듀서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한국영화에서 여자 원톱 영화는 절대 안 된다.

반드시 해야 한다면 코미디 혹은 로맨스 장르여야 그나마 일말의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

그것도 슈퍼스타와 연기력을 갖춘 톱 여배우가 출연해야 될까 말까다.

탁월한 연출력을 가진 감독이 멱살 잡고 영화를 끌고 간다면 말이 달라지겠지만.


‘류 감독이 아직 거장 반열에 드는 감독은 아니지.’


20억 미만 예산의 영화라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무려 60억이다.

예비비까지 63억 예산의 영화다.

전국 180만 명은 넘어야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다.

그 정도 흥행기록을 기록하는 국내외 개봉영화가 한 해 서른 편 안팎이다.

아무리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고 하더라도, 한국영화 현실에서 무모한 기획임에는 틀림없다.


“우리의 특수한 상황(근대 혼란한 조선)을 떠나 당시 시대를 살아갔던 다양한 민초들에게는 보편적인 진실성을 갖고 있어요.”


공간적 배경과 시대만 조선일 뿐이지, 류지호는 세계인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가진 상업영화라고 강조했다.

시나리오를 읽은 이들은 동의하지 못했다.

류지호가 아무리 아니라고 주장해도 <복수의 꽃>은 여성영화이자, 예술영화다.

다양한 관객층에게 어필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내부의 우려와 외부반응은 항상 편차가 있는 법.

어찌 보면 외부 반응이 내부의 우려보다 더 폭발적인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

영화는 까보기 전까지는 어떤 결과도 예측할 수 없으니까.


‘게다가 감독이 류지호라면....’


전하영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차 안에서도 쉬지 않고 뭔가를 읽고 있는 류지호다.

어린 나이에 사업을 시작해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실패가 없었던 입지전적인 인물.

20대 청춘을 불살라 승승장구하며 전설을 써내려가고 있는 류지호다.

많은 한국인들이 그가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이 계속해서 성공만을 하길 응원하고 있다.


✻ ✻ ✻


人Best.


류지호의 투자로 최영웅이 한국으로 돌아와 인천에 설립한 스턴트 회사다.

현재 소속 스턴트팀은 8명에 불과했다.

일찍부터 홍콩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한국 스턴트계에 친한 사람이 많지 않았다.

류지호는 컬버시티의 Vic & Jay 못지않은 시설을 마련해주려고 했다.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최영웅이 거절했다.

대선배격인 권용찬 무술감독조차 보라매공원 체육관을 겨우 임대해서 지내고 있다.

후배가 나대는 것이 보기에 안 좋다고 했다.

구 인천터미널 터에서 가까운 보세창고를 체육관으로 개조해서 사용하고 있는데, 현재는

<복수의 꽃> 배우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류지호는 훈련에 방해가 될까 싶어 입구와 멀지 않은 곳에서 조용히 지켜봤다.


“감독님.... 감독님?... 감독님!”


전하영이 세 번이나 부르자 그제야 류지호가 고개를 돌렸다.


“어때요?”

“좋네요. 준비를 정말 열심히 한 것 같아요.”

“라원이 말고요.”

“그럼 뭐요? 내 컨디션?”

“모든 게 다....”

“로케이션 헌팅도 다 끝나서 내가 픽스하는 일만 남았고. 테스트 촬영도 얼추 마무리 됐고, 보시다시피 배우들 액션 트레이닝도 꽤 잘 되어 있고, 여주 야외세트 제작 공정률도 60%를 넘겼고, 스태프 세팅, 조감독 계약도 마쳤고. 문제없이 잘 가고 있는 거 아닌가.....?”


신효정도 그렇고 전하영 역시 마찬가지로 류지호가 뭔가 하려고 들면 노심초사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충고랍시고 어쭙잖게 잔소리를 하진 않는다.

다만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는데 자신들이 더 난리를 피운다는 것이 문제랄까.


“60억짜리 영화가 부담됩니까?”

“안 된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마음을 비워요. 편해집니다.”

“프로듀서가 어떻게 마음을 비워요? 프로덕션 진행, 홍보, 개봉, 흥행... 뭐 하나 쉬워 보이는 게 없잖아요.”

“전 피디는 지금까지 쉬운 영화를 해본 적이 없는 걸로 아는데... 아니었나. 그간 날로 먹었어요?”

“영화의 사이즈가 다르잖.....”


전하영은 아차 싶었다.

프로듀서가 감독의 부담감을 덜어주지 못할망정 스스로 힘든 걸 내색하다니.


“왜 다들 흥행실패를 두려워하죠?”


당연한 거다.

흥행에 실패하면 문책을 받고, 심하면 퇴사할 수도 있으니까.


“한 번의 실패로 모든 걸 잃게 되기라도 한답니까? 설령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인정하고 배우면 다음에는 좀 더 나아진 영화를 만들 수 있지 않겠어요?”


실패는 삼류일 때도 아팠고 삼류가 아닌 지금도 똑같이 아프다.

그럼에도 흥행실패니 평단의 혹평이니 류지호는 크게 신경 쓰지 않게 됐다.

한 번 잘 못 되었다고 해서 영영 주저앉을 게 아니라는 걸 아니까.

실패까지도 과정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미국에서 생활하며 주변사람들의 마인드가 자연스럽게 스며든 영향도 있었고, 오로지 영화만 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지면서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영화 한 편에 일희일비 하지 않기 위해 고등학교 자퇴 이후 그 발버둥을 친 것이었고.

사실 이번 영화도 실패할 것 같지 않았다.

그런 걸 따지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하는 것이 맞을 지도....

마치 에디슨이 2,000번도 넘는 시험 끝에 전구를 발명해 냈듯이 류지호 본인도 미래를 위해 여러 가지를 시험하는 과정의 한 편일 뿐이라고 여기고 있기도 했고.

전하영이 작은 탄성을 터트렸다.


“아!”


분명 류지호는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다.

자신이 먼저 충무로에 들어와 경험을 쌓았다.

그런데 10여 년 전에도 그랬지만, 류지호와 마주할 때면 대선배를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 들곤 했다.

심지어 뭔가 조언이나 충고를 기대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도 많았다.

지금도 그렇다.

마법의 주문처럼 류지호가 잘 될 거라고 말해주길 기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류지호가 툭툭 던지는 말에는 경험이 묻어나왔다.

왜인지는 본인도 모르고, 그녀는 더더욱 알 수 없었지만.


“난 한번 정도 실패도 좋다고 생각해요.”


류지호의 말에 안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한숨이 나왔다.


“성공이란 열정을 잃지 않고 실패를 거듭할 수 있는 능력이다. 라고 하잖아요.”

“이 판이 그렇게 사려 깊지 않으니까요. 열 번 잘 하다가 한 번 삐끗하면 나오는 말이....”

“내 그럴 줄 알았다.”

“그러니까요! 승승장구하던 사람이 한 번 삐끗하게 되면, 위험에 봉착했다거나 동력이 떨어졌다거나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식으로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나서서 영화뿐만 아니라 감독님 자체에 대고 자로 재고 난도질을 할 거예요.”

“그러라고 하죠. 신경 안 써요. 나에 대해 과대평가된 면도 없지 않아요. 사람들은 말이죠, 나중에 떨어뜨렸을 때 비웃어 줄 것을 생각해서 날 아주 하늘 높이 띄워 올려 주며 찬양하고 있어요. 내가 작은 실패를 하고 그 때문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게 될 것을 기대하겠지만..... 그 사람들이 모르는 게 있어요.”

“뭔데요?”

“나는 기회에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요.”

“......?”

“영화 세 편을 내리 말아먹는다고 해서 내가 영화를 못 찍을까요? 그리고 나는 이제 겨우 만으로 29살 밖에 안 됐어요.”


게다가 류지호는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에서 매년 다섯 편에 대해 그린라이트를 켜고 있다.

JHO Pictures에서는 TV 시리즈까지 기획하고 있다.

그 작품 가운데 아카데미나 에미상 수상작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적어도 프로듀서로서 명성에 금이 갈 일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독님을 아끼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안전하게 가기를 바라죠.”

“인생에 안전한 길이 있어요?”

“그렇게 말하는 감독님의 인생은 매번 성공과 함께 직진하고 있으면서....”

“절망의 나락까지 내려앉아야 다시 튀어 오르는 공처럼 공을 세게 튕겨 줄 손바닥이 간절해지죠. 저는 운이 아주 좋아서 어릴 때 그렇게 다시 튕겨 오를 수 있도록, 밑바탕을 받쳐줄 인연들을 만났잖아요. 전 피디도 그런 인연 중 한 명입니다.”

“또. 또! 사람 들었다 놨다 한다....!”


류지호가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사이 전하영의 삶에서 굴곡이 있었다.

이혼을 했는가 하면, 백설을 비롯해 대기업 계열 영화배급사에서 무수히 러브콜을 받았고, 벤처 쪽에서 투자하겠다며 독립을 부추기도 했다.

WaW에 남을 것인가 독립할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다.

당시 박건호 대표를 통해 독립한다면 도와주겠다는 류지호의 뜻을 전해 듣고는 독립할 결심을 했었다.

막 외환위기가 터질 시기였다.

독립할 타이밍을 놓치게 된 전하영은 심기일전했다.

그리고 기획한 영화가 <정사>였다.

서울 기준 47만 관객을 동원해 준수한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비슷한 시기 기획한 은행원과 레슬러의 이중생활을 다룬 코미디 영화 <반칙왕>까지 대박을 터트렸다.

개인사로 잠시 주춤했지만, 프로듀서로서는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류지호처럼 손대는 영화마다 대박을 터트리며 ‘미다스의 손‘이라고 불릴 정도는 아니지만, 그녀 역시 기획하는 영화마다 흥행 성적이 좋았다.

WaW에 속한 월급쟁이가 아니라 독립해도 일가를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나는 <H> 프로젝트는 솔직히 별로에요. 전 피디가 임 감독과 <눈물>을 준비하는 것에는 대찬성이지만.”


일본 영화 <큐어>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영화 <H>는 서사의 밀도는 말할 것도 없고, 시나리오 자체도 부족한 것이 많았다.


“사실 회사에는 미안하지만 <눈물>은 본전치기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눈물>은 100% 디지털 카메라로 찍을 계획이다.

충무로 주류 영화들이 금기시해온 가출한 10대 비행청소년들의 거친 삶을 있는 그대로 스크린에 옮기겠다는 포부를 밝힌 영화다.

감독은 5년 전에 이 영화를 기획하면서 리얼리티를 시나리오에 담기 위해 구로구 가리봉 달동네에서 쪽방을 얻어 지내면서 안경노점상을 했다.

6개월 길거리에서 가출 청소년들을 관찰하고 만나서 취재를 한 끝에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심지어 출연배우들까지 완전 초짜 일반인 청소년들을 캐스팅할 정도로 사실적인 영상을 담고자 했다.

처음에는 35mm 극영화로 기획 됐지만, 투자를 받지 못하다가 유럽의 ‘도그마운동’ 형태의 실험적인 영화로 기획방향이 변경됐다.

카메라도 소닉의 PD-100으로 촬영하기로 했다.


“소닉에서 곧 VX-2000과 업무용 핸디캠 PD-150을 출시할 겁니다. 촬영 전에 시판이 안 되면 내가 소닉에 연락해서 두 기종을 구해줄 테니까, PD-100은 머릿속에서 지우세요.”


HD카메라의 데이터란 일종의 촬영매뉴얼이다.

노출수치가 얼마일 때 색감이 어떻게 표현되는지 같은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방송 업무용 디지털 카메라와 일반 홈비디오 범용성에 주안을 둔 소닉과 달리 DALLSA Corp.은 오로지 시네마 카메라에만 집중하고 있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데이터를 수집했지만, 대부분이 북미에서 수집된 것들이다.

즉 캐나다와 미국의 빛에 맞춰진 데이터다.

‘도그마’로 촉발된 유럽의 디지털 영화 작업은 그들 나라 빛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

초창기 디지털 데이터는 주로 미국, 일부 유럽국가, 호주 및 뉴질래드의 빛에 맞춰진 데이터일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상황에 맞는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촬영해야 한다.


“제작비와 상관없이 그룹 차원에서 연구 및 테스트 비용을 대기로 했어요. 전 피디는 영화에만 신경 쓰면 됩니다. 디지털 부문은 WDL에서 주도하게 될 겁니다.”


심지어 <눈물> 프로젝트를 위해 편집프로그램으로 프리미어를 써보기로 했고, 자회사 WDL의 키네스코프 기술까지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난 후에나 촬영에 들어가기로 했다.

<눈물>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지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맛만 본 D-Cinema 세미나를 더욱 심도 깊은 프로그램으로 확대시키기 위해 올 가을에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디지털 영화 및 기술 세미나와 워크샵을 대대적으로 개최할 것을 주문했다.

바쁜 류지호를 대신해 GMG Lab의 D-Cinema 총괄팀장을 초빙하기로 했다.


“감독님!”


스턴트 합을 맞춰보던 김영찬과 송라원이 류지호를 발견했다.

두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훅 하고 땀 냄새가 코를 찔렀다.

류지호는 불쾌하다고 느끼진 않았다.

<복수의 꽃>을 위해 열심히 하고 있다는 증명이니까.


“힘들지?”

“처음에는 근육통 때문에 힘들었는데, 이제 운동이 몸에 붙었나 봐요. 헤헤.”


송라원이 여우처럼 눈웃음을 지었다.

끼부리는 눈빛이 아니다.

특유의 시그니처 눈웃음이다.

어릴 때부터 활짝 웃게 되면 입이 커 보인다는 콤플렉스가 있었다.

연기를 할 때 외에는 주로 눈웃음을 짓는 것이 송라원이다.

치아를 한껏 드러내고 입이 크게 벌어지면서 웃는 빅 스마일이 돈 주고 못 사는 매력인 줄도 모르고.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PS. ddmd님 과분한 후원 감사드립니다. 성실연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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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3 복수의 꽃. (7) +3 23.02.28 3,331 119 22쪽
432 복수의 꽃. (6) +4 23.02.27 3,377 115 21쪽
431 복수의 꽃. (5) +4 23.02.25 3,456 128 24쪽
430 복수의 꽃. (4) +5 23.02.24 3,383 128 25쪽
429 복수의 꽃. (3) +11 23.02.23 3,468 115 26쪽
428 복수의 꽃. (2) +2 23.02.22 3,558 128 24쪽
» 복수의 꽃. (1) +5 23.02.21 3,677 123 20쪽
426 내가 먹을 걸 남에게 맡기면 위험이 따른다. (4) +6 23.02.20 3,647 126 25쪽
425 내가 먹을 걸 남에게 맡기면 위험이 따른다. (3) +5 23.02.18 3,702 135 25쪽
424 내가 먹을 걸 남에게 맡기면 위험이 따른다. (2) +6 23.02.17 3,654 134 25쪽
423 내가 먹을 걸 남에게 맡기면 위험이 따른다. (1) +7 23.02.16 3,745 139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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