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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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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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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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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0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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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다 해먹는다는 말 나오진 않겠죠? (3)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밀레니엄 힐턴 23층에는 278평짜리 펜트하우스가 있다.

그런데 그 비싼 방을 손님에게 내줄 수가 없다.

가온의 호텔·리조트 사업 부문이 인수합병하기 전에 얼토당토않은 장기 임대계약이 이미 체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펜트하우스는 전 대유그룹 회장 집무실로 사용했던 공간이다.

사무실·객실·연회장 등이 갖춰져 있고, 호텔 엘리베이터도 직통이 없이 22층에서 내려 계단을 통해 올라가도록 설계됐다.

전 대유그룹 회장이 해외도피 중이라서 현재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


“다온로펌 통해서 펜트하우스를 비워달라는 건물명도 청구소송 못 합니까?”

“부속조항 때문에 힘들 것 같습니다.”

“무슨 조항인데요?”

“임대기간 동안 연간 5,000만 원의 매출을 올려준다는 8개 항이 들어가 있습니다. 아직 계약이 1년도 되지 않은 상황이라서 매출과 관련한 부속조항을 들고 나오면 피차 곤란해집니다.”

“그럼 계약기간 내내 하루 렌트비 1,000만 원짜리 펜트하우스를 비워둬야 한다는 겁니까?”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 중에 있습니다.”


할리우드 톱스타 톰 메이포더가 묵었던 복층 스위트룸(119평)의 하루 이용 요금은 세금·봉사료 포함 546만원이다.

크기만으로 단순 비교할 경우 펜트하우스의 요금은 1,254만 원으로 추산할 수 있다.

연회장까지 따로 있는 시설이라서 국가원수급 고객을 유치할 경우 최대 2,000만 원의 하루 숙박비를 책정할 수도 있다.

그 같은 최고급 객실을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썩히고 있다.


“무슨 특급호텔에 펜트하우스가 없을 수가 있어요. 원천 무효가 안 됩니까?”

“특별협약의 당사자가 대유그룹 총수님이시라서.....”

“진짜 거.... 엄한데다가 똥물을 튀기시네... 그 양반이.”


한껏 짜증이 난 류지호는 그림 같은 남산 전망을 쳐다봤다.

혈압이 치솟는 것 같아 잠시 마음을 추스를 필요가 있었다.

밀레니엄 호텔의 입구는 남산을 바라보도록 지어졌다.

한국의 오랜 전통인 배산(背山)에 위배되는 건축설계다.

설계자 말로는 ‘남산을 껴안는 모습’으로 디자인의 콘셉트를 정했다고 했던가.

한편으로 건물 외관은 병풍처럼 건물 끝이 꺾여 있어서 독특한 느낌을 풍기기도 한다.

암튼 류지호는 잠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며 대유그룹 총수의 향후 행보를 떠올려보았다.


‘해외도피를 하다가 한국에 들어와서 최종적으로 법원 판결을 받게 되는 것이 대략 2006~2007년 사이였던가?’


정확하게는 2006월 11월 징역 8년6월, 벌금 1,000만원, 추징금 17조9253억 원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됐다.

같은 해 12월 지병을 이유로 형집행정지 처분을 받았었다.


“지금은 해외도피 중이니까 그렇다고 치고. 그룹 법무팀 그리고 다온로펌과 함께 특별협약이 대유그룹에 손해를 끼치는 배임행위에 해당하는지 면밀히 따져보라고 하세요. 김 회장 측에다 원천 무효 안 받아들이고 계속 버티면 추후 시간이 흘러 손해배상 청구까지 해서 펜트하우스 고객을 유치하지 못해 호텔이 본 손해까지 모두 토해내게 만들겠다고 경고하시고.”

“알겠습니다. 의장님.”


소위 ‘대유맨‘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류지호의 처사가 야박하다며 들고 일어날 수도 있다.

서울역 앞 대유빌딩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밀레니엄 힐턴 펜트하우스는 대유그룹에게 상징적인 곳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마지막까지 대유그룹 전 총수에게 충성과 예우를 다 하려면 자기들끼리 돈을 모아서 다시 펜트하우스 계약을 갱신하던가.


‘남의 영업장에 사기에 가까운 꼼수를 부려 놓은 주제에....’


류지호의 귀빈들이 자주 한국에 찾아올 수도 있다.

하루 2,000만 원 숙박료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이들도 많다.

그런 손님들을 경쟁 호텔로 보낼 수는 없지 않나.


“그나저나 호텔 증축 문제는 무리 없이 추진되고 있습니까?”

“서울시에서 깐깐하게 굴어서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내년에 월드컵이 열리는데도....?”

“공원화 부지에서 좀 더 양보를 받고 싶은 모양입니다.”


가온 호텔&리조트는 밀레니엄 힐턴을 인수한 후로 백설빌딩과 남대문경찰서 사이 부지에 연면적 2만 평의 건물을 증축할 계획을 수립했다.

전략기획실에서는 헐어버리고 새로 짓자는 의견도 나왔다.

해당 부지에 본사 건물을 신축하자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용적률 중 60%만 활용하도록 적용되는 호텔 대신에 법적 용적률을 꽉 채울 수 있는 비즈니스 빌딩을 건설하면 그룹 입장에선 이득일 수도 있을 테니까.

각계각층 특히 건축계에서 크게 반발했다.

밀레니엄 호텔은 일개 건물이 아니라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는 건축물이라며 보존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들의 주장이 한편으로 일리가 있긴 했다.

건축사적 유산인 동시에 한국의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들이 벌어졌던 곳이긴 하니까.

가장 최근에는 INF 구제금융 협상과 최종서명이 있었던 장소가 밀레니엄 힐턴이었다.

알게 모르게 다이내믹했던 한국 근현대사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 밀레니엄 힐턴 호텔이다.

그래서 로비 한쪽에 그 같은 역사를 담은 전시관을 운영 중인 것이고.

그래서 대안으로 나온 것이 유휴부지에 새로운 빌딩을 올리는 방안이다.

지하 8층 지상 20층 높이의 비즈니스호텔 2개 동을 새롭게 지어 2002년 월드컵에 맞춰 개장하려고 했던 것.

객실 수는 가족호텔 210실, 비즈니스호텔 306실 등 총 516실로 계획되었다.

비즈니스호텔에는 최소 50개 객실을 따로 빼서 충무로 영화팀들의 작업공간으로 제공할 계획도 세웠다.

현재 한국의 시나리오 작가나 감독들은 주로 충무로 아스토리아호텔 혹은 압구정의 삼호호텔에서 시나리오나 콘티 작업을 하고 있다.

시설이나 환경이 썩 좋진 않았다.

할리우드 감독이나 작가들이 산타모니카의 그림 같은 전망을 자랑하는 호텔이나 베벌리힐스의 특급호텔에 묵으며 작업하는 것과 비교하면 거지 취급을 받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쨌든 서울시와 가온 호텔&리조츠 측은 도시환경정비사업을 통해 재개발하려고 했는데, 서울시 건축위원회에서 딴죽을 걸고 있는 상황이라 사업 진척이 지지부진했다.


“공원녹지 부지를 좀 더 할당하고 시민들이 자유롭게 공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는 방안을 고민해서 올 상반기 안에 건축위원회에서 증축사업 계획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해보세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계획대로 2개 동이 신축되게 되면, 이후에 본관도 리모델링에 착수할 계획이다.

그전에 펜트하우스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좋았다.


“우리 호텔에서 시무식이나 그룹 관련 행사를 하는 것도 좋긴 한데... 이왕이면 번듯한 본사가 있으면 더 좋겠지요?”

“재계 20위 안에 드는 대기업인데 본사가 없는 것이 직원들 사기진작에도 좀 그렇습니다.”

“서울 시내 매물로 나온 초대형빌딩 인수를 검토해보라고 해야겠네요.”

“테헤란로 쪽에 한국에서 연면적이 가장 넓다는 초고층빌딩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경일산업개발에서 건설하고 있는 고층 빌딩이요?”

“예.”

“어, 잠깐....!”


염기훈 사장의 말에 류지호는 뭔가 중요한 것이 떠올랐다.

바로 외환위기 최악의 ‘먹튀‘ 자본 돈스타였다.

외환은행을 헐값에 삼킨 것도 모자라 수도권의 주요 빌딩들을 여러 채 사들인 후 막대한 차익을 남기고 유유히 한국을 떠났던, 합법을 가장한 날강도들.


“I-Tower였던가.... 아마 그렇죠?”


설계 당시, 여의도 63빌딩이나 포스코빌딩, 무역센터 등을 제치고 단일 건물로는 국내에서 가장 큰 연면적을 갖춘 경일그룹 본사 사옥으로 계획된 빌딩이다.

외환위기로 경일그룹이 계열 분리를 하면서 I-Tower는 경일가문의 품에서 멀어졌다.

시공을 맡은 경일산업개발은 자금난에 공사를 잠시 중단하기도 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올해 상반기 빌딩을 준공할 예정이다.


“경일산업개발이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스탠리모웬과 물밑에서 협상이 이뤄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주거래은행과 합병이 추진되고 있는 주택은행에도 인수타진을 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아직 돈스타가 끼어들기 전인 모양이다.

참고로 이전 삶에서 I-Tower는 2002년 입찰의향서를 접수했는데,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대형 투자은행과 사모펀드, 기관투자자 등 7곳이 참여의사를 밝혔다.

결국 최악의 먹튀자본인 돈스타에 기대 가격에 훨씬 못미치는 금액에 넘어갔지만.


“혹시 대략적인 매각 금액에 대해 들은 거 없어요?”

“나래안전에서 들은 이야기로는 경일산업개발은 땅값 2,500억 원을 포함, 8,000억 원을 원한다고 하는데, 거래가 성사 되어도 그 가격에 훨씬 못 미칠 거라고 예상하는 분위기입니다. 내년에 돌아오는 경일산업개발 만기 회사채 규모가 대략 7,000억 원 수준이거든요.”

“그렇단 말이죠?”


I-Tower는 애초에 경일그룹 본사사옥으로 계획하고 지어진 만큼 각종 최첨단 시설을 자랑했다.

가온그룹의 본사로서 이보다 좋은 순 없다.

덤으로 먹튀의 대명사 돈스타의 먹잇감 하나를 가로챌 수 있고.


“좋은 정보 고마워요.”


<복수의 꽃>에 집중하다보니 비즈니스를 등한시했다.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에 멋들어진 본사 사옥을 지을 때까지 I-Tower를 인수해서 사용하면 될 것 같은데.’


염기훈 사장과 헤어진 류지호는 래리 킴 회장에게 연락했다.

그와 I-Tower 매입에 대해 의논했다. 대유 빅딜로 가온그룹에 자금여력이 없을 줄 알았다.

당시에 인수대금 일부를 주거래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바람에 여유 자금이 꽤 남아 있었다.

모자란 것은 류지호 소유의 투자회사 가온투자파트너스가 충당해 주기로 하면서 I-Tower 인수전에 가온그룹이 뛰어들 게 됐다.


❉ ❉ ❉


임원들이 모두 떠나고 류지호가 가장 마지막에 밀레니엄 힐턴을 떠났다.

혼자 움직이지 않았다.

다솜방송의 이호준 사장이 동행했다.

일행은 성수동으로 향했다.

성수동 공단은 한때 서울 제조업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공업 지역이었다.

1990년대 공장들이 수도권 외곽으로 이전하면서 지금은 활기를 잃었다.

아직은 스타트업과 연예 기획사들이 모여들며 제2의 전성기를 열어젖힌 시기는 아니다.


‘본격적으로 개발이 되는 시기는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가 개발되고 난 후였던 것 같은데.....’


어쨌든 성수동은 교통이 편리하고 강남보다 상대적으로 땅값이 저렴한 게 장점이다.

아직은 공업지구로 지정되어 있기에 개발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성수동을 둘러본 후, 영등포구로 이동했다.

이 시기 영등포구에는 서울시 준공업지역의 33%가 집중되어 있었다.

준공업지역은 가장 많은 시설군 설치가 가능한데, 특히 위험물처리시설 같은 주민기피시설 설치가 법적으로 가능했다.

쉽게 말하면 주거지역 바로 옆에 공장이 들어올 수 있다는 의미다.

60-70년대 산업화시기, 이 같은 준공업지역이 경인공업 지역의 큰 축으로 서울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대규모 공장이 서울 외곽으로 이전하고 또 제조 산업이 쇠퇴하면서 노후한 공장과 주택이 혼재된 낙후지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서울의 준공업지역 대부분은 90년대 이후 빈 공장이 증가하면서 지역의 슬럼화가 가속됐다.

특히 외환위기로 인해 영세공장들의 부도와 파산이 연쇄적으로 발생하면서 빈 공장들이 곳곳에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성수동 수제화 거리와 마찬가지로 영등포구 문래동 역시 아직 젊은 예술가들이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전이다.

그럼에도 공장 몇 곳에서 설치미술가들이 작업하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기는 했다.

이전 삶에서는 2010년대 홍대 등지의 임대료 부담이 늘어나면서 젊은 예술가들이 준공업지역으로 눈을 돌렸다.

성수동, 문래동 등 일반인들이 쉽게 매입하기 어려운 대규모 공장을 매입해 창작공간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특색 있는 카페와 음식점들이 들어섰고 2030 젊은 층이 몰려들었다.

젊은 유동 인구가 늘자 기업들도 하나둘 성수동에 둥지를 틀기 시작해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여기 땅값은 어때요?”

“평당 300만 원 안팎입니다.”

“그것 밖에 안 해요?”

“다른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IMF로 인해 땅값이 폭락했습니다.”


영등포 준공업지역은 한 때 평당 1,000만 원까지 올랐던 지역이다.

IMF로 직격탄을 맞아 부동산 가격이 폭락했다.

여담으로 2010년대에 가서는 이런저런 개발 호재들 때문에 주변 땅값이 평당 1,200만~3,000만원까지 뛰어오르게 된다.


“가온그룹이 매입한 곳은 이곳뿐입니까?”


류지호와 일행은 외환위기 전에는 기계설비를 제작하던 공장 마당에 와 있다.

대로변에 위치했지만, 주변에는 온통 빈 공장만 즐비해서 혼자 다니긴 위험할 정도로 을씨년스러웠다.


“오른쪽 철공소와 왼쪽의 비어있는 창고 건물도 가온 소유입니다.”

“모두 몇 평이나 되죠?”

“4,000평 조금 넘습니다.”

“재개발 사업이나 정비사업 계획은 없대요?”

“준공업지역에서 정비사업을 추진할 때 신축 건물의 30%를 부가가치가 낮은 공장이나 창고 등 산업시설로 지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때문에 준공업지역의 재개발은 사업성이 떨어져 참여하려고 하는 업체가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다면 다솜방송이 이곳에 사옥을 지어도 되는 겁니까?”

“서울시와 논의를 해봐야 알 것 같습니다.”

“제조업만 들어와야 하는지 확인 한번 해보세요.”

“알겠습니다.”


일행은 다시 승용차를 나눠 타고 부천 원미구 상동신도시로 향했다.


“부천시와 SBC 드라마 세트 협약은 체결했대요?”


류지호의 물음에 다솜방송 이호준 대표가 되물었다.


“<야인시대>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부천을 포함해서 몇 개의 지방자치단체와 협의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방영이 내년 상반기였던가요?”

“그래서 그런지 그다지 서두르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야인시대> 드라마 세트를 여주 WaW 종합촬영소에 유치할까도 고민했었다.

결론적으로 성사되지 못했다.

목조를 이용해 가건물 형식으로 야외 세트를 제작하면 차후 애물단지가 되어버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경제유발 효과니 관광객 유치니 하는 건 숫자놀음일 뿐이라고 봐요.”

“맞습니다. 실제 야외 촬영장을 관리·유지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입장료로 충당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매년 태풍과 장마로 목조 세트가 손상될 테고, 만일에 화재라도 난다면 큰 낭패를 보게 됩니다.”


할리우드의 메이저 VFX 회사를 소유하고 입장에서 야외 세트 부분에 대해서는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했다.

하루가 다르게 CG 기술이 발전하고 있다.

환경과 배경을 만들어내는 그래픽 수준이 날로 정교해지고 있다.

게다가 지자체가 무분별하게 건설하는 시대극 세트까지 고려해서 중복투자가 되지 않도록 면밀한 검토 후에 나설 필요가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TV시리즈 오픈세트장을 유치하기 위해 경쟁이 치열하다면서요?”

“각종 지원책을 경쟁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문경시의 경우는 <왕건> 촬영을 유치하면서 세트 제작비 29억3천만 원 중에서 4억3천만 원을 시에서 대주기로 했답니다. 한술 더 떠서 부천의 경우는 <야인시대> 세트장을 유치하기 위해서 오픈세트 건설비용 22억 원을 전부 부담하겠다고 했답니다.”

“여주는 인센티브 없대요?”

“세트제작비용을 지원받으려면 스튜디오 투어 프로그램을 시행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처음 받은 세제지원에 만족해야겠네요.”

“성수동, 문래동, 부천 중 어디가 마음에 드십니까?”

“내 마음이 중요한가요? 다솜방송이 결정할 사안이죠.”

“교통이나 강남과의 접근성을 생각하며 성수동이 괜찮은 것 같고, 부지면적만 놓고 보면 문래동이고, 부천은 서울과 거리를 고려했을 때 큰 메리트를 느낄 수 없습니다. 원래 계획대로 상암으로 옮기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상암이 언제 개발이 될 줄 알고요.”

“....음.”

“당장 올 가을부터 게임방송에 이어 스포츠TV도 운영해야 하고, 내년에는 쇼·오락 버라이어티 채널도 열잖아요. 현재 강남의 빌딩으로는 무리지 싶은데.....”


맞는 말이라 이호준 사장은 반론이 궁색했다.

작년 11월, 다솜방송은 케이블채널 스포츠TV의 국민체육공단 지분 51%를 인수함으로써 최대 주주가 되었다.

올 상반기 안으로 다솜방송은 스포츠 채널까지 운영하게 된다.

그로인해 하반기부터 프로농구와 아이스하키 리그를 중계 방송할 계획이다.

향후 프로야구 중계에도 참여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상파와의 중계권료 경쟁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다솜방송은 당장 드라마·예능 스튜디오 같은 대규모 시설이 필요하지는 않다.

다만 네 개의 케이블채널을 방송하려면 현재 시설로는 감당이 되지 않았다.

이에 다솜방송 신사옥을 건설할 계획이다.

서울역 앞 구 대유빌딩을 리모델링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법률적인 부분 때문에 배보다 배꼽이 커질 것 같아 포기한 바 있다.

현재 사용 중인 구 동우극장 빌딩은 E-스포츠 전용 경기장으로 탈바꿈시켜 E-스포츠 기념품 매장, SnowStorm&Timley 캐릭터 전문 매장, 아네모네 프랜차이즈 등을 입주시켜 게임관련 메카로 만들 계획이다.


“다솜방송의 생각이 중요하니까, 충분히 검토해 보고 결정하세요.”

“장기적인 방안을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곧 쇼·오락, 버라이어티도 제작할 수 있으니까 그것도 염두에 두시고요.”

“예.”


류지호는 다솜방송 관계자들을 서울로 돌려보내고 자신은 인천으로 내려갔다.

사인방 부모님들을 찾아가 늦은 신년인사를 올렸다.


✻ ✻ ✻


류지호는 인천에 내려온 김에 아네모네 프랜차이즈 본사를 방문했다.

채연지 사장을 만나서 출소한 남편의 거취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했다.


“전과자도 외국에 나갈 수 있어?”

“폭력, 살인 같은 중범죄는 미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에서는 입국을 불허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꼭 가야한다면 방법이 있겠죠.”

“밀항이라도 보내게?”

“법을 어기지 않고도 우회로 입국하는 방법이 있을 걸요. 다온로펌에 문의하면 방법을 찾아줄 것 같네요.”


류지호의 심기를 상하게 하지 않으려는 듯 채연지가 매우 조심스럽게 물었다.


“남편이 깡패라서 위험한 나라에 보내는 거야?”


문제를 일으킬까 싶어서 한국에서 치워버리는 것 아니냐는...


“그런 거 아니에요.”

“근데 왜.....?”

“에티오피아와 콜롬비아라고 해서 험하기만 하겠어요? 치안이 안정 된 수도 중심가에서만 지낼 것이고 실무는 현지인들을 고용해서 진행해야겠죠.”

“남편이 교도소에서 원예를 배우긴 했는데, 커피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야.”

“상관없어요. 지부장이 뭐겠어요. 사람 만나고 관리하고 그런 일을 주로 하잖아요. 한때 인천에서 건달 수십 명을 거느렸다면서요. 경영이나 회계 같은 것들은 직원들 파견 보낼 테고, 남편분은 객지생활의 어려움 빼고 업무적으로는 크게 어려움은 없을 거예요.”

“내게 이야기해봐야 소용없고.... 류 감독이 한 번 직접 만나 봐.”

“오늘 저녁에 만나볼 수 있어요?”

“기다려봐. 전화 해 볼게.”


그날 저녁 곧바로 구월동의 채연지 집에서 함민수를 만날 수 있었다.

머리가 하얗게 세고 환갑을 넘긴 나이지만 여전한 풍채를 자랑했다.

소싯적에 씨름판에서 알아주던 인물이라고 하더니 함민수의 외모는 꽤나 인상적이었다.

부리부리한 눈과 각진 턱 뭉툭한 코로 인해 담이 약한 사람은 절로 겁부터 집어먹을 것 같았다.

함민수가 대뜸 물었다.


“고등학생 어린 나이에 인천을 먹었다며?”

“사업을 했을 뿐입니다. 건달세계에 발을 들인 적이 없습니다.”

“문식이를 거뒀으면 인천을 다 먹은 것이나 다름없지.”


오랜 투옥 생활로 인해 함민수의 사고가 20년 전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

유독 나와바리에 집착했다.

류지호가 알기로 장문식이 유명한 건달이긴 했지만, 폭력조직의 보스까지는 아니었다.

행동대장으로 전투력만큼은 타의추종을 불허했지만, 조직을 이끌거나 하진 않았다.


“자네 술 좀 하나?”

“....”

“여보게, 술 상 좀 봐주게.”


금방 술상이 차려졌다.

채연지까지 술자리에 떡하니 자리를 잡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눈앞에서 과거지사를 털어놓는 함민수를 걱정하기도 했다.

이제는 늙고 지친 호랑이일 뿐이다.

물론 늙은 호랑이라도 화가 나서 최선을 다해 달려들면 무섭다.

딱히 걱정되거나 신경 쓰이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맹수도 다룰 줄 아는 노련한 조련사들을 휘하에 두고 있으니까.

바로 나래안전이라는.


‘김영철 과장의 말에 의하면 남동경찰서 정보과 직원들이 수시로 찾아오기도 하고, 동향보고가 청으로 올라간다고 했지.’


혹시나 함민수를 중심으로 과거 인천지역 조폭들이 모여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조폭 수괴 동향 파악은 경찰 정보과의 기본 업무이기도 하고.


“혹시 내가 미국에 가볼 수 없겠나?”

“왜요?”

“아들이 유학 가있는데, 아비가 되어서.... 대학교 졸업식에 참석하고 싶어서.”

“앞으로 어떻게 생활하는지에 달려있겠죠.”


채연지 부부는 슬하에 아들과 딸을 두고 있다.

딸은 현재 고등학생이었고, 장남은 미국대학에서 경영을 공부하고 있다.

여담으로 아들 녀석은 어릴 때부터 말썽을 좀 피웠다.

고우찬에게 엄청 맞으면서 자랐다.

한국의 좋은 대학에는 입학할 수 없을 정도로 공부를 못했다.

부자가 된 엄마 채연지가 돈으로 녀석을 미국으로 유학 보냈다.

이름도 없는 대학교였는데, 미국에서 지내던 황재정과 고우찬이 녀석이 탈선하지 않도록 잘 돌봐주었다.

채연지 역시 JHO Security Services에 의뢰해 아들이 엉뚱한 짓을 하지 못하도록 감시와 관리를 하고 있었고.

녀석은 미국에서 학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아네모네 프랜차이즈를 물려 받을 것으로 믿고 있었다.

어림도 없다.

최대주주인 류지호가 그렇게 놔두지도 않을뿐더러 채연지 역시 좋은 상권에 PC방이나 소주방을 차려주는 것에서 만족할 테니까.


“언제까지 답을 주면 되겠나?”

“충분히 고민해 보세요. 채 사장님이나 장 이사 통해 정보도 얻어 보시고.”

‘알겠네.“


함민수가 벌떡 일어서서 별안간 류지호에게 건달 방식으로 고개를 숙였다.


“고맙네.”

“......”

“안사람과 아이들을 돌 봐줘서....”

“채 사장님이 제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 은혜를 갚은 것뿐입니다. 고맙다는 말은 채 사장님께 하세요.”


채연지가 눈시울을 붉혔다.


훌쩍.


여장부 같았던 채연지도 세월을 거스를 순 없는 모양이다.

노년에 접어들며 감정동요가 꽤 심해졌다.

암튼 60~70년대 신파 영화가 한 편 나올 것 같아 류지호는 얼른 작별인사를 하고 빠져나왔다.

채연지는 류지호의 의도를 오해하지 않고 납득했다.

함민수를 신경 쓰는 것이 아네모네를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전직 조폭 두목이 사회에 나오면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아내가 벌어다주는 돈으로 폼이나 잡고, 과거 동생들과 술이나 먹으면서 얼어 죽을 똥폼이나 잡으며 한량처럼 지내는 것밖에 더 있나.

그러다가 돈 문제라도 얽히게 되면, 제 버릇 남 못 준다느니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느니 온갖 말을 들으며 결국 다시 교소도로 들어갈 수밖에.

이미 시대를 풍미했던 조폭 두목들이 그런 과정을 겪었다.

참고로 1년 후.

채연지는 아네모네 프랜차이즈 사업에서 완전 손을 뗀다.

남편 함민수와 함께 에티오피아로 떠나게 된다.

얼마 안 가 아네모네 프랜차이즈 사업에 커피원두수입과 커피전문점이 추가된다.

아네모네 커피전문점은 가온그룹 계열사에 가장 먼저 입점하게 된다.

저렴한 가격에 커피 맛까지 뛰어나서 가온 직원들의 사랑을 듬뿍 받게 된다.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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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99 ehqur
    작성일
    23.03.08 09:45
    No. 1

    첫사랑한테 사기당한 쥔공.

    찬성: 4 | 반대: 0

  • 작성자
    Lv.59 루시오엘
    작성일
    23.03.08 09:57
    No. 2

    잘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하얀유니콘
    작성일
    23.03.08 17:17
    No. 3

    힐튼의 펜트하우스는 어떻게든 되찾아야 합니다.
    횡령등으로 호텔 직원 회장등 고소하고
    괴롭히면 됩니다.
    특급호텔에서 최상층이 갖는 의미는
    단순한 삼짐성이 아닢니다.
    중동의 왕족 중국 주요관리 유럽귀족등은
    경호 문제와 쳬면 운제로 최상층만 고집합니다.
    저건 호텔 전체의 등급 강등요인이 됩니다.
    최사층 하나 사용 못함으로 호텔 전체
    리스를 못하게 막는 겁니다.
    저건 한달에 기회비용으로
    수억을 날리는 꼴입니다.
    대우 인수시 같이 해결했어야 합니다.
    안돼면 힐튼호텔 간부들 다 엄무방해및
    횡령 배임으로 고소해 김회장
    항복을 받아야 합니다.

    찬성: 4 | 반대: 0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3.03.09 00:34
    No. 4

    잘 봤어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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