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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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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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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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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10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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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언젠가 만나야 했을 인연들.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도쿄다카라 측에서는 류지호를 위해 도쿄 시내 최고급 호텔 스위트를 마련해 주었다.

한국과 일본이 그리 먼 나라도 아니고, 도쿄다카라의 대접이 다소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지TV의 논조는 우익성향이 강해서 한국에 대해 부정적인 묘사가 꽤나 노골적이다.

경쟁 방송사들이 한류붐을 제대로 써먹을 때도 은근히 반한감정을 부추기던 방송사가 도쿄다카라 계열의 푸지TV다.

그런 일본의 메이저 미디어 그룹이 한국인 류지호를 극진히 대접한다는 것이 얼핏 이해가 가질 않았다.

한편으로 극우들이 더욱 이익에 민감하게 구는 면이 없진 않다는 것을 떠올리면 납득이 가는 면도 없진 않았지만.


“현재 일본 내 보스에 대한 뉴스 내용은 대부분 호의적이라고 합니다.”

“그거 다행이네요.”

“지난 고베 대지진때 300만 달러를 전달한 것까지 다시 조명 받고 있다고 합니다.”


류지호가 웃으며 말했다.


“평소에 좋은 일을 많이 해놔야 한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네요.”

“일본 내 젊은 층의 반응이 꽤나 재밌습니다.”

“어떤데요?”

“대부분의 할리우드 스타들은 돈이 따라오지 않으면 좀처럼 아시아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영화시장 규모 때문에 홍보 차 일본을 방문하지만, 대부분 온 김에 초청비조로 꽤나 많은 개런티를 챙겨가죠.”


한국의 영화팬들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가까운 일본에는 들르고 한국에 오지 않는 것을 섭섭해 한다.

일본과 비행기로 1~2시간 거리인 한국을 찾아오는 게 뭐가 그리 힘드냐고 묻는다.

그런데 많은 개런티를 제시하지 않는 이상 할리우드 스타들이 한국으로 몸을 움직일 이유가 없다.

톰 메이포더가 순수하게 영화홍보를 하기 위해서 공짜로 방한하는 것이 아니다.

할리우드 스타를 초청하기 위해서는 방문에 따른 돈을 줘야 한다.

과거 홍콩 무비스타들이 한국을 방문해 겸사겸사 광고를 찍고 갔던 것처럼.

한국의 한류스타들도 똑같이 한다.


“세상 그 어떤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도 공짜 선의는 없죠.”


냉정하게 말해 할리우드 영화가 한국에서 흥행한다고 해서 한국영화 시장이 신세계가 될 수 없다.

할리우드 스타의 방문이 흥행 수익으로 직결되는 것도 아니고.

일본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일본에서 할리우드 스타들이 열렬한 환대를 받고 있지만, 그 열기가 영화흥행 대박으로 이어진 사례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을 방문 1순위로 꼽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시아 시장에서의 일본의 상징성 때문이죠.”

“스타들에게 엄청난 개런티가 보장되죠. 일본에 방문한 김에 광고를 찍으면서 부가 수익을 챙길 수가 있으니까.”


지금까지 할리우드 스타들에게 돈을 보여주고, 그들의 발걸음을 일본으로 이끌었다.

스티븐 아들러 같은 세계적인 감독들의 방일 목적도 같다.

일본을 방문해 투자를 받아가거나, 개인적인 부가수익도 챙겨간다.

한국에서는 그런 이점이 전혀 없었다.

지금까지는.


“보스는 일본에서 돈을 벌어가는 것이 아니라, 돈을 쓰러왔습니다. 끝 모를 불황의 늪에 빠져있는 일본에서 말입니다.”

“돈을 쓰고 가게 될지, 없던 일로 하고 떠날지... 두고 봐야죠.”


딱히 시차적응을 할 필요가 없었다.

류지호는 기자회견 이후로 본격적인 일정을 소화하기 시작했다.


✻ ✻ ✻


도쿄 치요다구 유라쿠초의 도쿄다카라 본사.

현관까지 임직원들이 나와서 류지호를 맞이했다.

도쿄다카라는 삼대 메이저인 도쿄에이가보다 늦게 설립됐다.

그럼에도 일본 최대의 영화사업자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무려 200여 개의 자회사 및 계열사를 거느린 기업집단 한토그룹의 중요한 축이다.

한토그룹은 철도, 유통, 영화 세 개의 큰 축을 가진 복합미디어 그룹이었는데, 1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의 대표적인 재벌이다.

그룹의 영화사업이 일본영화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를 가볍게 넘어간다.

패러마운틴 픽처스의 일본 배급사가 도쿄다카라였는데, 간혹 트라이-스텔라 픽처스 영화도 일본에 배급했다.

참고로 소닉-콜롬비아스가 트라이-스텔라 영화의 일본 배급을 책임졌었다.

2000년에 접어들면서 일본의 삼대 메이저와의 발전적인 관계 모색을 위해 도쿄다카라에도 배급을 맡기는 전략으로 바꿨다.

임직원들이 현관까지 마중 나온 것도 부담스러운데, 사토 토시히코 대표이사까지 직접 엘리베이터 앞까지 마중을 나와 있었다.


‘부담스럽게... 이 사람들이!’


유독 친절하게 굴면 류지호는 의심부터 해보게 된다.

특히나 일본인은.

강자에게 보이는 친절과 약자에게 보이는 친절이 다른 걸 알기 때문이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사장님.”

“잠자리는 불편하지 않았습니까?”

“배려해주신 덕분에 아주 편안하게 쉬었습니다.”

“이리로 앉으시지요.”


토시히코 사장이 안내하는 응접소파에 류지호가 자리를 잡았다.

비서가 가져 온 차를 마시며 가벼운 이야기부터 대화를 시작했다.


‘참.... 웃는 연기를 자연스럽게 소화하네....’


별 시답지 않은 농담에도 껄껄 웃는 모습이 진실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깔보거나 홀대하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도쿄다카라가 일본에서는 메이저 중에 메이저 스튜디오지만, 할리우드 빅7에는 미치지 못한다.

모회사 한토그룹 회장이라면 또 모를까.

류지호 면전에서 오만하게 굴 입장이 아니었다.

암튼 최고 수뇌부들의 대화는 대체로 알맹이가 없는 경우가 많다.

서로 간을 본다거나, 실무진이 조율하는 부분에서 결단을 촉구하는 정도면 몰라도.

이번 만남에서 큰 틀에서의 공감대 외에 특별히 나온 이야기는 없었다.

밖에서 볼 때는 뭔가 빅 비스니스가 이뤄지는 것처럼 보이긴 했다.

두 사람의 미팅이 점심식사까지 이어졌으니까.

심지어 근사한 일본식 정원이 인상적인 전통 찻집에서 차담을 나누기까지 했다.

사전에 합의된 대로 하는 쇼였다.

한토그룹은 세계적인 투자자이자 억만장자인 류지호와의 합작으로 주가를 띄우고 이슈몰이도 하고, 류지호는 일본진출에 대한 협조를 얻어내는 성과를 냈다.

사토 토시히코 사장은 류지호를 정성을 다해 상대했다.

한편으로 그 모습이 조금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류지호는 적당히 장단을 맞춰줄 뿐.

똑같이 답답한 일본식 예의로써 상대해 줬다.


❉ ❉ ❉


류지호의 일본방문에 박건호 WaW 대표이사도 동행했다.

도쿄다카라 대표이사와의 미팅 이후로는 따로 움직였다.

주로 만나는 이들은 일본영화계에서 활동 중인 재일동포들이었다.

도쿄의 스기나미구에 위치한 6층 높이의 빌딩.

1층은 음식점, 2층은 바, 3~6층을 영화사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이 건물의 소유주는 이봉호라는 재일동포 영화제작자다.

그의 회사 씨네콰논(sine qua non) 영화사는 지금까지 <서편제>, <쉬리>, <퇴마기록>, <JSA> 등 한국영화를 수입해 일본에 흥행시킨 바 있다.


“이 사장이 볼 때는 어때요? <JSA>는 잘 될 거 같아요?”

“흥행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방 극장주들을 설득하는 게 제일 큰일입니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랐지만, 이봉호는 나무랄 데 없는 한국어를 구사했다.

프랑스에서 유학생활을 한 덕분에 일본어, 한국어, 프랑스어, 영어까지 할 줄 아는 언어능력자다.

지금까지 12편의 TV드라마 대본을 쓰기도 했다.


“지방 극장주들 입장에서는 자칫하면 소속 영화사에서 영화를 배급받을 수 없다고 생각해서 기존 관행을 깨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손해 보지 않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지켜서인지, 지금은 많이 변했습니다. 메이저 영화사에 소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영화를 배급받는 극장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일본 극장 배급은 과거 한국영화와 거의 비슷했다.

일본의 지방극장들은 각각의 메이저 영화사에 소속되어 그 회사의 영화만 받아서 배급했다.

그런 관행에 균열을 가져온 배급을 처음 시작한 것이 이봉호 사장이었다.

지금까지는 그런 관행을 바꿀 수 없다고 여겼다.

수십 년 동안 뿌리박히기도 했고, 삼대 메이저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봉호가 그런 룰을 보기 좋게 깨버렸다.

그로인해 일본영화계에서도 꽤나 주목하고 있다.


“이 사장이 참 고생이 많아요.”

“고생은요. 저 좋자고 하는 일인데."


씨네콰논과 이봉호 사장이 일본 영화계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1998년이다.

노래자랑에 출연한 사람들의 사연을 실감나게 그린 <전국노래자랑>이라는 영화가 일본에서 화제가 되었다.

메이저들이 서로 배급하겠다고 나섰다.


- 5억 엔을 선지급하겠다.

- 비디오 출시 때 4만 장을 보장하겠다.


마츠다케와 도쿄다카라 두 메이저가 경쟁적으로 배급권을 따내려고 했다.

이봉호 사장의 선택은 도쿄다카라였다.

공동배급을 해야 한다고 못 박았고, 광고와 홍보도 씨네콰논이 자체적으로 하겠다는 조건을 걸었다.

그 도도하기 이를 데 없는 도쿄다카라가 씨네콰논의 조건을 받아들였다.

결국 <전국노래자랑>은 관객 80만 명을 넘었고, 비디오도 많이 팔렸으며, TV로도 방영되었다.

이 당시 일본에서는 관객 50만 명이 넘으면 흥행에 성공한 영화로 봤다.

<전국노래자랑>라는 자체 제작 두 번째 작품만에 흥행 영화를 제작·배급한 영화사가 되었다.

최근에 <쉬리>를 수입배급해서 130만 명을 동원하면서 일본의 영화계에서 씨네콰논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현재 일본의 극장티켓값은 1,800엔입니다.”


대략 1만 9천 원이다.


“<쉬리>는 가장 번화한 시부야와 신주쿠의 1,200석 극장에서 상영했지요. 긴자는 일본의 메인스트림 영화가 상영하는 곳입니다. 저는 한국영화가 긴자에서 상영해야만 인정받을 수 있다고 봤습니다. P&A 부담이 있더라도 도쿄의 고급스러운 극장에서 상영하고, 지방극장의 숫자도 그간 한국영화 개봉관에 비해 월등히 많은 수를 기록하도록 했죠.”


결국 13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쉬리>의 수입가는 1억 2천만 엔이었다.

그런데 홍보마케팅 비용에 무려 4억 5천만 엔을 들였다.

그 결과 21억 엔의 수입을 올렸다.

<쉬리>의 흥행성공이 한국영화를 일본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쉬리> 흥행으로 일본인들이 전세기를 내서 영화 촬영지를 찾고, 김치가 최고 인기상품으로 떠오르는 일까지 있을 정도다.


“어떻게... 고민은 해 봤어요?”

“도쿄다카라는 어떻게 하시고요?”

“그쪽은 이 사장이 크게 신경 쓸 것 없어요. 트라이-스텔라와의 협력이 주된 이슈가 될 거니까.”

“미국의 트라이-스텔라가 아니라 한국의 WaW에 소속되는 겁니까?”

“그렇죠. 씨네콰논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면 그대로 유지해도 됩니다. 다만 WaW의 일본 배급은 물론 극장 사업까지 총괄해야 하지요.”

“아직 저는 삼대 메이저의 배급력과 비교하면 보잘 것 없습니다.”

“알아요. 차차 배급력을 확대시켜야 하겠지요.”

“일본 영화계를 만만히 보시면 안 됩니다.”

“그래서 WaW에서 이 사장을 영입하려고 하는 겁니다.”


2000년에 들어오면서 일본 영화계 역시 급격하게 판이 바뀌고 있다.

도쿄다카라의 경우 1970년대 중반부터 일찌감치 방계 회사들에게 제작부문을 넘기기 시작했다.

자체제작은 줄이고 투자·배급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멀티플렉스의 확대, TV방송국의 영화계 영향력 강화, 단관개봉의 유행 등 한 번 틀이 잡히면 좀처럼 바뀌지 않는 일본에서 판 자체가 바뀌고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단관개봉 방식의 변화다.

1997년 <하나비>가 2개관에서만 개봉해 초장기상영하는 단관개봉 방식을 선택해 대성공을 거뒀다.

이후로 일본영화계에서 그런 방식의 개봉이 상식이 되어버렸다.

아예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해 단관 레이트쇼로 개봉하는 사례도 크게 늘고 있다.

레이트쇼(Lateshow) 상영방식이란 유휴 상영시간이나 심야 시간대를 이용해서 상영하는 방식이다.

상업영화를 상영하고 남는 자투리 시간에 영화를 상영함으로써 장기상영을 꾀하는 극장 상영 방식이다.

게다가 일본의 다이렉트비디오(V시네마)가 액션야쿠자영화 중심이었다면, 요즘은 장르도 다양해지고 있는 추세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좋은 현상이 절대 아니다.

정작 일본 내에서는 별 생각이 없어보였지만.


“그건 아셔야 합니다. 방송국의 영화제작은 바꾸기 힘든 흐름입니다. 마케팅비가 총제작비의 절반을 훨씬 넘기 일쑤인 일본에서 채널에서 광고를 쏘아대는 테레비의 힘을 무시할 순 없습니다.”

“압니다. 그래서 멀티플렉스 사업도 함께 진출하려고 하는 거지요.”


외국계 멀티플렉스가 일본에 진출했다.

일본 특유의 배급방식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씨네콰논이 극장을 다섯 개까지 늘릴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요?”

“그럴 생각입니다만..... 쉽지 않네요.”


대화를 멈춘 박건호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호로록.


이봉호 사장은 머릿속이 몹시 복잡했다.

일본에서 이룬 것들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한국의 최고 엔터테인먼트 회사와 함께 더 큰 물에서 놀게 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 사장이 10년 넘게 일본 영화판에서 이룬 것이 없어지는 게 아니에요. 그것들을 더욱 큰 판에서 펼쳐보이게 되는 겁니다.”


이봉호로서는 고민할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언제 한국으로 돌아가십니까?”

“3일 더 도쿄에 머물지 않을까 합니다.”

“오늘 하루만 더 생각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내일 오전에 제가 호텔로 찾아뵈어도 되겠습니까?”

“11시 전에 찾아 와야 합니다. 점심 약속이 있어서.”

“알겠습니다.”


이봉호 사장과 헤어진 박건호 대표는 한시도 쉬지 않았다.

재일교포 사회 지도자들을 연속해서 만났다.

알게 모르게 일본 사회에 재일교포들이 깊숙이 침투해 있다.

택시회사부터 파친코, 대부업은 물론이고 연예계와 스포츠계는 말할 것도 없고, 대형 종교단체들까지 일본 내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한국에서는 사이비로 취급받는 나무묘법연화경의 경우 일본인들이 학회를 시작했지만, 현재에 와서는 재일들의 힘이 커지고 있다.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자랑하는 기업집단이자 신흥종교 세계평화연합 역시 일본에서 활약(?)이 대단했다.

일본 내부는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복잡했다.

박건호 대표가 알 바 아니었다.

암튼 일본의 재일 한국인 사이에서는 야쿠자를 제외하면 한국계 일본인끼리는 서로 싸우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다.

과거에는 민단과 조총련이 첨예하게 갈등을 벌였다.

현재에 와서는 같은 애환을 공유하는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옛 조선인의 후예로서 단합하고 있다.

한국의 독재정권 서슬이 시퍼럴 때까지만 해도 조총련하면 완전 빨갱이 간첩취급을 받았다.

현재도 간부 일부는 여전히 친북 성향이지만, 대부분의 회원들은 남한이든 북한이든 그저 한 민족이고 같은 조선인으로 인식하고 있다.

반공을 국시처럼 주절대던 대머리 독재자는 88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빨갱이 조총련에게 도움을 청하기까지 했다.

조총련 회원 모두가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서 남한정부에 전달한 일화가 나중에 알려져 대머리 독재자가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앞으로는 조총련을 빨갱이라고 세뇌시키고는 뒤로는 도움을 청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 드러났으니까.


“UCLA에서 만난 재일교포가 생각나네요. 한국말을 전혀 못했고 일본 교육만 받고 일본회사에서 지원받아 유학을 왔다더군요. 웃긴 건 그 형님 국적이 한국이에요. 일본에서 미국 올 때 한국대사관에서 여권 받고 왔다고 하더라고요. 그 모습이 답답해 보여서 어차피 한국에서 알아주지도 않는 거 그냥 일본으로 귀화해서 살지 뭐 하러 불편함을 감수하냐고 그랬더니, 그러기는 또 싫대요. 남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자신이 조선사람 핏줄이 아닌 것은 아니라면서....”


류지호의 말을 민단 회장이 받았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민단 학교는 전국적으로 몇 군데 되지도 않았고... 그나마 있는 민단계열 학교에서는 일본에서 잘 살아라 그런 가르침이 있었어요. 솔직히 한국어나 한국역사는 등한시 하는 편이었죠. 재일 부모들은 자식에게 한국역사나 말을 가르쳐주는 조총련 학교에 보낼 수밖에 없었죠. 우리가 십시일반 돈을 모아 조국에 은행도 만들어주고 수해나고 그럴 때마다 기부도 많이 하고 그랬는데.... 학교 설립하고 싶어 조국에 선생님 좀 보내달라고 하면 무슨 핑계들이 그렇게 많은지....”

“제가 외국생활을 좀 해보면서 느끼는 것은 해외 나와 있는 한국인들이 국내에서 목청껏 애국 떠드는 사람들보다 훨씬 애국자란 사실이에요. 물론 동포 등쳐 먹는 몹쓸 인간들도 그 만큼 많지만.”


조총련 고위 간부가 허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일본사회에서는 아직도 북조선간첩양성소라느니 일본인을 납치하는 조직이라느니 차별과 멸시를 받으면서 일상생활에서도 욕설은 기본이고 얻어맞는 사건도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어요. 여기 매스컴은 일체 보도안합니다. 치마저고리교복이 극우들의 타킷이 되면서 일본학교랑 비슷한 교복으로 점차 바뀌고 있어요. 나 때만 해도 쪽발이한테는 지지 말자고 배워서 일본애들하고 엄청 싸웠어요. 재일 중에 그쪽으로 빠진 사람들도 많고. 그래도 재일 출신 야쿠자들은 같은 재일은 잘 안 건들어요. 걔들한테도 민족교육이란 게 박혀 있으니까요.”


류지호와 박건호는 민단과 조총련 고위직들로부터 일본 연예계와 스포츠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재일출신들에 대해 많은 이름을 들었다.

설마... 그 사람도... 할 정도로 공식적으로 일본인으로 알려진 이들도 꽤나 많았다.

심지어 AV계에서 활약하는 재일 출신까지 알 수 있었다.

류지호는 민단과 조총련 각각의 학교에 각종 지원을 약속했다.

물론 JHO와 가온그룹이 아닌 다울재단의 이름으로.

일본에서 한국 관련 콘텐츠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이들이 재일교포들이다.

가온그룹은 그들을 주요 타깃으로 해서 점차 일본시장에 스며들고, JHO Company 그룹은 도쿄다카라를 비롯한 메이저와의 협력으로 주류시장에 진입하는 방식의 이원화 진출 전략으로 일본을 공략할 계획이다.


✻ ✻ ✻


호텔로 돌아와 박건호 대표가 물었다.


“도쿄다카라에서는 뭐라고 하던가요?”

“트라이-스텔라 영화의 독점 배급권을 요구하더라구요. 어떻게 알았는지 Eye-MAX 일본 독점권을 달라고 하고. D-Cinema에 대한 일본 극장 시험상영에도 협조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도쿄다카라가 내수에만 집중해 현실에만 안주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은 모양입니다.”

“그러게요. 아직 북미에서 몇 개 기업만 주목하고 있는 분야인데, 사토 사장의 감각이 꽤나 탁월하더라고요.”


작년 연말 유럽에서 개최된 국제방송장비 박람회에서 Eye-MAX DMR 기술이 첫 선을 보였다.

그에 따라 LOG와 DreamFactory를 중심으로 애니메이션의 Eye-MAX 디지털 리마스터링이 한창 논의 중이다.

가장 먼저 LOG 애니메이션 <판타지아2000>의 Eye-MAX 재개봉이 확정되었고, DreamFactory는 7월 개봉 예정인 <슈렉>의 Eye-MAX DMR을 타진 중이다.

JHO 계열 Hues & Rhythm Studios에서는 <타이탄AE>를 Eye-MAX와 일반 포맷으로 동시 개봉할 계획이다.

상영업화에서는 류지호의 <복수의 꽃>이 Eye-MAX로 촬영되어 DMR을 할 예정이고, 3월에 크랭크인 하는 리드 스콧의 <블랙호크 다운>에서도 일부 장면에서 Eye-MAX MKⅡ 카메라가 사용되기로 계약이 되어 있다.

또한 북미의 극장체인 AMT는 Eye-MAX 상영관을 올 해도 꾸준히 늘려갈 예정이다.


“씨네콰논의 이 사장은 뭐라고 하던가요?”

“좀 더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내일 만나게 될 Virgin Cinemas Japan과 이야기가 잘된다면 Eye-MAX의 일본 독점권은 G.O.M Japan으로 가겠고, D-Cinema 역시 소프트인프라의 손 사장을 만나보고 결정해야 할 것 같네요.”

“그렇다면 남는 건 도쿄다카라와 WaW의 합작영화가 되는 군요?”

“10년 간 10편이니 그것만으로 무시 할 수 없는 파트너십이죠.”

“그렇긴 합니다.”

“도쿄다카라에서 준비하는 영화 <서울>은 WaW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이미 한국에서의 로케이션 프로덕션은 차 대표가 하기로 했더라고요.”

“아스트로의 차 대표라면 이미 NHK와 <봄날>을 공동제작한 경험이 있으니까, 납득이 가는 합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쿄다카라에서는 WaW와 하고 싶어 하는 눈치던데, 제가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고 못 박았어요. 남의 일감을 빼앗고 싶지 않아서.”

“하하. 영화가 마음에 안 드신 건 아니고요?”

“의리죠. 남의 밥그릇에 숟가락 얹어 가고 싶진 않네요.”

“잘 하셨습니다.”

“솔직히 마음에 들게 뜯어 고치면 되긴 하겠지만 여력도 없고요.”

“맞는 말씀입니다. 도쿄다카라와 합작을 하게 된다면 빅 프로젝트가 한 두 편이 아닐 텐데, 선택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제 생각도 그래요.”


이와이 리히토 감독의 영화 <러브레터>의 프로듀서였던 나카자와 마사토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서울>은 일본 영화사 최초로 한국 올로케이션을 감행하는 영화다.

<쉬리>와 <퇴마기록> 완성도를 통해 아시아 합작 영화의 가능성을 확인한 나카자와 마사토는 일본 영화사의 양대 산맥인 도쿄다카라와 푸지TV, 포니캐넌스 등에서 공동으로 투자를 받았다.

또 한국 측에서는 광성백화점, 한국항공, 서울시청, 평택시 등 각계각층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

이전 삶에서 류지호는 <서울> 몹씬 촬영현장 진행으로 참여한 경험이 있었다.

시나리오 자체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한국 배우들의 불성실한 연기도 가관이었다.

한국 문화에 대한 무지를 여지없이 드러내던 일본의 제작진까지 더해서 영화 <서울>은 스태프로 참여하게 되는 충무로 영화인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술안줏감이 된다.

류지호로서는 결코 참여하고 싶지 않은 프로젝트가 <서울>이었다.


❉ ❉ ❉


도쿄는 국제도시다.

때문에 특별구 중에 하나인 미나토에는 외국계 기업의 일본 본사가 상당히 많이 분포되어 있다.

각국의 대사관, 영사관이 가장 많이 위치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입국관리국과 세관도 위치해 있다.

당연히 외국인 거주자 비율도 일본 다른 곳에 비하면 많다.

롯폰기 주변만 해도 5명 중 1명이 외국인일 정도다.

주일 대한민국 대사관도 이곳에 있다.

아자부 주위로 고급 단독주택가가 즐비한데, 마치 LA의 베벌리힐스를 연상시킨다.

시로카네나 미타, 타카나와 쪽은 조용하고 고급 맨션이 많아 벨에어를 떠올리게 한다.

도쿄의 땅값과 집값이 비싼 것은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다.

일본 도쿄 중심부 긴자의 토지 공시가격은 부동산 거품이 절정이던 1991년 평당 1억1000만 엔(약 10억 원)을 웃돌았고, 당시 도쿄 번화가인 고쿄 지역의 토지를 모두 팔면 미국의 캘리포니아주를 살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부동산 버블이 붕괴되면서 현재는 10여 년 전의 절반까지 떨어져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비싸긴 하지만.

그 비싼 동네에 본사를 둔 IT 회사 겸 투자회사 소프트인프라.

사장실에서 류지호는 손세요시를 만났다.

작은 키, 시원한 앞이마, 웃는 상....

언론을 통해 류지호가 접한 모습과 똑같았다.

그는 빈민가 출신 재일교포 3세다.

그런 손 사장이 일본 최고의 부자가 된 여정은 극적이다.

24살에 소프트웨어 유통회사 소프트인프라를 창업해 4년 만에 시장의 60%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어떤 잡지도 소프트인프라의 광고를 실어주지 않자, 직접 잡지를 창간해 3년 만에 최다부수를 기록했다.

사업 도전으로 재산을 일군 후 눈을 돌린 것이 주식투자다.

소위 ‘될 것 같은’ 기업을 알아보는 데 천재적 재능을 발휘했다.

단적인 예가 IT기술을 전혀 모르는 전직 영어교사가 시작한 전자상거래사업에 수천 만 달러를 투자한 것이다.

투자금은 14년 후 무려 3000 배로 불어난다.

그 회사가 바로 제이크 마의 Aliba.com이다.

그 투자가 류지호와의 접점이기도 하고.


“나와 류 의장은 공통점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어떤 점에서요?”

“어떤 확신이랄까... 비전에 따라 과감하게 행동하는 것에서 말이지요.”

“인류의 발전 속도가 너무 빠르잖습니까. 조금이라도 망설이면 때를 놓치게 되죠.”

“그런 면에서 나는 때를 잘 만났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류 의장 같은 대단한 투자가와 만날 수 있으니까요. 어쩌면 한 세대 더 늦게 태어났으면 이 자리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류 의장을 만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겸손한 말씀이십니다. 세대와 상관없이 사장님은 맨 손으로 시작해서 오늘 날의 소프트인프라를 일궜습니다. 아마 올해 태어나셨어도 20년 후에 똑같이 큰 성공을 이루셨을 겁니다.”

“하하. 별로 그럴 것 같지 않습니다. 내가 소프트인프라를 시작했을 때는 성공하겠다는 절실함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곳도 없었고 인터넷도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인터넷이 아직 성숙하기 전 단계에서 사업을 영위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서로 덕담과 칭찬의 말이 한 동안 이어졌다.

그러다가 툭하고 손 사장이 물었다.


“위성테레비사업 부문을 우리에게 넘기고 일본에서 철수한 건 후회하지 않습니까?”

“후회가 없었는데....”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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