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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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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2.09.27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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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1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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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19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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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겨울

DUMMY




11월 24일. 목요일.


시계를 아주 조금 뒤로 돌린다. 마이클은 스스로의 이름을 정했다. ‘루시페르’. 반역자에게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점퍼 조직은 이름도 없는 곳이었지만, 세계에 존재하는 초능력자들이 모여서 집단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가공할만한 능력을 보일 수 있는 집단이었다.


본디 일반적인 천재 중 하나로서 그 조직에 가담했던 그는 그 능력의 일부를 취해서 바깥으로 돌고 있었고. 이제는 그 집단의 전복을 노린다.


마이클의 속셈은 간단한 것이었다. 조직의 해체와 질서의 재편. 질서의 재편, 까지는 가지 못해도 좋다. 단순한 해체만으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었다. 자신의 두뇌나 계획, 그리고 인맥과 텔레포터를 비롯한 몇 명의 능력만 있다면 세계를 제 안방을 누비듯 자유롭게 누비면서 많은 일들을 저지를 수 있다.


점퍼 조직은 당장 협약에 의해 각국의 수장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을 불허하고 있었지만, 조직이 무너지고 무정부 상태처럼 점퍼들이 난립한다면 알게 무언가. 그는 누구보다 대담하게 각국의 정상들을 노리고, 혼란 속에서 자신 위주의 질서를 재편할 마음까지도 있었다.


어쨌건 그가 바라는 건 혼란이나 그 속에서 얻을지 모르는 권력이었다. 세계는 너무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라는 말은 어떤 역사학자들이나 할 말인지 모른다. 20세기에 있었던 변혁과 개화의 물결이 한 차례 지나가고, 특별한 일 없이 21세기를 맞이했다. 그리고 또 20여 년이나 지났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다.


백여 년에 한 번 인류 문화나 기술사, 역사의 특이점이 있다면 오히려 조금 늦다고 생각했다. 마이클은 그것을 자신이 일으킬 생각이었다. 물론, 그에게 있어 진보를 이루어낼 능력은 없었으니 퇴보에 가까운 것이었다. 마이클 개인의 삶에 있어서는 진보를 이룰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이들이 쌓아둔 탑을 모조리 무너뜨리고 그 밑돌을 빼내어 자신의 집을 지으려는 심산이었으니 말이다.


“어, 거기 놔 둬.”


마이클은 예의 필리핀의 폐건물에 있었다. 그간 이래저래, 사람들을 꽤 부려서 청소를 한 탓에 그나마 있을만해진 곳이었다.


먼지나 잡다한 것을 치우고 뚫려 있는 창문의 빈 공간에 창문을 끼워 두었다. 목재 틀을 크기에 맞추어 제작해서 유리로 채운 것이다. 여닫이로, 바깥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을 수 있었다.


깔끔하게 청소를 하고 적당히 의자를 몇 개인가 가져다 두었다. 물건들을 놓을 테이블이나. 쉴 수 있는 간이 침대도 있었고. 점퍼가 있을 때 편리한 점은 그것들이다. 개인이 옮길 수 있는 정도의 무게나 크기라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짐 역시 나를 수 있었다.


필리핀인 사내는 오늘도 부지런히 일을 하고 있었다. 마이클이 그에게 말한 것이다. 까무잡잡한 피부. 곱슬머리의 청년은 무거운 케틀벨 따위를 나르고 있었다. 이 삼십 키로그램 정도 되는 중량들이었고, 웨이트를 한다고 해도 제법 근수가 나가는 것들이었다.


그것들을 더플백 따위에 넣고 한 번에 여러개씩 옮긴다. 어딘가에서 가져와서 폐건물로 이동해 온 청년은 마이클의 지시를 받고 한 구석에 중량이 나가는 물건들을 두기 시작했다.


잡다한 웨이트용 기구나 정체가 의심스러운 철제 박스 따위가 쌓여간다. 마이클은 보기보다 간단한 사람이었다. 그럴 의지만 있다면, 몇 가지 물건만으로도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폐건물에서 눈에 띄는 것은 그런 것이다. 마치 우주복처럼, 일체형으로 생겨 있는 수트. 머리 부위에는 얇은 유리같은 질감의 헬멧도 있었다. 폐건물의 테이블 위에 그런 것들이 여러 벌 늘어져 있었다.


짐을 나르는 일에는 윤민혁도 동원이 되었다. 그 역시 무거운 자재나 내용물을 알 수 없는 견고한 박스 따위를 점프 몇 번으로 옮겼다. ‘물건’들이다. 아주 간단하게 사용을 할.


마이클은 전화기를 입에 대고 상대와 이야기를 하면서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청년, 유진이 상대였다. 유진 역시 그와 통화를 하면서 어딘가에서 텔레포트로 필리핀인 사내를 움직이고 있었고.


한참을 움직이면서 모아둔 묾건들이 폐건물의 한 구석에 쌓였다. 마이클이 이야기를 했다.


“음, 이 정도면 될 것 같은데. 초토화 시키기에 딱 좋군.”

-예 안그래도 다 옮긴 것 같습니다.


건너편에 말을 받는 이는 유진이다. 마이클에게는 텔레포터와, 윤민혁이 있었다. 둘을 합쳐서 약 삼백 하고 좀 더 넘는 도약 횟수가 있었다. 한 번에 오십 Kg 정도의 무게만 옮긴다고 하더라도 15톤 분량의 무게였다. 물론 그만한 무게를 일시적으로라도 드는 게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았지만.


점프에 필요한 타이밍은 그야말로 일순간이었다. 아주 잠깐만 감당하면 된다.


그만한 무게를 물론 하루에 다 채우지도 않았다. 정말로 능력을 한계까지 쓰려고 하다 보면 녹초가 되어서 다른 일들에 쓸 여력이 아예 없을 것이다. 마이클은 준비가 순조로운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윤민혁이 물건을 다 옮기고, 구석에 서서 그들이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는 마이클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그럴 생각인가.”


마이클은 간단한 이야기로 통화를 마치고 통신기를 주머니에 도로 넣었다. 그러다가 윤민혁이 하는 말을 듣고 눈을 껌벅이며 있다 고개를 끄덕였다.


“안될 것 있겠는가. 날 잡아서 겨울이 시작할 때 즈음 화려하게 축하를 해주면 다들 좋아하겠지.”


윤민혁은 그 소리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역시 만만찮게 이런저런 일들을 계획하고 벌이는 인간이었지만 이 작자는 생각하는 방향성이 남달랐다. 그 뒤처리가 정말로 가능하단 말인가.


어쨌든, 한배를 타기로 했으니 실행까지는 같이 할 따름이다. 윤민혁은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마이클의 계획은 생각을 한다고 따라갈 수 있는 류의 상상들이 아니었다.


물건이 얼추 정리되자 마이클이 이야기했다.


“일을 마쳤으면 밥이나 먹지. 점심은 내가 사겠네.”


윤민혁은 자신보다도 나이가 어리고, 대담한 사이코패스를 보며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


어느새 날이 부쩍 추워지고, 쌀쌀해졌다. 가을의 막바지에 이르러 한기는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몸 속으로 파고들며 옷깃을 여미게 만들었다.


거리는 여전하다. 별다른 일도 없었고. 사람들은 사건이 없는 하루를 보내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일인지 아는 것인지. 무덤덤한 표정들로 시내를 채우며 각자의 일을 보고 있었다.


11월 30일. 수요일. 민서는 잠시 외출을 했다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점퍼로서 이런저런 일들을 처리하고, 또 임무에 참여하는 시간은 많았지만 사실 ‘재머’인 그는 직접적인 도약 능력이 없었다.


그가 현장에서 필요한 일들은 그래도 일부로 제한되는 종류였고, 훈련이나 실험 따위의 개인적인 일과를 제외한다면 여가 시간이 날 때가 많았다. 아직 조직에서 보낸 세월의 연차 또한 신입에 지나지 않았고.


조직의 사람들이나 운영 방식은 그를 배려하고 있었다. 고로, 민서는 이렇게 한가한 날 잠시 거리를 둘러보며 상점가를 들렀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동대문구 근방에 그달리 볼만한 게 생각나지는 않았다. 근처의 시장이나, 마트나 백화점 따위를 기웃거리다가 찬거리나 조금 사고, 겨울에 입을 만한 니트나 한 두벌을 사고 난 이후다.


혼자서 많은 것들을 하는 취미도 없었고. 오늘은 부를 만한 친구도 없었다. 수정 또한 따로 볼 일이 있는지 바쁜 와중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앉아서 창가를 바라보는데, 어느덧 일찍 지기 시작하는 저녁 무렵에는 어슴푸레한 빛깔이 사위를 장식하고 있었다. 거리를 밝히는 불빛이 김이 서린 창가 너머로 번지고 있다.


시내 버스는 하도 많이 타고 다녀서, 가끔은 친숙할 지경이었다. 머리를 차가운 창가에 기대니 그 한기가 머리에 전해져서 조금 마음이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복잡한 생각들이 많을 때는 이렇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얼음을 댄다거나, 냉동실 문을 열고 거기에 머리를 처박고 잠깐 있다거나.


고민을 드러내는 편은 아니었지만 이따금씩 머리가 과부하가 걸리는 것처럼 잘 돌지 않을 때가 많이 있었다. 인생은 늘 이해할 수 없는 사건과 고민의 연속이다. 즐거울 땐 한없이 즐겁다가도, 가끔은 복잡한 과제를 던져주는 교수님처럼 굴 때가 있었다.


여유는 중요하다, 여유는.


민서는 한기가 스며드는 것 같은 가슴께에 깊은 한숨을 뱉어 조금의 진정제를 넣으며 시내를 구경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가 섰고, 그는 내려서 어두워진 거리를 지나 집으로 돌아갔다.



*



TV에서는 시덥잖은 예능 프로가 하고 있었다.


예능 프로 전체가 시덥잖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것도 집중해서 보다보면, 애정을 갖고 시청하다 보면 가끔 누군가의 인생이 들어있다는 실감이 날 때가 있었다.


이질감을 갖고 화면 너머의 누군가를 들여다보는 일이었지만 어쨌든 그도 동시대에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의심의 눈을 거두고 본다면 결국 이해해야 할 동반자에 가깝다.


김민서는 그대로 집에 들어와 자신의 원룸 방 안에서 홀로 앉아 있었다.


반쯤 켠 조명. 이전보다 달라진 원룸은 살기에 편한, 깔끔한 집이었다. 슬쩍 열린 창문 틈새로 바깥의 한기가 들어온다. 잠에 잘 들지 않고 정신이 들어 있기에 좋고, 또 바람이 불기에 열어둔 상태였다.


식탁에는 이런저런 간식 따위들을 늘어놓고 뜯지도 않고 있었다.


TV가 벽면에 붙게 세워져 있었고 그 옆으로 침대가 있다. 침대에 걸터 앉아서 TV를 바라보고, 이런저런 생각들을 혼자 조용히 하다가 창문을 바라본다. 시간은 금세 지나가고 밤이 어두워진다.


이제 일어나서 밥이라도 차려 먹어얄텐데. 어지간히 잘 떨어지지 않는 귀찮음은 발걸음이나 손을 움직이는 것조차 붙잡아 시간을 끌게 만든다.


끔벅끔벅,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몇 번인가 떴다 감았다 하며 눈꺼풀을 비볐다.


씻고, 밥도 차려 먹고. 운동을 좀 하고. 자야지. 즐겁고 또 고요한 휴일이다. 겨울이 다가오는 날은 언제나 그 찬 공기가 정신을 들게 하는 것 같아 좋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잠이 잘 깨는 듯한 기분은 왜인지 생기가 도는 느낌마저 준다.


김민서가 겪은 가을의 마지막 날의 일과였다.


*


12월 1일의 아침. 겨울은 고요하게 시작되었다.


목요일이었고, 별다른 일은 없었다. 아침부터 그를 찾는 일정이나 약속도 말이다. 느즈막히 일어나 준비를 하고, 아침밥을 먹고, 정해진 장소에 가 있다 보면 점퍼 요원 중 한 명이 데리러 올 테였다.


그러면 단체 도약으로 기지에 가서 일상과 같은 훈련을 좀 받고, 운동을 하고, 다시 스위스로 넘어가서 JE2에 대한 이런저런 실험의 대상이 되어줄 차례다.


오늘 특별한 임무는 없었고 일상적인 일들의 반복이었다.





작가의말

뭐 이런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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