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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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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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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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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0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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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언젠가 만나야 했을 인연들.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새해가 밝고 4일 흐른 목요일.

서라벌호텔 대 연회장에서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최하는 재계 신년인사회가 열렸다.

중견기업이던 시절에는 신년인사회에 참석하질 않다가 래리 킴 회장이 회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 가온그룹도 꼬박꼬박 참석하기 시작했다.

올해는 류지호도 함께 참석했다.

대한상의 회장이 직접 류지호에게 전화를 걸어 참석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청와대에서까지 참석해달라는 연락을 해왔다.

대유그룹 계열사 빅딜로 인해 단숨에 재계의 파워맨으로 등극한 류지호의 한국 재계 데뷔무대라고 할 수 있었다.

류지호에게는 지겹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많은 행사 중에 하나일 뿐이었지만.


‘어차피 지들 하고 싶은 말만 떠들고 병풍 세울 거면서....’


지금까지 류지호는 한국 정치나 재계와 적당히 거리를 뒀다.

엮일 일도 없었지만.

덕분에 부모님만 이곳저곳에서 혼담이 쇄도해서 곤란한 처지였다.

류지호를 사위로 얻는 집안이 한국의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다는 말까지 떠돌 정도로 혼맥을 맺고 싶어 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류지호는 한국의 재벌들과 혼맥으로 엮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땅콩회항’ 같은 사건을 보면 한국의 재벌가 자녀들의 수준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암튼 언제까지 한국의 정치권이나 재계와 거리를 둘 순 없었다.

싫든 좋든 그들 세계에 발을 들여야 했다.

나래안전을 통해 꾸준히 정권 주변 인물이 관련된 스캔들 조짐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류지호가 기억하기로는 정권 말기에 게이트 하나가 터졌다.

아직은 그 같은 조짐이 나타날 시기는 아니었다.


“2월말까지 금융·기업·공공·노동 등 4대 부문에 대한 개혁을 철저히 마무리 지어 경제회복의 토대를 마련할 것입니다”


대통령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신년인사회가 진행되었다.


“법을 어기거나 폭력에 의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정도와 원칙을 지켜 법대로 단호하게 대처할 것입니다. 기업과 노동계는 원칙을 지키며 충분한 대화로 신노사관계를 정립해 줄 것을 당부 드립니다.”


정치인이고 회장이고 무슨 그리 말들 하길 좋아하는지.

식순의 대부분을 기념사로 채웠다.


‘어차피 사진 한 방 찍고 가는 행사면서.....’


이날 신년인사회에는 대통령 내외와 재계, 정·관계, 사회단체 인사, 주한 외교사절 등 1,000여 명이 참석했다.

여당인 민국당 대표, 서울시장을 비롯한 정계 인사와 재정경제부 장관, 기획예산처 장관 등 주요 부처 각료가 참석했고, 재계에서는 대한상의 회장, 전경련 회장, 무역협회 회장 등 경제 5단체장과 10대 기업 회장 및 주요 기업들의 최고경영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행사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대한상의 회장이 건배를 제의했다.


“경제인들은 새해에도 끊임없는 도전과 창조정신으로 급격한 경영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새천년에 걸맞은 새 기업상을 정립하는데 전력을 다합시다!”


나이 서른이 안 된 참석자는 류지호가 유일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함부로 대하는 이가 없었다.

개인적으로 또 소유 투자회사를 통해 한국 주요 기업 주식을 꽤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것이 류지호다.

그들 입장에서 류지호는 단순히 재벌 동료가 아니었다.

자신들이 경영하는 기업의 주주였다.

비위를 맞출 필요까지는 없어도 친절하게 대해야 하는 상대였다.

일부 특권의식에 찌든 재벌 몇 명이 꼰대처럼 굴긴 했다.

그러려니 했다.

그런 이들과는 갈등을 일으킬 일도 없고 함께 비즈니스를 도모할 일은 더더욱 없었으니까.

어쨌든 공식 행사 후 열린 리셉션에서 많은 이들과 안면을 텄다.

나름 학계의 거물들과 인사를 한 점이 소득이라면 소득이랄까.


‘농림부 장관이라도 참석했으면 새만금간척사업 문제를 따졌을 텐데.... 이 양반이 나 보기 무서워 안 왔을 리는 없고.’


오성을 비롯해 경일과 선경그룹 회장과 대화를 나눠보려고 눈치를 봤지만, 행사 내내 기회가 없었다.

참석자는 많아도 5대 그룹 회장과 직접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은 한정적이다.

5대 그룹 회장은 끼리끼리 인의 장막을 치고 대화를 나눴다.

소설이나 드라마처럼 그들이 먼저 주인공에게 다가와 말을 거는 우연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이라고 하기에는 그렇지만, 난데없이 대통령과 대화를 나눌 수가 있었다.


‘5대 그룹 회장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 말을 걸었으니 더 클리셰에 가깝지. 큭큭.’


류지호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건 말건 대통령이 물었다.


“일본을 방문한다고?”

“도쿄다카라 회장이 일본에 한 번 방문해달라고 해서요.”

“가온? JHO?"

"두 그룹이 모두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랬군.”


류지호는 새만금간척사업 문제를 꺼낼까 하다가 구차한 것 같아서 말았다.

그런데 대통령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제안이 튀어나왔다.


“일본에 가는 김에 누구 한 사람을 만나보게.”


거절할 수 없고, 무턱대고 그러겠다고 대답할 수도 없고.

가만히 있는 것이 중간은 가는 법.


“자네 손 사장이라고 아나?”

“....예?”

“손 세오시라고 해야 알아들을까?”

“소프트인프라의 손 사장 말씀이십니까?”

“맞네.”

“......?”

“시간이 되면 그이 좀 만나보게.”

“제가 손 사장에게 따로 전할 말이라도....”

“그이 회사가 조금 어려운 모양이더군. 우리나라의 초고속인터넷망을 배워서 일본에서 해보고 싶다고 하는데 여의치 않은 상황인가 보네.”


소프트인프라는 창업이후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작년에 불어 닥친 미국발 닷컴버블의 붕괴로 인해 위기를 겪고 있다.

주식이 대폭락하면서 주주들로부터 엄청난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

대통령은 손 사장이 일본 최고의 통신회사인 일본전신전화그룹(NT&T)과 맞대결을 펼치겠다며 한국에서 초고속인터넷망 구축의 노하우에 대한 자문을 구해갔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한국텔레콤과 관계된 인사가....”

“우리나라의 노하우는 이미 다 배워갔네.”

“혹시 제가 손 사장 회사에 투자를 해주길 바라십니까?”

“그건 자네가 알아서 할 일이지. 그이와 만나서 대화를 나눠보면 자네도 배우는 게 많을 거야. 몇몇 대기업 회장에게도 권유해 보았지만, 다들 여력이 없는 모양이네.”

“알겠습니다.”


당연히 소프트인프라에 투자할 수만 있다면 대환영이다.

비록 닷컴버블 붕괴로 인해 당장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지만, 손 사장은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다.

이 위기를 넘기게 되면 소프트인프라는 일본을 넘어 세계적인 기업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다.

지금까지는 그와 딱히 인연이 없었다.

한국의 대통령 이름을 팔아 만날 수만 있다면 류지호로서는 무조건 이득이었다.


“이번 일본 일정에 소프트인프라 사장 미팅을 추진 해봐요.”


류지호는 신년인사회에 다녀오자마자 의장비서실에 지시를 내렸다.

비서실장이 직접 일본의 소프트인프라 본사와 연락을 취했다.

류지호의 일본 방문에 맞춰 손 사장과의 미팅일정을 조율했다.

손 사장 입장에서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지금까지 두 사람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그런데 둘은 Aliba.com 투자자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게다가 JHO/DirecTV가 일본 위성사업에서 철수할 때 지분을 인수한 일본 위성사업자의 최대주주가 소프트인프라였다.

이러저런 이유 등으로 두 사람은 언제고 만날 인연이었다.


❉ ❉ ❉


도쿄다카라(東宝) 컴퍼니는 일본 최대의 영화 그룹이다.

일본영화계에서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 도쿄다카라의 12대 CEO 사토 토시히코가 류지호를 정식으로 초청했다.

말로는 투자자가 아닌 영화감독 류지호를 초청하는 것이라 밝혔는데 일본에서는 그 같은 공식입장을 믿지 않았다.

류지호는 한국과 미국 양국에 메이저 스튜디오를 소유하고 있는데다가 큰손 투자자이기도 하니까.

게다가 한국 최대 멀티플렉스 사업자의 오너이기도 하고.

그러니 비즈니스 논의가 없을 순 없었다.

세계적인 기업 최고경영자의 초청이라서 미국에 머물고 있던 수석참모장 도널드 제이콥이 일본행에 빠질 수 없었다.

대규모 수행원을 대동하고 출장길에 나선 것도 오랜만이다.

그런데 도쿄 하네다 공항에 도착해서 맞이한 풍경이 류지호를 당황시켰다.


“ようこそ(환영합니다)!“

"까악!“

“JiHo~"

"Jay..."

"HO!"


하네다 공항의 입국장은 마치 랩 가수의 콘서트장 같았다.

‘Jay, Ho!’’요-코소!’’지호!’의 구호를 열렬히 외치는 일본인들로 북새통이 연출됐기 때문이다.


“......!”


청바지에 가죽 재킷, 운동화, 캐주얼한 패션에 백팩을 한쪽 어깨에 걸친 채 입국장을 빠져나온 류지호는 마주한 광경에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300여 명의 일본인들이 자신에게 열렬한 환호성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류지호의 이름을 연호하는 팬들만 공항에 나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수십 명의 취재진이 터트리는 카메라 플래시 또한 류지호의 눈을 사정없이 찔러댔다.


‘연예인이라도 오나...?’


처음에는 자신을 환영하는 것인 줄 몰랐다.

한류스타 혹은 할리우드 스타가 일본을 방문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자신을 환영하는 인파들이었다.

하네다 국제공항은 이른 시간부터 류지호의 일본 방문을 환영하기 위해 공항 안으로 몰려든 300여 팬들로 인해 북적거렸다.

거기에 일본의 유력 언론사들이 취재 경쟁을 벌이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수백 명이 모이게 되자 안전사고를 염려한 공항 경찰 병력 100여 명이 긴급 동원되었다.


‘한국에도 없는 팬클럽이 일본에 있나....?’


한국에도 류지호의 팬클럽이 존재하고 있다.

연예인 팬클럽처럼 대놓고 활동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인터넷 팬사이트를 중심으로 나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긴 했다.

활동 면에서나 규모가 면에서나 미디어대응 비서들의 관심을 끌 일이 없어서 따로 류지호에게 보고를 하지 않아서 그렇지 팬클럽 활동에 대한 모니터링은 꾸준히 이뤄지고 있었다.

암튼 류지호는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어 재킷 안주머니에 넣고는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여성 팬들의 자지러지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까악!”

“와아!”


바리케이드 앞까지 다가선 류지호가 팬들을 향해 일본어로 인사했다.


“おあいでき てうれしいです(오아이데키테 우레시이데스)!“


류지호가 좀 더 팬들에게 다가가려고 하자.


“너무 가까이 다가가진 마십시오. 보스.”


티노와 말릭이 말렸다.

만일의 사고를 대비해 배치된 100여 명의 경찰병력이 통로를 일렬로 막고 있지만, 류지호가 다가서자 당장에라도 튀어나갈 듯 팬들이 술렁거렸다.


“괜찮아요.”


류지호는 경찰들 사이에서 손을 내미는 팬들의 손을 잡아주거나 내민 종이에 사인을 해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땡큐.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할리우드 스타나 한류스타의 입국 때 보다는 조촐한 편이다.

그럼에도 류지호로서는 처음으로 경험해 보는 풍경이 어색하면서 신기했다.

간혹 영화 시상식 레드카펫에서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이들이 있긴 하지만, 수백 명이 공항까지 마중 나와 환영해줄 거라곤 전혀 생각 못했다.

기분이 묘했다.

한편으로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공항을 찾아준 팬들 모두에게 악수를 해주거나 사인을 해주려고 했다.

하지만 공항 경비대장까지 나서서 반대를 했기에 하는 수 없이 빠르게 공항을 빠져나갔다.

일본 지상파 방송사와 신문, 잡지 등의 취재진들 역시 류지호의 입국 소식을 발 빠르게 전하기 위해 열띤 취재활동을 벌이며 뜨거운 현장 분위기에 일조했다.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 홍콩, 대만, 한국 등 해외 각국에서도 많은 팬들이 모였다.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아시아 출신 감독으로 리 앙과 응위쌈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그들 단독으로는 류지호가 받은 똑같은 환대를 받지 못한다.

류지호는 할리우드 무비스타의 입국 풍경을 일본에서 연출했다.

어린 나이에 메이저 스튜디오의 오너 위치에 오르고, 할리우드에서 블록버스터를 연출하는가 하면, 오스카 트로피까지 들어 올린 거의 유일한 아시아계 영화감독이자 제작자가 류지호다.

아시안으로 할리우드를 정복(했다고 믿고 싶은)한 류지호는 수많은 아시아 청년들의 선망의 대상이다.

그런 워너비가 일본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 동안 방문을 손꼽아 기다려 온 현지 팬들이 공항에 모일 수밖에 없었다.


“할리우드 유명 감독인 류지호를 태운 한국항공이 11시 23분 하네다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니폰TV를 비롯한 일본의 민영방송 몇 곳이 류지호의 입국장면을 스포츠 중계하듯 밀착 생중계했다.


- 류지호를 단 한번만이라도 직접 보고 싶어 공항을 찾아왔습니다.

- 지금 흥분이 절정 상태에요!


일본 방송에서 공항을 찾아온 팬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방송으로 내보냈다.

도쿄 시내로 향하는 차량 안에서 티노가 말을 걸었다.


“일본에서 보스의 인기가 상당합니다.”

“알아보는 사람은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지만, 몇 백 명이 공항까지 마중 나올 줄은 몰랐네요.”

“할리우드 스타라면 당연한 거지요.”


한류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고 하더니 류지호에게까지 미치는 모양이다.


“하하. 앞으로 해외출장을 다닐 때 편하게 다니실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설마, 홍콩과 방콕에서도 이렇지는 않겠죠.”


일본은 도쿄다카라의 공식초청이었기에 알려졌지만,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비공식 개인 방문성격이다.


“전용기 구입이 시급합니다.”

“가장 먼저 인도되는 비즈니스 제트기를 제게 배정해 준다고 했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봐요.”


몇 건의 비즈니스를 처리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한 것이다.

일본에서 이렇듯 떠들썩하게 환영 인사를 받고 언론에서 중요하게 다룰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일본의 주요 영화관계자들과의 미팅을 마치면 출국하기로 되어 있는데, 아무래도 방문기간 동안 꽤나 화제가 될 듯 싶었다.


✻ ✻ ✻


“너무 큰 환대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환대를 받을 줄 알았으면 좀 일찍 그리고 자주 찾을 걸 그랬다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롯폰기힐즈에서 현지 언론을 상대로 열린 기자회견에게 류지호가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일본 언론에서 류지호가 비중 있게 다뤄지는 이유가 있었다.


“도쿄다카라가 아니라 다른 방송국들이 그런 분위기를 조장 하고 있다?”

“그렇습니다.”


도쿄에 도착한 후로 JHO Security Services로부터 정보를 받았다.

한류스타도 아닌데 류지호의 행보가 너무 떠들썩하게 일본 언론에서 다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도 없는 호의는 없는 법이다.


“합작에 대해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았는데...?”

“삼대 메이저에 눌려 있는 영화제작자들이 보스를 통해 일본의 영화계에 어떤 변화를 불러오길 기대하고 있다고 합니다.”


폐쇄적인 것으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나라가 일본이다.

고이다 못해 썩는 줄도 모르고 평온하게 살아가고 있는 곳이고.

그런 일본 내부에서 외국인에게 개혁을 기대한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


“UPI나 워너-타임도 못한 걸 트라이-스텔라가 할 수 있다 본다고요? 3대 메이저의 막강한 시장장악력을 뚫고?”


미디어 산업에서 진정한 수직계열화의 끝을 보여주는 나라가 일본이다.

류지호를 초청한 도쿄다카라의 경우, 푸지TV 대주주이며, 영화 투자·제작·배급사, 애니메이션 회사, 종합 스튜디오, 필름현상소, 멀티플렉스 극장체인, 비디오·DVD 유통 등 미디어와 관련된 전 분야를 모두 가지고 있다.

경쟁사인 도쿄에이가의 경우는 타이요TV가 계열사다.

삼대 메이저가 일본의 미디어계를 모두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


“90년대부터 삼대 메이저는 인하우스 영화를 줄이는 대신에 투자·배급으로 사업 중심축을 이동했습니다. 특히 멀티플렉스 체인 사업 쪽으로 전략을 수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할리우드처럼 제휴 시스템으로 돌아갑니까?”

“아닙니다. 일본 엔터테인먼트는 창작위원회라는 독특한 시스템으로 돌아갑니다.”


일종의 프로젝트 파이낸싱이다.

말이 좋아 창작위원회다.

끼리끼리 다 해먹는 독점 시스템을 그럴듯하게 포장한 것뿐이다.


“삼대 메이저의 자회사나 관계를 맺고 있는 방송사들이 주도적으로 영화 제작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영화산업이 수십 년째 세 개 메이저의 독과점으로 운영되고 있긴 하죠.”


그로인해 여러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90년대부터 방송국이 주도적으로 영화를 제작하다보니, 검증된 자사 방송 프로그램이나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하는 실사 영화가 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오리지널 스크립트 개발에 대한 투자가 미미한 상황입니다.”

“일본 콘텐츠의 갈라파고스화의 근본이죠. 내수시장만 바라보고 하는 원소스멀티유즈 시스템.”

“수십 년 전부터 유지되고 있는 낡은 수익분배 구조도 문제입니다. 단적인 예로 일본 영화계에는 러닝 개런티 계약이란 개념이 없습니다. 고정된 로열티만 주기 때문에 영화가 크게 성공하더라도 영화감독에게 돌아가는 수익은 큰 변동이 없습니다. 그로인해 신진급 감독이 성장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영화감독 수입은 월급쟁이보다 못한 것이 현실이다.


“전 세계 동시개봉 추세에도 꿈쩍하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불록부킹 시스템을 고수하고 있긴 하죠. 그 시스템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일본 시장을 자기들 입맛대로 주무를 수 있는 무기니까.”


블록부킹 시스템은 이미 전 년도에 올 해 개봉할 영화의 라인업을 확정하고 그대로 극장에 배급하는 것으로, 할리우드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프리부킹에 비해 배급과 극장 상영에 탄력적 운영이 불가능하는 단점이 있다.

이미 빡빡하게 계획된 상영 스케줄로 인해 수입영화가 일본에서 장기상영으로 크게 흥행하기 어려운 구조다.

수입영화는 현지보다 최소 3개월이 지나 개봉하기 때문에 관객이 비디오·DVD등 2차 시장에서 미리 영화를 관람하기에 극장을 잘 찾지 않는다.

외국영화 흥행에 걸림돌이 지연상영이다.

일본 내 투자·배급은 3대 메이저가 꽉 쥐고 있다.

영화 제작은 푸지TV, 니폰TV, 타이요TV, TV도쿄, TBS등 주요 민간방송사들이 일본 영화 대부분을 책임지고 있어서 군소제작사들이 설 자리가 극히 제한적이다.


“게다가 출판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영화보다 더욱 인기가 많은 나라가 일본입니다.”

“도쿄다카라와 합작 정도에서 만족해야 할까....?”


류지호의 입에서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그럼에도 도널드 제이콥이 대답했다.


“일본 내수시장을 포기해선 안 됩니다.”

“알죠. 문제는 일본시장은 외국기업에 보이지 않는 장벽을 친다는 점이잖아요.”


장벽을 치는 주체는 정부가 아니다.

일본 소비자와 기업들이 장벽을 친다.

이런 장벽을 많은 외국기업들, 특히 한국기업들이 깨부수지 못했다.

특히 일본은 전자와 자동차산업의 자존심이 무척 강했다.

출판만화, 애니메이션, 콘솔 게임 역시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보이지 않는 방어벽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하긴 하죠.”


실제로 일본 내 관급공사에 참가하려고 하면, 과거 일본에서의 실적이 있어야 한다.

진출한 지 얼마 되지 않는 기업이 현지 실적이 있을 리가 없다.

사실상 시장에 진입하기 쉽지 않다.

정부와 거래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업, 소비자와 비즈니스 할 때도 상황은 똑같다.

일본 기업과 합작도 쉽지 않다.

소비자에게 어필하는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어렵다.


“한국영화도 일본 시장에 잘 진입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 막 첫발을 뗀 거죠.”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한류붐이 일어난 것은 2004년 드라마였다.

류지호는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영화는 단연 <쉬리>를 빼고는 논할 수 없다.

류지호라는 변수로 인해 <퇴마기록> 같은 새로운 영화도 일본에서 괜찮은 흥행성적을 거뒀다.

사실 일본에서의 영화한류는 <쉬리> 이후 한국산 멜로영화가 일본의 중장년 여성층에게 어필하게 되면서, TV드라마로 옮겨가 폭발한 것이다.

한류 초창기에 일본 연예계가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고 있던 연령대인 중장년 여성층들을 한국 콘텐츠가 제대로 파고들었다.

이전 삶에서 KPOP이 넷튜브를 통해 전 세계 십대들을 공략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90년대 말부터 일본은 한국영화의 가장 큰 해외마켓이었다.

<8월의 크리스마스>, <쉬리>, <퇴마기록>, <텔미섬띵>.... 최근 수출한 <JSA>까지.

이들 영화들은 할리우드 영화와 비교될 만한 가격에 일본에 팔렸다.

일본 흥행 성적도 나름 괜찮았다.

심지어 일본인이 악당으로 나오는 <풍운아>도 괜찮은 가격에 판매해서 일본 수입사도 만족할 만큼 벌어들였다.


“지금처럼 일본에서 WaW 콘텐츠가 한류라는 흐름을 잘 탄다면 덩달아 한국영화의 수요도 크게 늘어나게 될 겁니다.”

“영화를 많이 팔아먹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죠. 어떤 영화를 팔아야 하는 가... 그것이 문제죠.”

“WaW라면 일본이 못 만드는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바라야죠.”


일본이 할리우드 영화와 맞붙어서 승리할 수 있는 분야가 존재했다.

바로 애니메이션이다.

전 세계적으로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Timely 영화도 애니메이션에게 밀려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SnowStorm 게임들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할 때 유일하게 힘을 쓰지 못한 나라 또한 일본이다.

충무로는 대체로 멜로영화와 코미디 영화에 편중되어 있다.

일본에서도 수도 없이 많이 만들어지는 장르다.

심지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일본영화 멜로영화가 다수 존재했다.

일본의 중장년층의 감성을 자극할 만한 한국의 멜로영화가 먹힌다고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


“일본영화는 하지 못하는데, 한국영화는 할 수 있는 것......”


아시아까지 커버할 수 있는.

그런 영화를 WaW가 만들어내야만 했다.


“일단 당면한 문제는 도쿄다카라의 창작위원회에 들어가는 거겠지.”


작가의말

참고 : 됴코다카라 - 토호. 도쿄에이가 - 토에이. 타이요TV - 아사히TV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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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 곧.... 필름은 죽습니다. (1) +6 23.03.20 3,418 109 25쪽
449 내가 잘되자고 하는 겁니다! (2) +4 23.03.18 3,512 120 25쪽
448 내가 잘되자고 하는 겁니다! (1) +5 23.03.17 3,502 120 27쪽
447 혼자 늙어 죽는 수가 있거든! +6 23.03.16 3,460 124 25쪽
446 계륵이거나 삥을 뜯거나.... (3) +3 23.03.15 3,411 110 23쪽
445 계륵이거나 삥을 뜯거나.... (2) +4 23.03.14 3,472 108 21쪽
444 계륵이거나 삥을 뜯거나.... (1) +9 23.03.13 3,616 118 20쪽
443 언젠가 만나야 했을 인연들. (3) +6 23.03.11 3,675 128 26쪽
442 언젠가 만나야 했을 인연들. (2) +5 23.03.10 3,624 121 26쪽
» 언젠가 만나야 했을 인연들. (1) +7 23.03.09 3,648 118 23쪽
440 다 해먹는다는 말 나오진 않겠죠? (3) +4 23.03.08 3,578 123 24쪽
439 다 해먹는다는 말 나오진 않겠죠? (2) +14 23.03.07 3,580 128 21쪽
438 다 해먹는다는 말 나오진 않겠죠? (1) +3 23.03.06 3,586 117 21쪽
437 지금이라도 손을 떼시면 됩니다. +6 23.03.04 3,705 128 27쪽
436 복수의 꽃. (10) +8 23.03.03 3,397 127 21쪽
435 복수의 꽃. (9) +6 23.03.02 3,267 127 21쪽
434 복수의 꽃. (8) +4 23.03.01 3,262 120 21쪽
433 복수의 꽃. (7) +3 23.02.28 3,331 119 22쪽
432 복수의 꽃. (6) +4 23.02.27 3,377 115 21쪽
431 복수의 꽃. (5) +4 23.02.25 3,456 128 24쪽
430 복수의 꽃. (4) +5 23.02.24 3,383 128 25쪽
429 복수의 꽃. (3) +11 23.02.23 3,468 115 26쪽
428 복수의 꽃. (2) +2 23.02.22 3,558 128 24쪽
427 복수의 꽃. (1) +5 23.02.21 3,677 123 20쪽
426 내가 먹을 걸 남에게 맡기면 위험이 따른다. (4) +6 23.02.20 3,647 126 25쪽
425 내가 먹을 걸 남에게 맡기면 위험이 따른다. (3) +5 23.02.18 3,702 135 25쪽
424 내가 먹을 걸 남에게 맡기면 위험이 따른다. (2) +6 23.02.17 3,654 134 25쪽
423 내가 먹을 걸 남에게 맡기면 위험이 따른다. (1) +7 23.02.16 3,745 139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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