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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2.09.27 18:20
최근연재일 :
2024.06.21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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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17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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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86.

DUMMY

*


글라이더가 촬영한 영상 데이터, 위치 정보들은 모조리 메모리에 담겨 조직으로 옮겨졌다.


그것을 기반으로 내부 3D맵이 구현되었고, 점퍼들이나 백업 요원들은 모두 특수한 글라스 고글을 끼고 있었다.


다양한 외부 먼지나 환경으로부터 눈을 보호하는 역할도 하지만, 여차하면 AR(증강현실)기술이나 글라스 자체 패널로 디지털 정보들을 주어 임무를 수월하게 했다.


조직에서 임무에 투입된 점퍼는 엘리트 전투 요원이라고 할 수 있는 홍인수와 최길우, 그리고 글라이더였다. 그 역시 점프를 사용해 전장을 누비면서 백업과 돌입의 중간 전선에서 교전을 벌이는 일 정도는 충분히 해내고도 남는 사내였다.


사이비 교단의 동태는 그간 계속 주기적으로 파악이 되고 있었는데, 몇 주가 지나기 전에 아마 과격한 종교적 행사를 치루고자 하는 모양이었다. 말을 돌려 하자면 그렇게 되고, 단순하게 읊자면 근처 도시나 마을에 가서 무차별적인 총기류 난사를 벌일 작정인 것이다.


점퍼들이 도움을 준다면 내부에 도청 장치나 화면 송수신기를 설치하고 내부 정보를 파악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들은 정해진 시간에 규율에 맞추어 시설 내에서 움직였고, 정해진 시간에 강설講說시간을 가져 그들의 조직적인 계획을 공유했다. 서울에서는 점심 무렵, 그러니까 오후 1시면 그들이 있는 곳에서는 늦은 저녁이었다. 해당 날짜의 하루를 마치고 이제 인원들이 시설 내부에서 통금 시간을 맞추어 움직임을 자제하고 있을 때, 그들이 돌입한다.


글라이더를 비롯해서, 여러 명의 요원들은 이제 황야의 협곡 근처 평지에 있었다. 근처라고는 해도 눈으로 까마득하게 협곡이 관측될 정도의 거리였고, 불필요한 소음으로 시설 내부의 경계를 키우지 않으려는 조치였다.


여러 명들이 장비들을 착용하고, 개인 화기 혹은 임무에 쓰일 다양한 물자와 자재들을 휴대용으로 만들어 손에 들었다. 자신의 손으로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점프로 이동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어쩔 수 없는 모습이다.


야외의 외벽 내부, 시설물들 근처에 설치된 영상기기가 그들에게 현황을 전송해주고 있었다.


늦은 저녁, 야외에 있는 인물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이 돌입한다.


“이 쪽으로.”


백업 요원들은 보통 서구권의 엘리트 용병이나 특전사인 경우가 많았다. 민서도 그들 사이에 끼어 있었다. 전투력이나 경험은 비교가 되지 않았지만, 현장에서 점퍼로서 능력을 발휘하는 건 아니었기에 분류상 비점퍼 요원들과 같이 움직인다.


대부분의 의사 소통은 영어로 이루어졌고, 민서도 간단한 말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먼저 각자의 무장을 마친 상태에서 글라이더가 손짓을 했고, 백업 요원들은 익숙하다는 듯 그에게 다가갔다. 다른 이들도 준비가 끝난 홍인수와 최길우에게 가까이 간다.


밤, 평야, 그 중에서도 황야. 고즈넉한 사막의 정취 아래 있는 그들을 밝게 빛나는 별들이 비추고 있었다. 사람이 얼마 없는 이런 황무지에서 자연은 더욱 더 빛을 발하게 마련이었다. 마치 쏟아질 것같은 은하수들이 그들의 행보를 지켜본다.


모래 먼지가 섞여 불어 오고, 제법 추운 기온이었다. 무엇 하나 바람을 가릴 곳이 없는 개활지에 햇빛조차 사라지니 추위가 상당하다. 온갖 기이한 모양들로 깎여 나간 기암괴석들이 형태를 뽐내고 있었고, 저 멀리로 땅이 푹 꺼진 흉터처럼 생긴 협곡이 존재한다.


협곡은 아래로 주저 앉았기에 멀리서 한 눈에 보기는 어려웠다. 어쨌든 정확한 위치는 알고 있다. 지프 차 몇 대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부지런히 꺼내고 옮기고 한 동안 준비를 마친 이들이 움직인다. 먼저 글라이더에게 다가간 두 명의 건장한 용병에게, 글라이더- 그러니까 존이 양 손을 펼치며 어깨에 손을 대었다. 용병들은 갖은 장구류를 착용하고 짐이 한 가득이다. 그리고 한 명은, 글라이더가 들어야 하는 짐 또한 들고 있었다.


그가 한 손을 짐을 드는 데 사용 한다면 점프 횟수를 낭비하게 되는데, 그러느니 그냥 한 사람이 잠깐 헬스를 하듯 무게를 감당하는 게 훨씬 효율적인 것이었다. 후욱, 하고 그들이 황무지에서 사라졌다.


어두운 밤. 지프 차의 불빛 정도만이 그들을 비추고 있었다. 10명의 인원 중 한 명은 민서였고, 나머지 진짜 용병과 특전사 군인들은 아홉이다.


곧이어서 홍인수와 최길우에게 다가간 이들도 곧 모습을 같이 감추었다.


민서는 그런 모습을 보며 문득 심장이 두근 거리는 걸 느꼈다. 너무 경치가 좋아서, 머리 위에 빛나는 별들이 아름다워서, 그런 건 아니었다. 이제부터 진짜 전장이라고 할 만한 곳에 돌입한다는 사실 탓이었다.


전쟁터라는 건 아무리 많이 겪어도 익숙해질 수 없는 무언가 중 하나였다.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베테랑이라고 하더라도, 새로운 전장에 들어서는 그 첫 순간은 늘 떨림과 긴장감을 겪고 있으리라. 거기서 더욱 부정적인 예상이 하나 두 개 추가된다면 그것을 불안감이라 해야할 테였다.


민서는 괜한 불안감은 갖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았다.


세 명이 남아 있었다. 민서는 갑작스럽게 준비를 마치고 곧바로 이 현장으로 끌려왔기에, 정작 같이 움직여야 하는 이들과 교류를 나눌 시간조차 충분하지 않았다. 짬을 내어서 민서가 먼저 입을 열었다. 검은 머리를 한 흑인이었다. 눈매가 나름 선하고 체격이 큰 자였다. 가까이에 있는다면 왠지 전장에서의 생환률이 올라갈 것 같은 분위기다.


근거나 논리는 없었지만, 그냥 듬직한 사내였다. 민서가 그에게 물었다.


“어, 저기. 이런 일은 여러 번 해봤습니까? 괜찮을까요?”


30대 정도, 로 보이는 흑인 남성은 민서의 약간은 어눌한 영어 말투에 잠시 물끄러미 그를 보더니, 허허허하고 웃음을 내보였다.


“겁이 나나, 점퍼? 하긴 초능력을 가진 것과 죽음에 대한 공포는 다른 이야기지. 당신이 저들의 반만큼만 잘 싸운다면 그런 고민은 안 해도 될텐데.”


남자가 말하는 건 리시버와 마스터였다. 그는 점퍼 조직의 임무에 자주 지원을 해서 온 비점퍼 전투 요원, 백업 부대의 일원이었다. 미 특수부대에서 복무한 경험이 있는 퇴역 군인으로 민간 용병 단체와 점퍼 조직을 번갈아가며 활동하고 있는 인물이다. 실력이 좋고, 성격도 나쁘지 않아 점퍼 조직에서도 평판이 좋은 동료였다.


그리 튀지 않는 눌린 곱슬머리 사내의 말에 민서는 어색하게 웃었다.


“저는 순간이동을 못 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른 능력이라서요. 전장에서 당신들과 같은 조건입니다. 실력은 더 형편없고요.”


민서의 말에 흑인 남성이 씨익 웃었다.


“아, 그래. 그런 종류의 요원이었군. 너무 걱정은 말게. ‘마스터’가 함께 한 임무에서 사망자가 나온 경우는 근 수년 간 한 번도 없었으니 말이야. 정 겁이 난다면 후방에서 대열을 유지한 채 싸우도록 하고.”


나름대로, 군인답지 않은 친절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의 내용이나 자세한 설명과는 상관 없이, 민서를 위하는 그 마음이 위로가 되는 편이었다. 민서는 사내의 정을 느끼며 밤 하늘 아래에서 심장을 간신히 진정시켰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라이더와 리시버가 다시 돌아와 그들을 데리고 황야의 비밀 기지로 이동을 했다.


*


탕!


하고 들리는 건 지겨운 총소리였다.


그러나, 지겹다는 건 그의 생각이었지 거기서 오는 위압감과 스릴마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머리 한 구석에는 계속해서 반복되는 자극에 익숙함을 느끼지만, 몸이 떨리고 반응을 하는 게 달라지진 않았다. 완전한 장비를 착용했다고는 하지만, 실제 전장에서의 긴장감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점퍼 요원들이나, 비점퍼 요원들이나 모두 A급의 장비들을 착용하고 있었다. 풀페이스 헬멧, 전신을 감싸는 방탄 피복이나 플레이트, 장갑과 신발. 완전 무장을 하고서 조직의 기술력으로 다소 개선이 된 총기들을 거느린 채 돌입한다.


늦은 밤중에 벌어진 습격이었지만 적들은 나름대로 잘 대응을 해왔다. 이 조직에서 수뇌부처럼 움직이는 몇 명과, 그들에게 훈련을 받은 소규모의 타격 부대가 있는 듯했다. 아마 일을 치른다면 저들을 위주로 움직이고 나머지가 그 뒤를 따를 생각이었겠지.


익숙하게 총기를 다루는 건 이십여 명 내외였다. 나머지는 전장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이는 편은 아니었고. 그리고 그 정도는, 무리를 좀 한다면 마스터 혼자서도 처리가 가능한 수준이기도 했다. 리시버 역시 마찬가지였고.


압도적인 무장 상태의 질적 차이는 결국 전쟁의 양상을 근본적으로 바꾸거나 결정짓는다. 타격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전투 불능이나 사망의 가능성에 있어서는 완벽한 방어 체제를 구축한 점퍼 조직쪽 인원들이 거세게 밀어 붙였다.


아닌 밤중에 황야의 협곡, 기지들이 있는 특이한 장소에서 귀 따가운 총성들이 울려퍼졌다. 투다다다다! 여기저기서 기관 단총 정도의 화기를 운용을 했고, 시끄러운 연발 소총 소리가 울려댔다.


결과는 점퍼 조직 쪽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기본적으로 베테랑들이었고, 그들에게는 총탄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맞더라도 그저 잠깐의 휴식 이후에 곧바로 전투에 참여할 수 있을 뿐이다.


마스터와 리시버는 종횡무진으로 도약을 사용해 전장을 돌아다니며 적들을 제압했다. 수십 명의 인원들과 교전을 하지만 결국 한 번에 맞닥뜨리는 수는 제한이 되어 있었다.


민서 역시 당연히 그 가운데 있었다.


구조가 단순한 빌딩 건물 내부에는 별다른 엄호물이 없었다. 복도의 끝 커브에서 몸을 숨겨 소극적으로 총을 쏘며 대항하는 것이 사이비 종교 쪽의 인물들의 행태였고, 점퍼 조직쪽 인물들은 방어 무장을 믿고 공격적으로 나아간다.


종말교단의 인물들은 나름대로 군사 훈련들을 받은 듯 대응을 해왔으나 엘리트 수준의 병력들은 아니었다. 총기류를 이용한 교전 경험이 있는 정도. 그에 반해 조직에서 파견 나온 인물들은 정예 중의 정예였다. 점퍼들이 아닌 백업 요원들도, 온갖 전장을 누빈 엘리트 특수전 병사들이었다.


야심한 시각에는 사이비 교단의 주요 인물들, 수뇌부들은 전부 고층 빌딩에 모여 기거를 하는 것인지 낮 즈음에 글라이더가 방문했을 때와 달리 많은 이들이 점퍼 조직을 반겨주었고, 곧바로 제압당했다.


본격적인 교전 임무에서 전투력을 제한하는 피스메이커 탄을 쓸 수는 없었다. 온전히 파괴력을 중요시한 실탄 무장으로 전투에 돌입했고, 종말교 쪽 인물들은 심각한 부상을 입거나, 혹은 곧바로 죽음에 이르며 흩어졌다.


민서 역시 자신의 무장 상태를 믿고 나름대로 자신감을 발휘하며 앞으로 나섰다. 그러다가도 날아오는 총알, 그 소리, 혹은 자신을 조준하는 듯한 적의 태세에 몸이 굳고 심지어 건물 내부에서 여기저기에 혼자 머리를 박기도 했지만 말이다.


늦은 밤. 조직의 소탕 작전은 순조롭게 진행이 되어갔다.


고층 빌딩, 그러니까 사이비 종교의 중요 시설로 보이는 중심 건물에 대한 소탕은 쉽게 마무리되는 듯 보였다.


옥상층에서 시작해서 천천히 내려가며 시작한 조직의 공격은 파죽지세로 상대를 꺾으며 밀고 나아갔고, 한 번의 물러섬이나 멈춤도 없었다.


종말교의 수뇌부들은 생각보다 강력한 적의 급습에 우왕좌왕하면서 계속 밀려났고, 급기야 몇은 일찍이 건물 바깥으로 피신해서 다른 이들을 모았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서, 고층 빌딩 하나가 완전하게 제압이 되었다. 대부분의 중요 물자가 이곳에 있었던 것 같았고, 병력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교전은 그리 길지 않은 듯했다.


홍인수가 건물 바깥으로 점프를 해서 동태를 살폈다. 그는 대담하게 건물 밖, 평범한 평지에 도약으로 나타났고, 풀페이스 헬멧의 방탄유리 너머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신도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듯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다. 하얀색 셔츠 상의에, 주황색의 긴 면바지. 남녀노소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고, 건장한 중년 층의 사내들이 제법 있다는 것이 놀라워보였다.


마음만 먹는다면 정말 대규모로 사고를 칠 수 있을만한 인력들이 모여 있는 것이다. 수 백명의 사람들이 광기나 맹신에 사로잡혀서 테러를 저지른다면, 그리고 그 과정에 용의주도한 계획자가 한두 명만 끼어 있다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를 만들기 어렵지 않았다.


홍인수가 그들의 모습을 살피는데, 불행하게도 다른 전투 물자들이 여러 군데 분산되어 있던 모양이었다. 하나 둘, 총기류 따위들을 챙기고 다루려고 하는 것 같은데 솔직히 홍인수는 그들을 완벽하게 제압할 자신이 없었다.


그저 방아쇠를 당기는 건 쉬운 일이지만, 아무래도 병사가 아닌 일반적인 사람들을 일방적으로 쏘는 건 그의 신념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아마 그가 알기로 국제법 상에도 걸릴 테였고. 형법으로 가도 과잉 진압이 될 수 있었다. 아, 이곳은 미국이니 상대가 총기를 든 시점에서 이미 얼마든지 가능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소드 마스터의 신념과는 위배 되는 일이었다.


저들은 저들 스스로를 인질로서 잡고 위협을 하고 있는 테러리스트나 다름이 없었다. 소드 마스터의 눈에는 말이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몇 명의 사내들이 고압적인 자세로 지시를 내렸고, 다른 이들이 빠르게 그에 따라 움직였다. 나름대로 일사분란한 모습이었다. 그들 사이의 움직임을 보자니, 홍인수의 시선에서 어떤 아이에게도 기관단총이 들려지는 것을 보고 그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런 씹.”


욕지기가 치미는 광경이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피스메이커 탄이 필요할지 모른다. 수백 명의 난동꾼들을 상대로 그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대규모로 살포해서 전 인원의 의식을 잃게 만들 수 있는 가스 살포기 따위가 있다면 제압이 가능할 수도 있었다. 당장 그런 물자를 지원받기에는 상황이 바로 눈 앞의 것이었다.


건물들의 외벽에 조명등 따위가 붙어 있어서, 그들이 야외 활동을 시작하자 백색의 강한 조명이 바깥을 비추었다. 별빛이나 달빛도 제대로 들지 않는 협곡의 외진 곳, 인위적인 포인트 조명들이 어지럽게 시야를 밝혔다. 나름대로 광량이 꽤 있는 편이라 여러 개의 빛의 원형이 움직이자 시설 내부의 전경을 보는 게 어렵지 않았다.


홍인수는 골치가 아프다, 고 생각하며 건물 내부로 다시 도약했다.


중앙 고층 빌딩 내부.


홍인수, 최길우, 존 카메론. 그리고 아홉 명의 특수 부대 출신의 백업 요원들과 김민서.


열 세 명이 덩그러니 빈 복도에 있었다.


치열했던 교전의 흔적으로 총탄이 지나간 자국으로 내부 인테리어가 새롭게 가꾸어져 있었고, 총연의 잔향들이 남아 있었다. 덜렁거리면서 안을 밝히는 백색 조명등들은 다행스럽게 모두 깨지지 않아서 광량도 적지 않았다.


여기저기 신음을 흘리고, 의식을 잃은채로 쓰러져 있는 종말교의 전투조 인원들이 보인다. 핏자국이나, 사람이 다친 흔적들이 내부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다.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민서는 나름대로 침착함을 잘 유지하고 있었다. 정신적인 평안이나 집중력이야말로, 재머가 위급한 때에 발휘할 수 있는 가장 큰 능력이었다. 그리고 김민서로서도 그러는 편이 생존률이 훨씬 높을 것이다.


“클리어, 다들 이상 없지?”


백업 요원들 중에서 가장 고참처럼 보이는 이가 말을 툭 건넸다. 희끗한 머리마저 보이는 중년의 백인 남성이었다. 특수전에 참여하는 미군들 사이에서는 나름대로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다른 이들은 평생 하나도 받지 못할 훈장을 몇 개 정도 수집한 군인이었고, 퇴역 후에 점퍼 조직의 임무를 간간이 도와주고 있었다.


그의 말에 다른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대답을 했다. 기본적으로 점퍼 조직 쪽이 입고 있는 무장 상태는 질적으로 비교할 수 없는 물건들이었다. 360도 어느 방향에서 쏘아도 뚫리지 않는 방탄 피복으로 온 몸을 가리고 있었으니. 다치고 싶어도 쉽지 않은 수준이다.


물론 상대가 기관총을 운용하는 만큼 연발로 피격을 당하면 데미지는 입겠지만. 단번에 죽지는 않는다. 그리고 교전 상황에서 그 정도의 혜택은 여벌 목숨을 수십 개나 갖고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홍인수는 먼저 잠깐 바깥의 상황을 살펴보고 돌아와서, 이야기를 건넸다. 유리 헬멧 너머 그의 표정이 착잡해 보인다.


“여러분, 가장 바라지 않던 상황이 찾아왔습니다. 종말교는 쉽게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군요.”


좌중이 그를 처다보자 그가 말을 잇는다.


“전투조로 보이는 인원들 외에 모든 이들이 바깥에서 무장을 하고 싸울 태세를 하고 있습니다. 총기가 남아 있는 것도 그렇고··· 10살 정도 되는 어린애도 총을 들고 있더군요.”


참담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것이 어느 먼 나라에서 일어나는 비극의 양상이 아니라 눈앞에서 그들이 막아서야 하는 경우라면 더욱 곤란하다.


“총을 든 수백 명을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이라··· 제 머리로는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본부에 연락을 넣어서 미군 부대라도 동원하지 않는 이상.”


아니면, 전부 다 죽이는 건 가능했다. 그들역시 충분한 양의 실탄과 소총을 들고 있었으니. 어차피 전력 차는 명백했다. 프로 중에서도 프로라고 할만한 사수들이 완벽한 방탄 상태에서 연발 사격을 한다면야. 점퍼들이 없다고 하더라도 상대는 가능했다.


재머, 김민서가 입을 열었다.


“뭐··· 조직에 제압을 상정한 무기 같은 건 없습니까?”


그 말에 글라이더, 존 카메론이 표정을 찡그리며 골몰히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마침, 민서의 말에 반응을 하듯한 타이밍이었다.


“그 정도의 저지력을 발휘할만한 제압용 무기를 만드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다만, 골라서 없앨 수는 있겠구만. 스나이퍼Sniper가 지금 임무 중인가?”


글라이더의 말에 리시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예. 괜찮겠네요.”


곧바로, 손목 부근에 찬 시계형의 기계를 조작하더니 이야기를 시작한다. 헬멧 내부 측면 아래에는 통화 장치가 달려 있었고, 바깥에서 연동된 기계로 설정을 하면 몇 곳에 연락을 할 수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당연이 점퍼 조직의 본부이다.


임무 중 그들을 보좌하고 다양한 정보들을 수집하며, 전달해주는 사무직 대기조를 ‘데스크Desk'라고 간단히 부르고는 했다. 그들에게 연락이 갔고, 곧 스나이퍼가 지원을 올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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