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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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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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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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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1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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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영화제. (5)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영화는 다소 거칠고 혼란스럽다. Eye-MAX의 화면비에 어떤 미학이 있는지 알지 못하겠다. 하지만 <복수의 꽃>을 통해 가까운 미래의 상업영화 일면을 훔쳐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Entertainment Weekly(미국).


[근사한 화면과 처절한 민중의 삶 사이에서 감독은 혼란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것 같다. 우리는 모두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인지 진실은 언제나 감춰져 있다는 걸 말하는 것인지 솔직히 나는 혼란스럽다.]

- The Hollywood Reporter(미국).


[지호 류는 영화산업의 새로운 방향과 감독으로서의 예술성 두 가지를 모두 손에 쥐려는 야망을 가진 것 같다. 안타깝지만 아직 그의 야망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 Der Spiegel(독일).


[사건의 인과관계라든가 서사구조가 촘촘하지 않고 다소 느슨하지만, 배우들의 사실적인 연기로 인해 장면을 풍성하게 채워내고 있다. 그리고 Eye-MAX가 보여주는 스펙터클은 제한적이지만 하나같이 아름답고 때로는 가슴이 아리다. 분명 영화를 보고 있으나 등장인물 삶의 일면을 지켜보거나 내면을 들여다보는 느낌마저 든다. 시대의 비극을 기반한 작품이지만, 시대의 아픔보다 더 크게 와 닿는 것은 시대를 살아갔던 평범하지만 비범하기도 한 보통 사람들의 고단함과 그 속에 담긴 정신이다.]

- Westdeutsche Allgemeine Zeitung(독일).


[전작들에서 간간이 보였던 파격적인 엔딩 대신 대중영합주의적인 안전한 결말로 마무리한 것이 다소 아쉽다. 류지호가 수천 명의 사람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책임지고 있다곤 해도 90년대 보여줬던 패기를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 Variety(미국).


[근대 조선이라는 특별한 배경, 압도적인 미장센과 함께 2시간8분이 향기롭고 맛있게 지나간다.]

- Le Monde(프랑스).


[타이틀롤을 맡은 송라원은 정적인데다 왠지 모르게 쓸쓸함이 느껴지는 소녀를 형상화했다. 완성형의 연기라고는 볼 수 없지만, 미완의 청춘 그대로의 모습이다. 특히 엔딩신의 묵직함과 여운은 신인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송라원의 눈빛과 목소리로 만들어낸 명장면이다.]

- Positif(프랑스).


[<복수의 꽃>에서 다양한 종류의 롱테이크를 선보인다. 고정된 앵글로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오랜 시간 담아낸 장면들은 생태계의 웅장함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관객들을 압도시킨다. 그런 점이 이 영화만의 매력 포인트다. 반면 역동적인 카메라 워킹을 사용한 롱테이크 추격 씬은 거대한 자연 앞의 미약한 인간에게 초점을 맞춰, 긴장감을 이끌어내며 관객들의 허리를 바로 세우게 한다. 자연이란 역사를 관찰하고 기록한 그것대로 역사 자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 Bianco e Nero(이탈리아).


[현대영화에 있어서 미학적으로 정체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복수의 꽃>이 도그마 운동과 상업영화에서의 디지털 시네마 도입 같은 시도처럼, 미래의 새로운 영화를 모색하는 시도가 될지는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항상 안전 대신 도전과 시도를 멈추지 않는 지호 류에게 자신 소유 기업의 제품을 홍보한다고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그가 왜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중략) 두 개의 시퀀스에서 그 의미를 찾았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도입부의 전쟁 시퀀스와 숲 속에서의 결투가 그것이다. 아마 디렉터 류의 다음 작품은 디지털과 3D의 결합이라든가, 혹은 Eye-MAX와 3D를 결합한 실사영화가 될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것들은 그만이 할 수 있는 영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그가 영화로 돈을 버는 것에는 크게 관심이 없고, 오로지 새로운 영화 형식에 대해 깊이 탐구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감독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실패는 다른 창작자들과 스튜디오에게 좋은 교재가 되어줄 것이고, 그의 성공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것이다.]

- Sight & Sound(영국).


일부 까칠한 평론가의 비평을 빼곤 전반적으로 호평이 주를 이루었다.


“할리우드의 진부하고 지루한 상업영화에서 류지호가 다시 과거의 어떤 지점으로 돌아간 것을 환영한다.”


어떤 기자는 할리우드 액션영화로 재능낭비하지 말고 한국에서 영화를 찍으라는 조언을 남기기도 했다.

권위 있는 모 평론가는 유독 남들이 안 하는 시스템이나 포맷에 집착하는 류지호의 태도를 꼬집으며 영화의 본질을 탐구하라고 점잖게 충고하기도 했다.


[이래저래 급작스러운 경쟁작 초청으로 구설수에 휘말려 있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지브리는 일본 군국주의의 치졸한 변명 혹은 전쟁의 아픔을 그린 반전의 수작이란 극단의 평가가 나오는 <반딧불의 묘>를 만든 스튜디오다. 지호 류와 같은 많은 한국인들은 <반딧불의 묘>를 보고 일본의 치졸한 자기 위안과 변명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전범국가인 일본을 마치 피해자인양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복수의 꽃>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성격을 풍자적으로 역전시킴으로써 자기성찰의 계기로 삼으려고 한다. 다만 애국주의 계몽을 드러내는 엔딩은..... (중략) 프랑소와 트뤼포의 <비련의 신부> 같은 여성 복수극인 줄 알고 영화를 보러가서 극장을 나설 때는 오시마 나기사의 <감각의 제국>의 사무라이 영화 버전을 떠올렸다. 비록 <복수의 꽃>이 <감각의 제국>만큼의 충격을 선사하진 못했지만, 선혈 낭자한 폭력은 괜찮고 포르노는 불편해 하는 문제에 대한 질문만큼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포르노는 몰래 숨어서 즐기고 사실적인 폭력은 다 함께 극장에 모여서 즐기는 모습은 과연 상식적일까? 영화와는 상관없지만 그런 질문이 문득 떠올랐다.]

- Sight & Sound(영국).


서구권에서 한국영화는 같은 아시아권의 일본영화와 묶어서 분석이라도 되는 것인지.

일부 평론가는 일본 거장들의 영화와 <복수의 꽃>을 비교하며 류지호가 의도하지 않은 것을 그럴 듯한 말로 포장했다.

어쨌든 영화제 안팎에서 <복수의 꽃>을 황금곰상에 유력한 수상 후보작으로 점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상업영화에서 처음으로 Eye-MAX 포맷을 활용해 대형영화에 대한 미학을 재조명한 실험정신(?)과 군국주의 원죄를 짊어진 독일에게 과거의 일을 상기시켜줄 만한 주제의식에 가산점을 주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전반적인 초청 작품의 수준과 관계없이 이번 베를린영화제가 눈길을 끄는 점이 있다면 바로 ‘다양성을 인정하라’는 영화제의 표어라고 할 수 있다.


“911 테러사건 이후로 변화한 세계정세와 지성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자 하는 베를린영화제의 의지의 표현입니다.”


집행위원장의 말처럼 이번 영화제에서 선정된 작품들은 각 문화권에 알려지지 않은 풍습이나 미신 등 이질적인 삶의 방식뿐 아니라 서로 다른 종교와 철학을 묘사하는 것들로 채워졌다.

또한 정치적 올바름, 그리고 가족의 붕괴와 재건 가능성이라는 두 가지 주제가 단연 돋보였다.

어쨌든 이번 베를린영화제에서 문제작은 드물었다.

그럼에도 여느 해 못지않게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특히 영화제 종반으로 향하며 공개된 한국 영화 두 편이 바람을 일으켰다.

한국영화 <복수의 꽃>과 <나쁜남자>가 다소 맥 빠진 베를린영화제의 후반기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복꽃>이 황금곰상만 수상하면, 한국에서 300만은 기본으로 먹고 들어가는데...”

“은곰상만 받아도 어디야?”

“심사위원대상은?”

“감독상이면 더 좋지 않을까? 그러면 감독님 이름 걸고 홍보할 수 있잖아.”

“뭐래니? 포스터에 감독님 이름이야 당연히 크게 들어가는 거고.”

“내 생각에는 300만은 조금 힘들 것 같아.”

“재수 없는 소리 한다!”

“그렇잖아. 이번에 감독님 영화는 정통 드라마보다 작가영화 필이 너무 세.”

“Eye-MAX로 봐야 극대화가 되긴 해.”

“미국에서도 통할까?”

“힘들 걸?“

“배우들이 아무래도 <와호장룡>의 두 주인공과 비교하면 미국에서 인지도가 아예 없으니까.”

“그러게 박중환씨를 캐스팅했으면 좋았잖아.”

“<Escape> 정도로 선전 해준다면 정말 하느님 부처님 땡큐 베리 감사지.”

“미국애들은 자막 보는 걸 싫어해.”

“더빙 생각은 없으시대?”

“Eye-MAX는 무조건 자막으로 상영하시겠대.”

“어차피 해외 판매로 제작비는 거의 다 회수했으니까.”


베를린의 필름마켓에 와 있는 WaW 해외영화팀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직원들 모두가 <복수의 꽃>의 수상을 간절히 기원했다.

국제영화제 수상은 누군가에게는 영예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실적으로 직결되는 문제다.

베를린영화제가 막바지로 향하며 최고영예를 누가 차지하게 될 것인가로 모든 관심이 집중됐다.

<복수의 꽃>이 강력한 수상작으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류지호는 다소 엉뚱한 행보를 보였다.

류지호는 경호원만 대동하고 몇 개 영화제 공식 상영관을 순회했다.

지인들의 시사회가 열리는 극장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60년대 유럽영화를 소개하는 회고전이 열리는 곳들이었다.

당대 유렵 지성을 이끌었던 영화를 소개하는 회고전에는 주로 중년 이상의 관객이 많았다.

특히 장 뤽 고다르의 <미치광이 피에로>, 로만 폴란스키의 <물속의 칼>,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일식> 등이 상영되는 극장은 중년 관객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류지호 역시 그들 사이에서 명작들의 향기에 취했다.

60년대 명작 유럽영화를 극장에서 필름으로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았다.

유럽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 회고전에서나 볼 수 있다.

어쨌든 한국에서 <나쁜남자> 관계자들까지 베를린에 도착하면서 언론의 한국영화 취재경쟁도 점점 뜨거워졌다.

독일현지 영화팬들에게 가장 인지도나 인기가 많은 한국 영화인은 류지호였고, 유럽 영화제 관계자들에게 많은 초청을 받는 인물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었으며, 가장 논쟁적인 인물은 김우혁 감독이었다.

그간 유럽영화제에서 한국영화의 위상이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끼어서 다소 애매한 포지션이었는데, 류지호가 한국영화를 경쟁부문에 올림으로써 올 베를린영화제만큼은 한국영화의 위상을 한껏 끌어올렸다.

그것은 필름 마켓에서의 한국영화 판매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 ✻ ✻


류지호는 베를린영화제에서 삼일 간 머물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공식 일정만으로 숨이 막힐 정도로 빡빡했다.

이 일정은 WaW 글로벌 비즈니스팀과 매니지먼트 CHAN이 협의해서 관리했다.

워낙 찾는 곳이 많아 선별의 선별을 거쳤음에도 눈 떠 있는 시간 동안 분 단위로 쪼개서 일정을 소화했다.

공식 시사회, 추가된 시사회, 긴급 편성된 시사회에 필름마켓 바이어를 위한 클리닝 시사회에도 얼굴을 비춰야 했다.

영화제 공식 기자회견 외에도 따로 주요 매체들과 인터뷰를 했다.

독일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한국에서 온 연예정보프로그램 출연도 빼놓을 수 없었다.

영화제 내내 각종 파티초대장이 쏟아졌다.

몸이 한 개인 류지호로서는 그 모든 파티에 다닐 수가 없었다.

따라서 영화제 공식 파티, Tri-Stellar 파티, 한국 영화진흥위원회 주최 파티만 참석했다.

묵고 있는 Pritzkers Hotel 프레지던셜 스위트에서 따로 개인 파티를 열기도 했다.

유럽에는 지인이랄 수 있는 이들이 많지는 않았다.

주로 ParaMax의 알버트 마샬의 인맥들이 초대되어 친분을 다졌다.

특히 2000년 전후로 독일영화계에 등장한 ‘베를린학파’(Berliner Schule) 감독들이 파티에 몇 명 초대됐다.

20세기 초 황금기를 맞았던 독일 영화는 1970년대에 '뉴 저먼 시네마'의 도래와 더불어 짧은 부흥기를 가진 뒤 20년 넘게 국제적으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최근 그 침묵을 깨고 세계 평단이 다시 독일 영화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은 베를린을 거점으로 활동 중인 재능 있는 영화감독들 때문이다.

바로 베를린파라고 불리는 독일영화텔레비전아카데미(DFFB) 출신 감독들이다.

일부 베를린학파 감독들은 롱테이크, 롱숏, 절제된 대사가 특징인데, 이번 베를린영화제에서 소개된 류지호의 <복수의 꽃>은 그들에게 완벽한 대안으로 다가왔다.

미니멀리즘적이고, 무기력하며, 미학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그들이 <복수의 꽃>을 보고 열광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당연한 것처럼 보였다.

공통의 관심사를 가지고 대화를 나누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그런데 웃기만 해도 33kcal가 소모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말을 할 때도 당연히 칼로리가 소모된다.

생각하거나 읽거나 말하는 등의 두뇌 활동을 하면 1분당 1.5㎉가 소모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사실 걷기는 1분당 4㎉, 격한 운동은 10㎉로 훨씬 많은 칼로리가 소모되기에 말하는 것이 에너지 소모가 그리 큰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없다.

류지호의 사교활동은 즐기는 행위보다는 업무 성격이 강할 때가 많다.

정신노동이 반복되면 번아웃이나 면역계 이상 같은 여러 만성 스트레스 증상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UCLA 메니컬센터 주치의가 뇌가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충분한 수면을 권고했다.


“뭐예요?”


손님들이 모두가 돌아간 후에 알버트 마샬이 보고서 하나를 내밀었다.

보고서에는 십여 편의 영화의 기획안이 정리되어 있었다.


“ParaMax가 검토 중인 독일영화들이네.”


ParaMax는 글로벌 현지화 전략에 따라 법인이 있는 세계 각국 영화계에 현지영화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현지 콘텐츠 확보차원이자 추후 StreamFlicks의 현지화 전략 실험이었다.


“일단 5년 간 십여 편에.....”

“됐어요.”


류지호가 보고서를 다시 알바트 마샬에게 돌려주었다.


“앞으로 이런 거 내게 가져오지 마세요.”


알버트 마샬이 아쉽다는 얼굴로 보고서를 받아들었다.


“JHO pictures와 내 영화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요.”


영화 한두 편에 웃고 울던 시절은 먼 옛날처럼 느껴지는 요즘이다.

게다가 ParaMax Entertainment는 적은 예산으로 영화를 제작해서 적게 벌거나 적게 잃는 회사다.

앞으로도 그런 기조는 바꾸지 않을 생각이다.


‘크게 한 탕 해먹는 것은 Tri-Stellar로 충분하니까.’


세미나에도 참석하고, 컨퍼런스에도 참여했으며, 공식 파티에도 다녀왔다.

마지막 일정은 한국영화 리셉션이었다.

소닉센터의 한 바를 빌려 개최한 한국영화 리셉션에는 한국 관계자들 외에도 많은 외국인들이 몰려들어 성황을 이뤘다.

높으신 양반들이 총출동했다.

주독일 대사와 공사, 문화공보원장, 문화관광부 영상진흥과장,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 부산영상위원장 등.

한국영화 관계자들은 한국영화의 수상 가능성을 높게 점치는 분위기였다.

반면에 류지호는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할리우드 영화의 공세에서 유의미한 자국 점유율을 유지하는 국가는 인도와 한국 등을 제외하고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그 같은 상황에서 독일은 유럽국가 중에서도 유독 맥을 못 추고 있죠.”


류지호의 말에 한국영화 관계자들이 귀를 쫑긋 세웠다.


“베를린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친 할리우드 성향 인사에서 독일영화 우대 성향으로 바뀌면서 독일영화와 유럽영화를 밀어주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어요. 본선 초청작 면면만 봐도 노골적이지 않나요?”


욕을 먹을 것 같으니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기습적으로 본선 경쟁작에 올리고, 중후반에 공개된 류지호의 <복수의 꽃>을 한껏 띄워주고 있다.


“오다가다 들어보니까 <복수의 꽃>이 황금곰상 유력 후보작이고 만약 받지 못하더라도 감독상이나 최소한 심사위원대상은 줄 것 같다고 하더구만.”


나름 국제영화제 마당발인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에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노골적으로 독일영화를 밀어줄 순 없을 걸세. 미국의 독립영화 3편과 유럽 영화가 골고루 나눠가지면서 그 안에 독일영화를 끼워 넣겠지.”


비평가 앤소니 레인(Antony Rayn)의 생각도 비슷한 모양이다.


“베를린영화제가 나름 절박하다네.”


앤소니 레인은 한국영화의 영어 자막으로 인연을 맺은 후로 유럽에 한국영화를 열심히 소개하고 다니고 있는 친한파 인사다.

대중들은 영화 비평가와 평론가를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구분해야 한다.

비평가는 논리적으로 평가하는 전문가다.

평론가 역시 전문가이지만 영화에 대한 정보제공이 주된 일이다.

비평가는 영화에 대해 전문적이고 깊이 있게 평가한다면 평론가는 일반적인 수준에서 평가를 한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심지어 SNS와 각종 커뮤니티가 발전한 시대에는 비평가보다 평론가의역할이 더 중요해진다.

온갖 정보가 난무하는 시대에는 전문가가 좀 더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정보를 제공해야만 영화팬들이 혼란을 겪지 않기 때문이다.

암튼...


“비평적 찬사를 듣는 것도 좋지만, 관객반응이 더 신경이 쓰이네요.”


앤소니 레인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전 회 매진에 영화 중간에 자리를 뜨는 관객이 5% 미만이면 굉장한 걸세.”

“극영화를 Eye-MAX로 본다는 호기심 때문이겠죠. 35mm 포맷으로 특별상영한 극장에서는 중간에 많이들 빠져나갔다고 들었어요.”

“1,800석을 매진시키고 끝까지 1,700명이 자리를 뜨지 않았다는 건 대단한 거야.”


영화제라는 특수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와이드 릴리즈가 되었었을 때도 극장 객석을 채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하이. 토니~”


노신사가 앤소니 레인에게 인사를 건넸다.


“간제라씨.”


저널리스트이자 영화 비평가 레이너 간제라(Rayner gansera).

90년대 베를린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세 명의 독일영화감독에게 일명 ‘베를린학파’라는 명칭을 최초로 쓴 영화비평가다.

침체에 빠진 독일영화계에 혜성같이 나타난 베를린학파라고 불린 감독들은 나치, 파시즘의 유산, 독일 통일 등 거시적 주제를 다룬 주류 독일 영화들과 달리 일상의 관찰에 몰두했다.

도전적이고 탈관습적인 영화들을 내놓지만 그렇다고 아방가르드 영화는 아니었다.

정제된 서사를 기반으로 독일인들의 삶과 내면을 스크린에 옮겼다.

‘베를린학파’라고 해서 ‘뉴 저먼 시네마’처럼 사조로서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영화비평가 레이너 간제라가 처음 명명한 것을 시작으로 독일에서 떠오르는 신예감독들을 싸잡아 일컫다보니, 독일 영화계 안에서도 논란이 있었다.

어찌 되었든 독일영화에서 작가주의 영화 부활을 독려하는 비평가 중 한 명이다.


“디렉터, 그 탈놀이는 도대체 무슨 의미지?”


하회별신굿 탈놀이에 대해 묻는 이들이 많았다.


“그 같은 주술적 행위가 종합예술적 성격을 띠는 것은 알겠는데, 영화에서 묘사하는 탈놀이는 좀 더 연극적이고 뮤지컬 성격까지 띠고 있더군.”


<복수의 꽃> 엔딩의 하회별신굿 탈놀이에서 유독 양반, 선비, 천민을 모두 싸잡아 조롱하는 한 대목을 강조했다.

양반, 선비, 백정이 서로 소불알이 제 것이라고 잡아당기다가 떨어뜨린다.

할미탈을 쓴 배우가 소불알을 쥐고 혀를 찬다.


[쯧쯧쯧. 소불알 하나를 가지고 양반이 지 불알이라고 하고, 선비도 지 불알이라고 하고, 백정도 지 불알이라고 하니 도대체 이 불알은 뉘 불알인고? 육십 평생을 살아도 소불알 가지고 싸우는 꼴들은 첨 봤다 첨 봤어. 에이고! 몹쓸 인간들이라니....]


특히나 하회별신굿 탈놀이 12마당 중 할미마당을 강조해서 묘사했다.

쪽박을 허리에 찬 할미가 마당(무대)에 등장해 베를 짜며 신세타령을 베틀가로 읊는다,


[춘아, 춘아 옥단 춘아 성황당에 신령님네 시단춘이 춘이련가. 시집간지 사흘만에 이런일이 또 있는가 열다섯살 먹은 나이 과부될 줄 알았다면 시집갈년 누이런가 바디잡아 치는소리 일평생을 시집살이 아구답답 내 팔자야.]


베틀가가 끝나면 영감과 할미의 청어 먹는 다툼이 벌어진다.

청어 한 두름을 독식한 할미를 통해 가부장적 권위를 부정하고 남녀 간의 상하관계를 뒤집어 버림으로써 사회질서에 저항하는 당시 민중의식을 표현했다.

류지호가 상상으로 만들어낸 대목이 아니다.

실제 안동하회별신굿 탈놀이의 한 마당의 내용이 그렇다.

그 외에도 파계승을 통해 당시 불교 타락을 꼬집고, 지배계층의 허위와 모순을 조롱하고, 민중의 궁핍한 삶속에서도 공동체 의식을 고취시켰다는 등 자신이 공부한 하회별신굿 탈놀이에 대해 대략적으로 설명했다.


“그 놀이는 12세기부터 한국의 한 지방에서 연례로 행해졌고, 일부 소실된 부분도 있지만 거의 원형이 유지되어 계승되고 있답니다.”

“<복수의 꽃>은 그 탈놀이를 위해 모든 장면과 이야기가 존재했던 것이군.”


레이너 간제라가 중얼거린 것처럼 <복수의 꽃>은 안동하회별신굿 탈놀이에서 상당부분 신세를 지고 있다.

무동마당-주지마당-백정마당-할미마당-파계승마당-양반·선비마당-혼례마당-선방마당.

기본적으로 하회별신굿은 17세 처녀인 서낭신을 위로하기 위해 치르는 종교행사였다.

그 행사를 마친 후 탈놀이를 통해 억눌린 민중의 감정을 토해냈다.

동학농민전쟁이라는 시대 배경을 두고 하회별신굿의 여러 캐릭터와 풍자, 해학을 <복수의 꽃>으로 끌고 들어왔다.


“영화에서 유머가 부족한 것이 아쉽더군.”

“유머가 있긴 해요. 한국의 특정 지방의 사투리의 뉘앙스를 외국어로 옮기면서 백퍼센트 전달하지 못했죠.”

“하해?”

“한국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마을이란... 관심 있으면 사무실 주소 알려주세요. 한국에 돌아가게 되면 관련된 자료를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래주겠나?”

“아마 한국 대사관에도 배포자료가 있긴 할 텐데,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룬 것은 없을 겁니다.”


레이너 간제라는 영화제 심사위원을 맡기도 했고, 독일 영화 비평계에서는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와 친분을 맺어두면 WaW 엔터테인먼트에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앤소니 레인이 영국을 중심으로 한국영화를 열심히 소개하는 것처럼 독일에 한국영화 전도사가 되지 말라는 법이도 없다.


‘한국문화를 알리는 게 뭐 별 건가....?’


문화행사를 거창하게 열어줄 수도 있지만, 유명한 글쟁이들에게 한국문화나 역사와 관련한 책이나 자료를 전해주어도 큰 도움이 된다.

두 사람은 각 나라에서 꽤나 이름값이 있는 영화비평가이자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복수의 꽃>이 유럽에서 개봉할 때가 되면 류지호가 전해준 자료를 읽고 좀 더 깊이 있는 비평문을 작성해 유력한 영화잡지에 기고할 것이다.

자연스럽게 동학농민전쟁과 안동하회별신굿 탈놀이가 비중 있게 언급될 것이고, 누군가는 그것에 관심을 가지게 될 수도 있다.


‘까치가 울어야 손님이 오지.’


영화제에서 비평적 찬사를 받는 것도 좋은 일이다.

한편으로 영화를 팔아먹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더 많은 국가에서 더 많은 관객과 영화가 만나야 한국영화를 알리든 문화든 알릴 수가 있을 테니까.

지금까지 한국영화는 낮선 문화에 대해 호기심을 가진 극소수 유럽인 혹은 소수의 지식 교양인들이 주로 찾아보던 애호가를 위한 대중문화였다.

유럽 대중 사이로 한국영화가 침투하기 위해서는 예술영화·작가주의 영화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어쨌든 류지호는 두 비평가가 연락처를 적어서 건넨 명함을 챙긴 후, 다른 일행들에게 발길을 돌렸다.


작가의말

일본의 4대 거장이라고 불리는 감독들은 대체로 리얼리즘과 비판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름을 떨치던 시기의 일본은 지식인들이 사회와 세상을 보는 날카로운 눈과 이성이 있었고 그것이 받아들여지던 시대였을 겁니다. 현재 일본은 그런 것들이 실종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일본에도 좋은 감독들 많습니다. 문제는 3대 메이저가 창작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말할 것도 없고 만화와 애니메이션도 시대를 뛰어넘는 명작이라고 할 만한 것이 가뭄에 콩나듯이 나오는 것을 보면 일본 엔터 산업은 고이다 못해 썩어가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고. 물론 여전히 일본 망가와 애니는 잘 나가고 있지만 말입니다.

즐겁고 행복한 하루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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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8

  • 작성자
    Lv.99 ehqur
    작성일
    23.04.19 09:57
    No. 1

    한국에서 천만 찍나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8 모란
    작성일
    23.04.19 10:37
    No. 2

    투명드래곤이 울어도 손님이 온겁니다!!!!!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99 글램스
    작성일
    23.04.19 11:17
    No. 3

    중간에 간제라가 등장할 때 레인즈 이름이 다릅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3 트뤼포
    작성일
    23.04.19 11:56
    No. 4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2 쥬논13
    작성일
    23.04.19 12:50
    No. 5

    일본의 좋은 감독은 해외에서 자본을 끌어들이는거 말고는 영화찍는게 어렵다네요.
    신카이 마코토 처럼 광고찍고 그돈으로 제작하는것처럼 제작비 조달이 거지같다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8 허클베리
    작성일
    23.04.19 15:33
    No. 6

    잘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3.04.19 17:13
    No. 7

    이득 분배 문제로 대만과 일본 영화 산업이 망한 거죠. 영화를 제작해 적자만 나면 누가 제작을 하겠어요? 대만이나 일본이나 기득권층이 담합해 다 먹으려 판 짰다가 시장 자체를 말아 먹었죠. 일본 애니 실사화가 많은 이유는 그쪽은 이득 분배가 영화에 비해 괜찮거든요. 잘 보고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하얀유니콘
    작성일
    23.04.19 19:29
    No. 8

    일본도 한국도 젊은 세대들이 사회와
    자신 들에 대한 비판에 눈 과 귀를 막고
    입 을 안여는게 문제입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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