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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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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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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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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1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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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한 판 크게 벌여봐야겠어요. (3)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올해와 내년 사이에 북미 10위 권 안의 대형 극장체인 몇 곳이 파산에 준하는 상황에 놓인다고 하더군요.”


버섯과 해산물이 주재료로 만들어진 전채요리를 맛보던 이희경이 포크를 내려놓았다.

중요한 이야기를 할 것이란 직감 때문이다.


“준비된 자들에게는 기회죠.”

“설마, 함께 북미 멀티플렉스에 진출하자?”


류지호는 대답 대신을 한쪽 눈을 찡긋했다.


“어딘지 말해줄 수 있어요?”

“Loews는 거의 확정적. 다른 두 곳은 확실하지 않아서 당장은 말 못해주겠네요.”


이희경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Loews Cineplex라구요?”


Loews Cineplex는 한국의 멀티플렉스 씨네박스에도 지분을 투자한 북미 5~6위권 메이저 극장체인이다.

현재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 200개 극장 2,300개 스크린을 보유하고 있다.


“확실해요?”

“90% 이상!”

“미국의 멀티플렉스 시장은 정리가 어느 정도 끝난 것 아니었어요?”

“Loews 재정 상태가 극도로 안 좋다고 하네요.”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흥망성쇠 주기는 짧은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5위 권 극장사업자까지 망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은 아니다.


“포화상태인 북미 멀티플렉스 숫자가 조금 더 정리가 되어야 한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아요.”


그런 상황에서 JHO Company 그룹이 지분을 가지고 있는 MovieMark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파산한 중급 극장 브랜드들을 먹어치우고 있다.


“혹시 인수금액은 얼마나.....?”

“14억? 15억?”


당연히 달러다.

한화로 대략 1조 8천~2조원 사이.


‘미친 거 아냐?’


자신은 명백한 경쟁자다.

심지어 JHO Company 그룹은 BS그룹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큰 기업이다.

그런데 미국 극장 사업에 함께 진출하자고 한다.

자신감일까.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기라도 한 걸까.

이희경의 표정에서 복잡한 생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도저히 류지호의 노림수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감독님이 직접 추진하는 M&A인가요?”

“내가 하는 일이 좀 많아요. 가온그룹과 다온로펌에서 준비하고 있더군요.”

“JHO가 아니라 가온이?”

“진출하게 되면 GOM이 해야겠죠.”

“......”

“북미 진출에 자신 없다면, 중국은 어때요?”


이희경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작년에 홍콩에 법인 만들었다고 하던데... 마침 가온하고 JHO도 법인이 있어요. GH오락집단유한공사까지 끌어들여 중국 본토를 공략할 합작법인을 만들어도 되고.”

“가온의 중국진출 시점은 언제로....”


이희경은 아차 싶었다.

류지호가 너무 술술 대답을 해주어서 자신도 모르게 말려들었다.

그런데 류지호는 대수롭지 않게 잘도 대답했다.


“정해진 건 없어요. 곧 중국에서 개정된 영화법이 시행된다고 하니, 지켜보고 있는 중이죠.”

“중국 쪽 파트너는 어디를 생각하고 있는지.... 말해 줄 수 있어요?”

“BS는 어디를 공략할 생각이죠? 북경? 상해?”


이희경은 대답을 삼갔다.


“WaW가 상해 쪽과 <풍운아>부터 협력을 해오고 있어서 중국 현지 합작사를 정해야 한다면 그들이 일 순위가 아닐까 하네요.”

“저희는 베이징유한공사에 선을 대고 있어요.”

“상해가 아니고요? 상해영화그룹(SFG)이 베이징보다 더 탄탄할 텐데....”

“가온이 이미 상해영화그룹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잖아요.”

“긴밀한지는 잘 모르겠는데.....”


상하이 엔터테인먼트&미디어 그룹(SEMG)은 앙쯔강 이남 지역의 극장을 다수 보유하고 영화 제작 및 배급을 독점하는 중국 최대 국영영화기업 가운데 한 곳이다.

중국 내 원선(院线) 중에서 가장 많은 영화관 체인을 보유하고 있는 연화원선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중국영화계는 제작사, 투자/배급사, 원선, 상영관으로 구성되어있다.

원선은 중국영화만의 특수한 개념인데,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배급주체들과 극장조합으로 형성된다.

중국 극장들이 영화 상영의 권한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원선에 가입해야만 한다.

원선은 배급사와 상영관 사이에서 영화를 제공하고, 홍보물과 홍보 활동을 지원해주는 역할을 한다.

중국의 극장은 하나의 원선 시스템에 가맹하고, 가맹한 원선에게 필름 대여료와 관리비를 지불하는 중국만의 특수한 시스템이다.

현재 중국 내 원선은 자격을 부여받은 소수(현재는 6개)의 민간기업만이 권리를 취득할 수 있고, 개별 극장은 하나의 원선 내에 반드시 가맹해야 한다.


“중국이 돈은 즉각적으로 날름 빨아먹으면서 수익을 잘 안내주는 건 알고 있죠?”

“.....중국이 만만디인 걸 모르는 사람은 없죠.”


느려터진 국민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국고(특히 달러)가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중국은 온갖 장치를 만든다.

그 중에 하나가 해외송금 제한이다.

달러는 넣는 대로 빨아먹으면서 이익을 외국으로 가져가려면 온갖 장벽을 만들어 못 가지고 나가게 한다.


"암튼, 회장님하고 의논해보세요. 북미든 중국이든 가온은 합작할 의사가 있으니까. BS에 처음으로 제안했다는 건 잊지 마시고.“

“진지하게 검토해 볼 게요.”

“충분히 알아보고 판단해 보세요.”


만약 류지호의 제안에 흥미를 느낀다면 오성그룹 미국 법인을 움직여 정보를 수집할 것이다.

오성그룹에서 독립하며 두 그룹 사이가 매우 안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희경의 부친과 오성그룹 총수는 여전히 사이가 매우 좋지 않다.

다만 두 그룹은 선대의 감정에만 휘둘릴 수 없는 입장이다.

BS그룹의 회장 가족은 오성그룹의 중핵기업 지분을 다수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BS그룹은 오성그룹의 사실상의 지주회사인 자연농원과 오성생명 지분을 각각 1%, 9.5% 보유하고 있다.

동시에 제일신문 지분과 석유화학 지분도 보유하고 있다.

심지어 오성프로야구단 지분 15%를 보유 중이다.

반면에 BS그룹의 주요 계열사 사장 및 임원 그리고 사외이사까지 오성그룹 출신이 다수 포진해있다.

이전 삶에서 류지호는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분야를 BS그룹이 장악한 줄로만 알았다.

아니었다.

범오성가문은 한국의 미디어 기업(영화, 케이블TV, 음반, 언론사 등)의 소유 지분을 공유하고 있다.

사실상 한국의 미디어 전 부분은 범 오성가문이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이 될 필요는 없지.’


류지호는 굳이 범오성가문과 척을 질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고 끈끈하게 엮이고 싶은 생각도 없고.

아쉬운 것은 류지호가 아니다.

그들이 류지호가 가진 지분을 아쉬워하면 했지.

사실 류지호는 열정적으로 중국이나 북미에 극장사업을 진출시킬 생각이 없었다.

되면 좋고, 안 되도 아쉬울 것이 없는 정도.

남미와 동유럽 혹은 동남아시아처럼 블루오션 지역이라면 모를까....

BS그룹과 합작이 성사가 된다면 북미와 중국의 멀티플렉스 운영을 모조리 넘겨줄 생각도 있었다.

극장 사업하기 더럽게 힘든 두 국가에서 골치를 썩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범오성그룹과 대화창구 정도를 연결해 놓고, 골치 아픈 건 떠넘기고.

또한 영화업에 진출한 다른 재벌과 금융자본들의 연합에 균열을 만드는 것.

노림수라면 노림수다.

추후 합작사가 중국 본토에 진출하게 되고,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까지 된다면 미중갈등 양상을 지켜보다가 지분을 모두 털어버릴 생각까지 하고 있다.


“<복수의 꽃>은 63빌딩에서 상영해요?”


이희경이 화제를 돌렸다.


“올 상반기 안에 전국 주요도시 GOM 브랜드관에 Eye-MAX 전용관이 들어가는 걸로 아는데.... 어디에 들어가는지는 모르겠네요. 아직 Eye-MAX 영화가 많지 않아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죠.”

“그것 참, 우리로서는 불행 중 다행이네요.”

“박건호 대표님으로부터 D-Cinema 이야기는 들었죠?”

“GOM에서 올해 디지털 영사기 10대를 들여온다면서요?”

“D-Cinema에 대한 것도 신중하게 검토해 보세요. D-Cinema를 통해 한국영화가 한 단계 발전할 수 있을 테니까.”

“미국에서도 본격적으로 논의가 안 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7~8월 즈음 MPAA를 중심으로 D-Cinema와 관련된 연구기관이 발족할 예정이랍니다. 그 곳에서 북미 표준이 정해지지 않을까 싶네요. 한국도 준비해둘 필요가 있어요.”


참고로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 영사기를 운용하는 극장은 80여 개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에만 두 군데 극장에서 디지털 영사기를 보유하고 있다.

북미와 유럽을 제외하고 가장 활발하게 D-Cinema를 실험하는 나라가 일본이기 때문이다.

류지호가 생각하기에 세계 어떤 나라보다 한국의 여건이 좋았다.

작년에 초고속 인터넷망이 전국적으로 완성되었고, 올해부터 스카이라이프 위성방송을 시작한다.

통신위성도 몇 기 더 쏘아 올릴 예정이다.

국토면적도 좁다.

신규 멀티플렉스 증가폭도 매년 폭등하고 있다.

민간차원에서도 가온그룹이 적극적으로 관련 인프라를 확장하고 있다.

모든 면에서 아시아에서 가장 빠르게 D-Cinema를 안착시킬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


“올해 가온그룹에서 관련 세미나를 많이 개최할 겁니다. BGV에서도 직원들 보내서 이야기 들어보라고 하세요. 도움이 될 겁니다.”

“혹시 취미로 사업해요?”

“큰일 날 소리를....!”


절레절레.


이희경으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업이 장난도 아니고.

영화진흥위원회에서 할 일을 왜 민간에서 나서서 하는지....

때마침 메인요리가 나왔다.

류지호는 찜요리로 나온 오리고기를 썰어 한 입 맛을 봤다.


“몇 년 만에 와보는데, 그때와 맛이 다른 것 같기도 하고....”

“입맛에 안 맞아요?”

“기분이 그렇단 겁니다.”


대화를 멈춘 류지호가 메인요리로 나온 음식들을 하나씩 맛보기 시작했다.


“......”


이희경 역시 요리를 맛보며 머릿속으로는 가온그룹과 BS그룹을 비교해보았다.

가온그룹과 BS그룹의 공통점은 활발하게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불린다는 점이다.

차이점은 BS그룹은 이미 시장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기업을 먹어치워 시장지배력을 잠식해 나가고, 가온그룹은 취약한 시장을 활성화 시키거나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내수시장에 머물러 있는 자신들과 달리 가온그룹은 처음부터 해외시장 공략을 염두에 두고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희경이 저도 모르게 팔뚝을 쓸었다.

갑자기 짜르르 오한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러다가 만년 2인자가 되는 건 아닌지 몰라!’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언젠가 가온그룹을 넘어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으니까.


‘영화는 가온에게 밀릴 순 있어. 하지만 케이블TV 만큼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 ❉ ❉


<민중의 적> 크랭크업 이후로 비로소 류지호가 사업을 챙길 수가 있게 됐다.

이호준 사장과 함께 성수동 신사옥 부지를 돌아봤다.

다솜방송의 신사옥 부지가 성수동 공장지대로 최종 낙점됐다.


“작년 1월에 새로운 종합유선방송법이 발효됐습니다. 그에 따라서 올해부터 PP는 등록제로 전환되었습니다. PP는 기존에 ‘프로그램공급자’라는 지위에서 ‘방송채널사용사업자’로서의 지위가 확대되었습니다.”


PP는 프로그램공급자(program provider)로 콩글리시다.

network라고 해야 하지만, 한국에서 케이블방송을 허가할 때 크게 세 가지 사업자로 나눴는데 망사업자를 가리키는 NO(network operator), 프로그램공급자를 PP(program provider), 지역방송국운영자를 SO(system operator)로 지칭했다.

SO는 업계 전문용어지만 NO와 PP는 한국에서만 쓰는 용어다.

초창기 큰 자본이 필요하기 때문에 전송선을 한국통신과 한국전력이 깔도록 하면서 NO란 용어를 작명했다.


“이제 다솜방송도 지상파, 위성방송, 중계유선방송에도 프로그램을 팔 수 있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겸영도 가능한 것이고.”

“예. 범위가 확대되어서 전체 대상가구의 5분의 1까지 소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본력만 있으면 중계유선사업자가 종합유선방송사업자로 변신할 수 있게 됐다.

기존의 대형업체들은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시장 점유율을 더욱 끌어올릴 수 있게 됐다.

겸영의 합법화와 함께 위성방송의 출현, 중계유선 및 유사방송들의 방송법 내 편입, 자본유입에 따른 구도 변화, 방송통신 융합현상 가속화 등으로 케이블TV 시장은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현재 케이블 시장은 BS미디어, 올미디어, SBC 등 3대 MPP와 초선무역, 대후, 두루넷, 올미디어, 태광 등 5대 MSO의 분할 구도로 재편되고 있다.

그런 업계 상황에서 다솜방송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올 가을 5개의 채널, 7개의 SO를 보유한 MSP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SO란 흔히 지역방송을 말한다.

MSP는 복합케이블TV방송사업자의 약자다.

케이블TV 사업에서는 SO가 중요하다.

채널편성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용산SO가 DCN채널을 그 지역에서 방송하기 싫다면 다솜방송과 계약을 하지 않으면 된다.

때문에 프로그램 공급자인(PP)는 전국 각 지역의 SO와의 얼마나 계약을 맺고 있는가에 따라 사업의 향방이 갈렸다.


“태호건설로부터 인수한 SO가 어디 지역이죠?”

“서초, 동작, 관악, 청주, 금호, 경북, 부산 등 7개입니다.”


태호건설은 서초 케이블TV의 지배주주로 케이블TV산업에 처음 등장했다.

1997년 제일약품이 보유한 서초케이블TV의 지분을 매입하여 태호의 지분은 종전 47.4%에서 79 .65%로 높아졌고, 태호건설이 법규를 위배하면서 타 SO를 매입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 사실이 검찰의 김연철 비리사건 수사 결과에 의해서 확인되었고, 지난 1997년 9월 공보처는 사실상 수선중공업이 소유·경영하고 있는 8개 SO중 7개를 매각하도록 시정명령을 내렸다.

수선그룹이 태호건설의 소유주였기 때문이다.

무역상사로 출발하여 특장차 등을 제작하는 수선그룹은 1995년에 태호건설을 인수해 7개의 SO를 인수했다.

수선그룹 역시 외환위기를 피해가지 못했다.

1999년 12월에 미국의 종합금융그룹 AIC사로부터 지분매각의 형태로 자금을 들여오기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2000년 2월안에 최종계약을 체결하려 했다.

최종단계에서 무산되고 말았다.

그때 다솜방송이 AIC를 대신해 지분을 매입했고, 공동으로 케이블TV사업을 확대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한차례 위기를 넘긴 태호건설은 초고속통신망 사업과 콘텐츠제공 사업, 인터넷사업에 진출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닷컴버블 붕괴 여파로 원대한 사업계획을 접어야 했다.

결국 7개 SO를 모두 다솜방송에 넘기고 말았다.


“모두 9개의 SO를 보유하고 있는 겁니까?”

“태호건설로부터 인수한 7개와 종로문화사가 가지고 있던 서서울, 은평까지 모두 9개를 확보했습니다. 초선무역에 이어 2위 SO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케이블TV 채널 숫자는 올미디어와 BS미디어에 비해 적었다.

지역유선방송국이라 할 수 있는 SO에서는 그들과 비교할 수 없는 규모를 갖추었다.


“올리온 그룹이 케이블TV 사업을 정리할 때 그것만 인수합병하면....”


이전 삶에서 BS E&M의 케이블 미디어 장악의 길을 그대로 따라갈 수가 있다.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아무 것도.”


상암동디지털시티로 이전하는 것이 세금감면 등 혜택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성수동으로 이전하는 것에 찬성한 것은 추후 부동산 지가 상승 때문이다.

이전 삶에서 성수동 공장지대는 ‘한국의 브루클린’, ‘힙스터의 성지’로 불렸다.

20여년 후 토지 평균 매매가격이 3.3㎡ 당 1억3천만 원까지 오른다.


“기존 공장건물의 철거와 기반공사는 4월부터 시작할 계획입니다.”

“이곳으로 완전히 이주하려면 한 3~4년 정도 보면 되겠어요?”

“빨라도 2004년 가을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시공사는 대유건설로 정해졌다.


‘훗날 찾아올 청년 예술가들을 위해 공간도 미리 확보해 두어야하는데.....’


당장 다솜방송이 성수동에 들어온다고 해서 일대의 땅값과 임대료가 껑충 뛰어오를 리가 없다,

이전 삶에서는 아파트단지가 들어섰던 곳이다.

대림창고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긴 하지만, 고층건물이 올라가면 한강뷰가 멋질 요지 중에 요지다.

이전 삶에서는 2011년부터 성수동 공장을 리모델링한 카페와 스튜디오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 저렴한 임대료를 찾아 젊은 예술가들도 하나 둘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지식산업센터(아파트형 공장)도 우후죽순 들어섰다.

젊은 직장인 유동인구를 늘어나고 청년들이 모여들게 되자 각종 럭셔리 브랜드 매장도 들어왔다.


‘당장 케이블TV 방송국 하나 들어온다고 일대가 갑자기 부촌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아직은 10년의 시간적 여유가 있다.

지금부터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 ❉ ❉


류지호가 영화를 찍고 있는 시간에도 JHO와 가온은 멈춰있지 않았다.

계속해서 사업영역을 넓혀나갔다.

언론에서는 재벌식 문어발 확장인지 혁신의 과정인지 뜨거운 논란이 일고 있었지만, 가온그룹은 외부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기업들을 인수합병하며 덩치를 불려나갔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에 위치한 중견 반도체 제조회사.

회사 입구 아치형 구조물에는 ‘한양옵토디바이스(HOD)’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올 1월 공장 가동에 들어간 한양옵토디바이스는 LED 전문 기업 ‘한양반도체‘의 자회사다.

고급 승용차 행렬이 신축 공장의 입구로 대열을 유지하며 다가갔다.


“경례!”


경비실 앞에 도열해있던 제복을 입은 남자들이 차량 행렬 중앙을 향해 거수경례를 올렸다.

그들의 유니폼 가슴팍에는 나래안전을 상징하는 로고가 박혀있다.


끼익.


승용차 행렬이 공장의 본관 현관 앞에 멈췄다.

조수석에서 튀어나온 건장한 체격의 남자들이 각각의 차량의 차문을 열었다.

차량 대열 중앙에서 모습을 드러낸 젊은 남자.

가온그룹의 오너이자 이사회 의장 류지호다.

이어 래리 킴 가온그룹 회장과 한양반도체 이상훈 사장이 차량에서 내려 류지호를 수행하는 대열을 갖췄다.

힐끗 류지호가 이상훈 사장을 돌아봤다.


“......”


이상훈 사장은 한국에서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MBA를 수료했다.

한국에서 보기 드문 기술과 경영 양쪽에서 이해도가 뛰어난 인물이다.

한양반도체는 1987년에 미국계 반도체 제조사 페어차일드에서 근무하던 엔지니어들이 설립했다.

이상훈이 1991년에 인수해 지금까지 경영해오고 있다.

그는 단순히 데스크 앉아 결재만 하는 CEO가 아니었다.

스스로가 발명가이기도 해서 한양반도체가 보유한 LED(발광다이오드) 3,000여 개의 특허 가운데 100개의 가까운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한양반도체는 1992년부터 LED 패키지 생산 외에는 눈 한번 돌리지 않고 한 분야만 전력질주했다.

매년 특허만 수백 건씩 출원하고 있는 반도체 강소기업이다.

다른 기업들처럼 전구 등 완제품을 생산하거나 다른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지 않고 오로지 LED 패키지, 광원 생산에만 집중해 오고 있다.

류지호의 마음을 끌었던 것은 매년 매출의 10%를 연구개발(R&D)에 쏟아 붓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겨우 2~3%를 R&D에 투자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10%는 엄청난 비율이다.

1999년 처음으로 매출 100억 원을 돌파하고 나서 2000년 300억 원, 올해 1,000억 원 돌파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 여세를 몰아 코스닥 상장을 준비했다.

한양반도체가 가온그룹으로 들어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외환위기가 닥칠 무렵 류지호는 전략기획실에 한국의 LED 업체의 지분 매입이나 인수합병을 주문한 바가 있다.

영화용 디지털 프로젝터에 들어갈 LED 램프, 영화용 LED 조명장비 개발과 관련한 기술과 제조 기반을 갖추기 위함이었다.

가온그룹과 다온로펌의 레이더에 포착된 기업 가운데 한 곳이 한양반도체였다.

중소기업임에도 매년 매출의 10%를 연구개발비에 투입한다는 점과 최고경영자가 관련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높다는 사실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꾸준히 한양반도체에 접촉해 마침내 작년 가을 그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당장은 완전 자회사로 편입시키는 것 대신에 나래안전과 아네모네 그룹처럼 독립적인 회사로 남아있을 예정이다.

류지호가 자신과 나란히 걷고 있는 이상훈 사장에게 물었다.


“후회하진 않으세요? 힘들게 키운 회사가 계열사가 되었는데...?”

“어쩌겠습니까.... 빨리 현실을 인정하고, 계속 나아가야겠지요.”


한양반도체는 올 1월에 코스닥 상장을 할 계획이었다.

가온그룹에 편입되면서 잠정 유보됐다.


“대기업에 편입되면 그들 하청업체 밖에 더되겠습니까?”

“하하. 가온그룹도 대기업입니다.”


한양반도체로선 국내 대기업들의 행태에 대해 여러모로 아쉽고 서운한 게 많았다.


“우리가 인력을 뽑고 회사비용으로 교육까지 시켜서 키웠는데 대기업에서 스카우트해 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원래 대기업이 인력을 키워서 중소기업에 뿌려주는 게 맞는 순서인데 말이죠.”

“그러니까요. 한번은 회사에서 해외로 박사 유학까지 시킨 인재를 대기업에서 스카우트해 간 적이 있었지요. 결국 소송까지 가서 위약금을 받기는 했지만. 정말 억울한 경우가 많습니다.”


한양반도체가 코스닥 상장을 미루고 가온그룹의 그늘로 들어온 이유 가운데 하나가 대기업의 인력 빼가기에서 보호받기 위함도 있다.

가온그룹은 연봉 수준, 직원 복지에 있어 한국의 기업 중에서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오너 소유의 외국기업 가운데는 세계적인 CCD 업체인 DALLSA Cop.이 있었고, 디지털 웨스턴을 포함한 다양한 IT 관련기업의 투자자이기도 했다.

JHO와 가온그룹이 국내는 물론이고 미국, 캐나다, 호주의 유명 대학교와 기술개발을 공동으로 진행하는 것 역시 이상훈이 가온그룹 계열사 편입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대기업의 인력 빼가기가 얼마나 심각합니까?”


이상훈 사장이 분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인력 스카우트 문제 소송만 수십 건이 걸려 있는 상태입니다.”


류지호가 단언했다.


“이젠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작가의말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 작성자
    Lv.99 용갈장군
    작성일
    23.04.12 10:01
    No. 1

    서울반도체도 실제로는 하청하는 중소기업에게 가격후려치고 갑질하기로 악명 높은 업체지요.
    소설에서라도 하청업체를 존중하고 더불어 동반성장 시키는 업체가 되었으면 싶네요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99 시역과의
    작성일
    23.04.12 10:03
    No. 2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제작 이야기보다는 사업쪽이 훨씬 재밌군요

    찬성: 2 | 반대: 1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3.04.12 10:31
    No. 3

    잘 보고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하얀유니콘
    작성일
    23.04.12 18:37
    No. 4

    가온 그룹도 대기업이죠.
    건들면 돈으로 발라 버리면 됩니다

    찬성: 2 | 반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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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판 크게 벌여봐야겠어요. (3) +4 23.04.12 3,313 126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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