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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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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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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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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0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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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다 해먹는다는 말 나오진 않겠죠?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WaW 엔터테인먼트는 작년에만 무려 42편의 영화를 배급했다.

그를 통해 매출 1,320억 원, 영업이익 175억 원을 달성했다.

한국영화로는 전국 610만의 <JSA>, 360만의 <풍운아>, 210만의 <반칙왕>이 흥행대박을 터트렸고, <동감>이 125만, <가위>가 108만, <시월애>가 97만 명을 동원하며 쏠쏠한 재미를 봤다.

참고로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는 북미 박스오피스 톱10 안에 세 편 밖에(?) 올리지 못했다.

그럼에도 전년도와 비슷한 매출 성과를 거뒀다.

<미션임파서블Ⅱ>가 5.5억 달러, <크리스마스의 그린치>가 3.5억 달러, <X-Man>이 3.1억 달러를 기록해 박스오피스 톱10에 이름을 올렸다.

그 밖에 <코요테 어글리> 1.2억, <Me, Myself & Irene> 1.5억 달러 등 20여 편의 영화들에서 배급비용은 물론 투자금까지 넉넉하게 회수했다.

ParaMax는 40편에 가까운 독립·예술영화를 꾸준히 배급하고 있다.

적게 투자해서 적게 버는 전략답게 폭발적인 매출과 이익을 내진 못했지만, <메멘토>와 같은 의미 있는 영화 다수를 투자·배급했다.

JHO Company 그룹 영화 사업부문에서 작년 한 해 약진이 눈부셨던 곳은 단연 디멘션 필름을 꼽을 수 있었다.

<무서운 영화> 2.8억 달러. <스크림Ⅲ> 1.6억 달러, <데스티네이션> 1.2억 달러 등 기존 프랜차이즈 시리즈에 새로운 공포영화 라인업이 추가되면서 제작비 대비 엄청난 수익을 거두었다.

영화사업의 성장세 못지 않게 게임·위성TV·포스트 프로덕션·보안 사업 등도 계속해서 성장세를 이어 가고 있었다.

연말을 맞이해서 한국과 미국의 한 해 사업들의 대한 보고서를 검토하는 것에만 1시간이 훌쩍 걸렸다.

계속해서 적자를 보는 기업도 있고, 느리지만 흑자규모가 늘어가는 기업도 있고, 매년 수 조원의 매출을 기록하는 기업도 있고, 꾸준히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기업도 있었다.


“정말 굉장합니다....!”


가온그룹 이사회의장 비서실에서는 미국에서 넘어오는 결산보고를 확인할 때마다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WaW 엔터테인먼트가 해를 거듭할수록 성장의 기록을 갱신하는 것은 한국 영화산업이 성장하는 것과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

반면에 할리우드 영화산업은 이미 포화상태였다.

그럼에도 JHO Company 그룹 산하의 영화사업은 여전히 성장 동력이 떨어질 줄 몰랐다.


“나보고 일일이 경영하라고 했으면 절대 못했어요.”


주영호와 오동석이 펄쩍 뛰었다.


“무슨 말씀을.....!”

“저희가 의장님 기대에 제대로 부응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아 죄송할 뿐입니다.”


류지호 주변에 모여 있던 고위급 임원들이 송구하다는 듯 일제히 고개를 조아렸다.


“쯧. 어쩌다 다들 아부만 늘었는지....”


류지호는 명실상부 한국의 20대 그룹 오너의 신분이다.

오너라는 위치에서 오는 권위는 물론이고 그 모든 것을 자수성가로 이뤄낸 것에 대해 모든 임직원들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오너의 존재가 직원들의 자부심이기도 했다.

다른 누구와 달리 정경유착 없이 오로지 땀과 열정으로 이룩한 결과였으니까.


“회사 경영에 크게 감 내놔라 배 내놔라 하지 않을 테니까, 앞으로도 자유롭게 경영하세요. 그에 따른 결실은 알아서 잘 챙겨줄 테니까.”


류지호는 스스로의 그릇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제아무리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만, 수십조 원 규모의 기업집단을 경영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특히 올해는 래리 킴 회장의 능력을 확인하는 한 해였다.

그는 스물 가까운 자회사 및 계열사를 아우르는, 자산 10조원, 매출 수 조원을 기록하고 있는 대규모 기업집단을 훌륭하게 이끌었다.

대유 계열사 인수합병도 비교적 잡음 없이 매끄럽게 완수해 냈고.


“기업과 함께 발전하는 개인...”


류지호의 바람이다.

기업의 부속품으로서의 직원이 아니라, 개개인이 인격체로서 존중 받는 기업문화.

순진한 생각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류지호는 직원 복지와 자기계발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윌리엄 파커와 대니얼 그레이엄, 그 외 많은 노인들이 류지호에게 충고했다.

직원들의 충성심을 높여야 한다고.

그런데 류지호는 직원들에게 맹목적인 충성심을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본인이 반골기질이 있어서도, 자유로운 영혼들의 일터인 영화계 인물이어서도 아니다.

JHO와 가온그룹의 가치관이 명확하고 그걸 직원들이 공감하고 있다면, 회사에 대한 직원들의 헌신도 덩달아 높을 것이란 믿음 때문이다.

명확한 인생설계를 가진 직원은 어려움 견뎌낼 '내면의 힘'을 지니고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를 위해 일하게 된다.

그런 직원들의 생각과 가치관에 따라 기업 운명도 크게 바뀔 수 있다.

삶은 매 순간이 선택이다.

중요한 순간,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사람의 운명이 바뀐다.

순간의 선택은 생각, 즉 가치관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가치관이 분명할 때 삶을 더 잘 통제할 수 있다.

기업 또한 마찬가지다.

직원들이 어떤 생각과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기업의 운명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밀레니엄 이전과 이후의 경영환경은 완전히 다르다.

과거와 같이 직원들을 구태의연하게 쥐어짜는 형태의 조직 관리로는 급변하는 세상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


“......”


아이스하키 경기를 관람한 직원과 그들의 가족이 음식 진열대와 테이블을 바쁘게 오가고 있다.

류지호가 그 모습을 잠시 구경했다.

가온그룹 신입사원 단 한명을 뽑는데 무려 3,000명이 지원하고 있다.

그런데 그 한 명의 신입사원을 뽑는 기준이 조금 특이했다.

학력, 화려한 스펙, 성별, 나이 그 어떤 제한 없다.

오로지 자신의 생각을 담은 자기소개서와 논술만 심사했다.

면접에서 상당히 공을 들여서 뽑고.

일종의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한 것이다.


-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 어떻게 살 것인가.


두 가지 주제가 논술의 핵심이다.

화려한 스펙을 가진 사람보다 본인의 가치관이 명확한 사람을 뽑겠다는 의도랄까.

류지호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그도 아니면 미국식 교육을 받은 래리 킴 회장의 의지 때문인지 몰라도 가온그룹 임원진은 가치관이 뚜렷한 사람이 자발적으로 일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최근 인수·합병한 대유 계열사를 빼고 기존 회사 임직원들의 평균 연령이 낮은 것도 그 같은 경향에 일조했다.

젊은 꼰대가 일부 섞여 있을지언정 전통적인 나이 먹은 꼰대는 많지 않았다.

가온그룹도 신입사원 연수를 한다.

완전히 없애는 것은 시기상조였다.

대신 기존의 대기업과 공공기관의 신입사원 연수프로그램을 벗어나 가온그룹만의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시행하고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인생계획서 작성이다.

가온그룹에 입사하는 모든 신입사원은 연수기간 동안 20~60대 연령을 10년 단위로 나눠 인생 계획을 세우도록 하고 있다.

10년 단위로 가정, 직업, 자기계발, 사회적 지위 등 영역을 나눠 구체적으로 쓰게 한다.

가령 가정을 어떻게 꾸릴지 계획에는 자녀들의 성장에 맞춰 자세하게 쓸 것을 주문한다.

어떤 사원은 40대가 되기 전에 30평대 자가 아파트를 소유하고 자녀 둘을 사립학교에 보내겠다는 계획을 세울 수도 있고, 또 어떤 직원은 결혼 전까지 전 세계 10개국에 가보는 것이 목표라고 적을 수도 있다.

이 프로그램은 JHO Company 일부 계열사에서 시행하고 있던 것이었는데, 래리 킴 회장이 취임하면서 가온그룹에도 전격적으로 도입했다.

행복한 가정, 성공한 경력, 건강한 정신과 육체 등 개인이 추구해야 할 삶의 목표는 하나가 아니다.

JHO와 가온그룹에서 근무하는 동안 직원 개개인이 목표와 꿈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에 대한 일종의 로드맵을 스스로 설정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류지호 본인도 과거로 돌아온 후 구체적이고 명확한 인생설계도를 작성한 바 있다.

그것을 통해서 고난을 견뎌야 할 순간 그리고 한계를 뛰어넘어야 할 순간, 어려움을 견딜 내면의 힘을 준비할 수 있었다.

실제로 류지호가 미국에서 만난 많은 자수성가형 부자들 대부분이 인생설계가 구체적이고 명확했다.

신입사원 연수기간 작성된 인생설계는 그대로 봉인된다.

직원이 진급하거나 퇴사할 때 돌려준다.

진급을 했다면 바꾸고 싶은 것이 있는지를 확인한다.

새롭게 작성하는 경우도 종종 벌어진다.

가온그룹 차원에서 직원 개개인에게 맹목적으로 뭔가를 강요하지 않더라도 각자의 인생설계가 업데이트 되면서 동기부여가 저절로 되는 효과가 있었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무슨 생각하십니까?”


박건호 대표가 샴페인 두 잔을 가지고 류지호에게 다가왔다.


“제 것도 가져오셨어요?”

“사람 손이 두 개인 것이 내 먹을 것과 남 먹을 것도 함께 챙기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류지호가 샴페인을 받아들었다.


“양성규 감독이 창투사가 아니라 WaW에 공동제작을 제안했다고요?”

“충무로에서 120억 규모의 영화를 감당할 수 있는 곳은 WaW 뿐이니까요.”


작년 이 시기까지는 그렇지 않았다.

미국발 닷컴버블 붕괴 여파로 한국의 벤처캐피탈이 급격하게 몸을 사리고 있었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시대극이던가요?”

“시나리오 읽어보셨습니까?”

“시나리오가 나왔어요?”

“기획서만 나와 있습니다.”

“전에 강은석 감독 만날 때 함께 양 감독도 본 적이 있어요. 그때 얼핏 들은 것 같아요.”

“양 감독이 그때 니주(암시)를 깔았나보군요?”

“당시만 해도 창투사는 만만하고 WaW는 부담스러웠겠죠. 슬쩍 운만 띄우더라고요.”


<쉬리Ⅱ> 제작이 불발이 되고, 양성규 감독이 또 다시 빅 프로젝트를 꺼내들었다.

바로 <태극기 휘날리며>란 전쟁영화다.

기획기간만 1년 3개월이 걸렸다.

류지호가 대략적으로 기억하기로는 시나리오 작업에 2년 5개월, 시뮬레이션 촬영 3개월, 주·조연 오디션 기간 6개월, 촬영 기간만 9개월 등 무려 5년짜리 프로젝트다.

참고로 합천 곡성 경주 인제 양구 순천 아산 전주 등 18개 지역에 걸친 로케이션과 140여회에 이르는 촬영 횟수, 연인원 2만5천명을 헤아리는 엑스트라 등의 기록을 쓴 영화다.

평양시가지와 서울 종로거리 등 20여개의 대규모 세트가 만들어졌고 2㎞에 걸친 낙동강 방어선 진지도 구축됐다.

군복 1만9천 벌, 군화 1천여켤레, 1950년대 의상 4천여 벌, 각종 소품 6천여 점, 시체 2백여 구, 총기 1천여 정 등과 함께 실물크기의 증기기관차 탱크 장갑차 대포 등이 촬영을 위해 제작됐다.


“투자배급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제작까지 하자는 거죠?”

“예.”

“순제는 120억이고요?”

“구체적인 예산서는 아직 받아보지 못했습니다만. 일단 그렇게 말하더군요.”

“그걸로 어림도 없을 텐데...?”

“120억은 영화 4편을 제작할 수 있는 금액입니다.”

“전쟁영화는 제작경험과 인프라가 없으면 돈이 얼마가 들어갈지 예측이 안 되는 장르에요. 할리우드도 전쟁영화 제작할 때 예산이 무조건 오버되거든요.”

“그렇다면 정중히 거절하는 것이....”

“하죠, 그냥!”


박건호 대표가 고민도 없이 결정하는 류지호를 빤히 쳐다봤다.


“가온투자파트너스에 돈이 쌓여 있다고 하네요. 마땅한 투자처도 없고, 애매한 금액이라서....”


300억 원이 애매한 액수는 절대 아니다.

류지호가 굴리는 자금의 규모가 수천 억 원에서 조 단위가 되다보니 애매해진 것 뿐.


“그 돈들 영화펀드에 넣죠 뭐.”

“투자금을 회수하려면 배급과 홍보마케팅에서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겁니다.”

“전쟁영화든 SF영화든 자꾸 찍어봐야 늘잖아요. WaW도 제작에 참여하면서 관련 노하우를 습득하는 기회로 삼아보자구요.”


물론 WaW가 안 해 본 영화라고 하더라도 엉터리 같은 기획과 시나리오에 투자할 생각은 없었다.


“TS-TV가 전쟁 드라마 제작하는 거 아시죠?”

“스티븐 아들러와 공동제작하는 드라마라면 알고 있습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해 보죠. 전쟁영화!”


박건호 대표는 말려야 할지 지지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영화 흥행에 관해서는 자신보다 월등하게 촉이 좋은 사람이 류지호 아니던가.

흥행을 점치는 것 외에도 뭔가 꿍꿍이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 사용한 고물 탱크나 프롭들을 국내에 들여올 수만 있다면, 제작비 절감과 영화적 리얼리티까지 동시에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역시나.

한 번의 투자로도 여러 가지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안을 궁리하는 것이 류지호다.


“<복꽃>에서 사용한 군산 세트를 조금만 손보면 그런대로 1950년대 시대극에서 재활용이 가능할 것도 같고. 상징성만 있는 판문점 세트보다 폐허 거리 세트가 훨씬 써먹을 데가 많겠죠.”


끄덕.

박건호 대표도 동의를 표했다.


“양 감독과 프로듀서를 <밴드 오브 브라더스> 촬영 현장에 보내서 배우게 해야겠어요. 촬영 끝나고 폐기하거나 버려질 프롭도 들여오는 방안을 강구하고.”

“알겠습니다. 일간 양 감독과 자리를 마련해 보겠습니다.”

“대표님이 직접 통화하시게요?”

“겸사겸사 양 감독을 만나봐야 할 것 같습니다.”

“설에 다시 한국 들어올 거라서 굳이 서둘러 미팅을 잡진 마세요.”


류지호는 <복수의 꽃>의 우금치 전투 장면을 촬영하면서 마음고생을 좀 했다.

여전히 충무로는 안 되는 것도 없고 되는 것도 없다.

안 되는 걸 되게 하겠다면서 온갖 꼼수들이 판을 쳤다.

겉으로는 내색하진 않았지만, 답답해서 미치는 줄 알았다.

이전 삶에서 류지호가 했던 고생들에 비하면 여건이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10년 동안 나름 충무로에 투자를 했다면 했는데.... 더럽게 폼이 안 올라오네.’


WaW 픽처스 혼자 앞서 간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여주에 짓고 있는 WaW 종합촬영소가 매우 중요했다.

전문화와 분업화는 직능의 구분부터 시작이다.

류지호는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의 장점만 따와서 종합촬영소 시스템을 구축할 작정이다.

암튼 식사시간이 얼추 정리되면서 본격적인 송년회가 열렸다.

초대가수의 공연과 장기자랑 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직원들이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류지호는 가족들과 함께 식사만 마치고 송년회장을 떠났다.


❉ ❉ ❉


1월 2일.

서울 중구 소월로 밀레니엄 힐턴호텔.

이른 시간부터 가온그룹 각 계열사 사장과 주요 임원들이 시무식 참석을 위해 속속 호텔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중에는 처음으로 가온그룹 시무식에 참석하는 전 대유그룹 계열사 사장들도 포함됐다.

첫 참석이라 긴장한 듯 굳은 표정들을 하고 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전 대유 계열의 사장들이 옷매무새까지 철저히 점검하고 가장 먼저 인사를 올린 사람은 다름 아닌 가온그룹 오너 류지호다.


“잘 부탁합니다.”

“실망시키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서로 판에 박힌 인사를 주고받았다.

래리 킴 회장은 전 대유 계열사 사장 전부를 교체하진 않았다.

보험과 카드사 사장만 새로운 사장으로 교체했을 뿐, 기존 사장들을 유임시켰다.

대유그룹이 망한 것에 건설·증권 경영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두 부문 사업의 고위임원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충분한 경영성과를 입증했으며 사실 그들보다 더 뛰어난 역량의 인물도 별로 없었다.


짝짝짝.


거창하고 요식적인 시무식 행사가 아니다.

식순에는 특이한 행사가 있었는데 바로 자신들이 입사할 때 작성한 인생설계도를 읽는 시간이다.

오너인 류지호도 예외가 아니다.

류지호의 인생설계도는 고등학교 시절 연하대 아네모네에서 친구들에게 말했던 추상적인 내용이 훨씬 구체적으로 적혀있었다.

이미 실현한 것도 있었고, 진행 중인 것도 있었으며, 과연 실현 가능한지 의심스러운 것도 있었다.

20대에 하고자 했던 것 중에 끝내 이루지 못한 것도 몇 개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연애였다.

10명의 여자와 사귀자는 목표가 적혀있었는데, 결국 달성하지 못했다.


쩝.


류지호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그만큼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자....”


옆 자리에 앉아있던 래리 킴 회장이 물었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니에요. 아무것도.”

“지난 연말에 신 변호사 부부가 야당의 소장파의 리더를 만난 모양이더군요.”

“소장파 리더 누구요?”

“재선의 정의국 의원이랍니다. 동향출신인데다가 서울대 법대 선후배 사이라고 하지요.”


서울대 법대 출신끼리는 그들만의 세계가 따로 있다.

사법계는 물론이고 재벌, 언론계, 사학계까지 두루두루 혼맥을 맺으며 거대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다온로펌의 대표변호사 박문표가 대학동문 야당 의원을 만나는 것이 그들 세계에서는 대수로울 것도 없다.

그런데 래리 킴 회장의 입에서 다소 뜬금없이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박 변은 차기 서울시장으로 정의국 의원을 밀어주고 싶은 모양입니다.”

“박문표 대표 변호사가요?”

“보스가 경일건설 전 회장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걸 신 변호사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류지호는 어릴 때부터 정치와 행정에 대한 신념이 없는 재벌 출신, 사법계, 언론계 인사가 정치를 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숨기지 않았다.

정치는 권력욕이 있는 사람이 하는 것도 맞지만, 정치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가치와 신념이 명확한 사람이 해야 한다.

측근이랄 수 있는 이들은 류지호의 그런 생각을 잘 알고 있었다.


“서울대 법대 출신들만으로 되겠어요? 저 쪽은 전경련이 밀어줄 텐데.”

“보스가 조금 도와주길 바라는 모양입니다.”

“내가 뭘요? 정치자금 달래요?”

“정의국 의원이 나름 미국 쪽에 네트워크가 좀 되는 것 같습니다.”

“래리도 알다시피 나는 캘리포니아주나 뉴욕주 정도 빼곤 미국 정가에 딱히 인맥이 있다곤 못 하잖아요.”

“대신 민주·공화 양당의 지도자급들에게 만나자고 하면 쉽게 거절을 못하는 것이 보스의 현재 위치지요.”

“대권까지 노린대요?”

“그것까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정의국 의원이 서울시장이 되면 이곳 호텔 증축부터 상암동 개발, 다솜방송 신사옥 개발까지 가온그룹에게 나쁠 것이 없습니다.”

“그보다 차기 대선주자가 더 중요한 거 아닌가.....?”


새만금간척지개발사업의 민간주도 전환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대통령이 온통 한반도 평화문제에 집중하고 있어서 새만금 관련해서는 여론 수렴이나 공청회만 주구장창 열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환경단체와 충돌하고 법적 다툼까지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시장 타이틀이면 차차기 대선도전도 노려볼 만 하지요.”

“지자체장 선거철이 다가오면 그때 상황 봐 가면서 생각해 봐요.”

“그러시죠.


어차피 그 나물의 그 밥이 아닌가 싶다가도.

가온그룹과 뭔가를 거래할 수 있는 후보를 미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래안전시스템의 정보팀이 서울시장 후보에 도전할 예정인 전 경일건설 회장의 주가조작부터 경일건설 재직 시절의 각종 비리혐의에 대한 자료를 차곡차곡 모으고 있긴 했다.

이전 삶에서 한반도 대운하 같은 어처구니없는 구상을 추진하려던 대통령이 탄생하는 것보다는 정의국이란 국회의원이 서울시장이 되어서 그 같은 대통령이 아예 한국 정치역사 전면에 나타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올 한 해도 수고해주세요. 건강도 잘 돌보시고.”


류지호의 간단한 인사말을 마지막으로 조촐한 시무식을 종료했다.

각자의 회사로 임원들이 흩어지고 호텔·리조트 사업 부문 사장 염기훈이 류지호에게 달려왔다.


“찾으셨습니까?”

“바빠요?”

“아닙니다.”

“나와 호텔 좀 돌아봅시다.”

“예!”


밀레니엄 힐턴은 호텔 시설 자체는 낡았지만, 위치 면에서는 나쁘지 않았다.

비록 서울역 방향으로 대유빌딩이 시야를 가리고 있어서 그 방향으로 전망이 나오지 않지만, 남산 방면의 전망은 정말 예뻤다.

업계에서는 호텔 사업을 부동산 사업으로 보고 있다.

호텔사업은 분명 숙박업이나 서비스업에 속하지만, 부동산에 무게를 두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호텔사업을 해서 큰 이익을 내기도 어렵고, 몇 년 단위로 개보수를 해야 하고, 인건비 비중도 매우 높기 때문이다.

실제 호텔업 종사자들의 인건비가 그렇게 높지 않다.

객실 판매 가격은 매년 물가 상승률과 함께 오르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호텔들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객실 가격이 내려가기까지 한다.

외환위기로 인해 한국의 부동산 시장이 폭락을 해서 그렇지 경기가 좋아지고 정권차원에서 부동산 부양정책을 펴게 되면 호텔 부동산 가치는 금방 회복된다.

암튼 인건비와 객실 가격은 잘 오르지 않는데, 부동산 가치가 오르는 곳이 호텔업계다.


“23층 펜트하우스는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그것이....”


염기훈 사장이 류지호의 질문에 우물쭈물 댔다.


작가의말

완연한 봄인가 봅니다. 야외활동하기 좋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올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4

  • 작성자
    Lv.99 ehqur
    작성일
    23.03.07 09:29
    No. 1

    1박 328원... 첫사랑 할아버지한테 진상짓당한 주인공이네요. 실제로 소송걸었지만 못 쫒아내고 죽은 후에 계약끝났죠.

    찬성: 3 | 반대: 0

  • 작성자
    Lv.87 lo******
    작성일
    23.03.07 09:30
    No. 2

    12p에 강감독과 양감독으로 나온거 오타 인가요?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3 트뤼포
    작성일
    23.03.09 11:33
    No. 3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2 쥬논13
    작성일
    23.03.07 09:55
    No. 4

    2MB는 조져야 제맛이죠 ㅋㅋ.

    찬성: 5 | 반대: 0

  • 작성자
    Lv.99 할젠
    작성일
    23.03.07 10:26
    No. 5

    차라리 힐튼호텔 부시고 새로 짓는게 나을겁니다.
    더 높고 세련되게, 또는 고전주의풍으로 우아하게.

    찬성: 3 | 반대: 0

  • 작성자
    Lv.99 시역과의
    작성일
    23.03.07 10:47
    No. 6

    힐튼 뷔페 맛있었는데...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4 ddmd
    작성일
    23.03.07 15:20
    No. 7

    대운하는 진짜 좀 에러였지만 4대강 사업한건 잊을만하면 재평가되는거 아닌가요?

    영산강보 해체하려고 하니까 농민들이 반대했었죠. 지금 식수/생활용수 부족으로 광주쪽 난리인데 농업용수 부족하다는 얘기는 없죠?

    4대강 사업한게 그렇게 맘에 안드는데 왜 녹차라떼 문제 끊이지 않는 영산강보는 해체 안하고 두는지 모르겠네요. 가뭄이라 수량 적어질때 해체하면 더 쉬울듯 싶은데요

    그리고 애초에 식수문제도 지류끼리 연결해놨으면 안생겼을 문제

    찬성: 2 | 반대: 4

  • 작성자
    Lv.54 ddmd
    작성일
    23.03.07 15:21
    No. 8

    4대강에 거품물고 미국산 소고기 광우뻥 선동했지만 결국 4대강 보에서 나온 물로 농사짓고 저렴한 미국산 소고기 잘 먹으면서 이명박은 까야 제맛 이러죠 ㅋㅋ

    찬성: 2 | 반대: 5

  • 작성자
    Lv.99 하얀유니콘
    작성일
    23.03.07 15:38
    No. 9

    화나는게
    태극기 휘날리며 판권 외국회사 로 넘어갔습니다.
    판권 나눠가지고 있는 사람들 끼리 싸우고
    나누는 과정에 그리되었다는데 정말 어이 없더군요.
    국내 ip tv 나 케이블 티비에서는 볼수 없습니다.

    대우는 호텔넘겨 발으며 당연히
    조정하지 않았을까요.
    더한 회계부정도 알고있는데
    당했다면 말이 안되죠.

    찬성: 3 | 반대: 0

  • 작성자
    Lv.99 하얀유니콘
    작성일
    23.03.07 15:48
    No. 10

    특급호텔 들 을 수리 하거나 새로 건축하는게
    쉬운일 이 아닙니다.
    신라호텔만 하더라도 주차시설이 좁아서
    불편을 주고 안에 시설도 많이 낡았습니다.
    삼성이 돈이 없고 땅이 없어 그대로 둘까요?

    오래된 호텔 이 주제인 영화들이 많은데
    대부분 오래되고 전통이있는 호텔들은
    회원들의 요구로 바꾸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돈 많은 단골들이 주식을 사모아 호텔을 개조니
    재건축을 못하게 만드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곳은 그들의 추억이 있는곳이고
    부자들에게 그 돈은 아무것도 아니니까요.

    찬성: 0 | 반대: 1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3.03.07 17:56
    No. 11

    잘 보고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7 cooooool
    작성일
    23.07.07 02:22
    No. 12

    맹박형님도 나오고
    슬슬 정치이야기도 조금 나오는데
    어디가나 정치병환자 많으니
    정치 이야긴 조금만 넣으시길
    많이 넣으면 싸움나요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72 雲祖
    작성일
    23.07.09 00:03
    No. 13

    서울시장 부분도 리메이크한건지..?
    지극히 개인적 사고의 작품이로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7 손천
    작성일
    23.11.10 18:18
    No. 14

    대통령 반대편 괜히 지지하다 사업 지장 받으면 어쩌려구ㅋㅋ 재벌집 막내아들 처럼 될놈한테 미리 투자하는게 낫지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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