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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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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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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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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0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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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4쪽

민중의 적. (6)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강철중은 아시안 게임에서 은메달을 받아 경사로 특채된 권투 선수 출신 형사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승진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이 낮아지기만 한다.

원래 강철중 캐릭터의 히스토리가 그랬다.

실제 86 아시안게임 복싱 종목에서 한국선수들이 전 체급을 석권했다.

은메달리스트가 없었다.

따라서 이번 <민중의 적>에서는 유도 종목 은메달로 바꿨다.

교통계 순경으로 강등되는 것도 바꿨다.

온갖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파출소로 발령받는 것으로.

어쨌든 강철중이 속한 강력반으로 감찰이 들어온다.

부정을 저지르던 강력반장 대신 새로운 인물이 부임해온다.

평소 믿고 따르던 선배 형사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럼에도 강철중의 일상은 별반 바뀌지 않는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밤... 조규환이란 패륜아를 만나기 전까지는.

<민중의 적>의 빌런인 조규환은 부유한 가정환경에서 자라 유산을 노리고 부모를 살해한 박한상 또는 김성복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상류층 펀드매니저라는 직업은 <아메리칸 사이코>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표절까지는 아니지만.

암튼 조규환의 모티브가 된 패륜범죄 사건은 1994년 강남에서 실제 일어난 일이었다.

그 전까지 패륜, 존속 살인 사건이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 만큼 한국 사회에 충격과 공포를 안겨준 사건은 없었다.

패륜범죄하면 떠오르는 이름.

바로 박한상이다.

1993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박한상은 도박에 빠져 부모가 대준 유학비용을 죄다 날려 먹었다.

심지어 빚까지 졌다.

귀국한 후에 부모님께 유학 시절 노름한 것과 방탕하게 생활한 것에 대해 질타를 받게 된다.

부모님의 꾸중에 대한 원한과 100억 원 상당의 재산 상속에 눈이 멀어 결국 부모를 살해하고 집에 방화까지 한 희대의 패륜을 저질렀다.

속옷까지 다 벗어버린 알몸에 양손에 칼을 하나씩 쥐고 부모를 40군데나 찔러서 살해했다.

옷을 벗고 범행을 저지른 것은 살해 후 샤워로 혈흔을 지워버리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러나 칼에 난자당하면서도 어머니가 박한상의 종아리를 물어뜯어 그 자국이 검거의 빌미가 되었다.

게다가 살해 후 샤워를 마친 뒤 집에 불을 질러 증거를 인멸했고, 이 때문에 다른 방에서 잠자던 사촌동생까지 목숨을 잃었다.

<민중의 적>에서는 알몸 대신 판초우의로, 어머니에게 물어뜯긴 종아리 자국 대신 깨진 손톱으로 변경되었다.

류지호는 패륜범죄에 금융 분야 사건 하나를 더 추가했다.

조규환의 직업과 연관이 있다.

조규환은 외국계 투자회사에서 근무하는 펀드매니저다.

오리지널 시나리오에는 독일계 펀드를 운영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류지호가 미국계 사모펀드로 바꿨다.


DINE & DASH.

advisors. Korea.


조규환이 근무하는 사모펀드 회사의 상호명이다.

Dine and Dash를 우리말로 해석하면 ‘먹튀‘라고 할 수 있다.

저 상호표지판 중앙에 별 문양만 들어가면 한국인에게는 매우 낯이 익은 미국계 사모펀드가 된다.

바로 외환은행을 헐값에 인수해 투자금의 4배를 뽑아먹고, 제대로 된 세금을 한국에 납부하지 않고 미국으로 튀어버린 바로 그 사모펀드.

돈스타다.

세 개의 정권에 걸쳐 복잡하게 얽혀있는 금융부분의 행정 삽질과 지루하게 이어진 국제 소송전, 부실수사 의혹까지.

게이트라고 불리는 외환위기 시기 사건을 영화에서 암시할 예정이다.

오리지널 시나리오에서는 조규환이 부모님의 자금을 막연하게 바이오 기업에 투자했다는 설정이었다.

류지호는 외환은행 인수에 들어가는 국내 블랙 머니에 조규환의 부모 돈이 들어간 것으로 바꿨다.

정확하게 확인된 사항은 아니지만, 돈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자금에 한국계 자본이 들어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조세피난처인 버뮤다 페이퍼컴퍼니에서 입금된 돈스타 투자금 중에 한국인 자금이 포함되어 있다는 시사월간지 기사가 떠올라 시나리오에 반영했다.

뛰어난 펀드매니저인 조규환이 부모님의 돈으로 버뮤다를 통해 작업한 검은돈이 외환은행 먹튀 시나리오에 동원되었다는 설정이다.

우리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패륜범은 공공의 적이다.

인면수심의 박한상은 벌을 받아 마땅하다.

다국적 금융자본의 첨병으로 한국 사회·경제를 이끌어가는 엘리트 펀드 매니저를 통해 사회·경제적 공공의 적을 암시했다.

검은 머리 외국인이라고 불리는 금융계 한국인을 사이코패스(소시오패스)에 비유한 것.

사이코패스 스릴러 영화는 살인마를 어떤 사회계층, 어떤 직업으로 설정하는가에 따라 현 세태를 풍자하게 된다.

펀드매니저라는 설정은 황금만능주의, 천민자본주의를 상징한다.

개인의 영달을 위해 최소한의 양심까지도 저버리는 검은 머리 외국인, 그들을 통해 금융계의 소시오패스 성향을 꼬집었다.

<민중의 적>이 관객에게 먹히는 지점은 패륜범죄이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의 펀드매니저 사이코패스가 아니다.

공동체의 상식과 인륜을 무시한 범죄에 대해서는 즉각적인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것이 <민중의 적> 셀링 포인트다.

패륜범을 잡는 것에서 머물면 킬링타임용 장르영화 밖에 안 된다.

많이도 필요 없다.

단 한 장면.

기존의 바이오 벤처 투자에 관한 설정만 외환은행 인수로 살짝 바꿔치기 하는 걸로 충분하다.

만약 외환은행 사태와 관련 될 정부 당국자와 돈스타에 협조한 검은 머리 외국인들이 영화를 보면서 최소한 꺼림칙하거나 찝찝한 감정이라도 갖기를.... 바랐다.

영화 <Collapse>를 통해 끔찍할 수도 있는 비극을 어느 정도 막아내긴 했지만, <민중의 적> 한 편으로 외국계 사모펀드들의 한국 쇼핑을 막을 수도 없고 그에 협조하는 ‘검머외’들에게 경종을 울릴 수도 없을 것이다.

삼봉백화점 오너와 마찬가지로 이익을 위해서라면 소시오패스적인 행동을 스스럼없이 하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니까.

암튼 돈스타를 연상시키는 회사명 간판은 조규환의 사무실이 등장할 때마다 잠깐씩 스쳐지나간다.


[어서 오십시오.]


말쑥한 차림, 금발의 중년 백인 남자를 조규환이 맞이했다.

이들의 대화는 영어로 진행되었다.

중년 백인 남자는 일본에서 주로 활동하는 외국인 배우다.

씨네콰논의 이봉우 대표가 추천해서 캐스팅한 인물이다.


[바쁜가?]

[아닙니다.]


지부장이 매우 자연스럽게 조규환의 사무실 미니 BAR로 가서 술을 한잔 따른다.


[오늘은 축하할 일이 있어서.]


두 사람이 소파에 마주보고 앉는다.


[어젯밤 한국의 금융감독원 관계자로부터 매우 긍정적인 이야기를 들었어. 곧 공식발표가 나오지 않을까 해.]

[그렇습니까? 잘 됐군요.]

[수고했어! 미스터 조.]


지부장이 웃자 고개를 끄덕이며 조규환도 함께 웃었다.


[그래서 말인데, 우선 KEB 외부 유입금 통제하고, 미국 쪽에서부터 시작하도록 하지.]

[네. 알겠습니다.]

[참, 자네도 버뮤다 계좌에 투자금이 들어가 있다고 했지? 얼마나 되나?]

[20억 정돕니다.]

[역시 자네는 한국사람 답지 않게 감정을 쉽게 알 수가 없군. 20억이라... 좋군. 자네 몫으로 꽤나 많은 배당이 떨어지겠어.]

[배당보고 투자한 것이 아닙니다. 매각 시 최소 12배는 보고 있습니다.]

[하하하.]

[.....]

[어느 선진국도 지방 소규모 은행이 아닌 전국 규모의 은행을 사모펀드에게 주는 예는 없지. 은행업이 추구해야 할 공익과 사모펀드가 추구할 것이 자명한 사익의 극대화간의 충돌이 너무나 명확히 예견되기 때문에.]


미국인 지부장의 말처럼 그런 일이 한국에서는 세 차례나 반복되어 일어났다.

1999년 말 사모펀드 뉴브릿지스의 제일은행 인수, 2000년 사모펀드 캐너힐의 한미은행 인수에 이어 2003년 사모펀드 돈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한 것이다.


[기회는 소녀처럼 왔다가 토끼처럼 달아납니다.]

[펀딩은 도박이 아니야.]

[M&A는 카드게임보다 더 복잡한 수 싸움이 필요한 법이죠.]


조규환이 피식 웃으며 지부장에게 대꾸하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죄송합니다. 여보세요? .... 네? 네?]


조규환의 표정이 굳는다.

지부장이 의아한 시선을 던진다.

조규환은 어색하게 웃으며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젓는다.


[네? 무슨..... 어디 거셨죠?]

[규환아! 애비다.]


오리지널 시나리오에서 설정과 디테일만 수정했다.


“국내에서 금융범죄를 저지른 뒤 외국 국적을 이용해 처벌을 회피하는 한국계 외국인들을 경멸하는 의미에서 금융가에서 검은 머리 외국인이란 멸칭을 쓴다고 알고 있어요. 조규환이란 인물의 국적이 외국은 아닙니다만 해외 자본에 기생해서 국부를 유출하는데 앞 장 서고 있는 모습을 보이니 검은 머리 외국인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요?”


류지호가 이훈재 배우에게 한 말이다.

외국계 금융사에서 근무한다고 해서 모두 검은 머리 외국인은 아닐 것이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도 비난받을 일은 아니죠. 다만 외환위기 시기라는 특수한 경우에 국부 유출에 앞장섰던 이들은 비난 받아 마땅하지 않을까요?”

“일제강점기에 국부를 일본인에게 팔아넘긴 매국노들처럼?”

“친일부역자들과는 성격이 다르겠죠.”


어쨌든 외환위기 시기에 국내 은행의 사모펀드 매각 설정을 통해 <아메리칸 사이코>의 주인공을 참고했다는 의혹에서 빠져나갈 구멍이 되어 줄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검은 머리 외국인이란 멸칭을 듣는 이들은 여전히 여의도 금융가에 많았으니까.

영화 속 사모펀드 오피스와 조규환의 사무실은 가온투자파트너스 사무실과 대유증권 여의도 본사 사옥에서 나눠서 촬영했다.

그것도 창밖으로 여의도 증권가가 한눈에 보이는 중역 사무실에서 찍었다.


“류 감독하고 작업하면 섭외 안 되는 데가 없다니까.”


그룹 오너가 쓰겠다는데 안 된다고 할 간 큰 월급쟁이가 있을 리가 없다.

다른 영화였다면 대유증권이나 가온투자파트너스 사무실을 내주지 않았을 터.


“류 감독님은 청와대도 빌리는 거 아니에요?”

“되겠냐? 대신에 여주에 청와대하고 똑같이 생긴 세트를 짓겠지.”

“자기 영화 편하게 찍으려고 종합촬영소 만든 거라면서요?”

“그럴걸?”

“중동의 왕족도 아니고.....”


암튼 승승장구하는 조규환은 철저한 자본주의형 인간이다.

위기에 몰린 회사를 냉정하게 부도처리한다.

그 일로 사장이 자살한다.

그럼에도 양심의 가책 같은 건 없다.

택시기사를 벽돌로 때려죽이기까지 한다.

자신을 짜증나게 했다는 이유만으로.

한 달만 기다리면 수백억 원으로 불어날 투자금을 겨우 철거 위기에 몰린 고아원을 돕겠다며 빼오라는 아버지를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

아니 용서할 수가 없다.

그래서 부모를 죽인다.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잔인하게 내쳐버린다.

지금까지 궁지에 몰린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엘리트 중에 엘리트다.

부모를 죽인 그 밤에... 굶주린 늑대 같은 형사를 만나기 전까지는.


[사람이, 아무런 이유 없이 장난으로 사람을 죽여서는 절대 안 되는 것이다. 그 개새끼가.... 개새끼가 아닌 정말 사람 새끼라면! 내 이 씨발 개새끼를 이유 있이 함 죽여 볼란다.]


강철중은 자신보다 더 큰 악을 마주하면서 변화한다.

본인은 범죄자의 장물을 빼돌리기도 하고, 뇌물도 받아 처먹고, 나쁜 놈은 말보다 주먹으로 설득하는 상습 폭행범인 데다가 경찰로서 소명의식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형사이지만, 자신의 악행과는 비교도 되지 않은 사람이 해선 안 될 짓까지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 ‘민중의 적’을 만나서 비로소 사람다운 행동에 나서게 된다.

강철중이 대면하게 된 조규환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인간이다.

거악(巨惡)이다.

비로소 지금까지 감고 있던 눈을 뜨게 된다.

조규환을 잡기 위해 최선을 다 하는 과정에서 강철중은 진짜 인간이 된다.

상업영화가 가져야 할 도식적인 플롯이다.

부패·타락-각성-성장(변화)이라는.

강철중은 자신의 욕망에 따라, 직감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는 야수 같은 존재다.

그가 속한 경찰조직은 단지 그에게 무기를 쥐어주는 수단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더티 해리>와 닮은 구석도 보인다.

하지만 더티 해리는 ‘사회 체제의 적’을 죽인다.

현대 미국 사회(구조)를 어지럽히는 무리들에 대한 개인적인 징벌을 주로 다룬다.

반면에 강철중의 단죄는 윤리적인 문제에 가깝다.

강철중은 ‘사회질서 수호’ 같은 데에는 추호의 관심도 없다.

그냥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한 자들만을 골라내서 폭력으로 혼을 내준다.

그것은 값싼 폭력이 아니다.

유교적 규범을 어긴 자들을 단죄하는 심판이다.

사수의 자살에도 흔들리지 않던 강철중이다.

그런데 패륜범죄에 미쳐 날뛴다.

순경으로 강등되어 분식집에서 행패를 부리는 조폭들을 패는 강철중의 활약을 보고 있으면 묘하게 후련한 기분도 들게 된다.

멀리 있는 거악보다 생활 속에서 마주하는 폭력에 관객들이 더 잘 공감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남의 삶을 들여다보는 훔쳐보기 심리와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은 것을 영화 속 주인공이 대신 실현시켜주는 대리만족에 있다.

<민중의 적>은 그런 영화의 미덕에 정확히 부합되는 영화다.


❉ ❉ ❉


외환위기로 직격탄을 맞은 국내 은행 중에 외환은행도 포함된다.

그런 상황에서 독일 코메르츠운트방크가 외환은행에 출자를 했다.

외환은행 정상화를 혼자 책임질 수 없다면서 한국 정부도 증자에 참여하라고 요구했다.

그 결과 한국정부가 외환은행에 출자하게 되고 코메르츠운트방크는 2대 주주가 되었다.

대규모 유상증자에도 불구하고 외환은행은 정상화되지 못했다.

경일그룹 사태 때문이다.

경일건설, 경일전자 등이 줄줄이 부실화되며 외환은행이 다시 휘청거렸다.

류지호가 어렴풋이 기억하기로는 정부가 증자에 참여하는 시점부터 외환은행 매각이 추진되기 시작했다.

한국정부는 외환위기 시기에 지나치게 많은 공적자금을 투입하게 됐다고 생각했다.

외환은행에 또 다시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다.

그리고 코메르츠운트방크가 외환은행 증자에 참여하면서 정부는 매각을 추진하는데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외환은행 매각 추진은 2000년부터다.

인수자가 등장한 것은 2003년에 가서다.

부실기업이나 부실채권에 투자해 수익을 올리는 전형적인 벌처 펀드(vulture fund)인 미국계 돈스타가 그 주인공이다.

이전 삶에서 돈스타는 한국의 외환위기 이후로 I-Tower, 외환은행, 국성건설 등을 헐값에 사들였다가 되팔아 4조 6천억 원의 시세차익을 챙기고 2012년 한국을 떠났다.

돈스타의 외환은행 인수가는 1조4천억 원.

부실채권 등을 포함한다고 해도 그 몇 배의 자산을 보유한 은행의 인수금 치고는 말도 안 되는 헐값이다.

이 당시만 해도 외환은행을 사겠다는 곳이 없었다.

정부와 코메르츠운트방크가 골치를 썩고 있었다.

거기에 신용카드 사태까지 터지고 외환카드의 부실까지 떠안으면서 외환은행은 완전히 수렁에 빠져버리게 된다.

가온그룹이 욕심을 부리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비금융주력사업자(산업자본)는 은행을 소유하지 못하는 은산분리 원칙 때문이다.

산업자본이 은행을 지배할 경우, 은행의 자금을 부당하게 사금고화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나라에서 금산분리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어쨌든 외환은행을 헐값에 인수한 돈스타는 몇 년 후 막대한 시세차익을 챙기게 된다.

적반하장으로 한국정부에 매각승인 지연, 부당한 과세처분을 근거로 소송전을 진행하게 된다.

이 소송전에 국민 세금 수백억이 들어가게 된다.

심지어 돈스타는 한국정부에 5조원 대의 배상을 주장하며 세계은행(ICSID)에 투자자-국가 중재절차(ISD)를 수년 간 진행하게 된다.

이 내용을 모두 영화에 담을 수는 없다.

영화가 망가지니까.

소위 검은 머리 외국인이라는 금융인들과 벌쳐 펀드의 위험성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면 충분했다.

영화가 화제가 되면 매스컴에서 그 부분을 알아서 언급해 줄 테니까.

외환은행의 부실문제는 뜨거운 감자였기에.


“컷! 다시.”


류지호의 목소리가 조금 건조해졌다.

마음에 안 들었는지 고개까지 살짝 저었다.


“......!”


조감독 이동화가 눈치껏 조규환의 비서로 출연하는 여배우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편하게 해. 우리 감독님이 무섭게 다그치는 분도 아닌데 왜 주눅이 들었어?”


데뷔 4년 차에 다수의 TV드라마에 출연한 경력이 있는 여배우다.

영화도 처음이 아니다.

그럼에도 지나치게 긴장해서 실수를 연발했다.

무려 60여 명이 넘는 촬영 인원이 현장에서 움직이고 있다.

영화 카메라 세 대(예비 1대 포함), 조명은 TV드라마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았고, 방금 촬영한 걸 옆에서 바로 편집해 볼 수가 있었으며, 설형기나 이훈재 배우는 자신이 감히 말도 못 붙일 대단한 영화배우들이다.

그런 분위기기가 여배우에게 상당한 압박감으로 작용했다.

촬영현장이 어찌나 기계처럼 돌아가는지 자신이 받은 일일촬영계획표와 거의 똑같이 촬영이 진행되고 있었다.

1시간 안에 몇 커트를 찍어야 하고, 식사는 정확히 12시에 회의실에 세팅된 뷔페로 1시간 진행하며, 5시 50분이 되면 모든 스태프가 하던 일을 멈추고 퇴근준비에 들어간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촬영현장이다.

칼 같이 진행된다는 할리우드 촬영현장이 이런 모습일까.

그런 빡빡한 현장 분위기에서 NG이라도 낼라치면 큰 죄를 짓는 기분이 들었다.

실수를 하지 않으려다 실수를 하게 되고.

그것을 자책하다가 또 다시 꼬이고.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조금 쉬었다 할래? 감독님께 말씀 드릴까?”

“저 때문에 촬영이 많이 지체되지 않았어요?”

“괜찮을 걸.”

“제가 뭘 잘못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뭘 고민해. 감독님한테 가서 물어 봐.”

“별말씀이 없으세요. 편하게 하라고만 하시고.....”

“지적할 게 없다는 거네. 말 그대로 편하게 하면 되겠네. 우리 감독님이 얼마나 현미경 같은 분인데. 마음에 안 들면 숨 쉬는 속도까지 지정해주는 분이야. 별 다른 지적이 없다면 그대로 연기를 하라는 의미지.”

“그래도 계속 다시 찍으시니까..... 제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건지.....”

“배우에게 특별한 디렉션이 없다는 건 다른 부분에서 마음에 안 드신 걸 거야. 자기는 자기 할 것만 하면 돼.”

“.....진짜요?”

“봐.”


이동화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여배우가 고개를 돌렸다.

어느 틈에 류지호 주변으로 촬영, 조명, 미술감독이 모여서 무언가 쑥덕거리고 있다.

잠시 후, 세 명의 헤드스태프가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이훈재가 슬그머니 여배우에게 다가왔다.


“힘 빼.”

“아, 네... 선배님! 죄송합니다.”

“나한테 죄송할 건 없고. 저기 형기형 보면서 느끼는 거 없어. 저렇게 설렁대다가 슛 들어가면 기가 막히게 확 바뀌잖아.”

“저는 슛 들어가면 바뀐다는 말 안 믿어요. 슛 들어가기 전부터 감정 다잡는 배우들은 할 일 없어서 그러는 건 아니잖아요.”

“자식... 똑 부러지게 말은 잘하네. 그렇게 쫄지 말고 해.”

“예. 선배님!”


여배우의 목소리 톤이 한 단계 높아졌다.

문제는 금방 해결됐다.

여배우도 마음을 다잡고 다시 카메라 앞에 섰다.


[들어가시면 안 된다구요. 저기요!]

[저기 아니구. 여기. 응. 형사야 형사.]


패륜범 조규환은 거지처럼 하고 다니며 인생 갈 때까지 간 흉악 범죄자의 몰골이 아니다.

화이트칼라 고소득 직장인이다.

젊은 나이에 부를 손에 넣고 법조계에도 화려한 인맥을 가지고 있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엘리트 중에 엘리트다.

돈 때문에 가족을 살해하고 사람의 목숨 알기를 벌레처럼 아는 사이코패스의 모습을 감춘 채 사회 속에 섞여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고 있다.

단벌 신사로 비렁뱅이처럼 하고 다니는 강철중이 차라리 패륜아처럼 보일 정도다.

두 사람의 직업, 외형, 사회적 지위... 심지어 옷차림까지도.

완벽하게 대조된다.

사시사철 후줄근한 옷을 입고 다니고 머리는 산발을 한 형사와 말끔한 인상과 뛰어난 사회적 배경으로 높은 대접을 받는 투자전문가.

사회적 계급을 은연중에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극단적인 대비를 통해 선악을 구분하는 인상마저도 든다.

그런 선악의 극명한 대비를 젊은 나이에 커다란 부를 이루고 국제 정치·경제·사법계에서 화려한 인맥을 자랑하는 류지호가 영화에서 다룬 것이 아이러니다.

‘민중의 적‘이라는 악당의 특징은 겉으로는 그 누구도 악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본 모습을 위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 <민중의 적>에서는 그 적의 범위를 패륜범에 국한시키지 않는다.

사채업자, 조직폭력배 등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범죄를 모두 포괄한다.

심지어 강철중과 같은 비리 경찰 역시 민중의 적의 범주에 넣을 수가 있다.


- 회장님, 미국에서 우려했던 일이 터졌습니다!


미국에서 또 다른 종류의 민중의 적이 실체를 드러냈다.

작년부터 한국에서 윤태석, 진승연, 이군호, 정형준 게이트 등 4대 벤처 게이트가 연속해서 터지고 있다.

그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글로벌 규모의 대사건이 미국에서 터졌다.

바로 미국 분식회계 사건의 정점을 찍은 엔론 사태다.

류지호가 한창 촬영에 집중하고 있던 10월 16일이었다.

미국의 건실한 에너지, 물류 기업으로 알려져 있던 엔론사가 2001년 3분기 6억 1,800만 달러의 손실이 났음을 공시했다.

또한 2억 달러 규모의 자본감소, 즉 감자를 하겠다고 발표함으로써 뉴욕 증권거래소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그것을 시작으로 엔론사의 회계부정과 각종 불법들이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결국 몇 달 후에 엔론사는 파산하고 만다.

엔론의 파산은 거대한 후폭풍을 일으킨다.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게 되고, 회사의 파산 때문에 퇴직연금 역시 모래성처럼 사라진다.

엔론의 파산은 월스트리트를 뒤흔드는 시작에 불과하다.

더 큰 폭풍이 월스트리트와 미국 사회를 덮칠 준비를 하고 있다.

국제외교 문제에 있어서도 미국은 어리석은 결정을 하고 만다.

바로 테러와의 전쟁 선포에 이은 ‘충격과 공포’로 대변되는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20년간 ‘테러와의 전쟁’ 무대에서 죽어간 사람은 90만 명에 이르게 된다.

911 테러로 목숨을 잃은 사람보다 훨씬 많은 미국인들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는다.

테러와의 전쟁’ 비용은 총 8조 달러(약 9392조원)로 추산된다.

막대한 돈이 중동의 사막 한가운데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수많은 명목으로 지출됐고, 그를 통해 누군가의 주머니를 불렸다.

무기 등 군수물자를 대는 방위산업체들이 전쟁 확대와 장기화로 재미를 보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아프간이나 이라크 재건에 큰돈을 쓰게 된다.

결국 큰 몫은 서구 기업들에게 돌아간다.

조디 워커 행정부 때는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기업들이 계약을 따낸다.

이후 행정부에서는 새로운 권력자와 가까운 이들이 혜택을 받는다.

20년 동안 전쟁 관련해서 곳곳에서 돈잔치를 벌인다.

끔찍한 테러를 자행한 이들이나 그들을 벌하겠다고 전쟁을 일으켜 무고한 민간인들의 희생을 불러온 이들이나.


[오늘 이 시간 부로 우리는 너희 같은 X발놈들을 민중의 적이라고 부르기로 했거든. 뭐라고? ....민중의 적! 이 X발놈들아!]


작가의말

행복한 하루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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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7

  • 작성자
    Lv.99 글램스
    작성일
    23.04.04 13:56
    No. 1

    론스타 이 ㅅㅂ 놈들..아 열받아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3.04.04 14:25
    No. 2

    잘 보고 있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하얀유니콘
    작성일
    23.04.04 17:16
    No. 3

    몬xx 뒤에 한국 공무원 들이 있었다는게 펙트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47 cooooool
    작성일
    23.07.07 21:42
    No. 4

    론스타의 외환은행 국부유출논란은
    과대포장된 부분많습니다

    1. 당시 외환은행 대주주가 도이치방크 즉 독일은행이었죠. 실제로 주식 구입을 주로 독일은행에서 구매했죠
    도이치방크는 1999년쯤 구입했는데, 그걸 주로 사간것이 독일은행이니
    싸게사서 비싸게 팔아서 국부유출이라면
    한국 국부가 아니라 주로 독일국부죠
    ㅋㅋㅋㅋ

    2. 싸게산건 거짓. 실제 당시주가보다 1.2배였나 비하게 일괄구매했죠

    3. 2003년에 구입해서 2007년에 1차 매각시도 했는데
    최종 3~4배 이익봤다고 비판하는데

    당시 03~07년까지 종합주가지수가 3~4배 올랐죠
    즉. 외환은행말고 한국의 어떤 주식을 투자했어도 3~4배가 평균임
    당시 조선 해운주는 10배도 오르고해서 현대중공업 정몽준이 재산도 10배된게 그 시기죠

    당시 한국 주식시장에투자한 외국인들도 다들 그 정돈 이익봤죠

    4. 문제는 론스타가 1차 매각 시점이 금융위기 직전이죠.
    그때 팔고 금융위기에 현금쥐고 있었으면 다른데 투자서 더 큰돈 버는거였죠

    그때 시민단체들이 매각 승인반대해서
    정부가 매각 승인안해줘서 매각못했는데

    이 매각 못한 부분이 소송걸린게 4~5조원이죠
    즉 주가 상승으로 원래는 3조벌고 나갈걸

    소송 배사금이 더 커짐

    ㅡㅡㅡ
    2003년은 한국의 카드대란시기인데다가
    전 세계적으로 경기최저점이라 주가가 낮습니다


    솔직히 이 글 주인공도
    IMF때 주식싸게 샀고, 미국 주식사서 큰 돈 벌었고

    재벌집막내아들도 IT거품때 미국돈 벌고
    나중에 금융위기때 미국에 콜옵션 쳐서
    미국국부 버는게 흔한데

    론스타가 한국종합주가 3~4배 오를때 외환은행주식을 독일은행에어 사서 3~4배 이익남긴게 국부유출이면

    여기 주인공이랑, 재벌집막내아들은 미국국부 수백배 털어먹은 도둑일까요??

    ㅡㅡㅡ
    게다가 한국인이 중국투자하면
    갖가지 이유로 투자금 못빼게 하는게 중국속성이라고
    이 글에서도 그렇게 욕했으면서

    한국에서 론스타가 돈 벌었으니 그돈 못가져가게 방해했던 당시 한국정부는 잘한걸까요??

    아니면 그걸로 소송걸려 4조나 뜯긴게 당연한걸까요??

    찬성: 0 | 반대: 1

  • 작성자
    Lv.47 cooooool
    작성일
    23.07.07 21:47
    No. 5

    그리고 이걸 영화화한 블랙머니는 아주 쓰레기 카피를 썼죠

    180조 자산은행을 1.5조에 헐값에 팔려갔다고요

    근데 당시 외환은행 대주주가 도이치방크인데
    론스타가 외환은행 주식을 1.5주에 50%정도 산건맞음
    근데 한 8년후 하나은행이 대략 5조정도에 사가요

    ㅡㅡ
    그럼 하나은행도 180조 외환은행을 5조로 아주싸게 구입한건가요

    이따위 말도 안돼는 구라와 뼝으로도 음모론이 너무 쉽게 생김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7 cooooool
    작성일
    23.07.07 21:50
    No. 6

    미국 국부 수십조 유출한 주인공이
    론스타 몇조 한국에서 벌어갔으니

    국부유출이라

    ㅋㅋㅋ

    이거 웃어야 되나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5 하몽즈
    작성일
    24.03.18 11:58
    No. 7

    다시 정주행 이어보는 중입니다. 잘 읽고 있어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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