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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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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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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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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2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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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베를린에서 이틀을 머문 <복수의 꽃> 관계자들이 포르투갈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을 때, 가온그룹 무역부문을 총괄하는 최우준 사장이 류지호를 찾아왔다.


“축하드립니다. 의장님!”

“고마워요.”


최우준 사장은 전 대유실업 상무이사 출신으로 가온그룹에 합병된 후 무역부문 최고경영자로 승진한 인물이다.


“최 사장이 독일에는 어쩐 일이에요?”

“대유그룹 전 총수께서 프랑크푸르트에 머물고 계십니다. 그 분을 뵙고 오는 길입니다.”


류지호가 영문을 몰라 빤히 쳐다봤다.

해외도피 중인 전 회장을 왜 만난단 말인가.


“대유그룹 고위직 출신들이 회장님과 만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요?”

“궁금하실 것 같아서.....”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망한 재벌총수 사정을 알아봐야 무엇에 쓸까.

다만 가온그룹 계열사 사장이 전 직장 상사를 만나고 다니는 것에 화가 조금 날 뿐.


“자주는 아닙니다. 몇 명이 프랑스와 동남아시아에서 회장님과 접촉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나서 뭐하는 데요? 김 회장이 재기를 노리기라도 한 답니까?"

“사실 대유그룹의 해외 사업을 전부 꿰뚫고 있는 유일한 분이 전 회장님이십니다. 대유 무역부문이 가온그룹에 합병된 후로 해외 네트워크 재건에 회장님의 도움을 조금 받으려는 생각에.....”

“김 회장의 해외 네트워크가 아직 살아있는 모양이죠?”

“동유럽 몇 개 국가와 아프리카 수단, 베트남 같은 국가와는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지내는 생활비는 누가 대주는지는... 아닙니다.”


부자는 망해도 삼대는 간다는데, 재계서열 2위 대기업을 일군 인물이 해외도피 자금이 없어 고생할 리가 없다.


“인터폴 적색수배자 명단에 올라가 있을 텐데, 한국여권가지고 잘도 돌아다니네요?”

“프랑스 국적이십니다.”


류지호가 어이없어 헛웃음을 흘렸다.


하.


참고로 프랑스 인터폴은 작년 11월 한국 정부의 소재파악 요청을 받고 김 전 회장이 1987년 4월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다는 사실을 통보했다.

현행 국적법에 따르면 국내인이 외국 국적을 자진해 취득할 경우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한다.

외국인은 한국 법인의 최고경영자를 맡을 수 없다는 제약이 있지만, 법무부에 외국 국적 취득 사실을 신고하지 않고 이중국적자로 활동하는 이들도 많다.

그런 이들 역시 ‘검은 머리 외국인‘ 범주에 넣기도 한다.

암튼 국내에서는 도피행각 중인 대유그룹 전 회장의 소재가 베일에 싸인 것으로 알고 있다.

검찰도 소재를 파악하지 못했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가온그룹은 동선을 대강 파악하고 있었다.

가온대유 인터내셔널, 대유건설 등의 해외지사장과 간혹 접촉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피 중인 김 전 회장은 법적으로 대유그룹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상태다.

그의 경영권이 박탈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유그룹 계열사 임원들과 직간접적인 연결고리가 살아 있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회장님이 부르시면 딱 잘라 거절할 수 있는 대유그룹 출신 임원은 없습니다.”


비록 가온그룹에 속해있을지라도.

기울어가는 나라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충절을 지킨 지조 있는 신하 정몽주도 아니고.

눈물겨운 의리가 아닐 수 없었다.


“혹시 프랑스에 머물고 있는 김 회장이 대유그룹을 리모트 컨트롤 하고 있는 겁니까?”

“그것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몰래 만나도 되었을 텐데, 내게 찾아와서 이야기하는 이유가 뭡니까?”

“회장님께 양해를 구했습니다.”

“무슨 양해요?”

“회장님 입장에서 밀레니엄 펜트하우스에서 방을 빼게 되면 죄를 인정하는 꼴이 되는 거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대유개발 측에 절대 계약을 파기하지 말라고 전했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류지호가 인상을 구기며 물었다.


“그래서요?”

“대유개발 측에 재계약을 지시하시도록 회장님을 설득했습니다.”


얼마 안가 대유개발로부터 항복 선언을 받아낼 분위기다.

대유그룹 전 총수의 옛 가신들이 애가 탔던 모양이다.

그러니 가온그룹 회장인 래리 킴도 모르게 가온대유 인터내셔널 사장을 부추겼을 터.


“회장님의 양해를 얻었습니다. 일 년 넘게 끌어오던 밀레니엄 힐턴 펜트하우스 문제를 매듭지었습니다.”

“어떻게요?”

“연간 8억 원의 임대료를 지불하고 최대 60일을 넘지 않는 선에서 호텔 측이 외부손님에게 객실을 임대하는 조건으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아직 꿈에서 못 깬 모양이죠?”

“....예?”

“이대로 프랑스 국적자로 해외에서 늙어 죽을 수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끝내 모국에서 명예회복조차 할 기회가 없을 겁니다.”

“.....예.”


여전히 대유그룹의 많은 계열사들이 워크아웃 중이다.

김 전 회장이야 어떤 식으로든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애쓰겠지만, 대유그룹 계열사 입장에서는 실패한 총수와 고리를 확실히 끊는 것이 모두를 살리는 첫걸음임을 알아야 한다.


“김 회장님께서 대유개발 사안과 관련해서 의장님께 심심한 사과의 뜻을 전했습니다.”


류지호가 냉소적인 미소를 지어보였다.

대니얼 그레이엄 할아버지가 그러셨다.

용서나 화해 같은 것은 다시 볼 사람에게나 하는 거라고.

즉 류지호는 김 전 회장을 전에도 본 적 없고 앞으로도 볼 일이 없다.

화해 같은 걸 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 심심한 사과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래리 회장도 알아요?”

“회장님 허락을 받고 움직였습니다. 대유그룹 전 회장님의 사과를 제가 직접 의장님께 전해드려야 할 것 같아서.....”


법정분쟁도 벌이고 가용할 수 있는 수단을 동원해 압력을 행사했음에도 꿈적도 하지 않던 대유개발이었다.

전 회장이 나서자 허무할 정도로 쉽게 문제가 해결됐다.

웃기는 한편 씁쓸함을 감출 수 없는 류지호다.


'회사가 망해도 재벌은 재벌이란 건가.....?'


✻ ✻ ✻


베를린영화제가 끝나고 이틀 간 더 머물렀던 <복수의 꽃> 관계자들이 포르투갈의 포르토(Porto)라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판타스포르토-오포르토 국제영화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갑자기 잡힌 일정은 아니다.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을 받을 시기에 확정된 국제영화제가 몇 곳 있었다.

유럽에 가는 김에 들러서 오는 일정을 짜게 되었던 것.

많은 영화에서 초청이 있었지만, 베를린영화제 은곰상 수상으로 더 많은 영화제에서 초청 문의가 쇄도했다

전 세계적으로 100개가 넘는 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었는데, 경쟁부문 초청작 경쟁뿐만 아니라, 비경쟁 특별 섹션 유치에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2월에 열린 베를린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으니, <복수의 꽃>의 몸값이 뛰었을 수밖에.

인지도가 있는 주요 국제영화제에서는 타 영화제에서 먼저 소개된 영화는 경쟁작으로 초청하지 않는다.

다만 비경쟁 부문에 주목할 만한 영화로 선정해 편성하는 경우가 많다.

세계 3대 영화제에 해당하는 베를린영화제에서 8대 본상을 수상한 <복수의 꽃>은 한국개봉이 있기 전까지 대략 20개 국제영화제에서 소개가 될 예정이다.

두 번째로 소개되는 국제영화제가 포르투갈에서 열리는 세계 3대 판타스틱 영화제 판타스포르토-오포르토였던 것.


“전 세계적으로 대충 25개 영화제를 메인으로 봅니다. 판타스포르토-오포르토는 장르 영화 감독들의 작품을 발굴하고 소개해 오고 있는데, 한국영화는 <조용한 가족>이 판타지아 부문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고, <섬>이 여우주연상과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적이 있습니다.”

“<복꽃>이 장르가 불명확해서 애매한 구석이 있는데, 초청을 받았네요?”

“스릴러 장르로 보는 모양입니다. 토론토와 마찬가지로 관객상이 있는데, 유럽 장르영화팬들의 반응을 알 수 있는 기회입니다. 여타 국제적인 장르영화제들과 네트워크가 강해서 이곳에서 호평을 받게 되면 입소문 효과를 기대할 수가 있습니다.”


판타스포르토-오포르토 영화제의 시작은 1980년부터였다.

영화팬과 평론가 일부가 SF 영화와 판타지 영화를 메인으로 소규모의 영화제를 시작했는데, 초기부터 유럽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로 스릴러, 액션 등의 장르영화가 추가되면서 80년 말부터는 신인 감독들을 위한 경쟁 섹션을 따로 마련하기 시작했다.

매년 10만 명 이상의 관객을 유치하는 유럽 최고의 판타스틱 영화제 중 하나다.

위상을 말해주듯 한국의 부천판타스틱영화제 관계자들도 베를린에서 넘어와 초청작을 섭외하기 위해 열심히 발품을 팔았다.

결론적으로 이번 판타스포르토-오포르토 국제영화제는 한국영화 잔치가 됐다.

공식 경쟁부문, 감독주간, 오리엔탈 익스프레스 부분으로 크게 나눠져 있었는데,

판타지 필름 부분에서 <소름>이 심사위원특별상과 감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감독주간에 <복수의 꽃>이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과 오리엔탈 익스프레스 부문에서 작품상을 수상했다.

처음으로 포르투갈을 방문한 류지호를 크게 대접하기 위함인지 온갖 상을 안겨주었다.

판타스포르토-오포르토 영화제 다음 행선지는 불가리아의 소피아 영화제였다.

소피아 영화제의 인터내셔널 부문에는 감독의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영화만 출품할 수 있는 조건이 있었다.

때문에 <복수의 꽃>은 비경쟁 특별 상영프로그램으로 소개됐다.

발칸반도의 이 작은 나라의 영화산업도 20세기 초에 시작했다.

1915년에 시작될 정도로 역사가 오래됐다.

뤼미에르 형제가 세상에 영화를 내놓은 이후 몇 년이 지나, 불가리아에서의 첫 순회영화공연이 열리며 큰 인기를 얻게 됐다.

마침내 1908년에 불가리아 최초의 영화관이 문을 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로는 소련에 의해 공산주의 영향을 받게 되면서 영화 업체들이 국유화되었다.

그때 불가리아 영화계는 검열에도 불구하고 회원들에게 전문적인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다.

소련이 붕괴할 때 민간에 영화사 설립이 허용됐다.

2000년에 들어서며 몇몇 영화들이 국제영화제에 소개되면서 막 불가리아 영화가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하고 있다.

가온그룹이나 JHO Company 그룹의 진출국가에 포함되어 있진 않았다.

류지호가 굳이 방문할 필요는 없는 영화제였다.

사실 이대로 유럽을 떠나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영화제에 미안하지만, 류지호는 언론 인터뷰와 무대인사를 최소화 했다.

특별히 볼 것은 없지만 이국의 정취가 풍기는 도시 소피아를 돌아다녔다.

소피아는 한국인 관광객에게 그리 매력적인 도시는 아니었다.

차갑고 텁텁하고 밋밋한 소비에트 느낌이 물씬 풍기는 도시였다.

그럼에도 억지로 관광지를 돌아봤다.

국회광장이라든가, 소련군 기념비라든가, 독수리 다리라든가, 크리스탈 공원이라든가.

공산주의 잔재들을 구경하는 것이 신기하진 않았다.

다만 복잡하지 않고 소박한 도시 속에 녹아들어 약간의 힐링이 되는 기분이 되었다.

류지호는 뇌를 비우고 도시를 하염없이 싸돌아다녔다.


“오랜만입니다. 보스!”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소피아 공항에 도착하자, 매우 낯이 익은 곰 한 마리가 반갑게 류지호를 맞이했다.

얼마나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는지 수트가 찢어질 듯 부풀어 오른 몸뚱이를 자랑하는 고우찬이었다.


“....!”


류지호가 고우찬의 모습을 슥 훑었다.

미묘했다.

뭔가 달라졌다.

달라진 외모는 그러려니 했다.

워낙에 피지컬이 좋았던 녀석이었으니까.

분위기라고 해야 할지.

태도라고 해야 할지.

무엇이 달라졌는지 꼬집을 수는 없지만, 전과 달라졌다.

일단 껄렁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졌다.

차라리 행동에서 절도가 느껴졌다.


“너 뭐냐?”

“뭐가 말입니까?”

“삼청교육대라도 다녀왔냐?”

“일단 출국심사부터 마치시지요. 저기 데이브를 따라가시면 됩니다.”


류지호와 <복수의 꽃> 관계자들이 VIP 전용구역을 통해 활주로 나갔다.

활주로에는 비즈니스 제트기 BBJ에 탑승계단차량인 스텝카가 연결되어 있었다.


“우와! 감독님!”


송라원이 눈을 크게 뜨고 놀라움을 표했다.

이서영과 김영찬 역시 그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말로만 듣던 비즈니스 전용기를 타게 되었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비행기 감독님 거예요?”


류지호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빌렸겠지.”


JHO Company그룹이 주문한 비즈니스 제트기는 내년 상반기 인도예정이다.


“우리가 미국에서 이걸 타고 다니는 거예요? 자동차가 아니라?”

“시네퀘스트 영화제 마치면 이걸 타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돼.”


류지호가 송라원에게 설명하고 먼저 제트기에 올랐다.

18인 승 보잉 비즈니스 전용기는 호화판 그 자체였다.

기장과 승무원들이 류지호에게 인사했다.


“안전하고 쾌적한 여행이 될 수 있도록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겠습니다.”


이륙허가까지 떨어지고 비즈니스 제트기가 소피아 공항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무려 보름을 머물렀던 유럽을 떠났다.

미국의 캘리포니아로 또 다른 주에서 열리는 영화제 투어를 시작했다.

전용기 안쪽 집무실로 자리를 옮긴 류지호가 대뜸 고우찬을 향해 물었다.


“말해 봐.”

“뭘 말입니까?”

“존댓말은 뭐고, 네 꼬라지는 또 뭔데?“

“경호원으로서 당연한 모습 아닙니까?”

“제대한지가 언제인데 다나까야? 닭살 돋으니까 그만 하지?”

“안됩니다!”

“안되긴 뭐가 안 돼??”

“보스에게 혼납니다.”

“보스? 데본?”

“예. 앞으로 공과 사를 분명히 할랍니다.”

“지금은 사적인 공간이니까 예전처럼 하면 되겠네.”

“그것도 안 됩니다.”

“뭘 자꾸 안 돼?”

“현재는 경호 업무 중입니다.”


얼른 한쪽에 놓인 보안가방을 가져와 지퍼를 열었다.

가방 안에서 서류철을 꺼내 류지호에게 내밀고는.


“Don이 전해달라고 한 보안서류입니다.”


류지호는 서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고우찬을 향해 다시 물었다.


“연수는 완전히 마친 거야?”

“예!”

“앞으로 너하고 데이브가 내 경호팀에 합류하는 거고?”

“예.”

“민아도 알아?”

“......”

“한국팀이야?”

“아마도.....?”

“나래안전 소속이 아니라 JHO 소속인거고?”

“예.”

“알겠어. 나중에 따로 이야기 하자.”


고우찬이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 집무실에서 물러났다.

JHO Security Services는 민간군사기업이 아니다.

그럼에도 치안이 불안정한 동유럽과 남미, 심지어 아프리카에서도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따라서 경호원 연수프로그램에 총격전을 가정한 훈련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고우찬 역시 그 과정을 마쳤을 터.

즉 CIA SAD 기본 훈련 프로그램과 군사훈련까지 받았다는 의미가 된다.

고위험국가파견 대원에 한해서 미국 CIA 공작국 산하의 특수부서인 SAD(Special Activities Division) 훈련프로그램을 일부 도입해 교육하고 있었으니까.


‘한국에서만 근무한다면 우찬이가 총을 다룰 일은 없겠지.....’


미국은 시민권자라면 이민자 상관없이 누구나 총기를 소유할 권리가 있다.

시도 때도 없이 터지는 것이 총기난사 사건이고, 우범지대에서 밤마다 총소리가 끊이지 않는 나라가 미국이다.

교통사고 사망자보다 총기사고로 사망하는 사람이 더 많은 나라가 미국이다.

고우찬은 한국 육군 만기전역자다.

그렇다고 해도 미국 특수부대 교육을 받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JHO Security Services에는 고우찬보다 뛰어난 프로들이 널리고 널렸다.

고우찬이 위험한 임무에 나갈 일은 거의 없다.

류지호 역시 위험지역에 친구를 경호원으로 대동하고 다닐 마음도 없었고.

암튼 고우찬은 이전 삶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고등학교로 돌아온 후로 고우찬의 삶을 바꾸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던 류지호다.

원치 않는 선의는 폭력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고우찬의 삶에 개입하는 것에 충분히 시간을 두고 접근했다.

가능하면 스스로 직업을 선택하도록 기회를 주는 방향으로 했다.

류지호는 고우찬이 살아갈 삶을 규정하진 않았다.

고우찬 본인의 선택이어야만 하니까.

누군가 깔아놓은 판에서 살아가는 삶 따위 원할 리가 없다.

타인의 삶에 영향을 미칠 직업선택에 있어서도 타인이 함부로 규정해서도 안 되고.


펄럭.


고우찬에 대한 생각을 털어낸 류지호가 서류를 펼쳐 읽기 시작했다.

무려 보름을 쉬었던 류지호가 봐야하고 알고 있어야 할 일들이 꽤나 많이 쌓여 있었다.

보고서를 확인하던 류지호가 투덜거렸다.


“하여간 동업해서 잘되는 꼴 못 봤다니까...”


PayMate에서 또 다시 분란이 발생했다.

결국 동료들이 일론 리브스의 해임안을 이사회에 올렸다.

엔지니어 막스밀리언과 일론 리브스의 갈등은 사실 별 것이 아니었다.

일론 리브스는 PayMate가 윈도우 시스템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막스밀리언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해임안이 이사회에서 통과되어 일론 리브스가 CEO에서 물러났다.

그것으로 회사 내부 갈등이 봉합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A-Web에서 인수제의가 들어왔다.

제시금액은 14억 3천만 달러.

최대주주인 류지호를 대리하고 있는 GARAM Ventures는 16억 달러까지 받아낼 수 있다고 봤다.


‘양손에 떡을 쥔 상황이네....!’


GARAM Ventures(사실상 류지호)는 PayMate의 최대주주이자 A-Web의 3대 주주다.

PayMate를 팔아서 9억 달러에 가까운 현금을 챙겨도 되고, A-Web의 지분을 늘려도 된다.

A-Web의 입장에서는 PayMate를 인수함으로써 닷컴버블 붕괴 위기로 의심받고 있는 비즈니스 모델의 불확실성을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게 된다.


‘슬슬 페이메이트 마피아가 탄생하게 되는 건가?’


PayMate가 A-Web에 매각되어야 멤버들이 독립해 독자적인 스타트업을 펼치게 된다.

자연스럽게 류지호가 투자를 하는 그림이 만들어질 터.

대표적인 기업이라고 하면 친구인 일론 리브스가 전개하게 될 전기차 사업이고, PayMate 엔지니어 출신인 찰스 헐리, 스티버 챈이 설립하게 될 NeTube다.


‘매튜형에게 주커벅이 뭘 하고 있는지 알아보라고 해야겠어.’


마커스 주커벅은 하버드 대학에 갓 입학한 신입생이다.

한창 학교생활에 적응할 때다.

내년 10월에 페이스매시(Facemash)라는 이름으로 SNS를 만들게 되는데, 이전 삶에서는 2004년 2월 뉴룩북(NewLookBook)이란 이름으로 본격적으로 서비스를 시작하게 된다.


‘매튜형이라면 하버드만이 아니라 유대인들과도 네트워크가 나름 탄탄하니까.’


류지호는 계속해서 보고서를 읽었다.

JHO Company 그룹의 영화 사업 부문이 오랜만에 박스오피스 매출 1위를 차지했다.

<해리포터>, <반지의 왕>, <한니발>을 랭크시켜서 단 세 편만으로 월드와이드 23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JHO Company 그룹의 영화사업부문은 작년 한 해 총 78편 영화에서 투자·제작·배급에 관여했다.

트라이-스텔라 46.2억 달러, ParaMax 13.7억 달러, 디멘션 필름 4.9억 달러의 총매출을 올렸다.


"마케팅비용 인플레이션이 심하긴 하네.“


<해리포터>의 비디오와 DVD 출시를 위해 4,500만 달러라는 거액의 마케팅 비용이 투입될 예정이다.

IVE Entertainment는 오는 5월에 <해리포터> 비디오와 DVD를 출시할 계획이다.

북미 마케팅에 2,500만 달러, 유럽지역에는 2,000만 달러를 각각 쏟아 붓기로 했다.

북미에서만 박스오피스 3.4억 달러를 벌어들인 것에서 오는 자신감일까.

지금까지 어떤 메이저도 비디오·DVD 출시에 투입해본 적 없는 마케팅 비용이 투입된다.

북미 출시는 5월 말 경, 다만 영국과 같은 특수지역은 5월 31일부터 시작되는 월드컵과 겹치지 않도록 조금 일찍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류지호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재밌는 보고도 있었다.

차세대 DVD 코덱 표준이 조만간 정해질 것 같다는 내용이다.


“턱도 없지....”


미국·일본·유럽의 210여개 비디오 소프트웨어·디스크 제작자들로 구성된 DVD포럼은 여름 즈음에 차세대 DVD 표준인 ‘HD-DVD용 인코더/디코더’ 표준을 확정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비디오의 베타와 VHS의 표준 규격 전쟁처럼 본격적인 차세대 DVD 표준전쟁의 막이 본격적으로 열리게 된 것이다.

DVD 포럼 측은 올해 또는 늦어도 내년 상반기 안에는 표준 선정을 완료할 계획이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계획이다.

소닉 진영의 반격이 거셀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류지호의 기억으로도 차세대 DVD 표준의 승자는 Blu-ray의 소닉이었다.

표준 선정 작업이 지연되면서 반도체 업체들이나 시스템 업체들의 관련제품 개발은 물론 차세대 DVD 상용화도 늦춰지고 있다.

최종 승자를 알고 있는 류지호 입장에서 두 진영의 전쟁은 무의미한 짓이었다.

이번에는 도쿄시바우라 진영의 HD-DVD 진영이 아니라 소닉이 이끄는 Blu-ray 진영이 승리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게 된다.

결국 최종승자는 따로 있다.

영화팬들은 Blu-ray DVD가 아닌 인터넷 스트리밍을 찾게 된다.

10년만 지나면 PC에 광디스크가 필수가 아니게 된다.

USB 메모리 등 대체 저장 매체가 보편화된다.

노트북 등으로 소형화하면서 실제로 DVD 드라이브가 탑재되지 않은 PC모델이 늘어나게 된다.

VOD, 스트리밍 서비스가 보편화 되면서 DVD 재생 장치의 매출이 추락하게 된다.

HD-DVD vs Blu-ray.

PC제조사, 글로벌 가전브랜드, 콘텐츠를 생산하는 할리우드 메이저들이 HD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각각의 이해관계를 살펴 줄을 세우거나 또 알아서 줄을 서는 주도권을 벌이게 된다.


‘대략 5~6년 걸리던가?’


류지호가 입가에 미소를 달고 중얼거렸다.


“이기는 편 우리 편...!”


두 진영의 주도권 싸움 와중에 한국의 오성전자는 HD-DVD와 Blu-ray를 동시에 지원하는 플레이어를 발 빠르게 출시하게 된다.

적도, 아군도 아닌 애매한 태도를 보여 치열한 주도권싸움을 벌이던 업체들을 혼란에 빠뜨리기도 한다.


톡톡.


류지호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고심에 빠졌다.

베를린영화제에 참석하기 전 오성전자와 금성전자에 휴대폰용 이미지센서 공동개발을 제안했었다.

거절당했다.

DALLSA Corp.의 기술력과 영업력에 대한 무시가 아니었다.

일본과의 오랜 신뢰를 깨고 협력 업체를 바꿀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톡.


테이블을 두드리던 손가락이 멈췄다.

류지호는 앞으로 한국의 전자회사와 이미지센터를 포함해 D-Cinema 분야 협력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미지센서를 지렛대로 해서 한국의 기업들과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산업의 공급망 다변화 및 국내 생태계를 장기적으로 준비하려고 했었다.

양대 전자회사가 일본과 계속해서 잘 해보겠다고 하니 당하기 전까지 놔둘 생각이다.


‘DALLSA의 이미지센서 분야 역량을 더 강화하려면 D-Cinema 사업부문을 자회사로 독립시키는 것이 좋겠지.’


Royal Philips Electronics의 CCD 사업부문을 인수·합병한 것이 신의 한수가 될 것 같았다.

CMOS 분야에서 열세였던 DALLSA Corp.은 RPE의 이미지센서 사업을 인수함으로써 관련 특허와 기술을 다수 확보했다.

기존 산업용, 의료용 이미지센서 분야 외에 CCTV와 휴대폰용 이미지센서 기타 분야로까지 확장성이 확보됐다.

영화사업 보고서를 들춰보던 류지호가 눈에 이채를 띠었다.


“오호~ 개빈 페이지가 극찬을 했다?”


작가의말

한 주 마무리 잘 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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