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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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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2.09.27 18:20
최근연재일 :
2024.06.21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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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25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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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71.

DUMMY

*


"부머Boomer, 확인 됐습니다! 한국 서울, 강남 상공입니다!"


태스크 포스를 이루어서 각국의 주요 도시의 치안 병력들과 연락을 유지하던 상황 통제실에서 비명처럼 보고가 터져나왔다. 비 점퍼 요원인 그녀가 고성으로 말하기 전에, 사실 이미 다른 이들도 알 수 밖에 없었다.


꽤나 규모가 큰 훈련실 하나를 전부 꾸며놓은 상황실의 벽면에는 수십, 수백 개의 화면들이 동시에 나뉘어 띄워져 있었고 개중 하나에서 누가 보아도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붉은 톤의 신호와 함께 시내를 찍은 CCTV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각국의 공무 조직에서 유지하고 있는 화면이나 정보들을 그대로 받아서 동시에 공유하고 연락선을 연결해둔 상태였다. 그와 거의 동시에 음성 통신으로 한국 쪽에서 파악하는 정보들이 흘러들어왔다.


단발 머리, 헤드폰을 끼고 자신의 자리에서 PC나 터치 패드를 조작하던 그녀가 한국 상황을 전파하자 곧 집무실에 있던 커맨더와 코치에게도 전해졌고, 조직 내 비상 태세를 유지하던 전 조직원에게 이어 퍼졌다.


순차적으로 바로 움직일 수 있는 요원들의 리스트가 올라왔고, 개중에서 최길우가 먼저 투입되었다. 믿을만한 인선이었다. 소드 마스터나 리시버는, 재난이라 할 수 있는 대형의 파괴 상황에서도 불안감 없이 돌입을 지시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요원들이었다.


마이클 샌더스의 임시적인 코드 네임은 '부머'였다. 언제 어디에 나타날 지 모르는 미치광이 폭탄마 테러리스트라는 의미였다. 그들이 분명히 한 명은 아니었으나, 그와 상관없이 식별을 위해 임시적으로 붙여진 별명이다.


누군가의 비명처럼 상황 전파가 순차적으로 이어졌다. 한국 치안 조직에서, 점퍼 조직으로, 점퍼 조직 통제실에서 각 현장 요원들과 그 외 모든 요원들에게로. 치안 조직 현장 인원들에게서 수뇌부로, 그리고 다시 각지에 퍼져 있는 치안 병력들에게로.


치안 병력들만의 일도 아니었고, 군부에서도 협조를 요청 받아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각 지역을 맡는 군부대가 섣불리 모조리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약간의 협조는 가능했다. 헬기라니. 기관총이나 로켓 런쳐라면 치안 병력의 화력만으로는 이미 안정적으로 진압할 수준을 한참이나 벗어났다.


한국에 있는 조직들의 수뇌부, 통제실에서는 실제로 고성이나 비명이 더 크게 오갔다. 서울 시내에 갑자기 헬기가 나타난다고? 대공 방어 체제를 무시하는 처사였다. 테러리스트도 상도가 있지. 그 모든 감시망을 피하고 갑자기 나타난다니.


점퍼라는 족속들은 상종하지 못할 작자들이었다.


다만 다행인 것은, 그 점퍼 족속의 일부는 또한 조직적으로 그들을 돕고 있다는 것이다.



*



12월 17일, 토요일. 수정은 조금 늦은 저녁을 집에서 먹고 있었다. 연말에 별다른 약속이 많지는 않았다. 일찍이 하루 일과를 정리하고 마치고 있었고, 다만 먹을까 말까 고민하던 저녁을 허기짐을 이기지 못하고 챙겨 먹던 와중이었다.


혼자서 라면을 끓여서, 반찬 몇 개를 꺼내어 먹다가 TV를 켰고, 곧 공영 방송의 연속극을 제치고 흘러 나오는 속보에 저도 모르게 리모컨을 툭 떨어뜨렸다.


"......어?"


같은 서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지만, 거리도 제법 있었고 당장 현실적으로 여파가 미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당장 십 수 km거리 바깥에서는 요란스런 사건이 일어나고 있었다.


수정은 저도 모르게 그녀의 친한 친구를 생각해냈다. 그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알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 상상해낼 수 있는 추리력은 있었다. 불법적인 일은 아닌 것 같았지만, 위험한 현장에는 자주 얽혀드는 것 같았다.


그가 농담처럼 말하고는 하던 비유들이 사실은 비유가 아니었음을 자기도 모르게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잘은 모르지만, '점퍼'라는 순간이동자와 관련된 것이 그가 하고 있는 일의 정체라면 아마 높은 확률로 저 장소에 있을 것 같았다.


그녀도 10월 초, 서울에서 일어났던 테러 현장에 있었고 거기에서 모습을 감추는 테러리스트를 목격했으니. 그 미치광이 또한 '점퍼'라면 민서와 관계된 이들 역시 그들을 막기 위해 움직이고 있을 테다.


"......."


서울에서 일어나는 일 자체도 문제였지만, 가깝게 아는 사람이 저 현장에 있으리라는 가능성 높은 추측을 하고 나니 왜인지 입맛이 싹 가셔버렸다.



*



부머.


반역자의 이름을 딴 조직을 만든 마이클 샌더스를 상대하기 위해서 만전의 상태를 유지하는 건 힘든 일이었다.


점퍼 조직과, 사회가 지켜야 하는 공간은 많고 또 넓어 전력을 퍼뜨릴 수 밖에 없었지만 공격자는 아무 곳이나 골라서 손쉽게 전력을 투사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또 상대가 정체를 드러내고, 조직이 운용할 수 있는 화력이나 병기가 다양하다고 해도 그것을 아무렇게나 난사할 수도 없었다. 그들은 엄연히 지키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드글드글하게 모여 있는 대도시에서 난전이 벌어진다면 점퍼 조직이 할 수 있는 공격은 상당히 제한적이 된다. 함부로 화약류를 난사했다가는 주객이 전도되고 말 테니까.


결국 엘리트 병력이 제 때 돌입해서 핀포인트로 상대방을 저격하는 수 밖에 없었다. 일반적인 병력이 오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렸고, 현장에 가장 빠르게 대응 가능한 건 역시 점퍼들이다.


전투의 양상은 결국 소규모 인원의 게릴라전이 되고 만다.


공격의 중요한 점이 화력보다는 정확하게 목표에 가 닿는 것이라면, 사실 그렇게 비대한 화력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공간의 제약을 넘어서 활약할 수 있는 점퍼들이 참전자라면 더욱 그럴 것이었고.


리시버는 일단 과감하게 움직였다.


제각기 기동하는 세 대의 헬기는 서울 시내 상공에 있기에는 지나친 재앙이었다. 빠르게 무력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이미 한 대가 탑재하고 있는 기관총을 빌딩 옥상에 뿌려댄다.


리시버는 건물 옥상들보다 높은 상공에서 움직이고 있는 한 대의 헬기 내부로 도약을 한다.


고속 이동하는 물체 내부로의 점프는 약간의 노력과 계산, 훈련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물체의 속도와 방향을 계산해서, 결국 미리 도약 지점을 암산해내야 하는 일이었기에 그렇다.


이런 정밀한 계산은 점퍼의 뇌로 다 해내는 일은 아니었고, JE가 작용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에 포함된 것이었다. 점퍼들의 점프는,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상의 컴퓨터가 개인마다 있어서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게 편했다.


그러나 같은 기계가 있더라도 다루는 이에 따라서 성능에는 차이가 난다. 최길우는 그런 운용에 있어서 달인에 가까운 자였다. 조직 내에서도 말이다.


우선, 다소 속도를 높여 날고 있던 보다 고도가 높은 두 대의 헬기 중 한대의 내부를 향해서 한 도약이었다. 그가 어느 빌딩의 옥상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한 헬기의 탑승석 자리에 정확하게 나타난다.


후욱, 하고 나타나는 그를 보고 내부에 있던 이들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마이클이 다루는 이들 중에서도 점프에 대해서 정작 경험을 하지 못했거나, 혹은 익숙치 않은 자들도 많았다. 최길우가 침투한 헬기 내의 인원들은 그런 부류였다.


“으아악!”


어느 금발의 서양인 남성이 꼴사납게 비명을 질렀다. 제법 건장한 체격에 각종 무기로 무장을 하고 있는 채였다. 최길우는 도약 전에 미리 자켓에서 빼들은 권총을 쥐고 있었다.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잠금을 풀고 장전을 하고,


손을 뻗어 조준을 한다. 그리고 시야가 회복되자마자 오조준을 교정하고 곧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헬기 내부에서 총질을 하는 건 제법 터프하고 위험한 일이었지만 리시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눈앞의 사내의 허벅지를 정확히 노려서 쏘았다. 탕! 탕! 으악, 하고 비명을 지르며 사내가 균형을 잃었다. 헬기 내부는 제법 공간이 있었고 여럿이 대기하고 있는 상태였다. 기관총은 헬기의 승강구 근처에 고정되어 있었고, 최길우는 기관총을 사이에 두고 탑승자들을 겨누고 있었다. 최길우가 헬기의 전면, 조종사에 가까운 편이었다.


리시버는 내부에 있는 이들에게 망설임을 보여줄 생각이 없었다. 그는 그대로 자동 권총의 탄창이 빌 때까지 갈겼다. 타타타탕! 빠른 연사였지만 조준은 완벽했다. 도탄으로 인해 다치거나 죽는 어이없는 일은 없었다. 비좁은 실내에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적 조직의 일원들이 도탄에 다치기는 했다.


헬기를 조종하고 있는 조종사도 또한 무언가를 하고 싶었지만 손을 놓으면 더 답이 없는 상황이 펼쳐졌다. 내부에 있는 사람들은 조종사를 포함해 5명이었다. 최초의 서양인 사내 한 명을 쓰러뜨리고, 그 뒤에 있는 둘을 더 침묵시키자 조종석 옆자리에 있던 자가 뒤에서 총구를 디밀었다.


리시버는 그대로 팔을 먼저 뻗어서 자신의 뒤통수 즈음을 겨누는 권총의 총구를 잡아챘다. 몸을 돌리며 관성으로 그대로 상대의 팔을 쭉 내렸다. 상대의 총구가 리시버의 뒤통수에서 그의 허벅지, 헬기 바닥, 그리고 열린 승강구 너머의 허공을 향한다. 탕, 타탕! 지독한 통증이 허벅지에서 느껴졌지만 관통상은 아니었다. 그리고, 전투를 지속할만했다.


최길우는 타격에 긴장감으로 몸이 굳는 걸 느끼며 그대로 주저 앉듯이 의자 쪽에 앉아 있던 상대를 억지로 당겨왔다. 체중을 실어 끄집어내듯 상대를 끌자 그가 자세가 무너지면서 엉망으로 넘어온다.


리시버는 그대로 헬기 바닥에 주저앉아 상대의 팔을 암바로 가볍게 부러뜨렸다. 뿌득. 끄아아악! 체격이 꽤 있는 중동 계열 인종의 사내였다. 그는 그대로 다리를 길게 뻗어 상대의 목을 종아리와 정강이 부근으로 졸랐고, 요령 좋게 먹혀 들어간 초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를 기절시켰다.


대강 헬기 내부가 정리가 되었다. 별다른 반응도 하기 전에 팔다리에 납탄이 박혀 쇼크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몇 명과, 의식을 잃은 한 명이 있었다.


헬기 조종수는 가볍게 등께를 떨었다. 악당도 두려움은 있다. 그것이 겉보기에 초인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전투가를 본다면 어쩔 수 없는 반응이다. 리시버는 안타깝게도, 헬기 조종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다. 그는 재킷 안쪽에 넣어두는 작은 군용 단검을 빼 들어 조종사의 볼에 그 칼면을 꾸욱 눌러 댔다.


“안전한 데 착륙합시다. 알겠습니까?”


살에 붙인 칼 면 너머로 덜덜, 떨리는 조종사의 감정이 전해졌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헬기를 몰았다.


*


헬기 한 대는 처리가 되어가고 있을 무렵, 나머지 한 대에는 마이클이 직접 타고 있었다. 가장 고도가 높은 헬기의 내부였다.


“도로 공사가 다시 필요해 보이는 부분이 있군.”


마이클은 각도를 아래로 잡았다. 그가 들고 있는 로켓 런처의 전면부를 말이다. RPG, 라고 불리는 로켓 런처는 비교적 가볍게 운용해서 큰 폭발을 일으킬 수 있는 개인용 중화기이다. 그는 익숙하게 각도를 조절하다가, 옆에 있는 조종석의 뒷면을 툭툭, 쳤다.


어깨에 로켓 런쳐를 걸쳐둔 상태였다.


마이클의 두드림에 조종사가 알아 들었는지 헬기를 느리게 선회하면서 아주 약간 기울어졌다. 마이클은 헬기 내부의 지지대와 연결되어 있는 안전 벨트와 두 다리에 의지해 몸을 고정하고 런쳐를 발사한다.


로켓의 출사구 뒤편으로 강렬한 바람이 불었고, 반대편 승강구로 뻗어나갔다. 그대로 화살보다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로켓 런처가 강남의 대로변에 직격했다.


사람들이 서둘러 빠져 나가고 있는 중이었고, 마이클은 일단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 한 발을 쏜 것이었다. 주차 되어있는 빈 차가 폭발 범위에 휘말려 들었고, 이어서 그가 바라마지 않던 연쇄적인 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앙! 쏜살같이 날아간 탄두가 화염을 일으키며 도로의 한구석을 폐허로 만든다. 자동차 역시 내부의 기름 때문인지 불꽃을 더하며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모습을 연출했다. 마이클은 썩 마음에 드는 광경이라고 생각했다. 더 큰 파괴와 혼란이 있을수록, 트라우마는 깊어질 것이다.


세계 정세의 뒷면에 숨어 있는 점퍼 조직들을 흔들어 튀어나오게 하기 위해서 그만큼 좋은 것이 달리 없었다.


마이클이 있는 헬기에는 유진이 같이 있었다. 윤민혁은 다른 한 대의 헬기에 타고 있다. 그들은 되는대로 부수고, 폭발시키고, 혼란을 유도한 다음 도망치려는 생각이었다. 점퍼 조직이나 과도한 병력이 막으러 와도 좋고, 그러지 않아도 좋다. 어차피 이번 테러는 눈요기에 불과하다. 더 직접적인 공격은 결국 점퍼 조직의 본부 기지에 행해질 것이다.


점퍼 조직의 와해, 가 마이클의 목표였다.


*


로켓에 의해 도로가 박살나는 광경은 아무래도 구경하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보고 싶지는 않았지만, 김민서와 송일우는 다시 현장에 돌아왔다. 잠시 점퍼 기지의 본부로 도약을 했다가 다시 돌아온 참이었다. 그들은 전방 100여m 앞에서 로켓 런처가 콘크리트 도로를 박살 내는 광경을 마침 목격했다.


어느덧 거리에는 사람들의 인적이 없었다. 이미 거리에 있던 이들은 제 발이나 차를 이용해 도망을 간 뒤였고, 근처 지역에서 시끄럽게 사이렌을 울려대는 치안대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송일우는 심각한 문제를 앞에 두고 있는 사람의 기분으로 아직 날아다니고 있는 헬기들을 처다 보았다. 언제든 입체 기동을 할 수 있는 헬기 내부로의 도약은 역시 아직 어려운 면이 있었다. 대신, 쓸만한 물건을 가져왔다. 시내에서 이것을 사용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철컥.


송일우는 그 새 챙겨온 소총을 견착했다. 그대로 총구를 위로 들어 올려 상공 수백 미터 위에 있는 헬기를 겨누었다. 맞아도 좋고, 아니어도 견제의 의미 정도는 전달 될 것이다. 먼 거리였지만 프로펠러를 맞춘다면 헬기가 무력화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했다.


두두두두두두두! 송일우는 앞으로 걸어가면서 대각선 상향에 있는 헬기를 겨누고 사격을 갈겼다. 허공에는 다행히 다른 것은 없었고, 빌딩 사이의 상공에 엄폐물이나 시민이 있을 리도 만무하다.


일반적인 걸음을 걷는 속도로 다가가면서 순식간에 탄창을 비워내고, 여기저기 주머니에 챙겨 온 탄창을 갈면서 다시 연속 사격을 했다.


시끄러운 폭음이 귀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옆에 있는 민서는 송일우와 동일한 속도로 앞으로 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혹시라도 공격이 이쪽을 향한다면, 그가 피할 길은 송일우와 같이 단체 도약으로 벗어나는 것뿐이다.


한산한 도로. 인적이 없는 곳에서 마음대로 총을 갈겨보는 것도 나름대로 색다른 경험이었다. 송일우는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런 해방감이 오래 가지는 못했다. 상공에서 헬기를 타고 소총 견제를 받는 쪽도 적잖이 해방감을 느끼고 싶어하는 모양이었다.


송일우가 노린건 개중에서 가장 고도가 낮은, 그들을 먼 곳으로 도약시킨 헬기였다. 그 헬기가 좌우로 복잡하게 기동을 하더니 그 승강구, 옆면을 그들이 있는 도로 쪽으로 기울였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도로는 헬기가 날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앞 뒤로 길게 뻗으면서 약간의 선회를 한다. 그 과정에서 각도가 기울여졌고, 헬기 내부의 바닥과 용접으로 고정되어 있는 기관총이 겨누어졌다.


“오 싯.”


송일우는 영어로 욕지기를 뱉으며 곧바로 옆에 있는 김민서의 어깨에 손을 댄다. 도약을 준비했고, 그들이 사라지고 난 자리에 한발 늦게 기관총의 납탄들이 수백발 정도 쏟아졌다. 두두두두두두! 멀리서 들어도 귀따가운 소음이었다. 강남 시내는 때 아닌 총성으로 가득 찼다. 사람들의 공황은 더욱 더 커져갔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이들은 움직여서 대피를 했다. 그러나 건물 내부에 있는 시민들은 따로 피할 도리가 없었다. 그들은 건물 내부에서 테이블 아래에 숨거나, 최대한 건물의 귀퉁이나 모서리에 가서 몸을 웅크린 채 자신을 보호하려 굴었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나오고 인터넷이나, 전화기로 상황을 파악해보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그러나 경찰서 근처 지구대의 수화기는 이미 몰리는 통신으로 더 이상 받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전에 이미, 치안 병력들이 차를 몰고 빠르게 서울 시내를 질주하고 있었다.


마이클은 병력들이 도착하기 전에 조금 더 화려하게 도시의 인테리어를 바꾸어줄 생각을 했다.


*


“이런 빌어먹을!”


리시버는 기어코 욕지기를 내뱉었다. 아찔한 군용 대검의 차가운 칼면이 얼굴에 대어진 상태에서도, 마이클의 부하는 제대로 헬기를 조종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얌전하게 구는 척을 하다가 멋대로 방향을 선회하려 했다. 낌새를 보아하니 적당한 빌딩에 들이 박으려는 심산처럼 보였기에, 리시버는 그대로 나이프를 역수로 쥐어 조종사의 어깨에 박아 넣었다.


“으아악!”


체격이 그리 크지 않은 백인 계열의 조종사가 비명을 질렀다. 어떤 나라이던 비명은 비슷하다. 리시버는 그대로 팔뚝을 밀어 넣어 조종사의 목을 조르며 경동맥을 압박했다. 다른 한 손은 몸을 깊숙이 숙여서 조종간을 쥐고 고도를 높여야 했기에 쉽사리 걸리지는 않았으나, 요령 좋게 적절하게 압박이 되어가고 있었다.


뒤에서 신음을 흘리며 쓰러져 있는 다른 부하들은 용케 열린 승강구로 몸을 내놓지 않고 구석에 잘 몰아서 숨을 쉬고 있었다. 팔이 부러진 채 널브러진 인간도 조종석 근처의 자리에 몸이 끼어 있어서 헬기가 요란스런 비행을 하는 와중에도 떨어지지 않는다.


리시버는 생에 자주 느껴보지 못할 간절함으로 조종사의 의식을 잃게 하면서 해본 적도 없는 헬기의 조종을 하며 애를 썼다.


조종간을 사력을 다해 잡아당기며, 온갖 감각을 동원해서 컨트롤한다. 제대로 된 방법은 모르지만 어떻게든 빌딩에 부딪히지 않기 위해 속으로는 기도마저 하고 있었다. 리시버가 조종수의 속셈을 빨리 알아챈 덕에, 헬기가 빌딩에 부딪히는 일은 없었다.


다소 아래로 향하던 헬기가 장애물이 없는 상공으로 빠져나온다. 세게 힘을 주는 동안 조종수는 몸이 축 늘어져 기절을 한 채였다. 제한 없이 힘을 주었던 터라 잘못하면 목 뼈가 부러졌을 뻔도 했다. 리시버는, 그대로 방향을 조작하며 먼 상공을 날아갔다. 대강 계기판을 보고 방향 정도는 추리해볼 수 있었다.


서쪽으로, 가까운 바다로 가서 물에 처박던 해야 할 것 같았다. 착륙 같은 어려운 조작 따위는 꿈도 꾸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비행이 적당한 고도를 유지하면서 안정적으로 움직인다면, 약 1분 내외의 여유만 있다면 기지로 가서 헬기 조작이 가능한 인원을 데려올 수도 있기는 했다. 리시버는 불안감과 간절함 사이에서 요동치는 마음을 다잡으면서 헬기를 시외곽으로 천천히 몰고갔다.


다행히, 부자연스러운 헬기의 출몰에 근처 군부대에서 대공 사격을 해오는 일은 없었다.


*


마이클은 빠른 시간 내에 화려한 흔적을 남기기를 원했다. 저번에는 초고도의 상공에서 다소 시간이 걸리는 방법으로 포격을 가했다면, 이번에는 그만한 위치 에너지를 받을 시간이 없기에 간단한 방법을 선택했다.


헬기 내부에 모아 두었던 폭탄을 잔뜩, 꺼내서 그대로 도로에 투하할 생각이었다. 적당히 집어 던지면 빼곡히 들어찬 건물에도 맞을 것이고, 서울은 그야말로 잊지 못할 흉악한 겨울 밤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헬기의 프로펠러 소리와 여기저기서 이어지는 총성에 주변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었다. 마이클은 조종사에게 언질을 하며 천천히 주위를 돌라고 한다. 시간을 너무 오래 끌면 한국 내부의 군경에게 제압을 당할 확률이 높았다. 그는 준비해 온 물건들을 빠르게 털어내고 도망가려는 생각이었다.


“유진! 다 떨궈!”


Drop it out! 마이클의 고성에 유진은 침착하게, 헬기 내부 뒤편에 적재 해두었던 박스들을 옮겼고, 그것들을 승강구의 열린 넓은 틈으로 아무렇게나 쏟아냈다.


강습, 폭격이었다. 잘 포장 되어 있는 플라스틱 박스들이 헬기의 움직임에 따라 우수수, 지상으로 떨어졌다.


연쇄적인 폭발이 바람에 실려 아무렇게나 날아간 폭탄들로 인해 벌어졌다. 대로변이 깨어져 나갔다. 건물의 1층 부근에는 근처에서 일어난 폭발의 화염과 파편, 압력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 전시장의 유리들이 엉망이 되어 깨져 나갔다.


폭탄이 터지고 총격이 벌어졌을 때 각 건물의 1층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없었다. 빌딩은 그들이 교전 장소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구조물이었지만 동시에 일정 수준 이하의 폭발에서 지켜주는 울타리이기도 했다.


서울 도심 거리에 화염이 자욱했다. 매케한 폭약 냄새와 폭연, 부서져서 날아가는 콘크리트의 파편과 면지가 거리를 메운다. 빌딩 내부의 사람들은 전쟁을 유사하게 경험하고 있었다. 경찰의 화력으로는 이미 진압이 어려워 보이는 상황이다.


교전 지역으로 돌입하려던 특수 경찰 병력들이 주춤할 정도의 위력이었다.


마이클은 사방으로 깨어져 나가는 도시의 모습을 보면서 부족함을 느꼈다. “유진, 계속 떨궈! 그걸 다 떨어뜨릴 때까지다!”


헬기의 비행도 빌딩을 피해야 했기에 차선 위쪽으로 제한될 수 밖에 없었다. 유진이 자신의 힘으로 폭약 박스들을 멀리 집어던질 수 없었기에 다행히 빌딩 피해는 적었다. 도로가 초토화가 되었고 대신 지상 병력들이 진입하기 어려운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더 멀리, 도망가기 위해 움직인다.


점퍼 조직에서 당장 움직일 수 있는 모든 점퍼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상황이 발생하자마자 연락을 받고, 서울 강남의 좌표를 통신으로 받고 점프를 해왔다.


그들은 정신없이, 도망치는 시민들의 몸에 손을 대고 장거리 도약으로 안전한 곳에 데려다 놓고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들의 활약과 통제 속에서 대피는 큰 피해 없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었지만.


건물 내부의 사람들을 대피 시키기 위해서도 분주하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급한대로 빠르게 도약을 하다보면, 수백에서 수천 정도는 구할 수 있었다.


마이클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쨌든 일방적인 공세를 퍼부을 수 있다는 점에 만족했다. 생각보다 사상자가 나오지는 않고 있었다.


쿠콰콰쾅. 도로변이 울리는 진동과 함께 연쇄적으로 폭격이 지속되었다. 그가 헬기에 싣고 있는 폭약 박스만 해도 백여 개가 넘었다.


마이클의 말대로, 순식간에 도로 공사를 하고 있는 꼴이다.


홍인수 역시 급하게 처리하던 임무를 마치고 서울로 움직였다. 그는 상공에서 폭탄을 쏟아내는 헬기를 목격했고, 걸음이 느린 여성이나 노인 몇 명을 대피시켜주고 난 뒤 다시 폐허가 된 콘크리트 돌무더기 위에 서 있었다.


이미 이런 식의 피해를 입은 순간에, 어마어마한 예산 손실이 날 것이다. 국익에 백해무익한 테러리스트를 배제하기 위해서 홍인수가 도약을 시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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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겨울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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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89. 22.12.23 53 0 16쪽
93 88. 22.12.21 41 0 20쪽
92 87. 22.12.20 43 0 17쪽
91 86. 22.12.17 63 0 19쪽
90 85. +2 22.12.14 59 1 15쪽
89 84. 22.12.12 47 1 23쪽
88 83. 22.12.09 53 1 16쪽
87 82. 22.12.08 54 0 11쪽
86 81. 22.12.07 52 1 13쪽
85 80. 22.12.07 54 1 16쪽
84 79. 22.12.07 48 1 14쪽
83 78. 22.12.04 45 1 21쪽
82 77. 22.12.03 52 0 13쪽
81 76. 22.12.02 58 0 30쪽
80 75. 22.12.02 45 0 12쪽
79 74. 22.12.01 42 0 13쪽
78 73. 22.11.29 51 0 22쪽
77 72. 22.11.28 50 0 18쪽
» 71. 22.11.25 57 0 23쪽
75 70. 22.11.25 51 0 13쪽
74 69-2 22.11.25 36 0 11쪽
73 69-1 22.11.25 38 0 10쪽
72 68. 22.11.24 39 0 15쪽
71 67. 22.11.23 37 1 16쪽
70 66. 22.11.22 42 0 23쪽
69 65. 22.11.21 39 0 17쪽
68 64. 22.11.20 37 1 29쪽
67 63. 겨울 22.11.19 46 0 11쪽
66 62. 22.11.18 29 0 17쪽
65 61. 22.11.18 28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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