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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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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1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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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베를린영화제. (4)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복수의 꽃> 러닝타임은 128분이다.

러닝타임 동안 객석 곳곳에서 작은 술렁거림이 간간이 이어졌다.

특히 영화 도입부의 우금치 전투 장면과 클라이맥스 액션 시퀀스에서는 탄성이 객석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안동하회탈놀이가 나오는 시점부터 중년이 된 연화의 붉게 충혈 된 눈을 빅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며 ‘The End' 자막이 화면에 뜰 때는 열렬한 갈채가 터져 나왔다.

휘파람을 부는 기자도 있었다.

<복수의 꽃> 공개 시사회 참석자들의 기립박수는 짧지도 길지도 않았다.

딱 적당했다.

극장 분위기만 봐서는 영화에 대한 반응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충격적이면서도 신선하다!”


극장을 나서는 기자들이 입을 모았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재림인가?”

“오시마 나기사의 <감각의 제국>이 떠올랐어.”

“해묵은 제국주의 테마 아닌가?”

“디렉터 류는 21세기 제국주의 첨병 월스트리트의 일원이지.”

“그보다는 신대륙탐험가라고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나? 그는 실리콘밸리의 엔젤이야.”


영화 <감각의 제국>은 외설과 예술의 경계에 서 있는 영화다.

심한 노출과 실제 정사 장면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킨 영화다.

겉으로 보면 집착과 광기의 사랑 타령 같다.

사실은 ‘일본은 충족되지 않는 섹스에 미친 살인마’라는 풍자와 군국주의를 비판하는 심오한 영화다.

영화의 주제는 프랑스어 제목인 L'Empire des Sens를 해석하면 쉽게 이해된다.

감각(sens)은 육체적 쾌락 즉 성욕이다.

제국(Empire)은 군국주의 일본을 일컫는다.

즉 자기 파괴적인 본능만 남은 군국주의 일본을 암시한다.

일부 유럽평론가와 기자는 <복수의 꽃>에서 오래 된 고전 명작 <감각의 제국>을 떠올리기도 했다.

조선의 봉건적 사회상을 풍자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 비판영화로 해석한 것이다.

류지호가 알 바가 아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해석이나 감상은 전적으로 관객의 몫이니까.

암튼 시사회 분위기는 대체로 좋았다.

다른 것은 몰라도 배우들의 연기는 높이 평가받았다.

다만 여주인공의 일방적인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지적이나 지나친 폭력이 부담스럽다는 반응도 있었다.

액션 장면의 사실적인 묘사에서 호불호가 조금 갈렸다.


[Eye-MAX의 1.43:1 화면비는 우리의 시야를 여백 없이 화면으로 꽉 채워 낸다. 그야말로 Eye Maximum답다. <복수의 꽃>에서는 Eye-MAX DMR이라는 1.9:1 화면비도 섞여 있다. 필자는 Eye-MAX 오리지널이 언제부터 나올까 기대했고, 나오면 뛸 듯이 기뻤다. 옆 사람에게 아는 척하고 싶어서 말이다. 화질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사운드는 취향에 따라 갈릴 수 있다. 다만 1.43:1 화면비가 영화적이거나 미학적으로 더 뛰어난가에 대한 반문이 든다. 화면을 가득 채워 몰입감 자체는 좋지만, 그 화면이 굉장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복수의 꽃>이 선사하는 전쟁 시퀀스는 내게 영화적이라기보다는 다큐멘터리에 가까웠다. 이것이 감독의 의도라 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인데 스크린에서는 박진감 없는 다큐멘터리가 펼쳐지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웠다. Eye-MAX 포맷을 통해 우리는 이전보다 훌륭한 화질의 영화를 감상할 수 있겠지만 화면비에서는 호불호가 나뉘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신세계를 경험한 것까지는 아니지만 새로움은 충분히 만끽해볼 수 있는 영화다.]

- Empire(영국).


[나는 <복수의 꽃>을 보면서 이 화면비가 약간은 불편했다. 속단하기 이르지만 미래 영화의 한 축이 될 것 같긴 하다. 이런저런 불편함에도 Eye-MAX로 만들어진 극영화는 많은 장점이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 Cahiers du Cinéma(프랑스).


[Eye-MAX로 봐라. 일반 극장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전율을 느낄 것이다.]

- Berliner Morgenpost(독일).


<복수의 꽃>의 리뷰에서 박한 평가를 내렸던 filmcomment조차 Eye-MAX와 검술 액션 시퀀스 디자인에서만큼은 좋은 평가를 내렸다.


[미국의 액션 노장 하이앰스가 알렉산드르 뒤마의 <삼총사>를 리메이크하면서, 난데없이 홍콩의 무술연출 거장 위엔우핑을 불러와 홍콩 무협영화처럼 만들어냈다. 유럽 고전마저 이른바 ‘홍콩 스타일’로 재편해낸 모습은 1999년 <매트릭스>와 2000년의 <미녀삼총사>가 모두 같은 홍콩 스타일의 과장된 무술 연출로 도배된 해프닝이 온전히 ‘트렌드화’되었음을 암시했는데, 이 같은 트렌드는 프랑스까지 고스란히 이어져 특히 홍콩영화에 심취한 폴 베송의 <트랜스포터> 프랜차이즈 등으로 끊임없이 재현되고 있다. 류지호는 <복수의 꽃>에서 결코 우아하지도 과장되지도 않은 폭력장면을 통해 최근 서구권 영화에서 불고 있는 트렌드에 대해 점잖은 충고를 하는 것만 같았다. 영화 속에서 대결을 벌인다는 것은 감정의 충돌이 몸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 본질을 지호 류는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 <복수의 꽃>은 리안이 보여줬던 <와호장룡>에 이어 눈여겨 봐야할 액션 시퀀스를 담아냈다.]

- filmcomment(미국).


아시아 영화의 직접적인 미국 진출로 가장 큰 성과를 거둔 작품은 역시 리안 감독의 2000년작 <와호장룡>이다.

‘자막’이 들어간 영화로는 절대 넘을 수 없다는 1억 달러 흥행고를 넘어선 영화다.

미국 내에서만 1억 2,80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데 성공했으니까.

<와호장룡>은 외국 영화에 절대 후하지 않은 ‘가장 보수적인 영화상’ 아카데미상에서도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해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최종 4개 부문 수상의 쾌거를 거두었다.

과연 <복수의 꽃>이 베를린영화제를 넘어 아카데미상에서도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인가.

많은 아시아의 기자들이 기대감을 드러냈다.


✻ ✻ ✻


JHO와 가온 관계자들이 묵고 있는 Pritzkers Hotel에서 <복수의 꽃> 공식기자회견이 열렸다.

영화에 대한 뜨거운 반응만큼이나 기자들로부터 열띤 질문공세가 이어졌다.


"이 영화는 폭력이나 시대를 주제로 한 영화가 아닙니다. 운명적인 삶을 다룬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역사에서 우발적이면서도 이해 못할 관계들이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구성만큼이나 호불호가 나뉠 것 같다. 친절하고 편안한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에서 사실상 리얼리티라고 볼 수 있는 것은 단 두 시퀀스 밖에 없습니다. 도입부에서 보여주는 고증을 거쳐 재현한 전투 시퀀스와 에필로그의 하회별신굿탈놀이 뿐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허구이자 한여름 밤의 꿈. 백일몽 같은 겁니다. 복수의 허망함이기도 하지만. 역사는 후대에 있어서 머물러 있지 않고 해석과 시선에 의해 움직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삶은 결코 변하지 않죠.”

- 영상이 무척 화려하다. 화려한 일본의 느낌과 여백 많은 중국의 느낌이 더해져 색을 뺀 수묵화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서양물감으로 동양 수묵화 느낌을 내고 싶다. 그런 의도로 접근했습니다. Eye-MAX는 현존 최고의 화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디지털로 넘어가게 되면 조명과 필름 특유의 질감의 부드러운 경계가 조금 날카롭고 또렷해지는 느낌이 납니다. 이는 현재 디지털 영화가 가진 한계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포스트프로덕션 팀들은 마치 수묵화가 표현하는 먹의 번짐과 하얗게 남겨진 여백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실험했고, 그 결과가 여러분이 극장에서 경험한 바로 그 영상입니다.”


<복수의 꽃>을 디지털 카메라로 찍지 않고 필름으로 찍는 이유다.

수묵의 자연스런 번짐과 대비.

수묵화에서는 덧칠 없이 빈 공간을 남겨둠으로 해서 완성도 있는 그림 구성을 얻는다.

회화에서 말하는 채우는 구성이 아니라 비우는 구성법이다.

영화의 화면 구성에서도 중요한 문제가 채움과 비움이다.

시네마스코프 2.35:1 화면비나 정사각형에 가까운 1.43:1 화면비나 화면을 채우는 것 못지않게 비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저 미술적 장치나 조명으로 채울 수 없어 비워두는 차원이 아니다.

서양화에서 쓰이는 용어로는 ‘조형적 구성상의 여백’이고 동양화에서는 ‘생략으로 표현된 여백’이다.


- 영화 도입부는 물론이고 여러 장면에서 실감나는 영상을 얻음으로써 Eye-MAX 카메라로 찍은 효과를 톡톡히 본 것 같다.

“전투 현장을 실감나게 그리기 위해서 Eye-MAX 카메라를 사용했을 거라고 속단하기 십상이지만. 사실 영화 자체는 전투의 아비규환을 그리는 데엔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대신 그 이후 영웅이 아닌 오히려 죄인이 된 민초들과 복수행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겪는 인물의 얼굴을 큼직큼직 또렷이 볼 수 있게 하고 싶었습니다. 때마다 미세하게 변하는 표정들을 매우 섬세하게 표현해준 송라원 배우, 김영찬 배우 그리고 크든 작든 배역마다 열연을 펼쳐준 우리 배우들. 이 자리를 빌어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 전작의 <Remo : The Destroyer>에서 액션은 동물의 교미행위라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번 영화에서는 액션은 무용이다를 더욱 강조하는 인상을 받았다.

“한국의 전통무술 가운데 태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또 일부 사찰에서 건강체조로 수련하는 무술도 있죠. 그것들에는 공통적으로 어떤 박자, 리듬, 춤사위가 들어있습니다. 무술이 꼭 전투술에만 쓰인 것이 아니라 춤으로도 존재했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무술에 있어서 낭만적인 판타지를 덜어내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요. 폭력과 유희가 남는 것 같습니다.”

- Eye-MAX 영화는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비용 부담 때문에 디렉터 류 외에는 쉽게 도전하지 못할 분야가 아닐까?

“Eye-MAX는 디지털 시대에 맞추어 DMR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Eye-MAX는 곧 자신의 장기인 필름 영사기를 대체하게 될 것 같습니다. Eye-MAX 필름이 사라지면 극장주는 2톤 무게의 영사기를 유지 보수하는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배급사는 비싼 Eye-MAX 필름 프린트 비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 대신 우월한 화질을 잃지 않을까?

“시간은 걸리겠지만 그 또한 극복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Eye-MAX 영화들은 주로 계곡, 창공, 설원 등의 대자연과 거대한 동물, 질주하는 자동차 등을 통해 극단의 높이감, 부피감, 속도감 등을 전달했습니다. 실제 감각을 상실하면서 누리게 되는 아슬아슬함, 바로 관객의 체험 매혹을 충족시키는 것이 Eye-MAX 영화의 대표적인 특징이었습니다. 이제 멀티플렉스에 Eye-MAX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그런 경험은 좀 더 일반적인 것이 될 전망입니다. 자연다큐멘터리가 주는 체험과는 다르겠지만, 상업영화들이 Eye-MAX 버전으로 상영될 때 관객은 한편의 극영화를 이루는 내러티브 요소 외에도 그 이미지들 자체의 ‘움직임’에서 어떤 자극을 받게 될 것입니다. 거대한 스펙터클 재현을 기본으로 하는 영화들일 경우 그 효과는 배가될 것이고, 3D 애니메이션은 더욱더 실제처럼 보이고자 하는 목적을 달성할 것입니다.”


판이 벌어진 김에 류지호는 Eye-MAX 홍보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35mm의 거의 10배, 일반 극장 70mm의 3배입니다. 일반적인 70mm 포맷하고는 필름 자체 크기에서 3배 차이가 납니다. 화질도 3배 차이가 나고, 필름 속도도 3배가 빠르죠. 1초에 24프레임이 지나가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만. 일반 70mm는 사운드트랙이 깔려 있지만, Eye-MAX는 사운드가 따로 6채널로 들어갑니다. 사운드트랙을 넣으면 그만큼 필름 폭이 좁아지니까. 스크린 사이즈는 세로 18m, 가로 25m가 기본입니다. 일부 국가에 만들어진 돔 형식의 전용관에는 더 큰 데도 있습니다. 아마 시드니에 있는 게 제일 클 텐데, 세로 25m에 가로 32m짜리로 기억합니다. 영사도 수평 방식인데, 일반 영화처럼 상하로 릴이 감기는 대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릴이 감기면서 영사됩니다. 아예 Eye-MAX 전용 카메라가 따로 있고, 촬영 단계부터 수평으로 영상이 담깁니다. 필름 포맷과 영사기 구조문제로 그렇게 상영합니다. 그리고....”


류지호가 열정적으로 Eye-MAX를 설명하려고 하자, 회견을 진행하고 있는 관계자가 재빨리 기자에게 발언권을 주었다.

기자회견이 2시간을 훌쩍 넘길 것 같아 서둘러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독일기자가 이서영에게 질문을 던졌다.


- 이전부터 류지호 감독을 알고 있었나?

“할리우드에서 잘나가는 한국인 그런 이미지였어요. 실험정신과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영화에 담는 감독 중 한 명이라고 알고 있는 정도? 지금처럼 엄청난 톱클래스 감독이라고는 생각 못했습니다. 그런데 전화 통화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이 감독이 나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나의 연기스타일이나 내가 와서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고, 나에게 어떤 장점이 있기 때문에 꼭 함께 하고 싶다 그런 이야기를 진솔하게 해서 영화에 출연할 결심을 했죠. 그리고 우리는 꽤나 잘 통한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어요.”

- 잘 통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인가?

“영화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영화가 종합예술이라는 측면으로 봤을 때 류지호 감독은 영화에 참여하는 예술가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그들의 창작력을 어떻게 뽑아내야 하는지 매우 잘 알고 있어서..... 배우로서 감독과 대화하는 것이 즐거웠지요.”

- 겉으로는 억척스럽지만, 매우 수동적인 여성상을 연기했다.

“연기를 하면서 숨 막혔어요. 현대적인 여성으로 내 자신이 쿨하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납득이 되질 않았어요. 감독님은 과거의 여성 모습의 일면이 아니라 현재의 모습이며 어쩌면 미래의 여성의 모습일 수도 있다고 말해줬어요. 영화에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녀는 차돌이라는 후대를 키우기 위해 어떤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이겨냈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걸 내면에 담아내려 노력했어요.”

- 그렇다고 해도 당신이 연기한 악당 두목의 부인은 스테레오타입이라는 생각은 떨칠 수 없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여성이 있다고 하지요. 그것은 어머니와 아내와 딸이랍니다. 근데 딸은 약하다는군요. 하지만 아내는 강합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더욱 강하답니다. 제 어머니도 한국에서 제법 유명한 배우셨어요. 저는 어머니에게서 포기하지 않는 근성과 끈기, 그리고 정직과 신뢰는 물론이요, 희생정신과 성실성에 더하여 사랑을 배웠어요. 지금의 저를 만든 것은 어머니가 몸소 실천하신 그 가치 때문이었어요. 아마 대길의 처 역시 내 어머니처럼 겉으로는 연약하지만 내면은 차돌처럼 단단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그래서 감독님은 나를 선택한 것 같아요. 내 외모는 한국에서도 튀는 이미지니까요."

- 감독의 생각을 듣고 싶다.


의자 등받이에 기대고 있던 류지호가 마이크 앞으로 다가섰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라는 말로 대신하겠습니다.”


이어 질문이 김영찬에게 돌아갔다.


- 놀라울만한 메소드 연기를 펼쳤는데.....

“감독님의 요구였습니다. ET 같은 몸매를 만들어 오라고 하더군요.”


하하.

객석에서 폭소가 터졌다.


“우린 모두 누군가에게 빚을 지고 있고, 잘못으로부터 달아나거나 숨으려고 합니다. 대길은 인간이 가진 비겁함을 표현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당신은 유럽 영화팬들에서 좀비를 연기한 배우로 유명하다.

“내겐 감사한 일이었죠. 감독님은 한물 간 직업배우로 남을 뻔한 나를 다시 예술가로의 초심을 찾을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 영화를 촬영하는 것에 어려움은 없었나?

“나는 Eye-MAX 영화라는 게 뭔지 전혀 몰랐습니다. 감독님은 내게 화질이 매우 뛰어나서 대형 화면에 얼굴이 클로즈업으로 보인다면 땀구멍까지 보일 수 있다고 겁을 줬습니다. 그래서 몸을 만드는 것과 함께 실제 그 당시 일반인의 거친 피부와 수염 한 올 한 올이 살아있게 만들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해야만 했습니다.”


실제 <복수의 꽃>에서 세밀한 묘사를 연상시키는 거친 피부 표현과 수염 한 올 한 올이 살아있는 분장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역사적 사실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 착시를 경험한다.


-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류지호 감독은 배우들을 긴장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직접 경험했던 대표적인 사례가 있을까?

“진짜 좋은 감독은 한 마디 한 마디가 배우들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그것이 연기적인 부분이나 정신적인 부분에 영향을 끼치는데, 그렇다고 해서 무섭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감독님은 항상 긴장감을 유지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배우들과 친하게 지내다가도 마음을 놓지 못하도록 하죠. 왜냐하면 집중하지 않거나 감독이 원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거나 자기 멋대로 할 때 혹은 따르려는 의도가 없을 때는 화를 내기도 하고 강력하게 이야기합니다. 때문에 배우들이 항상 감독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본인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준비를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게 감독의 리더십 중에서 가장 중요한데 그 능력을 우리 감독님이 가지고 있습니다. 배우들을 집중시키고, 헌신을 이끌어내서 감독이 원하는 것 이상으로 최선을 다하게 만드는 능력 그것이 류지호 감독에게 있는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공식석상에 류지호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서 그런지, 기자들이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예정시간을 넘겼음에도 기자들의 질문공세는 좀처럼 식을 줄 몰랐다.

그만큼 이번 영화제에 폭발력 있는 화제성 영화가 부족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회견 준비 전의 당당하고 자신감에 차 있던 송라원은 막상 기자회견에 들어가자 엄청 긴장했다.

남몰래 손까지 떨었다.


‘라원이한테... 인터뷰 울렁증이 있었나?’


주인공의 대사가 거의 없는 까닭에 연기하는 것에 힘든 점은 없었는지, 그녀의 복수심은 무엇으로부터 기인하는지, 지금까지 특별한 커리어가 없는데 류지호 같은 세계적인 감독과 작업함에 어려움은 없었는지, 연기 준비과정 등 다양하게 쏟아져 나왔다.

송라원은 자신이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는지 인식도 못하고 열심히 대답했다.

보다 못한 류지호가 인터뷰를 도와줬다.


“선과 악의 이분법적 자세로 인물을 다루지 않도록 힘썼고, 시대에 따라 달라 보일지언정 결국 역사를 관통해 변함없이 존재하는 젊은이들의 순수하면서 단순명료한 행동을 담아내고 싶었다고 말하는 겁니다.”


송라원이 슬쩍 류지호를 돌아봤다.


“아, 네. 감독님이 정리를 잘 해주셨어요. 연화라는 인물의 내면이 말로는 다 설명하기 복잡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백송이 배우에게 감회를 묻는 질문이 나왔다.


“나는 평생 연극무대밖에 몰랐고,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그럴 겁니다. 그런데 가끔 류지호 감독이 불러주면 맨발로 뛰어갈 것 같아요. 우리 감독님은 지적이고 예술적이며 사람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에요. 물론 영화를 찍을 때는 참 사람을 못살게 굴지만, 그 때를 제외하고는 친절하고 미소를 잃지 않는 감독입니다.”


류지호가 마이크 앞으로 몸을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저는 몇 년간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서 당분간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자꾸 저를 일터로 내몰지 말아주세요. 선생님~”


하하하.


- 당분간 영화를 하지 않고 기업 경영에 집중할 생각인가?

“경영에 참여 하진 않습니다. 지금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아시아와 미국을 오가며 신인감독들을 발굴하고 그들이 영화를 찍을 수 있도록 도울 생각입니다.”

- 프로듀서로 복귀하는 건가?

“복귀가 아닙니다. 좋은 시나리오와 감독이 보이면 투자를 주저하지 않았고, 지원해 왔습니다. 이미 개발 중인 프로젝트도 여러 개가 있고 말입니다.”

- <복수의 꽃>을 기획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어떠한 시대에서 누구와 같이 시대를 이겨 내며 이 땅에 남게 되었는지 그 과정이 영화로 담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기획하게 됐습니다. 고증을 기반으로 했지만 결국 허구 세계이기에 보다 유려하게 펼치고자 노력했습니다.”

- 마지막의 탈놀이의 의미는 뭘 말하려고 한 것인가?

“과거 우리 한국의 지배층 일부는 피지배층이 자신들의 치부와 모순됨을 조롱하고 비판할 수 있는 놀이판이 열리는 걸 용인했습니다. 그들 입장에서는 민중의 숨통을 약간 열어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면으로 보면 민중은 그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모순과 정의롭지 못한 현실은 바뀌지 않았고, 결국에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죽창과 낫을 들어야 했죠. 현대인의 관점으로 보면 폭력은 야만적입니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도 과거와 같이 피의 복수가 일상처럼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대의가 정의로운 것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레미제라블의 빅토르 위고 말을 인용하자면 정의는 완벽할 때만 옳은 것입니다. 큰 힘을 가진 사람이나 스스로 약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피의 복수가 과연 정의로운 것인지 되돌아봐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도 타인의 삶을 강제하거나 규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정의의 껍질을 쓰고 있다고 해도 말입니다.”

- 500만 달러로 제작했다고 들었다. 그 이상을 쓸 수도 있지 않았을까? 혹시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겠느냐는 불안감이 돈을 아끼게 만들지는 않았나?

“돈이 많이 드는 큰 그림을 요구하는 배경보다는 인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시나리오 단계부터 고민이 참 많았습니다. 아직은 이 예산이 한국영화가 쉽게 감당하기 힘든 건 맞습니다. 연화와 대길의 가족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벌이는 드라마와 연기력에 초점을 맞춰 관객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건드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 외에는 일종의 포장지 혹은 치장 같은 겁니다.”


그때 회견을 진행하는 사회가 끼어들었다.


“오늘은 이 정도에서 마칠까 합니다.”


우우.

기자들의 야유가 터져 나왔다.


“이미 예정된 시간을 너무 많이 넘겼습니다.”

1시 30분으로 예정된 공식기자회견이었다.

이미 두 시간을 훌쩍 넘겼다.

<복수의 꽃> 말고도 기자들은 취재해야 할 대상이 많았지만, 이대로 마무리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일부 기자들의 불만제기가 있었지만, 기자회견은 특별한 잡음 없이 마무리됐다.


작가의말

빡센 연참이었습니다.

에피소드가 많이 긴 편이지만, 즐겁게 읽으셨기를 기대해 봅니다.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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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5 베를린영화제. (2) +6 23.04.18 3,024 108 30쪽
474 베를린영화제. (1) +6 23.04.17 3,320 124 27쪽
473 한국영화에 애정이 있구나.... (2) +11 23.04.15 3,388 117 27쪽
472 한국영화에 애정이 있구나.... (1) +2 23.04.14 3,271 126 26쪽
471 한 판 크게 벌여봐야겠어요. (4) +8 23.04.13 3,312 123 25쪽
470 한 판 크게 벌여봐야겠어요. (3) +4 23.04.12 3,312 126 23쪽
469 한 판 크게 벌여봐야겠어요. (2) +4 23.04.11 3,334 120 26쪽
468 한 판 크게 벌여봐야겠어요. (1) +7 23.04.10 3,388 123 25쪽
467 민중의 적. (10) +3 23.04.08 3,260 120 23쪽
466 민중의 적. (9) +4 23.04.07 3,214 116 25쪽
465 민중의 적. (8) +6 23.04.06 3,130 117 23쪽
464 민중의 적. (7) +3 23.04.05 3,125 114 23쪽
463 민중의 적. (6) +7 23.04.04 3,208 120 24쪽
462 민중의 적. (5) +2 23.04.03 3,236 115 22쪽
461 민중의 적. (4) +3 23.04.01 3,266 117 22쪽
460 민중의 적. (3) +3 23.03.31 3,404 116 23쪽
459 민중의 적. (2) +5 23.03.30 3,458 115 23쪽
458 민중의 적. (1) +9 23.03.29 3,509 116 24쪽
457 무역센터가 무너졌습니다! (3) +4 23.03.28 3,409 119 22쪽
456 무역센터가 무너졌습니다! (2) +5 23.03.27 3,307 118 21쪽
455 무역센터가 무너졌습니다! (1) +5 23.03.25 3,450 113 21쪽
454 쉽게 될 리가 없겠지..... +8 23.03.24 3,317 112 24쪽
453 영화가 영원히 머무는 곳. (2) +6 23.03.23 3,315 108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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