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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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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2.09.27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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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1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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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21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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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88.

DUMMY

*


쓰러진 사내는, 교단의 핵심 인물이었다. 그러니까 수뇌부들 중에서도- 교주라고 할만한 인물이었다. 정확하게 시몬스 종말교의 교리와 강령 따위들을 모조리 만들어낸, 일류 사기꾼이라고 할만했다. 나름대로의 카리스마와 인간미를 연기하는데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던 그는 다른 수뇌부의 인원들을 강력하게 이끌고 있었고, 그의 지시 아래에서 대부분의 계획들이 실행이 되었다.


다른 뛰어난 머리를 지닌 이들도 있었지만 어쨌든 그가 정신적인 지주라고 할 만했다. 사내가 쓰러지자, 다른 이들은 긴밀하게 연락하던 연결이 끊어졌음을 알았다.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무엇보다 패닉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삽십 초, 일 분 단위 따위로 수도 없이 지시를 반복하고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조직을 통제하기 위해 움직이던 이들이다.


리더라 할 만한 자에게서 연락이 끊어지자 다른 남은 이들 역시 불안에 휩싸였고, 생각보다 더욱 그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상대가 강력한 대적자들임을 깨달았다.


그래서였을지 모른다. 그러한 수뇌부들 중 한 명이 갑작스러운 행동을 시작한 것이.


“다 조용히 해!”

Fuck! Stop it!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모든 이들의 행적을 파악하는 건 쉬운 게 아니었다. 수뇌부, 라고 명명하고 찾고 있던 몇 명의 사내들 중 하나는 기어코 점퍼 조직의 눈을 피해 어느 건물에 숨어 들어갔다. 아마 비상용으로 따로 챙겨 놓은 물자 창고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 자신이 방탄 재킷처럼 상체 전부에 둘러 싸고 있는 폭약류를 보면 말이다.


폭약류, 처럼 생긴 모양이었다. 두꺼운 재킷에 줄줄이 매달려 있는 불길하게 생긴 검은 구형들. 모양도 제각각이었고, 어설픈 꼴로 매달려서 치렁거리고 있다. 사내는 그런 것들 중에 심장 부근에 달려 있는 가장 큰 공 모양의 폭탄에서, 이어지는 줄을 오른 손에 붙잡고 있었다. 그 끝에는 작은 리모컨 따위가 있어서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려둔 채였다.


사내가 황야 한가운데, 고층 빌딩 전면부의 광장이라고 불러야 할만한 곳에서 외쳤다. 그는 갈색 머리에 하얀 셔츠, 청바지를 입고 있다.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였고, 인상은 부드러워 어딘가에서 만난다면 호인이나, 사기꾼 정도라고 생각할 인물이었다.


그는 옆에 있는 어떤 여자의 목덜미를 팔뚝으로 휘감으며 다시 외쳤다.


“빌어먹을 새끼들! 우리가 우습게 보이나! 당장 멈추지 않으면 이대로 폭사할 거다. 여기 있는 사람들의 목숨이 아깝지도 않아!”


어찌 보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다고도 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남자는 자신이 살고 또 상대를 물리치기 위해서 자신과 종말 교단의 하위 인물들을 구분 지었다. 그러니까, 자신의 목적을 위해 상대에게 위시하기 위한 인질로 삼은 것이다.


비단 목덜미가 붙들려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젊은 미국인, 백인 여성 뿐만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이들 모두가 인질이었다. 저만한 양의 폭약이 터졌을 때 몇 명이나 살아남을 수 있을지 제대로 가늠이 되지 않았다.


홍인수는, 정확하게 고개를 떨구고 이마를 짚었다. 이마 위를 감싸고 있는 헬멧의 유리창을 장갑으로 짚은 것이었지만.


“···바로 쏠 수 있나?”


라고, 그는 고개를 내린 상태에서 조용하게 말했다. 헬멧 내부에 있는 통신기를 사용해서 전달하는 무전이었고, 그것은 사태를 상부에서 지켜보고 있는 스나이퍼에게 가는 말이었다.


백여 미터 위, 상공의 유리 천장에서 스나이퍼가 말을 받았다.


-···아니, 조금 어려워. 움직이면서 고개를 젓다가 이제 몸을 빙글빙글 돌리고 있잖아. 저격이 날아올 거라는 걸 알고 있는 거야.


그야말로, 안쓰러운 꼴이었다. 자신보다 체구가 조금 작은 여성의 뒤에 숨어서 머리를 감추고 소리를 지르고 있는 모습이라니. 어떤 일이 있어도 저격을 당해 죽지 않겠다는 생존 욕구가 돋보이는 장면이다.


사내는 비명처럼 자신의 항변을 계속해서 토해냈다.


“너희 같은 미욱한 자들에게 내가! 우리가 안락한 죽음을 주려고 했건만! 어째서 그걸 거부하는 건지! 당신들만 오지 않았어도 근방 도시의 수백 수천 명의 인구들에게 평안한 죽음을 선사해줄 수 있었는데!”


의외로, 논리정연한 말이었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개소리라는 점에서 말이다. 다른 이들에게 죽음을 선사하고자 하는 선각자인 그 스스로가 왜 죽음을 회피하고 있다는 말인가. 그 말의 총체와 요지가 정확하게 헛소리임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참으로 명쾌한 개소리였다.


사내는 그렇게 발악하듯 소리를 지르면서, 언제 어느 방향에서 튀어 나올지 모르는 저격에 부들부들 떨며 앞으로 전진했다. 그가 가고 있는 방향은 결국 기지 시설물들의 중간에 위치하며 구획을 나누는 역할을 하는, 고층 빌딩이었다. 약 10여 층의 높이를 가진 빌딩은 기지 내에 우뚝 솟아 상징성을 드러내고 있다. 다만 좋은 의미의 상징성은 아니었다. 결국은 사이비적 사상을 가진 그들 스스로의 논리적 부정합성과 파괴성을 과시하는 건물이다. 좋은 행동과 계획을 위해 지어진 건물이라면, 그것의 높음이 얼마든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었다.


결국 반사회적인 테러 집단인 그들의 시설물들은 용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부수어버리는 것이 차라리 나은 물건들이다.


그런 점에서, 홍인수는 중앙 건물로 자신의 몸을 움직이는 사내의 모습을 보면서 고층 빌딩을 그대로 폭파시켜버리는 것은 어떤가, 잠깐 고민했다.


그리고 이내 다시 고개를 저었다. 지나친 스트레스 상황에서 단순하게 문제를 해결하려다 하다 보니 나온 허튼 생각이었다. 애초에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고 없애기 위해서 이렇게 고생을 하고 있는 것 아니었는가. 저 사내가 인질을 잡고 있는 중이라면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럴 거면 그냥 지금 스나이퍼를 시켜서 방아쇠를 당기도록 종용을 하는 것이 낫지.


사내는 어수선한 기지 내의 상황 속에서 용케도, 그 목숨을 부지한 채로 자신이 인질로 잡고 있는 여성과 함께 건물 내부로 성공적인 피신을 했다.


홍인수는 한숨을 쉬면서, 스나이퍼를 비롯해 현장에 있는 점퍼 요원들과, 백업 요원들에게 무전을 전했다.


-선동자가 인질을 끌고 중앙 빌딩 내부로 들어갔다. 적당히 기회 봐서, 내가 제압하고 인질 빼낸다.

-그 전까지 다들 거리 벌리고 지나치게 자극하지 말고 소강 상태만 유지합시다.


편의상 한 번에 말을 했지만, 앞에 문장은 점퍼 요원들에게 하는 말이었고 뒤엣 말은 백업 요원들을 포함한 전체에게 전달하는 이야기였다.


그는 현장에서 대부분의 점퍼 요원들보다 선임이었으며, 나이대도 적지 않은 편이었으나 백업 요원들까지 포함을 한다면 그보다 한참 경력이 높은 이쪽 분야의 선구자들이 많이 있었다. 홍인수는 비교적 현장에서도 그들을 존대하는 편이었다.


물론, 상황이 급박하다면 그딴 건 없었지만. 대부분의 극한 상황에서도 홍인수는 말을 나눠서 할 만큼의 여력이 있는 사내였다.


-롸져.


를 비롯해서, 간단한 여러가지 답신이 전달되었다.


그대로 건물 내부로 시선을 옮겨 본다.


*


사내의 이름은 미카엘 체르코프였다. 러시아 계의 이민자의 피가 이어진 집안의 아들이었고, 나름대로 중산층 이상의 자산가 아래에서 생활을 해 온 사내였다.


평범한 유년기와 학창 시절을 거쳤지만, 그는 어릴 때부터 진정한 의미의 보살핌과 교육과는 다소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갔다.


그의 가정은 겉으로는 평안했지만 속으로는 많은 구멍이 있었고, 어린 시절부터 그는 긴 시간 동안을 홀로 방치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다양한 아픔이나, 기구한 사연들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었지만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어떤 선택을 해나가느냐는 개인의 것이었다.


미카엘은 다양한 악랄한 지식과 정보들을 유년기 때부터 받아들였고, 자라나 많은 선택을 하는 시점에서 최악의 것들을 골라왔다.


지금의 그의 상황도 그런 선택의 연속이 쌓이고 중첩되어 만들어진 것이었다.


얌전히, 목숨을 아래에 내어두고 무릎을 꿇는다면 그들을 적대하는 조직은 그의 목숨까지는 거두어가지 않을지도 몰랐다. 상대하는 이들의 성향과 성격이 어떤지도 알 수 없었지만 그는 그런 상황에서 하나의 인질을 잡고 자신의 목숨을 직접 저울질하는 길을 선택했다.


될 지, 안될 지 알 수 없는 길이었으나 그는 나름의 과감함으로 상황을 이끌어가려 했다. 온몸에 폭탄을 둘렀고, 실제로 작동하는 리모컨의 버튼을 통해서 좌중을 위협했다. 과격하고 지나친 화력으로 그들 무리를 집단 학살하는 대적자들이 아니라는 시점에서, 그는 상대가 정부나 공기관 등에서 비롯된, 온건한 사회 질서를 머릿속에 박아 둔 군사 조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일반적인 상식을 따르는 이들 말이다. 그리고 그런 이들이라면, 의외로 이런 협박이 통할지도 모른다. 그는 실행에 옮겼고, 운이 좋았는지도 모른다. 용케 살아남아서, 갑작스러운 저격으로 하나둘씩 연락이 끊겨가던 수뇌부의 일당 중에서 멀쩡한 몸을 가진 채 다시 중앙 빌딩으로 들어왔다.


건물 내부에 있다고 하더라도 사태가 호전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일렀다. 조금 더 확실한 그의 생명줄이 있어야만 했다. 체르코프는 주변을 둘러보았고, 건물 내부에서 기척을 감춘 이들의 흔적을 발견했다.


그는 완력으로 인질로 삼은 여자를 이끌면서, 건물 내부를 뒤졌다. 그리고 2층 복도에서, 멍청하게 서 있는 한 사내를 발견했다.


*


민서가, 건물 내부에 덩그러니 남겨져 있던 것은 별다른 이유가 있던 탓은 아니었다. 백업 요원들은 나름대로 베테랑들이었고, 인질을 붙잡은 폭탄 테러범이 건물 내부로 들어온다는 무전을 듣고 알아서 거리를 둔 채 건물 안쪽, 혹은 윗층으로 빠졌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점퍼 요원들이 지나가면서 외부로 그들을 빼내기도 했다. 민서는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베테랑 요원들의 행동에 합류를 해서 빠져나가지 못했다. 총알이 난무하는 어지러운 현장 상황 속에서 다소 인지가 늦어졌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움직이는 민서를, 다른 백업 요원들이 굳이 인도하지도 않았다. 그는 점퍼 요원들 중 한 명이었고, 그들의 직접적인 지시를 따르리라는 착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현장에 오게 된 민서는 잠깐의 지시 공백 속에 남겨졌다. 그리고 그가 스스로 행동해서 현장에서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노련한 편이거나 기민한 잔머리를 가지고 있는 성격도 아니었다.


그저 전달받은 무전에 따라, 나름대로 어떻게 움직여야 할 지 생각을 하다가 행동이 늦어진 것 뿐이다.


다른 점퍼 요원들도 미처 그를 떠올리지 못했다. 백업 요원들의 움직임에 편승을 해서 안전한 자리로 잘 움직이고 있겠거니, 잠깐 생각을 했다. 애초에 완전 무장을 한 상태에서 어지간한 총기류의 피탄으로는 죽지 않는다. 그런 무장 상태에 대한 인식이 있었기에 약간의 방심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


민서는 그간 다양한 경험들을 했고, 일반적인 한국의 남성이 겪기 어려운 상황들을 많이도 마주했지만 아직 완벽하게 현장을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머리가 복잡해지면 생각이 멈추고 행동이 굳는 편이었고, 그런 습관은 현장에서 악의적인 의도를 가진 대적에게 붙잡혀 봉변을 당하기에 아주 좋은 습관 중 하나였다. 나쁜 습관이라고, 할만했다.


그런 단순한 몇 개의 이유들이었다. 미카엘의 눈에 민서가 들어온 것은.


*


“오 싯Oh shit······.”


스나이퍼가 현장 상황을 마주하고 저도 모르게 영어로 욕설을 지껄였다. 함부로 상대를 자극했다간 폭탄이 터져나갈 수 있었다.


인명 피해를 줄이고, 수뇌부들을 제압하거나 없애고, 남은 인원들을 서서히 진압해 나가기 위한 그들의 작전에 한 차례 더욱 엉킨 실타래를 던져주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지금 그가 패널로 확인하고 있는 건물 내부의 상황은 말이다.


고층 빌딩은 창문이 여러 곳 개방되어 있기도 했고, 폭탄마가 움직이는 곳이 빌딩 내부의 심처나 밀실이 아닌 복도였기에 그가 상황을 확인하기에 용이한 구석이 있었다.


어느새 민서는 알지도 못하는 백인 여성과 함께, 사내의 손에 붙들려서 같이 인질의 꼬라지가 되어 있었다. 목덜미를 붙들려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사내가 발작적인 행동을 하며 모든 걸 끝내버릴까봐 힘을 쓰지도 못한 채 있다.


미카엘은 양 손의 팔뚝으로 민서와 여성의 목을 감싸고 있었고, 그의 오른 손에는 여전히 작은 리모컨이 붙들려 있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진입을 해서 정확하게 여성만을 빼내어 오려고 하던 홍인수도 소식을 전해 듣고 다시금 머리를 감싸 쥐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혔다.


아, 김민서. 그 자식이 있었지.


최대한 단기간 내에, 다양한 현장에 데리고 다니면서 경험을 쌓게 하고 한 명의 요원으로 성장시키려는 것이 지난 날 동안 조직의 운용 방향성이었다. 재머에 대한 말이다.


일반적인 신입 요원이라고 하더라도 그럴텐데, 더군다나 재머는 다양한 스트레스와 위기 상황들을 넘나들면서, 그 스스로의 능력이 증폭되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가급적이면 목숨의 위협까지는 받지 않는 상황 내에서, 극한의 경험들을 겪게 해주면서 그의 능력이 최대한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가 강력한 능력을 갖게 되고, 점퍼들에 대한 통제력이나 대응력을 갖게 된다면 그만큼 점퍼 조직의 부담감이 덜어지고, 그들의 역량이 온전히 사회 문제나 재난 사태에 대한 해결에만 집중될 수 있기에 그러했다.


김민서, 재머라는 이름의 특질의 능력자는 조직이 귀중하게 운용해야 할 특수 자원이었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다소 상황에 알맞지 않더라도 무리해서 모든 현장에 데리고 다니는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현장의 사태가 괴악하게 급변했다.


전투조를 없애고 났는데도 수뇌부가 살아남아서 노약자나 여성들 따위로 구성된 민간 신도들을 선동했고, 여전히 총기류를 꼬나쥔 채 그들에게 반격 중이다. 그마저도 스나이퍼를 운용해서 수뇌부들 위주로 저격을 하려고 했더니 한 명이 기어코 살아남아서 인질을 잡은 채 빌딩 내부로 몸을 숨겼다.


그마저도 소드 마스터가 자신의 모든 능력을 활용해 순간 인질을 빼내고 폭탄 테러범을 제압하려고 했더니, 건물 내부에서 잠깐 지시 공백을 겪은 신참 요원이 느닷없이 붙잡혔다.


신참 요원, 김민서라고 하더라도 일반적인 상황에서 테러범에게 붙잡힐 정도의 능력을 가진 건 아니었다. 나름대로 코치와 마스터, 리시버 등의 엘리트 전투 요원들이 달라붙어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교육을 시켰고, 단기간 내에 때려박은 것이었지만 최소한의 대응 능력 정도는 갖춘 것이 그였다.


애초에 신체가 건장한 한창 때의 청년이었으니, 단순 무식하게 때려 박는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하게 될 테였다. 개인의 운동 신경과 자질, 기질, 현장 경험에 대한 습득력 따위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어지간한 이들이 경험하지 못할 분량의 양을 밀도 높게 주입한 것이 사실이다.


홍인수의 눈으로 보더라도, 어떤 현장에 가더라도 일개 병사로서 그보다 높은 능력을 지닌 이들은 찾기 어려울 테였다. 특전사 부류가 아니라, 일반적인 부대의 병사들이라면 말이다.


어지간한 건장한 군인들과 비교해도 대응이 가능할 정도의 능력은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저런 꼴이 된 걸 보면 눈앞에서 민간인 처럼 보이는 인질이 위협받고 있으니 사고 회로가 멈추어서 제대로 된 반항을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홍인수는 초조하다는 듯이 톡톡, 자신의 장갑을 낀 검지로 헬멧을 두드렸다. 약간의 광기와 패닉, 착란 증세 따위마저 보이며 총기를 들고 우왕좌왕하는 수백 명의 인원을 제압하는 것만 해도 두통이 오는 일이었다. 글라이더와 리시버는 계속해서 점프를 사용하고, 가진 바 모든 능력을 동원해 한 명씩 떨어뜨려 놓고 있다. 혹은 팔이나 다리 정도를 부수어서 행동 불가의 상태로 만들어 놓거나.


백업 요원들도 적당히 위협 사격 따위로 교전을 이어가며 상대의 총탄을 비우게 하고 있었고, 시선을 한 쪽으로 끌고 있다. 그 틈에 점퍼 요원들이 더욱 수월하게 움직이고 있고.


홍인수는 그런 엉망진창의 상황 속에서 한 켠 벗어난 자리, 야외에 서서 상황들을 인지했다. 일단, 시각 정보로 현장을 파악할 수 있는 스나이퍼의 눈이 필요해 보였다. 그가 스나이퍼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상부로 점프를 했다.


*


“현장 상황··· 엉망이군.”


홍인수는 스나이퍼의 저격총에서 튀어 나온 패널로 빌딩 내부의 상황을 보고 있었다. 비쥬얼 데이터 수집기계의 렌즈로 직접 확인 가능한 각도가 아니었고, 건물 내부였으므로 색이 없는 형상으로 보고 있는 것이었으나 상황을 확인하기에는 충분하고도 남는 자료였다.


선명하게 그 팔다리의 움직임까지 모두 보이는 정도이다. 상대는 불안에 떨고 있었으나 당장 폭탄을 터뜨릴 것 같지는 않았고, 아직 다음 요구를 명학하게 하지도 않았다. 시간을 끌고 잇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이 이 상황에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방법을 부지런하게 머리를 굴리며 떠올려 보는 것일지도 모르겠고.


어쨌거나 그런 와중에, 김민서는 헬멧 내부에서 약간은 멍하거나, 해탈한 듯도 보이는 표정으로 붙들려 있었다. 상대는 김민서의 무장을 굳이 해제시키려고 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어차피 허튼 움직임을 보이고 자신이 리모컨을 누르면, 상대 역시 죽으리라 생각해서였다.


진실은, 아주 큰 부상을 입을 테였지만, 죽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점퍼 조직에서 제공하는 방탄 피복 중에서도 가장 특수 소재가 밀도 높게 들어간 물건으로 완전 무장을 한 상태였고, 아마 충격으로 멀리까지 튕겨 나가 바닥을 구르고 해소되지 않는 파괴력이 내부를 흔들겠지만 죽을 정도는 아닐 수 있었다.


그러니까, 길가에서 차량에 접촉 사고를 당하는 것과 비슷했다. 확실하게 죽을 정도로 강렬한 종류가 아니라, 부상을 입어서 전치 몇 주에 시달려야 하는 종류의 말이다.


물론 운이 나쁘다면, 그대로 목숨을 잃을 확률이 제로인 것은 아니다. 다양한 가능성을 점쳐 본다면 그대로 마지막을 맞이할 수도 있었지만, 그나마 최악의 상황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홍인수는 한숨을 들이키고, 스나이퍼에게 당부를 전했다.


“최대한 해볼테니··· 노려서 잘 해보십시오.”


라는 말이다. 그 말은 즉, 그가 인질은 빼내볼테니, 상대가 폭발을 일으키기 전에 폭탄이 없는 부위를 노려서 불필요한 소란을 없게 하라는 이야기였다. 화약이 붙어있지 않으면서 상대의 움직임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는, 결국 두부頭部를 노리는 수 밖에 없었다. 스나이퍼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금 조준에 집중한다.


상대는 불안하다는 듯이 움직이면서, 자신의 모습을 인질의 체적으로 가리기 위해 애를 썼다. 스나이퍼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서 자신의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구도를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있다. 나름의 영리함인지도 모른다. 그 말로가 자신의 목숨을 과연 유지시켜주는 쪽일 지는 알 수 없었으나.


마스터가 다시, 협곡의 천장에서 도약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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