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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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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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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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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20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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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내가 먹을 걸 남에게 맡기면 위험이 따른다. (4)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호농과 중양종묘는 파커 필드와 가온그룹이 각각 50%의 지분을 나눠서 보유하고 있다.

윌리엄 파커가 두 회사를 방문하고 싶어 했다.

한국의 비료회사도 견학하고 싶어 했다.

의장 비서실에서 대송 라이신과 내동비료에 급하게 연락해서 견학을 허락을 받았다.


“백설그룹에서.....?”

“예. 의장님. 이문현 회장이 직접 회장님을 초대하겠다고 연락을 해왔습니다.”

“할아버지께 여쭤볼게요.”


백설그룹이 윌리엄 파커에게 식사를 대접하겠단다.

아시아에서 파커 필드의 콩과 옥수수를 가장 많이 사가는 기업이 백설그룹이다.

일선에 물러났다고 하지만, 윌리엄 파커는 그 가문의 최고 어른.

백설그룹이 버선발로 뛰어와서 인사를 드려도 모자란 입장이다.


“애덤이 함께 방한 한 것 보니까 빅 비즈니스 있는 모양이네.”

“한국 시장을 두고 메이저 곡물기업들의 움직임이 활발합니다.”

“곧 WTO가 출범하니까 사전정지 작업을 하려는 모양이죠.”


류지호는 만찬에 함께 하지는 않았다.

눈치껏 빠져주었다.

비즈니스 대화가 오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한국은 연 5조원 이상의 곡물을 수입하는 세계 5위 수입국이다.

곡물 메이저들도 일찌감치 한국에 진출해 있다.

대표적인 곡물 메이저가 카질(Carzill)이다.

카질은 한국전쟁 후 식량 원조로 막대한 이윤을 챙겼던 기업이다.

전 세계 63개국에 지사를 두고 쌀·밀·옥수수·콩 등 모든 농산물을 유통하면서 국제 곡물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내년에는 정식으로 한국 법인을 만들 계획이다.

이전 삶에서는 2007년 국내 사료업체를 인수해 세계 최대 규모의 사료 공장을 충남 당진에 마련하면서 국내 사료시장 1위 자리를 꿰찼다.

비록 카질과 격차가 있지만, 파커 필드 역시 메이저 곡물회사다.

파커 가문과 가족처럼 지내면서 류지호는 곡물 시장의 비밀을 조금 알게 되었다.

세계 3대 곡물회사들의 전 세계 농업 시장 장악력은 무시무시했다.

음모론에서 잘 다뤄지지 않는 것이 의아할 정도다.

곡물 메이저가 무서운 이유는 그들이 세계 각국의 작황을 손금 보듯이 들여다본다는 점이다.

카질은 인공위성을 통해 세계 주요 곡창지대의 작황을 매일 세 차례씩 점검하고 있다.

여기에 각국에 뿌려놓은 지사를 통해 입수한 정보까지 합해 세계 농업 흐름을 한눈에 파악하고 있다.

미국의 CIA도 카질에게 정보를 얻어 사용할 정도다.

파커 필드는 자체 인공위성을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위성사업자와 계약해 주요 곡창지대를 모니터 하고 있다.

대략 30개국 지사를 통해 농업분야 동향을 파악하고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또한 해당 국가 정부나 유관단체에 로비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곡물 메이저들의 로비력은 상상 이상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시장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다.

2003년에 WTO 체계가 출범하게 된다.

이전 삶에서 ‘WTO 협상은 카질 협상‘이라는 비판이 일 정도로 WTO 협상에서 카질이 내놓은 의견이 미국 정부안에 그대로 반영되기까지 한다.


“한국인이 주로 먹는 쌀 품종이 자포니카거든요. 세계 교역량이 매우 적어 한국이 수입선을 바꾸기도 마땅치 않더라구요.”


한국은 쌀 수입에 있어 세계 곡물 메이저에게 항상 끌려갈 수밖에 없다.

20년 전 그런 사례도 실제 있었다.

1980년 냉해로 흉작을 맞은 한국이 쌀을 수입하려고 하자 곡물 메이저는 톤당 200달러에서 550달러로 올려버렸고, 한국은 그 가격에 쌀을 수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말라는 법도 없죠.”


윌리엄 파커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한국의 농업을 지키고 싶었던 게냐?”

“약간은 충동적이었어요. 호농과 중양이 유전자조작 농산물의 몬산토에 매각되었다면....”


류지호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 고래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GMO에 대해 공포심을 가질 필요는 없단다.”


몬산토(monsanto)의 유전자변형 종자제품은 아직 한국에서 승인이 나진 않았다.

큰 논란을 불러오는 유전자 변형 옥수수 품종을 승인받기 위해 현재 한국정부에 열심히 로비 중이다.

게다가 만약 몬산토에 두 종묘회사가 넘어갔다면, 10년간 약 8,000억 원에 이르는 로열티를 내야 했을 터.

또한 300개가 넘는 종자 특허와 판매권이 그들에 넘어갈 수도 있었다.

내가 먹을 것을 남에게 맡길 뻔 했다.


“가온이 농업까지 관여할 순 없어요. 다른 메이저 곡물 기업보다 차라리 파커 필드가 나을 것 같았다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류지호로서는 그저 파커 가문과의 친분을 이용해 약간의 양보를 기대할 수밖에.

물론 파커 필드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사업을 펼치지 한국의 사정을 봐줄 리 없다.

윌리엄 파커라고 다르지 않았다.

자선사업에 아낌없이 돈을 퍼붓는 것과 가문의 사업이 이익을 얻는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파커가 한국 농업 분야에 직접 들어오는 것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구나.”

“<Remo : The Destroyer>에서 쓴 대사가 있어요. 내가 먹을 걸 남에게 맡기는 건 늘 위험이 따른다는 거죠. 남의 손을 자신의 입에 넣게 해 주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까요.”


식량의 무기화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미 전 세계 곡물시장은 다섯 개의 메이저 업체가 다 장악하고 있으니까.

대비하겠다고 법석을 떨어봐야 이미 늦었기에 소용이 없다는 의미다.


“허허.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 ✻ ✻


파커 가족이 미국을 돌아가기 전 날에는 모두 함께 신촌 가온백화점에서 쇼핑을 했다.

이번에 함께 오지 못한 제임스 부부에게 줄 선물을 구입했다.


“요 며칠 어르신이 너무 무리하시는 건 아니니?”


심영숙은 윌리엄 파커의 건강을 걱정했다.


“할아버지가 이번 방한을 마지막으로 여기시는 것 같아요.”


아니나 다를까.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날 밤 윌리엄이 류지호만 따로 불렀다.


“이 할아비의 유지 하나를 이어줬으면 싶구나.”

“유언을 남기시는 거라면 나중에... 좀 더 나중에 듣고 싶어요. 아직 할아버지는 죽음을 떠올리거나 준비하실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정신이 말짱할 때, 영혼이 맑을 때 죽음을 대비하는 것이 늙은 사람의 현명한 태도란다.”

“.....”

“사람이 사람에게 저지르는 가장 큰 죄악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요, 늙음은 나이가 말해주는 게 아니라 후회가 꿈을 대신하는 순간부터 늙기 시작하는 법이다.”

“......”

“후회할 일은 시도조차 하지 말거라.”

“....예.”

“젊게 살 거라. 미움보다는 사랑을, 무관심보다는 주변을 항상 살피는 따뜻한 사람이길 바란다. 물론 지금도 아주 잘하고 있지만.”

“....예.”

“마음 편하게 영화하는 것이 꿈이라 했지? 이제 꿈을 다 이룬 것 같아?”


이뤘을까?

아무 걱정 없이 영화를 찍으면서 사는 삶.... 그런 것 같다.

다만 그걸로 다 된 걸까?

그렇게 이룬 꿈을 평생 유지하며 사는 게 행복인 것이고?

너는 꿈이 뭐냐.

이런 질문은 삶에 목표가 없을 때 방황하게 되고 시간을 낭비하게 되기 때문에 무엇을 위해 시간을 쓰는 지를 고민하라는 뜻에서 던지는 것일지 몰랐다.

꿈이란 가치 있는 목표다.

그 가치라는 것은 개인적인 것일까 사회적인 것일까?

‘내 꿈은 이거다‘라고 명확하게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 게 있다고 해도 그게 정말 꿈을 가지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그게 아니면 누군가가 사람들의 머릿속에 넣어준 남의 꿈을 추구하고 있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꿈다운 꿈을 꾸고 있지 못한 셈이 된다.

류지호는 꿈은 저기 멀리 미래에 있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현재를 살기 때문이다.

꿈이란 그렇게 살기로 결심하고 그렇게 사는 순간 성취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살기를 멈추는 순간 깨지는 것은 아닐까.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는가 하는 것은 알 수 없다.

안다면 오히려 의미가 없다.

안다는 것은 미래가 결정되어져 있다는 것이니까.

이미 미래를 체험했다는 것과도 같으니까.

그로인해 꿈이 소진되고 무의미해졌다고도 볼 수 있고.

어쩌면 류지호의 꿈이란 것이 꿈이 아닐 지도 모른다.

체험을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기에.


‘나이 서른을 앞두고.... 아니지, 두 삶을 통틀어 80년을 살았음에도 여전히 꿈 타령이라니...’


윌리엄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자, 류지호가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우리는 우리가 결정할 수 있고 결정해야 하는 일은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해. 우리가 결정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고 알 수도 없는 것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아야 한단다. 이것을 잊을 때 우리는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게 되고, 존재하지 않는 환상을 진리로 믿게 되지.”


류지호와 관계없는 없는 이야기들이다.

이미 이 시간대를 살아봤기 때문에.

회귀인지 전생각성인지, 상식을 벗어난 일까지 겪어 본 입장에서는.

비과학적이라고 해서 무조건 배척하지도 존재하지 않는 환상을 진리라고 믿지도 않는다.


“사기꾼들은 이것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속인단다.”


류지호는 순간 뜨끔했다.

마치 윌리엄이 자신을 빗대서 말하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처음 너와 연이 닿았을 때, 너의 눈은 다 산 노인네의 눈을 하고 있었지. 하지만 언젠가부터 네 눈은 열정과 에너지로 넘실거리더구나. 이 할아비는 그 눈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어. 꿈이라고 해도 좋고, 삶의 목표라고 해도 좋고, 멘토의 족적을 똑같이 밟아 나가는 여정이라고 해도 좋아. 네 진짜 꿈을 네 스스로가 명확하게 알고 있느냐?”


이런 질문을 받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다.

질문의 답을 찾기보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는 편이 좋다.

계속해서 가속 페달을 밟아 속도를 내 달리다 보면, 자칫 사고가 터졌을 때 되돌릴 수 없는 대형사고가 난다.

홀로 차분히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다.


‘내가 영화를 찍긴 하나 보네.’


윌리엄으로 인해서 영화 찍기 전 루틴이 발동됐다.

영화에 들어가기 직전 생각이 많아지고 온갖 상념들이 휘몰아치는 순간들.

고독이란 녀석과 진하게 연애하는 것만 같은.... 외로워지는 때이기도 하고.


드르릉.


침대에서 옅은 코골이가 들려왔다.

어느새 윌리엄이 잠들었다.


“멋지게 살고 싶었어요. 할아버지.”


쿨쿨.


“추상적인가요? 4대 국제영화제에서 모두 인정받는 감독이 되고 싶어요. 제 손으로 만든 영화가 전 세계 박스오피스 30억 달러를 기록하는 걸 보고 싶어요. 아무도 시도 하지 못하는 그런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그게 꿈... 아니 이번 삶의 제 목표에요. 물론 직업적으로 그래요. 가치 있는 삶을 살도록 노력할 게요. 후회나 미련이 남지 않도록.”


착각일까.

깊은 잠에 빠진 윌리엄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 것 같았다.


✻ ✻ ✻


윌리엄과 레오나 미국으로 돌아갔다.

류지호는 파커 조손을 배웅하고 회사로 돌아 와 보고서를 확인했다.

이번 방한 수행원에 애덤 맥거번 파커 필드 CEO가 포함되었을 때 의장비서실에서는 나래안전에 관련 정보 수집을 요청했다.

그 결과 올라온 보고서가 류지호가 읽고 있는 서류다.

보고서에 따르면 곡물 메이저들의 움직임이 한국에서 부쩍 활발해지고 있었다.

몬산토의 유전자변형 농산품의 국내 승인 로비는 물론이고, 한양종묘를 인수해 한국에 진출한 스위스 농업기업 아스트라 제네카(Astra Zeneca)가 기존의 기업 분리와 정비를 마치고 한국 지사를 새롭게 출범하기로 했다.

아스트라 제네카는 쌀 유전자 정보까지 해독한 농업기업이지만, 사실은 농약으로 더 유명한 기업이다.

내년에 전북 익산에 농화학 공장을 세울 예정이라는 내용이 보고서에 들어 있었다.

5대 곡물 메이저가 모두 한국 시장을 노리고 있었다.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전역의 전진기지로 삼는 것을 덤이다.


“그러면 그렇지. 꿈은 개뿔.... 할아버지가 괜히 위성사업을 인수한 것이 아니었네....”


대니얼 그레이엄이 항공우주사업을 인수한 것은 우주에 대한 꿈 때문이 아닌 모양이다.

위성을 이용한 전 세계 광물자원 탐사 및 기상 관찰의 목적이었다.

또한 주요 국가의 기온과 강수량 데이터를 수집할 생각인 것이다.

JHO/DirecTV는 아메리카 대륙 전역을 커버하기 위해 위성을 다섯 개 이상 띄울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2010까지 최소 5개까지 위성을 쏘아 올릴 계획이다.

그 중에는 기상관측과 정밀지도 관련 위성도 끼어 있다.

류지호가 투자하는 실리콘밸리 벤처 중에는 날씨 예측 기술을 개발하고, 그 빅데이터를 가공해 유의미한 가공 결과를 파는 기업도 포함되어 있다.

가온그룹 산하 디지털 연구소에는 빅테이터, 위성을 통한 정밀 지도·날씨 예측 및 통계분석 같은 기술개발도 포함되어 있다.

날씨와 기후는 일차적으로 농업과 밀접하지만, 신재생에너지와도 연관되어 있다.

새만금간척지의 연중 일조량, 강수량, 풍향, 조수간만 등에 대한 빅데이터가 쌓이면 좀 더 효율적인 재생에너지 개발과 운영을 기대할 수 있다.

당연히 한국 영화산업에도 좋다.

정확한 일기예보는 로케이션촬영 스케줄을 계획하는데 도움을 주고 결국 예산 절약으로 이어지게 된다.

거기에 드론 기술과 관련한 벤처회사와 대학 연구팀에 투자 중이다.

새만금간척지에 조성될 대규모 농지의 모니터링과 농약 및 비료 살포 등에 드론이 활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탁!


류지호가 아직 읽을 것이 남아있는 보고서를 덮어버렸다.

오지랖 병을 간신히 억눌렀다.

애덤 맥거번이 누굴 만나 무엇을 논의했는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진 않았다.

무역회사와 농산물가공 관련 기업 관계자들을 연쇄적으로 만난 것으로 보아 WTO체제 출범을 앞두고 주요 농산물 수입국가에 대한 사전작업을 하려는 듯 보였다.


“후우!”


자신은 지금 한 눈 팔 때가 아니다.

꿈이 되었든 목표가 되었든 그의 영화는 계속되어야 했기에.


“연말까지 가온그룹 관련 사안을 내게 따로 보고할 필요 없어요. 모든 걸 회장 선에서 처리하도록 하세요.”


류지호 딴에는 폭탄발언이었다.

헌데 래리 킴 회장은 시큰둥하기만 했다.

이미 가온그룹 전반을 책임지고 있는 것은 자신이었다.

게다가 가온웨딩 스튜디오 시절부터 사업은 내팽개치고 영화 찍겠다고 임원들에게 업무를 떠넘긴 일이 많았던 류지호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 ✻ ✻


WaW 엔터테인먼트 본사는 강남 GOM사거리 빌딩에 있다.

그곳에서 영화 사업 전 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 영화 제작은 강북의 합정동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합정로터리에서 도보로 10분 거리 대로변 8층짜리 WaW 픽처스 건물.

외환위기로 매물로 나왔던 건물을 WaW 엔터테인먼트가 매입해 프로덕션 오피스로 사용하고 있었다.

1~2층에는 커피숍과 음식점, 편의점이 입주해 있다.

3~5층에는 프로덕션 오피스가 모여 있고, 6~7층에는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들의 기획개발실이 모여 있다.

8층은 프로덕션 지원 사무실이다.

현재 프로덕션 오피스에 입주해 있는 영화들은 <퇴마기록Ⅱ>, <풍운아Ⅱ>, <라이방>, <고양이를 부탁해>, <소름>, <복수의 꽃>등이다.

WaW 픽처스 프로덕션 오피스는 오늘도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다.

<복수의 꽃>팀 역시 한창 프리프로덕션이 진행 중이다.

류지호는 오로지 한남동 집과 합정 오피스만 오가는 단조로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Eye-MAX 팀 및 김영복 촬영팀과 함께 테스트 촬영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프로덕션 오피스를 방문할 일이 많지 않은 박건호 대표가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양수리 종합촬영소에 만들어진 공동경비구역 야외 세트장 기증식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단다.

그 요청을 전하기 위해 박건호 대표가 직접 합정 오피스까지 찾아왔다.


“제가 뭐라고 참석을 해달라는 거죠?”

“한국영화계 파워랭킹 1위 아니십니까?”

“이제 막 입봉합니다만?”

“WaW 창업자이자 오너시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경제부와 파파라치만 끌고 갈 텐데.....”


2월 말에 크랭크인 한 <JSA>의 제작사 브라이트필름은 촬영을 마치자 사용된 야외세트를 영화진흥위원회에 기증하는 행사를 열 예정이다.

<JSA>의 판문점 야외세트는 복잡한 사연으로 탄생했다.

제작사는 남북 화해 무드에 일조한다는 긍정적인 취지로 국방부의 협조를 얻으려 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협조요청을 거부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 지하벙커에서 근무하던 김현 중위가 오른쪽 관자놀이에 총상을 입고 사망한채 발견된 ‘김현 중위 사망사건‘이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군당국에 부담을 주고 있었다.


[남북 병사의 접촉은 현행법상 불법이다. 사병 교육의 패러다임에 위배될 소지가 다분해 지원을 할 수 없다.]


국방부의 협조로 실제 판문점과 군사분계선을 넘나들며 촬영을 하려고 했던 제작팀은 할 수 없이 세트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투자배급사인 WaW 엔터테인먼트 산하 여주 촬영소에 공동경비구역 야외 세트를 지으려고 했다.

WaW 종합촬영소 측에서도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

아직 촬영소 건설이 완공되지 않았기에 촬영이 어렵다는 이유를 들었다.


“브라이트필름이 꽤 섭섭했다고 하지 않았나.....?”

“섭섭해도 어쩌겠습니까? 완공도 안 된 촬영소에 덜컥 세트를 지을 수는 없지요.”


게다가 영화 한 편만 사용하고 말게 될 세트다.

무려 8,000평 부지를 할애해 판문점 세트를 짓는 것에 종합촬영소 사장은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감독님께서 여주 종합촬영소 투어 프로그램을 10년 후에나 고려하겠다고 하셔서 스튜디오 임원들도 야외 세트 유치를 금방 포기할 수 있었지요.”

“청와대 세트는 두고두고 재활용할 수 있지만, 판문점은 더 이상 쓸 데가 없겠죠. 청와대는 일반이 들어가 볼 기회가 거의 없지만, 판문점의 경우 견학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WaW 종합촬영소가 공동경비구역 세트장 건설을 거부하자 하는 수 없이 선택지는 양수리 종합촬영소가 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세밀한 설계와 고증을 거쳐 6개월 만인 지난 4월 양수리 종합 촬영소와 충남 아산 세트를 완공했다.

양수리 종합촬영소 판문점 세트는 8,000평 부지에 총 8억 원의 제작비를 들여 판문각, 팔각정, 회담장을 설치하고 충남 아산세트는 1억 원을 들여 사건 현장인 돌아오지 않는 다리와 남북초소, 도끼 만행 사건으로 유명한 미루나무 등을 재현했다.

8,000평의 부지에 실물의 90% 크기로 세워진 판문점 세트는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3억 원을 지원 받아 7개월에 걸쳐 공사했다.


“영진위 위원들과 언론인들만 초대하는 거 아니었어요?”

“꼭 오셔서 자리를 빛내달라고 합니다.”

“자리를 빛내긴.... 제가 참석하면 영화홍보에 별로 도움이 안 될 텐데....”

“기자들이 좋아하지 않겠습니까?”

“대유 빅딜 질문이 쏟아질 게 뻔하죠. <복수의 꽃> 진행사항만 잔뜩 물어볼 지도 모르고.”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고위공무원은 안 오죠?”

“남북정상회담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참석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곧 열릴 남북 정상회담이 매일 뉴스 첫 기사를 장식할 정도로 떠들썩했다.

영화계 행사까지 챙길 여력이 있을 턱이 없다.


“양수리까지 찾아와서 난동을 부리진 않겠죠?”

“비공개 행사이기 때문에 기사가 나간 다음에야 알려질 겁니다.”


영화의 내용이 내용인지라 제작사는 극우반공단체들의 반발을 꽤나 우려하고 있다.

오랜 군사독재 기간 진행된 맹목적인 반공반북 선전의 잔재 때문일까.

19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화 분위기가 형성된 이후에도 북한이 언급되는 작품에 대해 외압이 상당했다.

지난 1990년 해방공간의 3년을 다룬 드라마에서 모 탤런트가 연기한 김일성이 멋있게 나온다는 황당한 이유로 13회 만에 갑자기 종영되는 일도 있었고, 1994년에는 수백만 부가 팔린 <태백산맥>을 두고 극우단체들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해 오랜 시간 수사가 진행된 일이 있었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섰다고 해서 그 모든 것이 해소된 것은 아니다.

사회 전반에 극단적인 반공 정서가 여전히 흐르고 있다.

그런 분위기에서 남북한 군인들의 우정을 다룬 영화는 대단히 민감하면서,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킬만한 했다.


“다행히 대통령이 북한도 방문하고, 남북 화해무드가 형성되면서 영화흥행에 있어서 청신호가 켜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작자와 감독이 국보법 위반 구속도 각오하고 만들었다.

반공을 국시로 표방한 정부였다면 제작 자체가 어려웠을 수도 있다.


“박 감독은 오히려 냉전주의자들이 활개치고 남북갈등이 고조되어 이념대립이 극단인 시절에 영화를 빵 터트리고 싶었다고 하던데요?”

“그랬다가는 영화가 망하는 것은 둘째 치고.... 온갖 반공단체에게 테러를 당했을 겁니다. 그냥 술자리에서 호기를 부렸겠지요.”

“박 감독은 그러고도 남아요.”

“감독치고 개성 없는 사람 없다고 그 친구도 한편으로는 참 고집스럽습니다.”

“감독이라면 자기 세계도 있고 철학과 사상에 입각한 고집과 호기도 부릴 줄 알아야죠.”

“심 피디가 박 감독 때문에 영화 내내 속앓이를 많이 했습니다.”

“한편으로 전우애도 생겼을 걸요.”


지금까지의 필모그래피만 놓고 보면 봐줄만 한 것이 전혀 없는 감독이 박진우다.

그런데 영화평론 분야에서 꽤 인정을 받고 있었다.

절치부심 하던 차에 맡게 된 것이 <JSA>였지만, 영화의 방향을 놓고 제작사와 꽤나 갈등이 있었다.

한국현대영화사에서 창작 부분에 있어서 기획 프로듀서의 포지션과 역할의 문제점이 단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감독 고유영역에서 어느 선까지 제작자가 개입할 수 있는가 숙제를 던진 작품이다.

이후로 10여 년이 지나고 제작사가 감독의 영역이었던 편집권까지 휘두르게 된다.


“어떻게, 저 혼자 참석하는 걸로 할까요?”


박건호 대표는 자꾸 딴 소리를 하는 류지호의 심사를 파악했다.


“촬영준비로 바쁜 걸로 해요.”

“알겠습니다.”


류지호가 행사에 참석해 자리를 빛내는 것보다 스포트라이트만 받을 가능성이 높았다.

영화를 위해서는 뭐라도 하나 더 언론에 기사가 노출되는 것이 좋다.

제작사와 영화진흥위원회의 의도는 알지만 참석을 하지 않는 것이 모두에게 좋았다.

IMF의 시름을 털어내지 못한 국민들이 남북한 화해무드로 모처럼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지 남북한 문제를 강대국들에게 의존하거나 그들만 바라보았다.

내가 먹을 걸 남에게 맡기면 독을 넣을지 침을 뱉을지 알 수 없다.


‘내 문제를 남에게 해결해달라고 의지하는 것처럼 위험한 것도 없지.’


남북한 정상회담을 일주일 남겨둔 날.

경기도 양수리 종합촬영소에서 열린 <JSA> 세트장 공개 및 기증식에서 남북 분단의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는 판문점을 재현한 오픈 세트가 일반에 첫 선을 보였다.

실물의 90% 크기로 제작한 북측 판문각, 남측 자유의 집, 군사 분계선에 걸쳐져 있는 회담장 다섯 개 동이 취재진에 공개되었다.


"판문점을 직접 견학한 것은 물론이고 지난 95년 귀순한 원작자의 도움과 각종 자료를 참조해 실물과 거의 똑 같게 지었습니다. 향후 5년 이상 일반인들의 교육과 관광 장소로 활용될 수 있도록 견고하게 만들어졌음을 밝힙니다.“


행사를 주관한 브라이트필름은 뙤약볕이 내려 쬐는 데도 불구하고 남북한 경비병 의상을 입은 23명의 엑스트라를 '자유의 집'과 판문각, 군사분계선 세트 등에 포진시켜 긴장된 분위기를 연출했다.

촬영이 진행되었던 회담장 내부를 참석자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심지어 기자들에게는 오픈 세트가 실제 판문점 일대의 모습과 유사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판문점에서 촬영한 사진을 보도자료와 함께 배포했다.


[영화 <JSA> 오픈세트 기증식에서 각색 작업에 참여한 원작자 정씨는 "<JSA>는 이데올로기를 휴머니즘으로 녹여 내는 최초의 영화일 것"이라며 "인간애와 사랑이 나오는 이 영화 속의 휴머니즘이야말로 통일을 앞당기는 지름길"이라고 말해 장내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또 이 영화를 연출한 박진우 감독은 "몇 개월 동안 촬영을 한 곳이지만 북측 지역인 판문각 앞에서 공식행사를 하게 돼 기분이 이상하다"며 "남북 간의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영화를 기획했는데 때맞춰 남북 정상 회담이 성사돼 기쁘다"고 말했다. 오는 9월9일 개봉될 예정인 <JSA>는 북한 초소병의 죽음을 둘러싸고 남북한이 긴장관계에 빠져들자 유엔군 소속의 한국계 스위스 여군 소령이 사건의 진실을 밝혀가는 미스터리 영화로 남북 간의 이념적인 대치상황보다 인간적인 교류를 그리고 있다. 남북의 긴장완화 물결을 타고 추석을 앞 둔 9월 9일 개봉 예정이다.]

- CineFeel.com. 문성호 기자.


작가의말

날씨가 많이 푸근해졌다가 다시 조금 추워진다고 합니다. 건강 유의하십시오. 활기차게 한 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PS. 검은머리님 과분한 후원 감사드립니다. 완결까지 재밌게 읽으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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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6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3.02.20 09:44
    No. 1

    잘 보고 있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6 도뮤
    작성일
    23.02.20 09:47
    No. 2

    재밌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하얀유니콘
    작성일
    23.02.20 11:05
    No. 3

    식량은 카르텔이 워낙 튼튼해서..
    지금 세계 전체 식량생산량이 1.5배라고
    하는데 굶는 사람이 있다는게 이해가 안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범패
    작성일
    23.02.21 12:06
    No. 4

    그랬다가는 영화가 망하는것은 어디갔던~~~ 요부분 뭐가 빠진거 같이 안읽히네요 망하는것은 물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3 트뤼포
    작성일
    23.02.22 12:48
    No. 5

    수정/보완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7 cooooool
    작성일
    23.07.06 23:54
    No. 6

    식량생산량이 1.5배라도 제대로 분배되어야 굶지않는거죠

    괴거 북한의 고난의 행군도 실제 구호물품이 항구에 쌓여있어도 지역까지 골고루 분배를 못했었죠
    여러가지 물류 수송시스템 등이 상당히 망가진 상태라서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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