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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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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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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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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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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한국영화에 애정이 있구나....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선수들은 또 어떻고요....”

“선수들은 모두 미국진출 시키면 되고, 우리 피해라고 해봐야 다솜방송의 게임 채널 콘텐츠 하나를 잃는 것 정도네요.”


류지호가 호프잔을 들어올렸다.


“건배!”


주변 직원들이 일제히 호프잔을 류지호에게 부딪쳤다.


꿀꺽꿀꺽.


얼마 남지 않은 생맥주를 다 마시고 500cc를 한 잔 더 시켰다.


“협회 회장이 누군지 알아요?”

“올미디어 사장입니다.”


원래 역사대로라면 빅라이트에서 Snowstorm 게임을 유통해야 했다.

류지호로 인해 스펙트럼 홈엔터테인먼트의 차지가 됐다.

빅라이트 소프트는 이전 삶의 영향력을 갖지 못했다.

때문에 다솜방송과 게임 콘텐츠 분야에서 경쟁하고 있는 올미디어가 협회 주도권을 쥐고 있는 모양이다.


“협회 만들어 뭔가 한자리 차지하면, 대단한 감투라도 쓴 것처럼 굴어요, 사람들이. 밥그릇 싸움에 우리를 끌어들일 생각이라면 처음부터 단념하게 만들면 됩니다. 극단적인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합니다. 암튼 내 뜻은 그래요.”


실상 Snowstorm Entertainment가 게임을 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못하는 사람들이다.

류지호는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게다가 다솜방송은 한국에서 컴퓨터 게임 생중계와 관련된 여러 기술에 있어서 실용실안 을 얻어놓은 상황이다.

게임 방송이라는 포괄적 콘텐츠에 대한 저작권, 상표권도 인정을 받았다.

오랜 시간의 노력 끝에 이뤄냈다.

때문에 올 미디어와 MBS 게임은 다솜방송에 일정의 로열티를 지불하고 게임 생방송 기술을 활용하고 있었다.

다솜방송과 Snowstorm Entertainment가 E-스포츠 콘텐츠 관련 권리 일체를 주장하고 나서면 협회가 중계권 장사고 횡포고 뭐고 할 수가 없게 판을 만들어 놨다.


“여러분이 협회랍시고 깝치는 그들보다 갑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워낙 류지호의 이름값이 높아서 그렇지 가온그룹의 저력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다만 가온그룹 계열사 직원이라도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의 실체를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가온그룹은 대규모기업집단이며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이다.

그런데 대유가온증권을 제외하고 모든 계열사들이 비상장기업이다.

때문에 최소한의 공시의무만 있다.

아직은 비상장기업 중요사항 공시제도가 도입되기 전이기에 가온그룹의 소유지배구조, 경영활동 등이 대부분 베일에 가려져 있다.

비상장기업이기에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하는 재계 순위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니 10대 재벌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란 사실을 체감하지 못했다.


“가온그룹 만세!”

“류지호 의장님 만세!”

“의장님, 원샷!”

“마셔라~ 마셔라~”


하하하.

호호호.


소탈하게 평직원들과 생맥주 파티를 하는 재벌.

평직원과 계급장 떼고 소탈하게 마주하는 청년 기업가.

SNS가 활성화된 시기였다면 온갖 닭살 돋는 글들이 쏟아졌을 터.

아직까지는 인생에서 다시없을 특별한 추억으로 남는 날... 그 정도일 뿐.

전략기획실 언론대응팀이 보도자료를 뿌리지 않는다면 알려질 일도 없다.


“여보세요.”

- 예. 의장님!


뒤풀이가 끝나자마자 류지호가 김우영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략2팀, 커뮤니케이션팀, 인재개발팀, 그룹홍보마케팅팀, Aram 최준영 대표를 모아보세요."

- 지시하실 안건은 뭐라고 할까요?

"그룹 사내 커뮤니케이션 및 홍보분야 강화입니다.”


그 동안 그룹홍보에 대해 신경을 덜 썼던 면이 없진 않았다.

이번 참에 기본적인 기업홍보물 외에도 가온그룹 내부의 독특한 문화를 매스컴을 통해 공개하기로 했다.

류지호는 복지 정책 외에도 가온그룹만의 여러 정책들을 공개해 대외 이미지를 좋게 만들고, 임직원들의 자부심을 고취시키는 동시에 유능한 직원을 채용하는 유인책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지시했다.


❉ ❉ ❉


한남동 주택으로 여섯 명의 여성들이 들이닥쳤다.

여성들을 지휘하고 있는 김민아는 곧장 류지호의 옷방으로 쳐들어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류지호는 거실에 앉아 보고서를 들춰볼 뿐.


“감독님, 정장은 옷 방에 있는 옷들이 다예요?”

“그럴걸요?”

“캐주얼 재킷은 다섯 벌이 다고요?”

“그럴걸요?”

“구두는 현관 신발장 말고 다른 곳에는 없어요?”

“그럴걸요?”


쉴 새 없이 물어보는 여성은 매니지먼트 CHAN과 일하는 스타일리스트였다.

스타일리스트는 조수들과 한참을 쑥덕거리더니, 조수들에게 심부름을 보냈다.

2시간이 흘러 조수들이 짐 한보따리를 싸들고 돌아왔다.


“감독님! 2층으로 잠시 올라와 보세요.”


류지호는 보던 보고서를 한쪽에 놓고, 2층으로 올라갔다.

2층 거실은 임시 피팅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행어에 갖가지 의상이 걸려있고, 테이블 위에는 넥타이, 핀, 시계 등 각종 액세서리가 펼쳐져 있었다.

구두도 스타일별로 몇 켤레가 놓여 있었다.

지루한 표정의 류지호가 전신거울 앞에 섰다.

스타일리스트가 셔츠와 재킷을 류지호 몸에 대보기 시작했다.

자신들끼리 쑥덕거리다가 김민아를 쳐다봤다.


“감독님, 이 옷들로 갈아입고 오세요.”


류지호는 군소리 없이 김민아의 말을 따랐다.

그렇게 몇 차례 의상을 갈아입어 본 끝에 KBC 심야토론에 입고 나갈 의상이 결정되었다.


“감독님, 혹시 수염 기르세요?”

“아니요. 관리하기 귀찮아서....”

“수염이 풍성하신 편은 아니죠?”

“간신수염은 아닌데, 수북하게 나지는 않아요.”

“일단 심야토론 출연하기 전 날까지 면도는 하지 말아주세요.”

“.....?”

“넥타이는 매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고요. 안경도 빼고, 헤어스타일은 나이 들어 보이지 않게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로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정장보다 캐주얼 재킷이 좋을 것 같아요.”

“수염은 어느 정도까지....”


대기하고 있던 조수가 얼른 콘셉트 북을 열어 류지호에게 내밀었다.

코 밑 인중과 턱의 일부에 수염이 난 외국 모델의 얼굴 사진이다.


“벤처 기업가처럼 보이면서 수염으로 남성미를 강조하려고 하는 겁니까?”

“예. 감독님은 실제 나이와 상관없이 회장님이란 노회한 이미지가 있어요. 토론프로그램 패널에서 너무 벗어나지 않는 튀지 않는 캐주얼 재킷에 노타이로 자유분방한 느낌을 주고, 수염으로 남성미와 함께 예술가 느낌을 살리는 콘셉트에요.”

“이 사진처럼 콧수염과 턱수염만 남겨두면 되는 거죠?”

“녹화 들어가기 전에 저희가 스타일링 해드릴 거예요.”

“시계는....?”

“감독님이 평소 차시는 시계나 협찬 받은 브랜드가 너무 럭셔리 브랜드에요. 일반 토크쇼라면 시계를 차시라고 하고 싶지만, 진지한 프로그램에 출연하시는 거라 시계뿐만 아니라 액세서리도 거의 안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알겠어요. 다 끝난 거죠?”

“수고하셨습니다.”


스타일리스트와 조수들이 준비한 옷가지들을 챙겨 집을 떠났다.

남아서 뒷정리를 하는 김민아에게 류지호가 물었다.


“이렇게 요란스럽게 코디를 할 필요가 있어?”

“매니지먼트 CHAN 최고 고객이자 셀럽이잖아. 그 동안 우리는 아무 것도 한 게 없었어. 이번엔 아무소리 하지 말고 따라줬으면 해.”

“겨우 토론프로그램에?”

“넌 연예인들의 연예인이야. 우리 스타일리스트가 TV 출연한다고 얼마나 머리를 싸맸는데.”

“지난 번 춘사시상식 때도 한바탕 난리를 피우더니. 원래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넌 특별하니까.”

“매니지먼트 하더니 입에 꿀 바른 말도 잘하네?”

“한국에서 길거리 다닐 때 사인 요청 별로 안 받지?”

“경호원과 다니니까.”

“대중들이 널 볼 때 편안한 형·오빠라기보다는 감히 말도 섞어볼 수 없는 재벌 회장님 같은 이미지가 있어.”


그런 시선이 딱히 불편하진 않았다.


“넌 별로 신경 쓰지 않을 테지만, 매니지먼트인 우리는 달라. CHAN에서 네 이미지를 관리할 필요가 있어. 귀찮게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런 일이 있을 경우에 이해 좀 해줘.”

“안 귀찮아. 민아 네가 신경 써 줘서 우리 의전비서들 업무를 줄일 수 있더라. 앞으로도 경호와 비즈니스 미팅 외에 영화감독으로 움직일 때는 계속 너희 쪽에서 일을 봐줘.”

“알겠어.”

“우찬이와 자주 통화는 하고?”

“혹시 우찬이가 입사한 회사가 용병회사야?”

“아니.”

“무슨 파병을 갈지도 모른다느니, 테러와의 전쟁이니 하던데... 걱정 돼 죽겠어.”

“믿지 마. 다 헛소리니까.”

“미국의 보안회사는 준군사기업이라며?”

“JHO는 탐정으로 유명한 회사가 주력이야.”

“그렇지?”

“우찬이는 경호업무는 볼 수 있어도 전쟁터에 용병으로 나갈 일 없어. 나중에 전화해서 그런 소리 하면 파혼한다고 해.”

“근데 무슨 연수를 이렇게 오래 받아?”

“모르지. 제대로 배우고 돌아올 생각인가 봐.”

“돌아오긴 하는 거겠지?”

“그럼! 마누라가 한국에 있는데... 연수 마치고 돌아오면 그냥 식 올려버려.”


김민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밥 먹고 갈래?”

“회사 들어가 봐야 해.”

“베를린 다녀와서 애들 얼굴 한 번 보자.”

“바로 미국 안 넘어갈 거야?”

“아마도....”

“확실한 건 아니구나?”

“먼저 너희들끼리 시간 한 번 맞춰봐. 그런 다음에 알려줘.”

“알겠어.”


김민아가 한남동 집을 떠나고 홀로 남은 류지호는 다시 보고서를 읽기 시작했다.

KBC 심야토론에서 나올 질문에 대한 답과 관련 자료들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이왕 출연하기로 한 것.

어영부영할 생각이 전혀 없는 류지호다.


❉ ❉ ❉


토요일 밤 11시.

이희경 BS그룹 부회장이 일찌감치 퇴근 해 텔레비전 앞에 자리를 잡았다.

평소에는 자사 프로그램 모니터 차원에서 케이블 채널 위주로 틀어놓는다.

KBC1 TV는 볼 일이 없었다.

남편이 물었다.


“안 자?”

“먼저 자. 난 TV 좀 보다가 잘게.”

“무슨 TV 프로그램인데? 새로 런칭한 프로라도 있어?”

“아니. 가온그룹 류지호 의장이 토론프로에 나온다고 해서.”

“멋진 녀석이지.”

“우리 서방도 잘난 남자긴 해.”

“이제 알았어?”


호호호.

이희경은 평소에도 잘 웃었다.

농담도 잘하고.

나이를 따지지 않고 두루두루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

그러는 한편 열정적이고 치밀한 성격이기도 했다.

바쁜 와중에도 BS미디어 방송 채널과 BS엔터테인먼트가 만든 영화는 빼놓지 않고 본다.

채널의 프로그램 선정에도 직접 참여하고 영화 시나리오 초고까지 꼼꼼히 읽는다.

BS엔터테인먼트는 투자·배급 부문 3위, BGV는 극장 부문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진출했을 때 예상했던 것과 다른 성적표다.

미국에서 만난 류지호는 할리우드 비즈니스맨이었다.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경영에 집중할 것으로 생각했다.

당시만 해도 한국영화 시장은 1,000억에도 미치지 못하는 영세한 시장이었으니까.

때문에 한국에서 BS그룹의 경쟁자가 없을 줄 알았다.

그래서 10년이라는 장기계획을 가지고 한국영화에 안착하려고 했다.

그러나 WaW의 행보로 인해 그 모든 것이 꼬여버렸다.

자신들이 선도하는 것이 아니라 쫒아가는 형국이다.

게다가 케이블TV 사업 쪽도 아직 선도자가 아니다.

라이벌이랄 수 있는 올리온 미디어를 쫒아가는 입장이다.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사업에서 뭐하나 시원하게 선도하는 부분이 없었다.

답답했다.


후우....


11시 15분 KBC 생방송 심야토론이 시작되었다.


-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호호.


“류 의장이 스타일에 신경 좀 썼네.”


캐주얼한 재킷에 시원한 느낌을 주는 노타이 셔츠, 2대8 가르마나 올백머리가 아닌 최근 유행하는 멜로드라마 주인공의 헤어스타일, 지저분하지 않은 깔끔하게 정리된 코밑수염과 턱수염.... 배우처럼 우월한 미모는 아니다.

그럼에도 패널들 사이에 홀로 빛났다.


- WaW가 지난 두 달에 걸쳐 진행했던 영화배급과 관련된 사안... 많은 언론과 업계 분들이 사태라고 부르시던데 저는 사안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사안에 대해 말씀하시는 근거들이 무척 빈곤합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한국영화산업에서 한 번도 없었던 새로운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수년 간 이런 식의 배급이 진행되었다면 통계, 데이터, 근거들이 쌓여있었겠지요. 하지만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속단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류지호는 악당 포지션을 자처했다.

사회자가 말을 받아 통계를 제시했다.


- 시장지배적 사업자 추정기준은 상위 1개 회사의 시장점유율이 50%를 넘거나 또는 상위 3사 점유율이 75% 이상인 산업입니다. 현재 한국영화 산업을 보면 WaW, 무비서비스, BS엔터 3개 배급사의 점유율이 76%로 나와 있습니다.


WaW 픽처스의 점유율은 48%로 50%에 근접했다.

다만 3대 메이저의 합산을 보면 시장지배산업이 맞긴 했다.

기업을 옹호하는 입장의 패널이 입을 열었다.


- 2001년 처음으로 75%가 넘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즉각 상대 패널이 반론을 폈다.


- 앞서 데이터도 그렇고. 영화산업이 시장지배산업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 다른 산업과 시장을 볼까요? 맥주의 시장지배도는 100%입니다. 2개 회사만 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설탕도 3개 회사가 100%로 나타나고 있고요. 영업이익률은 높고, R&D비율은 낮습니다. 그리고 해외개방도가 낮고, 내수 집중도는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고요. 정유 같은 경우 선경에너지, 금성칼텍스, 경일오일뱅크, S-석유의 4사 과점체제지요. 자동차는 또 어떻습니까? 자 또 볼까요? 담배는 종전에는 국가 독점사업이었다가 작년부터 허가제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일부 경쟁이 도입이 됐고요. 그러나 여전히 KT&G가 시장점유율 7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라면은 1위 업체가 64% 정도 차지하고 있고요. 커피는 맥시멈 커피믹스가 76%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판유리도 KC, 대한유리공업이 국내의 판유리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화약은 특정 기업이 80%를 상회하는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되어 있고요. 조미료는 또 어떻습니까? BS과 대성이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상대 패널이 준비를 잘해 온 모양이다.


- 다른 시장에서 독과점이 있다고 해서 영화산업도 그래야 하는 건 아닙니다. 류지호 감독님도 의견에 동의하십니까?


편안한 표정의 류지호가 입을 열었다.


- 정유, 자동차, 라면, 맥주, 커피.... 국내시장에서 독과점 문제가 분명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업종도 수출이 많이 되는 분야죠. 그래서 국내시장의 독과점 문제가 크게 부각되고 있진 않죠. 영화 부문은 어떨까요? 작년 한국영화 해외수출이 총 890만 달러. 그 가운데 WaW 픽처스가 560만 달러의 수출 실적을 올렸네요. 한국에서 크게 흥행한 영화들의 수출실적이 높습니다. 물론 아직은 내수시장에서의 매출과 해외 매출 사이에 격차가 큽니다. 하지만 빠른 시간에 라면, 커피, 자동차 등과 마찬가지로 내수와 수출의 격차가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내수시장의 독과점의 혜택만 노리고 대형 영화사들이 영화를 제작배급하고 있지 않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시민단체 소속의 패널이 공격적으로 말했다.


- 미국에서는 지금까지 가장 많은 개봉관을 잡은 영화가 전체 11% 정도였습니다. 그에 반해 WaW는 전체 상영관의 무려 42%에 달하는 스크린에서 한 영화를 상영했죠. 공정거래법상 독과점이라고 할 순 없지만, 명백한 시장교란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토론의 시작은 대기업의 배급 편중 현상과 스크린 독과점 문제였다.

류지호는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반론을 펼 것은 펴면서 무난하게 토론에 적응했다.

다만 자신 쪽에 앉은 패널들이 극단적인 대기업 편향 정치인이었고, 보수적 스탠스의 영화협회 관계자라는 것이 웃겼다.


‘악당 측 포지션에 있기로 했으니까.’


- WaW와 3대 메이저 배급사의 스크린 숫자가 그 만큼 늘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과거 구태의연한 배급방식을 탈피해 선진화를 이뤘죠. 멀티플렉스의 증가로 인한 상영관 수 증가를 고려해야지 무작정 횡포라고 몰아붙여서는 안 됩니다.

- 대기업이 한국 영화산업을 이끌어가는 시스템, 소위 수직 계열화된 구조가 문제라고 봅니다. 이 구조가 고쳐지지 않으면, 한국 영화는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기업이 투자한 영화 외에 다른 영화는 상영 기회조차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번 사태가 그걸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가게가 문을 안 여는데, 관객이 어떤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 가온, BS, 광성, 올리온 4개 대기업은 투자만 하고 제작하지 못 하게 해야 한다고 봅니다. 영화 상영과 배급도 분리해야 하고요. 자기 돈을 벌기 위해 다른 작품을 발로 차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류지호를 먹잇감으로 삼은 티가 역력했다.

상대측 패널들은 류지호를 겨냥한 공격성 발언에 집중했다.


- 많은 분들이 요 몇 년 한국영화가 좀 되는 것 같으니까, 현실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치 한국영화가 산업화에 정착했고, 안정성이 생긴 것처럼. 절대 아니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제 막 일어섰고, 한 발 내딛었을 뿐입니다. 갈 길이 멀다는 말이지요.

- 찬물을 끼얹으시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미리 경쟁자를 막아버리려는 걸로 보입니다.

- 스스로의 역량을 낮춰보는 것도 경계해야겠지만, 지나친 낙관론도 문제가 있습니다. 일각에서 한국영화를 과장해서 자본을 끌어오거나 밖에서 보는 착시에 무턱대고 영화산업으로 자본을 밀어 넣는 모양인데, 냉철해져야 합니다. 영화 같은 흥행산업은 약간의 도박성을 띄고 있다는 걸 알고 들어와야 합니다.

- 건강한 자본이라면 모든 영화인들이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가온이 충무로 영화를 모두 책임질 것도 아니면서....

- 주제와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WaW는 한 해 투자제작배급 영화의 목표 편수를 17편로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스크린이 모자랍니다. 작년 한국영화 제작편수는 58편, 그에 반해 외화는 요 몇 년 100편 정도가 줄어 390여 편입니다. 한국 전체 스크린은 이제 1,071개, 올 해 주요 극장 체인들에서 50개가 추가될 예정이지요. 스크린 독과점도 중요한 이슈입니다만 그보다 더 급한 건 스크린 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매년 한국영화 제작편수가 늘어 3년 후 즈음에 가서는 90편까지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매년 500편의 국내외 영화가 개봉 대기하는 것이지요. 독과점도 문제이지만, 스크린 부족으로 상영기회조차 잡지 못하는 영화가 수두룩해질 겁니다.


패널로 나온 스크린쿼터사주시민연대 참석자는 토론 내내 류지호를 공격하고 싶어 안달이 나있었다.

류지호로서는 바라던 바다.

공격을 해줘야 대주제와 상관없는 부분에서도 마음껏 할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을 테니까.


- WaW는 현행 스크린쿼터 일수의 축소 쪽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공식적으로 그런 이야기 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압니다. 술자리에서 그런 이야기를 몇 번 꺼냈다면 혹시 모르겠지만.

- 스크린쿼터를 반대하는 겁니까?

- 올 연말이나 내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문화다양성 협약’이 상정될 겁니다. 만약 그 안건이 상정된다면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스크린쿼터는 다른 나라들이 문화 정책의 모범으로 삼는 제도가 될 수도 있지요.


여기까지는 희망적인 이야기.


- 그러나 한미FTA가 진행되면 스크린쿼터 폐지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될 겁니다. 그러면 우리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리겠죠. 우린 지난 90년대 그런 상황을 이미 경험했습니다.


스크린쿼터는 영화인들에게는 생존이 달린 문제다.

한편으로 밥그릇 챙기기라는 오해와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지금까지 많은 말을 하지 않고 있던 영화인회의 패널 정우영 감독이 입을 열었다.


-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투쟁이 만약 밥그릇 챙기기라면, 더 치열했어야 하겠지요. 물론 영화인들에게는 스크린쿼터가 축소되면, 그만큼 설 자리가 없어졌을 테니 생존권의 문제이긴 합니다. 밥그릇 챙기기라고 비판한 이들을 그래서 바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밥은 먹고 살아야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닙니까? '어떤 배우는 외국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더라'는 식으로 비판하는 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스크린쿼터 사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대중의 여론을 자기 식으로 환기시키려고 여러 가지 수를 쓰는 거라고 봅니다. 그런 노력의 연장선에서 '벤츠 타고 양담배 피우는 배우들,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내세운 것이겠죠.


정우영 감독은 대기업 편향 정치인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가 공개적으로 밥그릇 챙기기라고 줄기차게 말해왔던 인사였기 때문이다.


- 생존권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한국의 영화 문화가 없어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집요하게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경제논리를 앞세운 패널과 문화와 생존권을 내세우는 패널.

한동안 팽팽한 토론을 이어갔다.

류지호가 토론 중간에 입을 열었다.


- 당연히 영화인들이 일치단결해 스크린쿼터를 지켜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 여러분들이 보시기에 밥그릇 지키는 일이라고 하시겠지만, 영화인들이 목소리를 내줘야 정부 당국이 미국과 협상할 때 명분과 힘을 실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크린쿼터는 한국영화가 자립하기 전까지 오래토록 유지되어야 할 겁니다. 단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조정이 있어야 합니다.

- 축소를 말하는 겁니까?

- 고려대상이 되어야겠죠. 대신 영화계가 양보한 것에 대한 반대급부를 받아내야 하는 것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스크린쿼터가 관객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 일부를 잠깐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올해 한국 멀티플렉스에 Eye-MAX 전용관, 디지털 3D 상영관, 일부 극장에 4D관이 강화됩니다. 문제는 그 상영관도 똑같이 스크린쿼터가 적용된다는 겁니다. 한국영화로 만들어지지도 않는 기술기반 영화들에도 똑같이 스크린쿼터가 적용되게 되면, 관객들은 엉뚱한 한국영화에 비싼 입장료를 내고 봐야할 수도 있습니다. 왜? 모든 상영관은 스크린쿼터를 준수해야 하니까요. 그렇게 되면 스크린쿼터 제도 자체에 틈이 생기게 됩니다.


반대쪽 패널 측에서 입장료를 내려라 같은 얼토당토하지 않은 말은 나오지 않았다.

입장료 인하는 제작사의 수입감소로 이어지니까.


- 한국영화도 언젠가 그런 영화를 만들지 않겠습니까?

- 한국영화 제작비로는 불가능합니다.

- 작년에 감독님이 영화를 찍지 않았습니까?

- 그래서 제작비가 한국영화 평균보다 3배 이상 들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영화 제작비와 수익구조로는 쉽게 Eye-MAX 영화를 시도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Eye-MAX 전용관의 스크린쿼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뭘 어떻게 합니까? 그냥 상영하라고 강제했으니까 한국영화를 틀어야겠지요. 극장이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안 되는 영화 버리는 영화를 걸 수도 있겠네요. 그럼 극장은 몇날 며칠 간 텅텅 비어있을 테고... 투자제작배급사는 누굴 탓해야 할지 몰라 하늘만 처다 보며 담배를 안주삼아 깡소주를 마셔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는 3D·4D상영관도 마찬가지입니다.


류지호는 한국영화가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점과 모순들을 계속해서 제시했다.

때로는 대안도 제시했다.


- 미국처럼 Sliding scale system을 적용, 초반의 엄청난 마케팅 비용을 회수할 수 있는 안전판을 마련하거나, 영화의 힘으로 버티면서 개봉관 수는 대폭 줄더라도, 롱런의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등의 다양한 배급과 상영방식을 고민해봐야 합니다.


2시간 동안 진행된 토론 시간에서 류지호는 발언 기회가 오면 다양한 이야기를 토론 주제로 끌어 올렸다.


- 관객분들, 카드 할인을 받으시죠? 그거 내년부터 극장이 500원 부담합니다. 그래서 GOM은 카드사 할인을 없애고 그냥 자체적으로 1,500원 할인해 드릴까 고민 중에 있습니다.


공통의 딜레마를 류지호가 꺼내면 TV를 보고 있던 이희경 같은 업계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 또 하나 큰 문제는 우리나라가 부가시장이 거의 전멸하고 있다는 겁니다. DVD, 비디오 이런 것들. 한동안은 비디오가 굉장히 잘 운영되는 나라였어요, 우리나라가. DVD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비디오 시장은 일종의 몰락 비슷하게 축소되었죠. 물론 이는 DVD라는 새로운 매체 때문만은 아닙니다. 여러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죠. 인터넷 불법 공유라든가, 저작권을 무시하는 불법복제물의 광범위한 유통구조라든가.


DVD가 한국시장의 비디오를 대체하지 않겠는가 예상하는 사람이 많았다.

현실은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 하나씩 해결할 것이냐. 이렇듯 얽히고설킬 것들을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한꺼번에 해결할 것이냐. 보통 문제들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없습니까?


사회자의 질문에 류지호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작가의말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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