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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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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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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0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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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민중의 적. (10)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자신의 잘못과 치부를 가리기 위해 언론사가 하는 수법이야 뻔했다.

대중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새로운 이슈를 만들어 자신들의 잘못을 덮어버린다.

그것도 자극적인 것으로.

대중들에게 좋은 이미지가 심어져있지만, 메이저 언론사에게는 만만해 보이는 대상.

바로 류지호와 가온그룹이다.


[WaW 엔터테인먼트, 트라이-스텔라 영화에 대한 독점적인 지위. 공정경쟁 위배.]

[국내 유수의 영화제작사에 출자해 제휴영화사라는 이름으로 묶어. 영화 기획개발 독점.]

[사실상 한국영화 제작사 다수 소유.]

[한국영화계는 가온그룹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다.]

[극장연합회측, 가온그룹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그들이 영화를 주지 않으면 사실상 극장 상영관을 놀려야 할 판.]


한 달 간 백원일보와 그에 보조를 맞춘 제일신문이 쏟아낸 기사들이다.

통계, 데이터, 사실 확인.

그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200만 구독자(라고 주장)에게 가온그룹 ‘나쁜 놈’ 이미지를 심어주면 목적 달성.


“너희가 더 악질이잖아!”


백원일보 구독자가 아닌 대부분의 국민들은 가온그룹이 아니라 백원일보를 욕했다.

그들은 구독자가 아닌 대중들의 비난에는 신경도 안 썼다.


[어차피 대중들은 개, 돼지입니다. 거 뭐 하러 개, 돼지들한테 신경을 쓰시고 그러십니까?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언론사 주필 캐릭터가 한 대사다.

언론사 사주는 대한민국 0.3%의 기득권과 잘 지내면 된다.

집안끼리 사돈을 맺든, 정치적으로 같은 노선이든, 약점을 쥐고 있든....

국민 99.7%가 물러가라고 해도 물러가지도 않을뿐더러 물러가지도 못한다.

그들만의 카르텔이 사회 곳곳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고 팀장도 해외 특파원 해봤어요?”

“예. 워싱턴 DC에서 2년 있었습니다.”

“잘 알겠네요?”

“....무엇을?”

“기자가 기득권에 들어갈 수 있는 기본 발판을 해외특파원 나가서 한다는 거요.”

“....그렇죠 뭐.”


류지호는 왜 기득권 카르텔에 언론인이 끼어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그 내막들을 소상하게 알게 됐다.

미국 대사관이나 총영사관에 파견 나가는 공무원들은 현지에서 대기업 간부, 메이저 언론사 특파원, 인기연예인, 부유한 재미교포들과 인맥을 만든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그 인맥이 그대로 기득권 카르텔로 이어진다.

일반인들은 외교관만 해외 주재 대사관으로 파견 나가는 줄 안다.

행정부 주요 부서에서 한 명씩은 다 나간다고 보면 된다.

워싱턴DC에는 별을 단 군인이 무관으로 나간다.

경찰부터 주요 행정부 공무원, 국정원 직원, 기자 심지어 연예인까지도 현지에서 인맥을 형성한다.

교포들과 어울리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교류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확, 십원인지 백원인지 사버릴 수 있으면 좋겠지만....”


류지호가 입맛을 다셨다.


“언론사 보유 자격은 아무나에게 내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백원일보는 비상장기업이라 적대적 인수합병도 불가능합니다. 또 백원일보 소유주 일가는 공식적인 재산만으로도 한국 100대 재산가 45위에 랭크되어 있습니다.”


재벌이 직간접적으로 언론사를 소유하고 있는 것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여론을 형성하기 위함이다.

민주화가 된 이후로 족벌언론의 권력은 정치권력에 맞먹을 정도로 강력해지고 있다.

여론의 향방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이 당시 삼대 족벌언론의 판매부수를 모두 합하면 공식적으로 대략 500만 부다.

진성 독자는 그 절반 수준일 테지만, 그렇다고 해도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20년 후에는 3,000개의 언론사가 난립하게 된다.

인터넷 언론이나 개인 방송을 하는 언론과도 경쟁해야 한다.

현재는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여론을 쥐락펴락하는 절대 권력이 족벌언론이다.

적어도 한국 안에서만큼은 그 누구도 그들과 정면대결을 벌일 수 없다.


“근데, 난 몇 위에요?”

“네?”

“100대 재산가 몇 위냐고요?”

“작년 처음 10위권에 진입하셨습니다. 매년 몇 단계씩 뛰어오르고 계십니다.”


말도 안 된다.

류지호는 이미 오성그룹 회장을 뛰어 넘은지 오래다.

주요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과 미국의 그룹 지분은 가치가 애매하긴 하지만.


“사주가 45위면 재산이 얼마나 되는 겁니까?”

“4,000억 조금 못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공식적인 재산만 그렇습니다. 차명이나 해외 보유 재산은 알 수 없습니다.”

“다른 언론사들은요?”

“오성계열 언론사 사주가 75위 그 외에 주요 사주들이 200위 안에 랭크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가온도 그렇고, 비상장 기업들인데 그런 걸 예측하는 방식이 따로 있나 보네....”

“그래서 말인데.... 가온을 주식시장에 공개하지 않느냐는 질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아직은 때가 아니에요. 적당히 답변하세요.”

“예.”


사실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코스닥 등록이라는 것이 돈을 많이 벌었기 때문은 아니다.

비전이 있어서도 아니고.

정말로 돈을 많이 버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는 코스닥에 등록을 할 필요가 없다.

의무사항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사실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코스닥에 등록한다는 의미는 이런 거다.

영화 한편에 따라 수익변동이 크게 생기지 않을 만큼 어느 정도 산업화됐다는 것.

일정한 수익성 있을 정도로 성장을 해왔다는 것.

투명경영을 하고 있다는 것.

그 같은 것들을 공개적으로 입증하는 것이다.

영화사를 코스닥에 상장함으로써 산업에서 주도적인 회사로 성장하는 발판이 된다.

다만 경영하는 입장에서는 골치 아픈 일이 더 많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슬슬 비자금이다 뭐다 말이 나올 때도 되지 않았어요?”

“출입기자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가온그룹이 투명하게 경영되고 있는지를.”

“도대체 어디서 돈이 나와서 G-타워도 매입하고, 부산 센텀시티에 대규모 단지를 조성하는지... 사람들이 많이 궁금해 하지 않던가요?”

“미국의 JHO에서 오는 걸로 알고 있는데, 아니었습니까?”

“대유그룹 계열사 인수합병 할 때 들여온 자금 외에 없어요. 몰랐어요?”

“그럼 우리 그룹의 영업이익이 엄청난 겁니까?”

“엄청난 것까지는 모르겠고. 영업이익율이 매우 우수한 편이죠. 주력 사업들이 대체로 현금장사잖아요.”

“그 걸로는 설명이 다 되지는 않습니다. 저희 그룹은 무차입 경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류지호 그저 웃기만 했다.

한국의 벤처기업에 투자했던 자금을 회수한 후로 G-Tower 매입은 물론 연구개발비에도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다.

코스닥 수십 종목을 처분한지 1년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3,000억 원의 여유자금이 남아 있었다.

대유그룹에서 인수한 무역부문의 정상화가 쉽지 않았지만, 건설과 증권 부문은 경영이 안정되자 본래 모습을 빠르게 되찾았다.

외부에는 거대한 덩치의 기업을 집어삼켜서 여전히 소화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은 금방 안정을 찾았다.

도리어 공격적인 경영기조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삐이.


인터폰이 울렸다.


- 의장님, 차량 대기 중입니다.

“알겠어요. 갑니다.”


류지호가 옷걸이로 걸어갔다.

고현준 팀장이 먼저 달려가 얼른 코트를 꺼내 펼쳐보였다.


“내가 고 팀장에게 월급을 주는 사람이긴 하지만 떠받들어야 할 상전은 아닙니다. 과해요.”

“마땅히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 불편하십니까?”

“사지육신 멀쩡한 젊은 놈이 중년의 직원이 입혀주는 옷 입는 모습.... 웃기지 않나요? 고 팀장이 의류매장 직원은 아니잖아요.”

“아, 예...!”

“직책, 지위 모두 내가 팀장보다 위인 것 맞습니다만, 조금 자유롭고 편하게 지내봅시다. 나를 모셔야할 상전으로 대하다보면 직언을 못합니다. 직언을 못하는 경직된 조직에서 활발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겠어요?”

“시정하겠습니다.”

“암튼 계급장 떼면 팀장이나 나나 별다를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또 잔소리를 하고 말았네요.”

“아닙니다!”


류지호가 코트를 차려입고 고현준의 어깨어림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언론 부문은 고 팀장을 믿어요.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가온그룹 흠집 내기 기사가 나가는 사이 감독 부당해고 사건까지 공격받았다.


[최근 WaW 엔터테인먼트가 투자·배급하는 영화에서 감독이 촬영 도중하차했다. 한국영화감독협회는 이승주 감독과 갈등을 빚은 제작사에 공개 질의 및 해명, 사과 촉구서를 냈다. 또한 가온그룹 측에는 후속 방안, 재발 방지 계획을 촉구했고 감독 해고 과정에 대한 질의서를 보냈다.]


최근 연예부 기자들에게 최대 관심사 중에 하나가 감독해고 이슈였다.

때문에 <민중의 적> 촬영현장 공개에 맞춰 평소보다 더 많은 매체에서 몰려왔다.


- 최근 일어난 해고사태 당사자가 기성 충무로 감독이 아니라는 점에서 업계 안팎에서 당혹스럽다는 반응이에요. 신인감독의 무기력과 의욕 저하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류지호는 싫은 표정 없이 담담하게 대응했다.


“예전부터 충무로 제작 시스템이 건강하지 못했어요. 언젠가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는 예상은 했었죠. 그게 결과로 나온 것뿐입니다.”

- 촬영 중에 해고는 처음 있는 것 아닙니까?

“어떤 상황이든지 감독과 제작자는 이견이 생길 수 있어요.”

- 이견만으로 해고는 좀 과한 처사 아닙니까?

“이번 사태를 통해 오해가 있는 부분이 있네요. ‘감독을 해임했다’라는 소리는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계약 파기’가 맞는 말입니다.”

- 좋아요. 계약파기로 해두죠. 문제는 계약을 파기한 뒤 취한 후조치가 얼마나 합리적이었는가 아니겠어요?


건수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기자들의 질문에 날이 서 있었다.


“하루빨리 영화 제작 전반에 관한 합리적인 기준을 만들기 위한 토론의 장을 마련해야죠. 대화가 없으면 해결책은 나올 수 없다고 봅니다. 만날 문제점만 떠들면 뭐하겠어요. 모두 함께 공론의 장으로 나와 주장을 펼치고 상대방의 입장도 정확히 들어봐야 하죠.”


이 말을 끝으로 더는 감독 계약파기 사안과 관련해 류지호는 입을 다물었다.

그럼에도 가지들은 하라는 <민중의 적> 취재는 안 하고 그 문제만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감독님이 연출에 집중할 수 있도록 민감한 질문은 삼가주세요.”


전하영 피디가 사정을 해도 기자들은 요지부동이었다.

일부 기자들이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지만, 하이에나 떼처럼 달려드는 경쟁사 기자들의 모습을 보며 슬그머니 다시 질문공세를 이어갔다.


‘이러다 촬영이고 뭐고 기자들이 깽판 놓겠네.’


하는 수 없이 류지호는 좀 더 관련해서 대화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 세 명의 감독, 그러니까 제작자, 감독, 배우가 현장을 지휘하니 정말 죽을 맛이랍니다. 영화를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정신적으로 힘들었다고 털어놓던데요.

“누가요? 이 감독이요?”

- 예.

“과거 어떤 선배 감독님은 대가의 웨스턴무비 연출을 배우기 위해 극장에서 상영이 끝나 소각장으로 향하는 필름을 어렵게 구해다가 몇날 며칠을 프레임 단위로 돌려보며 배우고 연구했다고 합니다. 그런 노력과 탐구심으로 서부영화와 무협영화의 장점을 취합한 영화를 만들어 한국을 넘어 아시아를 호령한 감독으로 이름을 날리셨지요. 그 엄혹했던 시절에도 말입니다.”

- 그 분이 누군가요?

“장창화 감독님이십니다.”

- 아.... 응위쌈 감독의 스승이라는 그 감독님!

“다행히 홍콩은 물론 우리 영화계에서도 잊혀 가던 그 분의 이름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시 조명이 되었죠.”


참고로 1960년대 홍콩영화계에는 장창화 감독 외에 일본감독들도 많이 진출해 있었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 된 후로 홍콩영화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무술영화에 참여한 한국과 일본 감독들의 존재가 불편했을까.

자료가 많이 남아있지 않아서 인지 모르지만 1968년 이전의 홍콩영화역사가 지워졌거나 무시되고 있다.

중국 공산당 특기인 역사지우기 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한국으로 돌아와 충무로에서 활동하던 장창화 감독의 역사 역시도 소실되어 버렸다.

영화계와 언론이 임선택 감독을 추앙하고 있을 때 홍콩영화계에 진출해 홍콩 액션 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린 선구자적인 감독은 한국과 홍콩영화역사에서 잊혀졌던 것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감독님이 재조명 되는 것은 잘 한 일이죠. 암튼 고예산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연출할 자신은 없고, 할리우드식 콘티를 베낄 재주마저 없고. 영화 한 편으로 한몫 잡으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감독이 있다면 얼른 영화판을 떠나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큭큭.


몇 명의 베테랑 연예부 기자가 웃음을 터트렸다.

명백한 저격성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류지호가 누굴 겨냥해 말하고 있는지 못 알아들을 기자는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내년 개봉하게 될 엉성한 한국형 블록버스터들.

시나리오 단계에서 기획과 완성도가 의심되었던 영화들 다수가 내년에 개봉될 예정이다.

연예부 기자들 사이에서는 충무로에 거대한 폭탄이 터질 거란 예언을 내놓고 있었다.


- 같이 연출을 하는 입장인데, 동료에게 너무 매정한 처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내 돈으로 영화를 찍으니까. 마음대로 해도 되고 남은 그래서는 안 된다... 뭐 그런 말일까요?”

- 감독님이 아무런 간섭을 받지 않는 건 사실 아닙니까?

“그 돈이 어디서 나오는데요? 누군가가 밤새 코피를 쏟으며 혹은 발바닥에 땀나게 뛰어다니며 만든 돈입니다. 나는요.... 투자된 제작비를 내 쌈지돈이라고 여기며 영화를 찍어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단편영화를 제외하고 내 돈으로 영화를 만들지도 않았고. 미국과 한국 모두에서 다른 감독들과 똑같은 계약서에 똑같이 불리한 조항이 들어가 있는... 때론 내게만 더 가혹한 조항이 삽입되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나는 남의 돈을 내 돈처럼 귀하게 여기며 영화촬영에 임하고 있습니다.”


회계장부 상의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서 JHO와 가온그룹 계열사에 협찬을 많이 뜯어내곤 하지만.

그것도 능력이다.


- 오오. 나왔다 류지호의 패기!


기자 한 명이 설레발을 쳤다.

하지만 누구도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오로지 류지호의 말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녹취를 하거나 열심히 펜을 놀려댔다.


“30억으로 찍을 수 있는 영화를 50억에 해내는 게 재능일까요? 물론 나는 30억에 찍어도 되는 영화를 60억에 찍기도 합니다. 왜? 스스로 재능이 그것밖에 안된다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투자자, 제작사, 스태프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위해 매일매일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 그 말은 할리우드에서 1억 달러 영화를 찍을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말?

“제작비와 예산분배는 내가 결정할 사항이 아닙니다. 그건 프로듀서와 제작사가 결정하지요. 단 그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걸 요구합니다.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고는 제작사의 몫입니다.”

- 에이. 그게 뭐야. 어차피 감독님이 주인인데 누가 감히 뜻을 거역해?

“거역하던데요? 우리 피디들 엑스트라 10명만 줄여 달라 조명 그만 좀 쳐라 특수장비를 반드시 써야하냐고 만날 내게 물어봐요. 아주 미칠 지경입니다.”

- 할리우드에서는 안 그런단 말씀이세요?

“거긴 프로덕션에 들어가면 안 그래요. 이미 합의 볼 것 다 보고 약속을 다 하고 촬영에 들어가니까. 프리프로덕션 때 감독을 못살게 굴죠. 계약서에 서명하기 전까지는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 같다가도 일단 계약서에 서명하는 순간 다들 마귀가 따로 없다니까요. 미국에서 일할 때는 빨리 촬영에 들어가고 싶죠. 잔소리쟁이들의 마수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거든요. 뭐 촬영하다가 스튜디오 임원이 찾아와서 당신 해고야 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기도 하지만.”


사실과 살짝 다르다.

기자들이 할리우드 시스템을 제대로 알 리가 없으니.... 과장을 조금 보탰다.


- 신인감독이 고예산 영화를 찍는 걸 반대하는 걸로 들었습니다.

“무작정 반대하지는 않아요. 감독이 재능 충만하고, 그의 재능을 실현시켜 줄 시스템이 갖춰져 있고, 마귀들 그러니까 투자자, 제작자, 배우의 등쌀을 능히 이겨낼 수 있는 멘탈을 갖추고 있다면... 나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런 감독을 지원할 겁니다.”

- WaW는 할리우드처럼 시나리오 작가와 연출을 분리하려고 한다고들 합니다.

“언젠가부터 영화감독의 제일 첫 번째 덕목이 글 잘 쓰는 거랍니다. 나는 세계 어떤 영화인을 만나 봐도 그런 말 들어본 적 없습니다. 감독이 시나리오까지 잘 쓴다면 굉장한 겁니다. 반면에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반드시 영화감독으로서 재능이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프로야구로 비유하자면 전력분석관에게 감독을 맡기면 그 팀의 경기력이 갑자기 올라가고 많은 경기에서 이길 수 있겠습니까? 무조건 우승합니까?”

- 훌륭한 선수들이 있으면 가능하지 않겠어요?

“감독은 왜 필요한데요? 시나리오 작가도 어떤 식으로든 영화에서 보상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투자사보다 평균 1.3배 이상 각본료를 더 줍니다. 마음 같아서는 재능 있는 작가들의 각본료를 몇 배 올려주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다른 영화사 작업을 얻지 못할 것 같아 못하고 있죠. 몸값을 올려놓으면 쉽게 내릴 수 없으니까요. 게으름 피우면서 자신의 직관에 의지해 영화를 찍을 거라면 5억 미만 예산 영화 찍길 권해드립니다. 그것을 통해 증명한 후 대작영화에 도전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제작자 감독 모두가 함께 살아남는 길이 아닐까 합니다.”


조감독 이동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독님! 촬영준비 다 됐습니다!”


이동화는 조용히 다가와서 전해도 될 말을 일부러 기자들 들으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이제 밥벌이 하러 가야겠네요.”

- ....조금만 더....!

“이번 계약파기 건으로 드릴 수 있는 말은...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 논의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표준계약서도 합의를 봐야 하고, 자신들의 포지션에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명확하게 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어영부영 건건이 발생할 때마다 성토하고 주장하다보면 한국영화에 위기가 올 때마다 파도에 휩쓸리는 조각배처럼 우왕좌왕하다가 심각한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 참! 그리고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스태프를 종이나 비서처럼 여깁니까? 영화감독이라는 타이틀만 가지고 존경받지 않습니다. 동료를 존중하지 않으면 자신도 존중 받지 못하는 법입니다. 이 말은 꼭 기사에 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빠르게 말을 토해낸 류지호가 기자들을 향해 가볍게 목례를 했다.

등을 돌려 휘적휘적 촬영현장으로 복귀했다.


“썰 푸는 거 보면 참 시원시원해.”

“자신 있다 이거죠 뭐.”

“잘 났으니까....”

“근데 적이 별로 없어.”

“합리적이잖아요.”

“류 감독처럼 스태프 잘 챙기고 대접해주는 제작자나 투자자가 누가 있어?”

“이번에 <민중의 적> 스탶복 120벌도 류 감독 사비로 사줬다는데. 그것도 엄청 비싼 브랜드랍니다.”

“협찬 안 받고 자기 돈을 써? 스태프가 거지야?”

“스태프들이 투표를 했는데, 협찬을 해주겠다는 브랜드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대요. 그래서 스태프들이 원하는 브랜드를 류 감독이 시원하게 쐈답니다.”

“저번 영화에서는 촬영부하고 조명부에게 선물 한 상자씩 안겨줬다며?”

“이번에는 그때 선물 못 받은 팀이 선물을 받았다고 하네요.”

“부자라서 그런가? 돈을 아주 물 쓰듯이 쓰네.”

“부자라고 다 류 감독처럼 하나요?”

“하긴, 어릴 때 단편영화가 국제영화제에서 상 받았다고 참여한 스태프 전원에게 나이키 운동화 돌렸다니까. 그때는 지금처럼 엄청난 부자도 아닐 때인데. 어릴 때부터 난 놈은 난 놈이었어.”

“김영복 감독은 아직도 그 운동화 안 신고 보관하고 있대요.”

“돈을 제대로 쓸 줄 알아.”

“사소한 걸로 사람의 마음을 얻는 거죠.”

“그래도 WaW의 수직계열화는 비판받아 마땅해.”


불과 5년 전만 해도 이런 이벤트가 벌어지면 영화사 홍보팀은 하얀색 축의금 봉투에 빳빳한 만 원권 지폐를 20장 가량 넣어두었다가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기자들에게 차 기름값으로 쓰라며 찔러줬다.

지금 WaW가 관여하는 영화에서는 그런 일이 일체 사라졌다.


“뭘 그리 빡빡하게 굴어?”

“가시다 점심 드시고 차 기름 채우시라고 드릴 순 있습니다. 다만 저는 그걸 대언론 홍보비 항복에 정확하게 기입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되잖아?”

“5만원이 넘어가는 접대비는 제가 명확하게 증명해야 합니다. 기자님, 저는 이 좋은 직장 잃고 싶지 않습니다. 나중에 개인적으로 술 한 잔 사겠습니다.”

“기사 제대로 안 나가도 난 모르는 일이다?”

“기사야 기자님 소관이니 제가 뭐라 할 수 있겠습니까. 문제가 생긴다면 그건 제 일이 아니라 본사가 알아서 할 문제입니다.”

“지독하네, 증말!”


이런 대화가 오고가고 나면, 다음 날 꼭 부정적인 기사가 나갔다.

엿 먹으라는 듯이.

WaW 엔터테인먼트는 신경 안 썼다.

인터넷 영화매거진 CineFeel.com이 특수관계 회사인데다가 케이블 채널이 4개, 그 외에도 홍보마케팅할 영역은 많았다.

게다가 관객들은 같지도 않은 기자가 쓴 영화 리뷰를 보고 영화를 선택하지도 않는다.

관객들이 영화에 관한 정보를 얻을 곳으로 신문이나 영화잡지에만 의존하는 시대는 점점 옛 일이 되어가고 있었으니까.

영화 흥행에서 중요한 건 언제나 입소문이다.


‘될 영화는 되고, 안 될 영화는 무슨 짓을 해도 안 되는 법이지.’


촬영현장 공개 이벤트가 있는 날이라서 어려운 장면을 찍지는 않았다.

류지호는 감초역할로 출연하는 배우들과 농담 따먹기나 하면서 오후 촬영을 즐겼다.

배우들의 개인기가 빛나는 장면들이었다.

현장 분위기가 진지하고 무거울 이유가 전혀 없었다.

영화촬영 현장은 종교의식을 치루는 신성한 공간도 또 예배시간도 아니다.

프로페셔널들의 일터다.

아마추어의 미숙함은 경험을 쌓다보면 나아진다.

그러나 게으름, 무책임, 겉멋 등은 나아지거나 개선될 수 없다.

실패 끝의 저 깊은 바닥 끝....

그 나락에 빠지기 전까지 게으름은 절대 바뀔 수가 없다.

아닌가?

죽었다 다시 태어나면 가능한가?

마치 류지호가 변한 것처럼.

영화가 재미없는 것은 이해할 여지라도 있다.

태만한 영화는 이해는커녕 용서할 수가 없다.

시네필인 류지호로서는 더더욱.


작가의말

편안한 주말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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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2 어쩌면, 혹시, 설마 했던 일. (1) +9 23.04.24 3,377 122 23쪽
481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2) +4 23.04.22 3,474 122 27쪽
480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1) +10 23.04.21 3,410 113 24쪽
479 베를린영화제. (6) +5 23.04.20 3,331 124 26쪽
478 베를린영화제. (5) +8 23.04.19 3,252 113 24쪽
477 베를린영화제. (4) +14 23.04.18 3,172 143 23쪽
476 베를린영화제. (3) +9 23.04.18 2,957 110 30쪽
475 베를린영화제. (2) +6 23.04.18 3,024 108 30쪽
474 베를린영화제. (1) +6 23.04.17 3,319 124 27쪽
473 한국영화에 애정이 있구나.... (2) +11 23.04.15 3,388 117 27쪽
472 한국영화에 애정이 있구나.... (1) +2 23.04.14 3,271 126 26쪽
471 한 판 크게 벌여봐야겠어요. (4) +8 23.04.13 3,311 123 25쪽
470 한 판 크게 벌여봐야겠어요. (3) +4 23.04.12 3,312 126 23쪽
469 한 판 크게 벌여봐야겠어요. (2) +4 23.04.11 3,334 120 26쪽
468 한 판 크게 벌여봐야겠어요. (1) +7 23.04.10 3,388 123 25쪽
» 민중의 적. (10) +3 23.04.08 3,260 120 23쪽
466 민중의 적. (9) +4 23.04.07 3,214 116 25쪽
465 민중의 적. (8) +6 23.04.06 3,129 117 23쪽
464 민중의 적. (7) +3 23.04.05 3,124 114 23쪽
463 민중의 적. (6) +7 23.04.04 3,208 120 24쪽
462 민중의 적. (5) +2 23.04.03 3,235 115 22쪽
461 민중의 적. (4) +3 23.04.01 3,266 117 22쪽
460 민중의 적. (3) +3 23.03.31 3,404 116 23쪽
459 민중의 적. (2) +5 23.03.30 3,458 115 23쪽
458 민중의 적. (1) +9 23.03.29 3,508 116 24쪽
457 무역센터가 무너졌습니다! (3) +4 23.03.28 3,409 119 22쪽
456 무역센터가 무너졌습니다! (2) +5 23.03.27 3,306 118 21쪽
455 무역센터가 무너졌습니다! (1) +5 23.03.25 3,449 113 21쪽
454 쉽게 될 리가 없겠지..... +8 23.03.24 3,315 112 24쪽
453 영화가 영원히 머무는 곳. (2) +6 23.03.23 3,314 108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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