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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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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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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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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1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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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내가 먹을 걸 남에게 맡기면 위험이 따른다. (3)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신효정 변호사, 김우영 비서실장, 매니지먼트 CHAN의 김민아가 WaW 픽처스 프로덕션 오피스로 찾아왔다.

차기작 연출 계약 때문이다.


“내가 좀 까다롭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류지호의 말에 필름&쿠 구병환 피디가 당치도 않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이해합니다.”

“많은 걸 양보했다는 생각이 들 텐데요?”

“<이중간첩> 투자계약까지 맺었으니, 저로서는 남는 장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류지호는 <민중의 적>을 WaW 픽처스로 가져오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출을 수락해야 했다.

<민중의 적>을 가져오면서 패키지로 <이중간첩> 투자·배급을 WaW 엔터테인먼트에서 책임지기로 했다.

<이중간첩>은 <쉬리Ⅱ>의 제작이 무산되면서, 대체 작품으로 선택한 프로젝트다.

<쉬리>의 주인공을 연기한 한정원을 캐스팅하고, 일부 배우들만 교체해 진행할 궁리를 했다.

여배우는 바뀔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이중간첩>은 한 선배가 출연하는 게 중요합니다. 필요하다면 내 이름을 팔아도 좋아요.”

“그것도 연출하실....”

“아니요. 내가 공동으로 프로듀싱할 거라는 것 정도는 말해도 됩니다.”

“아, 예.....”


구병환 피디가 아쉬운 듯 슬쩍 말끝을 흐렸다. 류지호는 처음으로 다른 영화사와 계약서를 쓰면서 상당히 많이 양보했다.

할리우드에서의 계약보다 삼분의 일 수준으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연출료의 숫자는 내겐 큰 의미가 없어요. 그렇다고 해서 무료봉사처럼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입장을 이해바랍니다. 또 변호사와 에이전트가 계약부분을 당사자 대신 협상한 것도 이해 바랍니다.”

“그런 방식이 할리우드에서 일반적이라는 걸 잘 압니다. 지분을 많이 나눠드릴 수 없어 죄송하고 고마울 뿐입니다.”


류지호의 고문 변호사인 신효정은 필름&쿠와 연출료 부분에서 큰 이견을 보였다.

신효정은 류지호가 할리우드에서 받는 연출료의 절반 수준을 제시했다.

필름&쿠 입장에서는 어림도 없는 액수에 포기할 생각까지 했었다.

<Remo : The Destroyer>의 흥행성공으로 차기작부터 기본 300만 달러 연출료가 보장된 류지호다.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보다 높은 액수다.

협상안으로 러닝개런티를 제시했다.

<쉬리>에서 한정원 배우가 보장 받았던 수준인 손익분기점 이후 관객 1인당 300원의 조건을 제시했다.

신효정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다.

그녀는 다시 영화 수익의 42%를 제시했다.

일단 지분 계약을 합의 본 후로 필름&쿠 측에서는 지분율을 낮추기 위해 갖은 애를 다 썼다.

필름&쿠에서는 확신이 있었다.

<민중의 적> 예상 제작비는 대략 23억 원.

류지호의 이름값만으로 무조건 본전치기는 보장된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영화 수익 분배에서 많은 부분을 포기할 수 있었다.

<민중의 적>을 통해 돈을 버는 것보다 그를 통해 차기작들의 투자를 받는 것이 더욱 중요했고 그것이 영화사의 영속성에 더 도움이 되니까.

밀고 당기기는 협상이 류지호도 모르게 치열하게 진행됐다.

최종적으로 순이익의 29% 지분으로 합의를 보았다.


“이번 계약 발표는 내년 초에 가서 해주세요.”

“배우들이 서로 하겠다고 줄을 설 텐데.....”

“각색도 해야 하고, <복꽃>도 찍어야 하고.... 아무리 빨라도 내년 봄에나 프리프로덕션을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복꽃> 크랭크업 할 때까지는 알리지 않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이해해줘서 고마워요.”

“각색은 감독님이 직접 하실 생각입니까?”

“생각해 둔 작가가 있어요.”

“혹시 누구....?”

“송진한 감독에게 부탁해보려고요.”

“송 감독은 캐나다로 이민 가지 않았어요? 영화판 떠났다고 하던데... 아니었습니까?”

“영화판 떠났다고 본인은 생각하더라구요. 바지끄댕이 잡고 사정해볼 생각입니다.”

“송 감독이 책을 만져준다면.... 게임 끝났네요. 송 감독의 책에다가 류 감독님 연출이면....”


구병환 피디가 말을 흐리며 실실 웃었다.

송진한 감독이 <넘버 쓰리>에서 보여줬던 풍자와 유머를 영화에 담아주고 류지호 감독의 세련되고 밀도 높은 연출을 통해 웰메이드한 장르영화가 탄생할 것 같았다.

처음 <민중의 적>을 기획했을 때보다 훨씬 좋은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각색에는 필명으로 나갈 것 같아요. 누가 물어보면 내가 개인적으로 미국에서 잘 아는 신인작가가 썼다고 해 두세요.”

“송 감독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이 없는가 보죠?”

“말은 그렇게 하는데, 가끔 한국 들어와서 지인들 만나고 술도 먹고 해요.”

“하하. 제 발로 영화판 떠나기가 쉽지 않죠.”

“송 감독이 각색하는 거 괜찮죠?”

“괜찮은 게 뭡니까? 아주 기대가 됩니다. 솔직히 송 감독이 잘 못한 게 뭐있습니까? 평론가라는 작자들이 감독 하나 바보 만들고, 다음 영화가 기대되는 감독 한 명 영화판에서 쫓아낸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현장 영화인들은 대체로 송진한 감독 편이다.

그동안 영화 평론이 무슨 벼슬이라도 되는 것처럼 행세한 이들이 없지 않았기에.


“송 감독한테 시나리오 받는 게 소원이라는 감독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아직 마음이 정리되지 않은 모양이니까... 당분간은 우리만 알고 있자고요.”

“혹시 배우는 누굴 생각하시는지.... 박중환씨나 한정원씨....?”

“중환 선배는 할리우드 영화 한편 할 것 같다네요. 한 선배는 <이중간첩> 책 나오면 보내드려 보죠.”

“<민중의 적>이 아니라 <이중간첩>입니까?”

“한 선배는 지적이고 신사 같은 형사 캐릭터가 먼저 떠오르죠. 연기로 어떻게든 날 것 느낌을 내기야 하겠지만. 썩 흥미로운 캐스팅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JSA>의 송대호는 어떠세요?”

“대호 선배는 안 될 거예요.”


모두의 시선이 김민아에게 모여들었다.


“<반칙왕>에서 원톱이 가능하다는 걸 증명하긴 했지만, 아직 코믹 배우 이미지가 있어서..... 전하영 피디님한테 듣기로 박진우 감독님 차기작에서 같이 하자고 했다고 하더라구요.”


나름 한국 연예계에 잘 적응하고 있는 김민아다.

잠시 김민아를 기특하게 쳐다보던 류지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설형기씨를 생각하고 있어요. 아마 지금은 <은행나무 침대Ⅱ> 찍고 있을 겁니다. 차 대표에게 듣기로는 다음 작품은 아스트로와 한다고 하네요. 아스트로와 계약하기 전에 미리 찜해 놓죠. 책 나오면 설형기씨에게 제일 먼저 보내는 걸로 해요.”

“강형사는 설형기라고 치고, 악역은...?”

“이훈재씨가 어떨까 하네요.”

“두 배우를 바꿔서 말하신 건 아니죠?”

“예.”


아무리 배우를 바꿔보려 해도, 이전 삶의 영화에서 보여준 모습 이상을 해낼 배우가 떠오르지 않았다.

너무나 강렬하게 남아있는 영화의 인상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Eye-MAX나 파나플렉스로 찍을 생각은 아니시죠?”

“DALLSA Origin으로 촬영할까 생각 중입니다.”

“<Escape>에서 썼던 그 카메라입니까?”

“기종은 같은데, 최근에 성능 개선이 많이 된 모델이에요. <스타워즈 Ep1>에 사용된 카메라보다 화질이나 여러 면에서 더 좋을 겁니다.”

“한국에서 디지털 상업 영화가 가능하겠습니까?”

“가능하니까 하려고 하죠. <민중의 적> 프리프로덕션에 들어갈 때쯤이면 WDL에 디지털 포스트프로덕션 장비 풀세팅이 끝나 있을 겁니다. 충무로 스태프들이 미숙한 점이 있을지 몰라도 여타 제작 여건이나 기술 부족으로 헤맬 일은 없을 테니 걱정 안 해도 됩니다.”

“그런데.... 디지털 영화가 제작비를 낮출 수 있는 겁니까?”

“눈에 확 뜨일 정도로 몇 억씩 낮추거나 하지는 않을 겁니다. 당장은 필름 비용 아끼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네요.”

“알겠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한일합작 영화와 휴먼드라마에 바짝 신경 쓰세요. <민중의 적> 진행사항은 WaW의 김재욱 실장을 통해서 소통하자고요.”


프로젝트 진행방향까지 얼추 합의 본 후 구병환 피디가 떠났다.

김민아는 프로덕션 오피스에 있는 감독들에게 인사를 하러 다녔다.

고문변호사 자격으로 함께 한 신효정까지 떠나고, 비로소 김우영 비서실장만 남았다.


[형이 돈 없다 그래서 패고, 말 안 듣는다 그래서 패고....]


이 대사는 남자 신인배우 오디션 단골 메뉴가 된다.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누구나 정확한 문장은 암기하지 못해도, 뉘앙스는 흉내 낼 수 있을 명대사다.

시리즈로 만들어져 꽤 쏠쏠한 흥행성적을 거두었던 영화다.

<민중의 적>의 연출 계약서에 서명하면서 류지호는 양심의 가책에 대해 생각했다.

과거로 돌아 온 후, 남의 기회를 수도 없이 많이 가로챈 주제에 영화 한 편에 양심에 가책을 느끼는 것도 우습게 느껴졌다.

대신 다른 방식으로 원 주인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기로 했다.

가깝게는 북파공작원 훈련소 사건을 다룬 영화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이고, 멀게는 강은석 감독의 주도로 조성되는 영화인 투자펀드에 거액을 지원해 주는 것이다.

류지호는 기꺼이 수백억 원을 펀드에 투자할 의향이 있었다.

무비서비스가 이전 삶과 달리 오랜 시간 유지될 수만 있다면.

그래서 토종 영화자본, 재벌 자본, 할리우드 자본이 경쟁과 균형을 잘 맞추는 산업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만 있다면.

수백 억 원이 아니라 수천 억 원을 조성하는데 기꺼이 한 팔 보탤 용의가 있었다.


“김 실장.... 인천 무의도 옆에 실미도라는 무인도가 있어요.”

“무인도 말씀이십니까?”

“그거 매입할 수 있는지 알아보세요.”

“섬에 투자하실 생각이시라면 서해보다는 남해가.....”

“영화 세트장을 지을 생각입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관련 법령에 무인도는 크게 네 가지로 유형으로 나뉜다.

‘절대보전 무인도’는 섬의 형상과 생태계 보전을 위해 출입이 전면 금지된다.

‘준보전 무인도’는 보전가치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출입이 제한된다.

‘이용 가능 무인도’는 섬의 형상 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일정한 행위가 허용된다.

‘개발 가능 무인도’는 일정 범위 내 개발이 허용된다.

‘이용 가능‘ 무인도는 전체의 48%고, ‘절대보전‘ 무인도는 6% 정도다.

참고로 한국에는 2,878개의 무인도가 존재한다.

절반 이상이 전남에 몰려있다.

류지호는 실미도를 아예 구입해서 강은석 감독이 영화를 좀 더 원활하게 찍을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줄 생각이다.

이전 삶에서는 실미도에 세트를 짓는 것부터 사후 관리까지 꽤나 골치를 썩었으니까.


‘G.O.M에서도 좀 더 밀어주고... 트라이-스텔라 개봉영화 중에 덜 센 영화와 붙게 만들어주고....’


이전 삶에서 ‘천만영화‘였지만, 이왕에 밀어줄 것이라면 화끈하게 하는 것이 좋다.

경쟁 영화사 잘되는 것이지만, 한국영화에는 좋은 일이다.

결국 돌고 돌아 WaW 픽처스에게도 그 수혜가 돌아올 수도 있기에.


“바빠?”

“아니....”


프로덕션 오피스를 돌며 감독들에게 인사를 하고 김민아가 류지호의 집무실로 돌아왔다.


“근데... 지호야.”

“응?”

“계약금을 받지 않을 거면 지분만 계약서에 적시하면 되지 왜 꼭 1만원을 적어 놓은 거야?”

“미국의 어떤 CEO 흉내 내 봤어.”

“어떤 CEO?”

“이름은 기억이 잘 안 나. 대도시 시장 연봉으로 1달러 받는 사람도 있고, 실리콘밸리에서 잘 나가는 CEO 몇 명도 연봉을 안 받는다고 하더라.”


물론 현재가 아니다.

지금은 꼬박꼬박 고액의 연봉을 챙겨가고 있다.


“월급도 안 받고 일을 한단 말이야?”

“그럴 리가. 그런 사람들한테는 몇 백만 달러가 의미가 없으니까.”

“원래가 부자라서?”

“자기 회사 주식을 가지고 있잖아. 월급 대신에 배당금을 받아 가는 거지.”


실제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창업주들 사이에서 월급을 안 받아가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한다.

사실 눈 가리고 아웅이다.

월급만 안 받아가지 매년 수 천 만 달러의 배당금이나 스톡옵션을 챙기니까.


“너도 미국에서 연봉을 안 받는다고 하던데, 그럼 배당금 받아?”

“JHO에서는 안 받아. 대신 다른 회사 주식에 투자한 것에서는 배당이 나오지.”


류지호의 친구인 일론 리브스를 비롯해 페이스노트 창업자, GooGol 창업자 등 갑부가 되는 실리콘밸리 기업 CEO들은 월급에 연연하지 않아도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자신이 창립한 기업의 지분이 많기 때문에 기업 실적이 좋은 때 엄청난 배당금을 받아 가거나 스톡옵션을 행사해 주식을 늘린다.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가 저연봉을 받고 일하는 모습이 직원들에게 거부감도 덜 일으키고, 고연봉자가 줄어드는 효과도 있으니 회사 수익에도 도움이 된다.

그리고 기자가 왜 연봉을 1달러만 받느냐고 질문할 때.


[나는 이미 충분한 돈을 벌었다. 나는 정말 가치 있는 것을 하고 있다는 확신이 필요한 것이지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라고 폼 나게 대답할 수 있다.

이사회의장 신분인 류지호는 JHO Company로부터 단 한 푼의 보수도 받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JHO는 주주배당도 거의 하지 않았다.

간혹 배당을 받게 되면 JHO 자선재단으로 자동으로 기부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류지호로서는 하나도 아쉬울 것이 없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돈이 너무 많으면 재미가 없다고 한다.

다 가졌고 혹은 다 가질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마약도 하고 더 큰 자극을 찾게 된다고 한다.

그 말에 따르면 류지호는 재미가 없어야 한다.

젊은 나이에 몇 대가 먹고도 남을 돈을 벌었으니까.

일정 부분 맞다.

이제 돈벌이에 연연하지 않는다.

돈을 벌어들이는 것에는 큰 감흥이 없다.

다만 새로운 일을 해나가는 과정은 재미가 있다.

새로운 일을 찾아서 하다 보니 돈이 벌릴 뿐이다.

작은 물은 큰물로 모여들게 되어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류지호는 큰물에 놀기 위해 일을 해야 했다.

이제는 류지호가 노는 물이 큰물이다.

암튼 1년이 훌쩍 지나고 나서야 류지호의 <민중의 적> 계약금이 알려지게 된다.

류지호의 영화 연출 계약금은 단돈 1만원.

두고두고 충무로에서 회자되는 전설적인 계약으로 남게 된다.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 ❉ ❉


올해는 한국전쟁 50주년을 맞이한 해다.

윌리엄 파커는 한국 보훈처의 초청으로 한국에 왔다.

한국전쟁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한남동을 나섰다.

류지호 가족 역시 윌리엄과 동행했다.

오전 7시 30분.

국립현충원에 일행이 도착해 보니, 이미 향군회원, 해외 참전용사를 포함해 600명이 운집해 있었다.

기념식 참석자들이 현충탑에 헌화, 분향하고 용산 전쟁기념관으로 이동했다.

50주년을 맞이해 전국 각지에서 기념행사가 다채롭게 열렸다. 오전 10시가 되어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대통령을 비롯한 3부 요인과 각 군 장성들, 보훈 가족과 18개 참전국의 국방 장·차관, 참전용사 등 1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중앙기념식이 거행되었다.

기념식은 40분여 분 간 진행됐다.

공식기념식 직후에는 전쟁기념관 회랑에서 국군 및 경찰전사자 15만6천명의 명비에 이어 추가로 국군 전몰용사 3만1천712명과 참전국 전사자 3만7천 645명의 명비가 제막됐다.

북한을 자극하는 시가행진 및 전투재연 행사 등은 열리지 않았다.

류지호는 윌리엄을 비롯해 평소 친분이 있는 미군참전용사 노인들에게 밀레니엄 힐턴에서 점심을 대접했다.

그들은 몇 년에 한 번씩 한국을 방문하고 있었기에 서울 시내 관광 같은 일정을 소화할 이유가 없었다.

점심을 여유롭게 즐긴 후에는 호텔 객실로 안내되어 잠시 휴식을 취했다.

오후에는 국가보훈처가 주최하는 해외참전용사 위로연에 참석했다.

같은 시간 전국 재항군인회 산하 237개 지회와 지방자치단체별로 지방 기념식과 참전용사 위로연을 가졌다.

밀레니엄 힐턴에서 열린 위로연에는 500명이 참석했는데, 훈장 수여식도 함께 열렸다.


“윌리엄 파커님, 류민상님 연단으로 나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날 훈장 수여식에서 국민훈장 3명, 국민포장 3명, 대통령 표창 9명, 총리표창 11명이 영예를 안았다.

윌리엄 파커와 류민상은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다.


“아버지는 보훈 대상자도 아닌데 어떻게 훈장을 받으시는 거지?”


류순호가 의아해서 중얼거렸다.


“아빠가 다울재단 이사장이잖아. 지금까지 한국전참전용사회에 기부를 좀 많이 하셨어? 기념사업도 매년 열어주시잖아.”

“그랬나?”

“아휴, 집안일에 신경 좀 써.”

“재단일이 언제부터 집안일이었어?”

“큰오빠가 다울은 우리 가족 자선재단이라고 했어 안 했어?”

“됐고. 그래서 다울에서 참전용사 할아버지들한테 뭘 하는데?”

“국가유공자 임종지원이란 게 있거든. 장례비용 일부 보조하고 의전도 해드리고 있지. 알려지지 않은 한국전 전쟁영웅들 추모행사도 개최해 드리고, 생활이 어려우신 분들 주거개선 사업 같은 것도 하고 있어.”

“우리 집안 성향이 언제부터 반공보수가 됐지....?”

“아휴! 이 바보탱이가....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숭고한 희생을 한 분들은 사회로부터 예우와 보상을 받아 마땅하다. 아빠가 자주 하는 말이거든.”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를 발굴하고 순직한 소방관이나 경찰관 가족 돌봄 사업도 하고, 역사 속에서 덜 주목 받은 의병장이나 인물을 발굴해 홍보하는 사업도 전개하고 있다.


“아빠 선비와 형 선비 때문에 내가 아주 숨이 다 막혀.”

“흥. 그 말 다 기억했어. 일러바칠 거야.”


암튼 한국의 국민훈장은 5등급으로 나뉘어 수여되었다.

가장 최고 등급인 무궁화장을 시작으로 모란장, 동백장, 목련장, 석류장으로 구분되어 있다.

국민훈장은 정치·경제·사회·교육·학술 분야에 공을 세워 국민의 복지 향상과 국가 발전에 이바지한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하는데, 공익시설에 많은 금액의 재산을 기부하였거나 이를 경영한 사람, 그 밖에 공익사업에 종사하여 국민의 복리 증진에 이바지한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도 수여한다.


“모두 자식을 잘 둔 덕분입니다. 이 훈장은 제가 아니라 다울재단에 기부를 해준 모든 분들이 받으셔야 마땅하고, 저는 그저 그 분들을 대신해 대리로 받은 것일 뿐입니다.”


훈장을 수여받은 류민상이 취재진에게 한 말이었다.


- 달라질 건 없다.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한국전쟁이 벌어진 시점으로 돌아간다면 어떤 선택을 하겠냐고 묻는 취재진에게 윌리엄이 대답한 말이었다.

참고로 윌리엄 파커는 미국 대통령 부대표창(Presidential Unit Citation)과 대한민국 대통령 부대표창(Korean Presidential Unit Citation), 동성훈장(Bronze Star Medal) 등에 이어 군복 약장에 대한민국 국민훈장 목련장이 포함되게 되었다.

윌리엄이 평생을 일군 부는 자랑할거리가 못 된다.

가문의 것이니까.

그런데 훈장은 그가 일생을 잘 살았다는 증거다.

윌리엄 파커에게는 다른 무엇보다 큰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다.


✻ ✻ ✻


합정 프로덕션 오피스로 출근했던 류지호가 한창 일할 시간에 한남동 집으로 돌아왔다.

윌리엄이 호출을 했기 때문이다.


“외출을 하시고 싶다고 하셨어요?”

“이틀 후에 한국을 떠나야 하잖아. 이대로 집에만 있으려니 답답해.”

“어디 가고 싶으신 곳이 따로 있으세요?”

“서울만이라도 네 사업체들 한 번 쭉 둘러보자꾸나.”


계열사에 제조업이라도 있다면 구경할 만한 공장이라도 있으려만.

서비스업이 주력 사업이라 딱히 시찰할 만한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오랜만에 오게 된 강남의 발전된 모습에서 크게 놀란 윌리엄 파커다.

특히 90년대 발전을 거듭해 몰라보게 달라진 테헤란로와 삼성동 일대를 보며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삼성동 아셈빌딩 코엑스몰 지하에서 영업 중인 G.O.M을 돌아보고 류지호의 어깨를 붙잡은 윌리엄의 손에 힘이 실린 것 같았다.

그 정도로 한국에서 류지호가 벌인 일들에 큰 감동을 느낀 모양이었다.


“메가웹스테이션?”


G.O.M 코엑스몰 맞은편에 입점해 있는 메가웹스테이션(megawebstation)에 기업가로의 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메가웹스테이션은 G.O.M 개관과 비슷한 시기에 문을 연 대형 인터넷 전시 공간이다.

인터넷과 관련된 모든 것을 온라인·오프라인 상에서 동시에 체험할 수 있는 원스톱 인터넷 전시 공간을 표방하고 탄생했다.

1,000평 규모에는 인터넷 멀티 게임장인 ‘메가 스타디움’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다솜게임넷에 이어 게임 중계방송을 시작한 케이블 채널 카투니버스의 ‘스타크래프트’ 게임 경기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휠체어에 앉아 아마추어 스타크래프트 경기를 지켜보던 윌리엄이 물었다.


“이것도 가온 컴퍼니 시설이냐?”

“다른 업체 시설이에요. 저희 게임 스타디움은 강남에 있어요.”


다솜게임넷의 E-스포츠 전용 경기장은 리모델링한 옛 동우극장을 사용하고 있다.

메가웹스테이션과 마찬가지로 매일 프로·아마추어 비디오게임 리그가 열리고. 게임전문 케이블TV가 대회를 중계하며, 상주하는 준프로 게이머들이 게임 마니아들에게 게임 지도를 해 주고 있다.


“이 거대한 쇼핑몰이 여러 면에서 훌륭해 보이는데, 왜 이곳에는 만들지 않았지?”

“차후 E-스포츠가 더욱 활성화 된다면 전통적인 스포츠 경기장 시설처럼 따로 전용 경기장을 건설하려고요.”

“JHO Company 계열사가 만든 게임이 청소년들 사이에서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지?”

“국가나 지역마다 조금씩 인기 있는 게임 타이틀이 다르긴 해요. 대체로 JHO 계열 게임개발사 타이틀이 인기가 많은 편이에요.”

“나중에 컴퓨터 게임으로 올림픽이라도 열게?”

“그렇게 되길 기대하지만.... 모르죠.”

“양대 리그를 운영한다고 얼핏 듣기는 했다만.”

“애니메이션 채널에서 새로운 팀 창단을 유도 하고 있다고 해요. 기존 리그와 좋은 경쟁을 할 수 있길 바라고 있어요.”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다솜게임넷과 Snowstorm Entertainment가 주도하는 컴퓨터 게임의 E-스포츠 프로 리그는 약간의 시행착오를 겪고 있었다.

Snowstorm Entertainment는 한개 국가 한 개 '스타크래프트‘ 리그 정책을 펴기로 방침을 정했다.

그런데 새롭게 컴퓨터 게임 중계방송에 뛰어든 카투니버스가 크게 반발했다.

이에 Snowstorm Entertainment는 당초 방침을 깨고 다솜게임넷과 카투니버스가 주최하는 양대 리그를 진행하고, 미국 MLB처럼 통합 챔피언십 시리즈를 개최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경기 형식은 정규 시즌과 포스트 시즌으로 구성되며, 각 리그의 우승 팀이 통합 챔피언십 시리즈라는 우승 결정전을 치러서 한국리그 챔피언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정규 시즌은 4월 초순부터 9월 하순에 걸쳐 치루면서 리그 우승을 다툰다.

10월초부터 포스트 시즌이 토너먼트 형식으로 진행된다.

포스트 시즌 각 단계마다 플레이오프 시리즈,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통합 시리즈로 연결된다.

일단 MLB를 벤치마킹해 프로리그를 운영하고 있다.

가온그룹은 Snowstorm Entertainment의 모회사인 JHO Company와 오너가 같은 관계로 ‘스타크래프트’ 게임팀을 운영하지 않기로 했다.

Snowstorm Entertainment의 실질적인 주인이나 마찬가지인 류지호의 소유 회사가 ‘스타크래프트’ 프로팀을 운영하게 되면 성적과 상관없이 여러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JHO와 가온 그룹 산하 개발사 게임이 아니라면 프로게임팀을 운영할 수도 있지만, 특별하게 팀을 운영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게임은 없었다.


“이런 것들이 예전에 네가 꿈꿔왔던 것들이 실현된 모습이더냐?”

“한계가 있을지 확장성이 있을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IT분야 발전과 연결되어 있는 분야라서.”


비디오 게임 산업이 유망하다는 걸 윌리엄 파커 같은 노사업가도 안다.

하지만 그 시장이 언제 얼마나 성장할지는 전문가들도 쉽게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

닷컴버블이 꺼지며 한바탕 홍역을 치루고 있는 마당에.

그럼에도 윌리엄은 크게 걱정이 되지 않았다.

십대 때 이미 이런 날을 예언(?)했던 손자였으니까.

더는 조언이나 충고를 해 줄 것이 없어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내가 먹을 걸 남이 먹도록 내버려 두면 안 된다는 사실은 알려줄 필요가 있겠지.'


작가의말

편안한 주말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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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5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3.02.18 14:20
    No. 1

    잘 봤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하얀유니콘
    작성일
    23.02.18 16:14
    No. 2

    잘보았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ehqur
    작성일
    23.02.18 18:31
    No. 3

    시나리오가 좋고 좋은 연출과 연기가 더해져야 좋은 영화가 나옵니다. 시나리오가 별로면 아무리 좋은 연출과 연기가 더해져봐야 영화는 망합니다. 다른사람이 연출했었다는 이유로 포기해버리면 주인공은 본인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거나 쥔공이라도 살릴수없는 시나리오가 허접했던 실패한 영화를 만들겁니다. 과거 다른사람이 했었다는 이유로 포기한다면 쥔공이 이룬 부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 주식이나 투자를 해서 부자가 될 기회를 쥔공이 가로챈겁니다. 그러니 시나리오가 아니라 연출가지고 죄책감을 느끼니 할 필요는 없어보입니다. 시나리오가 좋으면 어느정도 경력있는 연출가라면 대부분 흥행에 성공했을테니깐요.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89 ps*****
    작성일
    23.02.18 23:28
    No. 4

    메가웹스테이션 전 직원으로 반갑네요^^
    메가웹 상해 매장 화재사건으로 ceo가 나가고 다음 ceo가 X판 쳐서 엉망이 되어버려 없어진 회사라
    좀 애증이 있었던 회사죠
    디테일이 살아있는 작품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3 유머러스
    작성일
    23.02.19 19:38
    No. 5

    콘텐츠가 중요하면 포털도 하다가 웹소설 웬툰도 해야하는거 아님??
    잘보고 갑니다.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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