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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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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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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30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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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민중의 적.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류민상의 생각은 무척이나 순진했다.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다.

사쿠라니쿠 재단이 구워삶은 미국의 싱크탱크 멤버가 한 둘이 아니다.

그들에게 쥐어주는 돈의 규모가 상상초월이다.

단적인 예로 사쿠라니쿠 재단이 후원하는 세미나에 한 번 참가하는데 1만 달러는 기본으로 사례비를 받는다.

전임 미행정부 관료 출신을 재단 연구원으로 영입하면서 고액 연봉을 보장해준다.

1960년 설립되었을 때 재단의 자산이 한화로 무려 1조 5천억 원이었다.

현재는 얼마나 불어나 있는지 당사자들밖에 모른다.


“그 사람들은 일본에서는 애국자일지도 몰라. 자기 나라를 위해 하는 행동이니까. 하지만 나는 그 재단을 민중의 적이라고 생각한단다. 진실을 왜곡해 거짓선동으로 무지한 사람들의 눈을 가리는 건 어떤 범죄보다 무거운 거잖니. 왜냐하면 오늘의 잘못된 역사와 생각이 뿌리를 내리게 되면 후세에까지 이어지기 때문이지.”

“아버지.... 극단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대화가 통하지도 않고, 무슨 짓을 벌일지 몰라요. 가미가제 같은 걸 선동했던 전적이 있던 사람이 만든 재단이란 말입니다. 폭력이나 테러를 거리낌 없이 쓸 수 있는 작자들이라고요.”


A급 전범자이자 일본의 극우주의자가 설립한 재단.

그 재단이 펼치는 친일본 성향의 미국 유력인사 네트워크.

그에 맞서 한국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미국 내의 한국계 재단 설립.

아버지가 하시는 일이니 당연히 자식이 돕는 것이 맞다.

한국인으로서 당연한 일이고.

역사왜곡, 종군 위안부 논점 흐리기, 독도 영유권 조작 등.

미국 내 친일인사들과 벌이는 사쿠라니쿠 재단의 수많은 프로젝트는 친일·반일 논쟁과 상관없이 한국의 국익과도 관련되어 있다. 그런 재단에 맞서 미국 내 친한파 네트워크를 조직하고, 왜곡된 사실을 바로잡으며, 한국과 관련한 제대로 된 인식을 미국에 심는다.

한국인으로써 가치 있는 행동이다.

하지만 그걸 자신의 아버지가 하는 게 못마땅한 류지호다.


‘만에 하나. 아버지가 해코지라도 당한다면....?’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 봐야지?”

“아버지가 고집을 부리시는데 제가 어떻게 한국으로 가겠어요?”

“나는 네가 반대를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구나.”


하루를 꼬박 류지호가 아버지와 대화를 나눴다.

데본 테럴 사장과 매튜 그레이엄까지 불러들여 대화에 합류시켰다.


“일부 일본의 극우단체는 야쿠자 조직과도 손잡고 있습니다. 사쿠라니쿠 재단 같은 극우세력으로부터 자금을 조달받거나 조직의 자금세탁 통로로도 이용하고 있죠.”


데본 테럴은 일본 극우들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다.

또한 미국 정계와 학계에 일본 자금이 얼마나 들어와 있는지 대략적으로 설명했다.


“Jay가 일본에서 수십 억 달러를 투자할 예정이란 걸 잊으면 안 돼. 민상.”


매튜 그레이엄은 류지호의 비즈니스 부분을 강조했다.


“한국의 신자유민주연대라는 꼴통들에게 일본의 극우 후원금이 들어가고 있대요. 아버지가 반일적 스탠스를 공식적으로 내보이시는 순간 테러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니까요.”


류지호는 일본 우익들이 한국에서 치는 장난질을 설명했다.

어떤 세력과 연결되어 있는지도 일부 밝혔다.

찬 밥 더운 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공식적으로 드러난 사실은 아니지만 미래에 밝혀지는 언론·사법·학계·정계의 사쿠라니쿠 재단 커넥션에 대해 이야기 했다.

한국의 기득권 일부가 사쿠라니쿠 재단이 제공하는 돈에 길들여져 있어서 가온그룹이 상대하기 버겁다는 소리까지 했다.

물론 과장된 부분도 많았다.

그래야 아버지가 신중하게 생각할 테니까.

오성그룹의 수많은 장학생 프로그램 중 일본과 관련한 프로그램에 혜택을 받았거나 갑자기 일본유학을 다녀온 후로 이념과 역사관이 바뀐 지식인이 있다면 사쿠라니쿠 재단의 후원을 받기 시작했다고 보아야 했다.


“다 알아들었다. 모두가 반대를 하니 나는 한국 재단 일에 집중하마.”


끈질긴 설득이 먹혔을까.

하루 꼬박 입씨름을 통해 류지호가 겨우 안심할 수 있었다.


“대신 미국에서 활동하는 우리나라 사람들 지원하는 것까지는 말리지 마.”

“안 말려요. 저도 적극 찬성이에요. 미국에 활동하는 한국인 활동가들을 통해서 뉴욕 타임스퀘어에 독도 광고도 내시고, 타임지에 위안부 캠페인광고도 내세요. 워싱턴 조야의 친한파 정치인들 후원도 팍팍하시고요. 대신 그 바닥에 아버지가 직접 발 들이진 마시고요.”

“내가 말도 안 통하는 미국사람 상대할 일이 뭐가 있겠냐. 그저 사꾸란지 뭔지 하는 작자들 행태에 피가 솟구쳐서 뭐라도 하고 싶었던 거야.”


류민상 세대에게 쪽발이와 빨갱이 중 누가 더 밉냐고 물어보면 우열을 가리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그 둘보다 더 미운 대상에서는 이견이 있을 수가 없다.

바로 일본놈 앞잡이 즉 친일 부역자다.


‘오죽하면 김구 선생 같은 양반이 ’왜놈보다 친일 부일배가 더 밉다!‘고까지 했을까.’


미운 것은 미운 것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류지호는 아버지가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아버지를 설득한 류지호는 JHO Security Services 산하 Pinkerton Consulting & Investigations 워싱턴DC 지사장을 호출했다.

워싱턴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민간단체를 수소문해 줄 것을 부탁했다.

한국 본토와 지나치게 밀착된 단체들은 제외했다.

신생이나 소규모 단체 가운데 하나를 찾아냈다.

한미역사문화교류재단이란 곳이다.


“구성원 전원이 미국 영주권자이거나 시민권자들입니다.”


후원자들은 일반인지만, 활동가들은 변호사, 학자, 정치지망생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재단의 이사장이 개인적 목적 때문에 만들어진 단체입니다. 하원에 입성하기 위한 지원 세력으로 만든 단체였습니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가 들어간 재단이름과 전혀 상관없이 정치참여 성격이 강한 단체였다.


“그래서 이사장이란 사람이 하원의원이 됐습니까?”

“애석하지만 후보에도 못 올라갔습니다.”

“어떤 사람입니까?”

“전부터 한인들의 권익증진과 정치력 신장에 애쓰던 인권운동가 활동을 해왔습니다.”

“4.29로 정치에 관심이 생긴 사람 중에 한 명이겠군요?”

“맞습니다.”


류지호는 미 서부와 뉴욕주 정도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정치지망생들에 제법 후원을 하고 있다.

정작 미국 정치의 심장부 워싱턴DC에서 활동하는 한국계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이번 주 안에 10만 달러를 후원하기로 했습니다.”

“상황 봐 가면서 후원 규모를 늘리도록 하세요.”

“얼마까지.....?”

“연 간 최대 100만 달러 정도?”


후원을 통해 한미역사문화교류재단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의 리더십 포럼, 동북아 평화 프로세스,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강대국들의 외교 전략 등, 각종 연구활동과 세미나를 개최할 수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GARAM Invest에 펀드 하나 개설해서 후원 재단들의 자금을 불려주도록 하고요.”


당장 사쿠라니쿠 평화재단처럼 연간 수억 달러를 워싱턴 싱크탱크와 IVY 리그 대학에 쏟아 부을 수는 없다.

노골적으로 반일 스탠스를 드러내선 안 된다.

일본 비즈니스에서 지장이 생길 수도 있을 테니까.

또한 미국의 정계와 학계에 무턱대고 돈을 뿌려서도 안 되고.

정치와 금융 중심지 동부는 유대계들의 심장부이다.


“일단은 몇 명 되지도 않은 기존 친한파 인사들의 관리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워싱턴 정가에 친한파가 있긴 해요?”

“한국계와 결혼한 정치인도 있고, 동북아 안보를 연구하는 싱크탱크 연구원 중에 한국과 밀접하게 연관된 이들도 더러 있습니다. 주한미군이나 한국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외교관 출신들도 넓게는 친한파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이들은 한국 정부가 관리할 일입니다. 나는 정치안보 사안에는 관심 없어요. 역사와 문화 부분에서 일본의 장난질에 논리로 맞설 미국인 친한파 인사들이 필요한 겁니다. 한국계가 아닌 백인으로.”

“알겠습니다.”


캘리포니아주의 수많은 대학에는 소닉 같은 일본기업이 기부한 건물이나 시설물이 꽤 많다.

한국기업이 기증한 건물이나 시설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사실 류지호도 JHO Company 이름으로 기부와 기증을 하고 있지, 가온그룹으로 할 생각을 못했다.

한국계 활동가들 지원을 계기로 가온그룹의 이름으로도 미국에 돈을 좀 뿌리기로 했다.

100만 달러가 큰 돈일수도 작은 돈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비영리민간 단체들은 언제나 예산에 쪼들린다.

류지호의 생각과 달리 재단들이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정치·안보를 넘어 한반도 위기대응, 지방자치, 원자력, 신재생에너지 등 각종 분야에 걸쳐 다양하게 한미 싱크탱크 공동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다.

한미역사문화교류재단의 공략 대상은 싱크탱크만이 아닌 대학도 포함된다.

게다가 스탠퍼드 아시아 태평양 연구센터에서의 한국 영향력도 강화하고, 아이비리그와도 주기적으로 만나 의견을 교환하는 장을 마련한다.

흔히들 대학을 싱크탱크와 무관한 곳이라 생각하기 쉽다.

대학만큼 안정되고 장기적 차원의 싱크탱크도 드물다.

그러니 사쿠라니쿠 재단이 한국의 중요 대학 교수들에게 공을 들일 수밖에.


“꼭 친한파가 아니어도 됩니다. 재단에서 차세대 한국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에도 신경을 쓰라고 하세요. 미국에선 한국을 전혀 모릅니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고 하는 편이 맞겠죠. 한국을 위한 외교전략 어쩌고 하기 전에 미국의 유력 인사들이 한국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예. 보스.”


여담으로 류지호의 후원으로 예산이 넉넉해진 한미역사문화교류재단은 10여 년 후부터 미국과 연계하는 것을 넘어 유럽국가와도 연계해 청년전략가 포럼과 연수 프로그램을 만들어 한국의 KAI, 용산전쟁기념관, 용산미군기지 등을 참관시키는 프로그램을 운용한다.

류아라와 레오나 파커가 처음 제안한 한국전참전용사 후손 평화캠프와 함께 연례행사로 자리 잡게 된다.


“니들이 5,000만 달러를 쓰면 난 1억 달러를 쓰고, 너희들이 1억 달러를 쓰면 나는 10억 달러를 써주마.”


류지호의 몸속에 아주 진한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일까.

일본 극우들의 짓거리를 떠올리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

아무리 차가운 이성으로 대응하려고 해도.

어쨌든 류지호의 후원규모와 워싱턴 싱크탱크의 친한 노선이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최고 수준의 싱크탱크가 가장 중시하는 것 중 하나가 객관성·중립성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돈을 퍼부을 경우 발언권이 그만큼 강화된다는 것이 중요했다.

옳고 그르고를 따지기에 앞서 자신의 입장을 밝힐 공간과 시간이 생길 수 있다.

그것이 외교와 로비의 시작이다.

싱크탱크 본연의 임무는 정책이다.

그런데 돈은 싱크탱크 운영의 초석이다.

돈 없이 싱크탱크가 돌아갈 수 없다.

자유와 자본주의를 신봉하는 한국의 기득권들은 싱크탱크가 미국 자본주의 체제하의 부산물이란 걸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저 소수 명망가의 기념사진을 위한 초대형 이벤트 정도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 시기 콧대 높은 미국 정계인사들 역시 일본 정부 혹은 사쿠라니쿠 재단 같은 일본의 민간단체의 돈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한국 전문가라는 이들조차 일본 돈을 받아 연구를 한다.

그런 분위기를 한국 쪽으로 돌려놓기 위해서는 많은 자금과 인적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다.

류지호가 사쿠라니쿠 재단보다 유리한 점도 있다.

미국의 가치를 전 세계에 전파하는 첨병노릇을 하는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의 오너이며, 미국의 한국전쟁 참전영웅들을 후원하는 청년 기업가이자, 미국에서 사업을 영위하며 막대한 세금을 납부하는 투자자이고, 세계 최강대국 미국을 돋보이게 해 줄 아메리칸드림의 산증인이란 점이다.

A급 전범이 설립한 재단과 미국적 가치에 공헌(?)하고 있는 청년 기업가가 만든 재단.

미국의 지식인사회에서 같은 값이면 어떤 쪽에 손을 들어줄지 예상해볼 수 있다.

꺼림칙한 것이 없지 않았다.

미국에서 연출한 영화들이 아메리칸드림 칭송보다는 미국사회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 좀 더 강했다는 사실이다.

미국을 움직이는 백인꼰대들이 그런 류지호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당장 조디 워커 대통령조차 나를 무시하고 있으니까.’


강경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꼭두각시인 주제에 오만하고 독선적이기까지 한 인물이 조디 워커 대통령이다.

Se7ven Flags Theme Parks가 텍사스 주에서 초대형 테마파크를 설립해보려고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다.

워커 가문은 텍사스 주의 터줏대감이다.

조디 워커 대통령은 류지호가 직접 찾아 와 머리라도 조아리길 바라는 모양이다.

아쉬운 것은 텍사스 주와 워커 가문 일 텐데도.

심지어 경기침체, 닷컴버블 붕괴, 911테러까지 삼연타를 맞은 조디 워커 행정부 입장에서는 류지호의 대규모 투자가 절실할 텐데도 자신들이 ‘갑’ 행세를 하고 있다.


‘바룩 오밤도 만만치 않은 친일 성향이었던 것 같은데.... 부통령도 마찬가지고.’


친일이든, 친한이든, 뭐든....

나한테만 손해 안 끼치면 무슨 상관이랴.

내 이기심과 대치되지만 않으면 하등 문제될 것이 없다.

그게 인간이다.

류지호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과거로 회귀했다고 해서 민족의 영웅이 될 것도 아니고.


‘내가 영화를 찍긴 하는 모양이네....’


또 다시 영양가 없는 생각 속으로 깊게 침잠하는 류지호다.

영화를 찍기 전 온갖 잡스런 상념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루틴.....

이전에는 존재론적인 고민이나 찍으려는 영화의 메시지와 관련한 철학적 고뇌에서 허우적거렸다면, 이번에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현실정치참여적인 문제들로 허우적거렸다.

UCLA 재학시절 읽었던 ‘도덕, 정치를 말하다’을 비롯해 로버트 달 교수의 민주주의에 관한 저서들, 빌헬름 라이히의 ‘파시즘의 대중심리’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물론이고 페미니즘 관련 유명한 저서들에까지 생각이 확장됐다.

어려운 사회과학서적들의 머리 시끄러운 내용들로 머리가 과부화가 걸리기 시작하자, 조지 오엘의 ‘동물 농장’을 떠올리기도 했다.

영화 작업 전에 겪는 이런 과정으로 인해 찍게 영화의 톤 앤 매너나 주제의식이 변하는 일은 없다.

그래서도 안 되고.

다만 영화라는 너무나 상업적인 매체를 다루는 태도에 한 숟가락 책임감을 넣는 것 같은 효과는 있었다.

영화감독이 자신이 다루는 세상과 사회에 대해 무지하면 자신이 연출하는 영화에서 설득력을 가질 수 없을 테니까.


✻ ✻ ✻


9월 말이 되어서야 류지호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부랴부랴 미술, 소품, 의상과 헤어 관련 최종적인 결정들을 내렸다.

류지호가 요구한 <민중의 적> 순제작비는 36억 원이다.

이전 삶에서 <민중의 적> 제작비가 얼마였는지는 알지 못했다.

다만 10억 정도 더 책정되었을 것으로 예상했다.

강은석 감독은 영화예산을 굉장히 보수적으로 책정하는 것으로 유명했으니까.

제작비를 쥐어짜서 작업하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있었고.

효율에 기반 했는지, 합리적인 예산집행인지는 논외로 치고.


“왠지 거저먹는 느낌적 느낌이란 말이지....”


이전 삶에서는 데뷔작품을 너무 거하게 말아먹었다.

이후의 감독 행보가 가시밭길 그 자체였다.

이번에는 한국영화 하는 게 너무 쉬웠다.

류지호가 영화를 고르고 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투자확정이다.

WaW 엔터테인먼트가 사실상 류지호 소유 회사인데다가, 주요 투자사인 가온투자파트너스는 류지호 개인 자산으로 운영되는 투자회사다.

오너의 뜻을 거스를 만큼 간이 큰 임직원은 없다.

당연히 투자심의위원회에서 일사천리로 통과된다.

남들은 톱배우 캐스팅에 애를 먹는다.

때론 삼고초려... 심하면 십고초려까지 각오해야 한다.

류지호의 경우는 딱히 어려움이 없다.

싸가지 없고 개념 탑재 못한 톱스타급 일부 그리고 매니지먼트가 쓰레기인 곳에 소속된 배우 몇 명을 제외하고, 류지호가 러브콜을 보내면 즉각적인 출연의사를 받아낼 수 있을 정도다.

단편영화 시절부터 손발을 맞춰봤던 자신만의 크루도 있다.

영화를 편하기 찍기 위해 얼추 충무로 인프라도 갖춰 놨다.

원스톱 서비스가 가능한 WaW 종합촬영소가 본격적으로 가동되고 있진 않아 살짝 아쉽긴 했지만.

그럼에도 WaW 종합촬영소는 류지호가 원하는 장비나 시스템을 최우선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그러라고 지난 10년 간 꾸준히 투자한 것이긴 하지만.

<복수의 꽃>이나 이번 <민중의 적>에서 활용할 장비나 시스템은 대부분 한국영화 최초라고 해도 과언이다.


“촌스러우니까 그런 거 홍보에 쓰고 그러지 말지, 좀.”


필름을 제외하고 장비 부분에서 일반 충무로 영화의 두 배를 활용하는 류지호다.

<민중의 적> 촬영을 위해 각종 촬영 보조장비와 조명기구 중에서 A급을 싹쓸이 하다시피 예약했다.

쓰지도 않을 장비를 모두 선점했다고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나왔다.

당연히 온갖 뒷담화가 충무로바닥에 넘쳐났다.


“살 빠졌냐?”


오랜만에 만난 황재정이 류지호의 몸을 요모조모 훑어보고는 물었다.


“1Kg 정도. 레오나도 그러더니 1kg 빠진 게 티가 많이 나나....?”

“연타로 영화 찍고 광고까지 했으니.... 몸이 축나겠지.”

“난 레디 고만 외쳤어. 크루들이 애썼지 뭐.”

“경영도 최고경영자들에게 다 떠넘긴 주제에 너무 일일이 챙기는 거 아니냐? 좀 쉬어.”

“쉴까 싶기도 했는데 쉽지 않네.”

“하여간 워커홀릭도 너 같은 워커홀릭도 없어....!”

“사돈 남 말하시네.”

“누가 사돈이야! 너랑 사돈 안 해.”

“나도 싫거든!”


사람들 앞에서는 냉철하고 포커페이스인 황재정도 친구인 류지호 앞에서는 간혹 무장해제가 된다.

그런 모습을 쉽게 내보이는 것을 보면 죽마고우가 맞긴 하는 것 같다.


“신포고 자퇴하고 나서 달리는 게 습관이 됐나. 쉽지 않아.”

“팔자인가 싶기고 하고. 나도 너한테 옮았는지 조금 쉬려고 하면 이게 맞나 싶은... 어차피 죽으면 영원히 쉴 텐데 그런 생각도 들고. 뭐 하나 해놓은 것도 없는 주제에 풀어져서 쓰나 싶고.”


황재정은 류지호를 따라잡기 위해 발버둥치는 과정에서 워커홀릭이 됐다.

연애라고 하면 좋으련만 그쪽으로는 영 소질도 없었고.


“직업병인가 싶다가도 실패라는 놈과는 다른 또 하나의 벗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능력이 없어 실패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어도 노력이 부족해 실패하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을 것 같아.”

“벗은 개뿔... 그냥 팔자야 팔자.”


월가 사람들이나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기업의 전문경영인들에게 일중독은 감기 같은 거다.

흔한 질병과 같다는 의미이다.

말썽꾸러기 매튜 그레이엄조차 살인적인 스케줄 속에서 오히려 안정을 느낄 정도니 오죽할까.

전문경영인은 멈추는 순간 생명이 끝난다.

실적을 내지 못하거나 경쟁에서 패하게 되니까.

그래서 한시도 쉴 수 없다.

벌써부터 그 같은 중압감에 황재정이 시달릴 것 같진 않지만.


“크랭크인은 강원도에서 한다고?”

“내가 미국에서 너무 늦게 넘어오는 바람에 스케줄이 조금 꼬였거든.”

“알고 빼돌린 거야? JHO 직원들?”

“뭘?”

“알카에다 테러!”

“응.”

“.......?”

“미국 정보기관도 낌새는 이미 알고 있었다더라. 보고도 하고. 그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은 윗대가리였지. 제대로 대비를 했다면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도 있었어.”

“그런 거 말해도 되는 거냐?”

“딴 데 가서 내가 그랬다고 떠벌리고 다니게?”

“그건 아니지만.”

“미 의회차원에서 조사를 벌일 거야. 대대적으로. 어차피 그때 다 밝혀져.”

“퇴근하고 술 한 잔 할까?”

“미안... 컨디션 조절해야 돼.”

“재욱이는 잘만 술 먹고 다니던데?”

“제작실장하고 감독하고 책임감의 무게가 같냐?”

“고생해라.”

“다음에.... 쫑파티 때 술독에 빠져보자.”


육체적인 건강은 항상 만전을 기하고 있기에 새삼스럽게 챙길 것까진 없다.

스트레스 관리 역시 촬영 전 루틴인 온갖 잡스런 상념에 허우적거리는 과정을 통해 어느 정도 해소됐다.

혹시나 감기라도 앓게 되면 가뜩이나 밀린 스케줄이 더 꼬일까봐 조심하는 것뿐.

<민중의 적> 크랭크인이 임박하면서 각종 테스트 촬영이 진행됐다.

할리우드는 테스트 촬영조차 매우 꼼꼼하게 하는 편이다.

기본적으로 장비 렌탈샵에서 카메라, 렌즈, 조명기 등을 상시 확인하고 있지만, 촬영팀에서 다시 한 번 촬영에 쓰일 장비들을 하나하나 점검해 본다.

<민중의 적>은 DALLSA Origin Ⅱ 기종으로 촬영할 예정이기에 더 꼼꼼하게 장비를 테스트했다.

단순하게 카메라 성능과 특성을 테스트하는 수준이 아니다.

아날로그 카메라 테스트에서도 필름을 미리 테스트해보는 과정이 있다.

영화의 전체 ‘룩’에 관한 테스트다.

촬영감독과 조명감독, 미술감독(류지호 영화만 예외적으로), 현상소 관계자들이 긴밀히 연계되어 어떤 필름을 사용할 것이며 어떤 방식으로 촬영하고, 어떻게 현상할 것인지 의논한다.

그 같은 프로세스를 촬영 전에 실전처럼 테스트해 본다.

<민중의 적>의 경우에는 필름 현상 과정이 빠졌다.

대신 DI와 키네스코프를 집중적으로 테스트 해 봤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한국에서 6mm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한 영화는 있었다.

본격적인 D-Cinema는 <민중의 적>이 최초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 시네마 카메라도 처음으로 활용한다.

당연히 ‘톤‘이나 ‘룩’과 관련한 어떤 디지털 데이터가 없었다.

때문에 주요배우들의 피부톤, 메이크업 밝기와 톤, 의상 톤 등이 어떻게 찍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하이 키와 로워 키 조명에서 어떤 이미지로 보이는지, 오전과 오후 일광이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날씨에 따른 변화까지도 테스트를 진행했다.

김영복 촬영팀은 적어도 한국에서 Eye-MAX와 D-Cinema 분야에서 최고의 팀이 되었다.

수퍼35mm도 두 작품이나 다뤄봤다.

심지어 파나플렉스 카메라까지도 다룰 줄 알았다.

다양한 카메라 기종을 다뤄봤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카메라 브랜드와 포맷에 따라 어떤 룩이 나오는지 경험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촬영감독의 노하우고 실력이다.

그 같은 감각은 디지털 영화 시대에도 유효한 장점이다.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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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2 어쩌면, 혹시, 설마 했던 일. (1) +9 23.04.24 3,377 122 23쪽
481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2) +4 23.04.22 3,474 122 27쪽
480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1) +10 23.04.21 3,410 113 24쪽
479 베를린영화제. (6) +5 23.04.20 3,330 124 26쪽
478 베를린영화제. (5) +8 23.04.19 3,252 113 24쪽
477 베를린영화제. (4) +14 23.04.18 3,172 143 23쪽
476 베를린영화제. (3) +9 23.04.18 2,956 110 30쪽
475 베를린영화제. (2) +6 23.04.18 3,023 108 30쪽
474 베를린영화제. (1) +6 23.04.17 3,319 124 27쪽
473 한국영화에 애정이 있구나.... (2) +11 23.04.15 3,388 117 27쪽
472 한국영화에 애정이 있구나.... (1) +2 23.04.14 3,270 126 26쪽
471 한 판 크게 벌여봐야겠어요. (4) +8 23.04.13 3,311 123 25쪽
470 한 판 크게 벌여봐야겠어요. (3) +4 23.04.12 3,312 126 23쪽
469 한 판 크게 벌여봐야겠어요. (2) +4 23.04.11 3,333 120 26쪽
468 한 판 크게 벌여봐야겠어요. (1) +7 23.04.10 3,387 123 25쪽
467 민중의 적. (10) +3 23.04.08 3,259 120 23쪽
466 민중의 적. (9) +4 23.04.07 3,214 116 25쪽
465 민중의 적. (8) +6 23.04.06 3,129 117 23쪽
464 민중의 적. (7) +3 23.04.05 3,124 114 23쪽
463 민중의 적. (6) +7 23.04.04 3,208 120 24쪽
462 민중의 적. (5) +2 23.04.03 3,235 115 22쪽
461 민중의 적. (4) +3 23.04.01 3,266 117 22쪽
460 민중의 적. (3) +3 23.03.31 3,403 116 23쪽
» 민중의 적. (2) +5 23.03.30 3,458 115 23쪽
458 민중의 적. (1) +9 23.03.29 3,508 116 24쪽
457 무역센터가 무너졌습니다! (3) +4 23.03.28 3,409 119 22쪽
456 무역센터가 무너졌습니다! (2) +5 23.03.27 3,306 118 21쪽
455 무역센터가 무너졌습니다! (1) +5 23.03.25 3,449 113 21쪽
454 쉽게 될 리가 없겠지..... +8 23.03.24 3,314 112 24쪽
453 영화가 영원히 머무는 곳. (2) +6 23.03.23 3,314 108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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