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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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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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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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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1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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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한 판 크게 벌여봐야겠어요.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이희경 부회장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렇지 않으면요?”

“너무 독주하고 있지 않습니까? 한 번 제동을 걸어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만.”

“어떻게요?”


이희경 부회장의 물음에 그녀 옆자리에 앉은 광성시네마 사장이 대신 대답했다.


“방법이야 없지 않지요.”

“언론에서 그렇게 비판을 하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데... 뭘 더 합니까?”

“비자금 쪽으로 나올 게 없겠습니까?”

“류 감독이 소유한 한국의 사업이 미국 사업에 10분지 1도 안될 겁니다. 막말로 뭐가 아쉬워서 비자금을 만들겠어요? 한국에서 얻는 코 묻은 돈에 연연하겠습니까?”


이희경이 두 사람을 향해 그것도 모르고 있었냐는 투로 말했다.

광성시네마 사장이 헛기침을 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세무조사는....?“

“뭐로 걸까요? 매년 법인세도 과납부 한다던데. 일부러 그러는 건지 회계팀에 바보들만 있는 건지....”

“국세청에서 그걸 알고도 가만있단 말입니까?”

“세금이 많이 걷히면 좋은 거 아닙니까? 당사자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데.”

“뭐 그따위 놈들이 다 있습니까?”

“신문도 안 봐요? 류 감독이 뉴욕 금융가에서 리틀 버펫으로 불린지가 언젠데. 투자하는 것마다 성공한다고 해서. 할리우드에서는 몇 번의 위기를 잘 넘기면 LOG 왕국을 뛰어넘을지도 모르겠다고들 하지요.”

“백인들이 그런 꼴을 보고만 있단 말입니까? 미국 엔터는 유대인들이 꽉 잡고 있는 거 아니었어요?”

“매우 영리한 사람입니다. 미국 사회를 움직이는 백인 기득권들과 잘 어울려요. 그러면서 소외받는 유색인종들에게 아낌없이 돈을 풀어 환심을 사고.”

“지금 류지호 칭찬정도로 한가합니까?”


주브 엔터테인먼트 사장이 이죽거리자, 광성시네마 사장이 다시 말을 받았다.


“적을 알아야 싸움에서 이기지 않겠습니까?”

“사업이 장난이야 뭐야.”

“취미로 사업하는 사람 봤습니까?”

“그런데 왜 그렇게 안 올려도 되는 인건비를 올리려고 기를 쓰냔 말입니다. 오너가 경영감각이 없으면 회사 임원들이라도 말려야지.”


두 사람이 류지호를 씹어대거나 말거나 이희경이 말을 이었다.


“그 대신 다른 부분을 철저히 시스템화해서 비용을 줄여나가고 있지요.”

“류지호 편드는 겁니까? 미국에서부터 친분이 있었다고 하더니.....”

“잘하는 것은 칭찬해야죠. 배울 점은 배워야하고.”

“BS는 DreamFactory에서 배울 만큼 배우지 않았던가요?”

“시스템이란 게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서....”

“일본에서 흔들어보는 건 어떻습니까?”


광성시네마 사장의 말에 주브 엔터테인먼트 사장이 반색했다.


“방법이 있겠습니까?”

“영화 쪽으로 메이저와 연계된 것 같아 건드려봐야 타초경사가 될 것 같고, 게임 소프트웨어를 유통하려고 하는 모양인데 그 쪽에 제동을 걸어서...”

“그룹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광성그룹은 한국기업이냐 일본기업이냐를 두고 끊임없이 논란이 되는 대기업이다.

논란과 상관없이 일본에서 인맥이 상당한 것만은 틀림없다.

이희경 부회장이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일본인에게 의리가 있습니까?”

“거, 듣기에 따라서는 불쾌한 표현이 될 수 있습니다.”

“일본인이셨습니까?”

“부회장은 미국인이지요?”


이희경 부회장은 미국시민권자다.

한국국적도 유지하고 있어 복수국적자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는 복수국적이 허용되지 않았다.

따라서 미국 국적자가 정확한 신분이다.


“류지호도 미국국적을 취득했다고 그러던데....?”

“영주권만 가지고 있는 걸로 압니다. 류 감독은 아직 시민권 취득을 안 했어요.”

“진짜 가지가지 합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는 건 아닐까요? 어떤 가수와 달리 현역병으로 군대도 다녀오고. 어릴 때부터 기부를 했죠. 영화도 잘 만들고, 본인이 연출도 잘하고. 요즘 같은 세상에 자수성가하기 쉽지 않지요.”

“어디서 족보도 없는 놈이 튀어나와서는.... 쯧.”


이희경의 입가에 비웃음이 언뜻 스친 것 같았다.

자신 주위에 자리한 사장이란 작자들도 족보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기껏 고려 픽처스 대표 정도가 외가 쪽으로 집안이 좀 좋은 편이고.

서울대 나와서 대기업 계열사 사장한다고 본인들이 진골인 줄 아는 한심한 작자들.


“그런데 이상하군요?”

“뭐가 말입니까?”

“WaW에서 수입한 두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 그쪽 극장이나 우리나 모두 돈을 버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여기 계신 분들도 시장을 지배할 위치가 되면 당연히 행할 일을 WaW에서 먼저 한 것뿐이고.”


이희경이 보기에 가소롭기 그지없었다.

고려 픽처스와 무비서비스는 작년과 올해 지방의 한 단관극장에 자사 영화를 주지 않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해 결국 극장주로부터 항복을 받아낸 바가 있다.

지방의 단관극장주는 운영권을 두 배급사에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또 광성와 올리온 계열의 영화투자배급사는 자신들과 거래하는 극장들에게 멀티플렉스로 전환할 것을 강압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자신들이 직접 극장을 만드는 것에는 자금과 시간이 걸린다.

때문에 기존의 지방 단관극장주가 직접 상영관 숫자를 늘리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멀티플렉스로 개조가 된 후, 극장 운영은 자신들에게 위탁하는 것으로 하고.

날강도나 다름없는 짓이다.


‘못난이들....!’


이희경 부회장이 볼 때 이들은 용기가 없어 멀리서 짖어대는 강아지에 불과했다.

한국의 엘리트들이란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그렇게 본 것만 믿는다.

가령 일부 언론에서 씌운 파커가문의 꼭두각시란 프레임을 사실로 받아들인 것 같은.

류지호는 한국의 기득권 사이에서 고립되어 있는 것은 맞다.

인맥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제 갓 서른이라는 나이가 꼰대들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드는 면도 없진 않다.

이들에게 류지호는 그저 미국 유력자의 후원으로 운 좋게 성공한 청년 기업가이자 딴따라 일 뿐.

진면목에 대해 전혀 모른다.

알고 싶어 할까 싶기도 하고.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한다고 해서 만만하게 보면 큰 코 다친다.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이사회와 주주명단에 얼마나 대단한 이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는지 몰라서들 얕잡아 보는 거다.

JHO Company 이사회에 에드윈 터너, 헨리 게이트 같은 거물들이 비상임이사로 들어와 있는 것만 봐도 류지호를 건드릴 생각을 못할 텐데.

자신 주위에 모여 있는 투자배급사 사장들은 그룹에서 낙하산으로 내려온 자들이다,

영화산업에 대해 쥐뿔도 알지도 못하고, 영화판을 우습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오성영상사업단 출신들은 안 그러지만.

암튼 오성그룹 정보팀에서조차 류지호가 가진 인맥을 다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듣기로는 JHO Security Services, 나래안전과 오성그룹 정보팀이 물밑에서 신경전을 벌인 일도 있었다.

국정원보다 정보력이 뛰어나다는 오성그룹 전략기획실이다.

JHO Security Services는 해외 곳곳에 지사를 두고 활동하는 글로벌 보안회사다.


‘주로 취급하는 정보가 다르겠지만, 쉽게 우열을 가리기 힘들겠지.’


오성그룹은 창업자부터 현재까지 수십 년에 걸쳐 정보팀과 친오성 인사들을 사회 곳곳에 심어두고, 해외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헌데 류지호는 불과 10년 만에 상당한 인적·물적 네트워크를 구축해냈다.


‘10년 전 즈음 시작한 미국과 한국의 장학사업 성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고 하지...’


초창기 장학금을 받은 중고등학생들이 벌써 로스쿨을 졸업하거나 MBA를 마치고 류지호 소유의 미국기업에 입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장학생 가운데는 태권도 사범은 물론 유명 래퍼까지 있다.

만약 장학사업의 혜택을 입은 이들이 류지호와 그의 기업에 충성을 바치는 일이 벌어진다면, 수년 후에는 거대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다.

그들 중 유력 정치인이라도 탄생한다면 뇌물 같은 부정한 거래 없이도 든든한 정치적 배경을 갖게 될 수도 있다.

기업의 역사가 짧아 범 오성그룹을 따라오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오성그룹 총수인 그녀의 작은 아버지도 쉽게 만나지 못하는 글로벌 기업 회장이나 정치인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인물이 류지호다.


‘친구 혹은 동반자가 되느냐? 대척점에서 죽고 죽는 경쟁을 벌일 것이냐.’


지금까지 한국의 정재계 인사들은 겁 없는 청년 기업가를 주시만 했다.

어린 친구가 신통방통하다는 느낌이 컸다.

외환위기를 맞아 자신들 앞가림하기 바쁜 면도 없지 않아 지켜보기만 했다.

이젠 상황이 바뀌었다.


‘대유그룹 계열사를 인수합병한 것은 충격이었지.’


재벌 입장에서 자신의 사업과 겹치는 새로운 재벌의 탄생이 달가울 리가 없다.

어떤 식으로든 가온그룹에 손을 뻗을 가능성이 높았다.


“부회장님!”

“어. 감독님?”


춘사영화예술상 시상식이 성황리에 끝나고 류지호가 이희경을 찾아왔다.


“시상식은 어땠어요?”

“우리나라 영화시상식도 아카데미 주간처럼 일주일 간 축제가 벌어지면 좋을 텐데... 그게 조금 아쉽네요.”

“함께 만들어 나가 봐요. 오늘이 춘사상의 첫 출발점이나 마찬가지니까.”

“호호. 그러네요.”

“주중에 스케줄 비는 시간 있어요? 식사 한 번 하죠.”

“난 유부녀에요. 감독님은 애인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 하지 않아요?”

“그건 어디 유머에요? 남부? 북부? 동부와 서부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유머인데?”

“호호. 그냥 썰렁하다고 하면 되지.... 미국식 유머까지 들먹일 건 뭐에요?”

“비즈니스 이야기 좀 해요.”


류지호는 일단 운만 띄우고 물러났다.

새롭게 단장한 춘사영화예술상 시상식은 별다른 잡음 없이 성황리에 끝이 났다.

시상식의 성공을 두고 영화계에서 말들이 무성했다.

영화계 일각에서 그랜드벨 어워즈를 영화인협회가 아닌 독립적인 단체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부터 그랜드벨과 춘사영화예술상을 합치자는 말까지 조심스럽게 흘러나왔다.

안타깝지만 그랜드벨 어워즈는 완전히 신뢰를 잃었다.

제작자가 출품하기를 꺼려하는 영화시상식은 생명력을 다 한 것이다.

여러 말들이 쏟아지면서 춘사영화예술상은 많은 숙제를 떠안게 되었다.

2001년 연말 한국영화계는 두 개의 영화상 통합 주장과 <해리포터> 열풍으로 떠들썩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크리스마스 브레이크 타임을 가졌던 <민중의 적> 제작진이 촬영을 재개했다.

류지호는 WaW 종합촬영소와 여주의 가온 호텔을 오가며 촬영에만 집중했다.


❉ ❉ ❉


영화음악가 이용준의 목표는 할리우드다.

그리 먼 목표도 아니다.

3년 내에는 반드시 진출하겠다고 공언했다.


“외국에서 인정받아야죠. 한국에 안주하는 것은 끔찍합니다.”


류지호가 보기에도 영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할리우드는 매년 500편에 가까운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최고의 감독과 작업해야만 한다는 욕심만 부리지 않는다면, 할리우드 영화에서 작곡가로 고용될 가능성은 충분했다.

실제 동생 류순호가 미국 독립영화계에서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기도 했고.

이용준은 한국의 전통악기 말고도 외국 민속악기도 잘 썼다.

<은행나무 침대>와 최근 작업한 <복수의 꽃>은 국악풍의 영화음악이 많이 쓰였다.

그의 국악풍 음악은 김우철의 것과 결이 달랐다.

일단 악기 편성이 달랐다.

한곡 안에 가야금, 대금 넣고, 소프라노까지 넣는 식이다.

오케스트라, 합창, 민속악기, 국악까지 섞어버린다.

신시사이저를 항상 베이스로 깔면서.

장르와 국적을 불문하고 모든 소리가 자유롭게 넘나드는 음악이랄까.

그가 좋아하는 외국의 영화 음악가는 존 짐머(John Zimmer)다.


"원래 할리우드적인 스타일을 좋아했어요. 웅장하고, 스케일 크고, 때려 부수는 그런 음악. 신시사이저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들어가는 거죠. 하지만 국내에는 그런 영화가 없으니까....“


이용준의 음악적 지향은 괘나 상업적이다.

나쁜 뜻이 아니다.

상업영화에 가장 잘 어울리는 스타일이라는 의미다.


“세트 촬영에는 별로 볼 것도 없고, 음악도 많이 안 쓰기로 했잖아요.”

“자주 와서 귀찮으십니까?”

“작업할 시간이 부족할까봐 그렇죠.”


<민중의 적>의 영화 음악을 이용준 작곡가가 다시 맡았다.

류지호가 부르는데 안 오는 것은 바보도 안 할 짓이었으니까.

그는 자주 촬영장에 왔다.

스토리보드가 어떻게 영상으로 옮겨지는지 현장에서 지켜봤다.

그런 사이 악상이 떠오르거나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다이어리에 메모를 했다.

때론 촬영장 근처를 배회하며 사색에 잠기기도 했다.

<복수의 꽃> 당시 류지호는 음악감독에게 현장편집본을 일절 보여주지 않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현장편집본은 촬영 진행의 가이드일 뿐이다.

본 편집의 호흡과 길이가 다를 수밖에 없다.


“<분노의 역류> 보셨죠, 감독님?”

“봤죠.”

“제가 듣기로 그 영화는 감독과 존 짐머가 치밀하게 맞추어 영화음악을 만든 작품이라고 해요. 존 짐머는 수없이 현장에 나가 가만히 촬영을 지켜보고, 감독과 얘기한 후에 작곡했다고 하죠. 그래서 완성된 영화를 보기도 전에 전곡을 완성했다고 들었어요.”

“로이 호너도 그런 작업 방식을 선호하더라고요.”

“그래요?”

“할리우드는 음악 작업에 6개월 보장 조항이 들어있어요. 보통 8개월 정도 작업하는 것 같아요.”

“우리 여건상 쉬운 일은 아니네요.”

“시나리오와 나온 그림이 너무 차이가 나죠.”

“죄송하지만, 감독님들 중에 자신이 연출하는 영화의 정서나 톤을 제대로 설명 못하는 분도 계세요.”


류지호가 계약을 파기했던 이승주 같은 감독이 대표적이다.

영화 음악이 영상과 합쳐지는 프로세스는 할리우드나 충무로나 다를 것이 없다.

이용준 작곡가의 경우에는 일단 찍은 필름을 본 후 러프하게 작업하고, 파이널 편집 때 음악의 길이와 시간을 맞춰보고, 기초녹음한 후에 최종적으로 스튜디오에 가서 다시 녹음한다.

영화음악은 CD용 녹음을 하고나서 따로 Doldy 서라운드용 8트랙 믹싱을 새로 한다.

마지막으로 최종 편집본을 틀어놓고 믹싱을 하는데, 이때가 스트레스를 제일 많이 받는 시간이다.

한편으로 가장 재미있는 시간이기도 하고.

효과담당은 효과음을 더 넣고 싶어 하고, 작곡가 입장에서는 음악이 전체 무드를 이끌어가길 원하고, 믹싱 엔지니어는 대사가 잘 들리는 것에 주안점을 둔다.

서로 의견교환이 잘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사운드가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이용준 작곡가 몸값이 비싸다는 소문이 많이 났는데, 앞으로 영화 일 많이 못하는 거 아닙니까?”

“얼마 전에 제작자 한 명을 만났어요.”

“벌써 차기작 미팅을?”

“감독님께는 죄송하지만 저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하하. 탓하는 거 아닙니다. 죄송할 거 없어요.”


이용준 작곡가가 한숨을 푹 쉬고는 말을 이었다.


“음악 말고 제작비 얘기만 해서 괴롭더라구요. 촬영 같은 경우는 카메라 대여비용 같은 게 고정적으로 잡혀 있지만, 음악은 예산이 미리 정해진 게 아니잖아요. 5,000만 원을 받는다 해도 오케스트라 쓰고 하면, 한 푼도 안 남아요. 감독님이 더 잘 아시겠지만, 외국에서는 영화음악에서 오케스트라 안 쓰는 경우가 거의 없잖아요. 영화음악에 대한 마인드를 제대로 가진 제작자가 충무로에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진짜 드물죠.”

“좋아질 겁니다. 한국영화에서 제대로 된 예산서가 작성되기 시작한 게 얼마 안 되잖아요. 곧 다른 투자사와 제작사들도 WaW처럼 음악 예산 항목이 좀 더 세분화 될 겁니다.”


보통 영화에서 후반작업 비용은 일괄계약이다.

음악감독의 경우, 5,000만 원에 일괄계약하면 이 돈에서 자신의 인건비, 음악 세션비, 녹음비 등 모든 걸 해결해야 한다.

음악에 욕심을 부려 오케스트라 녹음이라도 할라치면 자신의 인건비까지 쏟아 부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뭐 하나 합리적인 구석이 없다.

여전히 엉터리가 많은 충무로 시스템이다.

류지호로서는 말하다보면 입만 아픈 것이 현실이다.


“WaW에서 현실적인 계약을 해주고 싶어도 어려운 점이 있어요.”

“잘 알죠. WaW에서 작업료를 올려놓으면, 다른 제작사에서 그 스태프를 비싸다고 안 쓰니까.”


그렇다고 저예산 영화에서 적은 돈을 받고 일 해주면, 다른 영화사에서 자신들도 그렇게 받고 일 해달라고 요구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전에 작업한 영화에서는 그 절반으로 계약해서 일 했잖아요?”

“그 영화는 10억짜리 영화고 이 영화는 30억 예산 영화잖습니까.”

“사람 차별하는 것도 아니고....!”


도리어 화를 내는 제작자도 있으니, 말 다했다.

재정이 넉넉한 영화사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있는 놈이 더 하다.

괜히 뻗대면 손해 보는 것은 언제나 스태프일 수밖에 없다.

심지어 그런 분쟁을 중재할 조합도 단체도 없다.

영화진흥위원회는 허구한 날 감투싸움에 열중하고 있고.

협회는 친목계보다 못했다.

어쨌든 한국의 영화업계가 산업화에 접어들었다고 해도 여전히 갈 길은 멀었다.


“좋아지고 있다는 게 중요하죠. 뭐.”

“시대에 역행만 하지 않길 바랍니다.”


발전이 정체만 되어도 다행이다.

때로는 시대를 역행하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한국영화계도 예외가 아니다.


✻ ✻ ✻


새해가 밝았지만, 류지호는 <민중의 적> 촬영으로 다른 곳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올해도 재계가 주최하는 신년인사회에 초대를 받았다.

가온그룹 시무식에도 참석을 못할 판에 남의 잔치에 기웃거릴 여유가 있을 리가 없었다.

20대 그룹 오너가 할 말은 아니지만.

어쨌든 류지호는 여주의 WaW 종합촬영소에 틀어박혀 영화 촬영에만 몰두했다.

마침내 2002년 1월 말.

4개월에 걸친 <민중의 적> 프로덕션이 마무리 되었다.


“고생하셨어요!”

“수고하셨습니다!”


고생을 많이 한 이를 꼽으라면 단연 설형기 배우라고 할 수 있다.

불룩 나온 배와 둥글둥글한 얼굴 형태를 4개월 내내 유지해야 했는데, 빡빡한 촬영 스케줄과 연기 부담으로 인해 쉽지 않았다.

늘어난 체중과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틈만 나면 음식을 먹었지만, 체중이 늘기는커녕 오히려 줄었다.

류지호는 설형기의 체중 변화에서 있어서는 단호했다.

얼굴의 턱선이 조금만 달라져도 지적했다.

뱃살이 빠져 걷는 자세가 바뀐 것까지 귀신같이 잡아냈다.

게다가 익숙하지 않은 액션 연기는 꽤나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연기에도 영향을 미쳤다.

류지호에 대한 불만을 카메라 앞에서 짜증과 신경질 연기로 토해냈다.

매너리즘에 빠지기 전 설형기 배우는 상처 입은 짐승이고 징글징글한 독종 그 자체였다.

류지호는 설형기의 연기를 보면서 그가 웃으며 따라 웃었고 울면 본인까지 슬퍼졌다.

분노할 때는 함께 분노했다.

이 시기 설형기는 메소드 연기 교본 그 자체였다.

한때 류지호는 연극배우 출신을 캐스팅해서 강철중을 새롭게 만들어볼까 고민한 적도 있었다.

막상 영화 촬영을 마무리하고 나니 설형기가 하지 않은 강철중은 상상하기가 힘들었다.

영화를 찍으면서 감상적이 된 적이 있긴 했지만, 이번처럼 감정이 올라온 적은 없었다.

배우로서 설형기는 영화가 자신을 먹어치울 것이 두려워 머리를 쳐들고 달려드는 미련한 짐승 같았다.

세상의 때와 오물에 절어버린 남자를,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꼴통 같은 짐승을, 완벽하게 품어내 영화 속에서 뒹굴었다.

자신이 싼 똥을 손에 묻힌 후에 제 손에 피를 묻힌 더 나쁜 놈에게 짜증을 토해내는 강철중 아니 설형기는 그저 연기로 위장한 강철중이 아니라 강철중 그 자체였다.

삼십 대의 설형기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보적인 배우다.

사생활과 관련한 루머로 오랜 시간 고통을 받게 되겠지만.


‘원체가 멘탈이 강한 양반이니까.....’


어쨌든 이전 삶에서 영화가 개봉해야 할 시기에 크랭크업을 하게 됐다.

류지호의 사정으로 제작이 지연되고 그에 따라 개봉시기가 11월로 늦춰졌다.

한국영화 경쟁작들은 <광복절 특사>, <몽정기>, <밀애> 등이다.

할리우드 영화로는 <오스틴파워Ⅲ>, <턱시도> 정도다.

문제는 WaW 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하는 작품들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10~12월 라인업에 <본 아이덴티티>, <아이엠 샘>, <반지의 제왕Ⅲ>, <해리포터Ⅱ>가 잡혀있다.

그 사이에서 300만 명 이상 관객을 동원해야 한다.

쉬워보이진 않았다.

연간 30편 이상 배급하는 WaW 엔터테인먼트는 영화 한두 편 잘못된다고 해서 회사가 타격받는 일은 없다.

다만 한국의 상영관이 부족해 더 많은 영화에 투자·제작·배급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

류지호의 영화만 편애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 ❉ ❉


서라벌호텔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류지호와 이희경이 식사를 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고등학교 때 파커가족의 초대를 받아 가족과 함께 온 이후로 세 번째 방문이다.


“Eye-MAX 독점권을 꼭 한 브랜드에 줘야 하는 거예요? 전용 상영관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 아닌가....?”


한국에서는 GOM Cinemas가 Eye-MAX 독점 사업자다.

Eye-MAX Corp.의 정책이 바뀌지 않으면 BGV에게는 기회가 없다.


“Eye-MAX 상영관이 전 세계 극장 상영관의 15%가 넘어가면 품질관리가 안 된다고 하네요.”

“말도 안 돼요.”

“Eye-MAX Corp은 큰 회사가 아닙니다. 직원이 채 200명이 안되죠.”

“직원을 더 채용하거나 연관 된 회사를 인수합병해서 회사를 키우면 되잖아요.”

“글쎄요. 경영진의 계획이 있겠죠.”

“보고만 있다고요?”

“경영에는 간섭을 하지 않는 주의라서....”


사실 하려고 마음먹으면 못할 것도 없다.

그러지 않는 이유는 Eye-MAX는 성장잠재력은 크지만 한계 또한 명확하기 때문이다.

북미의 극장 브랜드들이 파산이나 폐업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보수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BGV가 Eye-MAX 상영관을 여는 방법은 하나예요.”

“뭔데요?”

“독점권을 가진 브랜드를 인수하거나, 해외 합작법인을 만들어서 독점권을 따내서 영업하다가 국내에서 얼렁뚱땅 Eye-MAX 상영관을 만드는 거죠.”

“오너가 경쟁사에 그런 정책의 허점을 이야기 해줘도 되요?”

“BGV가 GOM을 인수합병 할 수 있어요?”


도리도리.


“호주의 빌리지시네마 인터내셔널은 Eye-MAX 독점권을 얻지 못했죠. 앞으로 받을 가능성도 그리 높지 않고.”


특별히 감출 내용도 아니다.

BGV의 합작사 빌리지시네마는 호주에서 3위권 극장체인이다.

호주의 Eye-MAX 독점권은 1위 업체가 가져갔다.

홍콩의 경우도 GH 오락집단유한공사가 아닌 에드코필름 산하 GOM Cinemas 합작 멀티플렉스 체인이 선정되었다.


“내후년에 상장할 계획이죠?”

“우리 회사에 스파이라도 심어놨어요?”

“찔러봤는데, 바로 넘어오시네?”


그럴 리가.

오성그룹 전략기획실과 신경전을 벌일 정도로 뛰어난 정보팀을 가지고 있는 류지호다.

이희경은 그냥 해본 말이다.

류지호 역시 농담으로 응수했을 뿐이고.


“어차피 상장하고 난 후에 빌리지시네마는 BGV의 주식을 처분해 투자금을 회수하겠죠.”

“정말 모르는 게 없네요.”

“작년에 홍콩을 다녀온 거 몰랐어요? 걔들이 묻지도 않았는데, 친절하게 말해주던데.”

“설마 그랬으려고. 중국사람들이 얼마나 사람을 안 믿는데.”

“중국인 아니고 홍콩사람이라서 그랬나 보죠... 그리고 진정한 친구가 되면 서로 감추는 것이 없어지는 법이죠.”

“그래서요?”

“국내에서는 멀티플렉스 시장의 한계가 있다는 건 잘 알 겁니다.”

“가온에서는 적당한 상영관 수를 몇 개로 보고 있어요?”

“2,300에서 2,500사이. 그 숫자가 넘어가면 피터지게 출혈경쟁을 해야 한다고 보고 있어요.”

“....음.”

“내 생각 한 번 들어볼래요?”


무언은 긍정이다.

류지호가 말을 이었다.


“국내 멀티플렉스 운영은 해외시장을 위한 일종의 테스트베드같은 기능으로 전환해야 할지도 몰라요. 한국에서 열심히 서비스 노하우를 쌓아 그걸 바탕으로 해외로 나가 현지화를 해야겠지요. 특히 아시아 시장에 진출한다면 한국에서 겪은 시행착오가 상당히 도움이 될 겁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요.”

“얼마든지.”

“류 감독님 혼자도 충분히 할 수 있잖아요. 사실 BGV는 멀티플렉스 운영에 있어서 GOM에 미치지 못해요.”

“JHO는 미국에서 멀티플렉스를 가질 수 없어요. 물론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조건으로 지분을 보유할 수 있긴 하지만.


과거에는 할리우드 영화사가 극장 지분의 4.8%를 넘으면 무조건 패러마운틴 판결 위반이었다.

이제 와서는 사문화가 되어서 지분 제한은 사실상 없어진 것이 마찬가지다.


“가온그룹은 한국 법인이잖아요. 상관없을 텐데.....”

“내가 가온을 소유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할리우드 스튜디오 관계자는 없어요. 아마 단독으로 극장 체인을 소유하는 걸 반기지 않을 겁니다. 소닉 역시 다른 메이저 스튜디오와 함께 7~8위 권 멀티플렉스 브랜드 지분을 나눠가지고 있거든요.”


미국의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북미 대형극장체인의 지분을 조금씩 가지고 있다.

소유만 못할 뿐이지 지분투자는 가능했으니까.


끄덕.


이희경 역시 모르지 않았다.

북미의 기존 시장체제로 진입하는 것이 어려워 끼어들지 못하고 있을 뿐.


“그래서요?“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 작성자
    Lv.99 문연판타
    작성일
    23.04.11 10:15
    No. 1

    진짜로 류지호에 대해서 국내언론에서 하는 말들만 믿는 바보같은 사람들이 있네요. ㅎㅎㅎ 국내에선 제대로 실력행사를 안해서 그런가?

    찬성: 5 | 반대: 0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3.04.11 10:24
    No. 2

    잘 보고 있어요.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99 ehqur
    작성일
    23.04.11 17:04
    No. 3

    지금 극장 망한다고 난리던데 때되면 상징적인 몇곳만 나두고 비싸게 처분해야할지도.

    찬성: 3 | 반대: 0

  • 작성자
    Lv.99 하얀유니콘
    작성일
    23.04.11 17:43
    No. 4

    극장은 대표적 대기업 극장체인 세곳이
    극장표가격으로 장난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낱알 털기라고 하죠.
    극장 근처 팔려고 나오는 상가나 택지들
    싸게 구입하려고 그런걸지도
    그런부문에서는 선수들이니...

    찬성: 2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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