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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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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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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2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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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꽃. (6)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G.O.M 강남점은 코엑스몰점 개관 때에 맞춰서 심야상영을 시작했다.

평일엔 1개관, 주말엔 전체 상영관을 심야 상영에 할당하고 있다.

평일 50~60% 수준이던 심야상영 점유율이 주말이 되면 100%가 된다.

G.O.M 강남점이 심야상영을 시작하자, 다른 극장들도 따라했다.

특히 8월에 문을 연 Star6 정동은 개관과 동시에 심야상영이라는 파격을 선보였다.

새벽 1시 35분 상영을 1회로 못 박은 동대문 프레야 타운 MMC처럼 ‘24시간 상영’ 극장까지 생겨났다.

하룻밤 3편을 패키지로 묶어 2편 가격에 보는 프로그램도 등장했다.


“심야 영화관들은 대부분 두 편 가격인 1만2천원에 최신 영화 세편을 볼 수 있도록 ‘패키지 상품’을 만들어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G.O.M 강남점을 찾은 류지호에게 오동석 부사장이 찰싹 붙어 있었다.

퇴근시간이 훌쩍 넘었음에도.


“심야상영을 주로 보는 올빼미족이 늘기 시작하면서 극장업계에도 단골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G.O.M은 강남점과 목동점이 심야상영을 하고 있다구요?”

“예. BGV는 강변, 명동, 씨네박스 압구정에서 하고 있고, Star6 정동은 매일 밤, 신촌 영화나라, 목동 킴스시네마, 명동 코리아 극장 같은 곳은 주말 3편 패키지로 차별화를 선언하며 대형 멀티플렉스 체인에 도전장을 내민 형국입니다.”

“근데, 부사장.... 퇴근 안 해요?”

“오랜만에 감독임이 오셨는데 어찌 제가.....”


그 핑계로 집에 가지 않으려는 속셈이 눈에 뻔히 보였다.

부부관계가 원만해도 유달리 집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남편이 있다고 하더니.

오동석도 그런 모양이다.


“자, 얼른 집에 들어가서 육아에 지친 형수님 위로해 주세요.”

“애는 장모님이 보십니다. 위로해주고 자시고 할 것도 없습니다.”


류지호가 퇴근을 놓고 오동석과 옥신각신 하고 있는 사이 박건호 대표, 전하영 피디, 이동화가 속속 극장에 도착했다.

이어 <복수의 꽃> 촬영·조명·미술 감독까지 모였다.

강남점 매니저를 어디로 쫒아냈는지 오동석이 직접 200석 규모의 상영관으로 일행을 안내했다.

영사실에는 현상소에서 방금 가져온 <복수의 꽃> 35mm 러쉬 필름(rush film) 상영 준비가 한창이었다.

류지호와 일행이 객석 중간에 자리를 잡고 얼마 안 가 극장 불이 꺼졌다.


촤르르르!


30분 분량의 러쉬 필름이 상영되기 시작했다.

촬영한 필름은 그 날 바로바로 현상해서 제대로 촬영이 되었는지 확인 작업을 한다.

그를 위해 처음으로 현상된 필름을 러쉬(rush) 혹은 데일리(daily)라고 부른다.

전 세계적으로 보통 rush film이라고 불리는데 영국에서는 daily film이란 용어가 주로 쓰이는 편이다.

암튼 <복수의 꽃>은 크랭크인 한 날부터 정비기간 전까지 꽤나 많은 분량을 촬영했다.

그 모든 러쉬필름을 감독이 다 확인하는 일도 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류지호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촬영분량을 보고 싶어 했고, 정비기간에 맞춰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시설이 가장 좋은 편인 상영관을 열어 시사를 하게 됐다.

할리우드에서는 스튜디오마다 따로 시사실이 준비되어 있다.

극장을 잡아서 러쉬필름을 볼 이유가 없다.

WaW 픽처스는 아직 자체 시사실을 갖추고 있지 못해서 G.O.M 강남점에서 간혹 시사를 할 때가 있다.

물론 대부분의 영화는 현상소에 마련된 시사실에서 확인한다.

G.O.M 강남점에서는 파나플렉스 슈퍼 35mm로 촬영한 필름만 확인하기로 했다.

Eye-MAX 촬영분은 63빌딩 Eye-MAX관에서 따로 확인하기로 했다.

G.O.M 강남점 1관은 70mm 규격의 상영관이다.

그렇다고 해서 Eye-MAX 필름을 상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두 포맷의 상영방식이나 영사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63빌딩 Eye-MAX관을 빌려서 러쉬필름을 확인하기로 했다.


“우리 감독님은 억만장자라서 그런가? 스케일 달라도 너무 다르시다니깐.”

“그렇죠? 남들은 35mm 러쉬 뜨고 싶어도 못 뜨는데.....”


상업영화의 러쉬필름은 돈을 아끼기 위해 16mm로 뜬다.

예전에는 가편집도 16mm로 했다.

12만 피트(한국영화 평균)에서 최대 30만 피트(영화 무사)를 모두 35mm 러쉬를 뜬다면, 그 비용만 해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류지호는 단편영화를 찍을 때부터 돈을 아끼는 법이 없었다.

길바닥에 버려지는 돈만 아껴도 이 같은 호사를 충분히 부릴 수 있음에 잘 알고 있으니까.


“근데 감독님. Eye-MAX와 DMR이라는 것은 어떻게 구분해요?”


전하영 피디의 물음에 류지호가 친절하게 답했다.


“그냥 보면 알아요. 화면이 스크린에 꽉 차면 오리지널 Eye-MAX로 촬영한 것이고, 스크린 상하에 공백이 생기면서 가로가 세로보다 조금 길어진다면 DMR 화면이라고 보면 됩니다.”


Eye-MAX의 오리지널 포맷 화면비는 1.44:1이다.

일반 영화는 보통 1.85:1(비스타비전) 또는 2.35:1(시네마스코프)이다.

35mm로 촬영한 영상을 Eye-MAX DMR을 거치면 대략 1.9:1 화면비가 나온다.

<복수의 꽃>의 경우 1.44:1과 1.9:1이 공존하게 된다.


“영화를 보는 동안 수시로 전환되긴 하는데, 그 부분을 인지하고 보지 않는 이상 일반 관객들은 크게 못 느낄 수 있어요.”


물론 Eye-MAX 전용관에서 볼 때 그렇다는 의미다.

<복수의 꽃>은 지난 D-Cinema 개봉 때처럼 Eye-MAX 시스템이 갖춰진 상영관에서만 오리지널 포맷으로 상영될 예정이다.

일반 극장에서는 2.35:1(시네마스코프) 화면비로 개봉될 예정이다.


‘8~9년 후에 재개봉을 할 수 밖에.....’


현재로서는 도리가 없었다.

아무리 빨라도 3년 후가 되어야 <복수의 꽃>을 전 세계 멀티플렉스에서 Eye-MAX로 감상할 수가 있게 된다.

멀티플렉스용 Eye-MAX 전용관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꽤 필요했다.


‘누가 뭐라든 이왕 칼을 뽑았다면 무라도 썰어야지.’


시시한 영화가 되어서는 추후 재개봉은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만다.

1.44:1이든 1.9:1이든.

넓은 화면은 큰 스케일과 스펙터클을 제대로 보여주는 맛이 있다.

미장센을 만들어내는 것에서 시네마스코프와는 또 다른 수고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조명 역시 일반 35mm 영화보다 번거롭다.

상하의 폭이 모두 넓어지다 보니 화면에 침범해 들어오는 요소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조명을 좀 더 섬세하게 신경을 써야 한다.

DMR은 반드시 필름 스캐닝과 키네스코프 등 후반 작업을 거칠 수밖에 없다.

때문에 1:1 영사방식 경우보다 포커스 조절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Eye-MAX 포맷 상업영화에서 멋진 장면이 나오기 위해서는 기술력의 뒷받침은 기본이고, 섬세한 미장센과 미술이 융합되어야 한다.

그만큼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아직까지 할리우드에서도 상업영화에 도입해본 적 없다.

리드 스콧이 <블랙호크 다운>에서 활용할 계획이지만, 러닝타임이 10분도 안 된다.

그 어려운 걸 류지호가 세계영화의 변방 충무로에서 시도하고 있다.


‘난 왜 쉬운 길을 놔두고 항상 어려운 길로만 가는 것 같지?’


과거로 돌아와 류지호가 해왔던 행적을 보면 절대 허튼 생각이 아니다.

영화에서 만큼은 소위 ‘거저먹는’ 법이 없는 류지호다.

아직 시도하지 않거나 노하우가 없는 분야만 건드리고 있다.

마치 누군가 그런 환경으로 떠미는 것처럼.


“풀프레임으로 촬영하긴 했는데, 이걸 가지고 어떻게 1.9:1을 만든다는 건지 감이 잘 안 와.”


김영복 촬영감독이 푸념하듯 말했다.

그는 직전에 <JSA>에서 슈퍼 35mm를 작업했었다.

2.35:1 화면비의 시네마스코프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아나모픽 렌즈를 이용해 상을 1:2로 좌우 압축하는 방식이 있다.

다른 방식은 렌즈는 기존의 렌즈를 쓰고 카메라의 게이트와 그라운드 글래스 등을 바꾸고 촬영해서 현상 과정에서 옥스베리 작업을 거쳐 압축된 프린트를 만든 후에 최종적으로 영사할 때 특수한 영사기 렌즈로 상을 다시 1:2로 확대시켜 보여주는 것이다.

후자는 초창기를 제외하고 거의 활용되지 않는다.

어쨌든 두 방식 모두 사운드트랙이 들어갈 부분까지 필름의 전 면적(풀 프레임) 모두를 활용해 촬영한다.


“솔직히 나도 잘 몰라.”

“네가 모르면 누가 알아?”

“나도 해봐야 안다고.”

“너도 어떻게 나올지 모르고 그냥 막 찍는 거야?”

“어떻게 나올지는 아는데, 그 과정은 잘 모른다고.”

“......?”


김영복이 황당한 얼굴로 류지호를 돌아봤다.


“난 연출하는 사람이지 엔지니어가 아니잖아.”

“풀 프레임으로 찍어오라고 하는 걸 보면, 시네마스코프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긴 한데.”

“스퀴즈를 하지 않을까? 차이라고 하면 상이 압축된 35mm 프린트를 뜨는 것이 아니라, 무압축으로 Eye-MAX 70mm 프린트를 뜨는 거지.”

“좀 평범한 것 좀 찍어.”

“찍기 전에 그런 말을 했었어야지. 배 떠난 항구에서 ‘님아 돌아오오‘ 하면 배를 돌린대?”

“<민중의 적>도 혹시....?”

“Origin Ⅰ으로 촬영할 거야.”

“디지털 카메라?”

“응.”

“그건 그래도 상식 선 안에 들어있네.”

“과연 그럴까?”


류지호는 대충 얼버무리며 다시 한 번 러쉬필름을 상영해 줄 것을 부탁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가장 큰 과제는 관객을 객석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고 그들이 스토리에 집중하도록 또 영화 속 인물들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궁금해 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그런 것을 영화학에서는 관객을 ‘참여’시키도록 한다고 표현한다.

‘참여‘를 끌어내지 못하면 관객은 스토리에 흥미를 갖지 않게 되고 그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지도 않는 단순한 방관자가 되고 만다.

죽은 드라마가 된다.

스토리는 그 자체만으로 드라마틱하지 않다.

오직 관객에게 어떤 강렬한 감흥을 선사해야만 드라마틱한 서사가 완성된다,

이야기에서 드라마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관객으로부터 정서적 반응을 이끌어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복수의 꽃>은 소위 말하는 드라마성이 떨어지는 영화다.

관객들은 전형적인 복수극 스토리의 진부함을 느끼고 플롯 역시 단조롭다고 느낄 수도 있다.

서사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내러티브 비평을 하는 영화평론가들이 보기에 Eye-MAX는 그저 <복수의 꽃>의 허술한 내러티브를 가리는 포장쯤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내러티브 즉 스토리와 플롯만이 관객을 참여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이미지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증명은 많은 현대영화 감독들이 보여주었다.

펠리니, 안토니오니, 타르코프스키, 장 뤽 고다르, 큐브릭, 히치콕 기타 등등.

분명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세계를 이해한다.

개별적인 사건들을 하나의 맥락으로 끌어들여 자신에게 설득력 있는 이야기로 만드는 과정에서 그 사건들에 의미를 부여한다.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관객은 영화 속에서 풀어내는 정보의 전개를 따라가면서 그것의 개연성을 가늠한다.

이 개연성의 정도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통제하느냐가 영화의 완성도를 가르는 계기가 되곤 한다.

서사와 플롯이라는 것은 시간을 관리하는 것과 관련 있다.

관객의 참여를 자극하지 못하는 장면이 필요 이상으로 지속되고 있다면 그들은 영화 속에서 빠져오게 된다.

관객의 감정까지 자극하지 못하면 영화에서 완전히 떠나게 만들 수도 있다.

스토리를 새끼줄처럼 꼬아놓든, 감정동요를 일으키든,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하든 그 방법이 무엇이든, 영화는 관객을 영화 앞에 붙들어 놓을 힘을 갖춰야한다.

일반적으로 그 힘은 서사가 만들어낸다.

즉 주인공의 욕망, 중심 갈등,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정보의 전략적인 제시 같은 것들로.

<복수의 꽃> 시나리오는 미국식 ‘시나리오 쓰기’에 대입하면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는 심심한 스토리텔링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내러티브가 허술하지는 않지만.

<복수의 꽃>은 여주인공의 행적을 따라가는 영화이고, 결국 이 드라마는 그녀가 추격하는 이들이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재적인 메시지로 민중의 삶이 암시된다.

연화가 살아가는 시대상 그 자체가 주제의식이다.


“미장센이 좋으니까 영화가 고급지게 보이기는 하는데.....”


이야기가 밋밋하다.


“장면마다 뭔가 의미가 있는 것 같으면서도....”


뭘 암시하고 상징하는 지는 잘 모르겠다.

대체로 사람들의 평가가 그렇다.

그렇다고 류지호가 일일이 설명하는 것도 아니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이나 타르코프스키 영화도 아닌데, 딱히 스태프들이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복수의 꽃> 역시 곳곳에 이스터에그처럼 수많은 상징과 은유들이 감춰져 있다.

영화의 주제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의미심장한 것들도 꽤 많다.

가량 일제의 전범기를 떠올리게 하는 불타는 석양을 배경으로 철새 때가 아름답게 비행하는 장면이 연출되는데, 마치 전범기를 철새떼가 반으로 가르고 날아가는 모양새다.

어차피 필요한 석양 인서트에 장난을 조금 쳐볼 생각이다.

또 군산시내가 나오는 어떤 장면에서는 러일전쟁 후 러시아에 불게 되는 피의 일요일 즉 러시아혁명을 암시하는 그림이 슬쩍 배경에 보이기도 한다.

조선을 망친 주범 유교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영화 곳곳에 묻혔다.

에필로그에서는 대길의 아들로 보이는 청년이 조악한 종이에 인쇄된 삐라를 소중하게 접어 품에 갈무리하는 모습이 짧게 나온다.

삐라에는 독립선언문이 적혀 있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오등은 자에 아’로 시작되는 기미독립선언문이 아니다.

그보다 한 달 앞서 만주 길림에서 발표된 무오독립선언서 즉 대한독립선언서다.


[천지로 망(網)한 한번 죽음은 사람의 면할 수 없는 바인즉, 개·돼지와도 같은 일생을 누가 원하는 바이리오. 살신성인하면 2천만 동포와 동체(同體)로 부활할 것이니 일신을 어찌 아낄 것이며, 집안이 기울어도 나라를 회복되면 3천리 옥토가 자가의 소유이니 일가(一家)를 희생하라!]


순식간에 지나가는 장면이라서 알아보기 어렵다.

다만 추후 비디오나 DVD로 발매되었을 때 정지화면으로 글자나 문장을 통해 독립선언서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물론 말해주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삐라가 대한독립선언서라는 걸 알고 있는 이는 류지호와 연출부 그리고 소품을 제작한 미술팀뿐이니까.

대세에 지장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굳이 언급을 하지 않았다.

참고로 대한독립선언서는 기미독립선언문과 달리 연서자 중에서 변절자는 단 한 명밖에 없고, 연서자 39인 중 불과 11명만이 광복을 맞이한 역사를 품고 있다.

그렇듯이 영화 곳곳에 소위 ‘국뽕‘을 자극하는 암시들도 많고, 제국주의와 군국주의 비판은 물론 차별반대, 남녀평등을 넘어선 정치적 올바름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까지 깔려 있다.

그 모든 것이 류지호가 의도해서 넣은 것은 아니다.

우연히 그렇게 해석될 여지가 많게 된 부분도 있다.

여성영화는 페미니스트들로부터 열렬한 환영과 반대로 날선 공격을 동시에 받는다.

그 과정에서 <복수의 꽃>이 낱낱이 해부될 터.

영화평론가들도 마찬가지다.

<복수의 꽃>은 다양하고 깊게 분석되고 해석될 것이다.

단편영화부터 류지호가 ‘스토리텔러‘라기보다는 ‘비주얼리스트‘에 가까운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에

강박적으로 매 장면에서 미장센의 밀도를 촘촘하게 가져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고.

그로 인해 서사적 비평보다는 작가적·기호학적·역사적 비평이 주를 이룰 것이 뻔했다.

영화감독은 작품에서 자신이 연출한 것 이상으로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비평가들로 인해서다.

비평가들은 <복수의 꽃>의 바닥까지 훑어서 해부하고 분석한 후에 평가를 내놓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역사·정치·사회·문화적 맥락과 함께 해석되면서 류지호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가치를 발굴하거나 반대로 비판을 할 것이다.

류지호는 그 같은 가치 재창조와 비판까지도 무척 기대하고 있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실제 세계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작품 내적으로는 주제, 구조와 모티브, 영화적 묘사 등을 전문가들이 구체적으로 서술해서 놓치고 있던 걸 일깨워 줄 것이기에.

그를 통해 다음 작품에서 한 발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고.


✻ ✻ ✻


러쉬필름을 두 차례 더 확인하고 나서 전하영 피디가 류지호에게 물었다.


“이대로 들어가실 건 아니죠?”

“근처 조용한 곳으로 가서 이야기 좀 나누죠.”

“신사동에서 감독님들이 술 한 잔 하시는 모양인데....”

“감독 누구요?”

“이영승 감독님하고 세 분 감독님이 오랜만에 술 한 잔 하시나 봐요. 넘어와서 합석하자고 하시네요.”


류지호가 일행을 돌아봤다.

모두 상관없다는 투다.


“동화는?”

“오야지들 계시는데 제가 끼기가 좀 그러네요.”


아직까지 일본식 잔재가 남은 용어를 멋있는 줄 알고 사용하는 젊은 친구들이 있다.

충무로 경험이 꽤 되는 이동화 역시 충무로 현장은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했다.


“족보도 없는 공사판 용어 현장에서 쓰지 말라고 했지.”

“....예.”


미술감독 역시 술자리에 가는 걸 불편해했다.


“김 실장이 두 사람 집까지 바래다주고 와.”


세 사람이 떨어져나가고, 남은 일행이 신사동으로 이동했다.

영화인들이 자주 찾는 강남시장 근처 소박한 호프집 이층.

한국영화계의 떠오르는 감독들이 골벵이 소면, 오징어 땅콩을 안주 삼아 생맥주를 마시고 있다.

<시월애>의 이영승, <JSA>의 박진욱, <반칙왕>의 김대훈, 막내 류성원이 류지호 일행을 반갑게 맞이했다.

류지호가 박진욱 감독을 향해 축하는 건넸다.


“축하드려요.”

“하하. 제가 축하를 받을 일인가요?”


박진욱 감독이 연출한 <JSA>가 9월 9일 서울 43개 극장, 전국 167개 극장에서 개봉했다.

두 달이 지난 현재 서울 관객 100만 명을 돌파했다.

순제작비 33억 원, P&A 17억 원 등 총 50억 원이 투입된 <JSA>은 이미 손익분기점을 아득히 뛰어넘어 <쉬리>의 기록경신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전 삶에서는 <JSA>의 투자사가 흥행 리스크가 너무 크다며 제작비를 25억 선에서 맞춰 집행하라고 요구했었다.

그런데 영진위 현물지원, 예비비 10%를 다 쓰고도 모자라서 총 29억 원의 순수제작비를 썼다.

브라이트필름에서도 순제작비 25억과 온갖 PPL로 모자란 제작비를 조달하려고 했다.

이번에는 WaW 엔터테인먼트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33억 원의 제작비가 소요됐다.

여담으로 촬영이 한참 진행되던 어느 날 손익분기점을 제작사에 물었다가 ‘서울 50만 명’이라는 말에 박진욱 감독이 꽤 놀랐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서울 50만 명 동원은 할리우드 직배사 작품이나 가능한 수치였으니까.


“우리 초면이죠?”


류지호가 류성원 감독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류성원 감독이 엉거주춤 손을 맞잡으며 대답했다.


“아, 네.”

“<다찌마와리> 편집 중이에요?”

“편집은 모두 끝났고, 믹싱만 남았습니다.”

“인터넷에서는 언제 공개하죠?”

“12월 초로 알고 있는데, 정확한 날짜는 안정해진 걸로 압니다.”

“공개되면 인터넷 들어가서 볼게요.”

“감사합니다. 근데 감독님.... 유씨가 아니라 류를 쓰십니까?”

“버들 류(柳)를 써요.”


이후 두 사람은 족보를 따져보았다.

버들 류(柳)를 성씨로 쓰는 본관만 백 개가 넘는다.

아쉽지만 두 사람은 같은 본관은 아니었다.

이전 삶에서 두 사람은 별 다른 인연이 없었다.

류지호가 조감독으로 구르고 있을 때, 류성원은 입봉해서 감독으로 잘나갔으니까.

다른 감독들도 마찬가지다.

충무로가 좁다고 하지만, 그 안에서 어울리는 무리가 따로 있다.

류지호는 미국 유학파 감독들 영화에서 조감독을 자주 해서 그들과 친했다.

박진욱 감독을 주축으로 하는 무리가 있고, 강은석이나 양성규 감독을 중심으로 뭉치는 무리가 또 따로 있다.


챙.


500cc 잔을 부딪친 일행이 맥주를 꿀꺽 삼켰다.

이영승 감독이 땅콩 하나를 까서 입안에 넣고 우물거리며 물었다.


“감독들이 모여서 영화제를 하나 만들어보자는 말이 있어. 류 감독도 생각 있으면 들어와.”


이 시기에 만들어질 영화제는 하나 밖에 없다.


“혹시 단편영화제요?”


작가의말

언제 겨울이 물러갔나 싶게 화창한 날씨입니다. 따뜻한 봄기운과 함께 하시고자 하는 일들이 술술 잘 풀리시길 기원합니다.

오늘도 읽어주시고, 댓글남겨주시고, 좋아요 눌러주신 모든 독자님들께 감사하단 말씀 드립니다.

PS. middlem님, 송호연님, 사비에르님 후원감사합니다. 만족하신 글이 될 수 있도록 분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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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3 언젠가 만나야 했을 인연들. (3) +6 23.03.11 3,675 128 26쪽
442 언젠가 만나야 했을 인연들. (2) +5 23.03.10 3,624 121 26쪽
441 언젠가 만나야 했을 인연들. (1) +7 23.03.09 3,647 118 23쪽
440 다 해먹는다는 말 나오진 않겠죠? (3) +4 23.03.08 3,578 123 24쪽
439 다 해먹는다는 말 나오진 않겠죠? (2) +14 23.03.07 3,579 128 21쪽
438 다 해먹는다는 말 나오진 않겠죠? (1) +3 23.03.06 3,586 117 21쪽
437 지금이라도 손을 떼시면 됩니다. +6 23.03.04 3,705 128 27쪽
436 복수의 꽃. (10) +8 23.03.03 3,397 127 21쪽
435 복수의 꽃. (9) +6 23.03.02 3,267 127 21쪽
434 복수의 꽃. (8) +4 23.03.01 3,262 120 21쪽
433 복수의 꽃. (7) +3 23.02.28 3,331 119 22쪽
» 복수의 꽃. (6) +4 23.02.27 3,377 115 21쪽
431 복수의 꽃. (5) +4 23.02.25 3,456 128 24쪽
430 복수의 꽃. (4) +5 23.02.24 3,383 128 25쪽
429 복수의 꽃. (3) +11 23.02.23 3,468 115 26쪽
428 복수의 꽃. (2) +2 23.02.22 3,558 128 24쪽
427 복수의 꽃. (1) +5 23.02.21 3,676 123 20쪽
426 내가 먹을 걸 남에게 맡기면 위험이 따른다. (4) +6 23.02.20 3,647 126 25쪽
425 내가 먹을 걸 남에게 맡기면 위험이 따른다. (3) +5 23.02.18 3,702 135 25쪽
424 내가 먹을 걸 남에게 맡기면 위험이 따른다. (2) +6 23.02.17 3,654 134 25쪽
423 내가 먹을 걸 남에게 맡기면 위험이 따른다. (1) +7 23.02.16 3,745 139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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