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2.09.27 18:20
최근연재일 :
2024.06.21 01:24
연재수 :
121 회
조회수 :
14,790
추천수 :
219
글자수 :
908,591

작성
22.12.03 11:28
조회
51
추천
0
글자
13쪽

77.

DUMMY

*


민서는 카페에 있었다. 미국에 있는 곳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수만 개의 지점을 두고 있는 가장 유명한 프랜차이즈였다. 가격이 비싸고, 오래도록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잘 되어 있는 곳이다.


뉴욕 번화가. 시내의 늘어선 건물들의 1층 한구석에 있는 작은 매장이었다. 가격은 3, 4달러 정도면 먹을 수 있는 수준. 비싸다고 생각되는 프랜차이즈였는데 오히려 한국에서의 가격이 더 비싸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였다.


그는 창가 자리에 앉아서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주욱 보고 있었다. 시간은 낮 즈음. 이미 추위가 덮쳐온 뉴욕 역시 한파로 사람들이 옷을 여미고 다니고 있다. 어딜 가나 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그다지 다르지 않다. 한숨 내어 쉬고,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잠깐 여유를 갖고 주변을 돌아보면 말이다.


인종이 다르게 생겼다고, 무슨 외계인은 아니었다. 문화나 관습이 다르다고, 영 이해 못할 인종들도 아니었다.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와 상식 자체는 어디를 가나 달라지지 않는 면이 있었다. 다름은 있되, 결국은 이 좁아터진 지구촌 안의 인간들일 뿐이다.


결국 이해하고 공감할 수 없다면 세계적인 문화 작품들도 범인류적인 인기를 누리지 못했을 것이고, 성립조차 되지 못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수용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결국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일지 모르겠다.


아직 눈이 내리지는 않았다. 12월 말. 민서는 뉴욕에 있었다.


점퍼들과 같이 있다보면 편리한 점들이 많이 있었다. 여권도 필요 없었고, 비행기를 오랜 시간 기다려서 타고 수 시간이나 비행을 위해 앉아 있을 필요도 없다. 그저 원하는 곳의 좌표를 머릿속에 떠올리고, 능력을 발휘하는 점퍼의 곁에만 서 있으면 된다.


물론 그들도 일정이 있고 바쁨이 있는 이들이지만, 이런 가외적인 소득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옌과 홍인수가 정기적으로 대도시들을 시찰하며 점퍼들의 움직임을 점검하는, 레이더로서의 임무에 잠시 따라온 참이었다.


특별히, 적대적인 점퍼들과의 전투가 있다거나- 혹은 좌표를 잡기 아주 어려운 특수한 위치에 그가 있어서 물리적인 점프 유도 장치로 쓰일 일이 있다거나 하지 않는다면 필수적으로 참여해야 할 임무가 많은 편은 아니었다.


물론 그 외에도, 단순히 인간 김민서로서 조직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일들은 많이 있었지만. 오늘은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훈련이나, 실전의 피로도를 감안해서 잠시 주어진 휴일과도 같았다. 민서는 그런 시간을 이용해서 잠시 홍인수를 따라온 참이었고.


물론 재머로서 이렇게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것만 하더라도 그들의 탐색 임무에 일조를 하고 있는 것이기는 하다.


거리는 크리스마스도 지난 시간이었지만 아직 철거하지 않은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민간 기업이든, 혹은 공적인 대규모 크리스마스 파티나 이벤트의 흔적이든 게으르게 일정들을 마무리하는 자들이 있게 마련이었다.


꼭 나쁘다는 건 아니고. 사람들이 일할 때에 나름의 일정의 유동성은 있어서 나쁠 것 없는 일이다. 악의적으로 조직의 목표를 방해하는 게으름으로까지 이어진다면 효율을 갉아먹는 악습이 되겠지만.


그가 쥐고 있는 건 뜨거운 아메리카노의 잔이었다.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액체의 열기가 그의 몸을 녹인다. 커피숍 매장 안은 나름대로 난방을 잘하고 있었지만, 그는 창가에 앉아 있었고 이따금씩 열리고 닫히는 문틈 새로 바깥의 한기가 그에게까지 새어오는 자리이다.


약간은 위치가 높은 의자에 앉아서 한 발을 공중에서 휘두르며 그는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 이러고 있는 와중에도 홍인수와 옌은 도시의 다른 외곽들을 주욱 돌고 있었다.


그의 재밍 영역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이후부터, 사실 이렇게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대도시에 대한 대 점퍼 감시를 지속하고 있는 일이기는 하다.


옌이 구태여 번거롭게 도약을 반복하면서 훑을 수 있는 위치보다 훨씬 방대한 영역을 그가 커버할 수 있었으니. 어쨌거나, 뉴욕시에 점퍼가 있거나 이쪽으로 도약을 해온다면 그가 커피를 마시고 있는 이 자리 바로 옆에 나타나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점퍼가 나타난다면 그가 상대해야 할 테다. 지난 수 개월간의 거친 고련과 다양한 현장 경험들은 그를 어느새 얼추, 요원다운 테가 나는 사내로 바꾸었다.


적어도 초인적인 힘을 가졌다거나- 하는 비상식적인 인물이 아니라면 대화를 하며 시간을 끌어볼 수는 있었다. 그리고 아주 잠깐의 시간이라면 홍인수에게 연락을 해서 그가 이곳으로 올 테고.


후룹.


민서가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후후 불면서, 마신다.


그리고 그의 귀가 들이키는 액체에 대한 소리로 먹먹하니 잠식이 될 때에 이명처럼 어떤 소리가 들렸다. 휘이이. 바람이 부는 것 같은 소리. 누가 가깝지 않은 자리에서 휘파람을 부는 것 같은 소리.


민서는 자기도 모르게 슬쩍, 고개를 옆으로 돌려서 바라보았다.


그 자리에 아까까지는 전혀 있지도 않던 인물이 서 있었다.


민머리. 굵직한 팔과 다리. 두터운 가죽 재킷과 작업용 면바지.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중년의 동양인 사내.


윤민혁이었다.


민서는 끔벅, 눈을 한 번 크게 감았다가 떴다.


공교롭게도, 윤민혁 역시 비슷한 심정이었는지 선글라스 아래에서 눈을 크게 감았다가 뜬다.


서로 인지가 곧바로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한 번에 다양한 정보가 밀려 들어오게 되면 뇌는 개연성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그리고 김민서는 곧바로, 커피를 마시던 한 손을 주머니에 가져다 넣었다. 그리고 패딩 점퍼 주머니의 안에 있는 통신기의 외부 버튼을 눌러 조작한다. 버튼을 한 번 누르기만 하면 근처에 있는 팀원, 점퍼, 곧 홍인수에게 신호가 가게 세팅되어 있는 물건이었다.


김민서가 팔을 아래로 내려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누르는 동안, 윤민혁은 차마 이 상황에 대한 인지를 바르게 하지 못했다. 그리고,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자리에서 먼저 입을 연 건 민서였다.


“밥은 먹고 다니십니까.”

“······. 잘 먹고 다닌다네.”


그리고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윤민혁은 곧장 어딘가로 사라졌다. 다시금 민서의 앞에 나타나지 않은 걸 보면, 아예 영영 거리가 먼 곳을 도약지로 삼아 점프한 모양이었다. 민서가 지난 겨울의 교전 이후에 막대한 범위를 능력의 영향력 아래에 두고 있게 된 것을 몰랐던 듯했다.


어느 2000년대 영화의 명장면이나 명대사와 같은 헛소리를 민서가 읊었고, 그는 차마 윤민혁에게 어떤 제압 시도를 하지 못했다. 정면에서의 전투 능력도 그가 압도적인 편이었고, 그는 점퍼였으나 추적 도약이나 그런 시도를 할 수는 없었다.


주머니 속에 있는 교신기의 버튼을 누르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시도였고, 홍인수가 원거리에서 통신기의 신호에 반응했다.


윤민혁이 스타벅스에서 사라진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홍인수가 나타난다.


그는, 스타벅스 매장의 구석 즈음에 나타나더니 김민서를 향해 다가왔다.


그러나 교신기의 신호를 받고 바로 점프를 해서, 오기까지 십여 초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홍인수가 있던 현장에서 바로 움직이기 어려운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슬아슬한 시간 차로, 윤민혁이 사용한 점프의 잔향을 찾아 추적하기가 애매했다.


민서는 동그랗게 떴던 눈 그대로 홍인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 그 놈이었습니다. 탈옥한 사람. 윤민혁, 리더. 겁나게 잘 싸우는 점퍼.”

“자네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점프를 사용하다가 우연히 걸렸나보군.”


홍인수가 아쉽다는 듯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이런 일도 있는 법이었다. 소드 마스터는 아쉬움을 털어내면서 이야기했다.


“도시 외곽 쪽으로 움직이다가, 갑작스럽게 추돌 사고가 일어났어. 우리 근처에서 교통사고가 일어나고 교량의 난간 쪽으로 차량이 떨어질 것 같길래 그걸 처리하고 있었는데··· 운 한 번 더럽게 고약하구만.”


정말로 타이밍이 고약했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바로 통신에 반응해서 올 수 있었을텐데.


그러나 윤민혁이라는 존재가, 그리 사회에서 일을 저지를 것 같지는 않다는 점에서 의외로 홍인수는 깔끔하게 마음을 접었다. 이미 여러 번 점퍼 조직에게 데인 전과가 있는 그 인물은 지나치게 눈에 띄는 짓은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떤 일을 할 지는 모르겠지만. 점프 능력이 사용되지 않는다면 점퍼 조직이 필요 이상으로 집착을 할 이유는 없었다. 해당하는 일은 관할 치안 조직이 담당할 일이었지.


“뭐··· 어쩔 수 없는 거겠지. 일단 알겠습니다. 마저 돌고 오죠. 인원 더 차출하기도 뭐하고. 고생하십시오.”

“네 뭐.”


고생이랄 것 까지야. 민서가 하는 일은 그저 앉아서 아메리카노를 홀짝일 뿐이었다. 그가 잔을 슬쩍 들어 올리며 손짓으로 인사하자 홍인수는 스타벅스 매장의 화장실 쪽으로 사라졌다. 문을 닫고, 그의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으나 곧바로 점프를 해서 이동했으리라.


민서는 잠시 놀랐던 심장을 진정시키며 다시 뜨거운 커피를 마셨다.


*


“점점 느는데?”


왓슨 박사의 말이었다.


스위스의 연구소. JE를 여전히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는 대도시의 거대한 권역을 3D 매핑으로 보고 있었다. 연구소에 있는 디스플레이로 확인할 수 있었는데, 두 세명의 점퍼들이 동원되어서 JE2의 효과 지역을 측정중이다.


윌리엄 왓슨. 키가 크고 풍채가 좋은 박사는 흰 가운을 걸치고 안경을 콧잔등에 둔 채 커피를 마시면서 현장 상황을 살피고 있다.


그가 마지막으로 민서의 상황을 측정했던 것이 반경 7km대였는데, 지금은 50km가 넘어가고 있었다. 민서는 여전히 베른 외곽에 있는 연구소 내부에 앉아서 집중 중이다.


이전처럼 눈을 감고, 일부러 일정한 정신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집중을 할 필요는 없었으나 원활한 실험을 위해서 일단 똑같은 환경 아래에서 시작을 한다.


뇌파 검사로 측정하는 ‘일정한 정신상태’, 평안하다거나 멍 때린다고 할 수 있는 민서의 상태를 알리는 음악이 여전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예수 인간의 소망과 기쁨, 이라는 오래된 클래식 곡이다. 바흐의 곡조.


평안하고 안정감 있는 바흐의 선율이 오케스트라의 솜씨로 살아나 녹음된 것이 재생되고 있었다. 박사는 바흐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여러가지 소란스러운 것들에 치이다 보면, 결국 안정적이고 보편적인 곡조를 연주하는 노래에 마음이 가게 마련이었다. 삶이란 것이.


이전에는 분 단위로 진입하는 것이 목표였으나, 이제는 아주 안정적으로 곡조 전체가 연주가 되도록 집중이 끊어지지 않고 있었다. 몇십 분, 이 아니라 시간 단위의 집중도 안정적으로 이루어낸다.


이미 예전에 홍인수를 자신의 집으로 오착륙하게 만들었을 만큼의 범위는 커버하고 있는 셈이었다.


베른 외곽에서 시작되는 거대한 원의 외곽을 따라 몇 명의 점퍼들이 나누어서 이동을 하고 있었다. 순서대로, ‘반경 51km지점입니다.’라고 스피커를 통해 그들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도약을 했을 때, 거기가 JE2의 범위 내라면 이렇게 된다.


민서는 여전히 하얀 색 타일들로 이루어진 실험실 중앙에 의자 하나를 가져다 두고 앉아 있었다. 여러가지 패치들 따위를 몸에 붙여서 신체 데이터가 유리벽 너머의 실험실로 전송이 된다. 몸의 긴장을 풀고 적당히 앉아 있는데, 후욱 하는 소리와 함께 점퍼가 나타난다.


야가미 소우타의 모습이었다. 쉴더. 윌리엄 왓슨 박사가 통신기로 말했다.


“3km씩 해보지. 생각보다 더 넓을 수 있겠어.”


야가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곳에서 실험에 참여 중인 점퍼의 목소리가 실험실 내부 스피커에 울린다.


‘알겠습니다. 54km지점 이동합니다.’


짧은 말과 함께 그가 원거리에서 도약을 했을 것이고, 마찬가지로 민서의 JE2 효과의 권역 내부였으므로 흰 사각형의 실험실 내부로 이동이 되었다.


왓슨이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했다.


“생각보다 재머의 능력이 강력하군. 점퍼들을 모두 지배하는 날도 멀지 않겠는데.”


스미스smith. 송경태, 라는 이름의 키가 작은 동안의 한국인 남성이 곁에 있었다. 그는 웃기지 않는다는 듯 말을 받았다.


“어··· 정말 그럴 것 같아서 좀 무서운데요.”


그들의 대화소리가 들렸지만, 민서는 크게 복잡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

damiano-baschiera-IHM2eAmqW3U-unsplash.jpg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94 89. 22.12.23 53 0 16쪽
93 88. 22.12.21 41 0 20쪽
92 87. 22.12.20 43 0 17쪽
91 86. 22.12.17 62 0 19쪽
90 85. +2 22.12.14 59 1 15쪽
89 84. 22.12.12 47 1 23쪽
88 83. 22.12.09 53 1 16쪽
87 82. 22.12.08 54 0 11쪽
86 81. 22.12.07 52 1 13쪽
85 80. 22.12.07 54 1 16쪽
84 79. 22.12.07 48 1 14쪽
83 78. 22.12.04 44 1 21쪽
» 77. 22.12.03 52 0 13쪽
81 76. 22.12.02 58 0 30쪽
80 75. 22.12.02 45 0 12쪽
79 74. 22.12.01 42 0 13쪽
78 73. 22.11.29 51 0 22쪽
77 72. 22.11.28 50 0 18쪽
76 71. 22.11.25 56 0 23쪽
75 70. 22.11.25 51 0 13쪽
74 69-2 22.11.25 36 0 11쪽
73 69-1 22.11.25 38 0 10쪽
72 68. 22.11.24 39 0 15쪽
71 67. 22.11.23 37 1 16쪽
70 66. 22.11.22 41 0 23쪽
69 65. 22.11.21 39 0 17쪽
68 64. 22.11.20 36 1 29쪽
67 63. 겨울 22.11.19 46 0 11쪽
66 62. 22.11.18 29 0 17쪽
65 61. 22.11.18 28 0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