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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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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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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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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10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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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한 판 크게 벌여봐야겠어요.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한국영화에서 감독이 교체된 것이 <엔젤>이 처음은 아니다.

다만 일신상의 이유가 아님에도 촬영 중간에 회사로부터 계약파기를 당한 감독은 처음이나 마찬가지다.

이때다 싶은 굶주린 하이에나들이 이 사안에 숟가락을 얹기 시작했다.

갑의 횡포니, 그럴 줄 알았다느니.

비난이 들끓었다.

그런데 <민중의 적> 현장 공개에서 류지호가 한 인터뷰 기사가 나가고 충무로 분위기가 백팔십도 달라졌다.

때마침 의장 비서실 언론대응팀에서 적극적으로 언론플레이를 시작하기도 했고.

류지호가 던진 돌이 제작자협회와 감독협회까지 튀었다.

두 단체 사이에서 신경전도 벌어졌다.

한편에서는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한국영화 현장의 문제점과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젊은 감독들이 나섰다. 모두 모여서 원칙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거다. 현장에서 오늘 몇 시간 일하는지, 언제 끝나는지, 다른 일은 언제 계약할 수 있는지 등 여러 요소를 알 수 있게 하자는 거다. 단순히 감독의 권익을 되찾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 감독은 물론이고, 스태프, 제작자, 투자배급사 모두 지금의 영화산업을 되돌아보자는 거다. 모두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거다. 시나리오대로 콘티대로 찍지 않아서 감독과 제작사가 헤어질 수 있다. 제작자가 감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해 서로 갈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헤어지기로 했다면 서로의 권리와 자존감도 함께 지킬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계약은 쌍방이 하는 것이고, 계약 해지도 쌍방이 하는 거다. 그래서 젊은 감독들의 모임은 제작가협회뿐만 아니라 투자배급사, 영화협회 각 분과들을 모두 만날 예정이다. 만남은 거창한 자리가 아닌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라고 거듭 강조했다.]

- 씨네마21. 김수지 기자.


감독 한 명 계약파기 한 것이 뭐가 대수로울까마는.

그 일을 실행한 이가 류지호라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큰 힘을 가진 자가 성을 내자 업계 전체가 ‘아 뜨거워라‘ 들썩였다.

지금까지 한국영화계는 좋은 게 좋은 거라는 풍조가 있었다.

앞으로는 그런 자세로는 충무로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실제 그런 신호들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고.

특히 한국영화 산업을 선도하고 있는 WaW 엔터테인먼트는 일명 엔젤 감독 해고 사태를 시작으로 투자·제작 영화에 대한 관리를 강화했다.

WaW 엔터테인먼트가 연간 한국영화 부문에 투자·제작·배급하는 편수가 13편에 달했다.

꾸준히 편수가 늘어나고 있다.

WaW 엔터테인먼트는 최종적으로 외화 20편, 한국영화 17편에 관여하는 것이 목표다.

만약 WaW 엔터테인먼트가 한국영화 투자·제작·배급에서 손을 뗀다면.

돈이 되는 외화 수입·배급에만 집중한다면.

스태프 1,000여 명의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거나 없어질 수 있다.

문론 단순 계산이다.

게다가 WaW 엔터테인먼트가 관여하는 영화는 스태프 임금수준이 경쟁 영화사들보다 높다.

박건호 대표는 협상 파트너가 만들어지면 적극적으로 처우개선에 대해 논의할 준비가 되었다고 줄기차게 말해왔다.

WaW 엔터테인먼트는 대다수 영화인들에게 좋은 기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반면에 기존 경쟁사들과 새롭게 진입하는 업체에게는 ‘공공의 적‘이며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다.

거꾸러뜨려야 할 적이기도 하고.

WaW 엔터테인먼트는 영화산업에 있어서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그런 기업을 소유한 이가 류지호다.

류지호의 기침소리에도 영화계가 술렁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류 감독은 언제 미국으로 간대?”

“그러게. 그만 좀 한국에서 뭉갰으면 좋겠다, 증말!”

“빨리 영화 찍고 할리우드로 꺼져버렸으면 좋겠어....”

“내 말이!”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당연히 류지호를 미워하는 이들도 많다.

그들 입장에서는 얼른 류지호가 미국으로 돌아가 본업(?)에 충실하길 바랄 수밖에.

그들에게 좋지 않은 소식이지만, 류지호가 충무로에 던질 폭탄은 아직 여러 발이나 남아있다.


❉ ❉ ❉


크리스마스 시즌과 겨울 방학 성수기를 앞두고 한국의 극장가에 대사건 하나가 터졌다.

WaW 엔터테인먼트가 수입·배급한 영화 <해리포터>이 무려 491개 스크린에서 개봉한 것이다.

전국 스크린 숫자가 1,071개인 것을 감안했을 때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다들 미쳤다고 했다.

각 극장에 배포한 프린트 비용만 11억 원이 소요됐다.

전체 마케팅 비용은 무려 21억이었다.

영화 수입가는 580만 달러(70억)였다.

대략적인인 손익분기점은 전국 300만 안팎.

업계, 영화과 교수들, 시민단체, 언론 모두 난리가 났다.


“도대체 무슨 영화야!“

“돈질도 적당히 해야 하는 것 아니야!“

“다른 영화사들은 다 말려 죽일 작정인가!”


시민단체와 언론에서 거대 배급사의 횡포라고 연일 비판이 나섰다.

이런 날이 올 줄 예상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저 대기업의 독과점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걱정만 있었을 뿐.

무차별 배급 공세가 실제로 벌어지자, 호떡집에 불 난 것처럼 정신을 못 차렸다.

누구나 할 수 있을 법한 배급처럼 보인다.

이 당시에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할 수 있었다면 미국 직배영화사들이 했어도 벌써 했을 테니까.

12월에 개봉 했거나 예정된 영화는 모두 16편이다.

11월에 이미 개봉한 30여 편의 영화중에서 12월까지 극장에 걸려 있는 영화까지 포함해 20편이 상영 중이었다.

<해리포터>, <몬스터 주식회사>, <두사부일체>, <바닐라 스카이>, <화산고> 등이 전체 스크린에서 87%를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17여 편은 고작 13% 스크린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특히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단 한편이 50%의 육박하는 스크린을 독차지했다.

그저 신기한 일이라거나 배급사의 힘을 보여주는 일에 그치지 않았다.

일시적인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기에 더욱 공포로 다가왔다.

처음이 힘들지 다음부터는 쉬운 법이니까.

게다가 내년 설 연휴 개봉이 예정된 영화 역시 초대형 영화다.

<반지의 제왕>이 그 주인공이다.

<해리포터>와 비슷한 숫자의 스크린을 이미 확보해 두었다.

전 세계 흥행 상황과 정반대로 흘러간다면 모를까.

때에 따라서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단 두 영화만 설 연휴 극장가에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참고로 지난 11월 4일 영국 런던에서 최초 개봉한 <해리포터>는 북미에서만 3,672개 스크린에서 첫 날 3,300만 달러의 박스오피스를 거둬 <스타워즈 에피소드Ⅰ>이 가지고 있던 기존 당일 기록을 깼다.

무서운 기세로 개봉 보름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그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해리포터>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최종적으로 27주간 북미에서 상영되어, 전 세계 박스오피스 9.7억 달러라는 엄청난 흥행기록을 쓰게 된다.

또 미국에서 12월 초에 개봉한 <반지의 제왕> 역시 전 세계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반지의 제왕>은 <해리포터>보다 긴 35주간 상영한 후 극장에서 내려오게 되는데, 전 세계 박스오피스 8.7억 달러를 벌어들이게 된다.

내년 7월 정산이 끝나야 알 수 있는 최종 결과다.


[박스오피스에서 주춤(그럼에도 전체 3위를 유지)했던 트라이-스텔라가 3년 만에 2001년 전체 박스오피스 1위를 되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할리우드의 유력 연예전문지 버라이어티의 최근 기사 타이틀이었다.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는 박스오피스 10위 안에 <한니발>을 올려놓고 있다.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두 작품의 현재 추세대로라면 <쥬라기공원Ⅲ>와 <미아라Ⅱ>의 유니벌스 스튜디오를 따돌리고, 2001년 영화 매출 1위 스튜디오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G.O.M Cinemas 부사장 겸 총괄매니저 오동석이 <해리포터>의 첫 주말 박스오피스 수익이 정리된 보고서를 읽어보다 다소 황당한 듯 중얼거렸다.


“이게 진짜 되네....요?”


극장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실제 배급을 했던 이들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단 한 명.... 박건호 대표만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

3일 간 전국 40만 명의 관객수를 기록했다.

서울 주요 개봉관 전회 매진은 기본이었다.

한국 개봉영화 신기록을 썼다.

영화를 본 관객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관객 리뷰 역시 좋았다.


“실제로 된다는 걸 확인하고 있잖아요.“


류지호의 대수롭지 않다는 듯 툭 던진 말을 외화배급팀장이 받았다.


“이건 단순히 돈이 많다고 배급 파워가 있다고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감독님!”

“그렇죠.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으니까.....”

“우리가 한 일은 직배사들... 아니 무비서비스와 BS에도 쉽게 하지 못할 겁니다.”


류지호는 대꾸 대신에 해외영화 배급팀장을 멀뚱히 쳐다봤다.


“왜 그런 눈으로 보십니까?”

“너무 순진한 것 같아서....”


외화 배급팀장은 순진하다는 말은 처음 들어 봤다.

왠지 기분이 안 좋았다.

마치 멍청하다는 말을 돌려서 한 것 같았기에.


“영화판에 들어온 대기업들이 어떤 기업이죠?”

“.....네?”

“우리를 열심히 쫒아오는 BS는 범 오성가문 일원이고, 또 최근 공격적으로 극장을 확장하고 영화판에 돈을 넣고 있는 광성은요?”


오성그룹에서 독립한 창업주 직계 자손의 대기업.

일본에 적을 두고 식음료 시장부터 다양한 분야의 내수시장을 꽉 잡고 있는 대기업.

때에 따라서는 담합이나 밀약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겉으로 서로 경쟁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막강한 도전자가 나타나면 힘을 합쳐서 싹을 잘라버려 왔어요. 다른 재벌 혹은 정치권과 결탁 하지 않는 이상 버티기 힘들지요.”


다들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가 공정하지도 정의롭지 않다는 걸 모르지 않다.

하나의 재벌 대기업이 전사적으로 달려들어도 힘든 판에 재벌 둘이 힘을 모아 가온의 영화사업과 출혈경쟁을 벌인다면 쉽지 않은 싸움이 될 터.


“그들은 위험한 경쟁자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압박할겁니다.”

“.....!”

“원하는 것을 얻는 방식도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라요. 무엇보다 그들은 재벌의 권력을 숭상하고 있어서 시간이 많이 걸리고 많은 노력이 필요한 정상적인 방법보다는 효과가 빠른 비정상적인 방법을 선호하지요.”


외화 수입배급팀원들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가온그룹은 오너가 대단한 인물이지 그룹 자체가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지난 밀레니엄 힐턴 호텔 펜트하우스 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룹 자체만 놓고 보면 한국의 주요 재벌과 비벼볼 정도는 아직 아니었다.

가만히 있던 박건호 대표가 입을 열었다.


“올해 WaW가 수입영화, 한국영화 전 부분에 걸쳐 점유율에서 5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됩니다.”


<퇴마기록Ⅱ>, <친구>, <엽기적인 그녀> 단 세편만으로 전국 2,000만 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동원했다.

<빌리 엘리어트>, <분노의 질주>, <미스 에이전트>, <에너미 앳더 게이트>, <브릿지스 존스 일기>, <무서운 영화Ⅱ> 등은 각각 전국 200만 이상의 관객이 들었다.

얼마 전 개봉한 <해리포터>는 500만 이상을 기대하고 있다.

작년 한 해 한국영화의 전체 관람객 수는 9,300만 명이었다.

그 가운데 WaW 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한 영화들의 총 관객수가 5,000만 명이 넘었으며, <해리포터> 관객수에 따라 그 숫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언론에서 떠드는 WaW가 다 해먹는다는 말이 그 다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전체 50%에 육박하는 스크린에서 <해리포터>가 상영되고 있다.

간단하게 볼 문제가 절대 아니다.

이전 삶에서 BS와 광성은 더 한 짓도 했다지만.


“잘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한국영화의 좋은 동반자에서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바뀌게 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한국영화 시장에서 완전 독점적인 시장 지배력에 대해 빠져나갈 구멍이 있었습니다. 매년 점유율 통계상으로 우린 34%를 넘은 적이 없었지요.”


오동석이 즉각 반대의견을 냈다.


“올해 우리가 점유율이 높은 건 한국영화들의 선전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올해 WaW가 배급한 외화 가운데 <타이타닉> 급의 흥행태풍은 없었습니다.”

“무비서비스나 BS 혹은 광성에서 <타이타닉>, <터미네이터> 같은 영화를 GOM에 걸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흥행이 예견되는 작품이라면 당연히 라인업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역시 그들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영화가 한국영화일수도 외화일수도 있겠지요. 누군가 상영관을 독식한다는 것은 우리가 공을 들여 만든 한국영화의 상영기회를 빼앗기게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자승자박의 우를 범할 수도 있단 말이지요.”

“스크린쿼터가 있지 않습니까?”

“온갖 편법들이 난무할 겁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편법은 금방 생각해 낼 수 있어요. 또 그깟 벌금 내면 됩니다. 벌금보다 스크린쿼터 위반으로 얻는 이익이 크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지요. GOM이나 다른 극장체인이나 말입니다. 심할 경우 상영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버려질 영화가 많이 생겨날 수도 있지요.”


짝!


류지호가 손뼉을 쳐서 주의 환기시켰다.

모두의 시선이 류지호에게 모여들었다.


“남들이 뭐라고 하던 신경 쓰지 맙시다.”

“.....”

“우린 우리가 할 일을 하면 됩니다. 우리는 몇 년 전부터 이 같은 배급 시스템에 대해 연구해오고 있고, 실제 적용되었을 때 어떤 장점과 단점이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어요. 우리는 정확한 데이터를 제시해 업계 사람들과 관객을 설득할 필요가 있습니다. 거대한 자본이 시장을 제 입맛대로 좌지우지 하면 어떤 결과가 벌어지는지, 또 한국영화 시장 규모에 맞는 배급 시스템은 무엇인지. 그걸 연구해서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말로만 슬라이딩 배급 방식이 좋니, 독과점은 좋지 못하니, 백날 떠들어봐야 씨알도 먹히지 않습니다. 실증적인 데이터가 필요한 겁니다.”


오동석이 중얼거렸다.


“때에 따라서 업계의 기득권들이 담합을 할 수도 있겠네. 아니면 암묵적으로 그런 룰이 만들어지거나....”

“오 부사장.”

“예. 감독님!”

“WaW는 한국영화의 구세주가 아닙니다. 엄연히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입니다. 그래도 상도의는 지켜야겠지요.”


박건호 대표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오너가 상도의를 지키고 싶다는데, 그러지 말자고 할 분위기도 아니고.

그래서 잠자코 있는 이들이 꽤 됐다.

류지호가 커뮤니케이션팀 고현준을 향해 입을 열었다.


“MBS 100분 토론에 스크린 독과점과 관련된 토론을 제의해 보세요.”

“아예 이참에 이슈화 시키실 생각이십니까?”

“아주 산이 다 타버릴 정도로 불을 확 질러볼 생각입니다.”

“백원일보의 악의적인 여론 몰이 또 이승주 감독 계약파기 건을 겨우 봉합했는데.... 여론에 질타를 받을 수 있는 일을 벌이시는 것은.....”


류지호는 고현준 팀장의 우려를 무시했다.


“현재 진행자가 손 앵커던가요?”

“시사평론가 류재국씨입니다.”

“KBC 심야토론은요?”

“기자출신 시사평론가 길용식씨입니다.”

“<반지의 제왕> 개봉하면 지금보다 더 한 분위기가 만들어질 테니까. 내가 베를린영화제 다녀오기 전에 출연할 수 있도록 만들어 보세요.”


모두가 깜짝 놀랐다.


“감독님께서 직접 출연하실 생각이십니까?”

“결자해지죠. 판 벌어진 김에 한 판 크게 벌려봐야겠어요. 그러다보면 법 만드는 사람들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겠어요?”


류지호가 토론프로그램에 나가게 되면 큰 화제가 될 터.

한국의 메이저 스튜디오라고 할 수 있는 WaW, 무비서비스, BS 모두 바보가 아니다.

영화산업에서 수직계열화를 완성하게 되면 시장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는 걸 모를 리가 없다.

충무로에서 메이저 체제가 공고해지기 전에 시장질서와 관련해 담론을 형성할 필요가 있었다.

멀티플렉스가 일반화되는 시대에 있어서 돈 되는 영화가 많은 스크린을 차지하고 오래 상영하는 것을 자유시장 경제논리로 설득하려고 해선 안 된다.

자본주의 가치가 지켜지기 위해서는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어야 한다.

상영기회 자체를 박탈하는 것은 자유시장경쟁논리가 아니라 횡포에 지나지 않는다.


“전략기획실에게 <민중의 적> 크랭크업할 때까지 배급 관련 자료들 정리해서 내게 넘기라고 하세요. 공부는 하고 나가야 망신 안 당하겠죠.”


오동석이 남몰래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평소 TV 출연과 언론노출을 꺼리는 류지호다.

갑자기 스스로 나서겠다고 하니 걱정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망신당할 것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생방송 중에 사고를 칠 것 같아 걱정이다.

가진 것도 많은 인간이 가끔 잃을 것 없는 사람처럼 굴 때가 있었으니까.

오동석이 저도 모르게 속내를 입 밖으로 내뱉었다.


“시청률은 엄청 잘 나오겠네...”


모두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아참. 일부러 반대편 패널에 덜떨어진 인물을 섭외하지 않도록 신경 좀 쓰라고 하세요. 말빨도 있고 논리도 있고 똑똑한 패널을 섭외해야 보는 시청자들도 재미있을 테니까.”


‘그러다 망신이라도 당하시면 어쩌려고....’


고현준 팀장은 튀어나려는 말을 도로 삼켰다.

영화 홍보 때문에 온갖 매체를 다 섭렵해 본 류지호지만, 토론프로그램은 두 번의 삶을 통틀어 전혀 경험이 없었다.

다만 대학에서 지겹게 토론을 해봤고, 각종 국제적 행사의 토론 패널로 참석한 적도 많았다.

토론은 나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맞상대하는 토론자도 함께 수준이 높아야 좋은 토론이 나올 수가 있다.


❉ ❉ ❉


점심을 막 지난 시간에 세종문화회관 도로변 인도부터 계단을 올라 대강당 입구까지 레드 카펫이 깔렸다.

포토라인 안쪽에서 카메라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오후 4시경에는 무비스타들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하는 팬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오늘 이곳에서 대한민국 삼대 영화시상식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춘사영화예술상이 열릴 여정이다.

시간이 흘러 5시가 됐다.

마침내 한국영화 최고 스타들과 감독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텔미섬딩> 이후 칩거에 들어가 있던 한진국 배우의 레드카펫 이벤트였다.

그를 영화제 시상자로 섭외하기 위해 류지호가 직접 전화를 걸어 부탁했다.

후보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많은 톱스타들이 시상자로 무대에 설 예정이다.

심지어 시상자도 아니고 수상 후보에도 오르지 않았지만 춘사영화예술상 회원으로 선정된 영화인들이 거의 대부분 참석할 예정이다.

망한 그랜드벨 어워즈가 재기를 못하도록 또 조광영화제보다 더 화려한 시상식이 될 수 있도록 류지호가 발 벗고 나선 덕분이다.


“와아!”


레드카펫 주변에 포진한 수많은 카메라에서 플래시가 터졌다.


찰칵찰칵!


무비스타들이 들어설 때마다 구경 온 팬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최근 열린 시상식 중에서 가장 많은 톱스타와 영화인들이 참석한 영화시상식이다.

주관 방송사인 KBC 2TV의 프로듀서는 레드카펫 행사부터 입이 귀에 걸렸다.

많은 톱스타들이 참석을 예고한 터라 광고가 완판이 됐고, 시청률 역시 잘 나올 것이라 확신했다.

참고로 올해 그랜드벨 어워즈는 SBC, 조광영화제는 MBS 단독으로 생중계되었다.

시청률은 그저 그랬다.

춘사영화예술상 시상식이 세종문화회관에서 거행되는 것은 의미가 매우 깊었다.

지금까지 그랜드벨 어워즈의 무대였기 때문이다.

4월 2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던 제38회 그랜드벨 어워즈는 현재까지도 뒷말이 무성했다.

<JSA>과 함께 각축을 벌일 것으로 예상됐던 <친구>가 한 부문도 수상하지 못한 반면, 한일 합작 영화 <하루>가 감독상, 심사위원 특별상, 여우주연상 등을 휩쓸어 네티즌들과 영화인들로부터 공정성 시비가 제기됐다.

영화계의 신구 화합을 내걸고 공동개최를 했던 영화인회의와 영화인협회 측은 또 다시 심한 갈등을 겪었다.

급기야 영화인회의 심사위원단이 책임을 지고 전원 사퇴하는 파국까지 겪었다.

그리고 영화인회의가 그대로 춘사영화예술상으로 넘어왔다.

그랜드벨 어워즈의 막장 운영과 심사로 인해 조광영화제에서는 그나마 공정성 시비가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다.

다만 안티백원일보 운동과 함께 모 비평가의 수상 거부사태 홍역을 겪었다.

춘사영화예술상 조직위는 일 년 간 개봉한 한국영화 60여 편의 제작사 및 배급사에 출품을 요청하는 공문이 발송해 100% 출품 받아 영화계 각계각층에서 엄선한 심사위원의 심사를 거쳐 주요 부문의 후보를 발표했다.

영화제 회원으로 등록된 600여 명의 전현직 영화인들의 투표를 통해 수상작이 결정됐다.

일각에서 후보작에 대해 공정성 시비를 걸기도 했다.

영화시상식은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무조건 뒷말이 나오게 되어 있다.

그나마 이번 춘사영화예술상 후보작들은 납득이 가는 편이란 평가를 받았다.


“비록 역사와 전통은 짧을지 모르지만, 춘사영화예술상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영화를 사랑하는 국민들과 영화인들의 많은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리며, 대중문화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적극적인 소통과 참여를 요청 드립니다."


춘사영화예술상 조직위원장이 언론과 국민을 향해 한 말이었다.


"국내 영화상이 그들만의 축제라는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여 춘사영화예술상 조직위는 적극적인 소통과 참여를 위한 방안을 모색 중이며 어떠한 비판과 의견도 최대한 수용하여 새로운 시대에 걸 맞는 새로운 국민 축제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춘사영화예술상의 준비위원회는 일부 영화인들이 좌지우지 하던 기존 영화제의 관행에서 탈피하고자 외부에서 행정관료와 명망가를 다수 영입했다.

후보작 심사위원에 현역 영화인부터 존경받는 원로들까지 참여시켜 소수 세력의 취향과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도록 구성했다.

또한 아카데미 시상을 벤치마킹해 춘사영화예술상 회원을 선정해 영화인 다수의 투표로 수상작이 결정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영화제 시상은 공정성 시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사람마다 보는 기준이 다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세계 3대 영화제와 아카데미 시상식 역시 매년 공정성 시비로 시끄럽다.

문제는 어느 정도 선을 지킬 것인가.

그 선이 어렵고 복잡하지만, 대다수가 납득할 기준이라는 것이 있어야 했다.


“아직까지는 분위기가 좋죠?”

“그러네요.”

“본 행사만 실수 없이 진행되면 좋겠습니다.”


춘사영화예술상 조직위원회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재정문제로 한 동안 개최되지 못했다.

역사가 짧고 초창기에는 다소 졸속으로 영화제가 운영되어서 권위도 없었다.

때문에 세종문화회관 좌석을 절반 이상 채울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했다.

생각보다 많은 영화인들이 참여했다.

시상식 성공을 위해 가온그룹이 아낌없이 돈을 풀기도 했고.

시상자와 수상자 모두를 더욱 멋지게 만들어줄 고급스러운 무대를 준비했다.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가수들의 축하무대를 마련했고, 시상식 사회는 KBC의 남녀 간판 아나운서를 섭외했다.

레드카펫 행사가 마무리될 즈음 세종문화예술회관이 꽉 들어찼다.

춘사영화예술상 주최를 맡은 한 축인 한국영화배급협회 이사들이 자리한 VIP석.

BS그룹의 이희경 부회장의 양 옆으로 광성 엔터테인먼트, 무비서비스, 고려 픽처스, 주브 엔터테인먼트 사장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주브 엔터테인먼트의 사장이 옆 자리에 앉은 무비서비스 사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과감하지요?”

“WaW의 배급을 말씀하시는가 보군요?”

“마치 포커 게임 같지 않습니까?”

“.....?”

“판돈을 걸 자신 없으면 끼지도 말라는.”

“그렇다고 영화 사업에서 철수할 것도 아니잖습니까?”

“미쳤습니까!”


단번에 발끈하는 주브 엔터테인먼트의 사장을 보며 무비서비스 사장이 실소를 지었다.

자신도 전문경영인이지만, 솔직히 영화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런 자신보다 더 영화를 모르는 사람이 바로 말을 건 주브 사장이다.

더는 상대하기 싫다는 듯 무비서비스 사장이 무대로 시선을 고정했다.

그러자 주브 엔터테인먼트 사장은 대화 상대를 이희경 부회장으로 바꿨다.


“와우를 이대로 두고 봐야 합니까?”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PS. 사비에르님 매번 후원 감사드립리다. 완결까지 열심히 연재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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