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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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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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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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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1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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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쪽

한국영화에 애정이 있구나....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 한국배급협회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표준상영계약에 대해 연구와 논의가 진행 중 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대략적인 내용에 대해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 아직 확정된 건 없어서 딱히 말씀드릴 건 없습니다만, 몇 가지 이슈에 대한 걸 말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류지호 감독님의 설명을 한 번 들어보도록 하지요.

- 최소 1개의 스크린에서 1개의 영화를 상영하도록 하는 것과 최소 7일 상영보장 및 서면합의 또 교차상영을 할 경우에는 사전에 서면합의를 하거나 개별계약에서 명시하도록 하는 것. 정산을 지연한 경우 지연손해금 지급에 대한 사항도 논의 중인 걸로 압니다. 그 밖에 사전 계약 없이 무료입장 금지, 상영주체 협력 의무에 입장권 할인 내역 명시 등. 가장 중요한 사항은 과연 독과점을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이나 업계 룰이 있는가 하는 정도입니다.


본래 심야토론 방송시간은 1시간 45분이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스크린 독과점을 넘어 다양한 한국영화의 문제점이 튀어나오다 보니 30분이나 시간을 초과했다.

TV 편성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류지호의 출연으로 KBC가 특단의 조치를 단행했다.

어차피 심야시간이라 다음 프로그램을 취소한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도 없었고.

어쨌든 본래 시간을 훌쩍 넘기면서까지 진행된 열띤 토론도 마무리할 때가 왔다.

사회자가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며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 영화 배급을 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과연 배급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입니다.


이어 패널들이 돌아가며 마무리 발언을 했다.


- 한국 영화 시장이 독점화될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예견했던 일입니다. 한국 영화가 3개 대형영화사의 통제 하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독점 자본은 시장에서 가격 결정권을 갖고 유통될 수 있는 물량을 조절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됩니다. 영화 배급 및 상영 시장이 독과점 구조로 정착되면 시장질서가 문란해집니다. 재벌기업들이 시장에서 지배적 위치를 남용하게 되면 그 피해를 고스란히 중소형 영화업자들이 당하게 된다는 걸 잊지 말아주십시오.


영화계 현안보다는 반재벌 정서만 실컷 주장했던 패널의 멘트였다.


- 영화의 흥행은 결국 관객들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관객들이 이 문제 즉 독과점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들은 영화를 통해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정의를 보여줘야 할 영화가 정의롭지 못한 환경에서 배급되고 있다고 한다면 그들은 영화를 거부할 것입니다. 결국 시장을 위축시킬 것입니다. 배급은 관객과 가장 근접해 있는 분야입니다. 영화계는 관객들의 반응에 민감해야 합니다.


영화인회의 대표로 나온 정우영 감독의 멘트였다.


- 독과점은 본인들이 배급하는 영화를 위해서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독과점 해결의 키는 관계자들 즉 배급이 쥐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장도 점차 할리우드화 되가는 추세여서 대중영화, 장르영화일수록 대규모 개봉, 과감한 마케팅비 투입의 형국으로 옮아가고 있으나 유통·배급 시스템은 과거와 똑같은 모습입니다. 이번 사안은 폐해가 아니라 새로운 배급방식으로 이해해야합니다.


토론 내내 가온그룹 대변인처럼 굴었던 정치인의 마무리 발언이었다.

마지막으로 류지호의 차례다.


- 현재 한국영화 투자·제작사는 대박 아니면 쪽박의 성적표를 받습니다. 또한, 극장 쪽도 극장 수 증가, 요금 및 서비스 경쟁, 좋은 영화 유치 경쟁으로 남는 거 없다고 울상입니다. ‘대박’ 아니면 ‘참패’의 극단적 양상이 아니라, ‘석패’ 혹은 ‘선전’ 또는 ‘분투’라는 용어가 많이 회자되는, 영화 한 편의 흥행실패로 영원히 재기불능에 빠지지 않는.... 그런 건강한 영화시장과 풍토가 조성되길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질문을 해야 새로운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발 과거의 답에만 매달려서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질 않길 바랍니다.

- 오늘 토론에 참여해주신 패널과 새벽까지 토론을 지켜봐주신 방청객.....


뚝.


이희경이 리모컨을 눌러 TV를 껐다.


“정말 못 말리겠다니깐....!”


해외 매출로 내수시장에서의 독점을 물타기 하고.

스크린쿼터를 지지하는 걸 명확히 밝히는 한편으로 Eye-MAX 상영관 같은 예외를 인정받기 위해 또 다른 화두를 던졌다.

카드사의 할인 서비스에 관련해서 주도권이 극장에 있음을 TV에 나와 당당하게 밝히는가 하면, 부가시장의 몰락을 걱정하는 척 하며 불법복제에 대한 경고를 날리기도 했다.

한국영화계의 플레이어들이 하찮은 이들로 여겨지는 것인지.

스스로 선민의식이 있어서인지.

이희경으로서는 알 순 없었다.

다만 류지호가 꽤나 교묘했다는 사실.

모두를 비판하면서 때로는 비판대상까지도 격려했다.

단순히 말만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사람이었다면, 토론을 지켜보며 자신이 고개를 끄덕일 이유가 없었다.

류지호가 한국의 영화 사업에서 많이 준비했고, 또한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고 있다는 것을 토론을 보며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고.

WaW는 자신만의 길을 갈 뿐이라는 걸 선언하는 것 같기도 했다.


‘류지호 감독은 한국영화에 애정이 있구나.’


모두를 비판하면서 그 안에서 실리를 챙기는 것 같지만.

제작사와 스태프를 챙겨주려는 마음이 곳곳에서 엿보였다.

영화산업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겠지만, 한국영화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 절절하게 다가왔다.


✻ ✻ ✻


“류 감독!”


방송이 끝나자마자 떠나려는 류지호를 정우영 감독이 붙잡았다.


“요즘도 술 많이 드세요?”

“백수가 뭐... 다 그렇지. 남는 게 시간이고 비어있는 게 위장 아니겠나?”

“건강도 신경 쓰세요.”

“내가 딴 잔소리는 다 넘어가도 그 잔소리는 못 듣지.”


정우영 감독은 WaW 초창기 <하얀전쟁>을 함께 했다.

이전 삶에서도 약간의 인연이 있었던 양반이었고.


“출출하지 않으세요?”

“막걸리 한 사발 할까?”

“제 스태프들하고 야식 먹으러 갈 생각이었어요. 같이 가시죠.”


매니지먼트 CHAN에서 붙여준 로드매니저, 코디와 분장사에 정우영 감독이 추가됐다.

류지호는 모두를 데리고 야식을 먹었다.


“잘 나왔어.”


뜬금없는 말에 류지호가 정우영 감독을 쳐다봤다.


“영화계에서 제일 센 사람이 나와서 속 시원하게 논쟁 한 번 해보는 것도 좋지.”

“제일 세기는요.”

“공론이 일고 토론이 벌어지면, 너무 기분이 좋아. 좋게 말하면 토론이고 나쁘게 말하면 논란인데, 논란이 되는 주제 대부분은 우리가 알고 있지만 침묵하고 있었던 중요한 가치의 문제지. 그것을 그냥 묻어두는 것보다는 들춰내서 토론의 장을 펼치는 게 맞다고 봐."

“백날 토론만 하면 또 뭘 해요. 대안을 마련해야지.”

“옛날에는 토론은커녕 공론화조차 없었어.”


토론이 많아진 것은 좋다.

문제는 그 안에 설득이 없다는 것이다.

일방적인 자기주장만 하다가 끝나는 경우가 많다.


“요즘 준비하는 영화는 없어요?”

“영화 두 편을 시원하게 말아먹었잖아.”


정우영 감독은 연출력이 있는 감독이지만, 상업적 색채가 강한 장르영화에서는 맥을 못 춘다.

문제의식이 강렬한 영화에서 연출력이 빛을 발하는 타입이다.


“제작 좀 해보려고 해도 WaW에서 까였어. 기회를 안 주네.”

“그래도 한 번 남으셨네요.”

“...한 번?”

“삼세 번. 삼세 판 아니겠어요?”


아직까지 망한 영화를 연출한 감독에게 한두 번 더 연출기회를 줬다.

정우영 감독은 연달아 두 편의 영화가 흥행에서 참패했다.

관행상 한 번의 기회가 남아 있었다.


“책을 쓰고 있긴 한데....”

“오리지널이에요?”

“독립운동가 김산이라고 들어봤어?”

“중국에서 활동한 사회주의 항일운동가 아닌가요?”

“잘 알고 있군.”

“<The Song of Ariran>이란 회고록이 미국 교포들 사이에서 많이 읽히고 있어요.”

“그 회고록을 토대로 시나리오를 쓰고 있어.”


한민족 고난의 역사 속에서 쓰러지고 묻힌 이름이 많다.

독립투사나 항일운동가 역시 마찬가지다.

그 중에 한 분이 김산이라고 불리는 본명 장지락 선생이다.

김산은 독립운동가로서 거창한 성취를 보인 것도 아니고, 아나키스트와 사회주의 혁명가로 활동한 이력 때문에 한때 그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이제는 아니다.

참고로 2005년 대한민국 정부는 김산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게 된다.


“책 계약은 했어요?”

“브라이트필름과 작업하고 있지.”


중국 혁명기를 그린 작품이라 중국 정부의 검열까지 신경을 써야 했다.

외교문제로까지 비화할 수도 있기에.


“김산이 조선독립을 위해 중국에 건너가 혁명의 과정에 휩쓸리다 연안으로 와서 중국 공산당을 위해 활동했거든. 간첩으로 몰리면서 중국 공산당에게 처형당하는 이야기야.”


김산에 관한 간첩혐의는 사후 50년이 지난 1980년대에 가서야 사면복권이 됐다.

한국에서도 사회주의자 꼬리표로 인해 민감하고, 중국 입장에서는 공산당의 치부(민생단 사건)와도 관련이 있기에 예민하게 굴 수도 있었다.


“제작비가 만만치 않을 것 같거든. 책을 쓰곤 있는데.... 솔직히 말해서 큰 기대는 하고 있지 않아.”

“나중에 책 빠지면 보내주세요. 읽어볼 게요.”


정우영 감독은 UPI 직배반대 투쟁의 선봉장이었다.

사회참여는 물론 정치적 발언에도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감독이다.

류지호는 스크린쿼터 제도와 스크린 독과점의 미래를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스크린쿼터 문제는 할리우드 스튜디오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류지호로서는 조금 난처한 면이 없진 않았다.

스크린 독과점 문제의 중심 화두는 ‘영화 선택의 다양성‘이다.

어떤 분야든, 다양한 선택지의 확보만큼 건강하고 안정적인 시장을 구축하는 방안도 없다.

그렇다고 자연스럽게 설정된 시장 구조에 인위적 힘을 가해서라도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만큼 어리석고 위험한 것도 없다.

자율성이 침해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 산업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전문가랍시고 떠드는 게 웃기지?”

“안에 들어와서 보지 못하면 모르죠 뭐.”

“일부러 한 거야?”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 두 영화 개봉을 위해 무차별적인 상영관 확보를 한 것에 대한 물음이다.


“예. 한국영화의 플레이어들에게 최적화된 배급이 뭐냐 물어보고 싶었어요.”

“......?”

“스크린 확보 상한선을 정한 뒤, 텅텅 비는 상영관들과 미어터져 제때 영화를 보기도 힘든 상영관이 나란히 멀티플렉스에 나열되는 진풍경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인지. 그게 아니라면, 공적 개념으로 고르게 영화를 상영하도록 규제하는 기구라도 만들어야 하는 것인지.”


대체 그런 ‘공평한 배급’을 계획하는 이들은 또 누가 될 것인가.


“잘못해서 시장에 공권력이 개입하게 되면 그 또한 검열이 될 수도 있어. 딜레마야.”

“가능하면 업계가 또 시장이 자체적으로 협약을 맺어 룰을 만들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지켜나가는 것이 옳은 방식이겠죠.”


사실 류지호 역시 무엇이 옳은 방식인지 헛갈리기 시작했다.

확실한 것은 독재 권력의 검열이나 거대 자본의 무자비한 독점 횡포나 그리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는 거다.


“피가로의 결혼을 보다 황제가 한 번밖에 하품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지. 황제가 세 번 하품하면 그 오페라는 그날 바로 문을 닫아. 두 번 하품하면 일주일 정도 공연되는데, 한 번 하품하면 그래도 9번은 공연할 수 있거든.”

“<아마데우스>에서 나온 말이죠?”

“응.”


류지호를 영화계의 황제라고 비꼰 것인지.

한국영화 감독이 처한 현실에 대한 자괴감의 표현인지.

류지호는 알쏭달쏭했다.

그렇다고 따져 묻지는 않았다.


✻ ✻ ✻


강남의 의장비서실 회의실에 래리 킴 회장, 회장 비서실장, 그룹 인재개발팀, 그룹 홍보마케팅팀, 의장직속의 전략기획실장, 경영지원팀, 전략2팀, 커뮤니케이션팀 마지막으로 외부 인사로 Aram 프로덕션 최준영 대표가 한자리에 모였다.

안건은 ‘가온그룹 사내 커뮤니케이션 활성화‘ 논의다.

기업 커뮤니케이션이 잘되면 기업 문화도 올바르게 형성되고, 사외적으로 기업 이미지도 상승되어 마케팅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계열사 평사원들이 그룹의 위상에 대해 체감을 못하는 것 같더군요. 사내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 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사내에서 의견이 활발히 공유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 말은 혈액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는 뇌졸증 증상이 그룹 내에서 보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류지호의 지적에 홍보를 담당하는 임원들이 바짝 긴장했다.

래리 킴 회장이 입을 열었다.


“일류기업이라고 불리는 기업을 보면 사내 커뮤니케이션 활성화에 상당 부분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주요 대기업 PR담당자가 최소 40명에 달합니다. 그들이 대 언론 홍보활동뿐만 아니라, 사보까지도 담당하는 전문 직원으로 구성되어 있죠.”


전략기획실장이 말을 받았다.


“요즘은 사외 커뮤니케이션보다 사내의 커뮤니케이션을 훨씬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추세입니다. 의장님께서 더 잘 아시겠지만, 미국의 GTE의 경우는 PR팀만 200명 이상이고 그 중에 절반이 석박사 출신입니다.”


모두의 시선이 류지호에게 향했다.

그렇게 해도 되냐는 질문을 눈동자에 담아서.


“우리는 누군가에게 의사를 전달할 때 내 이야기 중에서 70%정도만 상대가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가온그룹처럼 규모가 크고 조직이 많은 기업의 경우 사장이 말한 내용이 이사-부장-과장을 거칠 때마다 30%씩 감소해 결국 일반사원들에게 전달된 내용은 사장의 이야기 가운데 24%밖에 전달되지 못한다는 연구결과도 있죠. 기업의 커뮤니케이션이 그 정도로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내 커뮤니케이션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어느 개인의 일방적인 노력만으로는 어렵지만, 체계를 갖추면 조금은 도움이 될 겁니다. 예를 들어 각 사업장마다 게시판을 예쁘고 세련되게 꾸면서 사내 직원들의 의견이 활발히 공유될 수 있도록 한다든가. 직원 생일 같은 것들을 공시하고 각 회사 홈페이지 게시판에 축하한다는 메시지라도 올리고, 회장이나 사장 말도 소수 임원들만 듣고 끝날 것이 아니라 직원 전체 이메일로 보내 모두가 알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업무가 늘어나는 소리가 류지호의 입에서 술술 흘러나왔다.


“그룹 내 사업장에서 가장 눈에 잘 뜨이는 장소마다 세계전도를 붙여놓으세요. 임직원들이 자주 세계지도를 보면서 은연중에 글로벌 마인드를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해 봅시다. 국내 뉴스 따위 열심히 안 봐도 됩니다. 임직원들이 미국과 중국을 공부하게 하세요. 한국은 미국과 중국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는 나라입니다. 직원들이 포털뉴스나 눈을 훑고 마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서구권의 권위 있는 언론매체를 자주 접할 수 있도록 하고, 그룹 차원에서 최신 중국소식을 임직원들에게 전파할 수 있도록 하세요.”


류지호가 그룹 홍보를 책임지는 이사를 쳐다봤다.


“현재 사내 방송은 어떻게 진행됩니까?”

“매주 월수금 사내 휴게실에 마련된 TV를 통해 방송이 나가고 있습니다.”

“내용은 뭡니까?”

“회사소식이나 주요 경영진 동정..... 특히 의장님과 관련한 뉴스 등을 정리해서...”


류지호가 손을 들어 말을 막았다.


“가온그룹도 해외 법인이 많이 늘었습니다. 글로벌 위성사업자와 계약해서 연 2회 정도 최고경영자가 직접 전 세계 직원들에게 사업계획을 브리핑하는 모습을 생중계로 내보내는 방안을 마련해보세요. 브리핑 후에 나오게 될 질문에 대한 답변 역시 사내방송이나 게시판, 홈페이지를 통해 알리도록 하고.”


화려한 영상기술을 활용해 홍보영상을 제작해 사원들에게 보여주는 것보다 기업 내 행사를 위성생중계로 전 세계 사업장에서 동시에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기업의 스케일을 더 잘 드러낼 수가 있을 터.


“사내 커뮤니케이션팀도 100명 규모 키워서 뉴스부, 다큐멘터리·홍보부, 출판부 등으로 세분화해 외부 전문 인력을 대거 채용하도록 하세요.”


명백히 이사회 의장이 경영에까지 간섭을 하는 상황이다.

래리 킴 회장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담담히 입을 열었다.


“홍보부에서 사내 커뮤니케이션팀을 분리독립시킬 필요가 있겠습니다.”

“멀티미디어에 대응할 수 있게 미리미리 준비하시고.”


방향성을 제시했으니 나머지는 실무진들의 몫이다.

회의 후, 류지호는 Aram 프로덕션의 최준영에게 가온그룹 기업 캠페인 시리즈에 대해 아이디어를 주고 제작을 의뢰했다.

류지호의 한마디에 가온그룹 사내 커뮤니케이션에 위성방송까지 동원하게 생겼다.

사내 방송 역시도 어지간한 민간 방송국 규모로 커지게 됐고.


'궁극적으로는 JHO처럼 컨벤션을 매년 개최하면 좋겠지.'


✻ ❉ ❉


남들은 설 귀성길에 오를 때 류지호는 출국을 서둘렀다.

미국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아니었다.

함께 출국하는 일행에 <복수의 꽃> 주인공들과 WaW 픽처스 프로듀서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김영복을 비롯해 헤드스태프들은 영화를 찍고 있어서 함께 하지 못했다.

베를린영화제 참석차 출국하는 인원만 24명에 이르고, 류지호를 수행하는 의전비서와 경호팀까지 마흔 명에 달하는 대인원이 한꺼번에 움직이게 됐다.

영화제에서 보내준 항공권은 따로 움직이는 WaW 엔터테인먼트 해외배급팀 직원에게 양보하고, 영화팀을 위해 류지호가 전세기를 빌렸다.


“어? 아무도 없네?”


송라원이 차분한 베를린 공항 로비를 보며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가 없어?”

“감독님 뜨면 막 기자들이 몰려들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일본 하네다공항 말고는 딱히 그랬던 적은 없었다.


“유럽에서 엄청 유명하시다면서요?”

“이번에 영화제에 초청받은 감독들에 비하면 난 아직 애송이야.”

“마리아 베리하고 친하죠?”

“응.”

“나중에 꼭 소개시켜주세요.”

“자꾸 쫑알쫑알 거리면 인사 안 시켜준다.”

“넵!”


송라원이 자신의 손으로 입을 막는 시늉을 해보였다.

천상 배우인지 아니면 아직 철이 덜 든 것인지.

인천공항부터 송라원은 무척 들떠 있었다.

긴장감이라고는 한 톨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어서 오십시오. 보스!”


유난히 눈동자가 푸른색인 게르만 남자가 류지호에게 정중하게 인사했다.


“도미니크 그라프라고 합니다. 도미닉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반가워요.”


럭비선수를 연상시키는 체격의 도미니크 그라프는 JHO Security Services 독일 지사장이다.

독일은 민간경비산업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

90년대 초반 1,500개였던 민간경비회사의 숫자가 현재는 거의 두 배로 증가했다.

전체 매출액 또한 40억 유로에 이른다.

Pinkerton Corp.이던 시절부터 독일의 뮌헨의 중견 경비회사를 인수해 지사로 활용했다.

도미니크 크라프는 인수합병한 회사의 사장이었던 인물로 현재는 독일을 중심으로 북유럽의 JHO Security Services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암튼 <복수의 꽃> 영화팀을 픽업하기 위해 JHO 독일 고위직이 행차했다는 뜻이다.


"보스께서는 MB를 타시면 됩니다.“


공항 밖에는 대형버스 한 대와 메르세드-벤츠 두 대가 대기 중이었다.


“911 테러로 인해 유럽도 분위기가 그리 좋지 못합니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911테러는 미국에 한정된 공포가 아니었다.

베를린영화제 개막식에 슈뢰더 총리가 참석했다.

전에 없이 삼엄한 검문을 통과해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테러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쨌든 류지호 일행에게 테러는 남의 나라 이야기 일뿐.

그저 십여 명의 경호팀에게 둘러싸여 움직인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삼엄한 경호를 받으며 류지호 일행이 베를린 시내의 Pritzkers Hotel에 도착했다.

베를린 공항이 조용했던 이유가 있었다.

취재진이 호텔 로비에 장사진을 치고 있었던 것.

아시아인으로 보이는 취재진도 상당수 보였다.

오랜만에 유럽을 찾은 류지호다.

독일뿐 아니라 유럽의 주요 언론이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취재진들의 뜨거운 반응에 WaW 해외영화팀이 발 빠르게 움직였다.


“감독님, 미니 인터뷰를 진행해주실 수 있을까요?”

“짧게 합시다.”

“감사합니다!”


급하게 호텔에 양해를 구해 리셉션 룸 하나를 빌렸다.

베를린 Pritzkers Hotel은 JHO Company그룹의 영화제 거점호텔로 계약되어 있다.

다섯 개 층의 모든 객실을 영화제 기간 동안 빌렸다.

로비에서의 소란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알버트도 왔네요?”


호텔 카페테리아에서 ParaMax 엔터테인먼트의 알버트 마샬 사장과 마주쳤다.


“빅보스가 초청을 받았는데 당연히 와봐야지.”

“농담도 잘하십니다.”

“하하. 오랜만에 유럽의 친구들도 볼 겸, <쉬핑 뉴스> 수상 가능성도 높일 겸.”

“할스트룀 감독과 배우들도 이곳에서 지내요?”

“나중에 나와 함께 만나볼 텐가?“

“어쩐지 호텔 곳곳에서 줄리안과 케이트 얘기가 자주 들리더군요.”

“자네를 비롯해서 할리우드 무비스타들이 제법 참석했어. 체면치레는 할 듯싶어.”


베를린영화제는 꽤나 오랫동안 친할리우드적이라며 독일영화계로부터 비난을 받아왔다.

오죽하면 신임 집행위원장이 베를린영화제를 독일영화산업과 일체감을 갖는 영화제로 만들 것이라는 입장을 밝힐 정도였다.


“디터 코일릭이 꽤 유능한가 봐요?”

“개막식에 참석한 슈뢰더에게 독일영화에 대한 획기적 지원 확대 약속을 공식으로 하게 만들었을 정도로 수완이 있네.”

“독일영화의 조망이라는 새로운 섹션이 생겼다고 하더니, 국내 정치에 꽤 신경을 쓰는 성향인가 보죠?”

“베를린영화제는 기계처럼 경직되어 있지 않으면서도 효율적이고, 관료제적인 운영에 매달리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네. 다만 최근 들어서 독일 국내적으로 할리우드 영화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비난에 직면에 있지. 어떻게든 그 같은 모습에서 탈피하고자 노력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야.”


그 동안 베를린영화제는 할리우드 감독과 스타들의 앞마당이었다.

이번에는 상대적으로 할리우드와 아시아 영화보다 독일영화와 유럽영화 위주로 주요 상영작이 초청되었다.

그런 가운데 할리우드 메이저의 오너인 류지호의 작품이 경쟁작에 출품되고, 준메이저 스튜디오 ParaMax의 회장을 비롯해 마리아 베리 등 많은 할리우드 배우들이 참석의사를 밝힘으로써 영화제 흥행을 걱정하던 실무자들이 안심할 수 있었다.


“듣던 것보다 영화제 분위기는 나쁘지 않네요.”

“집행위원장의 말로는 예상 관객수 40만 명은 무난히 달성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더군.”


개막작 <헤븐> 상영을 시작으로 베를린영화제는 역대 최고 숫자의 관객 동원과 예년에 크게 떨어지지 않은 무비스타, 유명 감독들의 왕림 등 나름의 성과를 표면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확실히 베를린영화제가 토론토영화제에도 밀리는 감이 없지 않아 있어. 전반적인 분위기가 마개를 따놓은 독일 맥주를 떠올리게 한다는 신랄한 말도 듣고 있을 정도로.”

“몇 년 전부터 토론토가 베를린을 앞서는 느낌이 있긴 했어요.”

“실제로 일부 기자들은 황금곰상의 새 주인보다는 이번 영화제에 출품된 작품 중에서 아카데미상 후보로 뽑힌 감독과 스타들에게 더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어. 덩달아 ParaMax 영화와 다른 할리우드 영화 두 편이 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지. 물론 보스가 처음으로 조국에서 찍은 영화도 큰 관심사고.”

“확실히 칸을 제외하고는 오스카에 대항하기 점점 힘들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이곳 대다수의 관객 역시 황금곰상보다는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더 신경 쓰는 것 같아. 하하.”


알버트 마샬 입장에서는 웃는 게 웃는 것이 아니었다.

세계적인 영화제인 베를린과 모스크바 영화제가 정체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영화 변방 한국의 부산국제영화제가 부상할 수 있는 기회를 잡고 있었지만.


“저녁부터 바로 일정을 소화하나?”

“오늘은 시차적응도 할 겸, 외부일정 없이 호텔에 머물 생각이에요.”

“그럼 올라가서 쉬게.”

“내가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네요. 일 보세요.”

“내일 집행위원장과 점심식사에서 보도록 하지.”


모든 국제영화제는 초청작에 한해 숙소를 마련해 준다.

그럼에도 주요 스튜디오들은 따로 숙소를 계약한다.

필름마켓을 운영하고 각종 파티를 개최하기 위해서다.

JHO Company그룹 역시 주요 영화제가 열리는 도시마다 영화제 기간 머물 수 있는 전속 호텔을 계약해 놓고 있다.

영화제 기간 내내 호텔에서도 자사 영화 판매 및 해외영화 구매를 위한 비즈니스 미팅을 진행하는가 하면, 저녁 마다 파티를 열어 각국의 영화인 인맥을 관리했다.

90년대부터 JHO Company는 20세기 PARKs, 소닉-콜롬비아스 파티와 함께 국제영화제에서 중요한 사교파티로 자리 잡았다.


“저도 참석해요?”


송라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류지호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당연하지 인마.”

“<복수의 꽃> 인터뷰도 아니라면서요?”

“기자들이 너는 꼭 데리고 오래.”

“저는 신인인데요?”

“어차피 국제 영화제에 오는 배우 대부분이 자국 출신이 아닌 이상 신인이야. 신인 아닌 배우는 마리아 같은 할리우드 스타들 뿐.”

“영어로 대답해야 되나요?”

“영어는 좀 하고?”

“간단한 말은.... 쬐금.”

“한국말로 해.”

“감독님은 영어로 인터뷰하세요?”

“당연히 한국말로 하지. 통역도 준비 시켰잖아.”

“왜요? 영어 잘하시잖아요.”

“한국영화 감독이 공식 기자회견에서 왜 영어로 말해. 한국말로 해야지.”

“아~ 그런 거예요?”

“영어 할 줄 알아도 그냥 한국말로 해. 만약 말실수하기라도 하면 통역이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해 잘못 전달했다고 둘러대면 되니까.”

“예.”

“긴장 안 돼?”

“별로요.”


어려서 뭘 몰라서 그런 것인지.


“그냥 좀 신기해요. 제가 이런 대단한 영화제에 다 와보고... 암튼 그냥 꿈같아요.”

“여자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면서 뭐가 신기해?”

“에이. 설마 감독님은 제가 상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응.”


송라원이 호들갑스럽게 놀라며 물었다.


“엑! 정말이요?”

“네가 못 받을 이유는 없어. 수상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 항상 당당하게 행동하고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옛!”


송라원이 허리를 쭉 펴고 짐짓 기합이 든 듯 대답했다.


‘자식....!’


송라원은 올 해 만으로 21살이 되었다.

그럼에도 고등학교 1학년생 정도의 베이비 페이스다.

키만 껑충하게 큰 초등학생.

서양인들 눈에는 그렇게 보일지도 몰랐다.


작가의말

미국의 GE 회장 잭 월치는 인공위성을 띄워서 매년 전 세계 계열사 직원들에게 사업계획과 관련해 브리핑을 했다고 합니다. 애플은 세계개발자회의를 하고 있죠. 소설 상에서 JHO는 그와 유사한 컨벤션 행사가 있습니다. 가온그룹도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편안한 주말 보내십시오.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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